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저자: 한강내가 채식주의자라는 소설을 펼치게 된 것은 이 소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인 맨부커 인터네셔널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맨부커상이 무엇인지 찾아보니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코르문학상과 함께 세계 3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이었다. 어쨌든 그 상을 동양인으로 처음 그것도 최연소로 받았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많이 이슈화하지 않는 것이 조금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축하하고 매스컴에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대야 하는데 생각과는 반대로 잠깐 이슈가 됐을 뿐 곧 잠잠해졌다. 그래서 이 책이 어떤 책일까 하는 의구심이 더 들었던 것 같다.그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제목이 채식주의자라는 것을 떠올리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영혜라는 한 여성이 있고 이 여성은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채식주의자가 된다.
소년이 온다-한강-한강의 ‘소년이 온다’ 는 광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한강 본인이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겪지는 않았지만 광주가 고향인지라 지인들과 친지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들과 조사한 내용들을 통해서 알고 있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쓴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약간은 논픽션과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 에피소드 부분도 역사적 이야기를 구술해 쭉 서술해 놓은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사실 실제 역사적으로 있었던 일이었고, 그 사건에 직접적인 경험자들도 많이 살아 있는 상황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실제로 있었던 일을 각색하면서 최대한 실제 있던 사건들을 사실적으로 옮겨 놓으려 한 것이 느껴져서 소설적인 상상력과 재미는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중간 중간 저자의 상상력이 들어나는 부분도 있다. 한 소년이 죽은 뒤 영혼으로 존재하면서 죽은 사람들과 그들을 처리하는 군인들을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과 같은 것이 그렇다. 자기의 죽은 시신의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시신이 완전히 소각되어 사라질 때까지 몸에 매여 있는 모습과 다른 영혼의 존재는 느낄 수 있지만 볼 수도 소통할 수도 없는 상태로 존재하는 모습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려지는 부분이다.저자는 그 역사적 상황에 자신은 비껴 있었지만 어쩌면 자신이 겪었을 수도 있는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느끼며 이 이야기를 그려가고 있다. 그리고 이 글에는 저자가 가지고 있는 약간의 죄책감도 느낄 수 있다. 그들이 죽어가고 고통 받고 있을 때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일상을 살았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일 수도 있다.이 글에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3인칭의 전지적 작가 시점 즉 그들의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그들의 마음까지 들여다보면서 글을 쓰는 방식으로 쓰여 있다.한강은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묶어서 전체이야기를 완성해 간다. 그 맨 마지막에 ‘나’로 등장하는 사람은 한강일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사건을 멀리 서울에서 친지를 통해 듣게 되는 ‘나’의 에피소드를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맺는다.이 글의 시작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주인공인 소년의 이야기는 맨 처음에 등장한다. 소년은 그 사건의 초반에 시위 현장 속에서 자신의 가장 아끼는 친구를 버리고 도망했다는 죄책감으로 끝까지 남아서 자신의 친구의 시신을 찾기 위해 시청에 가서 머무르다가 그곳에 있는 무연고 시신을 지키고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된다. 결국 계엄군이 탱크와 총을 들고 시청으로 진입하던 그날 진압하는 군인들의 총에 맞아 죽는다, 또 다른 소년은 먼저 시위 현장에서 죽어서 영혼인 상태로서 자신의 죽엄과 다른 사람의 죽엄을 지켜보는 것으로 그려진다. 거기까지 소년들의 이야기가 끝나면 시청에서 소년과 함께 했던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하나씩 줄지어 나온다. 시청에서 시민군으로 싸우다 감옥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하고 현실 부적응자로 살아가다 끝내 스스로 자살한 친구와 그 친구를 회상하는 남자 대학생의 이야기, 소년과 함께 무연고 시체를 시청에서 지키고 관리하다 계엄군에게 잡혀가 끔찍한 고문과 감옥생활을 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털어 놓을 수 없어서 자신을 가두고 일에만 몰두하는 여공 누나와, 소년을 먼저 떠나보내고 소년을 그리워하고 후회하면서 군부정권에 저항하며 살아가는 어머니까지 사람들의 내밀한 감정과 상황이 에피소드로 퍼즐처럼 이어져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그 마지막이 작가 한강일 것으로 생각되는 ‘나’의 이야기 이다.이 소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속에서 여러 군상들을 보여준다. 그저 평범한 시민이었던 한사람 한 사람의 어이없고 당혹스러운 죽음과 말도 되지 않게 잔인했던 시민을 향한 군과 정부의 잔혹성을 보여준다.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왜 저자는 제목을 ‘소년이 온다.’라고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글 안에서 단서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단서는 책의 마지막 부분 ‘나’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글에서 ‘나’는 자신의 가족이 서울로 이사 가고 그 집에 새로이 이사 온 ‘소년’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자신의 그 소년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고 그 소년의 흔적을 찾는다. 그 소년은 그 나의 또래의 평범한 소년의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 누구도 그 소년과 같은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옛집에 이사 온 소년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통해 5.18의 비극이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다가 오게 된 것이다. 자신 대신 그 집에 살았던 그 ‘소년’이 자신에게 이입됨을 통해 저자는 제목을 ‘소년이 온다.’로 정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그 사건 속에 그 소년이 어떠한 모습으로 알려져 있던 혹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던 실제의 그 소년은 그 사건 속에서 이러한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항변해주고 그 소년을 그 비극으로 이끌어간 잔인한 권력과 시대에 분노하고 아파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이 글의 작가인 한강은 자신에게 이 소년이 이입된 것처럼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도 이 소년이 이입되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그렇다면 소설 속의 ‘나’가 아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어떠한가? 나도 글을 읽으면서 이 글의 작가인 한강처럼 이 소년이 내게로 다가오는 경험을 했을까? 어쩌면 잘 모르겠다. 나는 이 글의 소년처럼 어리지도 않고, 지리적으로도 그 사건이 일어난 광주에서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이러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진 친인척들의 이야기를 들어오면서 자라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극히 객관적이고 다른 주장들과 균형을 맞추어서 이 사건을 들여다 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