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과연 무엇에 성내고 있는가?1950년대의 흑백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은 처음이다. 빌딩 하나가 자연재해에 부숴지고, 도로 한가운데에서 추격전이 이뤄지는 자동차 질주와 같은 현대 블록버스터 영화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 중, 나는 그 한 명이다. 이런 나는 95% 이상의 배경인 배심원실 안에서의 대화가 주된 내용인 영화에서 대화와 상황의 흥미진진함과 긴박함을 느끼고 갈등이 해소되는 부분에서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 영화는 나의 상황에 빗대어 보았을 때, 더 넓게 나아가 현대사회에 빗대어 보았을 때 고민해 봐야 할 문제들을 던져 주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 은 무엇에 화가 나있고 나는 거기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지 고민해보았다.부친살해혐의로 기소된 용의자는 빈민가에 거주하는 이민자 출신이다. 2명의 목격자가 존재하고 희귀한 범행 도구의 증거로 이미 살인자로 판단되어 있는 상황에 12명의 배심원들은 덥고 좁은 방에서 만장일치를 내야 하는 토론을 시작한다. 12명 중에 1명, 8번 배심원만이 합리적인 이성으로 용기를 내어 소신 있는 발언을 하지만 맹목적인 믿음에 갇힌 나머지 11명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이상한 눈으로 보고 시비를 걸며 심지어 욕설을 한다. 스스로의 생각에 한치의 의심도 없이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배심원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8번 배심원’ 은 자신의 의견을 내며 11명의 배심원들에게 그의 주장을 펼치고 결국 설득을 시키게 되는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이다. 이 영화를 보며 한 가지 키워드가 머리 속에 맴돌았다. 그 키워드는 바로 ’진실’ 이다. 이 진실이라는 키워드에서 ‘12명의 사람들’이 왜 화가 나 있는 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았다.11명 배심원은 모두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다. 용의자가 단지 히스페닉의 유색인종이고, 빈민가에 사는 사람이기에 그를 잠재적인 범죄자라 인식한다. 이는 분명 그 아이가 살인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근거로서는 터무니없다. 또한 유죄에 표를 던진 사람들 중 몇몇 사람들은 ‘방관’ 하는 사람들이다. 그저 배심원을 해달라는 편지를 받았기에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 관심이 없고 자리를 지키는데 목적을 둔 사람이다. 그들의 유죄에 손을 든 이유는 단지 그냥 그 아이가 유죄 같기 때문이다. 자기 직업에 대한 웃긴 이야기를 하고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앞으로 몇 시간 남지 않은 야구 경기 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그들이다. ‘아집’ 있는 사람은 아무런 근거를 대지 못한 채, 그저 언성을 높이며 용의자는 살인에 처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아들을 남자답게 키우려고 했지만 결국 자신의 아들이 자기의 턱을 후려치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상황을 아버지를 칼로 찔렀다고 의심받는 용의자에게 이입하며 말이다. 나는 이 영화에서 ‘방관’, ‘편견’, ‘아집’ 이 진실을 가로막았던 주된 요인이라 생각한다.나는 ‘진실’ 앞에서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부끄럽지만 여태까지 나의 경험상 진실 앞에서 ‘방관’ 자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합리적인 의심으로 부당한 거짓 앞에 당당히 이야기 해봤던 적이 있었는가?’ 라고 물었을 때 그냥 다른 사람이 그렇다는 대로,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진실 앞에 나의 생각을 말할 때 다른 사람이 나를 비웃지 않을까, 내가 나의 할 일 하기도 바쁜데 진실을 밝히는 것에 나의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말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나의 주관을 갖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는지 고민해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누군가의 결정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나의 모습들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나는 먼저 주변 상황에서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의 중심을 ‘나’에서 ‘주변’으로 시야를 넓히는 과정이 우선 되어야 하고, 거기에서 진실과 거짓은 무엇이고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어떠한 행동이 나와야 하는 지 항상 생각하고 고민한다. 또한 나뿐만 아니라 더 넓은 사회를 볼 때, 대중들은 그저 언론이 그렇다는 대로, 주변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이 옳다는 생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의 전체적인 변화에 앞서 개인 한 명 한 명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요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왜 제목이 12명의 성난 사람들인지 생각해보았다. 그저 토론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 이해해주지 않아 화가 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12명 모두가 그러지 않았다. 12명 모두가 무엇에 화가 났는지 ‘진실’ 이라는 키워드로 생각해보았을 때 나만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편견에 사로잡혀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상대를 발견하고 또 거기서 나를 발견했을 때 12명의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것에 그들은 분노했다 생각한다. 분노의 실체를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순간에서 말이다. 난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사회는 분노에 대해 성내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묵묵하게 자기의 일에 바빠 감정을 억누르며 외면하고 있는가? 아니, 사회를 보기 전에 과연 나는 진실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으며 성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