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리 케이건-저자 소개-셸리 케이건(Shelly Kagan)은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철학 교수(사회사상/윤리학 전공)다. 프린스턴대학교(Princeton University)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피츠버그대학교(University of Pittsburgh)와 일리노이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에서 강의했다. -내용 소개-제1장_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죽음을 이야기하기 전에 던져야 할 질문들/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우선 '육체적 죽음 이후에도 나는 계속 존재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마련해야 한다.셀리 케이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육체적 죽음 이후 내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영혼의 존재가 전제된다.-인간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진 인간-이원론/육체만으로 이뤄진 인간-물리주의/인간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중 하나는 '인간은 육체 그리고 육체와는 전혀 다른 정신의 조합'으로 구성되었다는 관점으로 '정신(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 두 가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이를 '이원론(Dualism)'이라고 부른다. 이 책에서는 영혼을 이원론의 관점에서 정신적 존재를 가정하는 용어로만 사용하는데 영혼은 비 물질적인 존재로 인식한다.또 다른 관점은 '일원론(Monism)'이다. 일원론에서는 육체만으로 인간이 존재한다는 관점으로 '물리주의(Physicalism)'로도 불린다. 이 책에서는 일원론이라는 표현보다는 물리주의, 물리주의자로 서술된다. 셀리 케이건은 물리주의자라고 스스로 말한다. 물리주의는 영혼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한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로 육체가 존재하지 않으면 인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제2장_영혼은 존재하는가영혼의 존재 증명/2장에서는 이원론에서 주장하는 영혼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에서 존재한다고 할수 없다는 주장을 서술하였다.1. 존재를 인정 할 수 있는 척도는자유의지 (free will)를 가진 존재라고 주장하며, 이 자유의지가 영혼 존재의 근거라는 것이다.이원론자들의 주장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1.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가?)2. 결정론에 지배를 받는 존재는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다.(결정론과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는가?)3. 순수하게 물리적인 존재는 결정론의 지배를 받는다. (모든 물리적인 존재가 결정론에 지배를 받는가?)4. 그러므로 인간은 순수하게 물리적인 존재가 아니다.셀리는 위의 3가지 명제에 대한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한다(위의 괄호는 셀리의 의문).-영혼은 체험할 수 있는가/임사 체험과 같이 초자연적 현상을 근거로 한 이원론자들의 영혼 존재의 주장을 물리주의자들은 임사 체험만으로 죽음을 설명할 자격이 있는가의 주장을 펼치는데 셀리는 임사 체험자들의 증언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원론자들의 설명이 타당성을 가지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제3장_육체 없이 정신만 존재할 수 있는가-육체와 정신은 다르다-데카르트/17세기 위대한 철학자 데카르트는 이원론을 주장한다. 데카르트는 육체와 정신이 서로 다른 존재라고 주장했는데 그 근거는 '육체가 사라진 나를 상상할 수 있다' 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에 비치지 않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나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철학자들 사이에 아직도 토론 주제로 여겨진다고 한다. 셀리는 당연히 데카르트의 주장이 오류에 빠져있다고 설명한다.-개밥바라기별과 샛별/데카르트 주장의 오류는 서로 동일한 금성을 가리키는 개밥바라기별 과 샛별이다. 개밥바라기 별은 있는데 샛별은 없는 것이 확인되지만 실제 이는 동일한 금성이다.이와 같이 2장과 3장에서 영혼의 존재여부에 대한 여러 주장들을 철학적 사고로 타당성을 확인하였다.제4장_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가-소크라테스의 죽음/플라톤의 완벽한 왕국/불멸의 영혼-형상의 본질/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영혼의 존재는 물론 영혼(어떤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이 되어야 하는가? 생물학자가 고양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양이가 되어야 하는가? 명확한 반론은 아니라고 셀리도 말함. 하지만 여전히 이 명제가 받아들일만한 타당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함 ).4. 그러므로 이성은 영원하며 비물질적인 존재다.5. 이성이 비물질적인 존재라는 것은 곧 영혼이라는 의미다.6. 그러므로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물론 셀리는 위의 명제들에 대한 반박을 통해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괄호는 셀리의 반론).-소멸하지 않는 존재-영혼의 단순성/정신, 육체가 만들어내는 화음/소크라테스는 또한 아래와 같은 논제로 영혼의 불멸성을 주장한다.1. 조합물만이 소멸 가능하다.2. 변하는 것만이 조합물이다.3.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는 변하지 않는다.4. 보이지 않는 것은 소멸하지 않는다.5. 영혼은 보이지 않는다.6. 그러므로 영혼은 소멸하지 않는다.이 논증에서 소크라테스의 제자 심미아스는 음악의 화음을 예로들어 '보이지 않는 것은 소멸하지 않는다'를 반박한다.셀리는 이 반박이 타당하다고 여기며 이 논증의 오류를 설명한다.위의 3장 4장에서는 플라톤의 영혼 불멸성의 주장을 살펴보고 그 논증에 대한 반증을 통해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제5장_나는 왜 내가 될 수 있는가의심스러운 영혼의 존재/인간의 정체성과 시공간 벌레/영혼 관점에서의 정체성/육체 관점에서의 정체성/인격 관점에서의 정체성5장에서는 '나'를 '나'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정체성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한다.인간은 시간이 흘러가며 변화한다. 이른 시공간벌레로 설명하여 시간의 경과를 반영하여 훗날의 나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동일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영혼, 육체, 인격 중 무엇인가를 살펴본다.첫번째 영혼의 관점에서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어있는 이원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영혼의 존재가 나라는 정체성을 가진다면 신이 영혼을 바꾼다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동일한 것이냐는 로크의 관점을 을 나라고 인식하게 하고 나 역시 모든 기억을 잃고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에누구에게 고문을 가하는 것을 바랄까? 이 경우에도 나라고 인삭하는 다른 사람을 고문하기를 바라게 된다.위의 두 이야기에서 첫 번째는 내 육체를 고문하기를 원하고 두 번째는 내 인격을 고문하기를 바란다.때문에 이는 육체도 인격 '나'라는 정체성의 핵심이 되지 못한다는 의미다.-또 한 명의 나폴레옹-복제 문제/-영혼은 나뉠 수 있는가-분열 문제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는 동일한 인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동일한 '나'라고 하는 인격관점에 아래와 같은 질문이 던져진다.디트로이트의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이 나폴레옹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나폴레옹만이 알고 있는 내용을 이 사람도 알고 있으며실제 나폴레옹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면, 이 사람을 나폴레옹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는 인격이 복제 가능한가에 대한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인격이 복제된다면 100명 200명의 나폴레옹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인격이 복제되지 않는다면 '동일한 인격을 가는 것이 '나'이다'라고 하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위의 인격과 마찬가지로 영혼이 분리될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에서도 영혼은 분리되지 못한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셀리는 판단한다.따라서 '나'라는 정체성은 영혼이나 인격의 분리가 없는 상태에서 동일한 육체를 가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정말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내가 생존했다고 하는 것에 대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해보면 '나'라는 정체성에 필요조건을 도출 할 수 있다. 셀리는 여러 설명을 토대로 최종적으로'내가 바라는 것은 생존 그 자체가 아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진화하는 동일한 인격도 아니다(시간적으로 진화한 인격이라는 의미는 아주 오래 동안 시간이 흘렀을 때 100년 200년 이 흘렀을 때 내가 변화하여 현재 나와는 다른 인격으로 변화한 것을 의미한다).요컨대 내가 원하는 건 지금 나와 '비슷한'인격을 유지하면서 생존하는 것이다'라고 기술하였다. '나'라는 정체성을 구분하 없어지고 나서는 어떤 것도 나에게 나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 이후가 나에게 나쁜 것 이라면 즉 내가 없어지고 나서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것을 빼앗긴 것이라면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내가 존재하지 않아서 누릴 수 없게 된 점은 나에게 나쁜 것이 아닌가? 결국 죽음이 나에게 나쁘다라고 말할 수 없는 논리적인 설명은 없다는 것이다.제10장_영원한 삶에 관하여영생이라는 형벌/영원히 살고 싶은가제11장_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본질적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경험 기계에 연결된 삶/그릇과 같은 삶-그릇 이론제12장_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무거움반드시 죽는다-죽음의 필연성/얼마나 살지 모른다-죽음의 가변성/언제 죽을지 모른다-죽음의 예측불가능성/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죽음의 편재성/삶과 죽음의 상호효과제13장_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죽음에 대한 태도-부정·인정·무시/죽음은 두려운 대상인가/단 한 번뿐인 삶/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삶의 전략제14장_자살에 관하여: 죽음의 선택인가 삶의 포기인가자살은 합리적인 선택인가/자살은 도덕적으로 정당한가영원히 사는 것은 축복인가 형벌인가? 여러 문학작품에서 영생을 다뤄왔고 그 영생이 축복으로 그려졌던 적은 없었다. 셀리 케이건도 역시 영생은 형벌이라고 말한다. 영원이라는 삶 동안 우리가 지속적으로 느낄 수 있는 쾌락도 없을 뿐더러 100년 전 200년 전 기억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것이 나라는 인격이 일정하게 유지된 채 살아갈 수 있는 냐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가 오는 것이다. 다만 얼마나 살 수 있는 지 알 수 없는 가변성과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불확실성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편재성 때문에 죽음을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것 즉, 나쁜 것으로 받아들인다.이러한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부정하고 무시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최선인가? 단 한번뿐인 단 하나뿐인 나의 삶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 스스로 생각해보아야 한다.셀리는 끝으로 자살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