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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전통적 의식주와 한국어의 양상/- 의식주와 관련된 관용 표현을 중심으로-
    한국의 전통적 의식주와 한국어의 양상- 의식주와 관련된 관용 표현을 중심으로-성 명 :학 과 :학 번 :강 의 명 :지도교수 :제 출 일 :목차Ⅰ. 서론Ⅱ. 한국의 전통적 의식주와 한국어 양상1. 관용표현1) 관용 표현의 개념2) 관용 표현의 통사론과 의미론3) 관용 표현의 의미적 특성2. 의식주와 관용 표현1) 한국의 전통적 의식주2) 의생활과 관련된 관용 표현3) 식생활과 관련된 관용 표현4) 주생활과 관련된 관용 표현Ⅲ. 결론한국의 전통적 의식주와 관용 표현이 글은 한국의 전통적 의식주와 관련된 관용 표현을 연구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이를 위해 한국의 전통적 의식주에 대해 알아보고 관용표현의 개념과 더 깊이 나아가 통사론, 의미론, 의미적 특성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어렸을 때 엄마에게 혼나는 날이면 엄마는 항상 ‘너 이제부터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라고 하시곤 했다. 그때의 필자는 없는 자존심을 세워가며 ‘국물 안 먹을 거거든!’ 이라고 말대답하여 항상 더 혼나곤 했었다. 여기서 엄마가 말하는 ‘국물도 없다’라는 표현은 진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국물의 의미인 ‘국, 찌개 따위의 음식에서 건더기를 제외한 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엄마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국물도 없다’는 돌아오는 몫이나 이득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고로 엄마는 필자에게 음식의 한 종류인 ‘국물’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어림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국물도 없다’처럼 둘 이상의 낱말이 합쳐져 원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뜻으로 굳어져서 쓰이는 표현을 관용 표현이라고 한다. 새로운 뜻은 대개 그 나라의 전통적 관습이나 역사적 유래와 관련을 맺는다. 예를 들어 ‘손을 뻗치다.’라는 관용 표현을 살펴보면 원래는 ‘손을 길게 내밀다.’라는 뜻이지만 관용적으로 쓰일 때에는 ‘이제까지 하지 아니하던 일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다.’ 라는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두 개 이상의 낱말이 한 덩어리로 굳어져 한 낱말처럼 쓰이므로 그 표현을 마음 일상에서 쓰이는 말과는 다른 특이한 구조나 의미를 가진 구절이 작품에 나타날 때, 이런 구절을 관용적 표현이라 한다. 민담의 서두에서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피울 때” 라던가 시집살이 노래에서 "시금시금 시어마님”, “콩꼬다리 시아재비”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구비문학은 이러한 관용적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는 점에서 기록문학과 다르다. 관용적 표현은 간단하면서도 인상적이기 때문에 적은 노력으로 많은 표현 효과를 갖게 해 준다. 대체로 골계적 구조나 의미를 가진 것이 많으므로 해학이나 풍자의 요긴한 기법이기도 하다. 관용적 표현은 구비 문학 작품을 재미있게 하며 쉽게 기억ㆍ창작ㆍ이해할 수 있게 한다. 기록 문학에도 관용적 표현은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고전소설이다. 그러나 기록 문학에서의 관용적 표현은 중요성이 적다.관용 표현은 연구자에 따라 ‘관용 표현, 숙어, 익은말, 관용어, 관용구’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 왔으며, 그 범위와 유형에 대해서도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국내외 관용 표현에 대한 연구 경향은 다음의 3가지로 대별된다.첫째, 전통적인 관점에서 관용 표현은 둘 이상의 단어가 결합한 것으로 구성 방식이 고정되어 있고 구성 요소의 합이 아닌 제3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관용 표현의 필수 자질을 관습성으로 보고, 관용 표현의 의미는 비합성적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관용 표현은 특이한 언어 표현으로서 개별적인 연구 대상이며, 관용 표현은 어떠한 개념 체계와도 관련이 없는 독립적인 대상으로 취급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관용 표현의 연구 목표는 관용 표현의 성격 설정, 관용 표현의 기준 마련, 관용 표현의 목록 확정, 관용 표현의 형태ㆍ통사ㆍ의미ㆍ화용론적 특성 규명, 문형 정보 및 변이형 연구 등이다.둘째, 전통적 관점을 유지하면서 실용적인 목적을 고려한 응용 언어학적 관점이 있다. 이들 연구는 주로 사전편찬, 자연언어처리, 한국어 교육에서 관용 표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로서, 주로 대규모 말뭉치를 활용한 계량, ‘우연의 일치’ 등 명사구의 형태를 지닌 것들 중에 특히 그런 것이 많다. 이들은 어떤 요소도 대치되거나 빠질 수 없고 항상 고정된 형태로만 쓰인다는 점에서 단어와 다를 바 없다.그러나 다수의 관용 표현은 통사적인 변형이 가능하다. 연어에 비해 숙어의 경우에는 이러한 변형이 훨씬 제약되어 있다. 변형이 가능한 예가 있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예가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사전에서 이러한 숙어의 통사적 변형 가능성에 대해 일일이 명시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의미론은 하나의 단어이든 여러 단어로 이루어진 관용표현이든 비유 등의 기제를 통해 의미 확장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비유에 의한 의미 확장이 관용표현 전체에 걸쳐서 일어났을 때에는 그 관용 표현을 구성하고 있는 개별 단어의 의미는 대개 불투명하게 되고 이 관용표현은 숙어로 간주하게 된다. 한편 하나의 단어가 비유에 의해 의미 확장을 겪고 이 확장된 의미가 관습화되어 사전에도 등재될 정도가 되었다면 이 비유적인 의미를 갖는 이 단어의 용법은 투명한 용법이며, 이 단어와 다른 단어의 결합이 관습성을 띨 때 이것을 연어로 간주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사례들을 검토하다 보면 어떤 단어의 확장된 의미가 사전에 실을 정도로 관습화된 것인지 아닌지, 비유에 의한 의미 확장이 관용표현 전체에 걸친 것인지 그 안의 한 단어에만 해당하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다. 또한 통시적으로 변화를 겪는 과도기에 있는 것도 있을 수 있다.3) 관용 표현의 의미적 특성첫째, 한국어 관용 표현은 한국 사회와 한국 문화와 긴밀한 연관성을 갖는다. 의식주와 관련한 한국어 관용 표현에는 다양한 어휘가 포함되는데, 이들 어휘는 의식주와 관련하여 한국인의 삶과 긴밀한 관련을 맺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의생활’과 관련한 관용 표현에는 고무신, 짚신, 감투, 방립, 사모, 삿갓이 포함된 표현이 있다. 감투는 예전에 머리에 쓰던 ‘의관(衣冠), 방립’은 예전에 주로 상제가 밖에 나갈 성을 바탕으로 한 은유적 표현이다. 이러한 의식주에 관한 한국어 관용 표현에 대한 연구는 관용 표현의 구성 요소를 통해 한국인의 삶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2. 의식주와 관용 표현1) 한국의 전통적 의식주의식주란 옷과 음식과 집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전통의 정확한 개념은 무엇일까. 전통이란 유물이나 유적과 같이 가시적인 형태를 지닌 것과 가치, 태도, 제도와 같은 무형의 것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김영철(1998)은 전통을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역사적 측면, 문화와 양식이라는 실제적 측면 그리고 사고와 행동에 대한 가치적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정의하였다. 즉, 전통을 세대 간의 전승을 특징으로 하는 역사적 측면과 주체와 객체를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 유지되는 실제적 측면, 그리고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문화유산이나 사고와 행동에 대하여 현재의 생활에 비추어 개인 혹은 집단, 사회의 주관적인 가치판단에 의해 선택되는 가치적 측면 여부로 정의된다. 전통은 창조적 재료요, 창조는 전통의 방법이기 때문에 전통이 없는 창조, 창조가 없는 전통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전통은 그것이 단순히 답습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항상 새롭게 재구성되고 재해석되어 계승ㆍ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한국의 전통 의복은 한복이다. 한복의 외관이나 색, 무늬는 시대에 따라 많이 변화하였으며 그 안에 특정한 의미를 담고 있다. 옷의 종류도 관례, 혼례, 상례, 제례 등에 따라 달랐으며, 신분에 따라 색과 형태를 달리하였다. 한복의 색은 청색, 백색, 황색, 적색, 검은색의 오방색을 사용하였으며, 특히 우리 민족은 흰옷을 자주 입었다. 배색을 달리하여 붉은 치마에 노란 저고리의 미혼여성, 붉은색 치마에 연두색 저고리의 결혼한 새색시, 남색 치마에 옥색 저고리의 출산한 여성, 남색의 끝동은 아들이 있는 여성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무늬는 거북이나 사슴 등의 십장생 무늬를 사용하로 갈수록 들려올라간 곡선이다. 직선으로 하지 않고 곡선으로 하는 이유는 빗물을 빨리 배수하기 위한 지혜가 담겨져 있다. 이것은 서민의 지붕에서도 볼 수 있는 둥근 초가지붕의 선과 함께 한복의 완만한 곡선과 닮은 형태이다.2) 의생활과 관련된 관용표현ㄱ. 소점포 경영자는 판매원, 경리, 홍보사원은 물론 청소원 역할까지 다양한 감투를 쓰고 있다.ㄴ. 그 비상대책위원장 감투를 6년 만에 벗으셔서 요즘 얼마나 홀가분해 하시는지 몰라요.ㄷ.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는데, 무거운 감투를 씌워주니 머리가 아파서 고개를 들 수 없어요.ㄹ. 연초 개각을 앞두고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장관 감투를 따려고 독심술에 몰두할 것인지….ㅁ. 정권 주변 사람들이 한꺼번에 감투를 차지했다는 우박 인사의 결과다.ㅂ. 집권의 잔치 속에서 비서관·행정관들은 높은 감투를 받았고 새로 등장한 청와대 부서는 힘을 가졌다.위에서 사용된 ‘감투’란 ‘예전에, 머리에 쓰던 의관(衣冠)의 하나’이며 ‘벼슬이나 직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감투’를 포함한 국어 관용 표현으로 세종관용표현상세검색기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감투를 쓰다, 감투를 씌우다, 감투를 벗다’를 제시하고 있는데, ‘감투’가 관용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패턴을 보면 ㄹ-ㅂ와 같이 ‘감투를 따다, 감투를 차지하다, 감투를 받다’와 같은 표현도 등장한다.의생활과 관련된 관용표현의 예시로는 ‘가면을 벗기다/벗다, 가면을 쓰다, 갓 쓰고 구두 신기, 고무신을 거꾸로 신다, 첫 단추를 끼우다, 면사포를 쓰다/씌우다, 색안경을/안경을 끼다/쓰다, 소매를 걷다/걷어붙이다, 신을 거꾸로 신고, 옷이/입성이 날개, 주머니를 털다/털리다, 짚신도 제짝이 있다, 치맛바람을 일으키다, 치맛바람이 일다, 탈을 벗기다/벗다, 탈을 쓰다, 허리띠를 졸라매다/풀다, 호주머니 사정이 나쁘다/좋다, 호주머니가 가볍다/넉넉하다’ 등이 있다. ‘가면을 쓰다’의 경우에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관용적 의미로 사용될 경우 주로 ‘가.
    인문/어학| 2017.01.04| 12페이지| 3,000원| 조회(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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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생활 곳곳에 들어와 있는 이슬람 요소
    우리 생활 곳곳에 들어와 있는 이슬람 요소성 명 :학 과 :학 번 :강 의 명 : 이슬람문화와예술지도교수 :제 출 일 :우리 생활 곳곳에 들어와 있는 이슬람 요소종교, 건축, 음식을 중심으로한국 속의 작은 중동인 이태원 이슬람 사원을 아는가? 이곳은 서울 용산에 위치해 있는 국내 최초이자 최대의 이슬람사원이다. 최근 이슬람 국가의 이주 노동자가 급증하면서 이곳을 찾는 무슬림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이슬람 문화를 찾아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그래서 우리 생활 곳곳에 들어와 있는 이슬람 요소들을 찾아보고자 한다.우선 우리 생활에서 이슬람 문화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종교 ‘이슬람교’ 이다. 이슬람 종교와 문화가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은 13∼14세기 고려시대이다. 당시 중국의 원나라 조정에서 실권을 쥐고 있던 중앙아시아계 사람들이 고려 조정에도 진출했다. 이행래 이맘은 “고려사에 ‘회회인(回回人)’으로 기술된 투르크계 위구르인인 이들은 수도 개경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했으며 고유 의상과 언어, 문화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이슬람교인 한국인은 약 4만 5천명이 된다고 한다. 그들은 '주마'(금요예배)에 참석하기도 하며 히잡을 쓰고 긴팔 옷과 긴 치마를 입기도 한다.이슬람에서도 무슬림들의 종교적 열정으로 인해 ‘모스크’라고 불리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종교건축물들이 많이 건축되었다. 돔과 첨탑이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의 대표적 건축양식이다. 모스크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인 돔은 대부분 학자들이 비잔틴 건축양식의 영향이라고 주장하지만, 아랍 민속학자들은 이미 이슬람 출현 이전에 아랍 유목민들이 낙타의 등 위에 싣고 다니던 조그만 가죽 천막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한다. 한국 속 이슬람의 돔 양식을 볼 수 있는 건물에는 바로 돔구장(Domed stadium)이다. 이것은 돔 형태를 가진 경기장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돔구장은 고척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돔 야구장(Seoul Gocheok Dome)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동에 건립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돔 야구장이며 2015년 8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경기장 내에 수영장, 헬스장 등의 체육시설과 함께 콘서트를 비롯한 문화행사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어 시민들의 기대가 매우 크다.모스크 건축양식의 또 다른 특징인 첨탑은 기능면에서 두 가지 역할을 한다. 하나는 하루 다섯 차례의 예배 시간을 알리기 위해 ‘무앗찐’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이 첨탑 위에 올라가 ‘아잔’을 외쳤다. 높은 데 올라가 소리칠수록 멀리까지 잘 들리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기능은 이방인들에게 그 지방의 모스크 위치를 쉽게 알려주기 위함이다. 높은 첨탑은 쉽게 눈에 띄기 때문에 길을 모르는 외지인이라도 이 첨탑을 보고 모스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첨탑 양식을 잘 볼 수 있는 곳에는 대표적으로 교회와 성당 건물이 있다.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카레와 케밥 같은 요리를 자주 먹는다. 카레나 케밥 같은 경우도 이슬람 음식이다. 학교 급식이나 일반 가정집, 그리고 식당이나 뷔페에서도 카레와 케밥은 쉽게 볼 수 있는 요리이다. 또한 우리가 많이 만들어서 먹기도 하며 원래 음식과 다르게 우리나라 입맛에 맞춰 새롭게 요리되기도 한다. 또한 카레전문점, 인도음식전문점 등 음식점이 많이 출현했으며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 또한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차, 수프, 샐러드, 커피 등이 발달되어 있다.지금까지 내게 있어 이슬람은 멀고 먼 나라였다. 하지만 이번 학기에 아랍, 이슬람 문화의 이해 교양과 이슬람문화와예술 인강을 들으면서 이슬람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이 과제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이슬람 문화 요소가 많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이태원에 위치한 이슬람 사원 또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 이슬람 요리나 기념품, 옷 등을 팔기도 하여 이슬람 문화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인데 이태원에 가게 된다면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다짐했다.위에서 이슬람 건축 양식으로 ‘돔 양식’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돔구장 이라는 것은 이번 과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웃 나라 일본 ‘도쿄 돔’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도 돔구장이 생긴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또한 ‘돔’이 무엇이고 이슬람 양식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돔구장’이 이슬람 건축 문화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것도 새로 알게 되었다. 이슬람 건축 양식인 ‘돔’을 이용해 경기장을 짓는다고 생각하니 이게 바로 세계의 융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후감/창작| 2017.01.04| 3페이지| 2,000원| 조회(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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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 문화와 예술 독후감(감상문)- 카렌 암스트롱 의 <이슬람> 을 읽고.. 평가A좋아요
    책 ‘이슬람’을 읽고 나서...과학번이름해외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어서 항상 외국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그래서 외국 관광 TV 프로그램도 즐겨보고 책으로도 많이 접했었다. 그러면서 교양 과목 중에 아랍 국가에 관련된 교양을 찾았고 '아랍 이슬람 문화의 이해‘라는 교양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인터넷 강의 중에 아랍과 관련된 강의인 ’이슬람 문화와 예술‘이라는 강의를 알게 되었고 둘을 함께 들으면 아랍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두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인터넷 강의에서 카렌 암스트롱이 쓴 ’이슬람‘이라는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라 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아랍 수업에 큰 도움이 될 거 같아 좋았다. 책은 작년에 이 강의를 들었던 선배에게 구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이 책의 작가인 카렌 암스트롱은 영국의 유명한 종교 역사학자이자 종교 문화 비평가이다. 비교종교학의 권위자인 암스트롱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이슬람교와 불교, 유대교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편견 없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의 작품은 45개 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소개되었다. 지은 책으로 『마호메트 평전』,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예루살렘』, 『마음의 진보』, 『신을 위한 변론』, 『신을 위한 전투』, 『신의 역사』, 『신화의 역사』 등이 있다.책은 총 5장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제1장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내용과 정통 칼리프, 제1차 내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이슬람 초기를 소개하고 있다. 제2장 에서는 이슬람 발전기에 대한 내용인데 우마이야 시대와 제2차 내전, 종교운동, 우마이야 왕조 후기, 압바스 왕조의 칼리프 시대, 비교비전주의운동이 담겨있다. 제 3장 이슬람 전성기 에서는 새로운 질서, 십자군, 확장, 몽골 제국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제4장은 이슬람 황금기에 대한 내용으로 그 주제에 걸맞게 이슬람 제국, 사파비 제국, 무굴 제국, 오스만 제국에 관련된 내용이 실려 있다. 마지막 장인 제5장 은 고뇌하는 이슬람으로 서양의 세계 제패, 근대적 이슬람 국가에 대한 물음, 원리주의, 소수 민족의 무슬림, 이슬람의 미래에 대해 정리되어 있다.책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 때 배웠던 내용이 갑자기 생각나기도 하고 새로 알게 된 사실도 많았다. 그리고 내가 얕은 상식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부분을 더 넓게 알게 되기도 하였고 내가 지금까지 이슬람에 대해 잘못 알고 있던 사실도 몇 가지 있었다. 또한 흥미로웠던 부분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감상문을 쓰고자 한다.우선 책 제목인 ‘이슬람’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슬람은 아랍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610년에 제창한 일신교로, 이슬람은 현실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종교이다. 신자를 무슬림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자’ 라는 뜻이다. 이슬람은 정상적으로는 순교의 정신, 혹은 무의미한 위험을 감수하도록 부추기지 않는다. 이슬람은 그 이전의 여러 종교들 보다 더 이성주의적인 종교이다. 이슬람은 삼위일체와 같은 비논리적인 교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법의 중요성만을 강조한다.그리고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십자군’ 부분인데 십자군이란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에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원정에 참여한 군사를 말한다. ‘십자군’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당시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이 가슴, 어깨에 십자가 표시를 해서 이 원정을 십자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십자군은 종교적 요인에 의한 것이며, 유일신을 믿는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교도의 배타적 싸움이라는 점에서 종교전쟁으로 인정된다고 한다. 서구역사상 가장 불명예스러운 사건으로 기독 된 십자군 원정은 근동의 무슬림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이란, 중앙아시아, 말레이시아 그리고 인도의 대부분의 무슬림들에게 이 사건은 단순한 국경마찰사건에 불과하다고 한다.또 재밌게 읽었던 부분은 제4장 이슬람 황금기인데 우선 제일 먼저 나오는 이슬람 제국은 이슬람교도가 서아시아를 중심으로 건설한 대제국이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죽은 뒤 메디나의 이슬람 교도들은 아부바크르를 새 지도자인 칼리프로 선정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아바스 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된 칼리프 제도의 시작이다. 이슬람 역사에서 이 제도가 있던 시대의 나라들을 이슬람 제국이라고 한다. 무함마드의 후계자에 의해서 세워진 우마이야 왕조와 압바스 왕조를 가리키지만 좁은 뜻으로는 압바스 왕조만을 가리킨다.사파비 제국은 유럽에서 오스만 제국이 기세를 떨치고 인도에서는 무굴제국이 황금기 일 때 이란에서 성장하고 있던 제국이다. 영토를 확장하여 이란은 물론 유프라테스 강변에서부터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제국을 통치하게 되었다. 이것은 이슬람이 페르시아를 정복한 이래 가장 큰 이란제국을 완성했다. 사파비 제국에서는 아바스 대제가 이스파한을 수도로 정하였고 거대한 광장을 중심으로 시장을 형성하였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공원과 ‘샤 아바스와 로팔라 모스크’ 등의 건축물들로 도시를 발전시켰다. 행정과 사회적 안정을 바탕으로 이슬람의 성장과 함께 철학적 활동도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오랜 전쟁 끝에 20세기에 팔라비 왕조에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하지만 지금도 사파비 제국의 문화적 영향력은 막강한데, 이는 20세기의 레자 샤 팔라비 왕도 고대 이스파한의 화려한 건축물들을 재건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페르시아의 문화는 이슬람 세계의 3번째 중심권이 되고 있던 인도의 무굴제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무굴 제국은 조국 티무르에서 쫓겨난 징기스칸의 후예인 바부르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인도의 서북부를 점령함으로써 그 역사가 시작 된다. 그는 원래 중앙아시아의 페르가나의 왕이었지만 카불을 점령한 후, 다시 인도를 공격하여 이브라힘 왕을 파니파트 전투에서 격파하고 델리를 점령함으로써 무굴제국의 제 1대 황제가 되었다. 제 3대 황제의 자리에 오른 아크바르는 인도 북, 중부 일원의 소왕국을 건설하면서 무슬림과 힌두교 간의 종교 문화적 융합을 시도하여 건축과 예술 분야의 발전에 크게 힘썼다. 그는 행정적으로도 힌두교와 이슬람의 종파를 가리지 않고 고르게 등용하여 토지와 지세 등의 문제를 지방별로 관할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기도 했다. 아크바르가 행정제도를 완성함에 따라 그를 이은 황제들은 문화적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제 5대 샤 자한은 유명한 타지마할을 건축함으로써 이슬람 건축 예술의 전성기를 보여주었다. 무굴제국의 마지막 6대 황제인 아우랑제브는 아크바르와 같이 50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통치하면서 힌두교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순니파의 정통 이슬람을 고집하였다. 아우랑제브가 데칸 고원의 원정길에서 죽게 되자 후계자 계승문제를 놓고 분쟁이 일면서 무굴제국은 급속히 쇠약해진다.
    인문/어학| 2016.10.27| 3페이지| 2,000원| 조회(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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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탐색과 미래설계/ 세계보안시장의 숨은 강자 아이디스(IDIS)
    세계 보안 시장의 숨은 강자, 아이디스성 명 :학 과 :학 번 :강 의 명 : 자기탐색과 미래설계지도교수 :제 출 일 :소감문우리는 엘리베이터, 도로, 가게, 학교 등 일상생활에서 CCTV를 쉽게 볼 수 있다. 안전을 책임지는 침묵 속의 기록자이자 사건 해결의 결정적 열쇠, CCTV. 히든 챔피언 목록 중 가장 흥미 있고, 관심 가는 소재라 ‘세계 보안 시장의 숨은 강자, 아이디스’를 바로 시청하였다.아이디스는 CCTV 테이프로 녹화하던 영상을 최초로 디지털로 바꾼 우리나라 기업이다. 최고수준의 보안을 필요로 하는 미국의 NASA, 유니버설 스튜디오, 뉴욕 지하철, 중국의 푸동 공항, 시드니 올림픽 경기장 등 1급 보안시설의 경우 놀랍게도 아이디스의 보안 장비가 사용되고 있다. 2009년 11월 부산 실내 사격장에 화재가 발생했다. 자칫 미궁으로 빠질 뻔했던 이 화재의 원인을 밝혀낸 것은 바로 CCTV 화면 저장 장치, DVR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DVR이 무려 10년 동안 아무 관리 없이도 고장 없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또한 절도나 강동에 대한 흉기나 칼 사용범죄자들의 경우 위치를 파악함으로써 그들을 더 빨리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아이디스에서 개발한 CCTV DVR은 풀HD 화면 해상도와 같고, 끊기지 않기 때문에 세계 보안시장에서 높이 평가 된다. 또 우리가 알던 일반적인 CCTV의 경우 테이프로 녹화하기 때문에 길어봤자 24시간을 넘기기 힘들어 테이프 교체를 자줘 해줘야 하지만, 아이디스에서 개발한 DVR은 100일을 기록하기 때문에 훨씬 더 유리하다. 엘리베이터 CCTV같은 경우 관리실 안에서만 CCTV 영상을 관리 하거나 볼 수 있는데, 아이디스 DVR은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CCTV 영상을 내려 받아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비교적 기계 조작법이 쉬워 각광 받고 있다.아이디스라는 기업을 처음 들어봐서 무슨 기업일까? 했는데 영상을 보고 나니 세계 시장에서 유명한 우리나라 기업에 대해 몰랐던 내 자신이 창피해졌다. 영상을 보면서 우리나라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많은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점이 매우 자랑스러웠다. 또한 아이디스는 이 기계를 단번의 실수 없이 만든 게 아니다. 계속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밤을 새면서 작업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세계 1위는 단번에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아이디스는 CCTV 화면을 디지털로 저장하는 장치인 DVR을 만드는데 성공하지만 의외로 시장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기술을 앞세우다보니 미처 사용자들의 편의성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에 좌절하지 않고 안정성과 편의성을 동시에 잡은 DVR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국내외 보안시장을 선점해나가기 시작했다. 사용자들의 요구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에 본받을 점을 느꼈다.이러한 기술을 떠나 내가 더 인상 깊게 본 것은 아이디스 기업의 분위기였다. 보통 내가 생각하던 회사원들은 일 하기 싫어하고, 야근 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이 기업은 직원들이 열정을 가지고 야근하고 밤까지 새가며 CCTV의 문제점 보완방법을 연구하고 또 실험했다. 이렇기 때문에 이 기업이 성공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5년에 한번 씩 직원들끼리 해외로 단합을 간다고 하는데 매우 좋은 방법인 것 같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짧은 시간도 아닌데 가족같이 끈끈함과 열정이 있기에 직원들이 이 회사에 오래 남아 일을 하는 것 같고, 그 보상과 기분전환 겸으로 단합을 가는 것이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우리나라가 IT에서 강자라고 듣고만 있었지 직접 느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영상을 봄으로써 우리나라 기업인 아이디스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우리나라 기업에 대한 위상이 한층 더 높아졌으며 우리나라 제품을 얕봤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기업분석비디오테이프로 녹화해야했던 CCTV화면을 세계 최초로 디지털로 저장하는 데 성공한 아이디스는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 선정, 세계 200대 베스트 중소기업으로 두 차례나 이름을 올리고 있다.1997년 9월 아이디스가 설립되었다. 아이디스는 CCTV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디지털로 변환해 저장하는 DVR(디지털 영상 저장장치)를 생산하는 전문 기업이다. 1997년 12월 디지털 영상감시 시스템인 디지털 가드(Digital Guard)를 개발했다. 1998년 (주)에스원의 DVSS -Ⅱ 개발 계약을 체결했으며, 정보통신부 지원 우수신기술(IT) 보유업체로 지정되었다. 1999년 벤처기업에 지정되었고 2000년 인터넷 기반의 영상/음성 전송 제품 웹서버인 'INT400'을 개발하였다. 2001년 UL인증을 획득하고 코스닥시장에 주식을 상장했다. 2002년 10월 미국 지에 의해 2002년도 ‘세계 200대 베스트 중견기업’에 선정되었다. 2003년 DVR 누적 매출이 1천억 원을 넘어섰으며, 2천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2007년 11월 한국 지능정보시스템학회의 인텔리전스 대상을 수상하였다. 2009년 DVR 누적 매출이 5천억 원을 넘었으며, 2010년 6월 아이디스 유럽법인을 설립했다. 아이디스는 2010년 현재 생산 중인 IDR Series(PC 베이스제품)를 비롯해 2004년 개발한 차세대 DVR인 XDR 등 약 30여 종의 DVR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신제품 XDR은 획기적인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북미, 유럽 시장에 진출해 있다. 아이디스는 2009년 매출의 약 60%를 해외 시장에서 올리고 있다.
    경영/경제| 2016.08.23| 3페이지| 1,000원| 조회(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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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사회의이해 과제, 남북통일, 남북통일의 효과와 과제 그리고 견해
    1+1=2 가 아닌 1성 명 :학 과 :학 번 :강 의 명 : 북한사회의 이해지도교수 :제 출 일 :남북통일남한과 북한은 신라의 삼국통일과 후삼국의 통일이후 통일 국가를 유지하고 있었다. 1910년 일제의 지배를 받는 동안에도 ‘조선’이라는 하나의 지역으로 되어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뒤, 연합국은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조선을 신탁통치로 통치할 계획을 실시했다. 그리고 38선을 경계로 하는 2개의 구역으로 조선을 분할했다. 남쪽은 미국군정이, 북쪽은 소련군정이 통치했고 서로 자기 지역에서 군정을 개시했다. 그러나 남쪽의 민족주의자들과 일부 공산당원들이 ‘신탁통치결사반대 운동’을 벌이자 미국과 소련은 신탁통치의 실시를 둘러싼 대립이 깊어졌고 최종적으로 한반도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하는 2개의 국가로 분열된다. 그 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 적화통일을 목표로 한국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미군을 중심으로 한 국제 연합군의 반격으로 퇴각했고, 휴전에 의해서 한반도는 군사 분계선으로 분단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남북한은 휴전한 상태로 대치중에 있다. 하지만 햇볕 정책, 상호주의 정책 등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려고 노력중이다.현재 남북의 통일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며 우리는 왜 남북통일을 해야 하는지와 통일이 된다면 그것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가 무엇인지, 그리고 남북통일이 왜 말처럼 쉽지 않은지 통일 후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겠다.남북통일의 효과남북통일의 효과를 살펴보면, 통일의 효과 대부분이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긍정적인 효과이다. 통일이 지금으로부터 10년 ~ 25년 후 사이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가정 하에 통일 후 북한의 1인당 소득을 남한의 절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데 소요되는 자금의 크기를 계산해 살펴보았다. 각각 당시 GDP의 약 7% 정도가 되는데, 그 가운데 2%는 군비축소로, 1%는 해외 장기 저리 차관으로 조달하고, 나머지 4% 가운데 3%는 통일국채 발행으로 하고, 그리고 마지막 1%는 통일세 넘은 북한 지하자원 가치 1경원 이상의 가치와 북한의 노동력,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등에 대해서 골드만삭스의 통일강국론이 있었고, 세계적 투자자 짐 로저스는 "전쟁 위험이 없어진, 통일된 한반도의 북한지역에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 공언 하였다.또한 통일이 된다면 북한의 금강산, 백두산 남한의 제주도 등 아름다운 자연 덕분에 해외 관광객들이 증가할 것이며 관광수지를 높여 외국 달러를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과 북 각각의 스포츠 팀이 아닌 한 팀이 되어 스포츠 대국으로 우뚝 설 것이며 남한의 경제력과 기술력, 북한의 자원과 군사력이 하나가 되어 좋은 효과를 보일 것이다.남북통일의 과제지금까지 남북통일의 긍정적인 효과를 살펴보았다면 이제는 남북의 통일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우리의 과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걱정은 통일비용의 문제이다. 이것을 계산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 순수한 정부의 재정지출만 계산할 수도 있고, 정부 투자액과 민간 투자액을 합친 두 체제가 통합되면서 필요한 모든 사회적 비용을 통일 비용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각 연구기관이 예상 산출한 통일비용은 우리보다 앞선 독일통일의 통일비용과 맞먹거나 그 이상이다.또 다른 과제는 남북한의 경제격차의 문제이다. 2014년 기준 남한의 1인당 GDP는 28,000달러, 북한은 1,000달러 안팎으로 남한이 북한의 28배 이상이다. 그러나 북한의 GDP인 1,000달러조차도 과대평가 되었다는 평가이다. 북한은 동북아시아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국민소득이 세 자리이다. 남한과의 격차는 1인당 소득 기준으로 40배 이상 차이가 나고 전체 소득은 80배가 넘는 엄청난 격차다.그리고 북한 주민의 빈곤화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통일이 이루어지면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은 빈곤층이 되며 북한의 주민들은 남한의 재화를 구입할 능력이 없어 시장 형성에 크게 차질이 생기게 된다. 북한의 노동력은 남한에 비해 싸지도 않고 질이 낮은 노동력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그 이유를 예시히 통일직후의 20~50대의 노동인구에 해당하는 북한지역 국민들의 인적자원능력의 부재는 결국 3D업종을 포함한 단순근로직의 양산을 대량으로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통일 후 국내 평균 임금을 하락시킬 가능성이나 일용직 근로자를 하대하는 인식이 생길 것이다. 또한 상당히 불안한 사회안전망 등으로 인해 북한 출신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악화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고 남북 간 경제격차로 인한 갈등이 심화 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 분야의 통합은 기업들의 북한출신들의 고용이 상대적으로 그렇게 수월할 것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배경이 될 것이다.분단 전 부동산 소유권 문제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분단 전의 집문서나 땅문서를 가지고 토지반환을 요구하는 경우가 문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인정될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다. 민법에 의해 부정되는 것은 당연하고 이를 무시하고 인정한다면 북한 주민들의 실질적 소유권을 부정해야 하는데, 당연히 북한 주민들의 엄청난 반발을 유발할 것이다. 가령 수십 년 동안 보이지 않던 해방 전의 지주가 돌아와서 땅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그곳에서 수십 년 동안 산 주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북한주민들이 자신이 살아왔던 땅에서 쫓겨날 경우 살길을 찾아 떠돌아 남한으로 내려오게 될 수도 있는데 이는 더 큰 문제가 된다. 이 경우 토지 대신 금전적인 보상 등 기타 대안이 적용될 것이다.결국 이 문제는 기존 북한지역의 재산 소유권 전면 무효화 및 국유화, 권리관계 안정화된 뒤 사유화를 시키는 것이 더욱 합의 가능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통일 이후 북한 지방의 토지소유권은 일단은 전부 국유화해야 그나마 혼란이 덜할 것이다.통일 이후 예상되는 경제적 갈등의 양상은 통일의 방식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급진적 통일의 경우 독일과 같이 상호간 인구이동, 화폐교환비율, 사유화의 과정 등에서의 배분 문제 등의 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점진적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무너진 후 2개월 동안 동독 주민 18만 명이 서독으로 이동하였고, 그 후 인구 이동이 안정추세로 돌아섰던 경험이 있는데, 이러한 경험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남북한 통일 시에는 2~3개월의 단기간 동안 북한 주민 26만 명이 남한 쪽으로 일시에 이동하여 큰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은 인구가 이동할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해 질 것이다. 실업자 문제에 있어서도 남한은 과거 IMF 관리체제 당시 150만 이상의 실업자가 발생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통일 시에는 이보다 더 많은 실업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한지역에서의 높은 실업률, 물가 폭등, 국영기업 폐쇄 등의 문제가 심각할 것으로 생각된다.또한 빈민층과 취약계층의 확대에 따른 복지정책을 실시할 경우 이에 대한 정책을 두고 정책논쟁과 이념갈등이 확대될 것이다. 북한은 사회주의체제의 성격상 교육제도와 의료보장, 연금제도, 각종 보조금 제도 등 사회 복지제도의 골격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북한 사회주의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실질적으로 복지제도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후 관념상 사회주의체제의 복지제도에 익숙했던 사람들의 불만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남북한 사회통합 과정에서 남북한이 직면하게 될 심리적 문제점은 근대적 가치와 전통적 가치가 만남으로써 파생되는 문화적 이질감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 남한의 현대적, 상업적 대중문화가 일조의 문화충격을 유발할 것이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남한 사람들의 바쁜 생활, 시장경제체제, 외래어가 수시로 혼재되는 언어사용 습관, 자유로운 거주이동 등 낯선 생활양식으로 사회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다수의 북한 사람들이 남한사회에서 겪을 문화충격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북한이탈주민들을 바라보는 남한 사람들의 시각도 곱지 않다.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든가, 정부에서 지원하는 것들을 당연시하고,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을 갖고 있으며,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자존심만 세운다는 등의 비판을 한다급회담이 진행되어 바야흐로 한반도에서의 냉전구조가 해체되고 긴장완화 및 평화 정착을 위한 긴 레이스가 시작되었음을 느끼게 한다.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하여 남북한은 각각 상대방의 정치적 실체와 대화 상대자로서의 위상을 인정하게 되었으며,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원칙을 재확인함으로써 남북한이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국민이나 정부가 노력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남북통일의 과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남북통일에 관한 견해한반도의 분단은, 다시 말해 남과 북의 분단은 내가 태어나기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이것은 나라의 슬픔이었고 비통이었으며 민족의 한이었다. 그렇게 배워왔다. 하지만 그 시대를 겪어보지 않은 그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어린 시절의 필자는 그 감정이나 그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닐 때 통일 글짓기 대회, 통일 그리기 대회 등 통일에 대한 여러 가지 체험이나 교육들을 접할 수 있게 됨으로써 더 관심도 갖게 되고 그 아픔과 역사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우선 필자는 통일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다. 지지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위 글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산가족의 상봉 또한 중요한 남북통일의 긍정적인 효과이다. 지금까지 18번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얼마나 꿈에 그리던 순간이었을까. 학교에서 수련회를 가거나 수학여행을 가게 되면 겨우 일박이일 이박삼일 가족을 못 보는데도 불구하고 가족이 엄청 보고 싶어진다. 또 부모님이 출장을 가거나 남매 중 한명이 집에 늦게 들어오거나 안 들어오면 걱정이 되고 보고 싶고 그런다. 그리고 다시 돌아 왔을 때는 그 감정을 이루 말 할 수 없다. 고작 며칠 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산가족은 수십 년 동안 헤어져 있었는데 그 그리움을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겪었던 그 며칠 동안의 그리움은 그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그리고 또래 주변 남자 친구들을 보다.
    생활/환경| 2016.08.22| 11페이지| 3,000원| 조회(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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