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는 없다, 매는 매일 뿐이다.-영화 ‘4등’ -“난 준호가 맞는 것보다 4등 하는게 더 무서워” 이 영화를 꿰뚫는 정애(이항나 분)의 핵심적인 대사다. 그녀의 무서움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녀가 쏟아 부은 시간과 돈에 대한 기회 비용일까? 아니면 아들의 불투명한 앞날 때문일까? 아니면 두 가지 다인가? 해답을 찾기 위해 영화의 첫 부분으로 가보자. 광수(박해준 분)는 과거 소위 잘나가는 수영 선수였다. 새벽 훈련을 앞둔 어느 밤 포장마차에서 영훈(최무성 분)을 만나 술을 거나하게 마신 뒤에도 훈련을 진행하고 기록을 세우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는 축복받은 재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소집을 앞에 두고 고향에서 도박을 하고 훈련을 무단 이탈하는 등 모범적인 스포츠 선수라고 하기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영 대표팀에겐 광수가 필요했다. 감독과 코치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평소에 광수에게 ‘폭력’을 쓰지 않았다. 허나 아주 중요한 국가대표 아시안게임 소집을 위한 상황에선 아니었다. 뒤늦게 수영장에 온 광수에게 격노한 감독은 무자비한 체벌을 가한다. 남들보다 월등한 재능을 가졌고 기록도 뛰어나서 맞아 본 적 없던 광수에겐 충격적이었던 순간이었다. 결국 광수는 맞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감독에게 항의를 하고 수영장을 빠져나간다. 그 이후에 수영 선수로서의 광수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광수는 실제로 존재하는 운동선수의 몰락의 전형적인 예를 보여준다. 이른 나이에 재능을 꽃피워 또래들 보다 빠르게 결과를 얻고 승승장구하지만 꾸준한 노력, 자기관리를 하지 않은 채 세월을 보내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그저 그런 선수가 되어버린다. 본인 스스로는 절대 맞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광수는 자기보다 월등히 낮은 기록을 내는 동료들이 겪는 체벌을 자신도 겪는 상황에서 분노했을 것이다. 뛰쳐나갔지만 그 이후의 선수 생활을 시원치 않았고 광수는 본인이 선수로서 더 잘나가지 못하고 가라앉은 이유를 당시의 체벌로 보았다. 광수가 준호(유재상 분)를 실컷 때린 뒤에 탈의실에서 마사지를 해주며 했던 얘기가 있다. “내는 옛날 생각 하면 감독 선생들한테 제일 아쉬운 게 뭔지 아나? 시합 끝나고 선배들은 빠따 맞고 대가리 박고 있는데 내는 사무실에서 떡볶이, 순대 이런 거 시켜 묵고 있었다. 기록 나오고 메달 땄으니까 내는 안 건드렸지. 아 그때 좀, 좀 내가 기록을 내도 좀 때리고, 어? 강하게 키았으면 내가 더 마이 성공했을 기야.” 이 대사를 보면 자신의 몰락의 이유를 감독, 선생들의 미체벌로 둔다. 체벌을 강행하지 않으면 운동 선수로서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을 본인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내가 그 때 맞는 걸 못 참아서 최고의 수영 선수가 되지 못했으니 준호는 그걸 견디면 나보다 더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으로 매를 든 걸 수도 있다.광수를 비롯한 그 세대의 대부분의 체육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폭력 이외에 방법을 모른 다는 것이다. 애초에 폭력 자체가 다른 대체 방법을 찾을 수 없는 행위다. 누군가가 어느 집단을 다스릴 때 폭력과 공포만큼 효과가 빠른 것이 없다. 그래서 예체능계나 군대, 병원 같은 곳에서 ‘군기’라는 마법 같은 단어로 부조리한 행태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겉으로 봤을 때 이러한 처사는 하나로 똘똘 뭉친 단단한 집단처럼 보인다. 하지만 폭력이 세습되는 집단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위에서 말했듯이 폭력 외에는 다른 방법을 배울 수가 없고 결국 심한 피해를 받는 피해자가 나오게 된다. 그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피해를 호소하게 되면 ‘다른 애들은 다 버텼는데 고작 그거 하나 못 버텨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 갈래?’와 같은 2차 피해를 입고 집단은 더욱 더 폐쇄적이게 된다.체육계에서 이러한 관행이 지속된 바탕에는 이른바 엘리트 체육의 산실인 ‘체육특기자제도’이다. 이 제도는 ‘체육에 특별한 소질을 지닌 학생을 발굴, 육성하기 위하여 상급학교 입학 시 특례를 인정하는 제도로서, 우수한 자질이 있는 선수에게 초, 중, 고, 대학에 이르는 우수선수의 연계적 양성체제를 확립하여 지속적 경기력 향상을 통해 각종 국제경기 대회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나아가 유능한 체육지도자를 양성하고자 제정되었다.’고 한다 1972년 신설되어 학교현장에 도입된 체육특기자 제도는 쉽게 말해서 운동만 잘하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도 대학 진학, 졸업이 해결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스포츠가 상대적으로 지원이 부실하고, 인구수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수려한 성과를 얻은 토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체육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운동 외에는 길을 주지 않는다. 어렸을 때 학교 같은 반에 있었던 축구부, 태권도부 친구들은 거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기본적인 학사 일정에 구애받 지 않은 채로 운동을 하거나 교실에서 자거나 했다. 그래도 상위 학교로 진급하거나 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물론 그 친구들이 얼마나 폭력적인 상황에서 운동을 했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러한 행적이 지속되었다는 건 분명했다.운동 선수를 꿈꾸는 모든 사람이 최고의 선수가 되거나 메달을 따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메달을 따지 못하고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가 아니면 가치 없는 선수가 되진 않는다. 가중 중요한 건 이 점인데 체육특기자제도로 키워진 우리나라의 엘리트 체육계는 그 진리를 외면한 채로 괴물처럼 커졌다. 성과를 위한 길을 가며 키워진 학생들은 운동 이외에 답을 찾지 못한다. 폭력으로 물든 교육에서 빠져나가려 해도 빠져나갈 수 없다. 일찍부터 학업을 먼 섬처럼 대하며 자란 아이들은 운동이 아니면 어른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 그걸 아는 감독, 코치들은 자신들이 겪으면서 자라온 폭력적인 교육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아무리 자신들이 멋대로 손찌검 해가며 괴롭혀도 체육계 바닥은 좁기 때문에 본인의 연줄이 닿아 있는 어디든 인맥을 관리할 수 있다. 아이들은 선수로서의 생명을 이어 가기 위해 수모를 참아야 한다. 운동이 아니면 대학을 갈 수가 없고 직업을 구할 수 없이 때문이다. 그들은 자의가 됐든 타의가 됐든 운동 생활을 이어가며 적은 확률로 성공해서 메달을 따는 선수가 되거나 그저 그런 선수가 되어 영화에 나오는 광수처럼 될 뿐이다.준호의 대사가 이를 관통한다. 4등을 혐오하고 1등을 강요하는 엄마에게 준호는 묻는다. “엄마는 정말… 내가 맞아서라도 1등만 하면 좋겠어? 내가 1등만 하면 상관없어?”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아무렇지 않냐는 준호의 질문은 정애의 말을 멈추게 했다. 준호는 수영에 소질이 있고 매우 좋아한다. 영화 후반부에 광수를 찾아가 수영이 하고 싶다고 말하는 준호는 “1등을 하고 싶어요.. 1등을 해야만 수영을 계속 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앞서 말했던 정애의 무서움은 성과가 없는 과정에 대한 불신, 그로 인한 아들의 미래의 불안정성이 아닐까? 이를 잠재우기 위한 준호의 말은 한국 체육계의 고요한 호수에 큰 돌을 던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른 ‘결과’가 아닌 바른 ‘길’이다. 엘리트 체육이 아닌 생활 체육이 되어 선수를 꿈꾸는 사람이든 아니든 진정으로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길’ 말이다. 영화 ‘4등’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원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만큼 교육과 폭력에는 인권이 떨어질 수 없는 현실이 지속되어 왔다. 조재범을 폭로했던 심석희 선수와 준호처럼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사람이 나올수록 우리는 영화 속 아주 자유롭게 레인에 구속 받지 않고 헤엄을 치던 준호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아이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석정의 시 세계 연구- 공간을 중심으로 -32120025 백윤선목차1. 서론1-1. 연구 목적1-2. 연구사 검토2. 본론2-1. 『촛불』의 공간2-2. 『슬픈 목가』의 공간3. 결론참고문헌1. 서론1-1. 연구 목적신석정은 대표적인 목가적 시인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근현대문학의 흐름을 파악하는 부분에서 시 문학은 시인들을 여러 가지 형태로 분류한다. 상징주의, 낭만주의, 자연주의, 리얼리즘, 모더니즘, 초현실주의, 순수시, 청록파, 생명파, 저항시, 리얼리즘시, 목가시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러한 분류들로 시인들과 시를 공부하다 보면 이들의 작품 모두가 각 개념에 걸맞은 시만 선보였을 것이라 오해하기 쉽다. 20세기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급변하는 사회와 일제강점기가 맞물려 창작자는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작품 세계가 고르게 일정한 작가가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아니한 작가가 있을 것이다. 흔히들 신석정에 대해 목가적인 측면만 강조된 시인이라는 오해가 존재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급변하는 시대가 존재했기 때문에 신석정의 시 세계는 분명한 변모를 이루었다. 그 세계는 유토피아와 자연을 지향하는 낭만주의적 상상력을 토대로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서정시를 개척했을뿐더러 해방 이후 무렵에서는 현실 참여적 특징이 뚜렷한 시편들을 계속해서 창조했으며 순수와 참여라는 이분법적 개념을 분리하기보다는 동시에 공존하는 문학 세계를 펼쳤다. 그렇기에 자연에 대한 예찬과 현실 사회에 참여를 시에서 드러내는데 효과적인 방법을 갈구했을 것이다. 목가라는 말을 떠올려보면 먼저 자연이 생각나는데 이를 문학작품의 한 부분으로서 그려내려면 필수적으로 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현실 참여적 성격을 보이는 시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공간이 시 내적으로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 신석정의 시 세계가 다른 형태를 보임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신석정의 시집 『촛불』(1939)과 『슬픈 목가』(1947)에 수록된 시들을 통해 이를 살펴볼 것이다의 후기 시가 4ㆍ19 혁명으로 인해 역사적인 절망을 겪은 흔적이 적나라하게 등장하면서 과거와 미래를 제외한 현실을 직시하는 시간을 가지거나 미래와 과거를 통일시키면서 근본적인 자연의 시간으로 일체화시켜서 작가가 겪은 고난의 세계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임을 주장했다.이렇듯 신석정의 연구사를 검토했을 때 그의 시집이 만들어진 시대에 따라 시기를 구분한 뒤 그 작품들이 내포한 의미들과 상징에 관한 연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본고는 신석정의 시에서 나타난 여러 공간이 각 시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신석정의 시 세계 진행에 어떠한 연관을 띄고 있는지 조명할 것이다.2. 본론2-1. 『촛불』의 공간시에서 공간은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본격적인 신석정의 시 속 공간을 살펴보기 전에 이 공간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시에 있어서의 공간은 시적 자아가 확장되고 구체화되는 공간이자 시적 자아의 내부와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다. 그리고 시의 공간은 문학과 현실의 상호관련 속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대상과 사물을 통해서 드러난다. 인간은 실제적ㆍ사실적 현실 공간을 존재의 공간조건으로 수용하면서도 현실 외의 또 다른 세계를 빌어 안주의 공간으로 확보하고자 한다. 공간에 대한 시인의 상상력은 현실세계와 작품상의 공간을 연계하여 경험공간에 대한 시인의 자각을 반영한다. 따라서 공간에 대한 이해는 작가의 내면을 이해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다. 허구적이고 추상적인 영역으로부터 작가와 독자의 상상력이 만나는 자리이기도 하다.”위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공간은 작가의 의지를 시 내부 자아에 투영해 창조해 낸 상상력의 장소이다. 신석정의 내면을 파악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 『촛불』속 작품들부터 알아보자.①어머니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깊은 산림대를 끼고 돌면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좁은 들길에 야장미 열매 붉어멀리 노루 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서요나와 가치 그 로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나의 꿈을 엿보시겠읍니까」 전문③하늘이 저렇게 옥같이 푸른 날엔멀리 힌 비둘기 그림자 찾고 싶다느린 구름 무엇을 노려보듯 가지 않고먼 강물은 소리 없이 혼자 가네뽑아 올린 듯 밋밋한 산봉오리 곡선이 또렷하고명랑한 날이라 낮달이 더욱 히고나석양에 빛나는 가마귀 날개같이 검은 바위에이런 날에 먼 강을 바라보고 앉은 대로 화석이 되고 싶어...-「화석이 되고 싶어」 전문④어머니만일 나에게 날개가 돋혓다면산새 새끼 포르르포르르 멀리 날아가듯찬란히 피는 밤하늘의 별밭을 찾아가서나는 원정이 되오리다 별밭을 지키는…그리하여 적적한 밤하늘에 유성이 뵈이거든동산에 피는 별을 고기 따 던지는 나의 작란인 줄 아시오그런데 어머니어찌하여 나에게는 날개가 없을까요?어머니만일 나에게 날개가 돋혓다면석양에 임금같이 붉은 하늘을 날러서똥그란 지구를 멀리 바라보며옥토끼 기르는 목동이 되오리다 달나라에 가서그리하여 푸른 달밤 피리 소리 들려오거든석양에 토끼 몰고 돌아가며 달나라에서 부는 나의 옥통소인 줄 아시오그런데 어머니어찌하여 나에게는 날개가 없을까요?-「날개가 돋혓다면」 전문⑤진주 같은 별들이 밤하늘을 성장하든 것은벌서 어제밤 이야기가 아닙니까?글세 그 별들이 또 어느밤 하늘을 성장하기 위하여작은 새 새끼들처럼 포르르포르르 날어가 버리었을까요?(중략)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당신의 비둘기들이지금은 고 작은 보금자리 속에서 노래하고 있지만저 숲 넘어 푸른 하늘을 오고 가는 것으로 오늘의 일과를 삼을 것입니다여보얼마나 훌륭한 새벽이요우리는 몇 억만 년을 두고 우리의 생활에서 너무나 오래오래 잊어버리었다 하는그 푸른 하늘을 찾으러 가지 않으렵니까?-「훌륭한 새벽이여 오늘은 그 푸른 하늘을 찾으러 갑시다」 부분⑥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서요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이윽고 하늘이 임금처럼 붉어질 때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부분위 다섯 개의 시를 보면 모두 성장하기 위한 장소로 설정하면서 자연적 에너지들이 증강하는 매체로 등장시켰다. ‘비둘기’들이 노래하는 장소로 나오는 ‘보금자리’는 화자가 직면한 어려운 현실, 절망적인 상황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몇 억만 년’ 또한 상동한 의미로서 화자와 ‘여보’로 상징되는 동반자가 겪어온 현실과 상황을 뜻한다. ‘비둘기’들이 ‘푸른 하늘’을 가르며 날아다니는 상황과 화자와 ‘여보’가 ‘푸른 하늘’을 찾으러 가는 상황 역시 작금의 현실을 극복하고 맞이할 이상향으로 ‘하늘’을 선택해 그곳으로 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서 ‘하늘’은 자연 이미지로서 생명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실의 개선을 위한 목적지로 사용되었다.마지막으로 ⑥은 ‘하늘’을 ‘작은 새 새끼’들이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공간, ‘작은 별’이 나올 수 있는 공간으로 나타난다. 두 대상이 자율적으로 그 의미를 다 할 수 있는 근원적 자연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또한 신석정은 ‘어머니’를 다시 등장시켜 자신의 소망인 밝음이 곧 조명될 것이라는 생각을 질문을 통해 우회적으로 바라고 있다.“『촛불』에서 자연의 품에 깊숙이 묻혀 낭만을 엮던 시절을 생각하면 옛날 다녀온 먼 여로에서 눈여겨 보았던 산줄기만 같아서 몹시 그립고, 그러나 다시금 나는 『촛불』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것은 내가, 그리고 여러 사람이 살고 싶어하는 의욕과는 너무나 먼 세계이기 때문이다.”위 인용문은 신석정이 『촛불』을 집필하던 시기를 돌아보며 쓴 글이다. 자연 속에서 그들과 뒤섞여 물아일체를 꿈꿨지만 지독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화자의 마음과 궤를 같이하며 『슬픈 목가』를 쓰게 된다.2-2. 『슬픈 목가』의 공간신석정의 『슬픈 목가』는 1947년도인 해방 후 출간이 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아래 엄격하고 지독했던 검열 때문에 창작했던 시기보다 늦게 발간되었다. 이러한 사유 때문에 전작인 『촛불』보다 더욱더 현실 참여적 성격이 강한 작품을 집필했다. 그는 전작에서 느꼈던 현실의 괴로움을 『슬픈 목가』에서 적 생명의 근원지인 자연의 대상을 ‘하늘’로 삼지 않았다. 인간의 자세보다는 자연과 더 어울리는 생명체의 형태인 ‘짐승’으로서 관조를 강조하고 있다. ①과 ⑥에 등장한 ‘어머니’와는 다르게 이 시의 ‘난’에는 기대거나 애착하는 감정이 보이진 않는다. 그저 자연을 함께 감상하고 빠져들 대상으로 ‘난’이라는 대상을 설정한 것이다. 이 대상과 함께 자연을 조명할 장소로 다양한 나무를 선택했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등을 등장시키며 선망의 자연과 본인들을 연결하는 통로를 만든 것이다. 이러한 연결을 거쳐 도달하는 최종적 자연은 ‘바다’이다.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른 존재로 언급되며 ‘짐승’으로서 관조할 최고 층위의 자연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을 통해 신석정이 원하는 자연 친화적 세계를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⑧에서는 ⑦에서 ‘하늘’과 다른 2-1.에 등장한 ‘하늘’과 상동한 모습을 보인다. ⑦에서의 ‘짐승’이나 ‘하늘’ 같은 시어들이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그 뜻이 같지 않은데 ⑧의 ‘짐승’은 ⑦의 ‘짐승’이 근원적 자연을 관조하는 기본 생명체로서의 의미를 지닌 것에 비해 비루한 현실을 하루하루 버티는 모습의 남루한 존재로서 쓰였다. 그 남루한 ‘짐승’은 ‘슬픈 전설’을 지닌 채 살아왔고 그건 다름 아닌 화자의 모습이었다. 화자는 자신의 형태를 좌절하며 ‘어머니’라는 대상에게 당부, 걱정하는 어투를 보인다. 그가 말했던 ‘슬픈 전설’은 일제강점기 아래 핍박한 시대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푸르른 하늘’과 ‘빛나는 해볕’은 화자가 맞이하고 싶을 극복, 올바른 현실 등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늘’과 ‘해볕’은 시적 자아가 내면 욕구를 통해 도달하고 싶은 자연임과 동시에 현실의 개선 꿈꾸는 의지의 도착점이며 ‘무성한 나무’, ‘정정한 나무’는 그 공간으로 향하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를 의미한다.⑨에서의 ‘하늘’ 또한 마찬가지이다. ⑧에서 ‘슬픈 전설’과 같은 내용으로 ‘강물’
조선시가론 학기말 과제시조란 이름은 참으로 낯설면서 익숙한 느낌이 든다. 흔히들 과거에 불렀을 법한 시와 비슷한 것들을 거의 다 시조라고 부르곤 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시조와 확실히 구별되는 여러 문학 갈래들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이 시조라는 것이 문학 갈래로서 타 갈래에 종속되지 않을 정도의 문학이라는 게 된다. 하지만 시조라는 명칭에는 많은 의문점이 따른다. 이러한 의문점을 단시조와 장시조의 연관 관계를 통해 알아보고 명칭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자 한다.단시조는 3장 6구 45자 안팎의 비슷한 음수로써 완성되는 4음보격의 절제된 형태를 가진 것이고 장시조는 이러한 정형적인 율격에서 얽매이지 않고 형식적으로 표현되면서 길어진 시조이다. 중시조는 단시조의 기본적 형태에서 어느 한 구의 자수가 기준을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장시조는 중시조보다 한 구 더 많이 10자 이상으로 벗어나서 길어진 것을 의미한다.장시조에 대해 정의하자면 단시조와 가사의 중간에 위치한 형태 시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거리를 따진다면 3장의 구분, 첫머리가 3자로 시작하는 점을 들어 단시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단시조와 장시조를 음악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단시조는 초 중 종장의 구법과 자수가 어느 만큼 제한이 있고 어조도 바르게 쓴 것이요. 엇시조는 평시조와 거의 다 같고 그 중 어느 한 구의 자수가 평시조의 그것과 좀 다르고 또 어조도 다른 것이요. 사설시조는 초 중 종장의 구법이나 자수가 평시조와 같은 제한이 없고 어조도 순 사설체로 쓴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구분은 앞서 문학적으로 나눈 방식과 각각 대응되며 평시조는 단시조, 엇시조는 중시조, 사설시조는 장시조에 해당된다. 하지만 평시조와 단시조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함과 다르게 사설시조와 장시조는 사설시조가 장시조의 음악적인 부분을 설명할 수 있음과 달리 문학적인 측면을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장시조를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앞서 말했듯이 장시조가 단시조형과 가사형에서 단시조에 무게를 더 두고 있어 가사형의 작품들이 점점 사라지게 되었고 장시조는 단시조와 파생관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개를 총칭하는 시조는 음악이라는 측면을 배제할 수 없는 존재다. 시조의 창작도 노래의 과정에서 된 것이 많았다. 이런 측면은 작가가 불분명한 작품이 많다는 점을 남겼다.단시조의 출발부터 살펴보면 당시 지배 계층이었던 사대부가 직접 만들고, 의식을 부여하고 교훈적, 사상적인 자신들의 사상을 담고 있었다. 16세기 후반이 되면 기녀와 사대부가 향유층이 된다. 이때 유흥의 공간에서 즐기는 것으로 확장됐다. 이것이 17세기 초까지 이어져 효용의 폭이 넓어진다. 17세기 후반엔 가객, 기녀, 사대부 이 세 계층이 즐기게 되고 이후엔 16세기에 있었던 엄청난 혼란들인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회복하기 위해 사회 전체가 보수적이게 되고 비약적인 경제적 발전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18세기가 되자 평민 이하의 계층, 즉 민중이 향유하게 됐다. 이렇게 향유계층이 확대되면서 시조라는 양식은 엄청난 발전가 변화를 겪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성황에 비해 시조는 내재적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향유계층이 늘어나면서 원래 향유했던 양반 사대부들은 향유자로만 위치를 가지고 창조자의 역할을 줄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장르의 창조성이 떨어졌다. 가객, 기녀들이 창조자로서 역할을 하다보니 단순한 흥미나 재미 위주의 시조를 짓게 된다. 그러다가 대중들의 흥미에 더 알맞은 민요, 창가, 가창 등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시조는 양반, 민중 둘 다에게 외면받게 된다.분명히 이러한 시조의 양식의 전성기는 16, 17세기로 질적인 수준이 훌륭했다. 하지만 단시조와 파생관계라고 할 수 있는 장시조가 나타나고 성행하기 시작하면서 향유계층의 확대와 맞물리게 됐다. 장시조의 전성기도 이때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는 숙종, 영조기의 사회적 배경이 가악의 발달상과 평민의식이 팽창되고, 서리계급의 지위가 향상된 시대였기 때문에 엄청난 작품 수와 함께 전성기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시조도 창작, 즉 문학의 영역보다는 가창같은 음악의 부분이 남게 되고 서서히 쇠퇴하게 된다.이러한 시조는 다른 갈래들과의 특별히 구분되는 갈래로서의 특색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그 지속력이 강하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는 시조의 정체성의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아직 확인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아 연구가 필요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감과 조선에서의 왕조교체에 따른 역사적 사실들의 반복에 의해 시조는 장르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문학과 음악의 종합예술로서의 조화가 존재했던 시조는 향유계층의 변화와 계급주의를 탈피하는 시대 상황과 맞물려 파생되고, 분리되며 힘을 잃어갔다. 그리하여 시조의 쇠퇴는 곧 문학과 같은 예술이 계층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음을 시사하였고 예술의 영역을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위와 같은 논지들을 살펴봄과 동시에 시조의 명칭에 대해 말하려면 시조의 발생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시조의 첫 기록은 170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등장했기 때문에 시조의 발생설에는 여러 가지 가설이 따른다. 여기서는 시조의 발생을 고려 중엽으로 보고자 한다. 이는 다른 시기를 주장하는 학자들에 비해 고려 중엽 발생설을 이야기하는 학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으며(이병기, 조윤제, 이태극, 진동혁, 박성의, 서원섭) 어떤 시기로 발생했느냐를 따졌을 때 언급되는 모든 시기가 확실한 학문적 근거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시조는 문학과 음악적인 부분을 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시조에 관한 많은 연구를 한 학자들이 시조의 본질에 대하여 학문적 엄정성을 넘어서는 통찰적 안목을 보여주는데 이는 ‘시조가 노래’라는 인식이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부분은 시조가 고려의 가곡창을 이어서 만들어진 ‘노래’라고 볼 수 있는 점이다.
국문학사 기말과제문학이란 무엇일까. 간단한 질문같지만 쉽게 대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은 곧 ‘책’이라는 이미지로 설명되고 얼핏‘소설’종류의 동의어 정도로 파악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문학이라는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하다보면 국문학이라는 것도 어떤 것인가 알 수 있게될 것이다.문학이란 사실 그 자체의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기반한 작가의 상상, 감정을 토대로 독자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지식의 전달보다는 미적 감흥이라는 쾌락을 주는 것이 목적이며 그 쾌락을 통해 독자에게 호소하는 것이라 일반적으로 정의내린다. 여기서 나타난 정의를 기본으로 하되 몇 가지를 추가하고 싶다. 먼저 문학의 소재에 대해 사실 그대로를 기반으로 한 작가의 상상, 감정에 더불어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작가 머릿속의 세계를 포함시키려 한다. 문학이란 세계와 나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겪어 보지 못한 세계, 존재에 대한 상상이 문학의 범위를 확대하고 그것을 접한 독자들의 생각과 세계 또한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의미, 의식, 교훈을 포함해 단순한 ‘재미’의 요소가 문학이라는 것에 많은 비중으로 담겨있었으면 한다. 결국엔 예술이란 인간 삶의 풍요로움을 위한 것이고 문학 또한 예술의 한 종류이므로 흥미라는 부분이 다른 부분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문학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이러한 문학을 국문학으로서 범위를 좁혀보자면 한반도 위에서 행해진 모든 문학의 통칭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서 단순히 한반도 뿐만 아니라 한민족, 즉 우리나라 사람이 작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담고 있는 문학의 내용 또한 우리가 쓰는 언어로 되어 있어 주제의식의 전달이 명확한 기능을 가진 문학이 국문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우리의 국문학의 역사를 갈래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려면 먼저 갈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유갈래는 상위 갈래로 유개념적이고 보편적이다. 존재하는 모든 문학 작품을 총괄하며 본질적인 특징과 기본적 원리에 따라 누나며 시공간에 제한받지 않으며 다양한 하위 갈래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종갈래는 작은 갈래로서 지역이나 시대같은 환경에 변별을 보이는 갈래로 종류가 다양하다. 탄생과 소멸의 과정이 존재하며 유갈래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형태이기에 문학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문학은 사회의 변화와 함께 지속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시기 인류가 가지고 있는 의식, 문제를 담고 있어야 문학은 가치가 있고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무언가의 해체와 강화, 보수와 혁신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들이 현재의 문학에 동시에 나타난다. 이러한 문학의 흐름을 시대상의 흐름과 함께 연속성을 설명할 수 있게 살펴 보아야 한다.일반적으로 한국문학의 시대구분 방법은 역대 왕조의 변천사에 따르는 것이 보통이므로, 고구려·백제·신라의 3국이 성립하기까지의 문학을 ‘상고시대의 문학’, 그 3국이 정립하던 시대의 문학을 ‘삼국시대의 문학’, 신라가 3국 통일을 이룩하고 그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문학을 ‘통일신라시대의 문학’, 고려가 창건되고 그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문학을 ‘고려시대의 문학’, 그리고 조선이 건국된 후 임진왜란기까지의 문학을 ‘조선 전기 문학’, 그 이후 갑오개혁에 이르기까지의 문학을 ‘조선 후기 문학’이라 일컫는다.먼저 상고시대를 살펴보자. 이때는 구비문학이 전 사회를 지탱하던 시기였다. 고대가요라는 서정문학과 설화, 전설이라는 서사문학이 구전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삼국시대의 문학에는 구비문학이 문학의 대부분을 차지하되, 한문의 전래에 의해 일부 구비문학이 문자로 기록되고 한문문학이 부분적으로 출연한 시기이다. 이때 고구려에서는 최초의 한시가 등장했으며 백제에는 지리적 환경에 힘입어 서정문학이 발달했고 신라 또한 향가의 등장으로 서정문학이 굳건히 자리잡은 시기가 되었다. 서사문학 또한 『삼국유사』의 등장으로 여러 전설, 설화등이 기록문학으로 보여졌다.통일신라시대의 문학 시기는 구비문학, 한문문학, 국문문학 이 세가지 문학이 잠깐 공존하였던 시기이기도 하다. 즉, 구비문학과 병행하여 국문문학 범주에 들어가는 향가와 같은 차자표기 문학이 이두의 등장과 함께 형성?발달하고, 제한된 사회 계층에서 한문문학이 성장한 것이다. 이러한 서정문학이 불교문학과 어울려 꽃을 피운 것처럼 서사문학또한 불교적 내용을 다룬 설화문학들이 많은 작품 수가 존재했다.문자가 없던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기에 이르기까지, 아직까지는 구비문학이 전사회적으로 지탱되던 시기였고, 점차 문학이 3가지 층위로 나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이 뒤의 시기로 갈수록 신분질서에 따른 문화의 이원화에 의해 구비문학의 계층적 하강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구비문학의 형태가 점차 작가가 있는 서사, 서정문학의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고려시대의 문학은 문인, 지식층의 한문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사회 상층부의 한문문학이 발달하고 구비문학은 평민 이하 층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앞서 말한바와 같이 계층에 따른 문학의 이원화가 나타나는 시기이다. 전체적으로 고려시대는 과거제도의 실시로 인재 등용이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으로 인해 한문학이 융성해지게 되는 시기이다. 고려 후기에 오면서 담당층은 신흥사대부로 바뀐다. 신흥사대부들은 주로 한시를 즐겨 썼으며, 경기체가와 시조에서도 활발한 문학 활동을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서정문학들은 한시, 경기체가, 고려속요가 등장하였다. 한시에서는 이규보, 이색, 정몽주, 길재가 주로 활동했고, 경기체가에서는 안축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이 당시 하층민 문학으로 고려속요가 있었는데, 고려속요는 궁중에서 속악으로 연주되던 것들만 채록되었다. 이 시기에 단가형의 시조, 장가형의 가사 문학이 대두하면서 서정문학이 시가문학으로서 설명되기 시작했다. 고려의 서사문학 또한 통일신라시대와 마찬가지로 불교설화를 뿌리로 한 설호, 민담, 신화 등이 문학의 향유계층 변화와 함께 그 궤를 같이 하며 가전체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조선 전기 시대의 문학은 문학이 왕을 예찬하고 조선 왕국의 정당성을 알리는데 적극 활용되었다. 이러한 예찬이 한글의 창제와 함께 악장이라는 종갈래의 형태로 나타나면서 서정문학 또한 문자가 정착되지 못한 시가문학에서 서정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시가문학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고려의 가곡창이 이어져 만들어진 시조 또한 악장을 뒤이어 가사와 함게 조선의 서정문학을 대표의 자격을 갖추었다. 서사문학에서는 한국 최초의 소설 『금오신화』의 탄생을 바탕으로 여러 서사 문학을 이루는 작품들이 등장했다.
용인의 품 속으로경기도 용인은 2017년 9월 1일 기초 지자체로서 4번째로 인구 100만 명을 달성했다. 고양시가 22년만에 인구 100만을 돌파한 것을 1년 단축해 21년만에 인구 100만명의 업을 이루었다. 또한 도농복합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다. 도농복합이란 도시와 농촌의 복합적인 양상을 띈다는 것인데, 용인은 더욱 두드러진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배경에 있어 우리가 용인을 어떠한 하나의 정체성으로 정의하려면 무엇을 중점으로 이야기해야 할 까. 그것은 바로 관광이다. 용인은 도시와 농촌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다양한 관광지가 발달되어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관광객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관광지들이 용인을 빛내고 있는지 알아보자.먼저 용인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에버랜드, 캐리비안 베이가 있다. 에버랜드는 1976년 4월 17일 토요일, 용인군 포곡면 전대리(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에 ‘용인 자연농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하였다. 초창기엔 식물원, 동물원, 사파리로 구성되었으며, 어트랙션도 몇 개 있었다. 이후 1996년 3월, 개장 20주년을 맞아 자연농원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에버랜드를 새 이름으로 지었다. 또한 이 시기 즈음에 모터 스포츠 경기를 할 수 있는 경기장이 세워졌고 여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워터파크인 캐리비안 베이가 개장, 숙박시설, 골프장 등까지도 들어서면서 규모도 커지고 방문객수도 엄청 증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개장 30주년인 2006년 국내 최대의 리조트형 복합단지인 ‘에버랜드 리조트’로 거듭났다. 문화 시설인 ‘호암미술관’과 ‘삼성교통박물관’도 에버랜드 리조트 안에 있다. 지금도 여전히 에버랜드는 국내 최고의 테마파크로 자리매김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다음은 한국 민속촌이다. 1974년 개장하여 한국의 전통문화와 민속적인 삶을 재현하고 있는 곳으로 이를 통해 조상들의 지혜와 생활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현재 전통 기와집과 초가집을 비롯해 관가, 반가, 주막 등이 있고 이외에도 양반댁, 도기 가마터, 유기 공방, 서당, 약방, 관상소 등 조선시대 때 존속했던 건물들을 재현, 보존하고 있다. 각종 민속 음식과 민속 장터 등이 있으며 이외에 놀이동산과 민속 박물관 등이 있고 방송사 사극 드라마 촬영 장소로 자주 활용되었다.도농복합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앞서 말했듯이 도시적 관광지에 더해 자연적인 명소인 광교산과 석성산이 있다. 코로나 시국을 맞이하여 등산객들이 증가함에 따라 두 산을 찾는 관광객들, 용인 사람들이 많아졌다. 또한 자연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 휴양이 가능한 용인자연휴양림도 있다. 용인의 지리적 구조상 크고 작은 산이 많아 이를 활용한 골프장, 스키장 등의 레저 스포츠 및 휴양 관광도 발달하였다. 이렇듯 복합적이며 입체적인 용인의 관광지야 말로 용인을 상징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개선하고 보존하면 더 큰 도시로서 성장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