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민속문화 체험학습 보고서과목 : 한국 민속과 전통 문화교수 : 박경수 교수님학교 :학번 :이름 :- 목 차 -1.개요2.서론-체험학습 장소 및 소개-체험학습 일정-체험학습 대상 선정 이유 및 목적3.본론-국립 민속 박물관 견학4.결론5.참고문헌1. 개 요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산업화의 영향으로 전통문화라는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던 사회에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살던 곳은 도시였고 그 때문에 전통문화는 내 주위에서 더더욱 찾을 수 없었고, 내가 접한 전통문화라고는 간간히 명절 때만 볼 수 있었던 친척들 간의 윷놀이 정도가 전부였다. 그 외에는 책에서 읽은 것이나, 학교에서 배운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전통문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고, 따분하고 옛날 것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 민속과 전통문화’라는 강의를 알게 되었고 어느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신청하게 되었다. 이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전통문화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되었고, 전통문화가 정말 다양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이번 레포트로 인한 견학을 통해서 우리 주변에 이런 박물관과 행사 등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국립민속박물관에 직접 관람해 생생하게 느껴보니 그 느낌은 더욱 달랐다.2. 서 론-체험학습 장소 및 소개내가 체험학습 장소로 선정한 고은 경복궁 내부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전통사회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생활문화를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으며 일상생활에서부터 일생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한민족생활문화사관, 한국인의 일상, 한국인의 일생 등 3개의 상설전시간과 야외전시장을 운영하고 있고, 연 4회 이상의 기획,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또한 빠르게 변화하는 생활양식에 따라 사라져가는 일상생활의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고 전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어린이 박물관까지 준비되어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관람하고 민속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국립민속박물관 로고-체험학습 일정마침 다른 교양수업에서 조별과제로 경복궁을 답사할 일이 생겨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민속발물관을 체험학습 대상으로 선정했다. 경복궁 답사가 끝난 뒤에 국립민속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었다. 나는 한민족 생활사의 제1전시관을 시작으로 일상적인 것을 볼 수 있는 한국인의 일상의 제2전시관, 조선시대의 양반들의 출생부터 교육, 혼례, 제례 등 일생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한국인의 일생의 제3전시관을 보고 박물관 밖에서 열두띠동상, 장승동산, 물레방앗간 등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야외전시장 순으로 체험학습을 진행하였다.-체험학습 대상 선정 이유 및 목적교수님이 추천해주신 박물관에는 어느 한 가지 주제만을 집중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박물관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하나에 집중하기 보다는 한국의 전통문화의 전체적인 틀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것들을 관람할 수 있는 이 국립민속박물관을 체험학습 장소로 선정하게 되었다.3. 본 론- 한민족 생활사 ( 제 1 전시관 )제 1전시관의 입구로 들어가면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대표적인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선사시대, 백제, 고려, 조선 등 시대별로 간단하게 나열되어 있다. 안으로 걸어가면 간단한 설명 대신 좀 더 구체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를 거치면서 수렵과 채집이 아닌 농경과 목축을 하고 그에따라 계급이 생겨 최초의 고대국가 고조선이 발달한 과정을 볼 수 있다. 주로 흙, 나무, 돌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었으며 청동기의 발달로 도구가 점점 발달해가고 그에 따라 문화 또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더 안으로 걸어가면 삼국시대와 발해에 대해 볼 수 있다. 이때부터는 국가 간의 교류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청동기가 아닌 철을 사용하면서 농기구와 사냥도구가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냥도구가 아닌 국가 간의 전쟁을 위한 칼이나 창, 화살 등의 무기들이 개발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옛날 시대의 물건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정교하고 섬세했기 때문에 보면서 놀랐다.이후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종교나 체제 등이 더욱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인쇄술의 발달도 볼 수 있었다. 무구정관대다라니경, 팔만대장경,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등의 우리 민족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목판본, 금속활자본을 관람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인 훈민정음을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한번 더 느낄 수 있었다.마지막쯤에는 개항과 개화를 통한 외국상품의 유입, 과학의 발달,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근현대 전시품들이 있었다. 20세기 후반 쯔음의 방을 보면서 옛날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것을 실제로 보니 흥미로웠다.제 1 전시관에서 우리나라의 생활의 변화를 알게 되었고, 우리 민족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한국인의 일상 ( 제 2 전시관 )제 2전시관에는 절기와 계절에 따라 일상적인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절기와 세시에 대해 나오는데 우리는 주로 농업사회였기 때문에 ‘역서’를 발간하여 농사짓는 때를 놓치지 않게 하였다. 음력을 사용했고, 해의 움직임에 따라 한 해를 24절기로 나누어 계절의 변화를 알기 쉽게 하였다.마을도 농사를 짓기 위해 좋은 터에 나타났다. 이것을 배산임수라고 하는데, 배산임수는 뒤에는 산, 앞에는 물이 흐르는 것을 말한다. 마을 뒤에 있는 산은 겨울의 북서풍을 막아주고 땔감이나 산나물 등을 제공해주었고 마을 앞의 하천은 농업용수나 식수로 사용되었다.앞으로 나가면 봄의 생활에 대한 전시가 준비되어 있었다. 봄은 입춘부터 곡우에 해당하는 기간으로 농작물을 파종하는 시기이다. 봄이 되면 농사의 풍년과 평안을 기원하며 마을의 수호신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농촌에서는 논밭을 갈고 파종을 하며 농사를 시작하고, 어촌에서는 뱃고사를 지내며 어패류를 채취하기 시작했다. 농사는 육체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공동노동이 거의 필수적이었다. 그 때문에 두레, 품앗이, 향약 등의 공동노동 풍습이 생겨났고, 농사를 하면서 흥을 돋우기 위해 농악을 했다. 이 외에도 여러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런 농기구들은 실제로는 처음 보는 것이었고,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이 나와서 신기했다.다음에는 여름에 대한 전시가 있었다. 여름은 입하부터 대서에 해당하는 기간으로 농업사회답게 농사에 관한 전시가 많았다. 뜨거운 햇볕으로 농작물이 성장하는 시기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염전이나 여름의복, 장신구 등에 대한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염전에 대한 전시에서, 여름은 햇볕이 뜨겁기 때문에 1년 중 가장 맛좋은 소금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음식에 있어서 소금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여름은 매우 덥기 때문에, 여름옷은 통풍이 용이하고 땀을 잘 흡수할 수 있는 모시와 삼베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장신구로는 시원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옥이나 은 소재를 사용한다고 한다.김매기가 매우 고된 노동이라는 점이 있지만, 이 김매기가 끝나면 수확할 때까지 농사일이 쉬워서 그늘 밑에서 죽부인과 부채 등을 이용해 시원하게 낮잠을 자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또한 더위를 피하는 방법으로 부채를 이용하는데, 이 부채를 보면서 정말 그 모양과 무늬가 다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을 보면서 생활용품을 예술로 승격시킨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가을은 입추부터 상강에 해당하는 기간으로 봄 여름동안 일궜던 농작물을 수확하고 가을걷이를 하는 시기이다. 한해의 농사에 대한 감사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추석에는 햇곡식과 햇과일 등으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 집을 수리하고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시기이다.겨울은 입동부터 대한에 해당하는 기간으로 가을에 수확한 음식들을 먹으며 부족한 양식은 사냥으로 구하고 솜옷이나 누비옷으로 혹한을 이겨냈다. 콩으로는 두부와 메주를 만들었고, 메주로는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의 장류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장류로는 겨울의 큰 행사인 김장을 한다. 김장은 마을 부녀자들이 함게 겨울에 먹을 김치를 담구는 행사였다. 새로운 한 해를 무사히 잘 보내기 위하는 설날 행사에 대해 나와있었는데, 설날에 입는 한복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인의 일생 ( 제 3 전시관 )제 3전시관에서는 한국인의 일생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출생, 교육, 관례, 혼례, 가족, 출세, 풍류, 회갑, 치유, 상례, 제례 순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조선시대는 유교 이념에 의해 아들 중심의 가계 계승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따라서 건강한 남자아이의 출산을 기원했다고 한다. 삼강오륜을 바탕으로 유교적 교육을 하고, 서당이 향교에서 교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