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사례로 본 미디어로서의 우표1. 우표의 역사① 우표의 탄생고대 이집트의 우편은 밀랍으로 봉인한 파피루스를 심부름꾼 손에 들려 보내는 형태였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비효율적이었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그래서 페르시아에서는 이를 개선해, 영토 내에 수도를 중심으로 일정한 거리에 숙박소를 마련하고, 말과 마부를 두어 기마의 계주에 의해 편지를 운반하는 대규모의 통신제도인 역마제도를 마련했다. 로마도 이 제도를 계승했는데, 정비된 도로를 이용해 마차도 동원해 사용했다. 하지만 페르시아·로마의 우편제도는 정치·군사상의 필요에 의하여 이룩된 것으로 이용은 일반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정부 배달부에게 뒷돈을 주고 우편물을 전달해야 했다.산업혁명 시기에 들어선 후, 물자와 인력의 이동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대량의 우편물을 신속하게 전달할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우편제도가 대중화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당시엔 특권층에게 우편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기 위해 서민들에게 이용요금을 비싸게 받았고, 요금을 수신자가 부담하게 되어있었다. 그래서 서민들의 수신거부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으며 요금대납 후 편지를 가로채가는 일도 많았다. 게다가 편지의 무게와 거리에 따라 가격도 중구난방이었다.그림1) ‘페니블랙’1837년, 영국인 교사 롤랜드 힐은 우편제도 개혁안에 대해 논문을 발표한다. 롤랜드는 이 논문에서 발신자의 요금부담, 전국균일요금제, 특권층의 무료 우편제도 폐지, 발신자의 요금납부를 증명하는 우표제도를 주장했다. 1840년, 빅토리아 여왕은 의회의 반대에도 개혁안을 승인했고, 최초의 우표인 ‘페니블랙’이 탄생되었다.② 오늘날의 우표오늘날 한국에서 우표는 보통우표, 기념우표, 연하우표, 특별우표, 시리즈우표 등으로 나누어 발행되고 있다. 또한 통신매체의 발달에 따라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본래의 목적보다는 수집용으로 사랑받고 있다.2. 미디어로서의 우표① 미디어로서의 의의ㄱ. 우표는 한 국가의 표상이자 그 시대를 대표하는 기록물이다. 게다가 정부 혹은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기관에서 발행한다. 따라서 공식적인 성격이 높은 기록매체라고 볼 수 있다. 아래의 글은 북한의 우표에 대한 것인데, 우표가 하나의 매체로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보여준다.? 북한은 1946년 이래 지속적으로 우표를 발행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발행할 뿐만 아니라 우표에 담기는 그림이나 사진 또한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우표를 통해 북한 사회와 문화의 변화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특히 국가주도로 생산되고 있는 북한의 우표가, 국내에서만 소통되는 것이 아니라, 국외로 편지나 물품을 보낼 때에도 공개적인 위치에서 붙여져 보여지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표는 북한의 물건이 보내질 수 있는 외국인들과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매체이다. 이점을 북한 당국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표는 한 국가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이용된다. 따라서 자신들만의 국가상징이 만들어지기 전인 1946년에 처음으로 발행된 우표는 ‘무궁화’였지만, 곧 김일성초상을 토대로 만든 우표가 제작되었으며, 자신들만의 국가표상이 만들어진 이후, 1949년에는 국기, 1950년에는 국기훈장을 우표로 제작해 발행했다.외국인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노출되는 우표의 특성은 북한의 지역성을 드러내는 이미지와 더불어 세계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이미지 또한 선별되어 우표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관점들을 토대로 북한은 1946년부터 2002년까지 4,200여 종의 우표들을 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제작된 이미지들의 주제는, 우선 북한의 특수성을 드러내고 있는 김일성수령 및 김정일위원장의 우상화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 및 초상화, 국제적 의의를 갖는 행사 및 인물 초상화, 북한의 특수성이 잘 반영된 건축물 및 문화예술적 성과들, 인민들을 교양하기 위한 표어들, 북쪽 땅에서 벌어진 유구한 역사와 문화, 자연, 지리, 동식물들이 우표로 만들어졌다.… (중략)1940~1950년대 북한과 소련의 관계가 좋았을 때는 소련의 인물뿐만 아니라 소련의 우주로케트 발사를 기념하는 우표 등을 발행함으로써 성장하는 소련의 이미지를 통해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선전하고자하기도 했다.그러나 1960년대 이후 소련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소련관련 우표 수가 격감했다가 1980년대 이후 소련 관련 우표가 다시 증가함에서 볼 수 있듯, 이러한 해외 우표의 이미지 선택은 외교관계의 기상도와도 밀접히 관련됨을 알 수 있다.ㄴ. 우표는 정부의 정치적 의도를 담아 발행하기도 한다. 이런 우표가 시간이 지나면 위에서 말한 기록이 되는 것이다. 아래는 그로 인한 사례들이다.? 독도우표한국 정부는 독도를 주제로 1954년·2002년·2004년 세 차례에 걸쳐 우표를 발행했다. 1954년 독도우표를 처음 발행할 때부터 일본은 독도우표 발행에 반감을 가졌는데, 특히 2004년에는 이를 문제 삼아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망언을 해 외교문제로까지 번졌다. 더욱이 일본우정공사는 민간인의 신청을 받아 독도 사진을 넣은 우표 360장을 발행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