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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관련 영상 소감문 평가D별로예요
    1. TED 강연 - 어떻게 자폐가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는가?, Rosie kinghttps://www.youtube.com/watch?v=hNQa5t6V45I이 동영상은 Rosie king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애인 자폐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강연이다. 자폐증은 형식적인 O, X 문항에 의해 진단된다. 그러나 자폐는 한두 가지 특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그 예로써 그녀의 동생은 중증 자폐아로서 말을 전혀 못하지만 그녀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차이가 있다. 또한 자폐아는 수학이나 과학만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창의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폐아들도 있다. 그리고 그녀가 인터넷 검색창에 ‘자폐아는…….’ 이라고 검색했을 때 뒤에 무슨 말이 와야 할지 하단에 뜨는 추천검색어를 살펴봤을 때 제일 먼저 뜨는 단어가 ‘악마’ 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들이 자폐아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과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한다.그녀는 자신이 자폐아라서 할 수 있는 것은 장애(Disability)가 아니라 능력(Ability)이라고 말한다. 그 능력은 아주 선명하게 상상하는 것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그녀의 마음 속 세상에서 자신을 작은 틀에 맞추지 않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상상한다. 물론 지나친 상상력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있다. 그녀가 학교에서 수업 중에 자신만의 세상으로 들어가서 상상을 하면 몸이 그대로 움직인다. 신나는 일이 벌어지면 뛰고 소리도 지른다. 이러한 행동은 평범한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와 친구가 되기를 꺼려한다. 사람들은 다양성을 두려워하고 평범해질 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평범함을 강요한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개인의 놀라운 능력을 정해진 틀에 맞추려고만 하지 말고 평범하지 않다고 혼내는 대신 독특함을 칭찬해주고 상상력을 발휘할 때마다 격려해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우리 사회에 한 가지 제안을 던진다.이 영상의 제목을 통해 그녀가 자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막상 영상을 보니 비장애인처럼 말을 유창하게 해서 자폐를 가진 게 맞는지 생각했지만, 자폐의 강도가 다를 뿐이지 그녀도 세상의 많은 편견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영상을 보고 자폐라는 것이 고유의 능력일 수 있고 더욱 개발시켜야 할 장점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나를 비롯한 타인이 그들의 능력을 제지하거나 비난해서는 안되며 그것을 인정해주는 포용력을 가져야겠다고 느꼈다.2. 역사채널e - The history channel e_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Ⅱhttps://www.youtube.com/watch?v=yNazZ0bKi0s이 동영상은 역사 속에서 장애인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우선 장애인을 위한 복지정책을 살펴보자.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세종은 ‘그들(장애인)에게 환곡을 우선 베풀고, 거처할 집을 잃게 해서는 안 된다’ 고 말하였다. 불편한 몸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조선시대의 장애인들을 위해 조정에서는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태종 때에는 시각장애인들을 고용하는 특수 관청을 설치하였고 최초의 장애인 협회인 명통시가 설립되었다. 또한 세종은 한 백성이라도 굶어 죽은 자가 있다면 해당 수령들을 중죄로 처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라에 흉년이나 기근이 들면 가장 먼저 장애인 구휼에 나섰고, 세조는 농아와 지체장애인 등 장애인 활동 보조 도우미를 고용하였다.명통시에 소속된 시각장애인들은 임금의 행차 시 경을 읽고 흉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는 등 나라의 길흉화복을 담당하는 직원으로서 녹봉, 노비, 건물 등 대가를 지급받는 관직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관직 등용에 있어 편견 없이 능력만을 인정하는 열린 시각은 차별 없는 인재 선발로 이어져 후세에 남을 걸출한 인물을 배출해 내었다. 대표적인 예로 정부의 주요 요직을 두루 맡았던 일각정승 우의정 윤지완은 한쪽 다리가 없어 임금 앞에 제대로 서있지 못하는 것을 불충이라 여겨 사직을 청했지만 숙종은 윤지완의 사직서를 물리치며 그를 곁에 두고 조언을 얻고자 했다. 그리고 영조는 청각장애가 있었던 도승지 이덕수를 외교특사로 임명하였다. 이처럼 역사 속의 장애인들은 외모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받기보다 장애를 뛰어넘는 능력을 발휘한 사람으로 평가되었다.이 영상을 보면서 현재적 관점에서 장애인을 대하는 인식과 태도가 어떠한지 비교하며 생각하게 되었다. 현재 사회에서 장애인은 누구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약자로 여겨지고 있는지, 그들을 위한 복지정책이 잘 마련되어 있는지 깊이 생각하고 반성해야할 부분이라고 느꼈다. 또한 남들과 다르게 생기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주어져야 하는 고용의 기회를 박탈시키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3. 김헌용선생님의 첫번째 눈맞춤https://www.youtube.com/watch?v=Js5__VugMIc이 영상은 일반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중인 시각장애인 김헌용 선생님을 위한 이벤트가 담긴 영상이다. 김헌용 선생님은 특수교육 전공으로 대학을 입학했지만 미국의 시각장애인들은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개척하고 도전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고, 그 결과 영어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를 보는 학생들은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반 분위기를 즐겁게 이끌어주시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시는 좋은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김헌용 선생님은 교사로서 많은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 한계에 부딪힌다고 한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남학생인지 여학생인지, 키가 큰지 작은지 정도만이라도 구별할 수 있는 시력이 있다면 학생들을 먼저 알아보고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고 한다.
    독후감/창작| 2016.12.03| 3페이지| 1,000원| 조회(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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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과정의 역사 - 교육과정사적 주요인물과 그들의 성과를 통한 이해
    교육과정의 역사-교육과정사적 주요인물과 그들의 성과를 통한 이해-학과과학번2014이름과목명교육과정담당 교수교수님제출일-‘제 4장 교육과정의 역사’를과제로 제시한 이유에 대한 의문과 해결······························ 11.교육과정의 정초기··························································· 21)Spencer2)McMurry 형제3)20세기 교육과정 논의의 맹아4)Dewey5)Bobbitt2.교육과정 개발의 융성기··················································· 41)Newlon2)Caswell3)8년 연구4)Tyler5)Bruner3.교육과정 이해의 발달과 정체성의 혼란····························· 51)교육과정 사회학의 발달2)교육과정 이해의 확산과 정체성 상실-과제를 하며 느낀점과 배운점··············································· 6-문제 만들기교육과정의 역사를 과제로 내주신 이유?‘교육과정의 역사’ 단원을 교수님께서 요약해오라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역사라는 것은 사회가 변화해 가는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학교교육 속에서 우리고장의 역사, 우리나라의 역사, 세계의 역사 등 많은 역사를 배워왔다. 현재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과거를 되돌아보며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도 미래에는 과거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 교육에서도 역사를 필수 과목으로 배우는 것 같다.교육과정을 어떻게 하면 최상의 상태로 발전시키고 개발시킬 수 있을지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연구가 이루어 졌을 것이다. 그러한 시도와 과정들을 직접 하나씩 짚어가며 스스로 요약·정리함을 통해 많은 연구가들의 주장과 시행착오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또한 미래에 교육과정의 역사에 한 부분을 채울 예비교 유용하고 재화와 용역의 획득을 뒷받침하는 과학(Science) 이라고 주장하였다. 과학은 실생활에 유용한 생물학, 화학, 수학, 지질학과 같은 자연과학이나 인간사회의 원리인 윤리학과 같은 사회과학을 포함한다. Spencer는 교육의 방향이 주입식으로 시행되는 인위적 암기와 모방을 강요하는 고전어와 같은 과목보다 이해와 판단을 위한 지적훈련에 도움이 되는 과학 과목을 가르치도록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Spencer의 교육론은 근대사회에서 필요한 교육을 기능적으로 정의하였다. 교육을 지·덕·체를 기르기 위하여 시행하지만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과학적인 기반을 지닌 지식을 교육해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을 하였다.2)McMurry 형제: 교육과정과 수업의 접합McMurry 형제는 철학적·심리학적 연구결과를 교수이론에 적용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Herbart의 교육관을 접하였다. Herbart의 교육관은 학생의 흥미와 관심을 일깨워 궁극적으로 의지를 도야하여 견고한 도덕적 품성을 도야하는 교수방법을 추구하였으며 학생의 인지적인 작용을 활발히 촉진시키는 것은 사물과 사람들에 관련된 경험과 관심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들은 미국의 학교교육이 교육과정을 체계적으로 선정하고 배열하며 조직하는 방법적인 면에서 결여된 점이 많다고 보았다.McMurry 형제의 교육 혹은 교육과정에 대한 이론은 다음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요약 할 수 있다. 첫 번째로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들은 도덕적 발달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두 번째로 교육적 가치가 가장 높은 것은 어떤 교과인가? 처음에는 문학과 지리라고 주장하였으며 나중에는 생각을 표현하고 타인의 생각을 수용하며 생각을 유도할 수 있는 교과를 구분하였다. 세 번째로 교과는 교수방법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어떤 교과든 최적의 교수방법이 있다고 믿었으나 당시 교사들은 수업에서 체계적으로 교수방법을 적용할 수 없었다. 네 번째로 가장 좋은 학습 결과를 낳는 학습 순서는 어떻게 정할까? 이는 나이에 맞는 수준이 있음을 기초하를 결성하였는데 이들이 회의 끝에 결론적으로 권고한 사항은 첫째, 종국적 진로와 관계없이 누구나 공통적으로 가르칠 것. 둘째, 대학입학에 고전어 과정이든 현대어 과정이든 동등한 가치를 인정한다. 셋째, 고교에서 배울 과목을 네 가지 과정으로 제시한다. 네 가지 중 어느 과정을 공부하더라도 대학수학을 준비하거나 일상생활을 준비하거나 똑같은 교육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기 때문이다.이에 대해 지나치게 대학 엘리트 중심적이며 학문적 교과목 중심이라고 비판하는 시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교육과정은 개인의 자아 발달을 중심으로 사회적 환경을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비판을 수용하여 15인 위원회를 구성하였으나 이전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10인 위원회 보고서의 보수성을 탈피하기위해 중등교육개편위원회(The Commission on the Reorganization of Secondary Education)을 결성하여 중등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잡을 “중등교육의 기본원리”를 펴낸다.4)Dewey: 아동 중심 교육과정 논의의 구체화Dewey는 아동은 교과를 익혀야할 존재라고 보았고 교과를 우위에 둔 전통적 입장과 아동의 경험을 옹호하는 진보주의 입장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하려 하였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아동 개인의 본성과 교육과정에 담긴 상호작용이며 학교란 그들을 시·공간적으로 풀어내어 인류와 지구의 세계와 만나게하는 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참된 교과는 과학, 수학 보다 아동의 사회적인 활동이라고 보았다. 교과는 사회활동 전반을 아동과 공유하는 데에 있다. 또한 아동의 심리와 교과의 논리는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경험의 심리적인 측면을 지닌 학습자와 경험의 논리적인 측면을 지닌 교과가 조우하기 위해서는 교과의 심리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학습자의 흥미, 관심, 발달단계 등에 교과를 맞춘 심리화 된 교과가 중요시 된다고 보았다.그리고 교육경험의 진보적인 조직을 구상하였다. 교과의 내용이 범위와 수준을 더해가며 확대되듯이 아동의lon: 교사에 의한 학교와 지역 수준 교육과정 개발Newlon의 깊고 변함없는 신조는 ‘교사는 전문가’라는 주장이다. 당시 교사들의 주 임무는 작성된 교수요목을 수업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었으나 Newlon은 교사들이 교육개발 과정에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토대가 되었다. 그는 교사들이 자신이 가르칠 것을 결정하는 데 광범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보다 잘 훈련되고, 능력 있고, 열성적으로 가르치게 되며, 학생들과 자연스럽고 활기찬 교실수업을 베풀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궁극적으로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교사들이 교육과정 개발에 참여함을 통해 최신 교육성과를 접하고, 교실 수업이 점차 개선되며, 교사들이 실제적인 도움을 받고자 장학 요청을 점점 많이 하게 되는 것이었다.2)Caswell: 수업 개선을 위한 주 수준 교육과정 개발Caswell은 교육과정 개발의 중심을 실제적인 수업 개선에 두어야 한다고 보았다. 수업 개선에 초점을 둔 교육과정 개발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사용하는 교사들이 뚜렷한 지향점을 갖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뚜렷한 지향점은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실제 사회에서 진정한 민주 시민으로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교육과정 내용을 체계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횡적 범위(scope)와 종적 계열(sequence)에 초점을 두었다. 횡적 범윈는 공간적 사회활동 영역과 관계되는 것이며 교육목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인 기능을 바탕으로 하여 광범한 주제를 표현하는 것이다. 종적 계열은 시간적인 발달과정과 관계되며 아동의 관심에 따른 경험에 기초하는 것이다. 즉 교과내용은 사회적 기능과 학습자의 관심을 합치시켜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3)8년 연구: 고교-대학 학습 연계를 통한 중등 교육과정과 대입시 개선1933년부터 1941년 까지 미국에서 고교 과정 3년, 대학과정 5년간 연구된 8년연구는 20세기 교육과정 개선을 위한 대규모 현장의 실험 연구이자 20세기 전반기 교육과정 논의의 교육적 실효성을 검증하는 교육과정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며 교육과정이 의도한대로 개정되었고 학생들은 진로에 대한 정보와 안내를 받아 그들 나름대로의 과정을 실천해갔으며,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는 그들이 어른이 되어 직면할 사안들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었다.8년 연구의 가장 큰 변화는 학교의 강조점이 교사에서 학생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교사를 도와 교육과정 결정에 참여하고 학교의 재편을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8년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학에서의 성공은 고교의 특정기간 동안 특정과목을 공부하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 둘째, 학생들이 성공적인 대학 공부를 위해 준비하는 경험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셋째, 대학과 학교를 모두 만족시키는 관계는 보다 항구적인 기초 위에 정립될 수 있다. 넷째, 대학과 학교의 교수진들이 상호존중과 이해 속에 협조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4)Tyler: 20세기 교육과정 논의의 거대한 디딤과 걸림현대 많은 사람들이 교육과정 개발이라면 으레 Tyler식을 떠올린다. 그만큼 Tyler는 모든 교육과정 연구 개발자들에게 디딤돌임과 동시에 걸림돌이 된 셈이다. 그는 학생의 행동으로 표현되는 학습경험을 강조함으로써 그의 평가 개념은 지필검사 이상의 매우 폭넓은 방법과 영역을 포함한다. 오늘날의 포트폴리오나 참평가의 단초를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Tyler는 왜 특정목표가 다른 목표에 우선하여 선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는 목표-경험-조직-평가로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주장하였으나 극소수에 해당하는 교사들만 그의 처방을 따랐고 대부분의 교사들은 내용선정, 자료조달, 배열, 수업흐름 조직 등 실제 수업의 주 요소를 중심으로 계획하였다. 그는 측정 가능한 목표에 따른 평가를 강조함으로써 교육과정이 평가와 너무 밀착되거나 심지어 그에 종속되어버리는 주객전도의 양상을 낳았다는 비판을 받았다.5)Bruner:지식의 구조와 학문으로 견고해진 교과Bruner는 교육의 본래 기능 중 하나를 학생들이다.
    교육학| 2016.12.03| 10페이지| 2,000원| 조회(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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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육의 역사 - 원시시대, 고조선,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 현대의 교육 평가A좋아요
    한국 교육사 탐구-원시시대, 고조선,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 현대의 교육-과목명교육철학 및 교육사담당교수교수님학과과학번2014이름제출일제1장 원시시대의 교육원시시대의 교육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 졌다. 오늘날의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은 따로 없었지만 가정과 같은 모임장소에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술과 지식들을 전달했을 것이다. 특히 부족사회였던 원시시대에는 집단 구성원의 협동과 단결을 위한 의식교육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단순한 종교의식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교육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원시사회에서 교육은 주로 성년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성년식은 성인으로서 해야할 의무와 역할을 배우게 하는 교육과정이며 성인사회로 입문하기 위한 신체적 훈련과 곤경을 이겨내는 의식이었다.원시시대 교육활동은 교육의 목적의식이 뚜렷하였고 학습의 동기가 높았다. 그 이유는 원시인들에게 생존은 무조건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교육받고 생존하기 위해 학습하고자 하였다. 또한 학습시간이 정해진 정식교육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작하는 때와 끝나는 때가 자유로워서 교육의 낭비, 결손이 없었다.제2장 고조선의 교육기원전 2333년 단군 왕검이 개국한 고조선은 남아있는 기록이 없어 당시 교육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삼국유사』와 「8조법금」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추론해볼 수 있다.『삼국유사』에서 고조선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고 하였다. 홍익인간의 뜻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 라는 뜻이자 고조선의 교육적 이상이다. 홍익인간은 인간존중사상과 이타주의(利他主義)정신을 담고있다.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뜻은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뜻과 마찬가지이므로 오늘날의 민주주의 교육과 일맥상통하는 고차원 수준의 사회·교육적 원리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개방정신(開放精神)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특정인에게만 적용되지 않고 ‘널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이념임을 알 수 있다.8조법금은 고조선 시대의 관습법 혹은 실천적 윤리강령이라에 기여하였다. 불교는 인과응보, 자비, 평등의 이념을 제시함으로써 일반대중의 종교적 신념과 삶의 방향인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 특히 무지한 백성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대중교화(大衆敎化)의 토대를 만들어주었다.고구려의 교육기관으로는 태학, 국자학, 경당 등이 있다. 태학은 주로 상류계층의 자제를 교육시켰던 국가 주도의 고등교육 기관이자 관학(官學)이다. 이는 사회 기강 건립과 왕권강화를 위한 인재양성이 목적이었다. ‘태학박사(博士)’들이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주요 교육과정으로는 오경과 삼사 등의 유학 경전들이 있었다. 또한 국자학이라는 학교도 있었을 것이라 본다. 중국의 동진(東晋)이 385년에 국자학을 설립함으로써 고구려의 고등교육은 주로 태학과 국자학의 양학(兩學)제도로 운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우리나라 교육 역사상 최초의 사학(私學)으로 알려진 경당(?堂)은 정확한 설립시기는 알 수 없으나 기록에 의하면 독서, 활쏘기 등 문무교육을 겸했던 초·중등 교육기관이었다. 경당은 지방의 마을마다 설립된 일반화된 교육기관이었으며 경당의 교육 대상은 서민 자제를 비롯한 지방의 귀족 자제들이었다. 또한 경당은 국가 주도로 운영된 관학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경당의 교육내용으로 미루어 볼때, 독서와 활쏘기 훈련같은 문무교육이 겸해졌다는 점은 당시 주변 국가들과 대치상황이었던 고구려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기 때문이다.백제의 학교교육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으나 당시 고대국가였던 백제의 문화수준에 비추어 볼때 수준 높은 학교교육이 이루어졌음을 추정하고 있다. 그 단서로 백제는 오경박사(五經博士)를 비롯한 모시박사(毛詩博士), 의박사(醫博士)등 다양한 박사를 두어 경전을 연구하고 전수하는 박사제도를 두었다는 점이 있다. 경전에 대한 해석은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백제의 교육활동은 고구려보다 훨씬 앞섰고 수준이 높다는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전업박사(專業博士)들이 전수하는 잡학교육이 있었고 문무교육이 동시법사의 세속오계(世俗五戒)를 핵심으로 삼은 도의교육을 중시하였다. 세속오계는 유교적 덕목과 불교적 덕목이 결합한 형태이다. 화랑도의 교육과정은 주로 군사적 목적을 위하여 전사로서 갖추어야 할 무술을 주된 내용으로 삼았지만 정서함양을 위한 시, 음악, 춤 등의 정서교육도 중요시되었다.신라는 삼국 통일 이후 당의 국자감 제도를 모방하여 국학(國學)을 세웠다. 이것은 신라 최초의 관학으로 유학의 이념을 연구하고 그에 입각하여 국가관리를 양성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교육 내용은 주로 유교경전들이었고 입학자격은 6두품 출신의 귀족 자제였다.또한 관리 선발을 위하여 인재등용의 방법을 객관화 한 국가시험제도로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가 있었다. 이는 국학에서 수학한 학생들의 성적을 3가지인 상·중·하로 구분하여 임용 순서를 정한 것에서 비롯한 명칭이다. 그동안 가문 위주의 관리 등용에서 벗어나 실력과 능력으로 판단하여 관리를 등용 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제도이며 고려조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과거제의 효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신라의 교육 사상가로는 신체적 훈련과 정신적 수양을 교수방법으로 제시한 원광과 불교 경전의 여러부분을 하나로 통합하여 하나의 마음으로 귀일하고자 하는 화쟁사상을 추구한 원효와 비유적인 교육방법으로 유덕선정을 베푸는 임금이 되도록 주장했던 설총, 그리고 유·불·도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최치원이 있다.발해는 고구려의 계승 의지를 분명히 한 나라로 고구려와 문화적 유사성이 많다. 발해의 교육기관인 주자감은 왕족과 귀족을 대상으로 유교경전을 교육했다. 입학자격은 통치계급과 귀족의 자제들로 제한되었으며 독특한 점은 왕족의 여성교육에 관심을 가진 여사(女師)제도를 엿볼 수 있다.제4장 고려시대의 교육고려의 교육기관으로는 크게 관학과 사학으로 구별된다. 관학에는 국자감, 5부학당, 동서학당이 있었으며 지방의 향교가 있었다. 사학에는 12도와 서당이 있었다.국자감은 성종 11년에 설립된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국가의 고급관리를 양성해 내는데 목적이 있었다. 인종 1를 지내기도 했다. 지방의 선비를 교육하는 기관으로서 문묘(文廟)를 두고 이것을 중심으로 학문을 강론하던 명륜당(明倫堂)을 두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향교는 유교의 사당인 동시에 중요한 교육기관이었음을 알 수 있다.학당은 고려 말에 등장한 중앙교육기관으로 동서학당으로 시작하여 5부학당으로 확장되었다. 학당과 향교는 비슷한 수준의 교육기관이었지만 향교는 문묘를 두어 제사와 교육을 동시에 한데 비하여 학당은 순전히 교육만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12도의 설립배경은 최충이 관직에서 은퇴하고 후학을 양성하고자 하니 그의 학덕을 배우려 하는 유생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이들을 문헌공도라고 하며 문헌공도의 교육성과를 보고 지방의 선비들이 유사한 사학을 설립하였는데 이 중 특히 영향력이 컸던 11개의 사학을 더하여 12도 또는 12공도(十二公道)라고 한다. 12도의 교육목적은 유교적 덕목인 인의(仁義)와 인륜도덕을 함양하는 것이었다. 고려 말 국학이 성행하며 쇠퇴했지만 당시 국자감, 향교를 대신해 고등교육을 충실히 감당해낸 사학으로서 교육사적 의의가 크다.서당은 고려시대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서민 자제들을 교육시킨 초등교육기관이었다. 서당은 마을마다 세워졌으며 특정한 교육공간이 아닌 계절에 따라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교육하였던 점이 특이하다고 본다.고려의 과거제도는 문관시험인 제술과와 명경과가 있었고 기술관 시험인 잡업과가 있었다. 과거시험을 관장하는 시험관을 지공거라 하여 문관 1인이 맡고 부책임자는 동지공거 1인을 추가하였다.고려시대의 교육사상가로는 한국 불교의 대표 종파인 조계종의 창시자인 지눌, 성인의 도를 실천하고자 하는 최충, 사물의 궁극적 본질을 파악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방법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 안향, 단계적 교수론을 전개한 이색, 탁월한 정치인이요 행정가이자 당대의 대학자였던 정몽주가 있다.제5장 조선시대의 교육성리학은 조선사회 전체를 지배했던 통치 이념이었다. 교육 이념, 교육 목적, 교육 내용과 방법, 교육제도들은 유교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학업성적은 대통, 통, 약통, 조통, 조의 5단계로 평가하였는데 이는 오늘날 대학에서 성적을 A,B,C,D,E로 평가하는것과 흡사하다. 조선 최고학부로서 고등교육을 담당하였다.태종 11년에 설립된 4학은 고려 말의 5부학당을 계승한 국립 교육기관으로 4부 학당의 준말이다. 서울을 5부로 나누고 각 부에 학교를 하나씩 지어 5부 학당이라고 하였으나 북부 학당이 완성을 하지 못하여 4부 학당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4학은 성균관의 부속기관으로서 향교와 비슷한 정도의 중등교육기관이다. 학제와 교육방침은 향교와 비슷하였으나 문묘가 없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향교는 조선 지방에 설립된 국립 교육기관이다. 고려의 향교를 그대로 계승하였으나 규모나 짜임새는 고려의 향교보다 체계적이었다. 지방의 지식인들은 향교를 거점으로 중앙정치 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다. 향교는 성균관과 마찬가지로 문묘를 두고 있는 제사와 교육기능을 동시에 가진 교육기관이었다. 조선 중기까지 교육적 기능이 활발했으나 중기 이후 서원설립으로 인해 쇠퇴하고 제사만 지내는 문묘의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사학기관으로는 성리학의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지방에 세운 사학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주세붕이 안향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백운동 서원이다. 이 서원은 명종이 친필로 쓴 사액을 내린 국가 최초의 사액서원이기도 하다. 나중에는 서원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여 서원이 붕당을 짓고 당파 분쟁을 일으키는 곳으로 전락하여 대원군이 집권 후 47개의 사액서원만을 남겨두고 모두 폐쇄하였다.서당은 고려 서당을 계승한 사설 교육기관으로 일반 서민 자제들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사당은 신분과 나이의 제약이 없었으며 교육 내용은 천자문으로부터 당율에 이르기까지 학습자의 수준을 고려한 다양한 학습이 이루어졌다. 또한 교과목 지도시 계절을 고려하였으며 놀이를 이용하여 학습 효과를 극대화 하려했다.조선의 특수 교육기관으로는 왕에게 경서를 강독하고 연구하는 일을 맡은 경연과 왕실 종친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종학, 음악교육을
    교육학| 2016.12.03| 6페이지| 1,000원| 조회(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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