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1978년 유신정권 시대의 고등학교를 매우 현실적으로 나타낸 리얼리즘 영화로 평가 받는다. 싸움을 가장 잘하는, 소위 ‘짱’이라고 불리는 학생이 학교를 지배하는 계급 사회가 형성 되어 있는 점, 좋은 대학에 들어 가야한다는 부모님의 집착, 폭력적인 유신시대의 학교교육, 권력에 복종하는 교사들, 집안과 성적에 따른 차별 등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은 장면은 다양하다. 당대의 삶이 녹아있는 를 교육사회학적 측면에서 바라보려 한다.먼저 폭력적인 유신시대의 학교교육을 갈등주의 측면에서 보면, 교육을 기존 사회질서 유지와 강화를 위한 매개로 보는 것이 전제가 된다. 지배층이 바라는 학교를 더 쉽게 운영하기 위해, 조작된 문화와 이념을 피지배층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에 교육을 이용한다는 이론이다. 이 영화에서는 지배층이 가하는 폭력적 교육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조작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폭력적인 교육은 ‘억압적’ 자본주의 사회 유지에 필요한 가치관과 성격적 특성을 학생에게 주입시키는 데에도 사용된다. 자본주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산양식뿐만 아니라 생산 관련 인간관계도 생산양식에 적합하게 유지되어야 하는데, 자본가와 노동자의 지배-피지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학교가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교사의 물리적, 언어적 폭력에 저항하지 못했던 학생들은 결국 윗사람의 지시에 순응하고 수동적인 노동자로 양성된다.다음으로는 자식이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에 집착하는 부모들의 모습과 성적으로 학생들을 차별하는 교사들의 모습을 갈등론의 하위 이론인 경제적 재생산 이론 측면에서 생각해보려 한다.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곧 사회에서 인정 받는 방법이라고 교육하는 것은 역시 지배층이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좋은 대학교에 가는 학생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집안(지배층)의 자녀들이다. 경제적으로 높은 지위 집안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는 학생들보다 훨씬 좋은 질의 교육을 받을 것이고 학교에서 받는 교육 또한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받는 교육이 다르다는 것은 교사들이 학생들을 교육할 때 은연중에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갖게 된 교육목표나 기대, 관심을 바탕으로 하여 교육하기 때문에 차별적 사회화가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에서 각자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사회화 과정을 거친 학생들은 그에 맞는 위계적 위치를 채우게 된다.은 학교의 모습, 즉, 거시적인 측면보다는 인간관계나 학생들 사이의 심리적 갈등을 표현하면서 미시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갈등 속에서 드러나는 등장인물(개인)의 대사를 통해 당시 학교(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기태의 갑작스런 죽음을 뒤쫓는 기태 아버지는 희준을 찾아 간다. 그때 희준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희준을 부르며 기태 아버지는 “한창 공부하는데 찾아와서 미안하다. 이제 고3 올라가면 공부하느라 바쁠 거 아냐.”라고 한다. 이 대사는 기능론적 관점에서 쓰여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태 아버지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대학진학이 높은 사회적 지위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누구나 높은 사회적 지위를 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할 것이다. 고3이 대학진학의 문전에 있는 위치이기도 하고 앞서 말한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기태 아버지는 고3 올라가면 공부하느라 바쁠 거라고 말한 것이다. 기태 아버지의 말에 “아닙니다. 괜찮아요.”라고 답한 희준 역시, 선별을 우수한 인재 선발의 계기로 보았고 사회적 지위는 세습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업적에 따라 획득되는 것으로 보았기에 기태 아버지의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희준이 대학진학을 개인의 의지(공부)로 성취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