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백영옥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첫 인상은 흥미롭지 않았다. 제목이나 디자인에 눈길이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았고, 표지를 들춰볼 생각도 없이 스쳐 지나쳤던 책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옛날 만화 주인공의 이름이 제목에 등장하고 책의 표지에는 그 주인공이 그려져 있는 책. 오히려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그럴 때가 있다. 책은 읽고 싶은데 너무 심오하고 어려운 책은 싫고,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 가볍지만은 않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 읽고 싶을 때가. 사실 이 책이 그런 책일 거라는 기대감에 읽기 시작한건 아니었다. 그저 별 생각 없이, 왜 이 책을 집어들었는지 이유도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그렇게 운명적으로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읽었다. 그리고 빨강머리 앤과 백영옥 작가님을 만나게 되었다.’주근 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으로 시작하는 만화 주제가를 부르며 놀았던 어린 시절 기억이 있다. 그때 만났던 앤은 말 많고, 요상한 친구였다. 앤이 쓰는 말투와 말의 내용들을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자면 ’손발이 오그라드는’이 적당할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앤은 희망적이며 긍정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또래에 맞지 않게 풍부한 어휘력과 표현력을 가지고 있는 소녀였다. 앤의 희망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희망적이며, 낙천적이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은 내가 죽었다가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도 가지지 못할 것 같다. 삶을 대하는 앤의 태도와 특별한 사고방식. 그런 앤을 통해 위로받은 작가님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그 위에 얹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현재를 살면서 꿈꾸는 것은 사치고, 희망을 품는 것은 망상일지도 모른다는 좌절가운데 살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을 사람들은 많이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과 ’나’는 해봤자 실패할게 뻔해서 혹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때문에 선뜻 무언가를 시작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에겐 해보라고 쉽게 얘기 할 수 있으면서 정작 나 자신은 새로운 시작 앞에서 주저한다. 그리고 맘 편한 합리화를 하는 것 같다. ‘해봤자 안되는 일이었어’라고. 앤은 나와 달리 절망에서 희망을 찾아낸다. 작가님은 그것을 ‘고아 소녀는 자신이 처한 각박한 현실 속에서 가장 좋은 것을 상상하는 습관을 오래 간직해왔고 그것이 삶을 대하는 앤의 태도’라는 해석을 하셨다. 각박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좋은 것으로 바꾸어 상상하는 능력. 언제 어느 시대에서나 절망적이고 각박한 삶은 늘 존재 했을 테지만 요즘처럼 ’빛 좋은 개살구’같은 시대는 과거에 없었던 것 같다. 청년이 꿈을 가지고 살아가기 힘든 시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국가와 기업은 고도로 성장했지만, 서민들은 살기가 더 강팍해진 것 같은 아이러니함이 존재하는 시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앤이 처한 상황과 그걸 극복하고자 하는 앤의 태도가 위로가 된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에서 오는 위로라고나 할까. 절망만 보지말고 나도 희망을 상상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잠시 즐거웠다.누구에게나 컴플렉스가 하나씩은 있다. 나에게도 앤에게도 작가님에게도. 어릴 때는 컴플렉스에 더 많이 신경썼고 더 많이 창피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지나고 보면 컴플렉스가 더이상 컴플렉스가 아닌 순간이 온다. 작가님은 그것을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얘기한다.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똑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힘이라고. 시간은 더디 가지만 결국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처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별 다를 바 없는 것 같지만 하루 하루 쌓이면 생각과 취향과 관점이 바뀌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어릴 때 식성과 지금 나의 식성이 조금은 달라진 것처럼. 컴플렉스가 더이상 컴플렉스이지 않을 때. 예전의 나는 견디지 못했던 우울하고 힘든 시간들이 이제는 견딜만 해졌고 오히려 즐기고 있다고 느낄 때. 그럴 때 내가 성장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우리는 자신의 직업적 성공, 발전적 진화, 자아 성장에 과도하게 관심이 큰 탓에, 나 이외에 다른 사람과의 진정한 관계에 투자하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허를 찔렸다. 작가님은 이것을 문화라고 하셨는데, 그냥 이건 내 생각 그 자체였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내게 득이 아니라 독인 것 같던 시절이 있다. (매번 같은 사람들을 만나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발전적이지 못하고, 내가 특별히 얻는 것 없이 쓸데 없는 잡담만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들 만나는 것을 피했던 적도 있다. 혼자있는 시간의 힘을 믿으며 책을 읽거나 영어공부를 하는 것이 내 인생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나에게 작가님은 타인과의 깊은 관계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며, 오히려 행복할 거라고 말하신다. 과거와 미래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나에게 주어진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될 거라고, 이 순간을 만끽하라. 카르페디엠!. 미래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놓치며 살아가는 것이 슬픈일이지만 무조건 오늘을 즐기며 살수는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내일도 살아내야 하니까. 다만, 타인과의 관계를 위한 시간 투자에 대한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조금 식상한 표현을 쓰자면, 세상은 혼자사는게 아니니까.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비용으로 시간을 지불하는 것이 낭비가 아니라는 작가님의 말씀을 믿어보려고 한다.꿈은 이루는 것이다. 꿈은 꾸는 것이다. 어떤 말이 맞을까? 꿈을 이룬다는 것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고통도 선택하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몫은 항상 있다. 우리가 쉽게 꿈을 꾸지 못하는 것도 그 몫의 무게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꿈이 꼭 직업일 필요는 없다라고 얘기하시는 작가님을 통해 꿈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봤다. 나에게 꿈이란 직업 그 자체였다. 그런 내게 꿈을 직업과 분리시키는 이 주장이 낯설며 한번도 이렇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고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당연히 불행한 거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꿈을 쫓기 위해 노력하고 꿈을 이루고 그 직업을 가져야지만 행복하고 성공한 삶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꿈은 이루고 나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꾸고 있을 때 행복한 것일까? 이루고 나서 행복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불행할 거라는 결론을 미리내리는 것도 편협한 생각이 아닐까. 꿈에 대한 사람들의 주장은 각양각색인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론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고 꿈꾸는 일에 도전하고 올인하지 못하는 사람을 겁쟁이나 루저쯤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은 것 같다.(나도 물론 그랬고) 사실 이 독후감을 쓰는 순간까지도 어떤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도 일부 맞는 것 같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준 작가님의 의견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아직 이렇다할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으나 좀더 고민해 보고 많이 생각해보고 나만의 정답을 찾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다만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준 작가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히가시노 게이고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사람이다. 이 책은 번역되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공대 출신의 작가. 전문적으로 문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인데도 참 재미있는 글을 많이 쓴다. 그리고 끊임없이 출간되는 새로운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작가의 성실함이 느껴질 정도이다. 글쟁이로 살지 않고 그냥 회사에 다녔더라면 정말 아까웠을 뻔한 인재라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은 일본 내에서 상도 많이 받았고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 경우도 있었다. 주로 장편 소설을 쓰는 그가 가끔 이렇게 소설집을 내기도 한다. 최근에 읽었던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의 기억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신작이 나왔다. 사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범인 없는 살인의 밤’보다 이 책이 더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단편소설 하나하나 소중하게 느껴졌으며 어느 작품 하나에서도 반전을 빼놓지 않았으며 탄탄한 스토리 구성을 보여 줬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내공을 느끼게 하는 짧지만 굵직한 이야기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추리소설작가들의 책을 많이 읽어 보진 않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들과 다르게 작품에서 인간미가 느껴진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한 마음.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에는 그런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등장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이 권선징악이라서 후련하며 찝찝함을 남겨주지 않는 다는 점이 좋다. 특히 이 소설집이 그렇다고 생각했다.[새해 첫날의 결심] 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희망을 품게 되었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았지만 결국 회사는 곧 도산할 처지에 놓여있고, 불어난 빚을 갚을 방법이 없으며, 집까지 저당 잡힌 한 부부의 이야기이다. 새해에 신사에 가서 참배를 드리고 동반자살을 계획했던 그들 앞에 무책임한 인간들이 나타난다. 정월 초하루부터 사건이 터졌다며 불평하는 경찰들, 저녁에 있는 공짜 신년모임에 참석 못할 까봐 어떻게든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는 경찰서장, 각자 가정이 있는데도 다른 여성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군수와 교육장, 책임면피를 위해 범인을 숨겨준 신사의 책임자 구지. 부부는 이 사건을 통해서 ‘이렇게 무책임한 인간들이 떵떵거리고 위세 부리며 살고 있는데, 왜 우리처럼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죽어야해?’ 라는 물음 품게 된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말도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도 열심히 살아보자. 그들 못지않게 대충대충, 속편하고, 뻔뻔스럽게.’ 라는 답을 내리고 다시 살아볼 힘을 내본다. 어찌 보면 도덕적으로 해이한 사람들 덕분에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다시 살아 볼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준 셈이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이 사회라는 집단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다르고, 다양하기 때문에 오히려 조화롭게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조율을 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통을 겪으며 성숙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폭 넓게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조화로워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 한다.[10년만의 밸런타인데이]라는 작품은 이야기가 끝날 때 까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몰입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과거 사랑했던 여자와의 재회로 시작했다가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의 재능까지 훔친 살인자의 이야기로의 전개. 다른 사람의 재능을 훔쳐서 얻은 소설가라는 명예는 결국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것이었다. 훔쳐서 얻은 명예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직접 작품을 써보려 했지만 늘 반응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훔친 작품을 계속해서 베낄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이 과거에 사랑했던, 그러나 친구를 죽이고 친구의 재능을 빼앗아 자기의 것으로 삼은 주인공에게 복수하기 위해 경찰이 된 그녀는 어쩌면 주인공을 도와준 게 아닌가 싶었다. 매일 매일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진채, 멈출 수도 없고 돌아 갈 수도 없는 그를 멈추게 해주고 짐을 내려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도 ‘범행이 발각된 데 절망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뭔가 후련한 느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물론 사람을 죽여서도 다른 사람의 재능을 훔쳐서도 안 된다. 그러나 주인공의 고백을 통해서 연민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더 타인의 재능을 훔쳐서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싶다.[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 [수정 염주]라는 작품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에서는 딸을 한 자명한 가문에 시집을 보내며 딸아이가 시집살이를 어떻게 견뎌낼지 걱정하는 아버지에 대해서, ‘수정 염주’는 겉으로는 아들의 꿈을 반대하지만 결국 아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이야기 모두 약간의 반전이 숨어있다. 한 이야기는 아버지가 주인공이고, 다른 이야기는 아들이 주인공이다. 서로 다른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두 작품 모두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작품이었다. 담담하게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객관적인 사실들을 서술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끝에는 뭉클함이 있다. 이 점이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그대 눈동자에 건배]라는 작품은 정말 상상도 못했던 전개였다. ‘미아타리 수사’. 시대가 바뀌면서 경찰도 사이버 수사와 같은 디지털화가 되어간다. 그러나 ‘미아타리 수사’는 아날로그 그 자체이다. 미아타리 수사는 지명수배자의 특징을 기억한 뒤에 역이나 번화가에 잠복해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범인을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주인공은 그냥 하릴없이 휴일에 경마장이나 다니는 그냥 그런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묘사했으니까. 그러다 대학 동기를 만나게 되고 오랜만에 소개팅에 나가게 된다. 그 곳에서 만나게 된 모모카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공통점으로 자연스럽게 만남을 이어나갔다. 모모카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집에 데려다 주는 것도 거부했다. 그냥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모모카에게 주인공은 좋아한다고, 너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모모카는 자신을 애니메이션 여주인공쯤으로 착각하는 것이라며 화장을 지우면 환상이 깨질 것이라 말했다. 화장과 상관없이 환상은 깨질 일이 없다고 말하는 주인공에게 모모카는 콘택트렌즈를 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순간 주인공은 말도 할 수 없었고, 꼼짝도 할 수 없었고,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되돌아왔다고 표현한다.주인공은 ‘미아타리 수사’를 하는 경찰이었고, 경마장에 다니는 것도 수사를 위한 것이었다. 콘택트렌즈를 뺀 모모카의 눈동자를 바라 본 순간 지명 수배자 중 한사람을 떠올렸고, 그는 업무상 횡령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있었던 ‘야마카와 미키’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도주 후에 성형수술을 받았으나 바꿀 수 없었던 눈매와 눈동자. 나는 이 스토리에 ‘그대 눈동자에 건배’라는 제목을 단 작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라면 생각해 내지 못했을 제목이고, 스토리이다. ‘미아타리 수사’라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어서 이런 스토리가 나온 것일까?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이런 시점과 전개와 구성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 시대의 최고의 이야기꾼 중에 한사람이라고 극찬하고 싶을 정도였다.[렌털 베이비]와 [사파이어의 기적]은 현재는 없을지 몰라도 조만간 일어날만한 이야기였다. 미래에 과학이 더 발전할 것을 전재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렌털 베이비]는 로봇 아기를 키워보게 함으로 출산을 장려하는 사회가 있다는 가정으로 쓴 이야기이다.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다운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아기와 다를 바 없는 피부와 아기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 디테일한 프로그램이 실린 아기 로봇. 이 아기로봇을 남자친구와 일정 기간동안 키워본 주인공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다. 여기에서 첫 번째 반전은 남자친구도 렌탈 이라는 것이다. 렌털 베이비 회사와 계약한 가상 아빠 전문가 20명 중 한사람과 로봇 아기를 키우는 상황을 설정해서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받은 것이다. 그다음 두 번째 반전. 친구와의 전화 통화에서 주인공의 나이가 60대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러나 냉동난자를 보관해뒀으니 상대만 찾으면 언제라도 수정이 가능하고 인공자궁 기술도 진즉에 확립되었으며 아직 자신은 평균수명의 반밖에 살지 않았다는 약간은 충격적이고 신기한 상황을 연출했다. 평균수명이 120-130정도에 인공자궁기술과 로봇아기 렌탈서비스. 어떻게 보면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어나지 못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파이어의 기적]에는 뇌 이식이 가능한 세상을 보여준다. 아직 동물 실험에서만 성공을 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뇌 이식을 목표로 한다. 그렇게 된다면 노인의 뇌를 젊은 사람의 몸에 이식해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또한 일어나지 못 할 일은 아니다. 2007년에 개봉한 신하균 주연의 ‘더 게임’이라는 영화가 생각났다(뇌이식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멈추었다. 너무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윤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잘 모르겠다. ‘뇌사판정을 받은 젊은 사람의 몸에는 허용이 된다.’ 라는 가정을 해보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뇌가 죽었다고 해서 가족이 그 몸을 흔쾌히 돈 많은 노인에게 제공할까? 뇌사판정을 받은 젊은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게 납득이 되는 상황일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상식과 가치관과 도덕적 기준에서는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다. 이 이야기가 소설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아 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이 타이틀 하나 만으로도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2017년 노벨 문학상 예상 수상자에 ‘연금술사’의 파울로 코엘료 작가,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그리고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 등이 거론 되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낯선 이름의 작가가 그것도 영국 작가라는데 일본식 이름의 작가가 수상했다. 대체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지 궁금했고, 처음으로 접한 작품이 바로 ‘남아 있는 나날’이었다.이 책은 영국의 저명한 저택 '달링턴 홀'에서 집사로 평생을 보낸 스티븐스가 새로운 주인의 호의로 생애 첫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스티븐스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게 만든 계기는 한 때 함께 일했던 ‘켄턴’양이었다. 새로운 주인을 모시는 데 직원이 부족했고, 부족한 일손 탓에 본인이 너무 많은 일을 감당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핑계 삼아 ‘켄턴’양에게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하러 가는 여행기이다. 단순히 직원을 늘리기 위함이었다면, 굳이 차로 며칠씩이나 가야하는 거리에 있는 ‘켄턴’양을 만날 필요가 있었나 싶다. 편지로 얘기를 해도 되었을 텐데. 스티븐스는 ‘켄턴’양을 예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일손부족을 강조하면서 직접 만나러 가는 이유는 일자리 제안을 하는데 대면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강조한다.위대함높다란 암벽 위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대지를 보았을 때, 스티븐스는 위대함의 면전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티븐스는 영국의 풍경만으로도 ‘위대하다’는 하나의 숭고한 형용사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든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위대함’에 대해서 스티븐스는 명백한 극적 효과나 화려함의 ‘결핍’이 영국 대지의 아름다움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땅 자체가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자각하고 있어 굳이 소리 높여 외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으며, 여기에 비해 아프리카나 미국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은 전율에 가까운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분명하나 꼴사나운 과시욕으로 객관적 관찰자에게는 저급하다는 인상을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위대한 영국. 위대한 달링턴 홀. 그리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스스로가 위대한 집사라고 생각하는 듯 한 스티븐스. 자신이 속한 모든 것들이 위대하다고 책의 곳곳에서 피력하는 스티븐스의 언행과 그가 내린 위대함의 정의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위대한 대상이 굳이 소리 높여 위대하다고 외칠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한 반면 자기 자신은 끊임없이 잣니의 위대함을 알아달라고 어필하고 있다. 이 책은 스티븐스가 독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표현했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독자에게)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식의 표현들로 비추어 볼 때, 스티븐스는(물론 가상의 인물이겠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경 받는 것에 목말라 있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정의 내린 ‘위대한 집사’의 모든 것을 강박적으로 지키며 수십년을 집사로 일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위대함에 합당하다고 여기는 처우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는 자기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의 삶이 불쌍했다. 외로워 보였다. 위대한 집사의 일에 최선을 다하느라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고, 평생 한번 뿐인 것 같은 ‘사랑’도 외면했다.품위여행자들은 여행하기에 편안한 옷차림을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사진 찍기에 예쁜 옷을 챙겨가기도 한다. 어쨌든 여행을 떠난 다는 것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일상적이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기 위해 떠난다. 여행을 갈 때 나의 본분을 잊지 않기 위해 근무복을 챙겨가는 사람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집사의 품위를 지키기 위한 정장을 챙겨 떠났다. 시대적 생각의 차이인지, 문화적 생각의 차이인건지 나는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는 집사로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았다. 그가 생각하는 ‘품위’란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봤다. 모자라는 집사들은 약간만 화가 나도 사적인 실존을 위해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포기하게 마련이나, 위대한 집사들은 자신의 전문 역할 속에서 살되 최선을 다해 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아무리 놀랍고 무섭고 성가신 외부 사건들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점잖은 신사가 정장을 잘 갖춰 입듯 위대한 집사는 자신의 프로 정신을 입고 다니며, 그것을 벗을 때는 어김없이 그가 혼자일 때이고 그것이 바로 스티븐스가 말하는 ‘품의’의 요체이다. 진정한 의미의 집사는 ‘영국’ 밖에 없으며 그 외의 나라들에는 칭호가 무엇이든 간에 하인들만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대륙 사람들은 감정을 절제 못하는 혈통이기 때문에.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스티븐스는 위대한 집사에 대해 그리고 지켜야할 품위에 대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끝도 없이 풀어 놓는다. 그런 생각들을 깊이 하는 것이 직업인으로서의 의무이며, 또 그렇게 해야만 스스로 ‘품위’를 획득하고자 하는 우리 각자의 노력에도 발전이 있을 것이라며 주장하기까지 한다. 집사로 일하는 것이 좋아서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 끝이 보이지 않는 생각들을 계속하며 자신을 단련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강박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삶 속에도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자신이 세운 가치관과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동종 업계 종사자에 대해 평가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분명 많이 있을 것 같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이 정도의 차이만 있지 이런 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각자가 세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고,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면서 결국 그 기준에 부합하는 자기 자신을 치켜세우는 식의 사고방식. 각자가 생각하는 삶과 일의 기준은 다양할 것이다.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듯이. 이런 다양한 기준들이 서로 부딪히다 보면 분쟁만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겼다. 내 기준에 상대를 끌어다 끼워 맞추지 말고, 상대의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진정한 ‘나’를 잃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삶에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까?정당화자화자찬을 통해 자기만족 속에 사는 스티븐스 같지만, 책의 곳곳에서 스티븐스가 오랜 시간 모셨던 달링턴 경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책이 스티븐스의 입장에서 독자에게 얘기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달링턴 경에 대한 이야기도 지극히 스티븐스의 주관이 섞여있을 것이다. 달링턴 경은 1차 세계대전 후에 전쟁을 일으킨 독일을 영국과 주변국에서 용서 해줘야 한다는 입장으로 여러 외교 활동을 했던 사람이다. 패전 후 힘들어하는 국민과 국가를 도와줘야한다는 지극히 신사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독일은 또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 신사답게 행동 했던 달링턴 경은 그저 나치의 선전 책략을 위한 유용한 도구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달링턴 경이 도구로 이용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한 건지 믿지 않았던 건지 스티븐스는 ‘달링턴 홀’을 방문한 유럽 최고 실력자들의 대화라는 행위 자체만 놓고 위대한 중심축에 자신이 도달했다고 느꼈으며,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나치의 도구였던 ‘달링턴 경’의 명성에는 흠집이 생겼다. 그런 달링턴 경을 스티븐스는 끊임없이 정당화하려 했다. 달링턴 경이 나쁜 사람이 아니었으며 실수를 인정한 용감한 분이라고 포장을 해서, 그 분을 모시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 여기며 살아온 자기의 수많은 날들을 정당한 것으로 평가 받을 수 있다고 생각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새로운 주인을 모시면서도 과거에 얽매여 과거의 기억들을 포장하고 합리화하고 정당화 하는 스티븐스가 참 안쓰럽기까지 했다.
종이달가쿠다 미츠요 지음, 권남희 옮김종이달. 2015년에 동명의 영화가 개봉 했다. 우리나라 포스터에 있는 카피가 ‘그녀가 그토록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그녀. 우메자와 리카. 그녀는 무엇을 원했던 걸까? 한 순간이라도 진심으로 행복했던 적이 있을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이 책을 옮긴이는 종이달의 의미가 ‘가짜’와 ‘가장 행복했던 한때’를 중의적으로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사진이 나온 지 얼마 안 되었던 시절의 일본에서는 사진관에 초승달 모양의 가짜 달을 만들어서 그 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진관에 가서 행복했던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려 했던 것이다. 거기에서 유래되어 ‘종이달’이라고 하면, 가족 혹은 연인과의 행복한 한때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우메자와 리카는 평범한 주부로 유복한 부모 밑에서 성장했고, 평범한 가정을 꾸린 여성이다. 우메자와 마사후미는 그녀의 남편으로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는데 노력도 하지 않으며 아내와의 관계에 적극적이지 않다. 리카는 전업주부로서의 생활을 처음에는 만족했던 것 같다. 그러던 그녀에게 남편의 사소한 말 한마디로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된다. 어떻게 보면 웃자고 한 말일 지도 모르는 평범한 말이지만, 돈을 벌지 않는 리카의 입장에서는 서운한 말이었다. 리카는 돈을 쓸 때 남편의 허락을 구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았고 쓸 때 마다 눈치를 보았다. 자신의 힘으로 용돈정도는 벌어서 눈치 보지 않고 쓰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은행에서 뽑는 파트타임 일을 시작했고,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아진 리카는 계약직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고령의 고객들에게 예금 상품을 안내하고 직접 돈을 받아 은행에 가서 예금 상품에 입금시켜주는 일을 하곤 했던 리카는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간 백화점에서 현금이 부족해 고객의 돈 봉투에서 5만엔을 꺼내 계산을 하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죄책감에 망설이기도 했다. 돈을 빌린 리카는 백화점을 나가서 바로 자신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돈봉투에 채웠다. 어떤 사람은 별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그래도 고객의 돈에 손을 대는 건 쫌.. 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는 사소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사소한 이 행동 하나가 리카의 인생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리카는 자신의 VIP 고객의 한사람의 손자를 우연치 않게 알게 되고, 그 청년은 41살 리카의 마음을 흔들었다. 가난한 대학생인 고타는 돈이 많음에도 자신을 돕지 않는 조부를 증오한다. 고타를 사랑하게 된 리카는 자신의 고객들에게 가짜 상품을 팔고 가짜 증서를 만들어 주어 그들의 현금을 가로챘다. 고타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정직하지 못하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면 정당한 것일까? 가난한 고타의 빚을 갚게 해주기 위해 그의 할아버지 돈을 횡령하고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리카가 무서웠다. 리카는 젊은 고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어려보이기 위해 쇼핑과 에스테틱에 쓰는 돈을 아깝다고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부족하다고 여겼고, 계속해서 다른 고객들의 돈까지 횡령했다. 고타에게 돈 많은 사람임을 과시하기 시작했고, 비싼 음식 비싼 옷 비싼 호텔까지 횡령한 돈으로 모두 결제했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일본에서 일어난 은행 횡령사건은 모두 남자 문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그런 사랑이 진짜 사랑일까? 사랑을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공금을 횡령하게 만드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사랑의 순간들이 행복했던 것일까?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리카는 고타에게 받는 사랑이 세상의 전부라고 느낀 것 같다. 고타를 위해서라면, 그와 계속해서 함께 하기 위해, 그녀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 같다. 리카에게 돈이란 마르지 않는 용수 같다고 느꼈고, 계속 샘솟아, 주위 사람들의 목을 적시는 생활을 돕는 것.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만큼 퍼다 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에 대한 건강한 개념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결국 1억엔을 횡령하게 된 그녀에게 남아있는 돈은 거의 없었다. 남아있는 돈 뿐만 아니라 남아있는 사랑도 없었다. 결국 고타는 그녀에게 많은 혜택을 받고 많은 돈을 당연한 듯이 받아 왔음에도 그녀에게 구속되어있다고 느낀 것 같다. 여대생과 바람이 났고, 리카가 얻어준 맨션에서 리카에게 ‘날 여기서 나가게 해달라.’고 한다. 월 28만엔 짜리 맨션에 살게 해주고 고타에게 차까지 사준 리카가, 그 모든 것을 받으면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듯한 고타의 태도가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에 고구마가 얹혀 있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리카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그런 무서운 일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거품이었고, 달콤한 꿈에 지나지 않았다. 사랑이 넘치지는 않았지만 잘 유지해왔던 결혼생활도 그녀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들도 모두 깨질 수밖에 없었다. 리카는 횡령 사실을 들키게 되자 태국으로 가서 도피생활을 하게 된다.이 책은 리카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리카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리카의 동창인 오카자키 유코는 리카를 갓 쓰기 시작한 비누 같은 청초함을 지닌 정의로운 소녀로 기억한다. 리카가 고등학생 시절에 기부를 하던 아이에게 받은 편지에 ‘나는 당신이 해준 것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 문구를 보고 리카는 어린 아이가 평생 잊으면 안 될 무거운 짐을 짊어진 거라며, 이 아이가 평생 무거운 짐을 진다면 자신은 평생 그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얘기를 유코에게 했었다. 리카의 담담한 어조와 이야기의 내용이 유코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동창회에 가서 다른 친구들이 1억엔을 횡령한 리카에 대해 함부로 얘기한다면 리카의 편을 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한 유일한 리카의 편이었다. 그런 유코에게도 건강하지 못한 경제개념이 있었다. 한마디로 그녀는 구두쇠였다. 어느 마트에서 어떤 품목을 싸게 사는 지 일일이 확인을 한 뒤에 이 마트에선 이 물건을 저 마트에선 저 물건을 살 정도였다. 악착같이 사는 그녀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 그녀의 딸이 물건을 훔치다 걸린 것이다. 딸에게 용돈도 주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었다.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딸의 취침을 8시로 정하고, 식사 때는 TV보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수도요금을 절약하기 위해 물을 담은 페트병을 변기 탱크에 넣어두고, 딸에게 용돈도 주지 않고, 양말이 떨어지면 기워서 신겼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돈에 휘둘리는 추악한 가족이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이런 아등바등한 생활이 돈에 휘둘리는 생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 미래에 돈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 현재는 돈의 노예로 살아가는 모습 같았다. 딸이 도둑질을 하고, 남편과 절약을 하는 것 때문에 말다툼까지 하게 되자 그녀는 생각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절약을 한 거지. 무엇 때문에 저축을 하려고 한 거지. 그래서 무엇을 얻을 생각이었던 거지.극단적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유코의 모습과 리카의 모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양면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미래의 안정을 위해 현재의 행복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해서 나온 유행이 욜로이다. 취직이 늦어지고, 고공행진하는 집값 때문에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포기하지 말자. 오늘을 즐기고,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는 게 그 뜻이다. 이 모습은 리카의 모습과 비슷하다. 물론 건강한 경제 개념과 건강한 돈 상식이 있는 사람은 리카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오늘을 적당히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경제 개념이 부족하고 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돈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게 돈을 밝힌다는 이미지를 심어 준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사람들은 돈 공부를 꺼린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면서 돈 공부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경제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오늘을 행복하게 살든, 내일을 행복하게 살든 적절히 조절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어떻게든 아끼고 하고 싶은 일은 모두 참아가며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유코처럼. 양 극단의 삶을 살고 있는 리카와 유코. 어느 쪽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둘 다 돈에게 휘둘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도끼다박웅현 지음이 책의 지은이 박웅현. 그는 '생각이 에너지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사람을 향합니다', '진심이 짓는다' 등의 유명한 카피로 잘 알려진 TBWA 코리아 크리에이티브의 대표이자 광고인이다.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 책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광고와 인문학. 그는 이 책을 통해 창의적인 생각의 원동력은 독서이며, 자신이 책을 어떻게 읽는지에 대해 소개한다.헬렌 켈러의 에세이 [삼일만 볼 수 있다면]에서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숲을 다녀온 사람에게 당신은 뭘 봤냐고 물었더니, 그가 답하길 ‘별 것 없었어요. (Nothing special.)’ 라고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했다. 숲에서 느낀 바람과, 나뭇잎과 자작나무와 떡갈나무 몸통을 만질 때의 전혀 다른 느낌과, 졸졸졸 지나가는 물소리를 왜 못 보고 못 들었냐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것을 보아도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요즘 내 삶의 여러 상황 속에서 종종 떠오르는 속담이다. 어릴 때는 그 속담을 문자 그대로 외웠다고 본다면 지금은 속담의 참 뜻을 삶 속에서 체험하고 있다. 책 한권을 통해 늘 옆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이 하나씩 떠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서 또 하나의 눈이 떠졌다. 정보화 시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다.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우리는 그 방대한 정보 모두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정보의 바다 한 가운데서 살아남으려면 속독을 하라고 말한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정보화 시대에 대한 답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저자는 한 문장 한 문장 깊이 있게 읽으면서, 그 문장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에 대해 얘기한다.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새로 발견해 내고, 처음에는 하지 못했던 다른 생각을 해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속독을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양에 집중한 것이고, 박웅현 작가는 독서의 질이 중요하다고 이 책을 통해서 얘기한다. 사람들은 책에 대해 막연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 어떤 책이든 유익할 것이라고 여긴다. 작가는 유익하지 않은 책도 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책일지 몰라도 나에게 울림이 없는 책도 있으니 책을 선별하는 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이 책은 작가에게 울림을 준 많은 책들에 대해 소개하고 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 많은 작가들과 많은 작품을 간접 경험 할 수 있었다. 전에는 알지 못했던 작가이고 작품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게 많은 감동과 설렘을 준 작가가 있다. 김훈 작가이다. 김훈 작가의 특징은 구어가 곧 문어라는 것이다. 말로 나오는 문장을 그냥 받아 적으면 글로 쓸 수 있는 정도라니. 대단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고, 놀랍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김훈 작가의 또 다른 특징은 사실적인 글쓰기를 한다는 것이다. 사실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 직접 탐사취재를 한다. 개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진돗개 사육하는 곳에서 석 달을 머물며 사육일기를 보고, 사람이 죽어가는 장면을 정밀하게 묘사하기 위해 종합병원에 있는 의사인 친구에게 부탁해 영안실에서 시체가 나가는 모습을 참관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절대 표현할 수 없는 글들이 그의 손에서 나온다. [자전거 여행]의 동백꽃과 매화에 대한 구절이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동백꽃과 매화가 지는 모습을 표현한 이 글을 읽음으로 마치 내가 그 모습이 직접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간을 들여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이 글은 나올 수 없다. 김훈 작가는 이처럼 무엇을 보든 천천히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 내 주변에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그 수많은 순간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김훈처럼 들여다보고 김훈처럼 생각하는 눈을 하나 갖게 되면, 길가에 핀 꽃들과 주변의 모든 환경들이 의미를 갖게 될 것 같다.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사고의 영역을 확대하는 일인 것 같다. 매년 봄마다 한 번씩은 먹는 냉이된장국을 통해서도 김훈작가는 삼각 치정관계를 발견한다. 향이 센 냉이와 된장이 사람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싸운다는 것이다. 그 치정의 결과는 냉이 속에 숨어 있던 봄의 흙냄새를 된장 국물 속으로 모두 풀어놓아 평화를 이룬다고 표현한다. 냉이된장국을 먹으면서 그 누가 삼각치정을 떠올리며, 국물에 한데 뒤섞여 평화를 이룬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냉이된장국을 먹으면서 ‘냉이의 향이 좋다’, ‘맛있네’, ‘밥 한공기 더 먹을까?’ 정도의 생각만 하지 않을까? 만약 이 책을 보지 않고 김훈 작가의 글을 읽었다면, 문장들을 슥슥 읽으며 지나쳤을 지도 모른다. 박웅현 작가에게 울림을 주었던 김훈작가의 문장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그 문장을 통해 받은 느낌과 생각을 적어 주었기 때문에 김훈 작가의 문장 하나하나가 더 빛나 보였을지도 모른다. 광고인은 역시 다르다. 내가 김훈 작가의 책을 사서 읽고 싶게 만들었으니까.알랭 드 보통. 이름은 많이 들어봤다. 국내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이 사람의 책이 있는 것을 종종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어 본 적은 없었다. 책 제목들이 ‘불안’,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이다. 제목만 봐도 어려운 이야기를 할 것임에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고인 박웅현은 내가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고 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나게 해주었다. ‘사랑’에 대한 알랭 드 보통의 이야기이다.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가장 쉽게 유혹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내가 관심 없어 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왔다. 막연하게 느끼던 것을 알랭 드 보통이 정리를 해준 느낌이다. 사랑의 아이러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쿨하지 못하다. 긴장 때문에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태연해지지 못한다. 그러나 관심 없는 사람 앞에서는 나의 매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러니 관심 없는 사람이 쉽게 유혹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해서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의 일부 모습만 보고 사랑에 빠지고, 나머지 모습은 우리의 욕망으로 상상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상상한 모습대로 상대가 행동하지 않으면, 화를 낸다. 상대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제멋대로 상상해 놓고 너는 왜 그러냐며 상대에게 화를 낸다. 정말 공감 가는 이야기이다. 이 또한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을 알랭 드 보통이 정리해 준 느낌이었다. ‘상대의 짙은 눈빛이나 세련된 정신세계 때문이 아니라 저녁 내내 혼자 일기수첩이나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연애를 하려고 하는 것은 낭만적인 사랑 개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고, ‘사랑’을 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 대부분은 외로움 때문에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의 심리에 대해 통찰을 가지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어린 여자들이 나이 많은 남자를 좋아하는 심리에 대해 어린 여자들이 남자의 어떤 면을 세월이 자연스럽게 가져다주는 게 아닌 남자의 장점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린 남자들의 서투름만 봐왔기 때문에 나이 많은 남자들의 성숙함에 반한다는 것이다. 어린 남자들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성숙해 질 텐데, 그 성숙함이 나이 많은 남자들의 장점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여태껏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또 다른 눈이 하나 열리는 기분이었다. 알랭 드 보통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집필한 나이가 스물일곱이라고 한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사랑을 이렇게 폭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해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사랑은 어려운 것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랭 드 보통이 내 생각을 뒤집어 주었다. 알랭 드 보통과 같은 통찰을 가진다면 사랑은 어려울 수 있지만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은 우울증이 사망원인 1,2위를 다투는 대한민국 사회에 도움을 주는 책이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는 풍요속에 산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도 없고, 의료 기술의 수준이 낮아서 사소한 질병으로 죽는 사람도 이제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풍요 가운데에서 궁핍을 더 극심하게 느낀다. 풍요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기 때문에 상대적 궁핍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궁핍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걱정을 한다. 진짜 부유한 사람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밤의 별 밑에서 강렬한 경이감을 맛보거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석하고 덜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알랭드 보통이 얘기한다. 돈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밤하늘에 별을 보며 감탄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고,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 풍요로운 사람이며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내가 풍요롭고 여유가 있어야 다른 사람의 고통도 해석할 수 있고 덜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행복은 생각의 차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