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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A-] 황석영, 『바리데기』을 종교적 관점에서 읽고 - 바리가 겪어낸 그녀 자신의 라마단 ( 종교상징의세계)
    바리가 겪어낸 그녀 자신의 라마단바리가 살아온 삶의 과정을 책에 나왔던 문장을 사용해서 요약할 때, 어떤 문장이 거기에 가장 적절할까? ‘라마단 기간을 거치면서 조금 불편하기는 했다. 그러나 단식기간이 끝나면 다시 대하는 일상의 음식과 가족관계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이슬람 신도인 알리와 결혼한 후, 라마단 기간의 단식(이하 라마단 단식)을 겪고선 거기에 대해 바리가 서술한 말이다. 이 문장은 책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거나, 핵심적인 교훈을 전달하거나, 비중 있게 서술된 문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저 문장이 바리의 삶을 단적으로 요약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바리가 거쳐 온, 그리고 거쳐 갈 삶의 과정이 라마단 기간에 행하는 단식 의식과 비슷하다는 것을 논할 것이다. 풀어서 말하자면, 라마단의 단식의례의 어떤 부분이 바리가 살아온 삶의 어느 부분에 대응될 수 있는지를, 또한 자신의 삶을 통해 바리가 깨닫게 된 것을 라마단 단식을 통해 신자들이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보이고 서술하고자 한다.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언급해두어야 할 점은, 실제 라마단 의식과, 바리가 삶에서 겪어낸 비유적인 라마단 단식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라마단 단식에서 그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바람으로 인해 참여한다. 그러나 바리가 겪은 ‘삶’ 이라는 라마단 단식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것이 그 차이점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 점을 논외로 하고, 실제의 단식 의식과의 공통점만을 찾아 비교해보고자 한다.먼저 원활한 비교를 위해 간략히 라마단 달에 행해지는 단식에 대한 소개를 하겠다. 라마단 기간의 단식은 라마단 한 달 동안 진행되며, 그 기간 동안 단식을 하는 자들은 새벽부터 일몰까지 물을 포함한 모든 음식을 삼간다. 2일 이상의 장기간을 계속하는 단식은 일반적으로 권장되지 않는다. 단식을 수행하는 자들은, 그 단식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느끼게 되며, 빈자들의 배고픈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인간은 단식을 행하며 욕구의 자제력을 키우고, 인내하고 참는 것을 배워나간다. 그리고 단식하는 동안 얼마 안 되는 하찮은 음식을 먹지 못해 힘들어하는 자신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기도 한다.가장 처음으로 논할 것은, ‘라마단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행위인 단식에 대응되는 바리의 삶의 요소는 무엇인가‘ 이다. 나는 단식을 바리가 겪은 고난과 주위 사람들의 죽음이라고 대응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리는 살아가며 할머니, 미이, 현이 같은 가족들의 죽음과, 친구가 되어주었던 칠성이의 죽음을 겪었다. 또한 영국으로 밀항하는 과정에서 거의 지옥에 가까운 허기와 괴로움과 호흡곤란을 겪어야 했고, 갑자기 남편이 행방불명되며, 결정적으로는 믿음을 주었던 샹의 부주의 때문에 홀리야 순이가 죽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경험들을 겪으면서 바리는, 이슬람 신도들이 단식을 할 때와 같은 고통을 느꼈다. 자신을 지지해주는 주변사람들과,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의 물질적 조건은 평소에는 그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지만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바리의 삶에 있어서 그러한 것들의 결핍을 단식에 대응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둘째로 서론에서 라마단을 소개하며 언급했듯이, 단식을 한다고 해서 라마단 한 달 전체를 통째로 굶는 것은 아니다. 라마단 기간 동안에는 새벽에서 해가 지기 전까지만 단식을 하며, 해가 지면 다시 음식을 섭취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리의 삶에서도 내내 고난만 있던 것은 아니다. 분명히 바리는 20년을 조금 넘게 살면서 수많은 주변 사람들의 죽음과, 크고 작은 고통을 겪어왔다. 하지만 그 중간 중간에는 고통 없이 평온하게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현이와 할머니와 칠성이가 죽은 후, 주인집에서 행복하게 지냈고, 미꾸리 아저씨가 소개해준 발마사지 샵에서 보냈던 한 때가 그 중 하나이다. 또한 허기와 갈증과 열기에 시달렸던 밀항을 겪어내고, 그 밀항이 끝난 후에는 믿고 의지했던 샹 언니가 사창가로 팔려간다. 하지만 그 후에는 압둘 할아버지와 속 깊은 얘기를 나누고, 알리와 결혼을 한 후에 함께 보냈던 영국에서의 행복한 시절이 존재했다. 이러한 면에서 ‘고통’과 ‘고통 없음’이 반복되는 라마단과 바리의 삶의 과정은 비슷하다.셋째로, 라마단 기간이 끝난 후에는 다시 일상의 삶이 돌아온다. 이처럼 홀리야 순이가 죽고 난 후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고 긴 꿈을 꾸면서 앓고, 자신의 삶에서 가장 큰 고통을 극복해낸다. 그 후 바리가 마음을 추스르고 알리가 관타나모에서 살아 돌아온 이후에는 알리와 속 깊은 얘기를 나누고, 작고 예쁜 가게를 차리고, 압둘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며 저녁을 먹는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한 번의 라마단이 끝난 후에는 남은 삶 내내 단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라마단 기간이 돌아온다면 여지없이 단식을 해야 한다. 책 속에서 바리는 홀리야의 죽음으로 꿈속에서 헛것들을 보아가며 삶이 흔들릴 만큼 큰 고통을 겪고, 그것을 극복해내고 삶의 지혜를 깨닫는다. 그 후 바리는 ‘하마터면 세상이 달라졌다고 믿어버릴 만큼 한동안 평온하게 살았다’. 라고 서술한다. 그 부분을 보면 바리 또한 자신의 고통이 끝났다고,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한동안은 고통을 겪지 않을 거라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책 마지막 부분에서는 또 다른 고통이 다시 시작되고, 알리와 바리가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보아 그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암시되어 있다. 굳이 책에서 언급된 부분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바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종류의 크고 작은 고통을 겪는 것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분명 개별의 고통 하나하나에는 끝이 있다는 점에서, 그와는 별개로 일련의 고통을 겪고 그것을 극복했다 하더라도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는 다시 고통이 찾아온다는 점에서 바리의 삶과 단식 의례는 비슷한 것이다.지금까지 형식적 측면에서 라마단 단식과 바리가 살아온 삶의 과정이 어떻게 대응되는지를 다뤄보았다면, 지금부터는 의미적 측면에서 단식을 행한 수행자들이 느끼고 알게 되는 것들과, 자신의 삶을 통해 바리가 알게 된 것을 대응시켜 볼 것이다.이슬람 신도 중에서 가난하지 않은 자들은 평소 생활에서는 배고픔으로 인해 생기는 서러움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다. 그들은 라마단 기간의 단식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 고통을 체험하게 되고, 단식 기간에 느꼈던 허기와 고통으로 인해 가난한 자들을 자비롭게 바라보게 되고 경제적으로 도와주게 된다. 이처럼 만일 바리가 무산에서 계속 가족들과 부유한 생활을 누리면서 평탄한 삶을 지냈더라면, 그녀는 밑바닥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도 정신적으로 황폐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에 서서 공감하거나 그들의 아픔을 감싸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무산 집에서 쫓겨난 후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그 이후로 소위 인생이 ‘기구하게’ 변함으로써 그녀는 발 마사지사, 파출부 같은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에밀리 부인 같이 정신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에밀리 부인이 과거의 어두운 기억에서 벗어나 아기를 키우며 새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고 마음 깊은 속에서부터 진심으로 기뻐해준다. 불법 체류 단속 때 자신의 품으로 무너진 나이지리아 부인을 따뜻하게 감싸안고, 그녀의 얘기를 들어주고, 그녀와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꿈속에서 만난 부르카를 쓴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미어지도록 운다. 무언가가 풍족한 상황에선 느낄 수 없었던 것을 그것이 결핍된 후에 느끼고, 그것이 결핍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라마단 단식과 바리의 삶은 닮아있다.
    독후감/창작| 2016.12.16| 4페이지| 1,000원| 조회(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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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A0]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를 종교적 관점에서 읽고 - 성과 속의 마블링 (종교 상징의 세계)
    성과 속의 마블링‘성스러움’ 과 ‘범속함’ 은 어떤 관계일까? “성스러움은 속과 대립하는 것” 이라는 주장에 따르자면, 그 두 개는 한 존재 내에 공존할 수 없는 관계이다. 여러 종교에서 믿어지는 신처럼 완벽하게 성스럽거나,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처럼 완전히 범속하기만 한 존재만이 있을 것이다. 혹은 수업시간에 배운 엘리아데의 ‘성현의 변증법’에 따르자면, 속의 성질을 지니고 있었던 사물이 성스러움으로 인식되는 관계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엄마를 부탁해’ 의 엄마를 중심으로, 성과 속의 새로운 관계를 다뤄보고자 한다. 즉, ‘엄마’ 라는 하나의 존재가 성스러움과 범속함, 두 특징을 모두 다 가지고 있으며 그 둘의 경계가 모호하게 뒤섞여 있기도 함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다.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더 쉬운 설명을 위해 ‘성스러움’ 과 ‘ 범속함’ 의 개념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가변적이고 제한적인 자신과는 다른 초월적이고 완전한 존재와 접촉하거나 그를 모방하기를 갈망하고, 불완전한 감각적 경험을 통해 실재의 의미를 파악할 것을 추구하며, 때로는 자기 스스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존재가 되려고 시도하는 모든 자세가 인간의 종교적 지향성이다. 이때 인간이 갈망하고 지향하는 존재, 의미, 상태, 속성을 아울러 “성스러움” 이라고 할 수 있다.나는 위에 인용한 글을 범속함과 성스러움의 속성을 설명하는데 이용할 것이다. 즉, 가변적이고 제한적인, 초월적이거나 완전한 것이 아닌 것을 범속한 것이라 가정하는 것이다.엘리아데는 인간에게 경험되는 성스러움의 내용을 “보통과 대립되는 완전함” , “개인의 한계를 초월한 것”, “초월적인 것”, “다른 존재론의 영역”, “세속과 반대되는 것, 질적으로 다른 것” “완전한 것” “남다른 것” “신기”한 것 “이상”하고 “웅대”하고 “이례”적인 것 완전히 “새로운 것” 등으로 설명한다.3번 인용문에서 성스러움의 개념이 다소 포괄적이기에, 성스러움의 개념을 조금 더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다른 글을 인용해 왔다.‘엄마를 부탁해’ 에서 엄마의 성스러움은 엄마가 사라진 후 남겨진 가족들의 회상에서 주로 나타난다. 우선, 엄마는 개인적인 욕심과 한계를 넘어선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셋째 딸의 회상에서, 엄마는 셋째 딸을 중학교에 보내기 위해 유일한 패물인 왼손 중지에 끼어 있던 노란 반지를 판다. 당시 젊었던 엄마는 멋을 부리고 싶었을 것이고, 유일한 장신구는 그 반지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딸의 미래를 생각해 엄마는 그 반지를 망설임 없이 팔아버린다. 엄마의 이러한 희생과 이타적인 자세는 비단 자신의 가족들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엄마는 담 바깥을 지나는 전혀 관련 없는 타인들의 기분, 행복까지 생각해 자신의 돈을 써가며 담 주변에 장미를 심는다. 또한 엄마는 시골 노인들에게는 꽤 많은 돈일 한 달에 사십 오 만원씩을 꼬박꼬박 고아원에 후원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고아원에 가 빨래를 하고 농사를 지어준다. 이는 돈을 중시하는 세속과 반대되는 모습이므로, 이 또한 성스러운 모습이다. 좋은 수의를 사는 모습에선 얼핏 그녀가 범속해보이지만, 그 이유를 깊게 파고 들어가면 그와 대조되는 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가 아닌 남편의 죄책감, 즉 아내에게 좋은 옷을 해주지 못했다는 무력감을 덜어주기 위해 좋은 수의를 산 것이기 때문이다.또한 이 책에서 가장 엄마의 성스러움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은 엄마의 생명력, 즉 모든 것을 살려내고 만들어내는 풍요의 능력이다. 엄마는 웬만한 필요한 것들은 모두 돈을 주지 않고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이다. 이는 평범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특징이다. 엄마는 재봉질을 하고, 뜨개질을 하고, 밭을 파서 수많은 식물들을 길러냈다. 엄마는 동물들이 잘 번식하지 않는 집에서, 강아지를 비롯한 동물들을 살려내 새끼를 몇 십 마리나 낳게 한다. 그녀가 텃밭에 씨를 뿌리면 먹기에 벅찰 정도로 풍성하게 식물들이 올라온다. 이러한 엄마의 모습에서 얼핏 존재를 창조하는 신이 떠오르기도 한다. 또한 음식물 찌꺼기를 동물의 먹이로 주고 동물의 배설물을 거름으로 쓰는 순환의 능력까지 지니었다.그 밖에도 큰아들의 회상 속에서 엄마는 “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산다냐! 이 세상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많은 법이다! ”라고 말하며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속과는 반대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남편의 새 여자가 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도망쳤지만, 자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보통 인간들처럼 계속 편하게 도피하기보다는 새 여자에게 정면으로 맞서며 당당하게 밀어낸다. 거기다 넷째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는 아기가 죽은 채로 나올까봐, 혓바닥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꾹 깨물며 비명을 참고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초인적인 면모를 보인다.동시에 엄마는 많은 면에서 범속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우선 엄마는 대다수의 평범한 인간들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를 표출하기도 한다. 그 첫 번째 증거는 넘쳐나는 부엌일에 지쳐 화증이 날 때면 항아리 뚜껑을 내던져 깨뜨림으로써 해소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또 다른 증거로써는, 자신이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에 열등감을 느끼고 그를 숨기기 위해 홍태희에게 거짓말을 하며 책을 읽어달라는 부분이 있다. 범속한 인간의 속성인 물욕이 딸에게 밍크코트를 사달라는 부분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거기다 결혼 전의 그녀는 엄마랑 같이 살고 싶다고, 시집가기 싫다고 울어대며 정든 것과의 이별에 대한 슬픔,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던 온전할 수 없는 범속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가변적인 존재이다. 시간의 흐름 앞에서 당당할 수 없는, 늙어갈수록 몸은 이 곳 저 곳 아파가고 정신 또한 가물가물해지며 쉽게 약해지는 인간인 것이다. 거기다 소중했던 존재인 균의 죽음에 영향을 받아 잘 웃지 않고, 잠도 잘 잘 수 없는 모습은 강인하고 온전한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그녀의 범속함이 가장 크게 나타난 부분은 이은규의 존재이다. 엄마는 죽은 후 남편보다도 그를 먼저 언급하고, 그를 웃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의 앞에선 기품 있어 보이고 싶고, 그는 자신의 인생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다고 말한다. 그것으로 보아 엄마는 사랑까지는 아니었을지라도 이은규에 대해 이성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던 것은 분명하다. 인간 세계의 가치관에 비추어보면 이성에 대한 성스러운 사랑은 변함없고, 한 대상에 집중되고, 순결한 속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엄마는 남편에 대한 감정 이외에도, 다른 남자에게 이성으로써의 감정을 느끼는 범속한 면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인문/어학| 2016.12.16| 4페이지| 1,000원| 조회(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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