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가학번 이름-서론-아무에게나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를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 미국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특별히 미국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더라도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보통 미국으로 수렴한다. 그만큼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미국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를 비롯한 다양한 모습으로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러한 미국이 그다지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과연 어떻게 오랜 역사를 지닌 수많은 다른 나라들을 재치고 세계1위의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미국을 움직이는 네 가지 힘’에서 저자는 제목 그대로 ‘프런티어’, ‘민주주의’, ‘지역 정서’, ‘다문화주의’ 라는 크게 네 가지 주제로 나누어 설명한다.-본론-프런티어프런티어의 사전적 뜻은 국경, 경계 혹은 변경이다. 하지만 미국을 설명할 때 쓰는 프런티어는 아주 특별할 의미를 갖는다. 미국의 역사는 프런티어로 시작해 프런티어의 변화와 확장 끝에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 있어서 ‘프런티어’는 개방, 자유, 기대의 함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미국 프런티어 역사는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인해 시작하여 1846년 멕시코와의 전쟁을 마지막으로 1890년 프레드릭 터너의 프런티어 종결선언으로 종지부를 찍는다. 어쩌면 미국의 ‘프런티어’를 지금도 계속 변화하는 역사의 한순간으로 본다면 종지부라는 단어가 맞지 않을수도 있다. 어찌됐건 1890년의 국경적 의미의 프런티어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한 가지 주목할만한 것은 프런티어의 시작인 영국의 식민지 진출이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 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저마다 종교적 자유, 경제적 기대 등 개인적인 희망을 가지고 아메리카로 넘어왔다. 미국은, 영국인들의 정착을 위한 식민지였다. 후에 미국은 1803년 제퍼슨의 루이지애나 매입을 기폭제로 서부로 끝없이 확장해 나간다. “국가가 아닌 민간인들이 초기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에 정착했다는 것, 이 점이 향후 미국의 역사에, 그리고 우리가 다루는 서부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이다”.(p.24)꿈과 희망을 동반한 서부로의 프런티어 확장이 마냥 순조롭고 아름다운 과정인 것은 아니었다. 아메리카에서 유럽인들과 인디언들의 수많은 갈등이 존재했다. 1676년 베이컨 난, 1787년 북서부영지 법 등이 이를 나타내주는 사건이다. 금을 쫓아 남쪽 끝에 있는 캘리포니아로 모여든 사람들에게는 기대와 희망에 찬 모습보단 황금만능주의적 가치관을 지닌 한탕주의자 라는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세계각지에서 다양한사람들이 모여든 이곳에서 또한 미국의 인종주의라는 어두운 면을 보여준다.프래드릭 터너의 프런티어 종결 선언 후에도 존F.캐네디 대통령은 뉴프런티어 정책 내세우며 ‘moon프로젝트’, ‘피스코 파견’ 과 같은 일들을 진행한다. 이렇듯 미국역사에서 ‘프런티어’란 지금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고유한 문화적, 정서적 의미가 함축된 , 그 이상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민주주의미국의 민주주의는 무언가 특별하다.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가 아니었음에도 특별성을 지니게 된 이유를 알렉시스드 토크빌의 저서 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프랑스의 귀족출신인 토크빌은 모국의 격동기를 겪고 유럽인의 관점으로 미국 민주주의는 무엇이 특별한가에 대해 세세히 분석하였다.“토크빌은 당대의 어느 사상가보다도 인간을 둘러싼 환경적 요소가 그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에 근본임을 강조했다”(p.101). 아메리카의 지형은 광활하고 비옥한 토지, 굵고 작은 강들의 연결과 같은 사람이 정착하여 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유럽에서 정착을 위해 이곳 아메리카로 건너온 초기 이주민들은 정부의 개입 없이 그들만의 자치적인 규칙을 만들었다. 이는 곧 사회법규가 되었고 설사 그 내용이 비민주적일지언정 이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자체는 동시대 그 어떤 유럽국가들과도 비교했을 때 가장 민주적이었다.“토크빌이 유럽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미국의 상황은 바로 민주주의를 형성하는 ‘모든 조건의 평등’ 이었다.”(p.123) 유럽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갈등이 민주주의의 성장을 방해하는데 반해 미국은 계층 간의 갈등이 없었기에 더 실질적이고 빠르게 성장했다. 애초에 개인들에 의해 이주가 이루어진 아메리카 이주민들 사이에서는 학벌, 출신, 배경 등이 전혀 중요치 않았다. 이렇듯 귀족주의를 차단시키고 이뤄낸 민주주의를 비추며 토크빌은 ‘모든 조건의 평등’을 강조했다.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의 종교적 측면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비신앙을 민주주의의 조건으로 보는것에 동의하지 않았던 그는 미국에 만연한 기독교에 주목했다. 종교는 민주주의와 조화를 이루며 공존했고 오히려 이는 규율만으로는 부족한 인간의 도덕적 행위로의 이끔을 수행해주었다.미국의 민주주의는 토크빌의 모국이었던 프랑스와는 다르게 혁명 없이 그저 삶의 습관으로 시작돼 관습으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지역정서남북전쟁은 미국 역사 전후를 나눌 정도로 미국 역사에서 핵심적인 사건이다. 이는 미국사 전체를 통틀어 남과 북의 지역적 정서를 대표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전쟁의 원인 뿐 아니라 전쟁의 결과가 지금까지도 미국사회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끼쳐왔다.남부와 북부는 정치적 성향, 경제적 자원, 노예제도까지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달랐다.남부는 강한 주정부를 내세우며 정적인 보수적 색을 가진 남부공화당, 농업을 기반으로 한 미국다움을 강조한다. 북부는 이와 대조적으로 강한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연방정부, 상공업을 경제적 기반으로 둔 미국을 말한다. 중심인물로는 북부연방파의 해밀턴, 남부공화파의 재퍼슨이 있다.그중에서도 갈등의 핵심은 노예문제였다. 노예제도가 철폐되면 남부는 농업중심사회가 무너진다며 이의 존립을 주장했고, 비교적 노예문제와 관련 없는 공업중심의 북부는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노예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다.이렇게 오랫동안 깊어진 감정의 골은 1861년 노예제도 폐지에 옹호적이었던 링컨의 대통령 당선으로 폭발하게 된다. 링컨의 당선 한달만에 남북전쟁이 발발한 것이다.남북 전쟁은 결국 남부의 패배로 끝이 났지만 그것이 지역감정의 갈등을 끝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으로 인한 감정의 잔해로 남과 북의 분노는 더 극명해져갔다.북부의 승리로 제도적 통일은 이루었을지 몰라도 남부인들은 그들의 가진 문화적 자부심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을 더 결속시켰다. 이러한 대치는 전쟁이 한참 끝난 지금까지도 미국 선거 결과를 통해 드러난다.다문화주의“미국은 시작부터 분명 다문화사회였다.”(p.263)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의 일차적 목적은 개인적인 성공을 위함이었다. 영국의 아메리카 식민지는 그 정착에서부터 다양한 인종, 민족, 종교가 섞여있었다. 뉴욕에 가장 먼저 정착했던 국가는 네덜란드였으며 이후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프랑스 등에서 건너와 융합을 이루었다그러면 각기 다른 곳에서 이주해온 유럽인들이 미국인이라는 동질적 정체성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로는 신대륙의 광활한 대지, 공동의 적인 인디언, 식민지인들의 경제적 야망을 꼽을 수 있다.“무엇이 다문화사회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그 홍역을 미국이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넘어갈 수 있도록 했을까?” (p.299) 그 원인은 미국인구의 유동성, 철저한 다문화주의 혹은 다원주의의 정착, 이민자 수용 및 동화정책인 ‘도가니 문화’ 에 있었다. 미국보호협회(APA)의 반가톨릭운동, 큐 클럭스 클랜(KKK)의 반 이민운동 등 다문화사회에서의 겪었던 혼란은 이와 같은 요인들로 인해 넘어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