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프랑스의 근대회화-인상주의목차Ⅰ서론: 프랑스미술의 역사와 인상주의Ⅱ본론: (1) 등장배경(2) 용어의 기원(3) 인상주의 대표화가 및 작품해설Ⅲ결론참고문헌서론인상주의란인상주의란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물의 인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경향으로, 인상주의 화가들은 1860년대부터 파리의 기존 예술 제도가 추구하던 가치에 도전하며 회화의 혁신을 추구했다. 인상주의 화가 그룹은 1874년부터 1886년까지 개최된 여덟 차례 합동 전시에 작품을 전시했던 화가들을 아우른다. 특히 에두아르 마네, 귀스타브 쿠르베와 같은 사실주의 화가들과, 1830년경부터 1870년 무렵까지 활동했던 샤를프랑수아 도비니와 장밥티스트카미유 코로같은 비르비종바가 만든 획기적인 발전을 토대로 인상주의 화가들은 새로운 양식과 기법으로 근대적인 주제를 그렸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재현의 새로운 형식을 개발하면서 다음 세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그들은 색채와 형태로 이루어지는 그림을 추구해 마침내 완전한 추상에 이르렀다.프랑스미술의 역사와 인상주의프랑스 미술의 시작은 중세시대의 벽화와 채색화이며 르네상스 이후 미술의 중심지가 이태리에서 프랑스로 옮겨졌으며 그 후 오늘날까지도 프랑스는 미술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 프랑스 미술의 절정은 사실주의부터 인상주의의 19세기라 할 수 있다. 바로크와 로코코를 지나 근대 미술이 시작되는데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사실주의를 거쳐 인상주의는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인상주의는 1860년대에 시작되어 전통적인 회화의 규칙을 거부하고 빛을 통해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 미술전통에 혁신을 가져왔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로는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르 드가 등이 있다.본론(1)등장배경1) 아카데미즘과의 결별인상주의는 사실주의를 거쳐 자연스럽게 시작된 운동이다. 하지만 이러한 등장배경으로는 기존 미술계의 규율을 벗어난 새로운 미술을 도래하게 한 사건이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19세기 중반 회화기나 고대역사 속의 에피소드를 소재로 신고전주의 화풍에 맞춰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규율이었다. 이러한 살롱 심사위원회의 체제하에서 작가들의 작품은 허가를 받으면 살롱전에 전시되고 아카데미풍이 아닌 그림은 낙선되었다. 1863년, 낙선자들의 불평을 줄이기 위해 나폴레옹3세는 특별 낙선전을 연다. 이 낙선전에서 전시된 마네의 은 큰 스캔들을 일으킨다.마네의 은 당시 호평을 받은 카바넬의 과 달리 혹평을 받는다. 같은 여성누드임에도 불구하고 마네의 그림이 혹평을 받은 이유는 당시 파리의 어두운 매춘문화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림의 모델이 영웅이나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닌 실존인물이었고 그림 속 여인이 알몸임에도 정면을 뚜렷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카바넬의 은 늘어져있는 여인의 자세와 손이 눈을 가리고 있어 정면을 보지않는 모습, 여인을 둘러싼 아기 천사들과 여인이 물에 떠있는 비현실적인 장면이 담겨져 있다. 이는 아카데미가 요구하는 모든 요소들이 조합된 것이다. 당시 마네의 작품은 사람들의 혹평을 받았지만 은 마네의 색채실험이 절정이 이르는 작품이며, 여인을 밝고 파격적인 색채로 표현하였으며 중간 색조를 과감히 생략하여 공간의 깊이감이 사라지고 평면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2) 사진기와 튜브물감의 발명인상주의는 사진기과 튜브물감의 발명 그리고 기차의 발달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튜브물감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화가들은 돼지방광에 물감을 넣었는데, 돼지방광은 부치가 크고 잘터져서 가지고 다니거나 보관하기에 불편하였다. 반명 튜브물감은 휴대하기 편리했기 때문에 화가들은 야외로 나갈 수 있었고 인상주의 화가들은 사물이 빛을 받아 어떻게 보이는지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2) 용어의 기원인상주의라는 용어는 1874년 풍자잡지 「르 샤리바리le charivari」의 기자인 루이 르루아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그는 모네의 인상해돋이에서 ‘인상’이라는 용어를 인용하면서 인상파 전람회라는 다분히 조롱이 섞인 기사를 작성하였고 그것이 인상주의 용어의 기원이 트로 사용하여 반짝거리는 바다표면을 효과적으로 그렸으며, 검고 파란 물감으로 그늘진 파도를 표현하였다.그림 1 앙리 팡탱 라투르 (3) 인상주의 대표화가 및 작품해설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로는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에드가르 드가 등이 있다. 이 네 명의 인상주의 화가는 서로 친분이 있다. 이들은 파리의 ‘바티뇰’이라는 구역에 모여 살았으며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게르부아’라는 카페에 모였다. 마네의 패거리라고 불렸던 이 모임에는 시인과 소설가도 포함되었다.마네는 젊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정신적 후원자 역할을 하였으며, 르누아르는 가장 낙천적인 인상주의자로 꼽힌다. 또한 드가는 다른 인상주의화가들보다 나이가 많고 가장 강한 성격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드가 또한 모네와 르누아르와 카페 게르부아에서 자주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앙리 팡탱 라투르의 은 마네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마네를 그의 동료와 후배들이 지켜보는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이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이면 바티뇰 지역의 카페에 모여서 그림의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했다.(그림1)1) 에두아르 마네? 앞서 설명한 듯이 아카데믹한 화풍을 거부하여 큰 이슈를 일으킨 작품이다. 풀밭 위에 앉은 두 남성과 가벼운 옷을 입은 채 물속에 들어간 여인, 마네가 가장 좋아한 모델 빅토린 뫼랑의 누드를 담은 그림이다. 거장들의 영향을 받아 작품을 구성한 사실은 묻히고, 불행히도 일상적인 삶의 모습에 누드의 여인을 그려 넣은 사실만 강조되어 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을 샀다. (그림2)? 마네는 작업실에서 인공조명을 받아야만 정확하게 재현되는 환영주의 그림을 거부했다. 그는 종래의 기법처럼 중간색을 정교하게 덧칠하면서 3차원적인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색과 밝은 색을 분명하게 대조시켰다. 그리고 정면 조명을 도입해 그림 전반을 평면적으로 표현하고 배경 공간도 가능한 깊이를 줄이려 했다.그림 2 마네 그림 3 모네 ? 풀밭위의 일이 많았고 그는 이 작품을 통해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파리를 그대로 그려낸 것이다.2) 클로드 모네? 앞서 설명한 듯이, 모네의 는 ‘인상주의’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 모네는 를 통해 안개 자욱한 노르망디의 르 아브르항구에 해가 떠오르는 한순간을 포착하여 인상주의 양식에 혁신을 일으켰다. 조각배와 기중기가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회색빛 아침을 강조하려고 모네는 거의 한 가지 색깔만 칠했다. 이 그림은 해돋이라는 한순간에 사라지는 인상과 산업 발달이라는 시대적 주제를 모두 포착했다는 점에서 혁신을 이뤘다. (그림3)? 기차의 발달 그 중 철로의 발달로 파리사람들은 멀리있는 휴양지로 떠나는 것이 자유로워졌다. 특히 생라자르역은 기차의 종착지로 가장 붐비는 역이었데 생라자르 역과 역 주위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인기있는 주제였다. 모네의 그림은 분주한 승객들과 끊임없이 도착하고 떠나는 기차들의 움직임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기차 여행이라는 비교적 새로운 경험이 주는 생동감과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은 연작작품으로 모네가 그림을 그리는 당시 승객들은 역 안에 들어오지 못했고 심지어 기차도 연착되는 에피소드가 있다고 한다. 그 결과 모네는 10여점에 달하는 기차역그림을 완성하였다.? 모네의 정원의 연못그림 중 하나로, 모네는 ‘그림그리기와 정원 가꾸기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말 할 정도로 정원 가꾸기를 사랑하였는데 특히 정원의 연꽃그리기를 즐겨하였다.? 모네는 평생 작열하는 직사광선 아래서 너무나 오래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노년에는 시력이 극히 나빠졌다. 시력저하로 강렬한 빛을 포착하지는 못했지만 원숙한 기량으로 빚어낸 빛과 색의 향연이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은 총 여덟 점의 대작으로 총 길이 100m에 달하는 작품이다.(그림4)⑤ 모네의 연작 가운데서도 최고의 야심작으로 꼽힌다. 이 연작은 프랑스에서 가톨릭 신앙이 부흥하던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고딕 성당은 전원의 건초더미나 포플러 나무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정체성을 나. 주로 뱃놀이, 야외 무도회 등 당시에 파리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여가생활을 소재로 하였다. 무도장 ‘물랭 드 라 갈레트‘는 실제로 있었던 파리의 야외 무도장으로, 그 곳의 유쾌한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다. 르누아르가 사용하던 팔레트에는 검정색 물감이 거의 없었고 따라서 검은색이어야 할 것 같은 그림자들이 검은색이 아닌 다른 보색들로 처리되어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실존 인물로, 중앙 벤치에 앉아 뒤를 돌아보는 파란색 줄무늬 드레스의 소녀는 잔의 동생인 에스텔이며, 에스텔을 감싸고 있는 여인이 모델 잔, 에스텔 오른쪽 의자에 앉아 등을 보이는 남자는 르누아르의 친구이자 화가인 프랑크 라미, 그리고 왼편에 춤을 추고 있는 한 쌍의 남녀는 쿠바 출신의 화가 르누아르 작품에도 자주 등장했었던 모델 마르고이다. (그림5)? 창 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살을 받아, 역광 속에 있는 젊은 여인의 즐거운 독서의 한 순간을 잘 잡아내고 있다. 책에서 반사된 붉은 빛이 소녀의 얼굴에 비치고 있는데, 얼굴의 미세한 살결과 빛이 어우러져 있고, 전체적으로 소녀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활기와 자연스러움이 시선을 끈다. 르누아르는 다양하고 미묘한 색조들을 표현하는데, 책에서 반사된 빛은 얼굴의 그림자를 투명하게 만들고 있으며, 머리는 마치 스스로 빛을 뿜는 것처럼 빛난다. 여인의 얼굴은 밝은 빛의 반영으로 매혹적인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빠른 붓질로 턱의 형태가 나타나고, 곡선은 입술과 눈, 눈썹 등 화면의 여러 곳에서 반복된다. 붓의 터치 면에서는 어떤 곳에서는 물감을 두껍게 발라 놓기도 하고, 또 다른 곳에서 단순하게 씻어 내리며 자연스러운 필치를 보이고 있다.? 교양 있는 부르주아가정의 안락함을 묘사한 작품으로, 소녀들의 머리카락과 옷, 그리고 발랄한 표정과 태도를 찬란하게 표현하였다. 당시 여성이 책을 읽거나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부르주아 문화의 전형적인 이미지였다.그림 4 모네 4) 에드가르 드가? 자연과 햇빛에 빠져있었던 다른 인상주의자들과 달리 그는 림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