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영]? 주제 : 구상무역이 무엇인지 쓰고, 그 중 상호구매와 오프셋에 대해서 쓰시오Ⅰ. 서론구상무역의 등장배경으로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무역 통제의 수단으로 등장한 구상무역은 1930년대에 세계적 대 불황으로 세계무역이 축소되면서 이에 대처하기 위해 채택된 것으로, 이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나라들이 구상무역 거래를 수용하였으며, 우리나라 또한 선진기술과 자본 도입을 위해 구상무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농산물, 천연자원을 수입 할 때 구상무역을 많이 이용하고 있고, 북한과 교역할 때도 구상무역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구상무역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상무역은 무역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환 손실을 예방할 뿐 만 아니라 보다 편리하고 균등하게 수출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론에서는 구상 무역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1. 구상무역이란?구상무역이란 바터무역이라고도 하며, 두 나라 사이에 협정을 맺어, 일정기간 서로 수출을 균등하게 하여 무역차액을 영(零)으로 만들고, 결제자금이 필요 없게 하는 무역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하나의 계약서에 의해 거래가 이루어진다. 쉽게 말해 상품이나 재화의 물물교환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상품의 수출과 수입을 하나의 교환 방법으로 활용한 무역형태이다. 수출대금을 현물로 지급하는 것으로 주로 외환보유고가 부족한 나라의 무역거래 수단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그림 1] 구상무역(바터무역)2. 구상무역의 유형구상무역의 유형으로는 바터 (Barter), 상호구매(Counter Purchase), 오프셋 (Offset), 스위치 트레이딩 (Switch trading), 역 구매(Buy Back)가 있다.바터무역은 구상무역 중 가장 오래된 형태로 두 당사자 간의 재화를 맞바꾸는 형태로 물물교환방식의 국제교역을 말하며, 구상무역 중 가장 오래된 형태이다. 상호구매는 수출의 대가로 하는 구매. 무역거래에서, 수출을 하는 대가로 상대방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오프셋은 상호구매와 유사한 형태이나 판매금액의 전액을 구매해야 하는 상후구매와 달리 판매대금 중에서 일정액만음 재구매하면 되는 형태이다. 스위치 트레이딩은 상품의 수출입은 당사자 간에 이루어지나 대금 결제는 제삼국의 업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거래이다. 역 구매는 수출자가 기술 장비 플랜트 등을 수출하고 동설비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수입하는 형태의 거래이다.Ⅲ. 결론지금까지구상무역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이번 과제를 통해 무역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했던 나이기에 수출을 하면 무조건 현금으로 대금을 받는 줄만 알고 있었는데, 수출대금을 현금이 아닌 그 대가를 물건으로도 치를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고, 또한 서로 상품을 맞바꾸는 물물교환 있다는 방식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무역이 활발한 국가이다. 한국이 경제 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도 무역을 통해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국에게 무역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을 정도 중요하며, 실제로도 무역은 우리나라 경제에 있어 대단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마켓컬리 광고에 대한성공요인 분석목 차I. 서론 31. 기업광고란?2. 마켓컬리의 시작Ⅱ. 본론41. 마켓컬리 마케팅 전략2. 마켓컬리 광고 성공요인Ⅲ. 결론 71. 마치며Ⅵ. 참고문헌 8Ⅰ. 서론1. 기업광고란?기업광고는 기업의 역사 및 업적, 정책 등은 물론, 해당 기업의 경영규모나 기술, 인세 등을 일반 대중들에게 선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소비자들로부터 기업에 대한 신뢰와 호의를 널리 획득하고자 하는 적극적 마케팅 활동이다. 광고는 소비자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마케팅 활동으로 기업들에게는 소비자들에게 상품의 이미지를 구축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기업광고는 대중매체를 통해 다수의 사람에게 기업이 원하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기업은 광고를 통해 상표나 제품의 특징과 편익, 차별점 등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하여 인지도를 쌓을 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어 브랜드 가치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기업광고는 기업 경영활동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는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 기업광고는 해당 기업의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으로 각인시킴으로써 기업의 궁극적 목표인 이윤창출에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는데 있다. 이처럼 기업광고는 기업의 이윤창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소비자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마케팅 활동이다.2. 마켓컬리의 시작 마켓컬리이 세상에는 참 다양한 푸드마켓이 있지만 우리와 꼭 맞는 마음을 가진 푸드마켓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좋은 재료를 위해서라면 해외 직구, 백화점, 동네마트, 재래시장, 더 나아가 전국 방방곡곡의 산지를 찾아다니며 품질과 가격을 비교하던 깐깐한 소비자였다. 이렇게 찾아낸 훌륭한 생산자와 최상의 먹 거리들을 나와 내 가족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쉬웠다고 생각했다. 비싼 식자재만이 좋은 음식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소비자에게는 진짜 맛을 소개해드리고 싶었고, 뚝심 하나로 산골 오지에서 수십 년간 묵묵히 장을 담그는 명인, 시들어서 버릴지언정 무 농약을 고집하는 농부에게는 안정적인 판매 활로를 찾아드리고 싶었던 마켓컬리는 2015년 시작하게 되었다.Ⅱ. 본론1. 마켓컬리 마케팅전략마켓컬리는 지난 2015년 5월 프리미엄 식품 전문 업체로 설립돼 유통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70여 가지 자체 기준을 두고 신선제품, 해외식료품, 가정간편식 등을 판매하는 온라인 식품몰이다. 상품 입고부터 배송까지 유통 전 과정을 일정 온도로 관리해 농산물 생산 또는 수확 직후의 신선한 상태로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콜드체인시스템’도 가동 중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톱스타 배우 전지현을 메인모델로 발탁해 TV CF 등을 통하여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소비자를 열광케 만든 마켓컬리의 마케팅 전략을 알아보고자 한다.(1) 새벽 7시 전 배달 “샛별배송”샛별배송은 밤 11시 전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7시 전에 물품을 배달해주는 새벽배송 서비스다.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를 이용한 마켓컬리 대표가 배송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면서 탄생되었다고 한다.(2) 신선함을 유지한 친환경 식품 배달 서비스마켓컬리는 채소를 비롯한 신선식품을 오전에 수확해서 다음 날 새벽에 배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판매되지 않은 신선 식품의 경우 폐기하여 상품의 질을 유지한다고 한다. 온라인에서 장을 보면서 과일, 해산물의 신선도가 확인되지 않아 불안해할 소비자들의 불편함을 제대로 저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3) 조리법 소개(컬리스 레시피)마켓컬리는 ‘컬리추천’의 ‘컬리스 레시피’를 통해 소비자들이 구매한 일부 식재료로 만들 수 있는 음식레시피를 소개하며, 음식을 잘 못하는 소비자, 또는 잘하지만 새로은 맛을 원하는 소비자를 위해 다양한 레시피를 공개했다.(4) 편리한 구매방식 제공필요한 식품이 있어 마켓컬리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있는가 하면, 다른 소비자들이 자주 즐겨 사는 식품을 따라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할인된 가격, 알뜰한 가격에 구매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을 구매패턴을 반영하여 다양한 구매 카테고리를 선보였다. 소비자들은 컬리추천, 신상품, 베스트, 알뜰쇼핑 등에 카테고리를 통해 원하는 방식대로 편리하게 장을 볼 수 있어 호평을 얻고 있다.(5) 상세한 상품 설명마켓컬리는 한 상품을 사더라도 꼼꼼하게 살펴보는 소비자들을 위해 상세한 상품 설명을 전달하고 있다. 그 제품이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소비자에 어떻게 전달되는가를 중요시 여기고 있다.(6) 적절한 가격대 유지마켓컬리는 좋은 식재료를 적절한 가격대에 유지해 판매하고 있다. 한 품목당 최대 3개 이상의 브랜드나 생산자를 넘지 않게 공급선을 관리하고 있다. 셍산자가 만든 상품을 직매입하여 유통마진의 효율성과 고객에게 더 나은 식재료를 빠르게 제공함으로써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더불어 장박구니 필수품 가격 조정제를 통해 고객등에게 합리적인 가격을 필수 식료품을 제공한다.(7) 유지고객 구매 패턴분석마켓컬리는 신규 고객 유치보다는 기존에 애용하는 고객을 유지하는 데 힘쓰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마켓컬리 매출의 90%는 재구매 고객에서 나온다고 한다. 한번 찾아준 고객이 계속해서 마켓컬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중점을 두고 있다.(6) 적절한 가격대 유지마켓컬리는 좋은 식재료를 적절한 가격대에 유지해 판매하고 있다. 한 품목당 최대 3개 이상의 브랜드나 생산자를 넘지 않게 공급선을 관리하고 있다. 셍산자가 만든 상품을 직매입하여 유통마진의 효율성과 고객에게 더 나은 식재료를 빠르게 제공함으로써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더불어 장바구니 필수품 가격 조정제를 통해 고객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을 필수 식료품을 제공한다.2. 마켓컬리 광고의 성공요인 샛별배송마켓컬리는 고객에게 신선한 제품을 배송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7시 이전에 현관문 앞으로 배송해주는 샛별배송, 상품 포장 및 배송까지 식품 전용 냉장·냉동 창고를 통해 이뤄지는 풀 콜드 체인(Full Cold Chain), 70여 가지 기준으로 검토하는 상품위원회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백범 김구리더십에 대한 연구목 차I. 서론 31. 인물 선정 이유2. 백범 김구의 생애Ⅱ. 본론61. 교육적 리더십2. 미래지향적 리더십Ⅲ. 결론 71. 마치며Ⅵ. 참고문헌 8Ⅰ. 서론1. 인물 선정 이유19세기 후반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받으며 끊임없는 혼란 속에서 오직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싸우신 역사적인 인물들이 있었다. 그 중 대한민국을 이끈 가장 훌륭한 리더를 꼽는다면 백범 김구 선생을 꼽지 않을 수가 없다. 일제의 침략 아래 우리 민족을 구하고자 독립운동을 하였고, 해방된 통일 조국 건설에 혼신의 힘을 다하시다 끝내 비명에 가신 대한민국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현대까지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인 백범 김구 선생을 리더십 연구 인물로 선정하였다.2. 백범 김구의 생애 백범 김구 선생1876년 7월 11일 황해도 해주에서 김순영선생과 곽낙원 여사의 외아들로 태어나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한 개구쟁이로 자랐다. 어린나이 양반과 상민의 차이를 경험하고 글공부에 매진하게 되었지만 비리와 부정이 행해지는 과거장을 보고 과거의 뜻을 접게 되었고, 1893년 동학에 입동하여 팔봉도소의 아기접주가 되어 해주성을 치는데 앞장섰으나 관군과 일본군의 의해 실패하고 말았다. 1895년 동학운동의 실패 후 청계동 안태훈 진사의 집에 은거하며 유학자 고능선 선생을 통해 많은 가르침 받으면서 민족적인 시각을 새로이 확립하고 사상적으로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1895년 청국 시찰 순례 중 의병부대의 가담하기도 하며 구급활동을 모색하던 백범은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와 나라의 치욕을 씻는다는 마음으로 조선인으로 변장한 일본군 첩자 육군 중의 스치다 조스케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교훈적으로 처단하였고, 이후 국모를 시해한 원수를 갚기 위한 행동 이였다고 당당히 선언하고 감옥에 수감되었다. 감옥생활 중 새로운 학문을 통해 세계관과 정치의식에 폭을 넓히게 되었고, 교육을 통해 힘을 얻는 것만이 나라를 구할 방법임을 깨달았다. 황후 황제의 사면령이 일본 측에 반대로 시행되지 않자 후일을 도모하고자 탈옥을 감행하게 되었다. 황해도 창전에서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시작하면서 교육 계몽운동을 전개하였고, 부강한 나라를 넘어 문화국가를 조국의 건국이상으로 필역하였다. 자신도 행복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주는 국가. 그것이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이 꿈꾸는 문화국가였다. 1905년 일본은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조약을 강요하였다. 이에 백범은 청언 상서와 공개연설 등 반대투쟁을 전개하고 신민회에 가입하여 국권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안명근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 잡히게 되자 일제는 황해도 해주에 독립 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당시 신민회에 황해도 총감이였던 백범 역시 체포되었다. 안악사건과 105인사건으로 4년 8개월 수감되었다. 가혹한 고문을 당하는 고통을 받았지만 그는 독립에 대한 의지를 더욱 다지는 결의로 백범이라는 호를 짓게 된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백범은 독립운동을 위해 일제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상하이로 망명하게 되고,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될 것을 희망하던 백범 김구 선생은 경무국장으로 임명되어 4년 동안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되고, 내무 총장과 이어서 국무령이 되었다.1931년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활성화를 위해 임시정부 국무회의의결로 구국청년들로 조직된 한인애국단을 창설하였다. 1932년 1월 8일 한인 애국단원 이봉창 의사는 일제 심장부인 일본 도쿄에서 적의 왕에게 폭탄을 던졌다. 일제는 본격적인 중국대륙 침략에 앞서 1932년 1월 28일 육해군 10만 명을 투입하여 상해사변을 일으켰다. 중국은 30만 명을 투입하여 1개월간 항전하였으나 막대한 희생을 낸 채 상하이는 일본군에게 점령되었다. 1932년 4월 25일 한인 애국 단원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홍콩공원에서 거행된 일황의 생일과 일본군의 상하이 점령을 축하하는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사령관, 거류민 단장 등 주요 인사들을 폭살시켰다.백범 선생이 직접 기획하고 지휘한 한인 애국단의 의거는 일제의 기세를 일거의 꺾어버린 쾌거이자 한국인의 독립에 대한 갈망을 세계의 알리는 쾌거였다.또한 만보산사건으로 냉각되어있던 한중관계를 우족으로 극복하여 중국이 한국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일제를 피해 중국내륙으로 이동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백범 선생은 1933년 중국 국민당 정부의 장제스를 만나 지원을 약속받아 한인청년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하였다. 1937년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자 임시정부는 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을 거쳐 1940년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있는 충칭에 도착하게 되었고, 주석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1940년 9월 17일 드디어 한국광복군을 창설한다. 그 후 조선 의용대까지 통합해 병력을 증감함으로써 광복군은 1945년 8월 광복전에 약 700여명에 임시정부 국군으로 성장하였다. 백범 선생이 이끄는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대일 선전 포고를 하고 2차 대전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 본토 수복을 위한 국내진입작전을 준비하며 우리의 힘으로 독립을 이루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원자폭탄 투하의 놀란 일제가 1945년 8월 15일 앞당긴 폐망으로 국내 진입작전을 실시하지 못한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게 된다.나라 잃은 36년 동안 오로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몸 바친 지고지순한 민족주의자이자 독립을 향한 빛나는 그의 공적은 우리 독립운동사에 깊게 새겨져 있다.1945년 11월 23일미군정의 요청으로 임시정부의 주석이 아닌 개인자격으로 조국을 떠 난지 27년 만에 그토록 그리던 조국의 땅을 밟게 되었으나 조국은 38도선을 경계로 나뉘어 있었고, 이여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 신탁통치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에 즉각 신탁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위원회를 조직하고 비상국민회의를 소집하여 의장으로서 반탁운동을 전개하였다. 미·소의 신탁통치를 거치지 않고 내정간섭도 없이 UN 감시 하에 남북 총선거에 의해서 통일된 대한민국의 자주독립 정부를 조속히 투입할 것을 촉구하였다.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1948월 2월 16일 납북 지도자회의를 북측에 제의하고 4월 16일 평양을 향해 출발하였지만 백범 선생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948년 8월 15일과 9월 9일 남과 북에서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었고, 1950년 북측이 남침하여 우리민족은 6.25 한국전쟁의 비극적인 동족 상적을 겪게 됐다.그리고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1년 직전이 1949년 6월 26일 전개은퇴 후 청소년 교육에 몰두하면서 통일 대한민국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백범 선생은 평화통일 반대세력과 친일파의 하수인 안두희의 흉타를 맞아 서거하였다.Ⅱ. 본론1. 교육적 리더십일본군 스치다 중위를 국모를 시해했다는 이유로 죽인 뒤 감옥에 수감되었다. 감옥에서 백범 김구는 감옥생활 중 새로운 학문을 통해 세계관과 정치의식에 폭을 넓히게 되었고, 교육을 통해 힘을 얻는 것만이 나라를 구할 방법임을 깨닫게 되면서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배움에 대한 길을 향해 나가기 위해 신지식을 계속 접하게 된다. 우리나라를 향한 일본의 침략은 계속되었고, 을사조약이 체결된다. 백범 김구는 상소투쟁을 포기하고 민중계몽과 신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고향인 해주로 돌아가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간 김구는 “지식을 업신여기고 애국심이 박약한 이 나라가 국민으로 하여금 나라가 곧 자기 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전에는 무엇으로도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교육 사업에 더욱 힘을 쏟게 되었다. 이 같은 뜻에서 문화군에 설립한 교원으로 들어가 아동들을 가르치다가 양산학교로 옮겨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환등기를 보이며 새로운 문명의 사조를 알렸다. 백범 김구의 교육열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해서교육총회를 발족하게 된다. 해서교육총회는 황해도 일대의 모든 교육기관이 유기적으로 연대하여 교육문화 보급운동을 적극 지원하며 황해도의 모든 면마다 학교를 하나씩 조달한다는 방침이었다.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그는 이 단체의 사람들을 이끌고 나갈 필요가 있었다. 또한 회원을 늘리고 자금을 조달하며 강연회 등을 하여 교육에 대한 인식이 낮은 곳의 인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당시 신민지 교육정책에 따라 일본군에 의해 지방의 교육은 친 일제 교육의 미명아래, 황제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숭배형태로 일본천황에게 절하고 일본어를 배우는 실정이었다. 이에 백범 김구는 고종황제의 사진을 정면에 걸고 모두에게 절하게 하여 우리나라의 자주성을 강연하였다. 그러나 이 강연회도 일제에 의해 종료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백범 김구는 서신을 통해 자신의 단체를 관리하고 조직력을 강화시키며 교육의 독립성을 주장해 나가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백범 김구는 뛰어난 지도력으로 이봉창, 윤봉길 같은 의사들을 이끌었으며, 지속적인 교육을 통한 독립을 주장하며 현실을 파악하고 미래를 내다보았다. 그는 강인한 성품과 과감한 행동력으로 독립 운동을 이끌어 나가는 추진력이 되었고, 동학의 선봉장, 김이언 의병 부대에의 투신, 일본군 특무장교 쓰치다의 처단, 한인애국단조직과 이봉창의사, 윤봉길의사의 의거, 어려운 조건에서의 광복군 창군 등은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빛나는 그의 리더십을 볼 수 있다.2. 미래지향적 리더십
최근 아베 내각의 외교 동향서론현재 일본은 아베 내각이 들어서고부터 점차 경제 회복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또한 국제 사회에서도 일본은 미국, 중국,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려고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일본은 경제 분야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여왔다. 일본은 그 중 한·미·중 을 비롯하여 주위 동아시아 국가의 정세에도 신경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21세기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상호의존적이고 호혜적인 관계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경쟁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를 키워 나가 동아시아 전체의 불안감을 심화시킬 것인지 아베 내각의 외교동향을 살펴보고자 한다.본론첫 번째 기사는 중일관계 개선에 관련된 기사이다.중일관계 해빙물꼬 트나..아베, 국교정상 45주년 행사 참석29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즈와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주일 중국대사관에서 개최한 ‘중-일 국교 정상화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일본 총리가 행사에 참석한 것은 무려 15년 만의 일이다. 아베 총리는 이 자리에서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을 제안했다. 그는 “올해 중 리커창 총리가 일본에 방문하길 희망한다”며 “양국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베 총리는 리커창 총리의 방일 뒤 자신도 중국을 방문할 것이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일본에 방문하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아베 총리와 리커창 총리는 축전 역시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총리가 축전을 교환한 것은 지난 2007년 국교정상화 35주년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축전에서 아베 총리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올해 중 일본에서 열고 이 자리에서 중일 정상회담을 갖고 싶다고 밝혔다. 리커창 총리 역시 “일본 측이 중국 측과 더불어 서로 다가서고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미래를 향한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모순과 차이를 적절히 조정해 중일 관계의 안정적인 개선과 발전을 기하기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중략]출처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H11&newsid=03076646616065040&DCD=A00801&OutLnkChk=Y일본과 중국은 영토문제를 놓고서 갈등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일 양국의 관계가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진 아베총리와 시진핑 국가주석의 관계는 호전되진 않은 것 같다. 아직까진 영토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중일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양국관계에서 정치와 경제 분야를 분리하자고 제안하였고, 아베 총리는 긍정적으로 협력하겠다는 태도 보였다. 일본과 중국은 정치·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략적 호혜관계를 맺고 있다. 이젠 전략적인 아니라 일본과 중국 양국 간에 관계 개선을 위해 서로 협력하여 우호 관계를 쌓아가는 게 서로 외교와 교류에도 좋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외교와 교류를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중국과 일본이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두 번째 기사는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총리와의 우호적인 관계에 관련된 한 기사이다.트럼프의 대북 정책은 ‘재팬 퍼스트’인가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4일 밤 전화로 북한 문제 대응책을 협의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두 정상은 약 12분간 통화했으며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100%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미국 언론이 전했다. 두 정상은 현 단계에서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지 않는다는데 합의했다. 두 정상은 오는 11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중국, 일본 방문 문제 등을 논의했다. 아베 총리는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전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베프’(베스트 프렌드)가 됐고, 트럼프 정부에서 미국의 ‘넘버 1 동맹국’은 일본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진보 성향 언론 매체인 ‘네이션’(Nation) 최신호는 저널리스트 팀 셔록이 쓴 “트럼프는 김정은에 대응하면서 ‘재팬 퍼스트’ 정책을 따를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일 신 밀월 관계를 집중 조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북한의 비위를 맞추려는 ‘유화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북한 완전 파괴’ 위협을 했고, 대북 군사옵션 동원 가능성을 줄곧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 노선에는 아베 일본 총리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네이션이 분석이다. 이 매체는 “아베가 트럼프의 ‘세계에서 가장 충실한 팬’이고, 협력자이다”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트럼프가 가장 먼저 전화를 거는 대상이 아베 총리이고, 트럼프와 아베는 북한이 일본을 넘어가는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 결속력을 더욱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중략]출처http://www.segye.com/newsView/2*************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은 빠른 속도로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초반에서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이번 북한 핵미사일 도발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두 사람은 골프를 즐기러 다니는 등 친밀감을 보이고 있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면서 ‘제펜퍼스트’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번 라스베이거스 총기 참사에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누구보다 빠르게 위로를 전하면서 다시 한 번 아베총리와 트럼프 대통령 사이가 두터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 신조는 역시 진정한 친구” 라고 칭하면서 둘의 관계는 둘도 없는 단짝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보인다.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북한 문제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총리가 수차례 연락을 취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과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과는 두 차례 통화에 그쳐 ‘코리아패싱’이라는 논란도 일어나고 있다. 아베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이 손을 잡고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을 따돌림을 시키고 있다는 말도 많이 나온다. 미일이 서로 협력해가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한·미·일 이 세 나라가 서로 협력해서 북한 미사일 도발문제를 빠르게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세 번째 기사는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합의에 관련된 기사이다.文대통령 "우리국민 위안부합의 수용 못해"…아베 "이행해야"(종합)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독일 함부르크 메세 A4홀 양자 회담장에서 열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첫 양자 정상회담에서 "한일관계를 더 가깝지 못하게 가로막는 무엇이 있다"며 이같이 언급한 뒤 "이 문제가 양국의 다른 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문 대통령의 언급은 위안부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본 정상에게 직접 밝히면서 일본의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촉구하면서도 이 문제를 양국 간 여타 분야와 연관시키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여전히 위안부 합의의 이행 필요성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양국이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할 뿐 아니라 지리적·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구"라며 "과거 역사적 상처를 잘 관리하면서 미래지향적이고 성숙한 협력동반자 관계 구축을 위해 함께 협력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아베 총리는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인 한국과 미래 지향적인 관계 발전을 위해 정상 차원의 긴밀한 소통을 토대로 함께 협력하자"고 했다. 이에 따라 양 정상은 긴밀한 소통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정상 간 셔틀외교를 복원하기로 했다. 또 한·중·일 정상회의의 조기 개최를 추진키로 했다. 이어 두 정상은 전날 한미일 정상 만찬회동에 이어 다시 한 번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가 양국의 급박하고 엄중한 위협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한 가운데 완전한 핵 폐기를 평화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한일 및 한미일 간 긴밀한 공조를 계속 유지·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통일 여건 조성을 위한 우리의 주도적인 역할과 남북대화 복원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고 아베 총리도 이해를 표명했다. 아울러 양국은 교역투자 활성화와 청소년·관광 교류 확대 등 실질적인 협력 증진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의 조기 방일을 희망했고, 문 대통령도 아베 총리의 평창동계올림픽 참석을 초청했다. 박 대변인은 "양국 정상 간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양국 간 미래지향적인 성숙한 협력동반자 관계 구축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앞으로도 양자 및 다자 계기에 자주 만나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學士學位論文한·일 드라마로 본 문화의 차이점목 차I. 서론 51. 주제 선정 이유Ⅱ. 일본과 한국의 드라마의 시초61. 일본드라마의 역사2. 한국드라마의 역사Ⅲ. 일본과 한국의 드라마 비교 91. 한·일 드라마의 특징2. 한·일 드라마의 차이점IV. 일본과 한국의 드라마의 영향력 121. 한국의 일본드라마 리메이크2. 한·일 드라마가 양국에게 미치는 영향Ⅴ. 결론 16Ⅵ. 참고문헌 17Ⅰ. 서론1. 주제 선정 이유일본과 한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자칫 문화도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일본드라마와 한국드라마를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그중에서도 크게 한류는 KPOP과 드라마를 꼽을 수 있는데, 한국드라마가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흥행하면서 ‘한류열풍’이라는 단어까지 생겨났으며 대중문화를 자리 잡고 있는 드라마가 일본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드라마는 대중들의 일상 속 이야기로서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재미를 주며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또한 드라마는 그 나라의 문화를 반영한 방송매체이며, 실제로 한국드라마를 접하고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생겨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도 있다. 나 역시도 고등학교 시절 때 제 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우면서 처음 일본드라마를 접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일본’이라는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차츰차츰 알아가게 되었다. 책으로만 공부하는 것보다 더 큰 관심이 생겨났기 때문에 드라마는 어쩌면 언어를 이해하기 쉽고 즐겁게 배울 수 있는 공부수단이 아닐까 생각한다.또한 드라마는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 교훈뿐 만아니라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속 화려한 주인공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현실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드라마 통해서 경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타임슬립 드라마와 같은부시청자들을 위하여 연속극을 개시했다. 주로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힘들었던 시절을 소재로 하였다. 1965년에서 1974년에는 기존의 대하드라마에 대중성을 더한 대하드라마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 중에서도 일본의 전통적인 이야기로서 사무라이 시대의 이야기인 ‘낭인(浪人)’ 시리즈가 유행하였다. 또한 가정주부들의 여가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よろめきドラマ’가 성행하였다. 연이은 홈드라마 히트의 전성기이기도 하다.1975년에서 1982년대에는 일본드라마 구성에 변화가 일어났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방영하는 연속드라마의 중심이었던 방송형식이 단편드라마와 70~90분간 방송하는 토요드라마, 2~3시간 연속 방영하는 드라마가 방송된 것이다. 또한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이 정치적 성향의 주인공에서 서민층 성향의 주인공으로 변화되었다. 이치카와 신이치, 쿠라모토 소우 등 유명 각본가들을 중심으로 작품성을 강한 작품을 제작하여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였다. 1983년 ~ 1987년에는 각 방송국의 시청률 경쟁에 의해 점점 흥미 위주의 드라마로 대중성을 강화하였다. 이후 일본의 안방극장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TV가 한 가정에 1대 이상씩 보급됨에 따라 채널선택권이 생겨 시청자의 계층이 다양화되었다. 거품경제의 가속화로 여성의 경제력이 강화되어 여성이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하게 된다. 액션물, 가족, 연애드라마 등이 주류로 부각되었다. 이 시기에 트렌디드라마가 등장했으나 크게 부각되진 않았다. 1988년부터 1990년대에는 트렌디드라마가 성행하였다. 트렌디 드라마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드라마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거품경제의 시기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삶을 현대적 감각과 가벼운 터치로 묘사하였고, 미남 미녀들의 캐스팅이 주류 이뤘으며 드라마를 통해 복잡한 연애관계와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었다.1991년에서 1999년대에는 일본의 경기 침체 시기로 비현실적인 트렌디드라마에 대한 비판이 발생하였다. 그로 인해 트렌디드라마의 내용이 변화하게 되지 않았다.1966년 3월에는 KBS도 VTR 기재를 도입하여 주 4회의 드라마 방송이 고작이던 종래의 핸디캡을 극복하였다. 또한 1963년 8월에 개국한 또 하나의 상업방송 MBC가 컬러텔레비전 방송도 가능한 최신형 기재를 갖추고 출발하였다. 그리고 개국 프로그램으로 매일·주간 연속극과 단편드라마로 방송되었다. 1970년∼1972년에는 국영 KBS와 민영 TBC, MBC의 3개 TV국이 각각 폭넓은 시청층의 확보와 높은 시청률의 유지를 노려 과열경쟁을 벌였다고도 할 수 있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 나타난 특징의 하나는 대하드라마의 등장과 그 유행이다.1973년 7월 문화공보부는 각 방송국에 일일연속극의 방영 횟수를 감축해 주도록 요청했다. 이에 따라 각국은 조정에 나섰으나 뚜렷한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1974년은 또한 대형 정책 드라마가 등장하여 성공한 해이다. 1975년은 전년도에 이어 일일연속극에 대한 사회 각계의 비판이 고조된 해이다. 1976년도에도 TV 각국간의 시청률 경쟁은 일일 및 주간 연속 드라마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지속되었는데, KBS는 점차로 이러한 경쟁대열에서 빠져나가려는 경향을 보였다.1977년에 들어서자 각국은 드라마의 수준향상과 방향전환을 모색하는 노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대형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또 단막극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일일연속극에 의한 이미지 악화를 축소시키려 하였다. 1980년~1989년 KBS 2TV에서 방영되었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국민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자 그 벅찬 감개를 묶은 드라마 ‘남매’ 일일연속극으로 방영되었다. 프로그램 시작 때부터 높은 인기를 누렸던 ‘전설의 고향’은 일요일 저녁으로 옮겨 시청층의 폭을 더욱 넓히고 여전히 높은 인기를 유지하였다. 1990년은 미니시리즈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수작이 나왔고 그만큼 인기도 끌었다. 주로 6·25 전후의 소재로 하였다.1991년에는 대하드라마 ‘땅’이 빈부격차로 얼룩진 현실을 조명하였으며, 이병주 원작의 ‘행복어사전’이 미니시리즈 일본드라마와 달리 작가의 영향력이 적은 편이다. 이 시스템의 단점은 동시 촬영이다 보니 방송시간에 맞춰서 촬영해야하기 때문에 스텝과 배우들의 밤샘 촬영과 편집으로 제작진들에게 있어서 힘든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사전 제작되는 드라마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대표적으로 ‘태양의 후예’를 예로 들 수 있는데, 방영 전 100% 사전 제작되어 방영 후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이후 일본에서도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누렸으며, 일본 현지 팬들 사이에서는 ‘태양의 후예’가 일본에서 제 2의 ‘겨울연가’가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분위기 나오고 있으며, ‘태양의 후예’로 한동안 주춤하던 한류에도 청신호가 켜지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일본 드라마의 또 다른 시스템은 분기별 시스템이다. 일본 드라마는 1년을 총 4분기로 나눠진다. 1분기는 1-3월, 2분기는 4-6월, 3분기는 7-9월, 4분기 10-12월로 방영된다. 일반적으로 방송 횟수는 주로 10회~11회로 완결을 내며 주1회 방송해서 3개월에 걸쳐서 방송한다. 반면 한국드라마는 주 2회 16회~20회까지 방송하는 드라마가 대부분이고 아침드라마나 일일드라마 같은 경우는 100회~120회까지 방영한다. 또한 드라마들의 시작 시기는 방송사마다 다르고, 일본과 같이 분기별로 시작해서 비슷한 시기에 끝내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장르 면에서도 한국보다 일본드라마가 더 다양하다. 한국 드라마에도 로맨스 이외에도 의학, 수사, 학원물 등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드라마 속의 설정은 그 장르에 완전히 집중되어 있지 않다. 드라마의 소재가 무엇이던 간에 빠지지 않는 것은 사랑이야기인 반면 일본 드라마는 수사, 의학, 로맨스 등의 기본 장르뿐만 아니라 매회 드라마 내용이 새롭게 구성되는 에피소드 형태로 장르, 판타지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된다. 이런 형태가 두드러지는 이유는 일본 드라마가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일 드라마 특성 비교 (부분참고)구 분일본드라마한면 일본임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일본과 한국의 드라마를 비교해볼 때 눈에 띄는 차이는 일본은 방영 전에 촬영을 끝내어 시청률에 따라 횟수, 내용 등을 조절 할 수 없는 등 작가의 영향력이 큰 반면, 한국은 시청률에 따라 횟수가 조절 가능하고 시청자의 반응과 의견을 참고하여 내용을 조절하는 방식을 택한다.소재 면에서 일본은 소설이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등 다양하고 전문화된 소재를 사용하여 개성 있는 캐릭터를 보여주는 한편, 한국은 최근 여러모로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신데렐라 스토리, 병에 걸린 여주인공 같은 진부한 소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 택하고 있는 에피소드 형식은 속도감 있는 전개와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전체적인 주제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단점도 있다. 한국의 일일드라마나 아침드라마와 같은 장편 형식은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중에 주제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내용이 길어서 질리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IV. 일본과 한국의 드라마의 영향력1. 한국의 일본드라마 리메이크한국에서 일본드라마의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일본드라마 리메이크가 열풍 되고 있다. 일본드라마는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소재와 신선한 내용을 가지고 있어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드라마의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소재에 질린 대중들에게 있어서 일본드라마는 참신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드라마가 한국에서 리메이크 되어 흥행된 드라마도 있는 반면에 특유의 분위기를 살리지 못하거나 캐스팅의 실패 또는 한국의 정서와 맞지 않는 등 흥행되지 못한 드라마들도 있다. 각종 일본드라마 원작의 한국 드라마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어떠한 일본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한국드라마들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좌)花より男子(일본판)와 (우)꽃보다남자(한국판)’꽃보다 남자는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대만판(2001년, 2002년), 일본판(2005년, 2007년)에 이어 한국(2009년)에도 리메이크에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