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마음- ‘동백꽃’을 읽고 -가난한 동백꽃‘아낙네들은 머리에 이고 남정네들은 등에 지고 나르는 뼈 빠지는 삶의 방식은 너무도 비참할 때가 많았다. 장정의 손으로 한 줌도 채 안 되어 보이는 가냘픈 여인목에 무슨 힘이 있어 보리쌀을 대여섯 말씩, 좀 심하면 겉보리 한 가마씩 머리로 이어 나르는가?….’ 1930년대 농촌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향촌’이라는 책 일부분이다. 단편적으로 이 문구만 읽어봐도 굉장히 어려운 생활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1930년대는 일제 강점기로 이미 경술국치가 되고 20년이 지난 시점이다.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면서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도 치밀하게 계산하여 지배했다. 그 결과 1910년대 회사령, 토지조사사업을 거쳐 20년대 이후 산미 증식계획으로 농민들의 부담을 더욱 증가시켰다. 이 과정에서 도시의 빈민이 늘고 농촌에서는 땅을 빼앗긴 농민과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사람들이 늘어났다. 동백꽃은 이 시절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힘없는 소년주인공 ‘나’는 전형적인 소작농의 아들이다.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 집이 없어 곤란할 때 마름의 집터를 빌려 집을 지었고 마름의 호의로 소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인가 먹을 게 부족하면 마름의 집에서 빌려다 먹곤 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마름네 가족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마름의 딸인 점순이가 ‘나’를 귀찮게 했다. 자꾸 우리 집의 닭을 못살게 구는 것이다. 점순이네 수탉은 머리가 크고 덩치도 실하게 생겼고, 우리 닭은 덩치가 작다. 그러다 보니 매일 점순이네 닭에게 쪼여 피를 흘리기 일쑤였다. ‘나’는 화가 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의 집은 마름네 집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점순이에게 잘못 대하면 소작을 못 할 수도 있고 트집잡힐 수도 있는 일종의 ‘을’의 상황이다. ‘나’는 점점 더 소심해질 수밖에 없었고, 점순이에게 자격지심이 생겨 닭에게 해서는 안 될 일까지 하고 말았다.힘 있는 소녀점순이는 마름의 딸이다. 1930년대 마름이란, 땅 주인인 지주의 대리인으로 땅이 없는 농민에게 땅을 빌려주는 일종의 관리인이다. 직접 농민을 상대하는 중간 관리인 입장이라 마을에서 꽤 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름의 딸인 점순이는 당당하고 거칠 것 없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살 수 있었다. 그런 점순이가 유일하게 마음대로 안 된 건 바로 소작농의 아들 ‘나’와의 관계이다.생각해보면 점순이는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나’에게 관심이 있는데 어찌할 줄 모르다가 크게 용기를 내어 감자를 건넸다. 솔직히 좋아해서 준거지만 괜히 부끄러워 “느 집인 이거 없지?”하고 생색내듯 ‘나’에게 내밀었다. 아마 점순이는 엄마 몰래 감자 몇 개 챙겨서 나와 ‘나’에게 준 것일 거다. 그런데 그런 호의를 ‘나’는 거절했다. 여자가 용기 내 먼저 표현했는데 눈치 없는 ‘나’는 대차게 거절했고, 점순이는 자존심도 상하고 화가 나서 수탉을 괴롭히기 시작했다.엇갈린 소년과 소녀이 소년과 소녀가 엇갈린 건 눈치가 엄청나게 없는 탓이다. 소년은 집안 사정상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어서 소녀를 그런 대상으로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일상에 소녀가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소녀는 좋은 환경 덕에 소년처럼 눈치 볼 것도 없고 본인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며 살 수 있었다. 다만 상대방을 배려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나름대로 용기를 냈다고 하지만 소년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다가가기엔 나이도 어리고 살아온 환경이 달랐다.처음엔 나름 설렘으로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닭싸움으로 자존심만 긁어놓은 꼴이 되었다. 결국, 둘 사이에 닭만 희생당했다. 보면서 불편했던 부분은 바로 닭에게 하는 행동이다. 소녀는 투계라도 벌이는 듯 매번 수탉들끼리 싸움을 벌여 다치게 했고, 소년도 이겨보겠다고 닭에게 고추장을 먹였다. 어찌 보면 동물 학대에 가까운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로 철없는 이들이다.
아이의 양심으로 어른을 꾸짖다- ‘자전거 도둑’을 읽고 -마음의 갈등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 집은 남의 집에 세 들어 살았다. 이 층은 주인집이고 일 층은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도 그 중 하나였다. 옆집도 단독주택이었는데 작은 담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옆집 아저씨는 학교 선생님으로 아이가 다섯이나 되는 드물게 다복한 집이었다. 취미로 담 옆에 장미 넝쿨을 키우시는데 꽤 커서 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하루는 엄마도 없고 나만 집에 있을 때였다. 물을 마시려고 부엌에서 컵을 꺼내 닦았는데 손이 미끄러져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다. 결국, 컵이 깨져버렸고 물 마실 생각도 저 멀리 달아났다. 엄마한테 솔직히 이야기할지 숨길지 치열하게 고민했을 때 이층집 언니가 나타났다. 이층집 언니는 나랑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 고등학생인가 그랬다. 언니는 전전긍긍하는 나를 보더니 아무렇지 걱정하지 말라며 컵을 들고 가 옆집 장미 넝쿨에 던져버렸다.그날 저녁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셨고 컵 하나가 없어진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신 것 같았다.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콕콕 쑤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증거물이 없어져 나만 입 다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신경이 쓰였다. 결국, 엄마에게 솔직하게 고백했고 나는 용서를 받았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양심과 비양심 사이에서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했고, 어린아이의 순수함으로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다.순진한 소년, 수남이수남이는 청계천 세운 상가에서 전기용품 도매상의 점원이다. 수남이라는 이름보다 꼬마라 불릴 정도로 어린아이 같은 외모와 성품을 갖고 있다. 전기용품 도매상답게 우락부락한 아저씨들이 손님으로 와서 수남이의 머리에 알밤을 먹여도 꾹 참을 정도로 온순하다. 야학을 가고 싶지만, 전기용품 직원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눈부신 성공이라고 믿고 있다. 지나가는 고등학생만 봐도 가슴이 울렁거리지만, 주인 영감의 칭찬 한마디에 고맙다고 생각하고 호의로 보는 순진한 소년이다.주인 영감전형적인 어른이다. 처음 소설을 봤을 때 시골에서 올라온 수남이를 잘 돌봐주는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저 아이를 이용하는 못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남이는 낮에는 일하지만, 밤에는 야학에 다니고 싶어 할 정도로 공부에 대한 열망이 깊은 소년이다. 게다가 이런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에 그대로 드러낸다. 주인 영감은 “내년 봄에 시험 봐서 들어가야 해. 야학이 아니라 일류로.”라고 말하지만, 학교에 들어갈 틈을 전혀 주지 않는다. 직원 세 명이 붙어야 할 수 있는 가게 일을 수남이 한 명에게 맡기는 데다가 월급도 짜게 준다. 직원을 더 쓰라는 손님의 말에 수남이를 걱정하는 척한다. 하지만 실상은 노동 착취를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어른의 비도덕적인 모습일 뿐이다. 주인 영감의 비도덕성은 자전거 사건으로 더 확실하게 보인다.자전거 도둑주인 영감은 수남이에게 계산서를 작성해주면서 xx 상회에 20와트 형광 램프 다섯 상자만 배달해 주고 오라고 시켰다. 수남이는 바람이 심해 불안한 날씨에도 자전거에 제품을 싣고 페달을 밟았다. 제품을 주고 수금을 할 때 수남이는 불편한 마음을 느끼곤 했다. 금고에 돈을 수북이 넣어 놓고도 돈을 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금을 못 해가면 결국 혼나는 건 수남이이기 때문에 어떡해서든지 받아가야 했다. 수남이는 눈치 백 단에 내공 천단인 어른에게서 끈질기게 돈을 받았다. 수남이는 돈을 가지고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았는데 바람 때문에 그만 자전거가 넘어졌다. 다시 일으켜 가려는데 이번엔 차 주인이 막아섰다.자전거가 넘어지면서 옆에 있던 차를 쳤고 차체가 우그러지고 만 것이다. 차 주인은 인심 쓰듯 반만 내라며 오천 원을 내라고 수남이를 다그쳤다. 주머니에 수금 받은 돈 만 원이 있었지만 주인 영감을 생각하면 쓸 수 없었고 수남이는 결국 자전거를 차 주인에게 빼앗기고 만다. 당장 본인이 가진 돈이 없었기에 봐달라 고 사정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전거가 없으면 일을 할 수 없었기에 수남이는 결국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자전거를 들고 도망을 쳤다.어른들의 비도덕성수남이가 자전거를 들고 도망쳤지만 주인 영감은 “네놈 오늘 운 텄다."라며 오히려 칭찬했다. 수남이는 여기서 우울함을 느꼈다. 수남이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자전거를 들고 도망을 치면 안 된다고 말이다.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수남이를 꾸짖고 돈을 가지고 가 자동차 주인에게 갚아줘야 한다. 하지만 주인 영감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전거에 달린 자물쇠를 태연히 끊어버렸다.
상처를 바라보는 방법- ‘이슬람 정육점’을 읽고 -고아원에서 학대받은 나,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이슬람교도 하산 아저씨와 야모스 아저씨, 가난과 가정불화로 상처를 입은 친구 유정. 이들 모두는 상처를 입고 이슬람 정육점에 모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슬람 정육점을 중심으로 모이고 이따금 상처가 드러나고 힘들어한다. 국어사전을 보면 상처라는 단어에 대해 몸을 다쳐서 부상을 입은 자리 혹은 피해를 본 흔적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책 ‘이슬람 정육점’에서는 이렇게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고 서로를 돌아보는 성장소설이다.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한국에 눌러살게 된 터키인 하산 아저씨는 본인과 비슷한 상처를 가진 ‘나’를 고아원에서 데리고 나와 키우게 된다. 하산 아저씨는 가난한 동네에서 정육점을 하며 사는데 주변에는 전쟁 후 고향 그리스로 가지 않은 야모스 아저씨, 충남식당의 안나 아주머니 그리고 연탄장수 아들이자 동물과 소통을 한다고 믿는 말더듬이 유정을 이웃으로 두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나’는 이웃들의 상처를 접하며 그들과 대화를 하고 자신의 상처에도 그리고 하산 아저씨의 상처에도 관심을 두고 둘러보게 된다. 이 모든 것은 하산 아저씨를 통해 배웠고 마침내 ‘나’와 하산 아저씨는 진정한 가족이 된다.그들이 진정한 가족이 되기까지는 사실 많은 난관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아저씨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아저씨와 ‘나’는 쉬는 날이 되면 공원에 간다. 공원에 가면 사람들은 다르게 생긴 아저씨를 보며 수군거리고 두려워했다. 아저씨가 겁을 준 적도 불량스럽게 대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아저씨를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은 바로 아이들 혹은 어머니 배속에 웅크리고 있는 생명이다. 아저씨와 주인공 ‘나’는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이들의 마음을 읽으며 진짜 나는 이들에게 어떤 시선을 하고 바라보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나와 다르다며 경멸의 시선이나 동정의 시선을 두진 않았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결국, 나도 아이가 아니므로 하산 아저씨나 주인공 ‘나’의 시선에서는 경멸 어린 혹은 두려워하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주인공 ‘나’는 죽음에 대한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동네 신부는 골재를 싣고 온 트럭의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린 줄 모르고 그대로 차에 치여 죽었다. 성당은 남았으나 고아원은 폐쇄되었다. 사람은 본디 자신의 그림자와 하나였음을 깨달았고 그림자가 있던 자리를 붉은 피가 대신하여 이 세상에 다녀간 적이 있었음을 알리는 거라는 것을 주인공 ‘나’는 알게 되었다. 사실 이 장면은 냉정하게 생각하면 잔인한 장면이다. 누군가 교통사고로 적나라하게 죽는 모습을 어린아이가 목격했고 그 기억은 심각한 트라우마나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소위 외상 후 스트레스라 불리는 병에 시달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아픈 기억이고 끔찍한 장면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아이에 대한 장애나 병보다는 그 상처마저도 나름대로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죽음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자리 잡았다면 주인공 ‘나’는 병원에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나’는 여전히 일상을 살았고 죽음에 대해 그림자론을 펼치며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잘 이겨나갔다.그 후 주인공 ‘나’는 고아원에서 하산 아저씨를 따라나선 때를 생각했다. 여기서 ‘나’는 아무것도 소유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것이 하나도 없었다. 잠정적으로 주어진 것들이며 이 물건들을 소유할 온당한 자격이 있는지 고아원에서 시험했다고 했다. 어차피 나의 것은 하나도 없다는 주인공의 말이 내 마음을 울렸다. 나 자신은 얼마나 많은 것을 내 것이라고 믿으며 소유하고 살았는지 되돌아보게 해 주었다. 주인공은 고아원이라는 장소에서 내 것이라는 욕심을 부릴 수 없는 상황이니 내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었겠지만 풍족하게 사는 나와 우리가 소유라는 이름의 욕심을 얼마나 부리고 있는지는 한 번쯤은 생각하고 반성할 문제라고 생각했다.“너도 언젠가, 어쩌면 머지않아, 아주 가까운 날에 너의 과거와 대면하게 될 거다. 그때 네가 감당해야 할 고통, 여태 마음 깊숙이 갈무리했던 기억들이 풀려나와 네 몸 구석구석에 독약처럼 퍼져 너를 아프게 할 고통이 벌써 눈물겹구나.” 안나 아주머니는 자신의 고통을 대면하고 앞으로 겪게 될 ‘나’의 고통을 걱정해주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하산 아저씨의 몸 위에 팔을 얹어 놓고 안정을 찾았다. 이 장면에서는 아이에게 하는 충고치고는 너무 빠르고 어렵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분명 마음이 아픈 아이지만 사실 평소 생각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산 아저씨가 주는 작은 평화에 만족하며 애써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상처는 드러내서 약을 발라야 한다. 그러나 상처를 꺼낸 시기는 누가 정하는 걸까? 안나 아주머니의 말은 사실은 주인공 ‘나’의 상처를 후벼판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무섭고 떨려서 하산 아저씨에게서 안정을 찾은 것이다. 때로는 침묵이 금이며 어설픈 위로와 충고는 상대에게 오히려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하산 아저씨는 ‘나’와 사는 동안에도 매일 기도를 했다. 이슬람의 방식으로…. 그래서 ‘나’는 아저씨에게 매일 신을 만나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신은 눈이 부셔 스스로 일어나게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나’는 그 말이 어려워 방법을 물었고 아저씨는 영혼을 마룻바닥 닦듯 거울을 닦듯 깨끗하게 닦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아저씨의 말은 주인공 ‘나’ 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어려운 말이다. 영혼을 닦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설프게나마 추측해보면 마음과 관련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사는 것, 그리고 남에게 상처 주지 않은 것, 나 자신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 영혼을 닦는 것 아닐까? 사실 남에게 상처 주지 않고 나를 잘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어렵다. 맞는 방법인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산 아저씨는 ‘나’와 그리고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어렵지만, 영혼을 닦는 일이 정말 필요한 일이고 이런 일은 더 나아가 남을 위한 일도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한 일이고 결국 내면의 힘듦과 고통까지 치유해 줄 것이라고 충고해주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 ‘배려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읽고 -우리들을 닮은 주인공 위배려의 주인공 ‘위’는 아침 회의가 끝난 직후 최연소 차장 승진을 통고받았다. 최연소라는 타이틀에 하루종일 공중을 떠다니는 기분을 느꼈다. 내내 일이 손에 잡히지 않기도 하고 빨리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안절부절 하다 컴퓨터를 확인했다. 그리고 5시 정각 ‘프로젝트 1팀 차장’이라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위는 절망에 빠졌다.배려의 주인공 위는 전형적인 직장인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로 직장에 다니고 경쟁을 위해 애를 쓰고 나를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문제가 생겨 별거까지 가게 되는 너무나 전형적인 주변 인물이다. ‘배려’라는 책을 접하기 전 그저 막연하게 또 하나의 자기계발서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 또 충고가 들어올까 하는 생각에 사실 별 기대 없이 읽었다. 이 책은 그저 뻔한 자기계발서나 충고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뻔하게 벌어질 법한 일들을 이야기로 엮으며 충고하고 있다.아스퍼거 신드롬프로젝트 1팀으로 발령 난 후 정신이 빠진 위는 고문인 안내자를 만나게 된다. 안내자는 위에게 아스퍼거 신드롬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스퍼거 신드롬은 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일종의 장애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이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계속 자기 세계 속에만 갇혀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폐는 아니다. 이기적인 사람과도 다르다. 이기적인 사람들은 남의 입장을 알면서도 자기 욕심 때문에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만 아스퍼거는 아예 남의 입장을 이해히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안내자에게 이 신드롬에 대한 말을 들은 위는 본인이 그런 사람이냐며 발끈한다. 사실 위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이 잠정적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나를 포함한다. 나 자신의 편안함과 안녕을 위해 별 생각 없이 한 행동들 그리고 남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행동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책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식당에서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뛰어다니고 부모들은 방관하고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통화하고 도로에서 끼어들기를 하는 등 아스퍼거 증후군들은 매우 넘쳐난다. 나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니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본능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친 적은 없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아스퍼거 신드롬이 아니라 바로 사스퍼거이다.아스퍼거는 괴팍스럽기는 해도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많지 않은데 사스퍼거는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하고 남들에게 무자비하다. 심지어 이기적인 범주를 넘어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상태를 말한다. 위는 이런 상태를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친다. 우리 대부분 그렇다. 나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가차없는 이 상태가 뭐가 잘못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나만 편하면 되고 나에게 이익이 오는게 당연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만 해도 대가족에 둘러싸여 살았고 형제자매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양보와 배려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 세대나 우리 아랫세대들은 집마다 아이가 하나 아니면 둘이고 아이가 귀해진 시대가 되어버려서 양보와 배려보다는 받들어져 살아온 세대가 되어버려서 배려와 양보고 예전보다 덜하고 덜 배웠다. 심지어 그런 세대가 부모가 된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얼마나 배려와 양보를 아이에게 가르칠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너무 한쪽만 본 편협한 생각일 수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개인주의가 당연한 문화와 사회에서 이것이 모든 원인이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전보다 배려가 없어진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안내자의 말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모여 인생의 물줄기를 이루게 되고 사소하게 생각한 잘못들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주고 마침내 그것이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창조자와 비평가, 나는?어느 날 위는 플러스전자 박 이사가 부친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장례식장에서 상을 당한 박이사 부부는 허둥대기 바빴고 위는 직장동료인 직업조문객과 부리나케 문상객 접대를 도왔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몰려들었고 위는 집에서도 해보지 않은 일을 이런 곳에서 하는 일이 자존심 상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직업조문객은 그 일을 불평하지 않았고 연신 웃으며 했다. 결국, 위는 직업조문객을 이끌고 와서 따져 물었다. 위의 질문에 직업조문객은 이렇게 말한다.“이날 이때까지 네가 뭘 창조해본 적이 있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남들이 애써 만들어놓은 걸 비평만 하면서 살았잖아. 좀 솔직해져 봐. 창조하는 게 힘드니까 남의 것에 흠집만 내면서 세상을 쉽게 살려고 하잖아. 비평만큼 쉬운게 어디 있어? 대충 보고는 무책임하게 떠들어대잖아. 네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일선 부서 사람들의 심정을 알기나 해?”직업조문객이 위에게 하는 이 말은 사실 나의 마음을 가차 없이 난도질했다.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는 의미보다는 죄책감과 나의 반성에 대한 난도질이다. 나는 제대로 된 창조를 얼마나 했으며 얼마나 숱한 사람들의 창조물에 비평하고 입만 살은 상태로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다못해 취미 생활을 하던지 인터넷 게시물을 볼 때도 내가 쓰는 것보다 댓글 달면서 비평하는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멀리 가고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내가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를 가보자. 내 정보에 게시글과 댓글의 개수만 확인해봐도 내가 비평가인지 창조자인지 판가름 난다. 나는 두 번 말할 필요도 없이 버릇이 없고 오만한 비평가이다. 이날 이때까지 내가 성공하지 못하고 무언가 이루지 못한 건 결국 내가 비평가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창조를 하지 않았고 게을렀기에 비평가로 남은 것이다. 새삼 이 글을 읽고 쓰면서 창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소통위는 계약을 따내기 위해 고객사 부장을 만났다. 빨리 계약을 수주하기 위해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지만, 고객사 부장은 연신 하품만 해댔다. 그때 문득 회사 동료 명함수집가가 부장이 테니스광이라는 말을 한 것이 생각이 나서 위는 테니스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지루하고 하품만 해대던 고객사 부장은 눈을 크게 뜨고 반색을 하며 테니스 이야기를 했고 결국 둘은 테니스를 같이 친다. 심지어 일까지 잘 풀린다. 그리고 위는 깨달았다. ‘소통이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사실 책에는 소통이라고 나와 있지만 나는 관심이라고 이해했다. 2부에서 주인공 위는 별거 중인 아내와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 시작은 관심과 소통이었다. 방금 본 부장과의 일도 결국은 관심과 소통이 좋은 결실을 보게 한 것이다. 내 주변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관심을 주면 좋아하고 그걸 매개로 소통을 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낳게 된다. 심지어 그 와중에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생각해보면 실제로 친구랑 싸우거나 사이가 데면데면했을 때를 보면 우선 내가 그 친구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다. 잘 기억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몇 번의 다툼이 있었고 결국은 싸우면서 진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 뒤로 그 친구의 일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상대에 관한 관심과 소통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유지하고 이끌어 나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싶다. 그 기본적인 것조차 신경 쓰지 않는다면 어느새 주변은 고립무원이 될 것이다.리더의 조건회사에서 애초에 위를 1팀으로 보낸 건 스파이로 보내 1팀을 없애고 2팀에 흡수시키려 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1팀과 2팀의 경쟁은 심해졌고 위는 결국 1팀의 처지를 대변하기에 이른다. 그런 위를 철혈은 한심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안내자는 리더의 조건에 대해 말한다.“리더는 스스로가 뛰어나다는 점을 굳이 입증하려 할 필요가 없어. 출중한 부하들에게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기회만 만들어주면 되는 거야. 유능한 부하들과 일한다는 것 자체가 뛰어난 리더라는 점을 증명하는 거라고. 생각해보게. 자네에게 유능한 후배가 있었던 적이 있는지 싹수가 보이는 즉시 자네가 짓밟지는 않았나?”사실 리더는 회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친구 사이에도 리더가 있고, 가족 가운데에서도 리더가 있고 모임에서도 리더가 있고 학교에서도 리더가 있다. 리더란 이름이 아니라 우리가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지 않아도 저 사람이 이 집의 리더라고 자연스럽게 말하는 그런 사람이 리더이다. 리더는 뛰어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중간에서 조정해 주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조절하는 중간자가 바로 리더이다. 그러자면 나보다 뛰어나다고 지나치게 경계하기 보다는 잘 관찰해서 이끌어나가야 하는 역할인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한 번은 리더의 감투를 쓰게 된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모임에서 리더를 했는데 내가 상대방을 잘 살펴보지 못한 면도 있었지만, 리더가 나인데 내가 더 빛나 보이지 않는다고 질투했던 적이 있었다. 새삼 이 글을 읽으며 나는 얼마나 못난 리더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상대를 살펴보고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 책에서는 계속 강조하고 있다.
21세기 기아는 현재 진행형-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 -처음Ⅰ. 잘사는 나라의 기부지수중간Ⅱ. 현대판 자영농의 몰락Ⅲ 굶어 죽는 사람, 배부른 자동차Ⅳ 비뚤어진 인간의 욕망Ⅴ 부르키나파소의 개혁자 상카라Ⅵ 21세기형 제국주의끝Ⅶ 여전히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다.Ⅰ. 잘사는 나라의 기부지수국제 자선단체인 영국 자선 지원재단이 발표한 ‘세계기부지수 2017’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부지수는 34%로 139개 조사 대상국 중 62위에 그쳤다. 1위 국가는 미얀마(65%), 2위는 케냐(60%)이고 일본은 111위(24%), 중국은 138위(14%)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좀 더 순위들이 달라지지만, 종합적인 결론을 보자면 기부지수는 전 세계에 걸쳐 떨어지고 있고 유일하게 기부와 관련해 평균점수가 향상한 대륙은 바로 아프리카이다. 그렇다면 기부란 무엇일까? 기부란 사전적 정의로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하여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는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대가 없이 내놓는다 ’이다. 나는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읽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인도적 지원과 기부 그 이면에 대가 없는 기부 없고 그렇게 단순하게 지원할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한 기부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 경제적 문제, 순수한 인도주의적 마음 이 모든 것이 갖춰진 기부와 그로 인한 기아해결이 얼마나 어렵고 단순하게만 생각해왔는지 지글러의 이 책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위의 기부지수를 보면 소위 잘사는 북반구 나라들이 상위권을 차지하는 기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체적인 종합지수는 전년도와 비교해보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관심이나 국가 정책상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혹자는 바라기만 하는 기부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선진국 내에도 빈자들이 존재하므로 그들 챙기기도 바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남반구의 기아의 원인을 보면 정치적 내분과 환를 잘 생각해보자. 대한민국도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전쟁의 상흔으로 대부분이 굶어 죽어서 미국 등 선진국의 원조 없이는 먹고살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그 원조 덕분에 우리는 일어설 힘을 얻었고 지금 현재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다. 기부와 기아 과연 소위 가난한 나라 그들만의 문제일까?Ⅱ. 현대판 자영농의 몰락옛 로마 제국은 제정을 시작하기 전 공화정이라는 정치체제를 지녔다. 그 공화정이 아이러니하게 다시 거꾸로 제정을 하게 된 대표적인 원인은 바로 포에니 전쟁이다. 포에니 전쟁은 로마와 카르타고가 벌인 전쟁인데 결과적으로 로마의 승리로 끝이 났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히 로마의 승리로 역시 로마는 대제국이야 할 테지만 이는 로마의 승리이자 곧 공화정의 종말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마는 승리하면서 카르타고에서 노예를 데려왔고 노예를 건사할 능력이 되는 귀족들은 대농장 즉 라티푼디움을 경영하였다. 여기에 피해를 보는 계층이 소위 자영농이다. 그들은 귀족보다 땅도 적고 돈도 적었다. 전쟁 전에는 나름대로 먹고살 만했으나 전쟁 후 노예의 유입은 그들의 생활을 어렵게 했다. 결국, 가격경쟁에서 밀려버린 자영농은 몰락했다. 물론 이를 해결해보려는 개혁가가 등장했다. 바로 그라쿠스 형제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이들의 시도 또한 실패했다. 반대세력이 이들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결국, 로마는 얼마 안 가 제정의 시대로 들어선다. 나는 이 모든 이야기가 옛날 세계사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이 책의 서문에는 현대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무수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 있는 산다가 시장은 시끌벅적하고 활력 넘치며 독특한 향취를 지닌 멋진 곳이다. 이곳의 주부들은 계절에 따라 포르투갈,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에서 건너온 채소와 과일들을 원주민들이 생산한 같은 품목의 농산품에 비해 3배나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좀 떨어진 곳 있는 일들을 보면 그 옛날 로마 귀족이 유럽 연합의 행태와 비슷하고 피해를 보는 자영농은 세네갈의 가난한 주민들과 거의 비슷하다. 시대만 다를 뿐 그 옛날 로마 귀족이나 유럽연합의 정책이나 행동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일 뿐 가난한 자들을 단 1%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Ⅲ 굶어 죽는 사람, 배부른 자동차지구 온난화가 지속되면서 환경오염의 주범인 화석연료에 대한 비판이 거세어졌다. 그 결과 신재생 에너지가 각 나라에서 연구되고 상용화되고 있다. 미국은 기후변화도 예방하고 질식위험도 줄어드는 식물 연료 즉 바이오 연료를 시도한다. 바이오 에탄올로 굴러가는 자동차에 평균 50리터 정도의 연료 탱크가 달려있는데 여기를 채우려면 옥수수 358킬로그램을 태워야 한다. 옥수수 358킬로그램이면 옥수수가 주식인 잠비아나 멕시코 어린이 한 명을 1년 동안 배불리 먹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자동차는 한 대가 아닌 여러 대며 수많은 옥수수는 오로지 자동차를 위해서 태워지고 배를 불리고 있다. 지글러는 매일 지구상에서 3만 7000명이 기아 또는 굶주림에 따른 합병증으로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농업 연료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곡물을 태우는 것이 반 인류 범죄에 해당한다고 써놓았다.솔직히 이 부분을 보며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지글러처럼 분명 사람이 죽어가는 이 상황에서 자동차라는 도구를 위해 엉뚱하게 옥수수를 태우는 미국을 보며 정말 철저한 이기주의라는 생각을 했다. ‘자원도 풍부한 나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환경에 관련한 생각을 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식량을 대상으로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비판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들은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굶주리는 나라와 달리 수많은 인력과 기술이 있고 분명 환경과 관련한 더 좋은 생각과 실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옥수수가 아니어도 됐을 것이다. 게다가 꼭 다른 나라 사람을 도와주는 게 아니더라도 자국민의 빈자를 위해서 옥수수를 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적어도 미국인이든 다른 나라 사람이든 지구 인류 한 사람이살아야 해? 도대체 언제까지?Ⅳ 비뚤어진 인간의 욕망‘언제까지 도와주기만 해야 하는가? 그들은 언제까지 받기만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예전부터 쭉 해왔던 생각이다. 내가 아주 어릴 때도 소말리아는 가난한 나라였고 성인이 된 지금도 소말리아는 가난한 나라다. 가난이 잠시 잠깐 사이에 해결된 문제는 아니지만, 세계는 꾸준히 소말리아를 비롯한 기아와 가난에 허덕이는 나라들을 지원해왔고 몇십 년 동안 지원해왔으면 적어도 개선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모습은 적어도 내 눈에 비친 모습은 변한 게 없다. 소말리아의 상황을 보면 국토 대부분이 사막과 바위투성이로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와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두 지역이 통일되면서 독립했다고 한다. 1969년 시아드 바레 장군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을 살해하고 모가디슈에서 권력을 장악했다. 1980년대 말에는 각지의 군벌들이 바레 장군에게 반기를 들었고 장군은 군사력을 동원해 적대자들을 학살했다. 바레 장군의 통치권은 90년대에 모가디슈만으로 제한되었다. 소위 윗사람들이 끔찍한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을 때 소말리아 북부에서 남부에 걸쳐 기근이 퍼졌다고 한다. 결국, 1991년 유엔은 평화유지활동단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군벌 우두머리들과 바레 장군 신봉자들이 선박과 화물차를 약탈하고 국제구호단체 대표자들을 인질로 잡고 몸값을 요구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이들을 도우려고 병력 3만 명과 지원을 위해 소말리아에 파견했으나 실패하고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의 지원마저 실패로 돌아가자 미국민은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귀환하고 말았다. 소말리아의 사태를 보면 단순하지가 않다. 지형적 불리함, 자연재해, 불안한 제도, 그리고 군벌끼리의 갈등 등 상당히 복잡하다. 그러나 결국 그 뿌리를 파고들어 가보면 결국은 권력을 잡고 재산을 착복하겠다는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이 수많은 소말리아인과 아프리카인들이 굶어 죽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이다.이런 나라는 비단 소말리아 하나만은 아력해도 시일이 걸린다. 그런데 끊임없이 내전을 시도하고 도와주는 사람과 단체 나라마저 거부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쓰려고 머리를 쓰고 있으니 아프리카가 아직 그 상태인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가난한 자들의 불행함과 굶어 죽음이 안쓰러우면서도 마냥 안쓰럽지만 않고 비판적으로 보는 까닭은 바로 소수의 욕심이 결국 아프리카를 죽게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원을 해도 그들 내부가 바뀌지 않으면 결국은 소용이 없는 것이다.Ⅴ 부르키나파소의 개혁자 상카라‘상카라’라는 젊은 개혁가의 이름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세계사나 언론에서 주목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상카라라는 사람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얼마나 안타까운지 알게 되었다. 토마스 상카라는 부르키나파소사람이다. 그는 1983년 쿠데타를 일으킨 뒤로 나라의 국정을 맡았고 저자 지글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먼저 그의 나라 부르키나파소는 원래 프랑스령으로 1960년에 독립했다고 한다. 국토 27만 평방킬로미터로 인구는 1500만 명 정도이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가 그렇듯 부르키나파소도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살고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구 종주국인 프랑스에 휘둘려 정부가 무력하고 부정부패가 심했다. 상카라는 나라가 자급자족을 할 만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어도 사회정의가 이룩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개혁에 나섰다. 여러 가지 일했지만 우선 놀고먹는 공무원을 줄이기 위해 국내 30개 행정구를 자치제로 전환해 주민들이 그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다. 게다가 인두세를 폐지하여 세금으로 재산을 강제로 빼앗기는 일을 줄였다고 한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토지의 국유화이다. 국유화라고 하면 공산주의를 생각하기 쉬운데 상카라는 개간 가능한 토지의 국유화를 시도하여 토지대장을 제대로 작성하고 가가 가정에 수요에 따라 재분배하여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4년 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