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읽고서론100여년 전 스페인 독감 때에 비해 발전된 의료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수와 치명률은 당시보다 컸다. 이는 코로나에 있어 의료기술적 문제보다는 비의료적 차원의 문제, 즉 초국경적 전염병에 있어 글로벌 협력의 부재가 더 중요한 원인이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한 국가만의 노력으로 막을 수 없는 초국경적 전염병에 있어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나, 이번 코로나사태에서 만큼은 그렇지 못했다.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19의 확산은 비전통적 안보 위기로 대두되었고 전세계 국가들, 계층간 갈등을 심화시켰다. 확산 초기에 WHO가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전염병 발병을 막지 못하였고, 이는 국가들의 백신 이기주의(자국주의)를 양산했으며 더 나아가 국제기구 자체의 필요성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이하에서는 백신 이기주의의 위기와 이의 극복방안을 게임이론적 신자유제도주의를 통해 설명하며 WHO의 바람직한 역할을 제시한다.코로나19에 WHO의 대처 실패 이유초국경적 전염병인 코로나에 있어 WHO는 초기 대처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WHO가 거버넌스의 중심축으로 활동하지 못해서 국가들의 자국중심주의가 더 팽배해졌다. 신종플루 때와는 달리 WHO는 팬데믹 선언을 지체하며 국가들의 정책에 혼란을 일으켰다. 또한 중국이 제출하는 정보에만 의존하며 초기 대응이 미숙했다.둘째, 코로나 이슈가 강대국 정치문제로 비화되며 협력에 차질이 있었다. 미국은 중국에 책임을 돌리면서 WHO등의 글로벌 거버넌스에 리더십을 제공하지 못했다. 코로나의 큰 피해국이 된 미국은 문제 해결 보다는 ‘중국책임론’을 강조하기에 바빴고, WHO가 중국의 영향력에 휘둘린다면서 예산지원 중단 및 탈퇴의 위협이라는 행태를 보이는 등 ‘중국 책임론’을 부각하기에 바빴다. 또한 중국은 코로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미국의 한계를 지적하며 중국의 중앙집권척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데에만 집중했다.백신 자국주의 문제와 게임이론백신 자국주의 위기: 죄수의 딜레마 게임구조의 형성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은 각 국가의 실물 경제의 수요 공급간 큰 불균형을 낳았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장기화는 국가의 발전을 지연시키며 국가간 협력을 저해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이에 국가는 일방으로 타국인 입국제한 조치를 내리는 등 이기주의적 태도를 보이며 백신의 생산과 분배에 있어서도 철저한 자국의 이득만을 추구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러한 경향에서 나타난 것이 ‘백신자국주의’ 경향이다.게임이론이란 국가를 합리적 행위자로 가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고 그에 대응하여 가장 유리한 선택을 찾아내는 이론을 일컫는다. 이 중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두 용의자가 수감되어 따로 심문당하는 상황을 전제한다. 이때 둘 다 자백할 경우 비교적 가벼운 형벌을, 한 쪽만 자백할 경우 자백하지 않은 쪽에는 무거운 형벌을, 둘 다 부인할 경우에는 가장 가벼운 형벌을 부과하겠다고 말한다. 용의자 둘 다 서로 자백하지 않는 경우 상호 이득을 얻게 되지만 결국에는 한쪽만 자백을 하게 되는 상황으로 귀결된다. 이때 자백의 상황을 ‘배반’, 자백하지 않는 상황을 ‘협조’라고 한다면, (배반, 협조)> (협조, 협조)> (배반, 배반)> (협조, 배반)의 순서로 선호된다. 즉 양쪽 모두에게 최상의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선택이 있음에도 이를 택하지 못하고 양쪽 모두 덜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합리적 행위자들은 단기적인 이익의 추구 때문에 그의 상대가 어떠한 선택을 하는지에 관계없이 협력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의 이익이 된다고 판단한다.국가들의 백신 자국주의 행태를 게임이론적으로 분석하면 아래와 같다. 우선 두 행위자를 백신 생산이 가능한 기술력을 보유한 선진국으로 가정하며 자국의 백신 생산량 만으로는 자국의 수요를 모두 감당할 수 없다고 전제한다. 백신을 나누어 주는 것은 협조행위, 나누어 주지 않는 것을 배반행위라고 하면, 현재 행위자들은 모두 자국의 백신기술을 공유하지 않고 배타적으로 행동하려 한다. 결국, 두 행위자 모두 (배반, 배반)에 이르며 사회적 최적 효율은 달성되지 못한다. 만약 일국이 타국에게 백신 생산기술을 공유했더라면 결국 백신의 공급망과 유통 규모를 국경을 넘어 확장해 사회적 최적 효용 상태를 달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국의 의도를 모른다는 상황과, 백신 분배 문제를 일회성으로 인식한 점이 결합해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게임이론적 처방: 팃포탯(Tit-for-tat) 구조의 형성과 유지상기한 죄수의 게임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게임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게임 현장 자체의 ‘구조’를 기존의 죄수의 딜레마게임 구조에서 팃포탯(Tit-for-tat) 구조로 변경시킬 필요가 있다. 로버트 엑셀로드(Axelord)는 미래의 그림자(Shadow of the future)확대, 배반 시 처벌 규정의 설정, 반복게임의 형성 등을 통해 이기성을 극복하고 국가들이 상호 호혜적인 협력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전략들은 사안이 ‘1회’에서 끝나지 않음을 강조하며, 해당 사안 이외에도 또 다른 협력을 연계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즉, 미래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협력을 촉진한다는 관점이다. 위 백신기술 이슈를 대입해보면, 국가들은 미래의 할인율을 낮추는 인식 개선을 통해 장기 이익을 추구하고, 백신 기술 미공유국에 대한 경제제재의 실시, 백신 개발 및 생산에 대한 상호 신속한 피드백의 교환과 거래 횟수 증대를 통해서 게임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음을 행위자들에게 인식시켜 백신 자국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세계보건기구의 향방 예측과 제언2020년 코로나19 최초 발병 시 WHO는 신속하게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하지 못했다. 사태가 해결없이 장기화되자 각국은 2005년 체결된 국제보건규칙(IHR)을 위반하면서 백신 독점, 수출 제한 등을 통해 자국의 활로를 모색하며 말 그대로 ‘각자도생’을 추구한 바 있다. 비상 사태의 선포가 지연되고 해결이 지지부진했던 배경에는 중국의 지원을 받는 WHO 가 있다. WHO는 재정의 80%는 기금으로 충당, 20%는 회원국 분담금으로 충당한다는 점에서 재정적 독립성이 결여 되어있는데, 중국의 분담금 비율은 2020년 기준 12%로 4년 전과 비교했을 때 분담금 증가율이 매우 높으며, 현재는 미국 다음으로 높은 분담금 부담 국가이다. 이처럼, 국제기구도 자본주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WHO에 있어 중국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세계 경제의 지배적 이념으로 지속되는 한, 실효성 있는 구조적 개혁이 없다면 WHO는 ‘패권의 제도화’의 산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이 경우 제도상 명맥은 유지되겠으나 대다수의 국가들의 지지를 잃게 될 것이며 정당성에 있어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그럼에도 WHO가 존속해야 할 이유는 현재 자국 이기주의로 점철된 국제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국제기구는 질서 있는 다자간 협상의 장을 제공하여 협력을 촉진하며 장기적인 접촉을 가능하게 해 반복게임 상황을 조성한다. WHO 역시 전세계 보건 문제의 컨트롤타워로서 백신 문제에 있어 국가간 협상의 장을 형성해야 한다. 특히 반복협상 과정에서 상호주의에 기초해 백신 이기주의 행태를 보이는 국가에 대한 개별국가의 응징 및 다자적 차원에서의 응징(경제재제 등)을 주도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들에게 이타적 태도를 보일 때의 장기적 순이익이 백신 이기주의를 고집할 때의 장기적 순이익 보다 커지게 하여 국가들간 협력 유인을 고취시킬 수 있다. 또한 현 사태에 대한 양질의 정보를 형성 및 축적하고 이를 회원국에게 공유해야 한다. 따라서 제 2의 코로나 사태가 벌어질 경우, 효과적인 대처 방안을 내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더불어, 재정 독립성 결여 문제에 대해서는 최근 WHO가 그 개혁안을 내놓아 회원국 의무 분담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2031년까지 최대 50%로 늘리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해당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이에 탈피하고자 하는 WHO의 의지로 해석할 수 있는 바, 앞으로의 변화에 주목해볼만 하다.결론WTO를 통한 자유무역가치의 확산을 통해 전세계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운명을 공유한다는 믿음은 예상치 못한 비전통안보 위협인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무너지게 되었다. 국가들은 철저히 자국이기주의에 입각한 모습을 보이며 협력은 모호해졌으나, 전술한대로 팃포탯(Tit-for-tat) 구조의 형성을 통해 그 협력의 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으며 이 중심에는 WHO가 있다. 또한 코로나19에 의한 감염병의 확산은 신흥안보로서 보건안보의 중요성을 재인식시켰다. 이는 1980년대 초반 탈냉전, 2001년 9.11테러, 2008년 세계금융위기에 이어 커다란 세계질서의 변화를 가져올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한국은 방역에 있어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뒀지만, 앞으로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어떻게 정확히 전망하고 이에 대응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21세기 광해군광해군과 중립외교광해군은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왕이다.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의 삶과 비극적 운명을 소재로 다룬 경우가 많다. 그는 조선왕조 역사상 폐위 된 두 명의 왕 중 한 명이여 어떤이는 그를 ‘폭군’ 이였다고, 또 어떤 이는 그를 ‘붕당 정치의 희생자’였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적어도 그의 외교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는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조선의 사정에 맞추어 실리를 취하는 외교 정책인 ‘중립 외교’를 택했다. 이는 당시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현대에 와서는 중립 외교를 당시 조선이 취할 수 있었던 가장 최선의 선택이자 현명한 판단이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 주요하게 다룰 내용 역시 그의 대외 정책에 대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취해야 하는 대외 정책 또한 광해군의 기조를 따라서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전랙적이고 보다 주체적인 외교 노선을 취해야 한다.21세기 병자호란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은 마치 조선 중기 병자호란을 연상케 한다. 물론 조선 중기의 상황을 현재 대한민국에 일대일로 대입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기존의 강대국과 떠오르는 강대국 사이에서 ‘끼인 처지’ 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2014부터 줄곧 사드배치를 주장해왔고 2년간의 논의 후 결국 한미 사드배치를 공식 발표했다. 중국은 주한미군 사드 배치에 예민하게 반응해 이에 한국에 비공식적인 경제적 보복까지 가하고 있으며 사드가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체계의 핵심무기이기 때문에 러시아 역시 주한미군 사드 배치를 달가워하지는 않는다.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사드 배치는 단순히 남한과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인식되며 우리 정부는 심각한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실제로 사드배치 후 우리나라가 입은 경제 손실액은 약 18조원에 이른다고 한다.과거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조선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조선의 실리를 추구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초 강대국 사이 끼어서 외교를 하는데 정작 우리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외교에서 중요한 것은 주체성이다. 적어도 외교에서만큼은 대한민국을 중심에 놓고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 이를 놓친다면, 우리는 과거 조선이 명과 사대관계를 맺고 당한 수모를 반복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강하고 평화로운 대한민국2017년 5월, 새 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의 ‘강하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대외 정책 기조는 북핵문제나 남북관계를 비롯한 다양한 국익을 지키는데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기존 우리나라 외교에서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과 같은 논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새롭게 제안한 대외 정책은 이전 정부와 다른 듯 비슷한 점 또한 가지고 있다.대북 정책에서는 ‘당근과 채찍’ 의 전략을 차용해 북한이 성의를 보이면 협력적인 태도로 나가고, 핵 도발을 한다거나 하면 제재를 가하는 식의 외교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존 MB, 박근혜 정권이 취했던 강경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전략이다.‘동북아 더하기 책임공동체’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동북아 다자 안보협력체 구축 계획은 김영삼 정부부터 추진해 오던 프로젝트의 새로운 이름이며, 주변국들과 군사교류 증진을 하고, 이들과 안보협력체 구성을 하려는 정책이다. 기존의 내용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기존의 4강 외교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외교)의 범위를 확장해 아세안과 인도 지역까지 그 책임공동체의 범위를 높인 것이다. 이처럼 현 정부는 대한민국이 보다 더 주체적이고 전략적으로 외교를 해나가겠다는 대외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확실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좋은 대외 정치는 좋은 국내 정치로부터 비롯된다.대외 정치는 국내 정치와 결코 분리 할 수 없다. 광해군은 매우 창의적이고 실리적인 외교정책을 펼쳤는데에 반해, 국내 정치에서는 궁궐 공사에 국력을 낭비하고 왕권 강화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등의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결국 국내 정치와 대외 정책에 일관성을 보이지 못한 점, 이 둘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 한 점에서 광해군 몰락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좋은 대외 정치는 좋은 국내 정치로부터 비롯된다.” 이는 참인 명제나 그 역은 항상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좋은 대외 정치는 결국 국내가 좋은 정치를 기반으로 강성한 후에야 진정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현 정부도 공약처럼 더욱더 주체적이고 전략적인 대외 정책을 추진해 나가며 이를 국내 정치 상황과도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보완해 나가는 방향을 따라야 할 것이다. 광해군의 잘한 점은 본 받되, 그의 실수 역시 따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헨리키신저의 ‘중국 이야기’ 소감문헨리키신저의 중국 이야기를 읽어보았을 때 그가 말하고 있는 중국의 특색은 첫 째, ‘그 유구한 역사’ 라고 할 수 있다. 흔히 한 나라의 창건 신화를 보았을 때 황제가 하나의 제국을 창조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고구려의 건국 신화를 그 예로 들어보자. 보통의 건국 신화는 그 시조의 탄생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구려도 마찬가지다. 유화라는 여인이 크기가 닷 되나 되는 커다란 알을 낳았다. 꺼림칙해서 그 알을 내다버려도 동물들은 오히려 그 알을 보호해준다. 그러다 아이 하나가 알 껍질을 깨고 나오는데 그게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의 탄생 설화이다. 주몽이 자라서 이복 형제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자 그는 도망쳐서 졸본주에 도달하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고 정했다. 이처럼 보통의 창건 신화는 특출난 인물이 새로운 나라를 ‘창조’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중국의 창건신화는 원래 있던 제국을 복구하고 부흥시키는 모습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즉, 황제 이전에도 중국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이는 중국의 기원이 너무나도 오래되어서 그 시초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그리고 이 유구한 역사는 중국이라는 국가 자체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중국인들은 서구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주 창조에 대한 신화를 만들 필요도 없었는데, 그들에게 우주는 그들 자신이 만든 것이며 기원 또한 중국이였기 때문이다. 중국은 자신보다 규모 차원에서나 발전 정도에서나 우월한 국가를 맞닥뜨린 적이 없었다. 주변국들은 조공 관계를 맺어서 중국으로부터 많은 물질적 이익을 얻음과 동시에 중국의 황제가 자신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인정했다. 전통적으로 주변국들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은 각 나라들의 생존 전략이자 화합과 번영을 위한 수단이였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입장에서 타 국가들과의 외교는 수치스러운 일에 더 가까웠다. 1861년 19세기 서구 열강과의 두 차례 전쟁에서 패한 뒤 세워진 중국 외교부는 의도적으로 낡은 건물에 지어졌고 지금의 위기만 넘기면 바로 철거될 예정이였다. 이처럼 중국은 자신의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중국이 중심이 되어서 주변국들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길 원했다. 이는 현재 국제 정치에서 보이는 중국의 모습과도 연관이 있다. 중국은 서구 열강들이 만든 국제 질서를 따르는 것을 거부하며 자신들이 국제정치에서 룰메이커(rule-maker)가 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그들이 과거에 번영했던 자신들의 가치들을 현재까지 잇고자 하는데, 후진타오는 학교에서 공자에 대한 연구를 부활시켰고 전통적인 유교 학자들을 부각시켰다. 또한 2010년에 출간된 『중국몽(中國夢)』이라는 책은 매우 민족주의적이며 중국, 서구의 관계에서 힘의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는 가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중국은 현재 ‘근대적 군사력을 휘두르는 동시에 독특한 가치관을 잃지 않으면서 번영하는 중국’ 이라는 비전에 도달하고 있다. 그리고 이 것의 바탕이 되는 것은 중국 지도자들의 강력한 리더십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중국의 특징은 지도자들이 가지는 ‘강력한 리더십’이다. 중국은 과거로부터 중국 내에서뿐만이 아니라 중국 바깥까지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황제들이 대륙을 지배했다. 진시황은 중국 최초의 중앙 집권적 통일 제국인 진나라를 세운 시황제이다. 그는 강력한 부국 강병책을 추진하여 중국 대륙의 군소 국가들을 모두 통일하고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중국을 다스렸다. 근현대 시대에 들어서 마오쩌둥은 중국 인민에게 역대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고 그에 대한 향수는 아직도 중국인들 사이에서 가시지 않고 있다. 그는 중국인들이 그렇게 중요시하고 자랑스러워하던 전통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중국의 인민들, 특히 젊은 학생들에게 혁명의 열기를 불러일으켰다. 이 책에서는 후진타오까지 밖에 언급이 되지 않지만 현재 중국 공산당 최고 주석인 시진핑은 마오 이후에 당 내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진핑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자신이 직접 개혁을 총지휘하고 있으며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국제 정치에 있어서 서구 중심적인 패러다임을 중국 중심으로 바꿔놓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또한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을 추진하며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일대)와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일로)를 건설할 포부를 드러낸다. 이는 당 국가 체제를 가지고 있는 중국 정치 구조가 가지는 특성이다. 중국은 온전히 당 총서기와 7인의 상무위원의 절대적인 권력 아래 정치가 이루어지며 그들의 리더십은 중국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 까지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플라톤의 사상과 현대의 대중예술예술의 탄생한 시점부터, 예술은 ‘복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예술의 시초라고 여기는 라스코 동굴의 벽화에는 천장에 말, 소, 사슴 등 200여 마리의 동물들이 1,200미터에 걸친 굉장한 규모로 그려져 있다. 이는 단순히 그 당시 원시인들의 상상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다. 구석기 시대의 주된 생계수단은 ‘사냥’ 이였다. 그리고 라스코 벽화는 사냥의 기록이나 이들의 염원을 표현하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최초의 예술조차 현실의 대상을 그대로 기록 하거나 모방하려는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그 후 기원전 800년경에 등장한 그리스 미술은 예술품에서 현실과의 유사성을 더욱더 추구했다. 이 시대의 작품인 상은 조각가가 천 조각 하나하나를 실제처럼 아주 세밀하게 재현한 것을 불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작품에 인간의 신체를 재현하려는 노력을 보였는데, 이는 완벽한 비례와 조화를 갖춘 이상적인 육체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예술은 현실을 재현하는 수단 이였지만, 이와 동시에, 그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 이였다.회화 및 조각의 뒤를 이어서 사진이 발명되었다. 인간은 사진술에 대해 훨씬 이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중화 된 것은 19세기 프랑스에서이다. 사진기는 그것의 등장과 함께 대중들의 관심을 받았다. 한 번 사진을 찍으면 수십, 수백 장의 같은 사진으로 복제가 가능하다는 장점은, 인간의 ‘완전 복제’에 대한 소망을 더욱 충족시켜 주었다. 또한, 그 당시 프랑스는 시민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때였다. 따라서 시민들은 사진을 통해서 새로운 대중예술의 영역을 만들어나갔다.오늘날의 대중예술은 단순히 이차원적인 외형의 모방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주목 받고 있는 3D 프린터나 대중화에 성공한 3D 입체영화를 보았을 때, 이전의 대중 예술이 단순히 회화나 사진을 통한 복제를 시도했던 것에 비해, 이들은 실제 사물 자체를 그대로 복원하거나 삼차원의 입체로 구현하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3D 프린터는 현실에 있는 물건을 설계도를 바탕으로 그대로 복제하거나, 때론 원하는 물건을 새로 제작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즉, 이들은 실제와 매우 유사한 것을 넘어서 거의 동일한 ‘가상 세계’를 창조하는 데 성공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게임과 결합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VR기기도 가상현실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플라톤의 예술관에서는 이데아를 빼놓을 수 없다. 그에게 이데아는 현실과 분리되어 있는 완벽한, 이상적인 세계이다. 그는 ‘미메시스론’을 주장하며 예술이 이데아 세계의 복제이어야 함을 주장했다.“예술은 웅대한 일차적인 작품들을 자연의 손으로부터 물려받았는데 이미 형성되어진 모델과 양식은 한층 더 의미 없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인공적’이라 부르는 바로 그 이유다. 그 안에 실재적 본질이라고는 거의 없는 장난감들, 즉 회화, 음악 및 기타 비슷한 기술들에서 나온 것들과 같이 예술 그 자체만큼이나 공허한 모조품들을 만들어낼 뿐이다.”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플라톤이 예술을 보는 관점은 다소 회의적 이였다. 예술은 사물의 외관만 재현하는 것이므로 사물의 진정한 미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다시 말해, 예술은 불완전한 현실 세계를 다시 재현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그는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세계인 ‘이데아’에 도달하는 것, ‘미의 이데아’를 실현하는 것을 진정한 예술이라고 믿었다. 또한 예술이 ‘공허한 모조품’을 만들어 낸다는 그의 말에서, 예술의 독창성 또한 인정하지 않는 그의 신념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은 미는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속성이라고 믿은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예술에 있어서 ‘모방론’, 즉 미메시스의 사상을 따랐다. “…예술들도 자연의 토대 위에서 자연이 할 수 있는 것보다 사물을 더 낫게 하거나 자연을 모방한다.” 라는 그의 말은 더 우월한 자연의 산물을 인간이 모방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플라톤이 자연과 이데아를 동일시하며 이데아만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세계의 모방도 긍정했다. 그는 이데아를 현실 속 사물들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만큼 이는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것 이였다. “… 예술로부터, 형상은 예술가의 영혼 속에 둔 사물이 나온다.” 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서 그가 현실 세계의 사물을 통해서 예술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과, 이를 창조해내는 예술가의 역량 또한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참된 이데아 세계의 도달만은 절대적으로 여겼던 플라톤 사상과다른 점이다.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시’에 있다. 그 당시의 시인은 하나의 ‘기술자’로서의 지위를 가졌다. 그들은 시를 창작하는 사람이 아닌 기존의 유명한 시구를 암송하는 역할을 했다. ‘음유시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이유이다. 플라톤은 시인이 이데아의 모방본을 또다시 모방하는 행위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열등한 것’ 이라고 칭한다. 또한 그는 시인들이 예술의 감각적 쾌락에 취해 평범한 시민들을 현혹시켜 이들이 진리를 탐구하지 못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이는 그의 ‘시인 추방론’의 일부이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인들의 모방능력을 긍정했다. 그의 저서 『시학』에서 그는 시를 ‘모방의 기술’이라 일컬었다. 이처럼, 그에게 시는 표현적 충동의 모방으로 여겨졌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모방을 ‘재현’의 의미로 사용한 것은 맞지만 더 나아가 인간의 성격과 감정을 모방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모방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예술이 모방으로부터 시작 되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나 역시 여렸을 적 그림을 그릴 때 나의 얼굴을 그린다던지,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그린다던지 하는 ‘모방’을 통한 예술을 실행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 있는 사물을 모방하는 것이 플라톤의 말마따나 ‘공허한 모조품’을 만들어 내는 행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입장을 같이 하는데, 모방이 단순히 의미 없는 행위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방의 주체가 그 대상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담은 결과물이 창조된다. 고흐의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을 예로 들어보자. 이 그림에는 농촌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 앉아 감자를 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농민 화가가 되길 바랐던 고흐가 그들의 삶을 그림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고흐는 단순히 그 장면을 복제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다. 농민화가를 꿈꿨던 고흐는 직접 농촌에 가서 그들의 삶을 더욱 생생하게 포착하려 했다. 고흐가 그림에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가난한 농민들의 삶의 애환과 그들에 대한 애정이다. 다음은 고흐가 동생 태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이다.“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민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이처럼, 현실세계의 모방을 통해서 우리는 미적 즐거움을 얻는 동시에 진실에 도달할 수 있고, 이는 단순한 모방으로 그치지 않고 창작자의 가치관이나 생각과 결합되어 그 자체로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다. 어떠한 것을 모방하는 행위는 동물이나 인간이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은 모방의 행위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이나 가치관을 담는다. 앞서 말했던 ‘감자 먹는 사람들’ 그림처럼, 고흐는 농민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감자 먹는 모습을 캔버스에 옮긴 것이지만, 이러한 풍경을 기획한 것도, 그림에 자신만의 철학을 담은 것도 모두 고흐 자신이다. 플라톤은 어떤 것을 단순히 따라하는 수준으로서의 모방만을 떠올렸으며 지나치게 이데아론에 집착한 나머지, 인간만이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의 모방은 인식하지 못한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