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시작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의 영향인상주의(마네, 모네): 원근법에 대한 부정, 서사적 사건보다는 동시대인의 삶을 화폭에 담는 것에 주력함(마네)/특정 주제보다는 빛의 변화를 담는 데에 주력(모네)기존의 회화가 어떠한 역사적/신화적/서사적 사건을 주제로 했던 것에 반하여 인상주의 화가들은 동시대의 삶(모더니티)과 빛의 변화를 담아내는 것에 주력하게 됨.세잔: 사물의 본질적인 구조를 파악하고자 대상의 본질을 원통, 원추, 구로 환원시켰으며, 캔버스에 다시점을 담아내면서 형태와 색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림야수파와 입체파: 세잔의 영향으로 ‘색채’와 ‘형태’에 관한 기존 회화의 전통을 탈피함.화가의 자율성 증가: 더 이상 후원자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않아도 되는 화가는 사적 관심사, 경험, 상상력을 예술의 주제로 삼았음.인상주의와 세잔의 영향을 받은 야수파와 입체파는 기존의 색채와 형태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였으며, 미술의 관심이 자연의 모사나 서사적 사건의 표현에서 회화만의 정체성과 조형요소로 옮겨가면서 미술은 구상에서 추상의 경향으로 전이해 감.야수파(20C 초 프랑스)발생: 1905-8년 프랑스 에콜 드 보자르의 입학생들 중 모로에게 사사받은 화가들+파리 아카데미 카리에르의 동료들+프랑스 르 아브르 출신들의 교우 관계 속에서 자연발생1905년 파리 야수주의 전시회배경1901-6년 고흐, 고갱, 세잔의 회고전-후기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쇠라)의 색채이론쇠라: 색채의 분할과 병치고흐: 표현주의적 경향고갱: 색에 상징성을 부여하여 인간 내면의 정신세계를 표현세잔색채를 재현적, 사실적인 역할로부터 해방시키고 감각에 호소하는 수단으로 사용함.비유럽적 전통의 부족 미술품들의 발견남태평양 미술과 남아메리카의 미술품특징비재현적이고 과장된 색채 사용: 대상을 묘사하는 데 쓰이는 전통적인 색채 사용법에서 해방되어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색채를 사용함.그러나 비재현적인 색채 사용에 대한 실험을 극단까지 진행한 이후에는 세잔이 강조한 내부 구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음. 마드러남.입체파의 파피에 꼴레는 회화적인 수단으로, 오브제를 화면에 부착함으로써 바로 어떠한 리얼리티가 나타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 관람객에게 시각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어떤 거스름을 주었음은 분명함.파피에 꼴레의 오브제는 어떤 이미지로서 대상을 재현하는 기능과 동시에, ‘물질 그 자체’로서 현존하는 기능 또한 가짐.대표작: 브라크, 현악기를 닮은 보양으로 분해하였으며, 현악기의 구조적인 선과 물결을 같은 모양의 마분지와 신문 문자 등을 ‘종합’하여 표현함.재현적인 면과 추상적인 면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물을 다시점과 다중 면분할을 통하여 표현하였음.리얼리티의 순수성 찾기기존의 고전적 회화가 ‘시각적 리얼리즘’을 추구한 것이라면, 큐비즘 회화는 ‘리얼리티의 순수성’을 찾기 위한 실험과 탐구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음. 이를 위해 3차원적 현실을 2차원의 회화로 번역함과 동시에, 회화를 하나의 순수한 미적 존재로 이뤄내는 실험을 계속함.‘리얼리티의 순수성’이란 어느 한 물체의 외면적 양상은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따라 규정되고 변화하지만 그 본질은 그대로 있다는 것임.따라서 입체파 화가들은 가변적인 양상보다는 불변하는 본성의 지속이 중요하며, 이를 발견하고자 하는 태도는 보여주고 있음. 이들은 불변하는 본질을 찾기 위해 물체를 그 기본형으로 환원시키고자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분해함.입체파 화가들에게는 조형적인 탐구가 우선이었으며, 나비파에서 나타나는 감성적인 면이나 문학성도 없었고, 표현주의 화가들에게서 나타나는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도 없었으며, 오로지 형태의 구성을 위한 탐구만이 존재함.피카소(1907): 흑인조각과 원시 예술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대담한 형태의 변형과 세잔에게서 배운 지적인 화면구성이 하나로 나타남.브라크와 함께 대상을 해체하고 파괴된 형태를 화면에 재구성하는 것으로 큐비즘 회화를 완성시킴.[분석적 큐비즘(1909-11)]: 대상을 철저히 해체하여 입방체로 그리는 것[종합적 큐비즘(1912-15)]: 파피에 꼴레 기법으로 평면적 이미지를 도입하고적 성격 탓에 기하학적 형태를 통해 대상을 암시하며, 포스터 몽타쥬나 삽화 등으로 현실을 환기시킴. 기존의 서술적 묘사에 의존하지 않고 명료성과 상징주의를 전달함.예술을 통한 사회적 편의를 도모하고 공리적인 기능을 추구했음. 즉, 예술은 미래를 이끌어 갈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보았음.특징예술지상주의(예술을 위한 예술)을 부정, 예술의 도구론자연의 재현을 배격하고 본질적인 조형 요소의 순수한 구성을 기본 원리로 삼음.이전의 조각 제작 기법과는 달리 공업적 재료들을 용접하는 방식을 사용하였으며, 조각의 양감보다는 공간 그 자체가 중시되는 조각을 제작함. (ex: 타틀린의 카운터 릴리프)공업 발전을 혁명 이후 러시아 사회를 진보하게 할 유일한 약속으로 여겨 공업의 선진성을 드러내는 기계를 작품 제작의 중요한 동기로 삼음. (산업화와 기계화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미술가란 엔지니어여야만 하며, 사회주의에 이익을 주어야 한다.”: 미술에 생산의 도구인 기계장치와 공업용 재료들을 사용하여 예술작품의 개념을 변화시켰으며, 미술가와 기술자의 차이도 모호해짐.‘재료에 충실한’ 구축주의의 원리: 작품의 내용과 형태 형성에 재료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고를 바탕으로 비현실적 구성에 집중함.과학과 기술을 찬미하는 미래지향적 성향+사회적, 정치적 참여에 적극적인 관심구축주의적 사실주의: 평면에서 출발하여 3차원의 모형 제작 후, 마지막으로 실용적인 물건을 생산하는 단계적 방식을 도입했는데, 최종적으로 생산된 실용적 물건 그 자체에 가치를 두었음.대표작가로드첸코, 타틀린, 엘 리치스키/나움 가보, 쿠르트 슈비터스대표작: 블라디미르 타틀린, , 1920막시즘의 유물론을 추종하였던 타틀린은 러시아 혁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으며, 기계와 건축을 도구로 삼아 공산주의의 실현 가능성을 열고자 을 제작함. 즉, 그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유토피아적 열망을 이 작품에 담았음.이 건물은 각각 다른 속도로 회전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새로운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의 사무실과 라디오 방송국 중요한 산실이 되었음.특징자연의 재현이 아닌 작가의 내면 세계를 중시하는 추상형태와 무의식의 상태에서 발생한 우연한 결과를 존중함.의도성이 있는 계획적인 표현이 아니라, 오직 내적 직관의 표현으로 예기치 않은 우연한 이미지를 화면에 개입시킴.초현실주의의 오토마티즘에서 강한 영향추상표현주의는 무의식성을 강조한 초현실주의의 오토마티즘에서 특히 강한 암시를 받았음.특히 폴록의 경우 자동기술법의 무의식을 통한 우연성에서 큰 영향을 받아 전면균질적인 공간 구성(올오버 페인팅), 드리핑 기법의 개발, 액션적인 제작태도를 개발했음.추상주의와의 차이점전통적인 추상은 비록 이전의 구상회화처럼 외부의 대상을 묘사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으나 삼각형, 원, 부정형의 점과 선, 면에 의해 생성되는 어떠한 형상을 가짐. 이는 화면은 평면화 되었으나 근본적으로는 배경과 전경(대상)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임.반면 추상표현주의는 자동기술법에 힘입어 이러한 형상성조차도 초월하고자 하였음. 구상적이든 추상적이든 간에 어떠한 방향성을 가진 모든 형상을 거부함.미국 추상표현주의자들의 목표는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것이며, 외부세계에 관심을 가져 사회적 주제를 선택하거나 이데올로기를 찬양/비판하는 것이 아니었음. 예를 들어 폴록은 드리핑 회화를 통하여 무의식과 내면세계를 드러내고자 하였으며, 마크 로스코는 부유하는 사각형을 통해 형이상학적인 정신세계를 드러내고자 함.액션페인팅특징화가의 신체적 동작에 의한 격렬하고 생명감 넘치는 긴장의 표출드리핑 기법을 통한 균질회화의 추구자연의 재현이 아닌 작가의 내면세계를 중시+무의식에서 발생한 우연한 결과를 존중구상회화나 초기추상이 갖는 기하학적, 비기하학적 형상성을 초월하고자 함.잭슨폴록드리핑 작업 시도: 붓으로 무언가를 그리는 대신 초대형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고, 던지고, 튕기는 방법을 사용함.비재현적, 신체성의 강조: 폴록의 액션페인팅은 어떠한 사물도 재현하고 있지 않으며, 오직 물감을 뿌리고 던지는 폴록의 행위만을 보여주고 있음.즉, 폴록의 그림은 사물의경과 전개1950-6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성행한 구상미술운동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던 그린버그식 모더니즘과 추상표현주의의 방식에 반대하면서 대두됨. 이들은 다다와 네오다다의 맥락을 이음.일상의 이미지와 물체를 미술 작품으로 전환시키는 다다적인 방식을 사용하였음.그러나 다다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팝아트는 세련된 고도의 기술에 의해 일상 사물들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으며, 반미학적이지 않음.기존의 모더니즘 예술에서는 부수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던 대중문화의 시각 이미지들을 미술의 영역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예술과 삶을 한층 더 긴밀하게 만들고자 했던 네오다다의 방식에서 이어짐.지극히 평범한 것도 미학적,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존 케이지 사상에서 영향을 받음. (미국 팝아트)1950년대 초부터 영국의 젊은 작가들이 모여서 대중사회의 문화, 예술, 매스미디어와 같은 문제들을 토론하고 전시를 개최했던 것이 발단임. (영국 팝아트)특징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을 미술의 영역으로 적극적으로 수용한 구상미술운동구상적이지만 그렇다고 전통적인 미술로 귀화한 것은 아님.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인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대중문화를 예술로 끌어들임.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물질적 풍요, 기계문명 등에 대한 찬미와 더불어 미술과 삶에 대해 보다 아이러니컬하고 유머러스한 접근을 시도하고, 현대 소비생활방식의 특징을 기술함.물질만능주의를 거부하기보다는 오히려 대량생산 제품들과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차갑고 기계적인 미술, 비개성적인 미술을 위한 원재료로 선택함으로써 이를 포용함.‘차용의 미학’팝아티스트들은 이미지를 재창조하지 않으며, 그들은 이미 존재하는 영상과 이미지를 임의로 선택함.Ex) 앤디워홀이 실크스크린을 활용해 지폐, 통조림 수프, 우표, 초상화 등을 격자 모양으로 여러 장 찍어낸 것.그들은 대중매체에서 빌려 온 이미지를 차용하여 매체의 확장을 시도하였으며, 그린버그의 ‘예술의 고유영역’이라는 개념을 깨트림.대표작가영국 팝-리차드 해밀턴, 사회비판적, 구태의연한 사회질서에 대한 비판으로 소개함.
오랜 시간 여성주의 철학을 강의하고 연구해 온 저자 수전 웬델은 1985년 근육통성 뇌척수염과 만성피로 면역장애증후군을 맞닥트리게 된다. 이후 저자는 자신의 장애와 질병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주의 시각에서 장애와 질병 문제를 고찰한 『거부당한 몸: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을 쓰게 되었음을 밝힌다.1. 누가 장애인인가? 장애를 정의하기저자는 무엇이 장애라는 개념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마자 장애를 정의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사회적 측면, 정치적 측면, 그리고 자아정체성의 측면에서 장애의 정의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하며 장애의 올바른 정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저자는 장애에 대한 UN의 정의를 제시하며 그것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한다. UN의 정의는 일반적으로 장애로 인정되지 않는 상태를 포함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며, 핸디캡에 대한 UN의 정의는 장애인이 무엇을 하지 못하는 주된 원인이 사회적인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저자는 “손상”이나 “장애”를 판단할 때 고려되는 지점인 신체 구조, 기능, 능력의 기준이 사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고려하지 못하며, “핸디캡”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장애여성들이나 노인들이 살아가는 환경에 대해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이어서 저자는 장애와 질병의 관계를 언급한 뒤, 장애가 어떻게 정의되어야하는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손상과 장애에 대한 바람직한 정의는 정상적인 능력과 신체 구조 및 기능의 기준이 사회·문화에 따라 어느 정도 달라진다는 점과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가는 데 어떤 활동이나 능력이 필수적이냐에 따라 정상적인 능력과 신체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점을 포함해야한다고 주장한다.마지막으로 저자는 장애를 정의하고 장애인으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할 때, 사회적으로, 그리고 장애인 스스로도 어느 정도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측면이 있음을 밝히며 1장을 마무리한다.2. 장애의 사회적 구성저자는 젠더와 로 정의한다.저자는 의료행위, 삶의 속도 등을 비롯해 장애를 구성하는 사회적 요소들의 몇 가지 예시를 든다. 공적인 세계와 사적인 세계의 분리 등도 장애를 구성하는 사회적 요소라고 말한다. 저자는 사회적인 요소만이 모든 장애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신체적 차이에 대해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는지에 따라 장애와 장애의 특성, 심각성이 결정된다는 점을 주장한다.이어 저자는 문화 또한 장애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라고 밝힌다. 저자는 여기에는 장애의 경험을 현실성있게 그리는 문화적 재현물의 부족, 장애인에 대한 문화적 고정관념, 장애와 질병에 따라붙는 수많은 문화적 의미, 장애인이 실행할 수 없거나 실행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 활동들이 갖는 문화적 의미에서 장애인을 배제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설명한다.마지막으로 저자는 자신의 관점은 장애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임 밝힌다. 저자는 아직까지 장애를 개인적인 것이나 가족적인 차원의 것으로 보는 잘못된 관점, 직업과 노동으로부터의 소외 등 장애를 해체하려고 할 때의 몇 가지 걸림돌들이 있긴 하지만,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의 상당 부분은 의지와 방법만 있다면 양질의 공중보건과 안전에 대한 기준의 마련과 실천, 장애에 대한 시각의 전환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해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3. 차이로서의 장애저자는 고프먼의 ‘낙인’개념을 비판하며 여성주의 이론의 ‘타자’개념이 장애인의 사회적 지위를 이해하는 데 더 유용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을 ‘타자’로 여길 때 우리는 그 사람을 경험의 주체가 아니라 경험의 대상으로 생각하거나, 그 사람들이 어떤 것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러한 타자화 행위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에게 행하기도 하고(비록 효과는 미미하지만), 장애인들 사이에서도 일어난다고 언급한다.저자는 질병과 장애가 지니는 상징적인 통념을 살펴본다. 질병과 장애는 한 사회에서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질병마다 제각기 다른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만성적인 질병과 장애가 공통적으로 가지성을 증가시킨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저자는 이러한 타자화의 결과는 장애인에 대한 폭력 및 학대와 장애의 경험을 포함하지 못하는 문화적 한계라고 말한다.이어서 저자는 장애인이 지니는 “차이”가 비장애인에게 유의미한 경험이나 지식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언급한다. 또한, 저자는 장애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문제에 대해 왜곡되지 않은 온전한 관점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장애인과 관련된 인식론적 질문을 여성주의적 관점을 통해서 검토하고,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는 다른 입장과 상당한 양의 지식을 갖고 있다고 말하며 이것의 발전 필요성을 역설한다.또한 저자는 장애의 정치학에 있어 각각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강조하는 것의 장단점을 설명하고, 이러한 공통점 혹은 차이점의 강조에 대한 논쟁은 장애인에 대한 용어 언어의 논쟁에서도 드러난다고 말한다. 저자는 어빙 졸라와 바버라 힐리어의 논의를 살펴보며 장애인들이 스스로를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용어를 바꾸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설명한다.마지막으로 저자는 차이의 보존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장애를 차이로 인정하는 것은 장애를 ‘치유’하길 원하는 것이 아니며, 장애인의 지식과 관점을 찾아내고 존중하는 것, 인간 신체의 완벽함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는 것 등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4. 거부당한 몸으로부터 떠나는 비행저자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무시, 거부당하거나 두려움과 경멸의 대상이 되는 몸이 있다고 말하며 그러한 몸으로 살아가며 신체를 드러내고 경험하는 것의 여러 형태를 나타나기 위해 “거부당한 몸”과 “부정당한 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저자는 이 장에서 몸이 이상화되고 대상화되는 여러 양상에 대해 논의할 것임을 이야기한다.저자는 여성주의의 분석 방식과 연관 지어 정상성에 대한 훈육을 설명한다. 저자는 샌드라 리 바트키의 여성성의 훈육과 마찬가지로 정상성에 대한 훈육 또한 제도적으로 자유롭고, 우리와 사회 전반에 내면화되어 자발적인 것처럼 보일 뿐 아니라, 이상화된 신체를 기준삼아 누군가그리고 여성들이 성형수술 등을 통해 이상화된 신체에 도달하려 노력할 수 있다는 것과는 달리 장애인들은 이상화된 신체에 대한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저자는 이어 인간의 행동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몸을 갖고 질병, 장애, 죽음을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인 몇 가지 통제의 환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첫 번째 통제의 환상은 과학적 서양의학과 관련된 통제의 환상이다. 저자는 의사들은 의학계에서의 영웅으로 통제력을 가지며, 우리는 의학은 항상 ‘무언가를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지만 이는 결국 실패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환상은 대체치료와 관련된 통제의 환상이다. 사람들은 비정통적인 치료 요법이나 자연요법이 환자들을 낫게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장애나 불치병을 받아들인 지 오래된 사람들에게도 이를 강요한다. 세 번째는 마음이 몸을 극복한다는 생각과 통제의 환상이다. 심인성 질병에 대한 진단과 환상은 환자에게 질병의 책임을 돌리고, 몸을 사건의 원인으로 고려하지 않는다.이러한 신체의 통제에 대한 환상은 결과적으로 장애에 대한 낙인은 만들고, 질병과 사고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며 예방하려는 노력을 막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동시에 예방의 노력이 또 다른 통제의 환상을 불러올 수 있음을 언급하며, 예방법을 찾는 노력과 삶이 위험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는 마음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저자는 결론적으로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이 몇 가지 진실을 담고 있기도 하며, 통제의 환상에 대한 문화적인 집착을 쉽게 줄일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통제에 대한 욕망을 줄이고 몸을 존중하려는 태도가 필요함을 주장한다.5. 의학의 인지적·사회적 권위저자는 우리 몸을 설명할 때 서양의학이 인지적 권위와 사회적 권위를 모두 갖는다고 말한다. 인지적 권위를 지닌 사람들이 무언가에 대해 설명하면 다른 사람들을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진실로 받아들인다. 의사, 연구자, 의학 전문가가 지닌 사회적 권위는 그들의 소외의 이유로 저자는 리처드 재너와 드루 레더의 지적을 언급하며 서양의학이 우리가 우리의 몸을 살아있는 몸이 아닌 시체 같은 몸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을 든다. 또한 저자는 의학적 관리가 몸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통제하고 조정함으로써 사람들을 자신의 몸에서 소외시킨다고 말한다. 이는 앞서 저자가 논의한 몸을 통제하고자 하는 열망과도 연결된다.또한, 서양의학이 지니는 이러한 인지적 권위는 우리로 하여금 인식하는 사람이나 진실을 말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잃게 한다. 의학이 환자의 신체적인 문제나 고통을 인정해 주지 않는 한 환자는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말하더라도 신경증을 앓고 있거나 거짓을 말하는 것으로 취급되며, 인정을 해 준다고 하더라도 더 심각한 사례들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자신들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학의 권위 때문에 아프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적 안전망의 밖으로 버려지게 된다. 일종의 “사회적 꼬리표”인 의학적 진단은 환자들을 사회로 되돌아가게 하고, 동시에 의학적 진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보험이나 사회적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의사가 환자에게 선고를 내릴 때 그에 따른 결과를 인식하고 책임감을 느끼도록 훈련받는 것이 중요하며, 더 나아가 대중들에게 의료적 지식의 한계에 대한 더 많은 정보의 제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이어서 저자는 의사가 환자에게 주는 정보 뿐 아니라 환자가 의사에게 주는 정보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저자는 서양의학자들에게 은유적인 설명이나 과학적인, 혹은 유사과학적인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생명의학이 생산해 낸 몸에 관한 용어와 지식이 고통에 대해 소통하는 능력을 뒷받침해주기보다 이를 방해하고, 환자를 대상화하며, 환자를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마지막으로 저자는 생의학적 윤리학을 연구하는 철학자들이 의학의 권위에 문제제기 하지 않는다는 점과 생사의 문제에만 집착하는 의학에 동조해 왔다는 것을 지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