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와 조조의 리더십, 그리고 현대목차유비유비의 리더십유비의 리더십 특징조조조조의 리더십조조의 리더십 특징결론: 현대사회에 보다 적합한 리더십은?유비유비의 리더십:삼국지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유비, 관우, 장비가 맺었다는 도원결의는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마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가 유비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삼국지를 어렸을 때 청소년 용 만화책으로 접한지라 초반에 등장했던 유비와 그의 의형제들이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었다.삼국지를 살펴보면 유비의 활약은 그다지 크지 않다. 전투에서 용맹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은 관우, 장비, 조자룡, 황충 등 무장이었고, 머리를 써 승리로 이끄는 계책은 제갈공명이 담당했다. 조조와 비교했을 때도 뚜렷하게 뛰어난 데가 없고, 우유부단하단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도 지도자로서 유비가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유비, 그의 자는 현덕이다. 현덕이란 아무 것도 욕심 내지 않고 인위적이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추구하는 덕을 의미하는 도가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말한다. 현덕이라고 불려지듯 유비는 전반적으로 온화하고 포용적이고 비교적 민주적인 인물로 그려져 전투에서 매번 승리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를 따르는 사람이 끝이 없다. 이러한 유비의 리더십은 이 자체로 카리스마 있다고 할 수 있고 추진력이나 통솔력은 상대적으로 약했을 지라도 수하들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민주적인 스타일로 힘을 실어주는 힘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유비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일화로는 제갈량을 포섭하기 위해 세 번 찾아갔다는 삼고초려 일화나,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을 구출해 데려오자 아들을 내던지며 “아이는 또 낳을 수 있지만 그대 같은 인재는 또 구할 수 없다”라고 말한 사례가 있다. 이렇게 필요한 인재를 얻기 위해 자기를 낮추고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았고 가족보다 부하를 우선시 했다고 한다.유비 리더십의 특징혈통을 내세운 카리스마유비는 촉의 황제가 될 때까지 인생의 2/3를 도망 뿐만 아니라 바다와 같은 포용력과 인자함도 있었다.지금도 그렇지만 전국난세에는 출신, 배경, 재력, 무력 따위가 개인의 성공과 실패를 가결정하는 요인이었다. 유비는 어느 하나 제대로 갖췄다고 보기 힘들었지만 혈통과 ‘다른 사람을 끌어당기는 흡인력’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고 이는 유비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이 행운의 흡인력과 혈통에서 오는 자신감이 유비 리더십 카리스마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겠다.포용력, 그리고 어진 인간성유비에 대해 조사하면서 발견한 점은 유비의 어질고 올바른 인품을 꼽는다는 것이었다. 전국난세, 이 시대엔 외척과 환관들의 전횡으로 국가가 국가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법과 정치가 균형을 잃은 상태에서 올바른 인품의 유비는 백성들 눈에 한나라를 다시 일으킬 사람으로 보였을 지 모른다. 조조를 비롯한 당시 영웅들은 이렇게 백성으로부터의 지지를 얻고 있는 유비를 무시할 수 없었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또 유비는 포용력이 큰 인물이었다. 부하의 재능을 존중하고 인정하였고 뛰어난 인재를 포섭하기 위해 스스로를 낮출 줄도 알았다. 이러한 포용력은 제갈량을 영입하기 위하여 세 번 걸음했다는 ‘삼고초려’ 일화에서 볼 수 있다. 유비와 달리 등용한 인재를 딱 필요한 만큼만 이용했던 조조의 수하로 제갈량이 있었다면 그저 머리가 조금 더 좋은 조조의 인물이었구나 싶지 아마 뛰어난 책략가로서의 유명세가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이렇게 신하가 충분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대폭적인 권한을 넘겨 세세한 부분에는 간섭하지 않았다. 때문에 신하들의 신임을 받았다.허점앞서 말했듯 유비를 결단력이 부족하고 우유부단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유비가 스스로 전략전술을 짜가며 수행했지만 작전착오로 군사들이 지치고 시기가 떨어져 이릉전투에서 패배한다. 결국 유비를 사망으로 이르게까지 한 것을 보아 제갈량 없이는 한계가 드러나는 면도 보인다.유비는 삼국지의 주인공이지만 마지막이 멋지거나 아름답지 않다. 육손에게 대패한 이릉유비와 달리 조조라는 인물은 부정적이미가 더 크다. 이는 소설의 저자인 나관중이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고 천하를 품을 만한 군주로 묘사하기위해 조조를 후한을 멸망시킨 간웅(奸雄)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관중의 삼국지는 그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려낸 소설이기에 그의 주관을 빼고나면 조조가 악역으로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소설 삼국지의 조조는 간웅으로 묘사되었지만,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조조는 강하고 결단력있는 난세에 어울리는 전형적인 리더의 모습이었다. 결단력있고 남다른 통찰력, 그리고 실천력까지 겸비한 인물로 보인다. 실제로 조조는 후한의 정치가이자 군인이며 시인이었고 황건적을 토벌하고 난세의 영웅호걸들을 통합해 한나라 황실을 바로세웠으며, 각종 부정부패를 바로잡았다. 제도정비, 인재등용, 국가재정 강화, 조세평등 같은 개혁을 이루어 혼란을 평정했다. 조조의 업적을 나열해보니 유비와는 다른 방면으로 뛰어난 인물인데(유비의 가장 뛰어난 점은 인품이었다고 생각) 부정적 이미지가 큰 것을 보면 소설을 쓴 나관중이 유비에 매료되었거나 조조에게 악감정이 있었던건 아닐까 생각된다.조조는 환관 가문에서 자랐다. 부친이 환관 조등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조조는 명문가에서 자랄 수 있었다. 그 덕에 20세가 되자 관직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고, 더 큰 인물이 되기 위해 명성과 평판의 필요성을 느껴, 당대 평론으로 유명했던 허소를 찾아갔다. 소설 삼국지 속 허소는 점쟁이, 관상가 쯤으로 표현되지만 실제론 유명한 사상가이자 인물 평론가였다고 한다. 따라서 허소에게 좋은 품평을 얻으면 전국적 유명인사가 될 수 있었다. 허소가 만나주지 않자 조조는 거짓소문을 퍼뜨려 허소가 찾아오게 했고, 허소가 평하길 “그대는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로다.” 허소의 말 처럼 조조는 냉철하고 잔인한 영웅이 되었다.조조의 인재 등용 방식의 핵심은 실용주의 용인술이라고 할 수 있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재능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 인재로 등용한다는 ‘구현령’을 발표했던 것으로 알수 있다. 리더로서 주체성을 모든 것에 우선했다. 이에 때로는 잔인성도 수반되었는데 이는 여백사와 그의 가족을 모두 살해했던 일화에서 엿볼 수 있다.조조는 동탁을 제거하는데 실패하고 도피하던 중 여백사의 집에서 묵게 되었다. 여백사가 술을 구하러 간 사이 집에 남은 조조와 진궁은 집 뒤에서 칼가는 소리를 듣게된다. 자신들을 해치려는 것으로 오해를 한 조조와 진궁은 여백사의 여덟식구 모두를 살해한다. 하지만 부엌에 묶여진 돼지를 보고 자신들의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된다. 달아나던 조조는 술을 구해 돌아오는 여백사와 마주치고 여백사마저 죽여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차라리 내가 천하 사람들을 버릴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자신은 다른 사람을 배반해도 다른 사람에게 배반 당할수 없다는, 의심많고 잔인하고 유비와는 다르게 악한 성품을 보여준다.인재등용에 있어서 통찰력조조가 냉철하고 잔인했지만 자신이 믿고 써야 할 인재에게는 너그러웠다. 적인 원소를 격파했을 때, 원소와 내통한 밀서가 무더기로 발견되었지만 이를 처벌하는 대신 밀서를 불태워버린 사건이 있다. 조조의 세력이 크지 않았던 시기였고, 밀서를 주고받은 부하들을 처벌한다면 자신의 세력이 약화되고 다른 분열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또한 유비와 관우도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으며, 유비를 제거하자는 참모의 의견에는 “지금은 영웅을 끌어들일 시기이다. 이럴 때 한 사람을 죽여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잃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했다.이후에도 조조는 출신과 과거를 묻지 않고 인재를 활용한다. 신분의 고하는 물론 적진에 있던 자라도 재능이 인정되고 숙이고 들어온다면 영입했다. 누구든 인재로 등용하겠다는 ‘구현령’을 발표하여 수많은 인재가 모이게되었고, 그들은 위나라와 진나라를 세우는 초석이 된다.철저한 논공행상그러나 조조는 온정주의자는 아니었다. 재능이 있는 자는 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치켜세워주고 격려했지만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가차없이 쫓아냈다. 원칙적인 오류를 를 수확해야 할 시기에 군사를 일으키자 백성들은 두려워서 보리를 베러 나오지 못한다. 이를 본 조조는 보리밭을 함부로 밟는 군사는 참형에 처하도록 군령을 내린다. 하지만 조조가 말을 타고 보리밭 옆을 지날 때 튀어오른 새에 놀란 조조의 말이 보리밭으로 들어가자 조조는 자신이 만든 법을 스스로 어길 수 없다며 자신의 목을 자르려 한다. 부하들이 급히 만류하자 조조는 대신 머리털을 끊어내 목숨을 대신하겠다고 말한다. 당시 머리를 자르는 것은 중벌이었기에 군사들은 크게 놀랐고 군령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결론: 현대사회에 보다 적합한 리더십은?시대가 천지차이인지라 당대의 최고 지도자들을 현대의 시점에서 비교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유비와 조조 각각 다른 방면이지만 모두 뛰어난 지도자였음은 확실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그들이 살았던 시기와는 달리 다원화되고 더 고차원적인 것을 요구한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과거의 리더십과는 비교가 불가하다. 오늘날의 바람직한 리더십은 유비처럼 인품만 특출나도, 조조처럼 강한 추진력만으로 부하를 혹사시키기만 해도 안된다. 정답을 유비, 조조 둘에게서 찾자면 그 둘을 결합한 형태가 가장 바람직한 리더십이지 싶다.이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조사를 할 때에는 조조의 리더십이 그 당대에 결과적으로 더 잘 통한 것처럼 보이고 현대에도 유비의 그것 보다는 더 통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도덕성이란 덕목 없이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조조의 잔인하지만 강력한 추진력만 가지고 지금 시대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이란 것을 신경쓰고 임직원이 봉사활동 한 것을 홈페이지에 내걸며 광고를 통해 얼만큼이나 사회에 공헌하는지를 내거는 것일까. 우리나라 최고 기업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기업 경영에 있어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지만 성매매 파문 등 도덕성이 의심되는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을 때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이렇듯 아무리 조직을 잘 운영하고 뛰어난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에 어울리는 인품, 도덕성을 갖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