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평화기념관“ 감상문2016년 11월 25일 제주4.3의 이해 과목의 과제로 봉개동에 위치하고 있는 “제주4.3평화기념관“에 다녀오게 되었다. 흐린 날씨만큼 4.3 기념관에 갔던 내 마음도 무거웠다. 제일 처음 기념관에 입장하고 나서 기념관치고는 높고 큰 건물에 조금 놀랐다. 관람은 백비로 시작되었다 백비란 ”어떠한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이다. 이 글 위에 ”언젠가 이 비에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새우리라“라고 써져 있는데 관람 시작과 동시에 가슴속 어디선가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비록 2003년 10월 31일 故노무현 대통령께서 공식적인 사과를 하였지만 여전히 잘못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은 4.3사건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너무 비통하고 슬펐다. 이후 관람 순서는 일본 식민지 해방으로부터 故노무현 대통령의 공식사과 까지 관람 하였다. 첫 순서인 일본의 식민지 이야기로 시작 되었는데 제일 처음 걸린 사진은 카미카제 특공대 사진과 히로시마 원자 폭탄이 투하되는 사진과 폭발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사진을 보자마자 통쾌함이나 잘되었다는 생각보다는 전쟁 때문에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강제 노역자로 끌려가는 모습이 너무 슬펐다. 일본으로부터 해방이후 본격적으로 4.3에 관련된 내용으로 전시 되어 있었는데 4.3 사건의 발달인 내용부터 시작 되었다. 간략하게 말하면 관덕정에서 3.1 운동 시위가 있었고 제주도 도민 중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였고 시위를 구경하던 사람들 또한 많았다. 경찰에 타고 있던 말에 치여 아이가 다치게 되었고 구경 중이던 시민들은 경찰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 하였고 경찰서에 있던 무장 경찰들은 그 모습을 보고 무차별 발사를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6명의 사상자와 6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4.3사건의 도화선이 되었고 분노한 시민들은 3.1 대책 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고 정부와 제주도 도민의 적대적 관계가 시작 되었다. 4.3 사건 당시 미국이 개입하여 우리 정부를 조종하고 압박 하였는데 내가 가장 화나는 부분이 이런 부분이었다. 힘이 없는 한국은 미국의 말을 듣기 바쁘고 한국 정부는 진상조사 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왜 남의 나라가 하라는 대로 하고 자기 나라 국민을 학살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너무나 화가 났다. 9연대 대대장이던 김익렬 중령은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하였고 또한 김달삼과 함께 평화 협상을 진행 하려 했지만 미국은 오라리 방화 사건을 무장대 소행으로 조작하였고 평화 협상은 깨지게 되었다. 이후 김익렬 중령은 해임이 되었고 미국의 말을 잘듣는 혹은 정부가 원하는 데로 말을 듣는 송요찬으로 바뀌게 되었다. 관람 막바지에 있던 제주 4.3 아트 부분에서는 높은 천장에 흰 벽돌에 4.3사건을 표현한 조각들이 많았는데 어느 하나 빠짐없이 슬프고 화가 났다. 고문을 받는 동상 수장당하는 동상 목이 잘린 동상 등 많은 동상이 있었는데 어떻게 같은 나라 사람이 단지 위에서 시킨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무참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당시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고 마치 악마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는 ”다랑쉬 굴”을 재현한 동굴이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관람을 하다가 동굴로 들어서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곳은 학살자들을 피해 중산 간 지역에 위치한 굴로 피신해 있던 사람들이 생활하던 곳이다. 다랑쉬 굴에는 성인 남자 시체 7구, 성인 여성 시체 3구, 남자 아이 시체 1구가 발견 되었고 생활 용품인 그릇, 냄비, 버클, 간장병, 가죽신, 안경, 의복 등 많은 물건들이 있어서 집과 같은 생활을 빛이 들지도 않는 동굴 속에서 지냈다. 동굴에는 수통, 칼, 도끼 등과 같은 어떻게 보면 흉기라고 볼 수 있지만 나는 그런 생각 보다는 정말 살기위해 그 분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보호하기위해 무기를 두었다고 생각 되었다. 실제로 동굴 안에는 발굴 당시의 동영상이 있었는데 분명 살가죽도 없고 단지 해골일 뿐이지만 무언가 한이 서려있고 비통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 관람 전 그 당시에 피해를 본 할머니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할머니는 총에 맞아 턱을 잃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평소에 흰색 천으로 턱으로부터 머리까지 가리고 다니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 속상하고 마음 아팠다. 그런 일이 있으면 정부에서는 그에 맞는 합당한 처신과 보상과 사과를 해야 하는데 할머니는 어느 하나 정부로부터 제대로 받지 못하셨다. 할머니는 매일이 지옥 같고 약을 항상 지니고 다니시는데 그 모습에서 나의 외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내 할머니는 4.3의 세대이긴 하지만 피해를 보지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겪으셨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당시에는 4.3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나는 자세히 물어보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마지막 전시내용은 故노무현 대통령의 공식사과였다. 내가 가장 화나는 부분이 이런 것이다. 4.3 사건이 정말 과거에 일어난 비극인데 2003년이 돼서야 공식적으로 사과를 한다는 것이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정부의 잘못을 쉬쉬하기 위해 제대로 된 조사 자체를 안 한다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 현 정부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변함이 없다면 역사는 바로 고쳐지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세대와 마찬가지로 후대 또한 역사를 잘 모른다는 것에 슬픔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