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수업한국예술종합학교연극원 연기과12학번 정준화제 1장 `첫 시험 – The first test’이번 1장에서는 토르초프 연출 선생님과의 첫 수업에서부터 코스챠가 오셀로의 이아고를 연기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이아고를 연습하는 과정이나 모두에게 보여주는 과정이 사뭇 나와 다른 부분이 있었고 반대로 상당히 비슷한 부분도 있었다. 먼저 처음 대본을 읽어 나갈 때 “행동을 해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라는 말을 하며 극 중 인물인 이아고가 할만한 행동들을 찾고 의상과 소품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내게는 외형들이 더 중요했다.” 라는 말처럼 대본을 읽어나가면서 떠오르는 이미지와 시각적인 효과에 더 힘을 실었던 것이다. 이 대목을 읽어나가면서 내 연습하는 과정은 어떤지 살펴보면, 그 모습이 고요하고 평온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움직이기 보다는 대본을 보면서 이성적으로 접근하며 행동과 흐름의 여러 가지 가능성과 경우의 수를 계산하기 바빴다. 그렇기 때문에 겉의 내 모습은 고요할 수 밖에 없었던1 것이다. 물론 책에서는 외형적 모습에만 신경 써서 파트너와의 호흡과는 맞아 들어가지 않는 실수를 범하긴 했지만 작품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제대로 되었다면 그 시각적 힘은 굉장했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즉, 나의 이성적 접근 또한 실수를 피해가는 하나의 요소로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무작정 틀린 방법이라는 생각보다는 나만의 방식과 흐름에서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내게 필요한 것은 고요한 것이 아닌 역동적인 연습과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그리고 또 흥미로웠던 것은 연습과 발표의 과정이 실패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그 위대하다고 느껴지는 스타니스랍스키가 (물론 소설이라 허구의 인물이긴 하지만, 극 중 주인공 코스챠를 스타니스랍스키의 과거, 또르초프를 스타니스랍스키의 현재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런 천재가 충동에 사로잡혀 5시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는지 인지하지 못할 열정을 가진 천재가 발표를 할 때면 무대와 소품의 힘에 사로잡혀 연습 과정에서의 초점을 제대로 두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핵심은 ‘관찰’에 있었다. “어떤 대상을 깊이 관찰하고 있으면 그것을 어떻게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자연스레 생기는 법이다. 역으로 대상을 어떻게 해보려 들면 이번에는 그 대상에 대한 관찰력이 커지게 되고 이런 상호작용에 의해서 배우는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과의 접촉이 강화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무대 위를 구성할 때 그것들이 ‘대충’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만 알았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활용 해야 되는지, 그리고 그 물건은 어떤 역사를 갖고 있고, 그 물건을 바라보는 내 정서는 어떠한지 파악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대상을 파악하는 관찰의 힘이 커지면 주의 집중력도 커질 것이라 생각된다. 즉, 무대 위에서 정확하게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미리 알고 있는 것 또한 모르는 경우가 많고 허술하다. 그리고 “배우의 모든 행동은, 일상생활에서 극히 낯익고 간단한 것이라 하더라도, 수천의 관중 앞에서, 푸트라이트 안쪽에 등장하게 되면 긴장하게 된다. 그래서 배우는 스스로를 교정해 가면서 걷고, 움직이고, 앉고, 눕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다. 무대에서 사물을 보고 관찰하고, 듣고 청취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를 재교육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즉, 배우는 무대 위에서 ‘일상처럼’ ‘자연스럽게’가 아닌 훈련을 통해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 배우의 창조 예술은 훈련을 통해 개발된다고 해석 되어 내게도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이렇게 관찰을 통해 ‘주의 집중’을 하는 법을 알았다면 ‘주의 집중의 범위’를 설정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주의 집중이란 개념을 알고 나서 내 연기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범위는 무대 위 공간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관객석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관객의 눈을 의식하고 그들에게 잘 보이도록 애를 썼던 것이다. 내가 필요한 공간과 사물의 영역에만 관심의 빛을 밝히고 그 외에 것에는 불이 꺼진 것처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올바른 목표는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토르초프 선생님은 9가지로 정의하고 있다.올바른 목표란 푸트라이트의 이쪽, 배우들이 있는 쪽에 두어야 한다. 다른 배우들을 지향해야 하며, 관객을 지향해서는 안 된다.올바른 목표는 배우 자신의 것이어야 하며, 맡은 역할의 목표와 일치해야 한다.올바른 목표란 창조적이고 예술적이어야 한다. 그 기능은 우리 예술의 주된 목적을 달성하는 것. 즉, 인간의 정신적인 삶을 창조하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체현하는 것이다.올바른 목표란 죽어 있거나 관습적이거나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적이고 살아있고 인간적인 것이어야 한다.올바른 목표란 여러분 자신 및 동료 배우들, 그리고 관객들이 믿음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진실한 것이어야 한다.올바른 목표란 참다운 체험의 과정을 고취시키고 여러분을 끌어당겨서 움직이는 성질이 있어야 한다.올바른 목표란 명료해야 하고, 여러분이 연기하는 역할과 맞아야 한다. 올바른 목표에 막연함이란 있을 수 없다. 올바른 목표는 여러분의 배역이라는 옷감에 한 올 한 올 짜 들어가야 한다.올바른 목표란 여러분이 맡은 배역의 내적 실체에 상응하는 가치와 내용을 지녀야 한다. 목표란 천박하거나, 피상적이어서는 안 된다.올바른 목표란 능동적이어야 한다. 여러분의 배역을 추진시키고, 정체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모두 난해한 목표에 대한 개념을 선명하게 해주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말이기 때문에 9가지 모두 써 넣었다.)이 9개의 정의 말고도 추가적으로 쉽게 올바른 목표를 설정하는 방법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목표의 의미를 명사로 표현하려 해서는 안 된다. 단위는 명사를 써도 되지만, 목표는 언제나 동사를 써야 한다. ‘나는 원한다.’ ‘나는 하고 싶다.’ 등을 덧붙이기만 하면 된다.” 이다. 즉, 명사(이미지)가 아닌 내가 움직이도록 하는 충동이나 의지를 불어 일으키는 동사를 설정함으로써 행동하는데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기억해야겠다. ‘나는 원한도 않고, 무슨 말을 하는지 흡수하려 들지도 않는다. 자기의 다음 큐가 들릴 때까지 연기를 중단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닉을 연기할 때 교감이 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너무 싫어서 무언가 해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생각했는데 이것이 잘못되어 책에서 나온 ‘자기 과시’로 빠져버린 경향도 나타났다. 내적인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또 상대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도 아닌, 행동을 위한 행동을 선보였던 것이다. 실제로, 내가 하는 행동들은 영양가 없이 상대가 말하는 시간 동안 내가 느끼는 민망함을 탈피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되었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무언가에 깊숙이 빠져들지 않고서는, 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지 않고서는, 어떤 사물과도 무대 위의 교감이란 있을 수 없다.” “상대역과 진정으로 교감을 한다는 것은 그런 교감 관계에 있는 것처럼 재현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배우들은 편한 길로 가기를 좋아해서, 곧잘 진정한 교감이 아니라 대강 흉내내기로 대체하고 싶어한다.” 고 말하고 있다. 나는 교감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아이러니 하게, 교감에 필요한 것보다는 불필요한 것만을 찾고 행하고 있었다.그렇다면 대상과 정직하게 교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방법으로는 “상대 배우에게 대사를 할 때는, 자신의 사상이 상대방의 의식 속에 깊숙이 침투되었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따라가는 법을 배우도록 해라. 그런 확신이 서고,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눈으로 보강한 다음에 비로소 나머지 대사를 계속해야 한다. 반대로 상대방의 말과 사상을 받아들일 때는, 매번 새롭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연습과 공연을 통해서 이미 여러 번 들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대사를 오늘 새롭게 받아 새겨야 한다.” 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주의 집중’ ‘테크닉’ ‘예술적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교감이라는 것도 훈련을 통해서 행해지는 것이라는 사실에 여느 때와 같이 기쁘면서도, 한편못할 것이다. 여러분을 그렇게 살아가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배역에서 남들보다 비교적 끊어지지 않는 선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배역의 생활 전반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끊어지지 않는 선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끊어진 구간을 배우의 상상력으로 이어 붙여야 한다. 대게, 작품과 인물을 분석할 때 대본에 나와있는 정보만으로 그들을 창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작품에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 배역은 조각나 있고 찢겨져 있는 것이다. 내가 연기했던 ‘닉’도 상당 부분 끊겨져 있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것을 풀어내기 위해 항상 대본을 붙잡고 씨름을 해도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그 해답은 대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여백을 채워주는 내 상상력에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과감하게 내 상상력의 소스를 첨가해 조리를 해가야 하는 나만의 배역을 어디에서나 검색하면 나올 법한 레시피로 요리하고 있던 것이다. 내가 연기하는 것은 작가의 대변인이 아닌 나의 창조적 작품의 결과물이자, 주어진 상황에 대처하는 내 삶의 대변인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그리고 일상의 대화에서 초점에 두고 있는 것에 따라서 무대의 조명을 달리는 실험을 통해서 이 조명들이 끊김 없이 서로 이어지는 실험을 보고 “실생활에서 우리는 질서 있게, 또는 들쭉날쭉하게, 우리의 주의 집중 대상을 바꾸면서 살아간다. 이렇게 대상이 바뀌어도 그 속에는 하나의 끊어지지 않는 사슬이 있다는 것을 이 시범은 보여주는 것이다.” 라고 또르초프가 말한다.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소개한 개념은 ‘주의 집중의 범위’와 ‘연결된 선’인데 나는 주의 집중의 범위는 변화하지 않는 집중의 범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범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예시를 통해서 잘 나타나 있다. (이 예시는 주의 집중의 범위가 어떻게 옮겨가는지 상당히 잘 설명해놓았기 때문에 모두 써 놓는다.)“내가 보여줄 희곡의 플롯은 이렇다. 우리는 렘브란트의 그림 두 점을 경매하려고 한다. 입찰자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나었다.
연기 훈련 레포트이 책은 코포의 밑에서 배운 작가 미쉘 셍 드니가 연기 훈련을 보다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항해의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책(연기의 첫걸음, 배우 훈련)과 마찬가지로 행동에 기초한 연기술을 채택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렇다고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방법론에 있어서 연기를 일반화 시키지 않고 사람에 따라,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지양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위에서 말했다시피 이 책은 행동에 기초한 연기술을 채택하는 성향이 짖게 묻어나왔습니다. 그 이유로 미쉘 셍 드니는 연극의 기억으로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자세, 그리고 태도를 중요시하게 여겼고 또 그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실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대본을 중단시키고 신체 표현력에 관한 연구에 집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신체 훈련을 해부학적인 측면으로 바라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느낌을 받았을 때 한예종에서 배우는 ‘신체의 이해’라는 과목이 생각났습니다. 이렇듯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강좌가 생각난 경우가 또 있는데 바로 발성 훈련 부분에서 발성 훈련을 노래 즉, 음악적인 요소로 훈련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사에 리듬이 존재해서 리듬을 익히는 훈련을 하는 ‘박가 사위’가 생각났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미쉘 셍 드니의 훈련법이 다듬어지고 발전되어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연기 훈련의 토대가 되는 기초를 구성한 사람이라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이 책에서는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바꿔버리는 발언들이 책 구석구석 숨어있었습니다.들려주기보다는 보여주기를 지향한다.저는 보여주는 연기가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여주려고 하다보면 나의 인식이 대상이나 목적에 가 있지 않고 관객에게 가서 보여주기의 연기는 좋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오히려 보여주기 식의 연기를 지향하고 있었습니다.연기는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것이다.이 발언에 있어서도 의문이 든 것이 있었습니다. 신체 행동을 통해서 충동 혹은 감정이 따라오는 경우에는 반대로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행동에 근거한 연기술은 이 방법을 채택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반대로 설명을 하고 있어서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그리고 이 책에서는 연기 훈련을 할 때 ‘즉흥’이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 했습니다. 코포도 희극 즉흥극과 인물 즉흥극과 같은 다양한 즉흥극을 실험했고, 작가도 연기 훈련 중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즉흥 연기라고 거론했습니다. ‘즉흥 연기’는 내가 어려워하고 다가서기 꺼려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이 기회에 그러한 트라우마를 버리고자 즉흥에 대해서 더욱 세심하게 분석해보았습니다.즉흥이란 무엇일까? 작가 미쉘 셍 드니는 연기 훈련을 할 때 즉흥에 대해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석 연기를 배척하거나 지양한 것은 아니지만 연기의 원천을 발견하는 수단으로써나 연기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얻을 수 있는 기본적인 훈련으로써 즉흥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렇다보니 작가가 5개 이상의 학교를 설립하고 가르치는 자리에 섰을 때 즉흥 연기를 기본적으로 채택한 것도 이 이유였습니다.이러한 즉흥과 반대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해석 연기’입니다.해석 연기는 쉽게 말하자면 대본의 분석을 토대로 연기하는 것이고 즉흥 연기는 창조자의 입장에서 스스로 극을 만들어 나가는 연기입니다.이러한 두 가지의 연기가 서로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으로 나타나고 이 두 가지를 모두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다면 연기하는데 있어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고 작가는 발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본을 토대로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는 ‘해석 배우’의 성향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책에서는 훈련을 할 때 즉흥이 먼저고 그렇기 때문에 즉흥은 편하고 자연스러운데 비해 말이나 상황이 통제되어 있는 해석 연기는 불편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저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대본(텍스트)이 있는 것이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에 저의 경우에는 해석 연기가 즉흥 연기보다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 자신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즉흥 훈련에 있어서 굉장히 집중력 있게 참여하는데도 불구하고 성장, 발전하는 것이 더디다는 것이 느껴질 때 회의감에 빠지곤 합니다. 작가가 말하기를 연극은 성실함만으로는 발전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훈련하는데 있어 계속해서 부딪히고 깨지는 횟수를 늘려나감으로써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했던 나에게 그 방법적인 부분에서의 오류를 지적해준 말이었습니다. 훈련의 양적인 면으로 접근 하지 말고 질적인 면으로 접근을 한다면 결과가 달라질 것인가? 즉흥을 훈련하는데 있어서 접하는 방법을 다르게 한다면 즉흥 연기도 곧 해석 연기를 대할 때의 나처럼 편하게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위에 말했다시피 저는 연기를 배우는 입장에 있어서 지적받고 깨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도전하려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이러한 점이 미쉘 셍 드니와 닮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작가 미쉘 셍 드니와 그를 가르쳤던 스승이 코포는 성공과 관계없이 실험을 했고 실패를 실패로 생각하지 않고 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인드 덕분에 그 시대의 연극을 한순간에 많은 도약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그리고 ‘테크닉의 훈련’에 대해서도 굉장히 강조합니다.보통 연기에 있어서 테크닉을 대할 때, 테크닉에 치우치면 상상력을 방해하고 자신을 통제할 우려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는데 미쉘 셍 드니의 입장을 달랐습니다.
마르지 않는 창의성 (에릭 메이슬作)나는 연기를 하면서 창의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다. 특히 즉흥 연기를 할 때 그것을 많이 느낀다. 내가 창의성이 부족한 것일까? 라는 생각도 자주 하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나요?” 라고 물었을 때 마음에 드는 대답을 해준 사람이 없었다. 그러한 계기로 이 책 마르지 않는 창의성으로 나의 창의성을 한껏 발전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책의 도입 부분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생존의 문제’를 거론하며 예술가는 수입이 비참할 정도로 저조하다, 운과 연줄이 없다면 인정받기 힘들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과 더불어서 화가 존 발데사리는 “예술은 냉혹한 것이다. 행복한 삶을 기대하지 마라. 결국 남는 건 당신과 예술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예술(연기)을 통해서 행복을 찾으려고 했다. 이 말에 따르면 예술과 더불어서 찾아오는 행복이나 돈과 명예에 대해서는 미련을 갖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창의성에 관한 책이므로 창의적인 것에 대해서 정의하고 있다. 창의적인 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상태에서 예술적 창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솔직히 이 글을 보고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위에서 말했다시피 창의성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이고 도움이 되는 해결방안을 원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입에 발린 소리이거나 틀린 것이 없게 하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포괄한 느낌이 들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아니면 나도 너무 해답을 찾으려고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나는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할 의무와 권리가 있으며 창의성에 대해서는 절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나마 마음에 위안이 가는 것은 사탕발림을 하고 있는 듯한 글 속에서도 창의성은 노력으로 충분히 이룰 수 있다.(발전이 가능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문구가 없었더라면 나는 당장이라도 이 책을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계속해서 읽어나가기로 하였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창의성에는 ‘사랑’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사랑이란 예술에 대한 열정, 욕망과 같은 것으로 설명하고 사랑이 없다면 그 예술가는 직업일 뿐 진정한 사랑의 행위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 말에 공감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열정이 없는 사람은 그 직업을 그저 직업으로만 가지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쉽게 벼락 스타가 된 실력 없는 연기자를 명배우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열정이 있고 사랑이 있는 예술가가 진정한 아티스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예술을 처음부터 사랑해서 시작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연기에 대한 열정은 시간이 지남과 더불어서 더욱 불타올랐던 것 같다. 처음 불타올랐던 시기는 고등학교 연극부에서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섰을 때,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입시에 최종 합격 됐을 때. 이렇듯 나는 어떠한 계기로 인해서 연기에 대한 열정(사랑)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나의 열정에 대해서 의심할 수 있을까? 나는 처음에 불타올랐다가 사그라지는 싸구려 열정보다는 훨씬 탄탄하고 안정적인 차가우면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확언할 수 있다.이 책의 저자는 예술가는 무슨 생각을 할 것이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이다. 라는 말투로 수만가지 색깔의 예술가들을 한 가지 색으로 정해버리는 것 같다. 사실 이 점에 대해서 굉장히 불쾌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부분도 굉장히 많은데 예술가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라는 말투고 마치 내가 그렇게 될 것이라 세뇌시키고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나는 예술가가 아닌 것일까? 대표적으로 예술가의 성격에 대해서 논할 때 예술가들의 성격은 역동적이고 혼란스럽다. 라고 지구상의 모든 예술가들을 정신분열자나 싸이코패스로 치부하는 것 같아 상당히 불쾌했다.나는 특이하게 이 책을 읽으면서 배우 렌 라이오우의 일화를 통해서 내가 배우를 하고 싶었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배우 렌 라이오우는 배우가 될 생각 없는 영화 미치광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배우 모집 공고를 보고 “머릿속이 우지끈하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평소에 “왜 배우가 되려고 하니?” 라는 질문에 “진정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배우라는 직업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라는 뻔한 입시용 답변만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도 역시 배우가 될 생각이 없던 때에도 드라마나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상태에서 고등학교 입학 후에 진로를 정할 시기가 오자 배우라는 직업을 보고 렌 라이오우처럼 가슴속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처음에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를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나는 “왜? 배우가 되려고 하느냐?” 라는 질문에 당당히 답할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드라마나 영화에 일부분이 되고 싶어서요.” 라고. 이러한 답을 얻게 해준 렌 라이오우의 일화가 이 책을 보면서 나에게 가장 강렬하고 인상 깊으며, 도움이 된 구절이 아닐까? 생각한다.그리고 또 한 가지 강렬했던 구절은 ‘행동하기’ 목차에 나오는 차이코프스키의 편지 내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차이코프스키는 “계속해서 행동(예술 활동)해라,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면 나태해지고 열정은 식어버린다. 참을성이 있는 자만이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막힘이 있으면 다른 도구로 뚫거나 막힌 길을 비켜가는 길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연기를 하다가 잘 풀리지 않으면 연기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기분 전환을 하는 것도 연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 편지 내용에서 차이코프스키가 말하는 것을 보면 차이코프스키가 원하는 배우의 모습은 계속해서 풀리지 않는 대본과 씨름하는 모습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 구절을 ‘강렬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표현한 이유는 바로 내가 차이코프스키가 말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따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는 “이것을 계속 파헤쳐봤자 시간 낭비야,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오히려 능률면에서 좋을 거야.” 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지만 정작 나는 계속해서 대본과 씨름하고 인물과 씨름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이코프스키의 말에는 반대하지만 혹시나, 내가 하고 있는 신체적 활동이 옳은 것인가? 라는 일순간의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에 이 구절을 읽으면서 눈으로는 미간을 찌푸리지만 입은 웃고 있는 설명할 수 없는 애매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책의 독자는 꼭 배우가 아니어도 좋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사람들이 살면서 가장 크게 저지르고 있는 오류들을 지적하고 있다. 설령 그것이 연기에 관련된 것이라 해도 ‘인생=연극’이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작가는 꼭 연기하는 사람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우와 일반인은 몸, 마음, 정서 등 서로 가지고 있는 재료가 같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연기 서적이라고 배우들을 위한 책이라고만 치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 책에서 작가가 가장 많이 우려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 커가면서 잃어버리는 ‘가능성’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든 처음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욕구와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능력 사이에서 제약이 생기고 또 그것과 타협하다보면 가능성이 제로가 되어버린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연기 훈련을 통해 모두 변할 수 있다는 공통분모를 통해 우리도 변할 수 잇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그리고 변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개념과 훈련법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연기자만을 위한 개념과 훈련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바로 ‘느낌’이다. 느낌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부터 살펴보자면 ‘몸의 감각이나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기운이나 감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느낌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자가는 인간의 모든 정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자신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포나 슬픔의 정서를 느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느끼고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마음을 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초반에는 동기들에게 조차 마음을 열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상처받을까봐 두려워서이다. 사람들에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는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생각해보니 배우 생활을 하는데 있어 이것은 치명적인 단점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달리 정서를 느꼈다 할지라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행동에 실행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에 있어 나타나는 오류들도 있다. 바로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자신이 느낀 그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현대인에 대해서 비판하는 성향이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물론 연기를 할 때 느낀 그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 연기가 되어버린다. 이것은 정말 당연한 명제이다. 그리도 관객이 보았을 때도 ‘어색하다’라는 느낌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다른 식으로 해석하면 연기뿐만 아니라 ‘인생=연극’이라는 개념에서 보았을 때 모든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긴 연극의 배역이라는 이론을 갖고 있으니 이러한 상황에서 동일한 오류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느낌 그대로 행동을 통해서 적절하게 표출되지 않는다면 잉거 스티븐스의 예시처럼 자살 사건 같은 부정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소통의 문제인 것 같다. 사람들이 소통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한다면 행동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려면 소통이 필요하다. 작가는 스티븐스의 자살 사건에서도 원활한 소통이 불가능 했던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나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나는 두 가지 성격이 공존한다. 정말 친한 친구와 어색한 친구들을 대할 대의 행동인데, 이 경우에서는 후자의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아직도 이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많이 아팠던 기억 때문에 그로인해 내가 힘들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나를 감추던 때가 있었다. 심지어는 친구들을 속이기 위해서 벽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 때 나이가 아마 초등학교 2~3학년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철저하게 나의 느낌을 감추려는 행동 인 것이 분명하다. 느낌과 행동의 상관관계가 부적절하다보니 나 같은 경우 스티븐스처럼 자살 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곤 했다. 또 그렇다 보니 소통하는 데에도 문제가 생겨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친구들 중 딱히 기억나거나 의지했던 친구는 없었던 것 같다. 이렇듯 느낌과 행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통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소통이란 상대 뿐 만 아니라 나의 경험처럼 자신 스스로와의 소통도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느끼는 대로 행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일상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느끼는 대로 행동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분명 어려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일상에서 느끼는 대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것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짧은 순간이라도 우리가 느끼는 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작가의 경우 로열 극장 안에서 암전이 되자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또한 어떠한 상황에서는 느끼는 그대로 행동할 때가 있다. 그렇듯 우리는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조금 부적절한 예시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악플러의 경우에서 우리의 솔직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악플러는 ‘익명’이라는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기반이 생기자 자신이 느낀 그대로 순수하게 발언하고 주장한다. 악플러들이 악플을 다는 그 순간에는 스티븐스가 말하는 자유로운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악플러들도 일상생활에서는 이렇게 행동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익명’이라는 틀에서 자유롭게 활동했듯이 일상에서도 이렇게 변할 가능성이 존재하다는 것이다.이러한 가능성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가능성은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생에서 삶의 내용을 바꿀 권리는 나에게 있다.”라고. 그것은 바로 인생을 연극이라고 생각해보았을 때 연극에서 모든 것이 연습이 가능하고 수정과 보완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인생의 주인공인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은 사회나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닐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무엇이 가능 하겠냐?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통해서 가능성을 제한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나 같은 경우에도 모든 것이 가능한 즉흥 연기를 할 때 내 자신이 연기나 상황의 틀을 정해버리는 것이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 틀을 만들어 놓고 틀 안에서 노는 것이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인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이다. 자신이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틀을 정하고 행동하면 당사자는 지키기만 하면 되기에 한편으로는 편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알아야 한다. 편하다는 것과 옳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하고 있는 행동이 편하더라도 잘못된 행동이면 바꿔야 한다. 나는 전에 내가 친한 사람과 어색한 사람을 대할 때의 나의 모습이 다르다고 말했었다. 이것은 어쩌면 나에게 편할 수는 있겠으나 옳은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내가 말했던 이 틀이 정말 넓거나 아예 없었을 때를 생각해 본다면 바로 어렸을 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천진난만하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이면 갖고 싫은 것이면 버리려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것은 정말 솔직한 표현이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원하는 우리들이 바뀌어야 할 이상향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제는 우리가 느끼는대로 행동하기를 원하다면 그렇게 바뀌어야할 차례이다. 작가는 우리가 바뀌기 위해서 노력해야 되는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 의식해라, 인식해서 행동 하여라 등 많은 것들을 얘기하고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는 바로 ‘목적’이다. 작가는 행동을 할 때 목적을 꼭 갖자 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모든 행동에 의도가 부여가 되면 진심으로 그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행동에 진심이 담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진심이 담기게 되면 그 행동은 그 사람의 솔직한 표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갖고 싶다는 목적을 가지고 행동에 임하니 정말로 갖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느낌에서부터 출발하여 솔직한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목적만 갖는다고 해서 솔직한 표현을 갖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자신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중요한 단어가 있다. ‘방황’ 이 한 단어 인데 황석영 작가님이나 다른 어떤 평가를 찾아보아도 개밥바라기별이라는 작품에는 항상 방황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책의 내용에선 장마다 말하는 시점이 모두 다르지만 중요 인물은 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준이의 과거를 보면 학교 교육에 대한 반감을 느끼고 산악회에 들어가 무단결석을 하곤 했다. 그리고 후엔 커서 한일회담 반대 시위로 죽을 고비도 넘겨보았고 자살 기도도 해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방황이라고 단정 짓는 어른들을 보며 생각해보았다. 과연 이것들이 방황일까? 방황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