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뤽 고다르 감독의 (1960) 감상문영화과(연출)1921053 엄지우나는 이번 영화 감상 과제로 장 뤽 고다르 감독의 (1960)를 감상했다. 사실 처음 감상한 것은 아니고, 스무 살 때 처음 감상한 이후로 가끔 다시 감상하고는 했다. 이번 기회에 다시 감상할 핑계가 생겨 좋았다.나는 어떤 예술이건 간에 자유롭고 반항적인 예술을 선호하는 편이다. 음악은 클래식보다는 재즈와 록을 좋아하고 르네상스, 로코코 미술보다는 낭만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 더 관심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장 뤽 고다르의 는 나에게 꽤 의미가 큰 작품이다.미술에서의 반항은 회귀이다. 한 사조는 그 전의 사조에 반감을 가져 일어난 것이고, 그 전의 사조 또한 그 전의 사조에 반감을 가져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옛날에 있었던 사조를 닮을 수밖에 없게 된다(간혹 기상천외함으로 정말 ‘처음’ 세상에 나온 것 같은 부류의 있지만, 이는 굉장히 희귀한 경우이다). 아마도 우리는 거스르고 거슬러 올라가며 연구해보아도 미술의 역사에서 처음과 초기의 반항이 밝혀지는 것을 보는 것은 굉장히 힘이 들 것이다. 몇십 만 년 전의 기록을 찾는 건 꽤 힘든 일이며, 밝혀진 기록도 몇 점 없기 때문이다.하지만 영화에서 역사는 독특하다. 우리가 유일하게 탄생일을 알고 있는 예술이고, 역사 시대에 출현한 덕분에 매우 많은 정보가 문서화돼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에서 언제 처음 반항이 이루어졌는지, 그 전의 ‘처음’은 어땠는지 상세히 알 수 있다. 내가 영화 역사의 공부를 가장 좋아하는 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누벨바그 사조의 영화들이 그렇듯이,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는 자유주의적이고 반항스럽다. 영화 내용의 외적으로는 (영화사를 공부할 때면 늘 배우고 지나가는) 점프 컷 기법과 역동적인 카메라의 움직임 등의 편집 기법부터 시작해서, 영화 내적으로는 비도덕적이고,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걸 정도로 수다스러운 주인공들의 모습이 대표적으로 ‘자유성’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내가 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여성 주인공 패트리샤 프랜치니의 캐릭터 성이었다. 짧게 깎은 머리와 주인공을 파멸시키고는 유유히 떠나는 모습이 기존 매체에서 다루어지던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에서 벗어난 ‘나쁜 여자’ 같은 모습이어서 굉장히 매혹적이었다.
(1920), 인간의 피조물이 가진 인간성.(1920)은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로, 한 유대인 랍비가 마을의 유대인들을 지키기 위해 흙으로 직접 골렘을 만들게 되고, 그 골렘이 랍비의 악한 제자에 의해 이용당하다 인격에 눈을 뜨게 돼 반격한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답게 으스스한 배경, 괴물과 인물들의 특징적인 분장 등 연극적인 요소를 가진 세트 등 시각적인 볼거리가 아주 많은 영화이다.하지만 사실 내가 이 영화에서 정말로 재미있게 본 점은 따로 있다. 에서의 골렘은 흙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났거나, 이미 존재하고 있던 존재가 아니라 유대인 랍비가 직접 흙을 빚어 정성스레 만들어낸 존재이다. 이 영화에서는 유대인 주인공을 세워놓았지만, 이 골렘은 종교적으로 신성성을 가진 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메리 셸리의 에서의 괴물에 더 가까워 보인다.랍비가 정성스럽게 흙을 다듬고 있는 컷을 보다 보면, 이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마치 피그말리온 신화나 처럼) 인간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생명체 창조의 욕구에 대해 말을 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강점은 영화를 단지 상업적, 오락적인 도구로 사용해 시각적인 볼거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영화 감상 후 철학적인 담론을 가능케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이러한 장점은 랍비의 생명 창조 말고도 ‘골렘’의 인격 형성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처음에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악한 제자의 명령에 따라 악행을 하던 골렘에게 인성이 깃들며 더 이상 명령에 따르지 않게 된다. 나는 이 이야기가 인간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살아 숨 쉬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말을 은유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이런 인문학적인 이야기 말고도 은 나름대로 오락적인 재미도 가지고 있다. 만들어진 골렘의 모습은 지금 보아도 꽤 우스꽝스럽다. 각진 단발머리, 우람한 체격 등 우리가 같은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 (1919)에서의 체자르의 섬뜩했던 모습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더 인간적인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단순히 관객에게 오락적 즐거움만을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와 맞물려 주제의식을 조금 더 유머러스하고 효과적이게 전달해주는 역할도 맡고 있다.
ㄴ 인문콘텐츠의 이해- 2030년의 킬러 콘텐츠인문콘텐츠학부 자율전공 201720087 엄지우필름으로 영상을 기록한 뒤, 조명을 이용해 스크린에 큰 화면으로 투영해내는 것에 성공한 최초의 영화는 뤼미에르 형제의 이다. 실제로 있던 일이 아니지만, 처음으로 열차가 달려오는 내용의 영상을 실제처럼 생생하게 본 관객들이 극장에서 뛰쳐나갔다고 문학적으로 표현된 말이 사실처럼 떠도는 걸로 보아 이 최초의 영화는 인류에게 커다란 센세이션이었던 것이었던걸 알 수 있다.최초의 영화가 태어난 후, 영화제작자들과 기술자들 그리고 과학자들은 눈의 착시 현상을 이용한 스테레오스코피, 즉 3d 기술을 이용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은 이라는 청적 안경을 착용하고 관람하는 세계 최초의 3D 상업영화였다.현대로 들어와서, 이제 우리 세대는 영화관에서 편광필터 안경(영화관에서 흔히 사용되는 까만색 안경)을 쓰고 관람하는 것이 흔해진 시대를 거쳐 기술의 발전으로 안경 없이도 3D 영상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소하게 느껴졌던 VR 기기도 일반 가정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됐다.앞서 말한 열차의 도착을 포함한 스테레오스코피 콘텐츠들의 공통점은 현장감과 몰입성, 실제 같음, 즉 체험자들이 가상을 현실같이 느끼는 것을 추구함으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상문화에 포함되지 않는 콘텐츠들, 예컨대 가장 대표적인 예인 책조차 간접 체험을 장점으로 내세우며 읽기를 권장받지 않는가. 고로 영상 컨텐츠와 간접 체험을 떼놓을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나는 그래서 앞으로 미디어 시장을 지배할 킬러 콘텐츠는 VR 기기를 이용한 1인칭 시점의 영상물이라고 생각했다. 1인칭 영화나 게임, 포르노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VR과 영화와의 조합은 아직까진 조금 생소하다. 3D 영화라면 같은 쟁쟁한 영화들이 이미 많고, 최근에는 1인칭 시점으로 내용이 진행되는 같은 영화까지 나왔지만, VR 기기를 이용한 것은 게임과 뮤직비디오 정도밖에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다. 몇 해 전까지 3d 영화를 포함한 대부분의 영화는 극장 상영용으로 만들어져 왔기 때문에, 영화를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길은 극장에 가서 직접 관람을 하거나, DVD를 구입하거나 빌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기의 무게와 번거로움으로 각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는 VR 기기를 이용한 영화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못 했던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그야말로 광속에 가까운 인터넷이 보급되며 영화를 보는 또 다른 방법이 생겼다. 넷플릭스와 IPTV 등장이다.넷플릭스와 IPTV는 인터넷으로 영화나 드라마의 대여,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요즈음은 극장에서 개봉 후 넷플릭스에 유통하는 방식이 아닌 처음부터 넷플릭스에서 유통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만드는 영화들도 많아졌다. 최근 영화로는 봉준호 감독의 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런 방식은 번거롭게 영화관에 가지 않고 개인적으로 가정에서 수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1인칭 VR 콘텐츠를 유통하기에 걸맞은 방식이다. 아직까지는 기기를 가진 가정이 그리 많지 않아 소비층이 얇아 콘텐츠 제작이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지만, 기기의 보급이 좀 더 확산된 2030년에는 대중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것이다.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상대적으로 약한 애니메이션이나, 아직 제작 경험이 없고 소비층이 흩어져있는 영화산업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이미 TV프로그램에서 제작 전례가 있는 연예인과 데이트를 하는 느낌을 준 2D 영상물인 과같이 기술의 수용이 빠르고 소비층이 두터운 10~30대를 겨냥해 TV 스타와 연예인과 직접 만남을 갖는 느낌을 주는 1인칭 VR 콘텐츠들이 초석을 깔 것이라 예상한다.초반 난항을 겪고 있는 영화와 달리, 게임 업계에서의 VR 기기를 이용한 1인칭 컨텐츠물의 등장과 발전은 순조롭다. 애초에 게임에서의 1인칭 시점 콘텐츠는 빼놓을 수 없다. VR 기기 등장 이전에도 액션, 공포, 에로, RPG 등 게임 등 광범위한 장르 모두 1인칭 시점을 사용하고 이름을 직접 설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플레이어에게 현장감을 주고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방식의 게임들은 일반적이었다. 이나 등 의 1인칭 게임들의 인기는 아직까지 식지 않을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VR기술과 대중성을 합한 건물 옥상에 아슬아슬하게 나와있는 케이크를 줍는 게임인 나 가정교사가 되어 여자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같은 다소 매니아틱한 게임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두 게임은 외국에서 발매된 게임이다. 한국은 게임 강국이라고 불리지만, 불법 다운로드의 영향으로 온라인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이 아닌 패키지 게임 생산은 사실상 잠들어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와 유사하게 VR 기기는 PC에 비해 불법다운로드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런 점을 기반으로 한국도 늦게나마 VR 콘텐츠물의 생산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VR 1인칭 게임으로는 이 있는데, 아직 발매 예정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시연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등 여러 기대를 받고 있다. 아직은 기술의 부족으로 VR 기기에서 나타는 화질이나, 게임의 퀄리티는 조금 떨어지지만 꾸준한 개발이 이뤄지고 있으니 2030년에는 정말 실제 같은 게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VR게임 Richies plank experince의실제 플레이 영상 스크린샷아직 초석 단계인 영화, 게임과 달리 1인칭 VR 콘텐츠 중에서 이미 상용화에 가까운 장르가 있다. 바로 포르노다. 일본에서는 이미 VR 기기와 1인칭 어덜트 비디오(AV), 성인용품을 같이 서비스하는 가게가 등장도 했고, 서양에서는 포르노 사이트에 돈을 지불하고 1인칭 VR 전용 포르노를 다운로드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불법이지만 해외에 서버를 둬 법망을 피해 VR 포르노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포르노의 제작은 불법이기에 이런 콘텐츠 생산에 따라가려면 초반에 말한 넷플릭스와 IPTV를 다시 언급해야 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탄생.‘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은 작가인 괴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지인들의 사건에서 영향을 받은 소설이다. 이 책의 여주인공 로테는 실제로 괴테가 사랑한 그의 친구의 부인인 샤를로테 부프에서 따왔으며, 실연한 괴테의 경험을 책 전반에 담아냈다. 주인공인 베르테르가 자살하는 결말은 그와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친구 예루살렘에게 따왔다 하나 정작 괴테는 실연의 아픔을 이 책을 쓰면서 이겨냈다고 말한 바가 있다.200년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짝사랑의 애틋하고도 괴로운 마음은 현대와 전혀 다르지 않고, 편지글의 형식이라 마치 작중 등장인물이 된 기분으로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이 책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이 책이 출간되고, 독일의 많은 청년들 사이에서는 작중 베르테르가 입고 다니던 옷차림이 유행하고, 더 나아간 ‘모방 자살’을 하기 시작했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용어가 생긴 정도니, 이 책이 갖고 온 사회적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짝사랑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책.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짝사랑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첫사랑에 눈을 뜨는 시기에, 아주 열렬한 짝사랑을 한 적이 있다. 그녀에 대해 쓰는 일기는 오백 편이 넘어갔고, 머릿속으론 멋진 사랑의 말을 생각하고 자기 전에는 그녀와 평생을 함께하고 같이 늙어가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필자의 상황은 이 소설의 상황과 매우 유사했고, 날마다 필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사랑의 말을 속삭이는 그녀를 봐야 했다. 이 시기에 이 책을 알게 된 것인데, 밝히기 부끄럽지만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짝사랑’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다가 그 존재를 알게 되고 그렇게 필자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만났다.곧 필자는 이 책에 탐닉하기 시작했다. 상처받은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고 공감해주는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아마 필자에게처럼 이 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아픈 사랑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친구이자 동지였겠지.-베르테르와 로테, 그리고 알베르토베르테르는 주인공, 로테는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여인, 알베르트는 그런 그녀의 ‘약혼자’이다. 과민한 감수성과 자의식을 가진 베르테르와 달리 이성적이며 인격자이기까지 하다. 자신에게 늘 적대감을 드러내는 베르테르를 끝까지 감싸주며, 베르테르와 아내와의 관계를 눈치챈 묘사가 있는데도 그 둘을 책망하지 않는다. 작중 내용은 베르테르의 내면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눈에 띄지는 않지만 마음이 넓은 인물이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의 고통.-세상에 태어난 ‘변신’.“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있음을 발견했다.” 이 소설의 아침을 여는 첫 문장이자 내용을 간략하게 압축한 문장이다.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한 사건과 그로 인한 실직, 가족들의 혐오 어린 시선, 수치와 슬픔, 그리고 죽음. 이 고통과 우울함을 낳아낸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성장 배경을 살피자면, 카프카는 권위주의적이고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병약하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카프카를 이해하지 못했고, 늘 고함을 지르거나 폭력을 휘둘렀다. 아마 ‘변신’에서 나타난 인물, 주인공 그레고르의 아버지는 카프카의 아버지와 무관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비단 변신만이 아니라, 평생 카프카를 괴롭힌 아버지의 그림자는 우울함과 부조리를 바탕으로 한 그의 창작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변신‘이 상징하는 바.얼마 전 필자는 ‘변신’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을 보았다. ‘실제로 벌레로 변신한 것이 아닌, 그레고르의 강박증과 정신이상을 표현한 것이다.’라는 것이 그 내용인데. 그레고르와 전혀 다른 존재인 ‘벌레’를 가족들은 별 의심 없이 그레고르로 인식한 점을 증거로 든다. 이 관점으로 본다면, 심약하고 무기력한 우울증 환자와 그의 병을 인정하지 않고 적대하는 아버지, 이 상황을 그저 피하려는 어머니, 한때는 편이 돼주지만 이내 뒤도는 여동생. 그리고 타의에 의한 주인공의 자살. 즉 일반적인 우울증 환자와, 그로 인한 가정 파괴를 그린 작품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나를 구속하는 두꺼운 외피.필자는 이 소설을 읽으며, 위의 가설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적어도 ‘변신’의 이유는 아주 비슷한데. 그가 ‘변신’을 한 이유로는, 나에게 상처와 절망만을 주는 세상에서 날 보호해주는 갑옷을 입고 숨은 것이다. 그러나 문을 열고 싶어도, 의사소통을 하고 싶어도, ‘벌레’의 갑옷이 감싸고 있는 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단지 벽에 붙어 숨 쉬고, 점액을 내보낼 뿐. 세상에서 날 숨겨준 갑옷은 날 보호해주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속구가 돼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