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릭, 즐겨찾기?북한문화예술-위 보고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에 대하여 반드시 알아야할 내용을 중심으로 생애부터 통치, 평가(비관론,낙관론)에 대해 서술한 글이다.1생애김정은은 1998년에 입학하여 2000년까지 스위스 베른의 공립 중학교에 다녔다. 스위스 유학 생활에 관한 여러 보도들은 정확히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주앙 미카일로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조용하고 내성적인 평범한 학생이었고, 농구, 영화와 게임, 컴퓨터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한 것(2009.)을 대북 소식지가 이를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사실 파악이 되지 않았다 보도하였고,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 및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도 김정은의 어린 나이와 경험 부족의 이유로 후계자 지명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머지않아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자로 김정은을 지명하여 김정은의 군부 장악 가능성이 높아졌다.그 후 조선인민군 대장 임명(2010.09.27), 3차 노동당대표회의(2010.09.28)에서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및 당중앙위원 임명 절차를 거치며 김정은은 북조선의 국가통수권 후계자로 공식 확정되었다.2통치김정일 사망(2011.12) 이후 김정은은 초기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리영호 해임, 현형철 숙청, 장성택 숙청 등으로 이어지는 권력 엘리트 교체와 함께 고위관료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공포정치’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게는‘인민대중제일주의’를 강조하면서 수령과 인민의 관계를 가깝게 만들고자 하였다.대외적으로는 핵?미사일 시험 등을 통해 한반도 위기국면을 조성하고 사회 결속을 다지는데 주력하여 자신의 통치술 과시 및 권력 공고화에 활용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자신의 유일영도체계를 확립해 나가기 위해서 김정일에 의해 구축된 후견세력을 숙청하면서 새로운 권력구조를 창출해 나갔다. 자신의 여동생 김여정이 장성택의 숙청과 이로 인한 고모 김경희의 정치적 위상 추락을 대체하면서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부여하였다. 또한 총정치국장에 당료 출신인 최룡해와 황병서를 임명하고 당중앙군사위원회에서 군부의 조직문제를 논의하는 등 당국가체계 복귀의 의미를 다졌다. 김정은은 이러한 공포정치를 바탕으로 세대교체를 추진하고 체제를 변화시키며 발전시키고자 하는 방안을 모색했다.김정은의 숙청작업을 ‘공포정치’로 규정한다면, 선대 김일성 시기에 진행된 숙청작업도 공포정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차이는 김정은이 선대 수령에 비해 짧은 기간 동안 당·정·군의 핵심 권력 엘리트에 대한 잦은 숙청을 진행한 것이다.3긍정적 평가정권 유지 능력에 있어 이례적이지만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신의 지도력을 해칠 만한 노련한 북한 군의 최고 실세인 리영호 총참모장을 숙청하며 군부를 휘어잡고, 고모부 장성택 처형 직후 자신이 중용하던 당?정?군의 신진 간부마저 대거 숙청에 나섰다. 즉, 집권 초 자신과 권력을 나누던 사람들을 하나둘 잘라내고‘1인 독재’를 하였으나 숙청설이 나돌았던 여러 인물들이 유임되었고 내각도 급격한 변화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대외무역의 규모를 확대하고 대내적으로는 시장 경제의 부분적 도입을 허용했다. 그 결과 북한 경제는 2012~2016년까지 마이너스 성장이었던 15년을 제외하고 연평균 1.2%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2016년에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3.9%가 성장했다.성난 민심을 달래주는 것을 최대 과제로 삼았다. 2013년에는 식량난이 극히 악화해 인민의 불만이 폭발하여 김정은 체제가 흔들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재난 대비용으로 비축했던 식량과 신성불가침이었던 군량미까지 풀어 인민의 불만을 해소해주었다. 2013년 초의 박봉주의 시장 개혁조치가 성공적이라 평가받고 식량 생산이 크게 늘었으며, 중국에 헐값으로 자원을 넘긴 뒤에 받아온 외화로 비료를 대규모로 수입하는 등 합리적으로 식량 증산에도 힘썼다.또한 집권 초기인 2012년 6월, 생산수단은 사회가 소유하고 사회주의 경제 체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인이나 기업의 자율성을 조금 늘려주었다. 따라서 농업 분야에서 초과 생산분은 개인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공업 분야에도 개인의 투자를 허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상업자본을 축적하여‘돈주’로도 성장하였고 축적한 달러가 시장에 재투자되어 경제가 다시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낳았다.4부정적 평가1980년대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아와 순탄하게 후계자로 임명받았던 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은 수업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지명되어 권력 기반이 비교적 약하다. 취약한 통치 기반은 김일성의 정치권력으로 인해 상당한 제한을 받게 되었고, 초창기에는 별 존재감이 없었다. 따라서 줄곧 김일성과 김정일이 했던 국내 통치 스타일을 그대로 답습하는, 평안도 지역에만 인프라를 투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과거의 시스템을 바꿀 생각이 없으며 현상유지에 만족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 무대예술이란무대예술이란 집단적 생산이라는 특징을 가지며 어떤 장소의 어떤 시간에 예술적 형태를 발생시키지만 동시에 소멸되는 예술이다. 무대에서 관객과 직접 대면하는 아티스트 이외에도 작가, 연출자, 안무가, 무대 조명, 음향, 의상, 분장등의 기술스텝 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집단적 협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무대예술은 실연예술로써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일차적 수단으로 현장에서 직접 보여주는 것 이외에도 관객과 공연자의 직접 대면, 예술작품에 능숙한 표현과 그에 대한 관심, 그리고 관객들이 볼 수 없는 대본, 무대작업 등이 타 분야와 구별되는 변별적인 특징을 이룬다.무대예술의 가치는 인간의 정신적인 욕망 충족과 삶의 질적인 향상에 기여하는 것으로 인간의 일반적이며 총체적인 삶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문화 향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다.즉, 무대예술은 인간의 삶과 정신세계를 형상화된 이념으로 표현하여 신체언어, 음악, 미술 등의 효과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예술의 장르이다. 현대인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향상시켜주는 문화 상품적인 가치로써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무대 예술은 곡예, 비극, 희극, 무용, 마술, 음악, 오페라, 영화, 저글링, 행진 예술, 취주 악단과 연극 등을 포함한다.무대 예술의 정의를 통해 관객은 무대예술의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관객이 없는 무대는 의미가 없으며 공연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내용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취업 전략을 위해 무대예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취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과정이 따른다. 어학, 자격증 등의 스펙뿐만 아니라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도 중요할 것이며,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글쓰기 실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모두 갖춰진다 하더라도 말하기 능력, 즉 취업의 마지막 단계인 면접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취업에 성공하기 어렵다. 면접은 면접관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고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면접방법(토론, 그룹 대화 등)이 추가되면서 갈수록 취업의 문턱은 높아만 지고 있는 상황이다.무대 예술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관객의 평가라면, 면접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면접관의 평가이다. 관객이 무대를 외면한다면 그 공연은 실패했다고 평가되듯이, 면접관이 응시자를 외면한다면 그 면접은 실패한 면접이 된다. 따라서 무대 위의 배우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의 감정과 공연의 주제를 전달하는지 파악한다면 그것을 면접에 응용해 면접관에게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대예술과 취업전략대화는 언어적인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문가일수록 비언어적 표현 다시 말해, '한 사람이 상대로부터 받는 이미지는 시각 55%, 청각 38%, 언어 7%' 라는 이론인 ‘메라비언의 법칙(The Law of Mehrabian)’을 강조한다. 해석하면 언어적 표현으로 인해 말이 7% 전달되고 비언어적 요소들에 의해 나머지 대화의 내용 93%가 전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말을 할 때에는 단순히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비언어적 표현들도 신경 써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이미지(image)란 말의 본원적으로 안의 생각이 밖으로 드러난다는 '마음의 모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좋은 이미지는 무엇일까? 좋은 이미지는 성공의 뒤가 아닌 성공보다 앞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시작될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위해서 혹은 나의 좋은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무대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공연 전에 리허설을 반드시 하듯이, 우리도 면접을 보기 전에 반드시 리허설과 같은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러한 준비는 실전 면접에서 자신감을 갖게 해 줄 것이며, 혹시나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게 되더라도 연습한대로 차분하게 말 할 수 있게 한다.무대에서 연기자들은 일상에서 구사하는 말의 속도보다 느리고 또박또박하게 그리고 침묵을 주어가면서 말을 전달한다. 그러면 관객들은 공연초반의 어수선함과 낯선 상황 속에서도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된다. 대략 삼분이 흐른 뒤 이제 관객의 귀가 열렸다고 판단되면 연기자들은 말의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관객들의 귀가 열리게 되면 큰 거부감 없이 속도감 있는 말을 수용하기 시작하고, 연기자들은 서서히 말의 속도를 빠르게 한다. 이미 무대언어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귀는 빨라지는 말의 속도를 놓치지 않으려고 귀 기울이게 되고 관객의 몸은 자기도 모르게 앞으로 기울고 전개되는 무대상황에 집중하게 된다.면접을 보는 상황에서도 같은 원리로 말을 한다면 면접관들의 집중력을 좀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을 받고 자신감이 있다고, 혹은 생각이 잘 난다고 급한 데로 마구 말하게 되면 면접관들은 당황하거나 집중하지 못 할 것이다. 차분하게 시작하여 점차 속도를 높이다가 확실하게 강조하며 마무리 한다면 면접관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은 평소 자신이 갖고 있는 안정된 심리, 정서, 인지, 신체 상태와는 다른 상태를 경험한다. 이때 유발되는 긴장감은 배역에 대한 집중력을 높이는 장점도 있지만 과도할 경우 심리적 압박감, 리듬의 흐트러짐, 몰입 방해 등의 형태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 클릭, 즐겨찾기?북한문화예술-위 글은 북한의 정치에 대해 알아보고 그들의 정치적 성향이 문화·예술에 비친 모습에 대해 서술한 보고서이다.▶북한의 정치체제북한의 정치체제는 공산주의와 민주집중제, 일당제, 인민민주주의에 의해 수립되었으나 주체사상이 도입되고 반대파가 숙청하면서 김일성이 독재하는 전체 정치로 변모하였다. 하지만 전근대적 전제군주제와 다를 바 없다.주체사상은 북한의 체제를 유지 시켜주는 통치·정치사상이다. 김정은은 독재 권력을 정당화하고 3대 세습 체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종교라고 보는 이도 있다. 주체사상은 기독교 사상과 체계 및 논리가 매우 비슷하고 김일성 일가를 절대자로 한정하기 때문이다.▶북한의 문화예술북한의 문화·예술은 목적주의문예관을 기본으로 하며 “근로대중을 정치사상적으로 교화하는 수단”, “온 사회를 혁명화, 노동계급화 하는 데 복무하는 수단”으로 규정되어있다. 즉, 예술성보다는 사회주의 건설과 노동동기 부여, 지배자에 대한 정당성과 충성심 확보 등 당국이 의도하는 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예술이 사용되고 있다.우선 그들의 문화·예술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선 문예 이론과 문예 정책에 대해 알아야 한다. 북한의 경우에는 정치·사회적 구조 때문에 문예 이론과 문예 정책은 동일하게 전개되었다. 이 동일성은 이론의 창안자와 제안자가 동일하다는 특수성에 비롯하여 나온 것인데, 그 이유는 김일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헌법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당시에 북한의 문학-예술에 사회주의적 사실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것의 발전을 위하여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문예 이론을 만들었다.북한은 초기 KAPF 계열의 문학을 계승했기 때문에 사실주의 창작 방법을 중요시하였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사람들을 공산주의적 혁명정신으로 무장시켰다. 먼저 창작의 형식면에서는 존재할 수 있거나 실재로 존재하는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내용면에서 사회주의적 경향성, 즉당성, 계급성, 이민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혁명적이고 계급적인 내용을 인민들의 구미와 정서에 맞게 표현한 것이다.▶북한의 문예정책북한의 문예정책에는 주체문예이론, 종자론, 군중예술론 등이 있다. ‘주체문예이론’은 김일성 주체사상에 바탕을 둔 이론으로 모든 문학·예술의 기본 원리를 김일성 유일사상으로 종속시키고자 한다. 즉,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기 나라 인민과 혁명을 위하여 복무하는 인민적이며 혁명적인 방향과 방도로 주체사상의 요구를 구현하고 있다. 주체문예이론에 의하면 모든 문학·예술은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 내용을 내포하고 있어야한다. 민족적 형식이란 김일성이 항일 유격대 시절에 창작했거나 지도했던 형식을 의미하고 사회주의 내용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로하는 ‘새 것을 창조하는 투쟁’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북한의 모든 작품은 ‘당성·계급성·인민성’ 이 세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김일성의 혁명사상을 토대로 주체사상의 관철을 위해 투쟁해야 하고, 노동계급의 이해를 철저하게 반영해야 하며 인민대중의 사상 감정에 맞아야한다.예술창작에 임하는 실천 강령은 ‘종자론’에서 이루어진다. 종자론은 김일성의 주체적 문예사상을 창작, 실천하면서 독창적으로 당에 의해 밝혀진 문예이론에서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다. 여기서는 종자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종자는 유기적인 연관 속에서 소재와 주제, 사상을 하나로 통일시키는 작품의 기초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종자는 작품의 가치를 규정하는 근본문제이며 창작가는 자기의 사상, 미학적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종자를 똑바로 잡아야한다.군중예술론은 창작의 주체가 개인보다 군중(단체)임을 강조하며 대중의 참여를 고무한다. 김일성은 “글 쓰는 것을 신비화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문학과 예술은 신비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튼튼히 무장하고 광범위한 대중 속에서 인민을 돕는다면 모든 군중은 전문가 수준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2003년도 핵문제가 국제 사회의 이슈로 재등장하면서 주요 행사에서 군중예술 활동을 벌일 것을 강조하는 등 중요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문화·예술분야 활동실태인민들에게 혁명적 낙관주의와 집단주의적 영웅주의와 함께 문학을 통해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유일사상으로 무장시키며 온 사회의 혁명화, 노동계급화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1970년대 후반에는 생산성 향상 문제가 대두함에 따라 지난 날 선악으로만 구분되던 인물 평가에서 벗어나 모범적, 긍적적인 인물로서의 노동 영웅을 이상화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외부의 변화상이 반영되어 사상과 주제는 김씨 일가와 당에 대한 충성으로 동일하나 줄거리를 남녀 애정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 (1987 남대현 작) 가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북한은 문학 작품을 통해 가계 우상화, 당 정책 선전, 체제 찬양으로 이용하며 정치 사상적으로 큰 효과를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