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그만 감동하여 천기를 누설하는 경향이 많다. 박 도사도 어려운 상황일 때 자기에게 도움을 준 장덕진 장관의 요청을 거절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의 제갈공명도 천하대사 운운하는 유비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재야에서 조용히 수도하여 틀림없이 신선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조선중기의 토정 선생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잠언을 남긴 것이 아닌가 싶다.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는 말도 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잠언도 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염두에 두기 바란다. 명철보신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청허 선사의 제자가 선사에게 물었던 다음과 같은 질문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선생님! 선생님은 그렇게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왜 세상에 나가서 경륜을 펼치지 않으십니까?" "너 영화 본 적 있지? 한번 본 영화를 또 보면 재미가 있던, 없던? 한번 본 영화를 나더러 또 보라는 말이냐?"==외로웠고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남의 인정에 목을 매면서 살았다. 학교나 교회 직장 어떤 조직에 들어가면 새로운 사람들에 관심을 보이는데 나는 그 관심에 무의식적으로 엄청난 반응을 하면서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한 마디로 엄청나게 오버를 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나도 내가 부끄럽고 이상하고 조절이 되지 않았다.얼마나 애정에 굶주렸으면 그랬을까? 아이가 제대로 자라는데는 얼만큼의 애정이 필요하길래 나는 이럴까? 그래도 할머니가 아껴주셨는데 그것만으로는 안되나 보다. 그런 인정욕구로 나는 공부를 하고 일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 욕구에 비해서 나는 요령이 부족하고 작은 일에서 쉽게 마음이 상했고 주거니 받거니 독립적이고 상화 호혜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인색하게 굴었다. 사람들은 내가 얌체 같았을 것이다. 받으려고만 하고 주지는 않으니까. 내 계산에 따르면 나도 준 것 같았는데 내 계산과 사람들은들어왔을 뿐이다. 거기에서 오버하면서 인정받으려고 애쓰면서도 요령이 부족해 미운 털이 박히는 나 자신을 보고 그런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은 가슴 아픈 경험이었다.사람들은 그 사람 만큼의 고통이 있는 것 같다. 아이가 있는 여자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서 많은 고통을 느끼고 자신의 삶이 어디론가 가버린 것 같은 고통을 느낄 것이다. 나는 내가 벌이지 않은 것으로 많은 고통을 받아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한 그런 고통은 피했다. 30살에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내 생각과 달리 매우 힘들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런 이야기를 잘 해주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알면 여자들이 그 길을 가지 않을까봐. 나처럼 말이다. 역시 이후에 많은 여성들이 결혼제도의 부당함과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한계에 봉착하는 일인지(좋고 경제력이 있는 시부모님이 없는 한, 있어도 관계에서 오는 그 모든 고통) 깨닫고 그 길을 자발적으로 가지 않게 되었다. 돈 많은 집에 시집가서 윤택해도 그 집에서 돈 받아 쓰려면 직장 생활을 방불케 하는 희생과 봉사를 해야 하고 퇴근도 정년도 없이 노력해야 한다. 결혼할 때 받은 돈은 다 빚이라는 말을 대학교 때 듣고 내 돈으로 결혼하리라 아끼고 모았다. 미리 미리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는 인생. 그게 나야.==그 기도발 잘 받는 델포이 신전의 기둥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역새 신들로부터 내려온 점사, 즉 신탁 가운데 최고의 신탁이엇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 그것이 최고의 통찰이었따. 점의 궁극적 관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통찰에 있다. 자기를 통찰하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신탁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많은 술객 도사들이 빠지는 함정이 이 통찰의 부족이다. 다른 사람 점은 잘 보아주는데, 정작 자기 자신의 점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뻔한 함정에 빠지곤 한다. 이 약점을 방지하기 위해서 술사들은 크로스 체크를 하기도 한다. 서로 상대방의 팔자를 보아주는 방법이다. 인간은하는데도 인간이 자신을 알 수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회사에서 만난 친구들이나 선배들이나 상사도 남들에 대해서는 쉽게 파악하는데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대단한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 그래서 남이 나를 재단하면서 하는 말에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나에 대해서 저렇게 단정할 수 있을까? 나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겉으로만 판단하면서도 막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아무래도 그 사람은 자신의 하는 말이 자신에게 해당되며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하는 줄도 모르고 나에게 막하는 말, 저주들이 자신에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는 바보인가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티는 내지 않았다.첫직장의 사수는 처음부터 나를 짜증나게 해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지도 내가 싫고 나도 지가 싫었다. 대놓고 외모를 폄하하고 6개월 내내 자신이 조지 졸업에 상을 받고 졸업했음을 자랑하고 입만 열면 자기 자랑으로 나를 죽이려고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자신이 회사의 임원급으로 될 장래가 촉망되는 수준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꼴랑 서른에 자신이 팀장도 무엇도 안되었다는 사실에 매우 괴로워하면서 비어 있는 팀장자리를 노리면서 회사에 자기 이미지를 만들어 어필하려고 낮에는 놀고 새벽에 이메일을 보내고 이상한 짓을 많이 하고 정치적으로 굴었다.결국 회사에서 팀장 자리를 주긴 주었는데 팀원들 중에 팀장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은 없었고 팀장으로서 뽑은 신입이 줄줄이 퇴사하고 5년이나 같이 일한 나도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면서 퇴사를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은 타고난 지도자 감이고 능력있고 뛰어난 사람인데 내가 잘못해서 자기 이미지가 퇴색되었고 그래서 피해를 보았다는 것이다. 하이고 회사에 내 이미지 똥으로 만드록 내가 회의 석상에서 섹스 어필한다고 소문낸 건 누군데?아무튼 회사에서 악으로 깡으로 팀장 자리를 버티다가 나중에는 회사에서 조치를 취해서 내가 퇴사하고 4~5년 후에 팀장에서면서요....나는 어렵게 나를 지금도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라이프 스타일을 바꿨고 결국 평안에 이르렀다. 내가 나를 아는 것을 가장 방해한 것은 주변 사람들이었다. 주변을 정리하고 나의 판단, 전문의의 지지를 곁들인 그런 결과로 내 삶을 살아나가고 있다. 남편은 나를 높이 평가하고 정신분석 선생님도 상담 선생님도 그랬다. 그렇지만 실제로 내가 가진 것과 내 심리적인 상은 다르다. 다른 사람들의 외적인 평가에 맞추어서 사회 생활을 한 것이 나에게는 지극한 고통이었다. 지금은 그것이 설사 저 평가된 것에 맞추는 것이라고 해도 내가 나를 이해한 대로 마음 편한 선택을 하려고 한다. 만일 내가 뛰어나다면 어느 경로에서는 빛을 발할 것이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가게 될 것이라 믿는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가 무슨 대단한 인간도 아니고 그저 소시민인데 대단한 업적도 성취도 재산도 일구거나 남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마음이 즐겁고 평안하게 살다가 죽고 싶다==12지와 운명의 관계를 잘 설명해주는 예가 '당사주'라고 불리는 운명 감정법이다. 당나라 때 유행한 사주라고 해서 당사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는 완벽한 12진법을 사용한다. 자는 귀하다는 의미의 천귀에 해당한다. 축은 고생한다는 의미의 천액, 인은 권력을 잡는다는 천권, 묘는 참을성이 부족한 천파, 진은 꾀가 많은 천간, 사는 글을 좋아하는 천문, 오는 복이 많다는 천복, 미는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천역, 신은 외롭다는 천고, 유는 과격함을 상징하는 천인, 술은 사교성을 의미하는 천예, 해는 건강함을 의미하는 천수에 배대시켰다.==이에 따르면 나는 외롭다는 신,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미, 글을 좋아하는 사, 건강함을 의미하는 해를 가지고 있다. 초년에 정말 많이 외로웠는데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고 큰엄마가 미워해서 서럽고 계모 밑에서 외롭고 서러웠는데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계수에 년지 신은 힘을 돋운다는데 내가 아니라 내 앞에 있는 계수인 남동생을 도왔다보다. 어려서부터말년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초년의 고생들을 다 잊힐 것 같다. 첫 끝발이 개끗발이라는 말도 있고 초년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있으니 중년과 말년을 기대해보자. 불운은 40년 이상 더불어 오지 않는다.오늘도 늦잠을 자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불행은 나쁜 사람들과 함께 온다는 것이다. 어려서는 자식을 버리고 떠나는 어미와 너만 내팽개치냐 나도 내팽개친다하는 아빠를 만나서 정말 고생이 많았지만, 이제 나는 사람을 가릴 수 있다. 회사에서 나쁜 인간들을 한 눈에 알아보고 육감으로 느낄 수 있었지만 그런 인간을 떼어버리는 방법을 어려서 배우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인간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습관이 있어서 고전했다. 예리하게 나를 살피면서 약점을 캐려는 인간들, 말을 악하게 하면서 남의 자존감을 훔치는 인간들. 직장에서 만나서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았다면 멀리할 수 있을텐데 싶었던 인간들. 그런데 직장인데도 잘 떼어내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부터 그런 인간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면 상처입지 않았을텐데. 나는 그들의 선처를 바라고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여 자리를 내어주고 많은 정보를 주고 피해를 자처했다. 끊어내는 방법을 몰랐고 알았다고 해도 내면의 힘을 기르지 못했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더 이상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남편과 함께 다니면 안전하다.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도 이상한 사람들에게 취약한 나를 생각하면 속상하다. 혼자 다니면 한의원에서도 희롱을 당하고 희롱을 당한 줄도 모르고 남편과 다니면 그런 희롱을 당할 일도 없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남편만 의지할 수도 없으니 힘을 키워야 한다. 너무 어려서 나쁜 사람들에게 학대를 당하는 것은 어려모로 손해가 많다. 학대 받은 사람들은 거절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정말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결국에는 그런 사람들을 떼어내거나 내가 떠나거나 차단할 힘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내게 한 행위는 모두 그들의 것이므로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내가 처음부터 상대를 하지 않아야 했던 인간들을 많다.
빈센트 나의 빈센트/정여울 글나는 빈센트의 그림이 누구에게도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빈센트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심리학적 몸부림이자, 자신의 삶이라는 스토리텔링을 가장 아름답고 치열하게 가꾸는 강렬한 의지였다고 믿는다. 빈센트는 동료 화가들과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무시당하고 배척당했으며 비난받았다. 심지어 그는 부모의 사랑을 받는 데도 끝내 실패했지만, 그 쓰라린 트라우마를 예술을 향한 열정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사랑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해 괴로운 모든 순간에도, '어떻게 해야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을까?'라는 필생의 화두를 물고 늘어졌다. 자신의 그림이 우울과 발작의 고통 속에서도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그는 슬픔의 무게를 조금씩 내려놓으며 생의 의지를 불태웠다. 나는 빈센트의 우울과 광기 자체가 그토록 위대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광기와 우울로부터, 트라우마의 무시무시한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해내려는 강력한 의지가 그의 그림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아픔으로부터 치유되기 위한 그 모든 몸부림이 빈센트의 예술 세계였다. 그는 '아품을 재료로' 예술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아픔에 맞서기 위한 불굴의 용기'로 그림을 그렸음을 믿는다.-> 정여울 작가의 빈센트에 대한 이해에 감명받았다. 정여울은 천재야. 빈센트 반 고흐를 띄엄띄엄 보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척이나 안된 사람이다.그는 타고난 성격이 사회성이 매우 떨어졌고 카톨릭이 번성한 곳에 개신교 목회를 한 목사의 아들이었다. 위험해서 그런지 아이들은 집에서만 놀았다. 그런 환경도 그런 성향에 불을 지른 것 같다. 같은 조건에서도 성격마다 반응이 다르다. 그의 삶에서 필사적인 몸부림을 본다. 나도 한때 그런 몸부림을 친 적이 있다. 공부에서 희망을 보고 나는 뼈를 갈아서 공부해서 시골에서, 정신나간 가족 구성원에게서 벗어났다. 빈센트가 그림에 그렇게 목을 맨 것은 모든 사회적 시도에서 거부를 당하고 유일하게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이 그림 전문의가 "그런 환경에서 아빠보다 몇 천분의 일이나 적은 확률로 그런다는 것만으로도 너의 태어난 소임은 다한 것이다"라고 말했다.태어난 소임이라. 인류의 일정 부분은 조현병으로 태어나고 다운 증후군으로 태어난다. 인류는 하나로 묶여 있어서 누군가는 져야할 짐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우리 집안에 흐르는 ADHD라는 증상, 이상하게 사람이 성장하지 않고 끝없이 떼를 쓰면서 사람들에게 응석을 부리고 괴롭히는 그런 증상을 일정 부분 물려받았다. 10살 즈음에 부천에 사는 고모 집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고모는 당시 50대였는데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아빠 집안 사람들이 인물이 정말 좋았다. 고모부도 상식적이고 예의가 바르고 다정한 분이었다. 나를 차별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선하게 대해주셨다. 그런 고모부가 고모에게 가끔 애를 혼내듯이 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말을 한마디 실수해도 애를 혼내듯이 교정하고 바로잡곤 했다. 어릴 때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고모의 전반적인 성향을 알고 이해를 했다. 고모도 ADHD가 있어서 성정이 충분히 어른으로 자라나지 못했던 것이다.아스퍼거인 사람들이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들은 아스퍼거가 아닐 확률이 있다. 미혼모인 아스퍼거도 많다. 어리숙하니 당하는 거다. 아이는 엄마와 어릴 때 비숫한 성향과 수준을 보이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서 어른의 사고를 한다. 전두엽이 발달하는 것이다. 아이가 자라나도 엄마는 여전히 아이로 남는다.다른 친구들에게 일어나는 정서적인 공감의 발달이 나에게는 잘 일어나지 않고 역지사지가 잘 되지 않고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의 감정이 어떨까? 이런 계산이 잘 서지 않는다. 기도를 많이 하면 나아지겠지, 말씀을 많이 읽으면 나아지겠지, 사회 경험을 쌓으면 나아지겠지 계속 희망을 걸고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았다.전문의에게 "회사에서 상사가 나를 애라도 매도하는 것이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라고 했더니 나는 애가 아니라고 했다. 누구보다 생각도 깊고 배려도 많은 속 깊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INTP이고 ADHD가있어 가장 커다란 결핍은 마음 둘 곳 이 없다는 것이었고, 그림에 있어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모델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가난했던 빈센트는 초상화 모델을 구하는 데 매번 애를 먹었다. 간신히 모델을 구한다고 하더라도, 빈센트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던 모델들은 자신들의 상상과 너무도 다르게 그려진 결과물을 보고 기겁하여 도망치기도 했다. 빈센트가 한 번에, 빛처럼 빠른 속도로, 망설임 없이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이유 중 하나도 모델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사람을 통해서 해야 했던 과거에 빈센트처럼 대인관계가 힘든 사람은 살기가 너무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은 빈센트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공유하고 인터넷으로 팔면 공감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부모님은 목사라면서 어떻게 이렇게 연장이 부족한 큰 아들을 방치할 수 있을까? 목사치고 너무 인색하다. 그런 역할을 테오에게 떠밀고 방임하다니. 사랑이 부족한데 어떻게 개신교 목사가 되었을까? 나중에는 꽤 성공한 목사였다면서 넉넉했을텐에 왜 그리 아들에게 잣대만 들이대고 사랑하고 이해해주지는 않았을까? 이라는 영화에서 목사 아들인 둘째아들을 브레드 피트가 역할을 맡았는데 낚시를 예술의 수준으로 하고 도박을 하고 원주민 여자를 만나고 빚을 감당할 수 없이 크게 져서 나중에는 총에 맞아 죽었다. 그 아버지는 마지막 설교에 아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나는 오래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너무 많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는 있다.의지할 사람이 없었던 나는 고양이를 키웠다. 고양이에게 마음을 두고 친구같이 지낸다. 지금은 15살이나 되었는데 다행히 아직 건강하고 고양이가 매우 똑똑해서 말을 거의 알아듣고 대답도 잘 해준다. 나를 깊이 사랑하고 나를 잘 따른다. 미물도 친구가 되면 힘이 된다. 부모님은 나를 공격할 때마다 책잡을 거리가 없으면 고양이를 키운다고 책을 잡았다.아내도 있고 그는 매력이 많아서 빈센트가 구하지 못하는 모델도 쉽게 말로 설득해서 구하고 심지어 음식도 잘했다. 빈센트는 못하는 것이 너무 많고 그림만 그릴 줄 알았는데 당시에는 동료 화가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빈센트는 정말 설 자리가 없었구나. 내가 생각하기에 나의 유일한 자본은 영적이고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나의 이런 능력을 상사가 인정해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말이 안통하는 여자였는데 S가 크게 발달한 현실적인 여자였다. 그 여자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영적인 정신적인 눈이 없었다. 자기 수준으로 나를 판단하면서 나를 대놓고 '애'라고 몇 년간이나 내 평판을 망쳐놓았다.내가 회사를 나갈 각오로 불러내서 4시간 동안 따진 적이 있는데 앉아마자 "너는 애다, 너는 이렇다 저렇다"나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늘어놓았다. 그 동안 그런 일방적인 매도를 하면 그냥 묵묵히 듣고 있었는데 그날은 "저도 부장님이 애라고 생각한다"고 다른 말에 대해서도 "저는 부장님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한테 투사하지 마세요."라고 대들었더니 눈이 동그래지면서 입이 오므라졌다. "니가 그런 말 할 줄 아는 애였어?"라는 뉘앙스였다.내가 자기한테 쪽주면서 소리지는게 자신은 챙피했다길래, "부장님이 저한테 평소에 한대로 똑같이 했는데 기분 나쁘셨어요?"라고 했더니 또 입이 오므라졌다.7년 동안 쥐잡듯이 하는 걸 내 부족함을 생각하고 부서장이라는 입장을 생각하고 나이도 10살 가까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아이 엄마라는 것을 생각하고 회사의 입장과 서열을 생각해서 묵묵히 견뎠더니 나를 진심의로 병신으로 믿는 것 같았다. 4시간 동안 고래 고래 소리지르고 한 마디도 안지고 따졌더니 나중에 상사는 "제가 조심할게요"라고 했다. 그렇게 상사를 잡으니 상사만 믿고 까불런 낙하산도 대번에 예의발라졌다. 역시 우두머리를 치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어.그 이후로 상사는 자기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나에게 또 소리를 질러서 내가 또 소환해서 1시간 이야기하고 자기가 저번에 당한 것이 억울했언제나 자유를 갈망했고 때로는 많은 사람 앞에서 흥분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교사들은 빈센트의 꺾이지 않는 자존심, 돌발적으로 터져나오는 분노에 불편해했고 빈센트의 이런 성격이 선교사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자유로운 빈센트는 할 게 예술가 밖에 없구나. 우리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목수 일을 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사회성이 정말 없고 그 일도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하길 힘들어한다. 상황이나 사람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너무 인색하고 옹졸하고 치우쳤다. 사람들을 악인으로 몰아세우고 파렴치한으로 내몰면서 자신들의 잘못은 인지하지도 인정하지도 않고 피해자 노릇만 한다. 그런 부모들은 자신들의 삶이 버겁기 때문에 겉으로 잘 성취해나가는 나는 삶이 수월한 줄 알고 조금의 틈만 있어서 말 한마디로 짐을 떠넘긴다. 부모라서, 불쌍해서 하나 둘 받아준 짐은 늘 당연하게 생각되었고 거절을 하면 나쁜 년이 되었다. 나도 내 인생을 살긴 힘든 성격 구조를 물려받았는데 부모가 되어서 어찌 자기 입장만 생각할까? 어린 내가 없는 자원으로 얼마나 도시에서 고생할까 따위는 안중에 없다. 자기 짐이 제일 무겁고 제일 힘들다. 안됐기는 하지만 50년 60년 70년 살고도 그렇다면 그것은 자신이 지어올린 삶의 결론이 아닐까? 사회성이 떨어지면 정말 살기가 힘들다>빈센트는 고통 속에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고, 캔버스라는 거대한 밭에 언제 자랄지 모르는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그림을 완성해간 열정은 창조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는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다. 앞만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눈앞에 주어진 많은 밭에 씨를 뿌리기를 거부하지만, 씨 뿌리는 사람의 힘겨운 노동을 통해 그 밭들은 위대한 결실을 맺는다. 씨 뿌리는 사람운 어느 자식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빈센트가 브뤼셀에 머무는 동안 써놓은 기도 중의 한 대목이다. 빈센트의 작품들은 그렇게 화가 자신이 뿌려놓은 희망과 사랑을 품은 씨앗의 위대한 열매가 되었다.-> 고통속에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박우란 지음의존 욕구는 쾌락을 유지하고자 하는 충동만큼이나 집요합니다. 의존성이 강한 엄마들은 대부분 피해자와 약자 위치에 자신을 놓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의존 욕구 이면엔 지배 욕구가 있습니다. 내 욕구를 타인이 채워 주어야 하는 것잉고 그로 인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도 타인이기에 늘 피해자 일수 밖에 없지요.배우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면, 배우자가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아 만족 시켜 주지 않으면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러면 그 기대나 요구는 아이에게로 이어집니다. 또한 스스로 책임지고 노력하기 보다는 책임질 수 있는 역량과 자원이 없다고 생각하고 어떤 결정과 선택을 하기를 두려워하지요. 이는 단순히 자신을 이해시킨 것처럼, 자신이 나약하고 미약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고 사색하며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고 책임을 지는 과정이 매우 고단하고 외롭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의존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해서 결코 게으르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지만, 모든 에너지와 시선은 외부를 향해 있습니다. 오직 외부에서 원인을 찾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고단한 노력을 멈추지 않지요. 배우자나 가까운 가족,외부 자원에 위함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편의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지요. 삶의 모든 것을 배우자나 권위 있는 대사에게 의존하면서 그들이 해결하도록 주도권을 내주는 듯하지만, 사실 이것은 간접적인 지배와 통제입니다. 물론 의존성을 선택하여 편의성을 얻는 대신, 육체적 희생과 헌신이라는 대가가 따라붙습니다. 이 희생과 헌신으로 결코 없어서는 안 될 대상으로 자신을 위치시키고 강한 존재가 자신을 지킬도록 만들 수 있지요.이렇게 희생하고 참고 헌신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결핍과 좌절인 경우, 원망과 원한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간혼 통제적인 남편과 함께 살면서 지긋지긋해하고 늘 피해자로서 고통을 호소하지만 은근히 그 통제를 유지하려고 하고 심지어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 못한다는 것은 타인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지요. 나를 적절한 감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거나 수용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내가 관계나 회사 생활에서 고전한 것은 나를 수용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그 불이 상사와 주변 동료들에게 옮겨 붙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혼자 있으면 생각이 맑고 많은 성과도 내곤 했는데 어려서 방치되면서 제대로 관계안에 진입한 적이 없고 처음 제대로 사귄 사람이 계모였는데 그 여자는 매우 가학적인 여자였다. 그 여자는 동네에서도 따돌림을 당할 정도로 대인관계가 나빴는데 그 여자로부터 배운 말과 행동이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많이 미쳤다. 관계를 너무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잘, 크게 반응하려고 무의식적으로 오버를 해서 관계에 장악당하고 기세에 눌려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의식할 수도 없었다. 내가 왜 사람을 그토록 크게 생각하고 무섭게 생각하고 저자세로 대했을까? 싶지만 그것 또한 엄마 없이 자란 여파라고 내 몫이라고 수용하게 되었다. 그런 점을 수용하고 너무 거대하게 느껴져서 나를 삼킬 것 같은 관계에는 진입하지 않기로 했다. 건강하고 좋은 사람들은 좋지만 나를 상대해주지 않고 계모처럼 가학적인 여자들은 살모사처럼 살그머니 다가와서 나를 파악하고 이용하려고 든다. 생각보다 세상에는 그런 여자들이 많았다.내가 불안하고 내가 내 문제를 진단하지 못하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지 못하고 수용하지 못해서 내가 던지는 말은 다 과녁을 비켜나가는 엉뚱한 화살이었다. 결국 제대로된 관계를 아무리 많은 시간을 같이 지내도 맺지 못하고 좋은 친구들은 나를 보고 피하고 홀로된 적이 많았다. 그 소외감, 의연한 나는 다시 혼자서 생산성을 내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러면 내가 가진 것에서 득을 보려는 인간들이 살모사처럼 또 살그머니 다가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관계의 패턴에 지쳐서 옹벽을 치고 사람들과 멀리 산다. 그랬더니 의외로 나는 행면서 그 보상을 요구하는 아빠가 나에게 있고 내가 일군 성과를 마치 자기 것인냥 내놓으라고 어깃장을 놓는 배다른 형제들이 있다. 자녀로서 제대로 사랑받지도 돌봄 받지도 보호받지도 못하고 얻어 터지고 울음을 견디면서 그 시간을 기도와 인내로 가난과 열악한 환경을 견디면서 공부한 나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그동안 나는 계모가 계모라는 사실을, 아빠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다른 동생이 사실은 내 동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마음으로 수용하지도 못했다. 나 자신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나에게 일어난 부정적인 일들도 하나 둘 인정하면서 그래 엄마가 없고 ADHD를 물려받아서 내가 받아야 할 몫에 그것도 있구나 하고 아프지만 의연하게 하나하나 수용하고 있다. 그런 수용을 거치면서 나는 현실에 조금 더 발을 내린 기분이 든다.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했을 때는 혼란스러워하면서 그들의 요구와 학대를 받아주고 있었다. 이제는 인정하고 수용했기에 그들을 상대할 이유도 도와줘야 할 이유도 없음을 마음 깊이 깨닫는다.이전에는 내가 틈을 주었기에 그들이 그 틈을 타고와서 나를 괴롭히고 요구하고 착취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실 나를 알지 못하는데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나를 안다고 생각하면서 나름 나보다 나쁜 머리로 나를 착취하려고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웠다. 나는 그들보다 지능이나 모든 면에서 뛰어나기에 그들이 이루지 못한 그 모든 것을 맨몸으로 이루었다. 그들은 그것을 전혀 인정하지 않기에 나를 잘 알지 못하고 그들이 놓은 함정에 내가 아니라 스스로 들어가 눕고 자기 인생을 망치곤 했다. 내가 그들을 도우면 그들의 삶은 한결 편할 것이다. 그래왔고 그것을 알기에 자꾸만 나를 갈아 넣어 자신들의 삶을 편하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생해서 해주었을때 돌아오는 것이 다만 원망이라면? 피가 온전히 섞인 오빠나 아빠나 친엄마도 아닌 피한방울이 안섞인 남인 계모와 그 자식들이라면? 내가 왜 쌩판 남에게 그런 희생 위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처가 많은 엄마일수록 자녀를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순정 씨가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자신의 상태를 접촉할 수 있었다면 일단 멈추고 딸을 우선 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딸에게 벌어진 고통과 불행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찬찬히 탐색하며 방법을 모색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지요. 우리 인간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취약해져 있을 때는 무엇을 보호해야 할지, 누구를 보호해야 할지, 지금 내가 무엇을 보호하고 있는지를 전혀 가늠하기 힘들지요.== 회사를 나올 때 나는 정말 상태가 좋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나를 보호하고 있는지 조차 혼란스러웠다. 계모에게서 도망쳐야 한다는 간절한 바램이 옮겨와 상사가 악마 같이 느껴지고 저 여자의 착취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상적인 38살의 차장급이 가지는 마음 가짐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당시 명백히 나의 심리적 현실이었다. 그 당시 결혼을 하는 여동생이 계모의 요구를 나에게 전달하면서 정신 사납게 하고 괴로우니 전달하지 말라는 말을 허투루 듣는 여동생을 찾아가 따지기도 했다. 계모의 성정은 난리 난리를 치는 성격이고 나는 힘들고 어려워도 견디면서 기도하고 좋게 할 말만 하는 스타일이라 누가 보면 내가 계모를 괴롭힌 것을 보일 것이다. 나는 인격적으로 좋게 견디면서 대했다는 이유로 오히려 철딱서니 없이 나만 아는 언니가 되었다. 나도 여동생의 입장을 품어줄 여유가 없었다. 지금 내가 죽게 생겼는데 어떻게 너를 보호하겠니.여동생은 앞에서 내가 당한 것을 다 보고 자라서 자신은 그렇게 당하는 것이 두려웠는지 내가 결혼하고 서둘러 별로인 남자와 결혼을 했다. 내가 없어지고 부담을 지지 않자 그 부담을 직장을 다니는 여동생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아빠가 화를 내면서 요구하고 떠넘기면 울면서 받기만 하고 별 반항을 하지 못했던 나와는 달리 어려서 계모가 나까지 동원해서 길렀던 여동생은 할 말은 하는 편이었 아들을 대상으로 며느리를 피말리고 며느리가 도망가면 손주들을 키우면서 피해자를 또 자처하면서 아들을 조종하면서 살겠지. 그래 화이팅!!==엄마의 시선 밖에 머물던 아이, 그러니까 엄마의 사랑의 시선에서 은밀하게든 직접적이든 배제된 상태로 자란 아잉는 성인이 되어 연인에게 그 시선을 요구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요구가 아이에게 이어집니다. 언제까지고 엄마, 아빠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게 하거나, 나중에 커서도 엄마, 아빠를 지금처럼 똑같이 사랑해달라고 장난인듯, 진담인 듯 요구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그 요구가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습니다. 이처럼 사랑을 주어야 하는 입장인데 역으로 아이에게 사랑을 요구하는 부모는 안전하지 않은 시선과 사랑의 부재속에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은 주변과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어려워하고 누구에게도 선뜻 마음을 열거나 요구하지도 않지요.대신 아이만큼은 자신들을 버리거나 소외시키지 않을 절대적 약자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서는 어른스럽고 성숙하게 처신하는 그들도 자신의 아이 앞에만 서면 웅크리고 있떤 무의식 속 결핍 투성이 아이가 튀어나와 거칠게 그리고 끝없이 요구를 합니다. 아이는 거절할 수 없는 아이의 요구에 옭아매집니다. 부모는 자신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권력자이기 때문이지요.==아빠가 우리에게 그랬고 내가 회사에서 팀장일 때 팀원들에게 이랬다. 지금 생각하면 수치심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었다. 거하게 복수를 당했다. 이 세상은 "내가 사랑 받을거야"의 각축장이 아닐까? 인정 욕구의 끝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누구든 나이가 몇 개이든 어떤 자리에서 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하는 것은 그 심리적인 상태가 유아기적 인정 욕구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아이를 낳았으면 내가 그랬겠지.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다. 온전히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해서 다행이다. 딸이 있었다면 딸을 시기하고 아들이 있었으면 아들과 끝없이 융합되려고 하고 남편을 소외시켰=
틱낫한 지금 이순간이 나의 집입니다누구를 사랑할 때 당신은 그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가 행복하지 않으면 당신은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참 사랑은 깊은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사랑은 이해의 다른 이름이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 이해 없는 사랑은 다른 사람을 괴롭힐 따름이다.대표사진 삭제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이번에 친구의 지배적인 성향을 인지하고 정리하면서 내가 친구를 잃었구나..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실제로는 친구가 아니었던 친구라고 생각했던 내 결혼식에도 오지 않던 친구. 다른 친구들 결혼식에는 대구에도 부산에도 광주에도 가던 친구. 이 친구는 내가 행복한 것이 싫었나보다. 그러면 나는 그 친구가 행복하기를 바랐나? 나는 그 친구를 제대로 이해했나? 그 친구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했나? 나도 나 외에는 관심이 없고 내가 그러며 남도 그러려니 하니 나도 남의 행복을 바라 남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남을 이해하고 돌볼 수 있는 수준으로 아직 성장하지 못했고 나는 나밖에 모른다.발달과정에 원만하지 못했으니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관계에서 양해받을 수준이 아니기에 관계로 나아가지도 사회생활을 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래도 낙심치 않고 계속 창의적인 일을 해나간다.남편이 행복을 바라고 있는지 남편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미성숙해서 한 평생을 보내도 남펀에 대해 잘 모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향한 그 많은 자발적인 헌신과 돌봄...나는 남편과의 삶의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고 남편이 지치지 않기를 바란다.그리고 내가 부단히 성장해서 남편이나 주변 사람들을 더 이해하고 돌볼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면 좋겠다.이는 명백히 내 수준이지만 또 내탓을 아니기에 나를 별로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의 미발달과 미성숙으로 인해서 주변에 폐를 끼친 것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상태가 좋지 않았을 뿐가끔 정상적인 그 친구가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교묘하게 지배적으로 굴면서 가스라이팅하는 것을 잡아낼 힘을 길렀다. 이전같으면 또 모르고 넘어갔을텐데 이번에는 다 느끼고 실체를 파악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친구들은 일찌감치 그 친구의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나만 멋도 모르는 아이처럼 사탕 발림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여태 많이 속았던 것처럼.내가 서 있는 곳이 속임수 같은 모래성이라면, 나는 그 허무를 견딜 수 있을까?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스러져내릴 모래성 위의 집에서 나는 안전할 수 있을까? 삶의 너무 불안하게 느껴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이 세상에는 내가 있을 집이 있고 나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남편이 있고 읽고 위로 받을 책이 있고 나에게 일을 주는 의뢰자가 있고 내가 해온 일과 결과물이 있다는 것이다.모리 히로시는 삶을 살아가는데는 돈도 별로 필요없고 친구도 별로 필요없지만 고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친구를 만날 필요도 없이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는 고독의 시간을 통해서 정신적인 안정을 얻고 나름 즐거운 인생을 보장받는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서 큰 위로를 받는다.나를 시녀처럼 지배하던 그 친구는 자신의 우월감을 주식으로 한다. 우월감을 느끼지 않으면 마약을 찾듯이 누구라도 불러서 우월감을 느껴야 배고픔을 잊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친구가 없어도 내 언어적인 재능을 갈고 닦으면서 고독의 시간을 견디고 거기에서 정신적인 안정과 즐거움을 느끼고 나 자신을 위로할 수 있다.글은 나를 지배하지도, 나무라지도 않고 나를 혼내지도 않는다. 비판적인 사고가 부족한 나에게 잘못 이해했다고 모지리 취급을 하지도 않는다. 나는 책에서 포착한 여러가지 언어로 나를 이해하는데,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수록 나 자신을 더 잘 보호하고 표현함으로써 그런 흡혈귀같은 지배적인 인간들을 대항으로 더 나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윤여정은 나이 70이 넘어도 여전히 배신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오랜 친구의 배신은 이상 친절하고 좋은 말을 하고 잘해주는 것에 쉽게 속는 나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그렇게 에너지를 소진했지만 나는 여전히 숨을 쉴 수 있고 해를 보면서 산책할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평화를 누리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걷는 동안 조금이라도 정신이 다른 데가 가 있으면 안 되니까, 천천히 페이지를 모으면서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하여 부드럽게 숨을 쉬고 그 모든 숨을 알아차렸다. 페이지를 모으고 그것들에 풀을 칠하고 책 표지를 만들어 씌우는 동안 나는 정말 평화로웠다.내가 전문 제본공이나 기계만큼 하루에 많은 책을 생산할 수 없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내 작업을 사랑했다는 사실도 나는 안다. 당신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면 일을 열심히 그리고 빨리 해야 한다. 하지만 간소한 생활로 만족한다면 차분하게 그리고 충분히 깨어 있으면서 일할 수 있다. 당신이 당신의 일을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일이란 너무 중요하다. 일은 내 성품에 영향을 미친다. 문요한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남을 돌볼 수준으로 자아가 분화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사람들은 관계를 크게 생각하고 순응하는데, 관계에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 일을 처리하는데 크게 문제가 되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나는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부분에 발달이 안된 것은 대상이 갑자기 사라져서 미분화된 것인데 어려서 일어난 일이라 지금 완전히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 일에서 관계를 빼고 일하기로 했다.위에도 사람을 두지 않고 밑에도 사람을 두지 않고 만나는 사람도 없이 온라인으로 일을 받아서 처리하고 그것으로 끝내기를 바랐다. 다행히 시절이 좋아 그런 일을 찾을 수 있었고 금전적으로도 아이가 없어서 적은 벌이로도 남편과 함께 삶을 일굴 수 있었다.내가 좋아하는 언어와 관련한 일을 하면서 나는 너무 힘들게 돈을 벌었던 때와 달리 돈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게 되었다. 돈을 모으고 투자하는 것도 알게 되고 일을 내가 힘들지 않을 만큼 적정하게 른손 손가락 두 개를 내밀어 그 남자를 똑바로 가리키며 단호한 결의로 말했다. "너는 나를 겁줄 수 없다. 내가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어야 한다면, 좋다, 그러겠다! 필요하다면 한 번 아니라 수천 번이라도 하겠다. 우리 모두가 그럴 것이다!"==나는 윤회를 믿는다. 그리고 해탈도 믿는다. 나는 삶과 죽음의 바다 어딘가에서 익사하지 않고 다시 삶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고 또 다시 무언가를 위해서 태어날 것이다. 이생에서 왜 태어났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고난이 많았다. 나는 원인도 모르고 내가 잘못하지 않은 판위에서 그 대가를 치르고 많은 인내를 했다. 인내해서 이겨내고 지금은 그 고난의 원인이된 인간관계에서 벗어났다. 그 과정에서 나는 공부했고 기도했고 인내했고 선을 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 다른 종류의 비슷한 고난을 또 겪어야 한다면? 쉴 새도 없이 계속 몰려드는 고난을 받아내야 한다면? 인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기도하면서 인내하고 겪어내는 수 밖에.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배움을 위함이고 깨닫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 목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알아서 잘 해서 의식이 성장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수천 번이라도.여러가지 어려움이 섞인 삶에 고뇌가 많았다. 그리고 나는 책을 읽고 그 고난들을 해석해냈고 그 결과에 따라 정리했다. 지혜의 서인 책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이기적이고 악한 동기로 이상하고 납득되지 않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물리치고 내 감정을 믿고 여기까지 왔다. 많이 속았고 최근까지도 속았다. 그러나 점점 더 속지 않을 것이다. ==상추를 심고서 당신은 그것이 잘 자라지 않는다고 상추를 나무라지 않는다. 그게 왜 자라지 않는지 그 이유를 들어본다. 거름이 더 필요하거나 물 또는 햇빛이 더 필요할 수 있다. 아무도 상추를 탓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친구나 가족들과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그들을 보살필 줄 알면 그들도 상추처럼 잘 자랄 것이다. 비난있고 이제 나를 보호할 수 있다. 남편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없다고 해도 나는 혼자서 리자벳 스콧처럼 글을 읽고 집에서 칩거하면서 아무나 만나지 않고 나를 보호할 것이다. 글을 읽고 쓰면서 자산을 굴리면서, 나는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 ==삶이 우리의 진짜 고향집이다.우리의 진짜 고향집은 지금 이 순간이다. 무슨 일이든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일어난다. 우리의 진짜 고향은 분별이 없고 미움이 없는 곳이다. 우리의 진짜 고향은 우리가 더 무엇을 추구하지 않고 더 무엇을 갈망하지 않고 더 무엇을 후회하지 않는 곳이다. 마음 챙김 에너지를 가지고서 바로 지금 바로 여기로 돌아올 때 우리는 우리의 진짜 고향집을 이 순간에 마련할 수 있다.당신의 진짜 고향집은 당신이 당신을 위해서 창조하는 무엇이다. 자기 몸과 평화로이 지내고 자기 몸을 돌보고 자기 몸의 긴장을 풀어줄 줄 알때, 그때 우리 몸은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올 수 있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집이 된다. 자기 감정들을 보살필 줄 알 때, 기쁨과 행복을 낳고 아픈 감정들을 다룰 줄 알때, 그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한 고향집을 세우고 회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해와 자비의 에너지를 생산할 줄 알 때 우리의 고향집이 우리가 돌아갈 아늑하고 즐거운 곳으로 될 것이다. 고향집은 희망할 무엇이 아니라 경작할 무엇이다. 집으로 가는 길은 없다. 집은 길이다.해탈은 지금 이 순간에 있다.지금 이 순간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영적 조상을 접할 수 있다. 우리의 진짜 고향집을 찾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와 그 속에 침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우리 조상들을 지금 이 순간 몸으로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걱정하거나 고통당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진짜 고향집을 바깥 어디 - 공간, 시간, 문화, 경계, 민족 또는 인종- 에서 찾으러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참 행복을 찾을 수 있다.==지금 내 삶이 수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긴다. 아침에 해를 받으며 산책을 할 때 나는 걷기 수행을 하는 것 같다. 잡념이 사라지고다.
동양학을 읽는 월요일/조용헌 지음수불 선사에게 물었다."공부라는 것이 무엇입니까?""남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공부가 된 사람입니다."언뜻 보이게도 성질도 없고 카리스마도 없는 듯하지만, 대화 도중에 수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감은 마치 발전기가 돌아가는 것 했다.==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많이 참아서 다행이지 성질대로 했으면 회사 다니면서 여럿 죽였을 것 같다. 정말 예수님을 생각해서 참고 기도하고 인내하고 끝까지 조사 주고 싶은 것을 나이를 고려하고 애엄마라는 것을 고려하고 상사라는 것을 고려하고 나도 문제가 있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많이도 참았다. 나 자신을 잃을 지경까지.요즘 많은 것들을 긍정적으로 다시 생각하면서, 다시금 나 자신을 긍정하게 되었다. 그래 어차피 개의치 않고 내가 생각한 대로 살았으니 스스로를 긍정하고 지난 일 속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을 긍정하자. 어차피 관계안에서 서로 서로 기여분이 있고 그 한 톨도 업을 따라 자신에게 돌아가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내가 지은 죄는 나의 업이 되고 내가 인내하고 기도한 것이 있다며 나의 복이 될 것이고 상대가 악하게 나오고 사납게 나오고 나에게 해롭게 한 것은 상대에게 머리카락 한 올도 차이 없이 돌아갈 것이다, 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고 들었다.나는 올된 편이다. 조숙해서 남들이 20대나 30대에 각성을 하고 인생을 매우 열심히 살거나 시달리는 것을 10살 11살부터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 노력하면서 살았다. 그런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을 보고 정신이 혼미한 부모는 참으로 열심히 부려먹었다. 주변에 자랑하면서 자기들 허영심도 달래고 열등감도 치유했다. 어려서 정신이 바짝 드는 것이 아이에게는 가혹한 환경이라는 것을, 그런 환경을 본인들이 제공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혼미한 부모는 그렇게 정신이 바짝 든 내가 자신들의 삶을 구원해주기를 바랬다. 지금 내 인생도 힘겨워서 10살부터 각성한 나에게 어찌 그리 바라는 것이 많은지. 그들은 부모의 마징을 보였다. 나는 애 같은 것이 아니라, 어려서 어떤 면에서 학대를 받아서 감정적으로 억압된 면이 있고 여자 상사들을 두려워하고 긴장해서 내 감정을 직면하지 못하는 심리적이 어려움이 있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그런 상사들에게 2차, 3차 가해를 당했는데 1차 가해를 한 계모를 직면하지 못하니 거기에서 도미노처럼 계속 상처가 발생했다. 그 상처를 직면하라고 삶은 그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년들을 계속 보냈나보다. 지금 같으면 나도 같이 쥐잡듯이 했을 것 같기도 하고 역시 아직도 내가 젊잖은 편이라 많은 부분을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내가 이해하고 배려했다면 그것은 나의 것이고 미성숙한 상사가 나에게 해꼬지를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여자의 것일 것이다.상처주지 않는 것이 공부라면 정말 상처 주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소통의 문제도 있어서 서로 상처를 주고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아시고 정상 참작을 해주시길 바랄 뿐이다.==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보아야 다른 사람의 배고튼 심정을 알고 쓰라린 심정을 알고 외로운 심정을 안다. 그래야 베풀 줄도 알고, 다른 사람 달랠 줄도 안다. 이를 배출해보지 않으면 결코 타인을 감동시킬 수 없다. 감동을 못 시키면 사람을 관리할 수 없다. 사람 관리를 못하면 기업은 망조가 든다. 부잣집 도련님 소리만 듣고 자란 재벌 2세가 얼마나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보았겠는가. 배가 고파보았겠는가,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보았겠는가.부잣집 2세들을 만나보니 의외로 인색한 사람들이 많았다. 돈을 쓸 줄 모른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100미터 전방에서부터 굽실거리고 엎드리니까 돈을 쓸 필요가 없다. 미리 제압되어 버리는 것이다.'재벌 2세 기행'을 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사람은 배고프고 천한 환경에서 태어나야 금생에 큰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의 에 이런 말이 있다.하늘에 장차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하면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근육과 뼈를 깍는 고통을 주고 몸을 가 없어서 이생에서는 다시 보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오늘 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누들이라는 어린 고아를 키워서 부려먹는 악덕 세탁업체의 종으로 사는 여자 아이가 영화 끝 무렵 친엄마를 만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다. 부모가 너무 힘들게 해서 엄마를 생각할 여력이 없이 어떻게 먹고 살고 어떻게 그 많은 요구를 감당하나 한숨지며 살았는데 부모와 연을 끊고 십여년이 지나고 지난 감정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니 '나도 저런 사랑해주는 찾아갈 엄마가 있었으면"하고 눈물이 났다. 나를 괴롭히고 착취했던 사람들에게 당당히 나서서 따져줄 보호자인 엄마가 있었으면 했다.그런데 맹자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이 사람을 쓰려면 고통을 주고 주리게 하고 빈곤하게 하고 일을 어렵게 하고 참을성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오래 오래 참는 나의 성격. 부모가 거의 매일 개싸움을 하고 요구가 많고 정서적으로 의지할 데가 없으면 보통 아이들은 가출을 하고 속을 썩인다. 그런데 나는 공부를 했다. 그런 집안에서는 보통 가출을 해서 술집 같은데 가는 것이 흐름상 자연스러운데 나는 밤을 새워가면서 공부를 했다. 나는 그런 어지러움가운데서 인내하면서 공부를 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가고 대학을 갔다. 나는 인내했다. 나는 견디고 나를 옳은 방향으로 좋은 방향으로 몰아갔다.나를 학대하던 계모에게 나쁘게 대하지 않았다.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선을 베풀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들은 내가 아무리 따뜻하게 대해주고 내것을 혼자 쓰지 않고 나누어주어도 "다 주지 않고 인색하다"고 나를 비난했다. 내가 아무리 잘해서 나는 그들의 요구에 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아무리 노력해서 내가 잘하면 당연하고 못하면 큰 비난과 미움이 돌아왔다. 아무리 아무리 달려도 닿을 수 없는 오아시스 같은 그들이 마음은 내가 헛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아무리 선을 베풀어도 허영심이 많고 감사를 모르는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결국 그들과 엮이면 나는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의 마음은 모든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자기를 표현하는 일을 하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충족감을 느끼는 것이다.취직을 하는 것이나 공무원이 되는 것을 사회적으로 성공이라고 여기는 풍토가 이상하다. 내가 부모가 된다면 나도 아이에게 취직하라고 하지 않을 것 같다. 경험을 위해서 최대 3년 정도만 하라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라고 할 것 같다. 그리고 경제 관념을 만들어 줄 것 같다.취직을 하면 월급을 받는 대가로 인생을 팔아야 한다. 월급은 시간을 파는 대가로 받는 돈이다. 조직의 룰을 지켜야 하며 지키지 않으면 평판에 훼손을 입고 존중받지 못하고 자존감이 뭉개진다. 그런 일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나는 아직도 어렵게 버틴 13년의 회사 생활에서 온 마음의 상처가 다 낫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나를 학대하고 힘들게 한 사람들은 그 행위가 돌아서 그에게 그대로 가기를 바란다. 그들이 행한 대로 갚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려고 얼마나 기도하고 인내했던가. 힘으로 찍으 누르면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서 얼마나 사람을 소외시켰던가. 얼마나 괴롭게 했던가. 회사는 지옥이다. 회사는 악하다. 회사에 들어가서 취직하는 것은 지옥에 자신을 몇 푼 월급을 주고 파는 짓이다. 특별히 어려서부터 보호받지 못해서 나는 스스로 보호하지 못하고 스스로 비난하는 생각의 습관이 들었던 나에게는 더욱 그랬다.이 세상에서 많은 고생을 해야 공부를 많이 할 수 있고 좋은 팔자라는 것이 처음부터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너무 힘겨웠다. 계사일주는 복이 많은 일주인데 이렇게 험악한 환경에서 태어나서 극복하고 중년과 말년에 활짝 피는 것도 보기에 따라서 아름다울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너무 일찍 고난이 와서 정신에 유해한 전족을 많이 찼다. 그것은 내내 나를 따라다니면서 힘들게 하고 성장을 방해했다. 사람들을 멀리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면서 나를 보호하는 나는 그 과정에서 얼마나 내가 안전하지 않았나, 하는 것을 느끼는데 간담이 서늘한 순간이 정말 많았다. 하나님께서 나에게을 해주었던 나. 그렇게 나를 기른 부모. 다 받아먹고도 원망하는 인간들. 그런 인간들을 내 삶에서 몰아내고 독립적으로 일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게 능력을 키운 것은 나 자신다. 통과 의례라고 해야 하나, 태어나서 인간들이 겪어야 하는 그런 굴레들. 그런 굴레를 제대로된 뒷받침도 없이 혼자 애쓰고 수고해서 잘 수행해왔다. 마흔이 지나고 사회로 부터 멀어지고 사람들을 멀리하니, 나는 이제 편안하고 자유롭다.40대에는 많은 책을 읽어야지, 50대에는 많은 여행을 다녀야지. 40대에는 투자를 하면서 돈도 모으고 50대부터는 여행하면서 그 돈을 써야지 하고 마음을 먹는다. 나의 중년과 말년은 초년과 다를 것이다. 왜냐 나쁜 사람들을 발본색원해서 곁에서 다 잡초를 뽑듯 제거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가 정말 중요한데, 내 마음의 평안을 깨면서 화를 내고 요구하고 비난하고 미워하던 그런 계모와 그 자식과 애비라는 인간들을 나는 참으로 많이 쉽게 용납하면서 잘해주었다. 철천지 원수로 몰고 형사 처벌을 해도 모자를 인간들. 내 자신이 그런 인간들에게 당한다면 나는 아이와 그들을 격리시키고 그들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하듯 나는 나에게 할 것이다. 영원히 영원히 그들을 내 삶에서 버리고 제거할 것이다.나를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어려서, 불쌍해서 이해하고 너그러이 대해주는 나를 자기 밑으로 보면서 애 다루듯 하던 5살, 7살 어린 배다른 동생과 비언어적으로 틈만 나면 나를 공격하고 주변을 조종해서 나에게 뜯어내던 계모. 그들의 행위대로 돌아가기를. 아니다. 그들은 이미 지옥에 살고 있다. 자기 자신이 만든 지옥. 허영심이 많고 감사를 모르며 거짓말이 많고 비열한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이 될 것이다. 넉넉히 ==조사를 해보니 내로라하는 사대부 집안의 안주인들 상당수는 과로로 사망하였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손님들 밥해주고 치다꺼리하다가 죽은 것이다. 이런 형태의 적선은 서양처럼 건물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후대인들이 눈으로 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