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 격차, 그 마른 개천에 대하여 >학번000000이름000‘교육격차’란 무엇인가. ‘교육격차’의 정의는 「개인의 지적 능력, 지역, 제도적 요인, 학습기관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개인 및 집단 간 차이(교육과학기술부, 2008a: 42)」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슷하지만 다른 개념인 ‘교육 불평등’에 대하여서도 알아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 교육 불평등이란 「학습자의 교육성취도 차이가 학습자 개인에게 귀속되는 내적 요인에 기인하기보다는, 주로 외적 요인에 기인하여 발생하며, 궁극적으로는 학습자의 사회적 삶에서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현상(Orfield 외, 2005: 5)」이다. 이를 통하여 볼 때, 교육 격차는 교육 불평등의 여러 조각 중 하나의 조각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교육격차는 교육기회,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 그리고 교육 결과로 이어지는 일련의 단계(신혜련, 2006: 39)인데, 사실 교육 격차가 일어났던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교육격차 문제가 보다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은 과거에 비해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화되면서 교육이 ‘상승이동의 사다리’에서 ‘계층 고착화의 핵심 기제’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김경근, 2005)일 것이다.왜 과거에 비해서 현재에 교육 격차가 심화된 것일까. 갑오개혁 이후 사라진 신분제와 해방 후 국적으로 말미암은 차별이 사라진 후, 그 빈 자리를 ‘학력’이라는 요소가 차지했기 때문이다. ‘학력’이 교육받은 기관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 지위 배분의 지표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불가항력적 지위가 아니라, 본인의 능력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지표였기 때문에 ‘사회 이동의 통로’가 되기도 하였는데, 사회가 점차 원숙해지면서 통로역할을 점차 상실하게 되었다. 상위 계층들이 하위 계층에 비하여 더 좋은 교육 상품을 접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과 문화적 자본 등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계층을 더 공고화시켰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근대적 업적주의 이데올로기와 강력히 결합하였고, 교육경쟁이 상층 계급에서조차 족쇄가 되어버릴 정도로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올라가고자 하는 자들과 지키려는 자들의 전쟁이 교육이라는 장에서 일어난 것이다. 동물의 세계를 보아도 알 수 있듯 지키려는 자들은 더 강해지는 법인데, 그와 비슷하게도 상층 계급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다른 계층에 비하여 더 많은 돈을 소비하고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김종엽(2003) [특집/계급과 불평등] 한국사회의 교육 불평등. 경제와 사회, 59, 55-77)통계청에서 소득 수준별 사교육비 지출 내역을 조사한 결과,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사교육 기회가 제한되고 비교적 저렴한 사교육을 받는 반면,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사교육 참여율이 더 높고 지불능력의 우위를 토대로 양질의 사교육을 받고 있는 현실을 잘 나타내주는 것이다.(통계청, 「2009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 201.) 학부모의 교육적 관여 또한 소득수준에 따라 명백히 나뉘는데, 이 또한 가정의 경제적 형편이 좋을수록 부모가 자녀 교육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관리하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교육개발원, 「한국교육종단연구」, 2009)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교육 격차가 나타나는 원인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는 대안에 대하여도 논의해보자.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은 크게 세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균등한 교육기회와 여건 보장, 둘째, 교과목 이외의 예술문화 격차 해소, 셋째, 학교와 교사의 책임의식 강화이다.첫째로, 균등한 교육기회 보장은 곧 출발선의 보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이 우선이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에게 급식비 지원과 교육복지 투자를 우선하여 학교생활에 있어서 가정의 지원이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며, 상급학교 진학을 원하나 교육비가 부족하여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를 줄이기 위해 교육비를 지원하는 것 등이 있다. 저소득층 이외에도 대도시 출신 학생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적은 농어촌 학생들에게 기초학력을 보장하고 대학 진학 기회를 확대해주는 것 또한 포함된다.둘째로 교과목 이외의 예술·문화 격차의 해소가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창의 융합형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소위 국·영·수 과목이외의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문화¸예술적 소양’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왜 배 비장이 그러한 수모를 당했을까. -배비장전의 줄거리는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양 살던 배 선달은 제주 목사 김경의 제안으로 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비장으로 제주에 도착한다. 출발하기 전 처에게 한 눈 팔지 않겠노라 약조하고 온 배 비장은 망월루에서 애랑이라는 수청 기생에게 빠져 이까지 빼어주는 정 비장을 보고 핀잔하는데, 이를 본 방자가 내기를 제안하고 배 비장은 그에 응한다. 이 내기에 사또 또한 작당해 배 비장은 내기에서 지고 만다. 그 후의 내용은 이본에 따라 갈리기에 서술하지 않겠으나 대강의 줄거리는 위와 같다.필자는 배 비장전을 읽고, 그렇다면 왜, 애랑과 방자는 왜 배 비장에게 그러한 수모를 주었을까. 왜 하필 배 비장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에 대해 필자가 추측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먼저 약자의 울분이다. 방자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서 관아에서 10살 때부터 일을 했지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유교 사회인 조선에서 배 비장의 처는 배 비장이 제주로 가 다른 여성을 만날까 두려워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나, 애랑의 남편으로 변장한 방자는 애랑에게 다른 남성을 만나면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윽박을 질렀다. 이러한 면으로 보듯 방자와 애랑은 조선 사회의 약자였다.이러한 개인적이라면 개인적일 수 있는 사정에서 벗어나 방자와 애랑 외에 제주도민 전체와 제주 목사 일행 또한 약자와 강자의 구도였다. 제주도는 성종 원년(1470)부터 인조 2년(1624)까지 약 150년 동안에 섬 안의 굶주리는 난민들이 도외 각지로 유망해버려 삼읍 인구가 급격이 감소된 것이다. 이리하여 조정에서는 국법으로 유망을 금지하는 강경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출륙금지였다. 인조 7년(1629)부터 순조 25년(1825)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 때문에 제주도는 바다에 떠 있는 감옥으로 화하여 도민은 폐쇄된 생활을 영위하여야만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제주도민들은 육지 사람들에게 반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 없이 조선 사회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약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 받은 피해와 울분은 권력자들에게로 향했다.그렇다면 왜 이들은 제주 목사였던 김경이 아니라 배 비장에게 이 울분을 풀었던 것일까. 배 선달이 완전한 권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 비장은 아영과 방자에게 있어 일련의 행위를 해도 ‘괜찮은’ 인물이었다. 권력자인 제주 목사가 이를 용인했기 때문이다. 약자였던 애랑과 방자가 울분을 마음껏 풀어도 그 감당을 대신 해줄 권력자가 뒷배로 있었던 것이다.
교육실습 후기교육 실습. 학생과 교사,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볼 수 있는 기회인 이 과목을 수강하는 것은수강하는 것은 내가 국어교육과에 입학한 이래로, 아니 사실 교사의 꿈을 갖게 된 고등학생이후로 계속해서 갖고 있던 환상이었다. 사실 나는 16학번 여학생으로 원래대로라면 작년에교육 실습을 수강했어야했지만 올해 나가게 된 경우였는데 여기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사범대생은 휴학을 하면 1년을 통째로 휴학하는 것이 보통이다.왜냐하면 학기마다 열리는 과목이 정해져 있는 사범 대학의 특성상 한 학기만 휴학을 한다면커리큘럼이 꼬이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 한 학기만 휴학해 커리큘럼이 꼬여버린 경우였다.그렇게 나는 졸업 예정학기에 꿈에 그리던, 교생 신분으로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아니, 정확히는 그럴 예정이었다. 여느 전염병과 같이 잠시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코로나가,WHO가 판데믹 선언까지 할 정도로 크게 번졌고, 그로 인해 학교가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교육 실습도 일정이 불투명해져 버린 것이다.‘일이 이렇게 된 건 어쩔 수 없지만, 교육 실습은 당장 졸업 요건에 포함되는 필수 이수 과목인데.내 졸업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라는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다행히도 교육 실습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교육 실습 정책이 이번 학기에 한하여 대폭 수정되는것은 불가피했다. 4주간의 교육 실습이 2주간의 현장 실습과 2주의 연수를 통한 온라인 실습으로나뉘었고, 그 2주간의 현장 실습 또한 나를 비롯하여 중학교가 실습 학교인 실습생들은 학생들을불과 3일정도 밖에 만나보지 못하는 일정이었다. 아쉬웠지만 그래도 실습을 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가슴이 부풀었다.그렇게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 나 혼자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처음 AA중학교에도착 했을 때 약속된 시간 10분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11명의 교생 선생님들 중 내가 거의마지막으로 도착했기 때문이다. 교생실은 각자 2명씩 대각선으로 앉을 수 있도록 명찰이 부착된6개의 사각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었다. 대학교는 BB대학교, CC대학교 두 학교, 과는 국어교육과가 5명으로 제일 많았고, 교육학과 3명, 예체능 계열 3명으로 나누어져 있었다.모두 모이자 맘 편히 교생실습을 하고 가라는 연구부장님의 격려의 말씀과 차례로 이어지는연수가 있었다. 연수 내용으로는 교생 신분으로 지켜야 할 수칙부터 수업 지도안을 짜는 방법,교원 평가나 정보 공시 등 학교의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한 내용, 기안문과 생활기록부 작성법 등실제 학교에서 일하게 된다면 필요할 실전 지식이 다수였다. 생활 지도법은 학교에 학생이 없어자세히 배우지는 못했지만 부장 선생님들과 교장, 교감 선생님의 경험담도 들으며 교사와 학생의중간입장인 교생에 임하는 자세와 생각 등을 배우기도 하였다.온라인 개학이니만큼 학생과 면대면 학습을 할 수 없어, 이번 학기에는 담임 학급관리나 학습 참관,실제로 수업을 해보는 실습은 e학습터라는 플랫폼을 이용하게 되었다. 담임 학급관리나 학습참관은 학생들의 게시글에 댓글을 달아주는 형식으로, 실습수업은 파워포인트로 수업 자료를만들고, 그 위에 녹음을 해 영상으로 추출해내어 구글 드라이브에 올린 후, 그 링크를 e학습터에올리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대표 수업은 학기 특성상 학교장 재량으로 진행되지 않았다.첫 주는 매우 힘들었는데, 새로운 공간에서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생활하며, 노트북으로 교생업무를 보다보니 눈과 허리가 통증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해보지않았던 새벽에 일어나 아침 일찍 등교하는 생활이 몸에 익지 않아서인지 내 체력을 실감하게 했다.둘째 주부터는 몸이 적응되었는지 훨씬 수월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말이다.실습의 일과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아침 8시까지 출근해, 맡은 반의 과목 출석률을 체크하고,과제를 체크한다. 그러다가 아침 9시가 되면 담임 학급으로 가서 담임교사와 함께 학급 아이들의근황과 출석을 체크하고, 그 후 오전 10시 30분에 도서관으로 내려가 교과 지도 선생님과 동료교생 선생님과 함께 교과 협의를 했다. 이 두 일과와 점심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은 교과 과목의출석률과 과제를 점검하는 데에 쓰였다.사실, 교생 실습을 나가기 전에 온라인 개학 소식을 들으면서, 학생들을 직접 만날 수 없는 교육실습이 내게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는지에 대해 걱정과 약간의 불신을 가졌었다. 그러나 실습 중매일 매일 학생들이 낸 과제를 검사하면서 이러한 생각이 바뀌었다.얼굴도 본 적 없는 나를 교생 ‘선생님’으로 생각해줄까 하는 걱정은, 온라인으로나마 인사를해보라는 교과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댓글로 인사를 건넨 내게 답글로 인사를 돌려준 학생들에의해 사르르 녹았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교생 선생님이 과제에 대해피드백을 하면 실제 면 대 면으로 보는 것도 아닌데 성실하게 수행해줄까 하는 걱정 또한 칭찬과함께 건넨 조언이나 칭찬, 예를 들어 사진이 흐릿하게 찍혔으니 다음에는 더 또렷하게 찍어주면고마울 것 같다. 라던가 혹은 글씨를 또박또박 잘 써서 알아보기가 좋다던가, 중요한 부분을 빨간색펜으로 포인트를 주어서 정리를 잘 했다던가 하는 피드백을 그 다음 과제에서 반영해주는 것에없어졌다.온라인 실습이기에,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그들을 알아갈 수 없다는단점은 있었지만, 온라인으로 한 실습이기에 가질 수 있었던 장점 또한 분명히 있었다. 학생의외모를 보고 선입견을 가지는 것이나 또 특정 학생을 편애하는 것은 단연코 지양해야할 일이지만교사 또한 사람이기에 잘 되지 않는다는 교직 실무 교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그러나 온라인개학은 모든 걸 가려주고 오로지 그 학생의 이름과 수행한 과제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선입견을
교육공학 과제. [좋은 수업이란 무엇인가]좋은 수업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서 우리는 논점을 2가지 찾을 수 있다. 수업은 어디까지가 수업인가. 그렇다면 그 수업이 ‘좋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글에서는 먼저 수업을 정의하고, 그 이후에 좋은 수업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사람마다 ‘수업’에 대해 정의하는 바가 다를 것이지만, 내가 정의하는 ‘수업’은 [교수자와 학습자가 교수 학습 목표를 가지고 그를 위하여 함께 활동하는 시간]이다. 물론, 공간이 갖춰진다면 더 원활한 수업이 가능하겠지만, 딱히 정해지지 않더라도 교수자와 학습자 모두가 교수학습목표를 가지고 그를 위해 활동한다면 수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 간단히 정리한다면, 수업의 5요소는 교수자와 학습자, 교수 학습 목표, 활동,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의는 우리나라의 교육학자 정범모가 이미 교육을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라고 정의한 것과 정확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정범모의 정의는 두 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로 인간 행동의 변화는 모두 교육인가 하는 것이다. 고참 도둑이 신입 도둑에게 행인의 지갑을 소매치기하는 법을 가르치는 상황과 아이가 기저귀를 떼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 기준에 따르면 고참 도둑이라는 교수자가 신입 도둑에게 교수 학습 목표인 소매치기 방법을 가르쳐, ‘계획적으로 변화’시키고 있고, ‘아이(학습자)’가 ‘기저귀를 떼도록(교수 학습 목표)’ ‘양육자(교수자)’가 ‘시간’을 들여서 ‘시행하기(계획적 변화)’ 때문에 이들 또한 교육이라는 것이다.두 번째 의문점은 ‘인간행동이 변화되었으나, ‘계획적’이지 않으면 교육이 아닌가’이다 아이가 책을 읽고, 교훈을 얻은 상황을 가정해보자. 아이는 그저 심심해서 도서관 동화책 코너에서 ‘헨젤과 그레텔’을 꺼냈다.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마녀의 과자 집을 먹고 위험에 빠진 아이들을 보며 ‘주인이 없어 보이는 것도 함부로 손을 대면 안된다’라는 개념을 학습했다. 책을 다 읽은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다가 거리에 떨어진 지갑을 발견하지만, 개념을 학습한 아이는 그것을 주워 경찰서에 가져간다. 이 경우에서 헨젤과 그레텔의 저자는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켰다. 그렇다면 이는 교육이 아닌가?내가 한 정의는 정범모의 ‘교육에 대한 정의’에 관한 모순을 공유하고 있다. 교수자의 강의를 학습자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교수자와 학습자 간의 사이가 멀어, 학습자 개개인의 상태를 고려하지 못하는 상황 모두 교수자와 학습자, 학습 성취 목표, 활동, 시간 이 5개가 모두 갖춰졌기 때문에 수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교사들은 단순한 ‘수업’이 아니라 ‘좋은 수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수업’을 ‘좋은 수업’이 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3가지로 정리하고자 한다.첫 번째 기준은 학습자의 ‘긍정적’인 변화이다. 무엇이 학습자를 ‘긍정적으로 변화하게’ 만들어주느냐 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가치 지향 여부를 꼽을 수 있다. 위의 예시 중 첫 번째 예시가 수업이긴 하나, 좋은 수업이 아닌 이유는 ‘도덕’, ‘소통’, ‘배려’라는 가치를 부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피터스는 교육을 ‘모종의 가치 있는 것이 도덕적으로 온당한 방식으로 의도적으로 전달되고 있거나, 전달한 상태’라고 정의했다. 예시 중 소매치기 수업을 살펴보면, 교수자와 학습자 모두 범죄를 저지르기로 마음먹고, 그를 행하고자 하는 자들이며, 교수 학습 목표인 소매치기 수법은 범죄를 저지르는 수법이다. 수업의 요소 중 무엇 하나 ‘도덕적으로 온당한’ 것이 없다. 즉 이와 같은 경우는 ‘좋은 수업’이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두 번째 기준은 교수자와 학습자 간의 소통의 여부이다. 학습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수업 또한 교수자와 학습자, 교수 학습 목표가 존재하나, 학습자는 그 ‘수업’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이 없거나, 극히 적다. 교수자가 교수 학습 목표를 선정하거나, 난이도나 속도를 조절함에 있어 학습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면 난항을 겪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선행지식을 가지고 있는 학습자가 중학교 3학년 과정의 교과를 배워야한다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 가운데 교수자가 학습자와의 소통 -예를 들어 상담을 통하여 학습자의 가정 환경이나, 선수 지식의 부재 여부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 을 통하여 대비를 해놓았다면, 따로 학습지를 내준다거나, 조금 더 쉬운 설명을 한다거나 등의 방법을 통하여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다면 학습자의 교수 학습 목표의 성취는 조금 더 쉬워질 것이다.또한 소통이 있다면 학습자가 교수 학습 목표에 대하여 궁금한 점이 있다면 교수자에게 적극적으로 질문하게 되는데, 이 또한 매우 중요하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무엇일까? 바로, ‘목마른 자’는 우물을 팔 만큼 물을 갈구하나, ‘그렇지 아니 한 자’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배움을 물로 비유한다면, 배움에 목마른 자는 교수자의 수업을 갈구할 것이나, 그렇지 않은 자는 단순히 수업에 의욕적이지 않는 것을 떠나 수업을 참여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방해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자는 학습자가 교수 학습 목표를 먼저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가지게끔 수업을 이끌어야 한다. 즉 학생과 선생님이 통通하여 서로의 한계를 공유하며 서로 맞춰가는 것 또한 ‘좋은 수업’의 기준이다.
혹시, 지상의 별처럼(Like Stars on Earth, 2007)이라는 인도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간단히 요약하자면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다정한 어머니와 엄격한 아버지, 똑똑한 엘리트 형을 두고 있는 천진난만한 막내인 주인공 ‘이샨 아와스티’는 보통 또래와는 조금 다른, ‘학습장애’ 아동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주인공의 주변인들은 이샨을 무시하거나 게으르다고 단정하고 다그친다. 단지, 그가 서투르고 불안정해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럴수록 이샨은 더욱 더 불안해했지만 적절한 처치를 받지 못했고, 결국에는 함묵증을 앓게 된다. 점점 세상에 대한 밝은 시선과 어른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던 이샨이 ‘치료’받게 된 것은 임시 미술 선생님 ‘니쿰브 선생’이 부임하고 나서 부터였다.니쿰브 선생은 특수학교에서 근무하던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샨이 학습 장애를 앓고 있었고, 지금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는 사실을 곧 알아차리게 된다. 권위적이고 성적을 중요시하던 기존에 이샨이 알고있던 어른의 모습이 아니라, 장난스럽고 쾌활한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가 이샨과의 라포를 형성한다. 또 동시에 이샨의 생활기록부를 점검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자신이 가진 지식과 학생 개인의 대한 정보를 결합하여 이샨의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이샨이 학습 장애 아동이고, 함묵증을 앓고 있다는 것까지 알아낸 니쿰브 선생은 가정 방문을 통해 이샨이 멍청한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르고, 조금 아픈 아이라는 것을 가족들에게 알리며 협조를 요청한다.이러한 선생의 노력으로 이샨은 결국 학교의 ‘문제아’에서 공부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두각을 보이는 ‘우등생’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샨이 니쿰브 선생님께 달려가 안기는 것이 음악과 함께 클로즈업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이 영화는 내게 교사란 무엇인가. 교사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물음표를 던졌고, 그에 대한 느낌표를 구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샨이 니쿰브 선생에게 달려가 안길 때, 선생이 이샨을 안아주며 얼굴을 손으로 닦아주는데, 나는 그 때, 니쿰브 선생이 영화 내내 그려진 ‘이샨의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같다고 느꼈다.‘아버지’. 아버지는 부모님 중 한 분이시고, 또 종교에서는 신을 지칭하기도 한다. 공통점은 자식을, 피조물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 학교에서 선생님이란 부모의 대리자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교사는 학생을 사랑해야한다.이 사랑이라 함은 무조건적으로 성공을 빌어주거나, 혹은 오냐오냐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미래를 좀 더 밝고 희망차게. 비단 금전적이고 경제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아이의 자유의지와 행복을 더한 것을 말한다. 이 니쿰브 선생님은 정말 그런 ‘사랑’을 이샨에게 준 것 같다. 나는 니쿰브 선생님처럼 학생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사실 나도 학습 부진아를 가르쳐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때 든 생각은 어떻게 하면 이 학생에게 이 지식을 조금 더 쉽게 알려줄 수 있을까가 다였던 것 같다. 니쿰브 선생님처럼 이 학생이 왜 공부에 흥미가 없고, 어떠한 집안 환경을 가졌으며, 그에 대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정말 온전하게. 온 마음으로 순수하게 학생에게 다가가기에는 현실의 벽이 너무 두텁다고 생각했고, 또 현 세태에는 긍정적인 결과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 좋은 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나는 사람들의 편견에 갇혀 상처받은 아이를 치료해줄 수 잇는 순수하고 진실 된 마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정말 세상에 권위와 부보다 더 큰 교사의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리며 경쟁하고 밀치고 상처를 주고 정상에 다다르더라도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가 와서 나를 밀치고 상처를 줄 것이다. 그것이 경쟁사회다. 하지만 학생들이 경쟁만 하다가는 함께 걸어가는 행복을. 그 정신적인 행복과 자유를 느끼는 것을 포기해야한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삭막한 사회에서는 약자는 버림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양치기인 교사만큼은, 그렇게 비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나는 이러한 내 교직관을 한 단어로 요약하곤 한다. 바로 ‘대각선 선생님’이다. 정사각형을 마음 속에 그려보자. 가로 세로. 정말 딱딱 떨어진다.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면이 얼핏 삭막해보이기도 한다. 이제 거기에다 반대편 꼭지점을 이은 대각선을 그어보자. 가로 세로. 딱딱 떨어진 가운데 부드럽게 떨어진다. 아예 수직적이지도, 아예 수평적이지도 않게, 비스듬히. 아이들과 멀리 떨어져 학생들을 이해할 수 없는 교사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 학생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교사가 되지도 않겠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울타리도 양과 너무 가까이 치지 않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