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들으면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은 인식할 수 있었고,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환생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지, 영혼들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항상 궁금했다. 그래서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후생이라는 책을 읽으면 나의 궁금증을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았다.퀴블러로스는 죽음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육체의 낡은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입는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죽음은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가 아닌 앎의 문제이며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배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퀴블러로스는 죽음을 세 단계로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더 이상 쓸모없는 육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육체라는 집에서 살고 있다가 집이 낡아서 다른 집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말이다. 정신적인 에너지를 받아 온전해지는 자신을 느끼고, 죽음이 육체적인 형태로 살아가는 삶이 아닌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두 번째 단계이다. 우리는 뇌로만 의식을 하는 것이 아니며 두 번째 단계에서 사람들은 외롭지 않게 된다. 이 단계에서 시간이나 공간은 무의미해지고 생각만 한다면 원하는 곳, 원하는 사람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계는 빛 속에서 육체를 가지고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며 조건 없는 사랑과 만나게 되는 단계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조건 없는 사랑과 비슷한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사람들은 부모이다. 부모는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가장 큰 존재인데 부모가 먼저 죽는다면 그 자녀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먼저 죽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가 갑자기 죽는다면 자녀들과 함께 슬픔을 공유하며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면 된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면, 엄마나 아빠가 죽은 이후의 삶의 변화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죽은 직후에 상속이나 상을 치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한 이후 영혼의 세계에 머무르게 된다. 영혼의 세계에서 머무르는 동안 육체의 삶을 살아가는 가족들을 보게 되지만 자신이 이승에 미련을 남길수록 가족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선택하여 이승을 떠나게 된다. 글의 서두에도 말했듯 나는 죽음이후의 삶에 대하여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책과 영화를 읽고 난 뒤 어리석은 의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산티 닐리야’ 퀴블러로스가 유체이탈을 경험하고 유일하게 기억하는 단어였다. 그녀는 그 과정에서 환자 천 명의 죽음을 경험했고, 비로소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그러한 경험을 우주의식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산타 닐리야라는 단어는 모든 아픔, 슬픔을 경험한 후 우리가 돌아가야 하는 궁극적인 평화의 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죽음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이해하길 간절히 바라왔고, 다른 사람들 또한 이러한 사실을 알기를 바랐다. 때문에 신은 그녀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주었고 그녀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각오도 되어 있지 않으며 단순한 호기심에 이후의 세계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내가 죽음이후의 삶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호기심?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인식하게 되면, 그것을 믿을지 안 믿을지 선택하려는 마음? 확실하게 어떤 마음인지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무의식중에 계속해서 죽음이후의 삶에 대해서 정말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내가 믿을지 말지 선택할 수 있으니까 궁금해 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았다.나는 이승에서 살고 있고 현대 사회의 중심은 물질, 경제, 과학이다. 때문에 나도 그렇게 학습되어있을 것이며 어쩌면 확실하게 ‘믿기 위해서’ 죽음이후의 세계를 궁금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퀴블러로스 박사님이 말한 것처럼 죽음은 앎의 문제이다. 강의, 책, 영화를 통해서 죽음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앎의가는 과정에 있으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경험할 수 있다. 임사체험과 빙의는 우리가 죽음으로 향해가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내가 궁금해 하는 것은 죽어야 확인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죽음을 경험할 수 없고, 죽음에 대해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삶을 살아가는 것인데, 죽음이후의 삶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것이. 하지만 나는 이제부터라도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죽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죽음은 곧 나 자신이며 내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나는 죽음이후의 삶을 구경하지도 못하고 죽음을 겪을 때, 당황할 것이다. 마치 러블리 본즈의 수지처럼 말이다.수지 역시 처음에는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자신이 온전하고 완벽한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 속에서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고, 죽음이후의 삶에 대해서 보여주는 몇 가지 포인트들이 있었다. 처음으로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장면은 수지의 팔찌와 관련된 부분이다. 우리는 물건에 사람의 영혼이 깃든다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도 그러한 부분을 잘 표현했는데, 수지가 평소에 하고 다녔던 팔찌를 범인이 물속에 던지자 수지 또한 영혼의 세계에서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다른 장소로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수지는 팔찌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며, 팔찌를 향한 마음 때문에 영혼이 되어서도 팔찌가 수지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혼의 존재가 나타나는 또 다른 장면은 빙의장면이다. 수지의 반 친구인 루스 코너스(영혼을 보는 사람)는 수지의 영혼이 존재함을 느끼며, 무어(수지가 좋아했던 남학생)에게 수지가 함께 있다는 언질을 준다. 그러다가 수지가 진정으로 자신의 죽음을 깨달았을 때, 루스의 몸에 들어가 자신이 좋아했던 무어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한다. 물론 모든 영혼이 죽기 전에 좋아하는 사람 앞에 나타나 빙의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또한 다른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했자신을 죽인 범인에 대한 강렬한 분노를 느끼며 범인을 죽이고 싶어 했지만 마음만으로 범인을 잡을 수 없었고 수지의 아빠 또한 범인을 잡으려다 크게 다쳤다. 수지는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고 자신이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떠나야 다른 가족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수지는 많은 성장을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영혼이 된 수지는 점차 자신의 죽음을 이해하고 알게 되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시간은 인간이 만든 임의의 기준이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복수를 하지 않아도 모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 같다. 때문에 가장 큰 바람이라고 할 수 있는 복수를 택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복수와 가족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수지가 살아있을 때 가장 원했던 것은 무어와의 데이트였을 것이다. 그래서 영혼을 느낄 수 있는 루스의 몸에 들어가 무어와 키스를 하고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면서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수지가 자신이 영혼이라는 것을 알고,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은 영화 속에서 꽤 자주 등장한다. 수지는 보이지 않지만 동생과 아빠와 소통을 하고, 가족들도 수지의 존재를 느낀다. 그러면서 육체의 삶이 아닌 영혼으로서 영혼들만 살 수 있는 세계에서 친구와 행복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수지는 ‘저는 제가 없는 세상을 인정하기로 했어요.’라는 말을 남긴다. 이러한 말을 통해서도 수지는 자신이 육체의 옷을 벗었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전 문단에서 이야기 했듯이, 수지가 다른 가족들을 위해 스스로 떠나기를 결심한 것 역시 자신의 온전한 영혼 세상에 대한 인식과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합쳐져서 생겨난 결과인 것 같다.덧붙이자면, 나는 당연히 영화를 보며 수지를 죽인 범인이 잡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그런 전개가 이어지고, 또 죽음에는 죽음이 답이라고 생각했기 방식은 수지의 가족들이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확실하게 매듭지어지는 것이었다. 예전의 나라면 영화를 보고 난 후 재미없고 엉성한 영화라고 불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퀴블러로스는 죽음의 단계에서 시간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시간은 육체를 가진 삶을 사는 자들에게만 통용되는 것이며 인간이 정한 임의적인 단위이다. 때문에 범인이 언제 잡히는지, 가족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지 여부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임의적인 시간은 육체를 가진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수지는 그러한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결국 수지는 나름의 복수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지금까지는 영혼의 존재를 나타내는 부분에 대해서 서술했다. 이제는 영화 속에서 나타는 죽음이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다. 사실 죽음이후의 삶과 영혼의 존재는 떨어트릴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죽음의 이후의 삶을 책 사후생에서 말한 내용과 연결 지어서 이야기 할 것이기 때문에 불가분의 관계인 영혼과 죽음이후의 삶을 임의적으로 분리했다.수지가 영혼이 된 이후 자신이 어느 장소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지는 무어를 떠올렸고 자연스럽게 무어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부분이 죽음의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죽음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마음이 있으면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수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수지는 영혼이 된 이후에 자신의 죽음을 깨닫고 시공간을 초월한 통로를 지나 아름다운 자연이 존재하는 곳에 도착하게 된다. 수지는 그 곳을 떠날 때 두렵지 않았으며 잠을 자는 느낌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영화에서의 이러한 묘사가 빛의 존재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간속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고 정확한 형태는 없지만 내가 생각한 것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았다. 퀴블러로스는 빛의 존재가 등장하는 터널 같은 공간에서는 어떤 부정적인 감정같다.
‘쉽고 빠르게 끝나는 것만 하자.’ 내 행동의 기준은 항상 이 말이었다. 공부든 운동이든 하는 것이 너무 귀찮았고, 빨리 끝내고 싶었다. 공부는 단순히 좋은 성적을 받아 장학금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으며, 남들에게 내 모습이 좋게 비춰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좋은 성적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시작한 대학교 공부는 나름 순탄하게 흘러갔다. 1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대부분은 장학금을 받고 다녔고, 성적도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은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내가 듣고 싶은 과목만 들었다. 듣기 싫은 과목은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안 들고, 시간 아깝게 흥미도 없는 과목을 굳이 왜 듣나 하는 생각이 주를 이뤘다. 그러던 중 2017년 2학기에 처음으로 인터넷 강의를 듣게 되었다. 시험도 보지 않고, 학교에도 나가지 않으니 귀찮음이 많은 내게 적합했다. 나는 단순히 강의시간을 채우기 위해 창을 띄우고 다른 일을 했다. 당연히 수업을 제대로 들었던 적은 없었다. 다만 레포트과제가 있었지만 수업을 듣지 않아도 수행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 그 과목에 대해서 기억나는 것이 전혀 없다. 그러던 와중에 2018년 1학기가 되었고 그때 선택한 과목이 ‘죽음의 철학적 접근’ 이었다. 이 강의도 마찬가지로 인터넷 강의라는 이유 때문에 신청하게 되었고, 성적을 잘 받기위해서 강의를 보고 있었다. 인터넷 강의는 다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강의 이름만 봐서는 죽음이란 무엇인지,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에 레포트 과제를 받게 되었고, 이 글을 쓰게 되었다.나는 ‘자살예방 해법은 있다.’ 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순히 얇기 때문이었다. 그냥 빨리 읽고 끝내고 싶었다. 할 것도 많은데, 차라리 퀴즈를 보지 왜 이런 것을 쓰라고 하나 짜증도 많이 냈다. 첫 장을 읽자마자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이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인데 왜 이런 이야기로 책을 시작하는지 이해가 관심을 기울이기에 충분했다.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려 하지 않는 우리나라 언론의 행태를 정말 싫어한다. 대부분 매체에서 보도하는 안 좋은 기사(경제위기, 묻지마 범죄, 높은 자살률 등등)들은 교묘하게 프레임을 씌워 결국 한쪽이 잘못하고 있으니 몰아내자는 분위기로 글을 작성한다. A가 B를 때렸다는 이야기로 기사를 작성한다면, A가 B를 때렸는데, A가 때렸으니까 A잘못이지만, 과연 A만의 잘못일까? 부모나 주변사람들의 잘못은 없나? 결국 그런 아이를 관리 못하는 학교가 잘못이다. 라는 식의 기사를 예로 들 수 있다. 나는 예를 들기 위해 간단히 싸웠다고 표현하였지만, 정치적인 기사 혹은 범죄기사들을 보면, 굳이 여자/남자, 야당/여당으로 편을 가르고 한쪽이 틀렸다는 기사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왜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지 않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만 급급할까? 하는 생각은 뉴스, 기사를 보면서 항상 접해왔기 때문에 이제는 어느 정도 본질을 흐리는 기사들에 대한 내성도 생겼다. 자살과 관련된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살률이 높으니 어떻게든 높은 숫자만 낮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인은 개인이 나약하기 때문이며, 기성세대들은 구타와 욕설이 오가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잘 버텨냈노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말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났다. 왜 화가 났고, 왜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저는 항상 옛날과 지금은 현저하게 다르다, 왜 원인을 제대로 살펴보려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고는 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자살 예비군이야기는 단박에 자살률이 높은 원인에 대해서 꼬집고 있었기 때문에 책 자체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졌다.책은 자살률이 높은 이유를 사회적인 현상과 더불어 설명하고 있었으며, 자살을 한 영혼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살이 유일한 탈출구가 아님을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왜 죽는 것이 끝이 아닌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이 역시 책의 마지막부분에 소개되며 죽음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 해 두려웠다. 외할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친할머니도 폐암에 걸리셨다. 할머니는 완치가 되셨고, 나는 그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히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육신이 고통스럽더라도 항암치료를 해야 하며, 살아있을 수 있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머릿속에 박혀있었다. 왜냐고 물어본다면 죽으면 끝이니까, 죽으면 아무것도 없으니까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부끄러운 마음과 동시에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할머니께 의견을 묻지 않고, 당연히 죽음을 싫어하실 것이라고 나 혼자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몇 십 년 동안 교회를 다니셨다. 할머니와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가 솔직히 쉽지는 않지만 할머니께서는 죽었을 때 당신이 갈 세계가 있다고 굳게 믿고 계신다.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죽어서도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때 죽었는데 어떻게 다시 보냐고 여쭸더니 할머니는 웃으면서 다시 볼 수 있다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 하셨다. 나에게는 십 몇 년 전 일이지만, 할머니께서는 이미 그때에도 70대 이셨다. 나는 아직 22살인데도 완전하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어떻게 그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죽는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할머니와 나의 유일한 다른 점이 있다면 종교였는데, 책에 나온 불교, 가톨릭교, 티베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보면서 정말 종교가 죽음에 대한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부끄러운 마음이 든 이유는 내가 너무나도 무지했기 때문이다. 정말 나는 죽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동안 어떻게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해왔는지 모르겠다. 고정관념을 가지고, 원인을 알아보지 않고 사건을 바라보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던 나였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사건에 대해서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미워하고 싫어했다니. 얼마나 모순적인가. 하지만 또 마냥 내 탓인가를 생각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이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았다.내가 죽음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있던가? 누가 나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말 해 준 적이 있어야 다른 생각을 해 볼 틈이라도 있지, 나는 그동안 죽음에 대한 어떠한 교육도 받아 본 적이 없다. 죽으면 슬프다는 감정적인 교육을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정말 옳은 것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죽으면 끝이 아닌데 굳이 슬퍼 할 이유가 있을까? 너무 어릴 때부터 죽음은 무서운 것이라는 교육을 받는다. 아마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것 같은데, 차에 치이는 그림카드를 보고 선생님이 어떤 기분이 드느냐고 물어봤을 때, 같은 반 친구들은 모두 ‘슬퍼요, 불쌍해요’ 와 같은 부정적인 답변만 했다. 왜 슬프냐고 물어봤을 때도 마찬가지로 ‘죽으면 없잖아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단지 나는 너무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만 들어왔고, 그것을 당연한 진리처럼 생각하며 살아왔다. 내 또래뿐만 아니라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도 죽음에 대한 교육은 받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로 청소년들에게 죽음에 대한, 자살에 대한 교육과 진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청소년 혹은 대학생들끼리도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쓴다. ‘아 자살 각이다.’(어떠한 일이 너무 힘들어서 너무 자살을 하고 싶다는 뜻), ‘그것도 못하면 그냥 자살하자~’(친구를 놀리는 말로, 그렇게 쉬운 일도 못하면 그냥 자살하라는 뜻). 뿐만 아니라 ‘자살만이 살길’, ‘이번 생은 자살하고 다음 생에 행복해지자’ 등등 자살과 관련한 말을 단순히 장난으로 여기며 정말 아무렇지 않게 뱉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 젊은 사람 중 한 명이지만, 강의와 책을 통해 자살이라는 말이 정말 무서운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부터 그런 말을 일절 쓰지 않는다. 이러한 말이 장난일지라도 그러한 말은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살자 가족을 둔 사람을 위해서도, 혹여나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 혹은 또래 집단들은 이러한 말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학교에서는 부모님이 슬퍼하시기 때문에 자살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물론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자살이 진짜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학생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선생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 역시 교수님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학교와 교사에게만 자살예방을 위한 교육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 학생들에게 교육을 잘못했다가는 책에서 나온 사례처럼,죽으면 끝이냐는 학생의 질문에 멍청하게 그렇다고 대답하는 일이 발생해 비극적인 결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나는 자살을 막기 위해서 지역사회에게 책임을 넘길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떤 식으로 첫 걸음을 내딛어야 할까? 먼저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교육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바꾸려면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인식이 바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르쳐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나라 국민 모두에게 죽음의 철학적 접근에 대한 강의를 들려주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12년을 학교에서 보내는데, 그 동안 죽음에 대한 수업을 단 한 번도 배우지 않는다면 이것이 정말 정상적인 일일까? 때문에 교과과정을 수정하여 죽음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여 무섭고 두렵지 않도록 만들고, 자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교에서는 필수과목으로 죽음이해과목을 개설하도록 하여 듣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문제는 성인이다. 성인들은 학교도 다니지 않을뿐더러 모든 성인의 공통점을 찾기는 정말 어렵다. 때문에 내가 생각한 방법은 회사에 죽음을 교육할 수 있는 강사를 불러 정기적으로 교육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비용은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나도 아직 성인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죽음에 대해 이해를 시켜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다른 .
영화 인턴은 사회경험이 많은 70세 인턴 벤과 열정 많은 30세 CEO 줄스의 패션 사업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영화이다. 벤은 시니어 인턴쉽 프로그램에서 뽑힌 인턴이며 첫 업무는 줄스의 밑에서 일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처음에 줄스는 자신은 좋은 동료가 아니라며 벤과 함께 일하는 것을 꺼려했다. 하지만 벤의 노련한 행동, 사회경험과 같은 것들을 보며 점점 벤을 나쁘게 보지는 않게 되었다. 줄스는 항상 바쁘게 일했지만, 모든 것을 관리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외부CEO영입을 고려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던 중 벤과 외부CEO영입 문제로 출장을 갔게 되고, 줄스는 남편의 외도사실과 자신의 고민에 대하여 이야기 하게 된다. 결국 줄스는 벤에게 조언을 구함과 동시에 스스로 결정을 내려 자신이 진짜 원하는 방향으로 회사를 이끌어가고 남편과의 관계도 회복하며 영화는 마무리 된다. 영화에는 다른 등장인물도 많이 나오지만 나는 줄스와 벤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영화를 분석해 보려고 한다.벤은 이미 회사에서 은퇴한 사람이다. 그는 은퇴한 삶을 받아들이며 처음 몇 년 동안은 자신만의 여가를 즐겼다. 마일리지로 여행을 다니며 매우 다양한 취미활동을 한다. 마일리지로 여행을 갔다고 이야기 한 것을 보아 벤은 직장에서 있을 때 쉴 틈 없이 일을 했으며, 그로 인한 경제적 자원이 충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아내 없이 노년을 맞이하게 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비용으로 은퇴 이후의 삶을 즐길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벤의 이러한 은퇴방식은 일을 전혀 하지 않는 완전은퇴에 해당한다. 하지만 벤은 그러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다는 욕구를 느껴 회사에 다시 지원하게 된다. 벤은 은퇴 전 회사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며 전화번호부 인쇄를 감독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벤이 새로 지원하는 회사는 IT와 관련된 기술이 주로 필요하다. 은퇴 전과 은퇴 후에 각각의 조직에서 요구하는 직무기술이 다르다는 점에서 자신의 직업과 관련이 없는 중간가교역할을 하는 부분적 은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는 벤이 전화번호부 인쇄를 감독했을 뿐만 아니라 판매/광고경험도 있기 때문에 전혀 관련 없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직업과 관련 있는 중간가교역할을 한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어찌됐든, 벤은 중간가교 역할을 하고 있고, 처음에는 컴퓨터를 활용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지만, 점차 나아지는 수행을 보여준다.그렇다면 벤이 지원한 회사의 모집방법에 대하여 살펴보자. 줄스의 회사(About The Fit: ATF)는 외부모집의 형태로 시니어 인턴을 모집한다. 외부모집은 비교적 간편하게 게시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며, 그 종류로는 인터넷 광고, 소셜 미디어, 헤드헌팅과 같은 모집방법들이 있다. 하지만, ATF는 다양한 방식 중, 인쇄한 광고를 통한 홍보방식을 택했으며 지원 자격이 65세 이상이라는 점은 대다수의 신규?경력직 채용과는 다른 맥락이다. 모집방법은 연령대와 관련이 있는데, 65세 이상의 노인들은 인터넷이나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의 접근성이 낮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인쇄물로 모집광고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반면, ATF에 지원하는 벤의 입장에서는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과 자신의 기술을 비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벤은 직무에 필요한 능력이 우수하지는 않지만, 조직에서 일하는데 필요한 자신의 성격특성을 비교하며 ATF에 지원한다. 신입사원 채용이라면 낮은 수준의 직무기술로는 지원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는 단기적인 프로그램이며 그 대상이 시니어이기 때문에 점에서 벤이 지원 가능했을 것으로 판단된다.신입구성원이 기존의 조직 구성원들과 잘 어울리며 조직의 문화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조직사회화가 필요하다. 벤은 이미 오랜 기간 동안 조직생활을 하며 조직사회화를 한 차례 경험했다. 때문에 조직 내에서 다른 조직 구성원들과 대인관계를 형성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조직의 목표가 무엇인지 금방 파악하여 빠르게 조직의 분위기에 적응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벤은 다양한 직장 내 경험덕분인지 조직 내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와 더불어 잘 모르거나 해야 할 일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경우도 거의 없지만,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동료에게 물어보는 직접질문하기 방법을 택하여 궁금증을 해소한다.벤은 아내를 떠나보내고 아들과는 따로 혼자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때문에 가족구성원들과의 갈등이 없어서 직장-가정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줄스는 직장에서는 회사운영을 책임지는 직장 내에서의 역할과 가족구성원들과 함께 생활하며 가정 내에서의 역할도 함께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부분은 영화에서 잘 드러난다. 줄스는 딸의 유치원 행사에도 참여를 하지 못하거나 남편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여 정서적인 관계에서 소홀해진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러한 장면들은 줄스가 직장-가정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직장-가정갈등이란 한 영역에서의 요구가 다른 영역에서의 요구와 양립할 수 없는 역할 간 갈등으로 직장에서 가정으로 갈등을 주는 WIF와 가정에서 직장으로 갈등을 주는 FIW가 있다. 특히 줄스는 직장-가정갈등의 분류 중 시간기반 갈등을 가장 많이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과도한 업무로 인해 자신의 가정에 적절한 시간을 사용하지 못해서 위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그렇다면 줄스가 겪고 있는 직장-가정갈등 중 시간기반 갈등의 선행변인은 무엇일까? 먼저 일 요인에 대하여 살펴보면, 줄스는 새로운 CEO를 구하는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스케줄은 항상 빈틈없이 가득 차 있으며 근무시간 또한 상당히 길다. 이와 더불어 줄스는 동료들에게 사회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일 요인으로 인한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개인요인인데, 줄스는 자기 일에 대한 투자를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며, 자신의 회사에 애착과 자부심을 느끼고 강한 몰입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러한 원인도 갈등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판단된다. 마지막 요인은 가정요인으로 남편의 외도를 알고 있는 줄스는 스트레스를 느낄 것이고, 겉으로는 배우자와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므로 현실과의 괴리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분명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줄스의 직장-가정갈등을 예방하고 감소하기 위하여 가족지지 적 조직지각과 가족지지 적 상사행동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줄스는 회사의 책임자이기에 가족과의 시간을 지원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때 사용 할 수 있는 방법이 상사의 지원이라고 생각한다. 줄스에게는 상사는 없지만, 상사가 되기에 충분한 능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인턴 벤이 줄스 곁에 존재한다. 줄스는 벤에게 문제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으며, 벤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줄스가 조직 내에서 이루길 원하는 것을 유지하며 조언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줄스는 개인적인 대처, 즉 외부 CEO를 영입함으로써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소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줄스가 진정 하고 싶어 하는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하게 하고, 강제적으로 업무량을 줄이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벤은 ATF에서 일하면서 회사의 목적에 기여해야 한다. 벤의 다양한 행동들을 캠벨의 직무수행모델에서 살펴보았을 때, 벤은 동료 및 팀 수행 촉진하기 능력이 굉장히 탁월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과 같은 모습에서 그러한 능력을 찾아 볼 수 있다. 벤은 회사 내에서 택배를 나눠주는 게 어려움을 겪는 직원을 도와주고 제 시간에 출근한다. 또한 다른 동료들에게 업무적인 측면의 조언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상담도 들어주고 해결책을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상사에게 칭찬을 받지 못해 기죽어 있는 직원에게 ‘보스(Boss)’라고 불러주며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고, 출근시간보다 일찍 출근하여 상사인 줄스가 싫어하는 것들을 전부 치워놓는다. 뿐만 아니라 직부 고유 과제 수월성도 보여준다. 줄스와 팀원들이 판매량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문제를 분석하여 해결책을 내 놓는 등 업무적인 부분에서도 조직의 목적을 달성 할 수 있도록 행동한다.
리더십 분석하기 : 넬슨 만델라의 리더십‘흑인이 대통령 되는 것이 뭐가 어때서, 인종차별 없애는 것이 뭐가 힘들다고 뉴스에까지 나와?’ 처음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타계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한 생각이다. 그를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타계했다는 뉴스 때문에 처음 이름을 알게 되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인종차별을 철폐한 위대한 업적을 가진 대통령이라는 내용의 뉴스가 대부분이었다. 당연한 내용을 뉴스로 내보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떠올려 보니 나의 생각은 정말 나만의 생각이었다. 상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가 됐고, 우리는 여전히 차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요즘 시대에도 넬슨 만델라 같은 지도자가 등장해서 존재하는 차별을 인식할 수 있도록, 철폐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그의 리더십을 분석해 보았다.그가 청년일 때, 흑인들에 대한 차별은 심각했고, 차별이 법으로 규정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가 제정되었다. 그는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고자 시위를 했지만, 결국 붙잡혔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수감 중, 밖에서는 인종차별 법을 폐지하라는 학생들의 시위가 과잉진압 되고 있었다. 만델라는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자 백인정부와 협상을 시도한 결과, 차별적인 법은 철폐되었으며, 그는 26년 만에 자유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그는 75세의 나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대화와 타협으로 남아공 통합이라는 성과를 냈다.그는 흑인이었고 차별의 직접적인 대상이었다. 옳은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서 긴 세월을 보냈으며, 어머니와 아들의 장례식에도 갈 수 없었다. 그는 이런 상황을 겪고 나서도 차별의 주체였던 백인들에게 복수하기보다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나는 이러한 그의 행동이 서번트 리더십의 형태를 가진다고 생각했다. 서번트 리더십이란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이 잠재력을 발휘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인종차별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지만 쉽지 않다. 자신도 차별받는 흑인임에도 직업, 상사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권운동을 억압하고 무시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여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넬슨 만델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립했다. 명분을 만들어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밝히는데 두려움을 줄여주고자 했던 행동으로 생각된다. 그는 진심으로 뉘우치는 백인에게는 어떠한 정치적 보복도 가하지 않았고, 흑백화합을 위해 관용과 화해를 베풀었다. 대통령이라는 그의 지위를 이용해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서번트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또한 그는 변혁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모습도 보였다. 변혁적 리더십이란 집단으로 하여금 목표를 추구하고 결과를 성취하도록 용기를 불어넣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는 이상화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1995년 남아공에서 세계 럭비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당시 럭비는 백인들의 전유물로 흑인이 선수로 참가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넬슨 만델라는 갈등의 상징이었던 럭비를 통해서 흑백통합을 이루고 싶었고,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백인으로 이루어진 럭비 팀을 격려하고 응원했다. 결과적으로 럭비 팀은 우승했고 국민들에게 인종에 상관없이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는 분명히 많은 부하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흑백분리 정책은 300년 이상 유지되었고, 이것이 10년 만에 해소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스스로 자존심을 높이고, 나라에 힘이 되는 것 외에 생활에 극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다.’넬슨 만델라가 부하직원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넬슨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행동으로 나섰고, 정책을 변화시켰다. 누구보다 인종차별이 철폐되기를 바랐고, 현실을 정확히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 일부 국민들은 정책이 실현되면 모든 차별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때문에 위와 같은 말을 남기며 부하직원들에게 인종차별 철폐노력의 정확한 의미와 철폐를 위해 도전 할 수 있는 행동을 제공하였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모습에서 변혁적 리더십 중 영감적 동기부여의 요소가 나타났다고 생각한다.서번트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부하직원을 나보다 낮은 사람이라고 보지 않으며, 리더 스스로 낮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이라는 지위에 있음에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리더였다. 그는 억압하는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평생사명이라고 말 한만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넘쳐났던 사람이다. 그런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백인들에게 보복을 하지 않고 정책을 펼쳤을 것이다.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가 타계하면 많은 백인들이 남아공을 떠나 경제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쳤고 사고도 없었다. 때문에 그의 리더십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된다.리더십의 유형에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나는 넬슨 만델라가 소통을 할 줄 아는 리더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처지가 어려울 때에도 타인의 말을 듣고 해결하려 노력했으며,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빠르게 대처했다. 또한 그는 평소에도 타인과 소통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고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었다.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으려고 노력했고, 그 속에서 두 사람의 타협점을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러한 점에서 넬슨 만델라는 소통하는 리더라고 생각했다.
질문1. 주로 어떤 소셜미디어를 이용하시나요?(답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등 스마트폰에서 주로 이용하시는 소셜미디어는 무엇인가요? 얼마나 자주 이용하시나요? 어디서 주로 이용하시고 언제 주로 이용하시나요?-답변: 과거에 페이스북을 많이 사용했어요. 군대에서 복무하고 있을 때, 군대 안 간 친구들 소식을 들으려면 페이스북은 필수였거든요. 근데 최근에 인스타그램이 나오면서부터는 인스타그램이랑 페이스북을 둘 다 같이 쓰고 있어요. 친구들 소식은 인스타그램으로 보고 그 이외의 정보나 게임하는 영상들을 보고 싶을 때는 페이스북을 사용해요. 최근에 배틀 그라운드라는 게임이 나오면서 게임 영상을 보려고 페이스북을 자주 사용하게 됐어요. 공강 시간에는 항상 사용하고, 집에 있을 때는 자기 전이나 밥 먹을 때 사용해요. 그리고 요즘에는 조금 한심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전 여자 친구 일상생활이 궁금할 때 페이스북에 그 친구 이름을 쳐서 찾아보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솔직히 안 해봤다고는 하기는 좀 그런데 전 여자 친구의 친구들 이름을 다 아니까, 그걸 검색해서 전 여자 친구의 근황을 알 수 있거든요. 가끔 제가 일이 잘 풀리거나 그럴 때 한 번씩 궁금해서 어떻게 지내는지, 새로운 남자친구는 생겼는지 그런 것 보려고 검색해요. 인스타그램은 아이디를 모르면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서 포기했고요.질문2. (질문1에서 말한) 그 소셜 미디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등)를 자주 이용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소셜 미디어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답변: 페이스북에는 재미있는 영상들이나 소식들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작게는 친구들의 소식이나 크게는 세계적인 이슈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제일 큰 장점인 것 같아요.라는 것이 장점인 거 같아요. 단점은 올해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 시즌과 같은 타이밍이 되면 정치적인 선동을 포함하고 있는 가짜 뉴스들이 많아진다는 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해요. 페이스북에 떠도는로 SNS 활동을 하면 오랜 시간이 지나고 친구를 만나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마치 어제 만났던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페이스북에 그런 사진들을 올리는 또 다른 이유는 제 스스로 여행지에 대한 기억을 잊고 싶지 않아서 일기 형식으로 사진이랑 글을 올리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전부다 여행했던 경험이 전부 다 생생하게 기억나지는 않거든요. 그럴 때, 소셜 미디어에 게시했던 사진이랑 글들을 보면 그 장소와 추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또 언제 어디서든지 제가 보고 싶을 때 구애받지 않고 여행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사진을 올리는 것 같아요. 이건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새벽에는 감수성이 풍부해져서 감수성이 풍부한 말들을 적은 글을 올리기도 해요. 이미지랑 같이요. 페이스북에는 절대 안 올리죠. 페이스북은 제 아이디가 실명으로 되어 있거든요. 근데 인스타그램은 실명제가 아니다 보니까 마음대로 제 의견을 표출할 수 있어서 제 생각이 나 감정 같은 것은 인스타그램에 주로 올려요. 사람들한테 제 마음을 말하고 싶은데, 말하기는 민망하니까 익명성을 빌려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 같아요. 저는 다른 사람한테 제 속마음을 말하는 것이 낯간지럽고 부끄럽기도 하고요. 또 친구들이 놀리고 웃으면서 반응하는 것도 창피하더라고요. 나는 진지하게 이야기했는데 웃으면서 장난으로 넘겨버리니까.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감성적인 사진이랑 제 글을 같이 올리는 것 같아요.질문5. 소셜 미디어(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등)에서 뉴스를 보시나요? 보신다면 어떻게 이용하십니까? 특정 언론사의 뉴스를 팔로우하시나요? 아니면 지인들이 보내주신 뉴스를 보시나요? 왜 그런 방식으로 뉴스를 이용하시나요?-답변: 저는 주로 페이스북을 통해서 뉴스 소식을 접하는 편이에요. 저는 꼭 뉴스가 아니라도 한 쪽 입장에서만 정보를 전달하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그래서 다양한 성향을 가진 언론사를 팔로우 해요. 어떤 주제의 기사가 올라오면 제가 팔로우 한 여러 성향의 언론사들의친구가 저한테 뭐라고 한 적은 없어요. 물론 친구들도 그런 것들을 잘 알고 있으니까 이상한 사람 취급은 하지 않는데, 문제는 가족들이에요. 장난으로 하시는 말씀일 수도 있지만, 몇몇 분들은 제게 조용히 와서 그런 것은 몰래 하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셔서 추석 때 굉장히 민망하고 창피했었죠.추가질문 3. 소셜 미디어를 올바르게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답변: 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그 방법을 필수로 알아야 한고 생각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여러 관점에서 뉴스를 보는 방법을 사용해서 가짜 뉴스로 인해서 생기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글을 게시할 때 지나친 욕설이나 타인에 대한 심각한 비난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제 친구들 중에 페이스북으로 저격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당사자끼리 해도 될 말을, 굳이 관련이 없는 다른 사람들도 다 볼 수 있는 페이스북에 올려서 상대방을 욕하고 비난하는 것이 저격이에요. 그런 글들을 볼 때마다 너무 한심해요. 그래서 그런 행동들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일부에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욕심을 버리고 불법적인 성인광고나 거짓 광고를 하지 않는다면 좀 더 깨끗한 소셜 미디어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추가질문 4. 질문 2에서 소셜 미디어 안에서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난다고 대답을 해 주셨는데, 흥미로운 일이란 어떠한 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답변: 제가 흥미롭다고 말한 것은 재미있다는 뜻으로 말했던 것이었어요. 예를 들자면 외국에서 만들어진 몰래카메라 영상인데, 장난의 정도가 심해요. 가루 세탁세제로 자고 있는 친구의 방 안을 가득 채운 다음에 친구의 반응을 보는 것과 같은 동영상들이죠. 아니면 똑같은 게임을 플레이하거나 같은 노래나 뮤직비디오를 시청했을 때, 외국인의 반응, 생각이나 감정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비교해서 보여주는 동영상들도 있고요. 아니 소셜 미디어 매체에서 게임 영상을 보시나요? 만약 보신다면 주로 어디서 보시나요?-답변: 사실 페이스북에서는 게임 영상을 검색해서 찾아보는 것은 아니고, 누군가가 올린 영상을 단순히 보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보고 싶은 게임의 영상이 전부 올라오지는 않아요. 이러한 점에서 불편함을 느껴서 저는 주로 유튜브에서 게임 영상을 찾아서 보는 편이에요. 유튜브에는 아프리카 TV나 트위치 TV에서 방송하시는 분들이 플레이 한 것도 올라오고, TV 방송이나 외국 방송에서 방영한 것도 올라오거든요. 게임을 플레이하는 영상 이외에도 게임과 관련된 입출력 기기에 대한 설명이나, 게임을 만드는 영상도 있어서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추가질문 8. 추가질문 7에서 아프리카 TV나 트위치 TV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 혹시 그런 플랫폼에서 방송하는 라이브 소셜 미디어도 자주 시청하시나요? 자주 시청하신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답변: 거의 매일 챙겨 봐요. 처음에는 아프리카 TV를 자주 봤어요. 사실 아프리카 TV는 게임 방송을 보기도 했지만, 여자 BJ들이 방송하는 야한 방송들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뭔가 자극적이었거든요.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자극적인 말을 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요. 근데 계속 시청하다 보니까 도를 넘는 시청자들도 있더라고요. 성희롱을 한다거나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것을 방관하는 BJ 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아프리카 TV는 이용을 안 하고 요즘에는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을 더 자주 봐요. 그중에서 저는 대도서관이라는 스트리머를 좋아해요. 일단 욕설이나 성적인 발언이 전혀 없이 깨끗하거든요. 스트리머도 그러한 발언들을 전혀 하지 않고, 시청자들도 그런 스트리머의 성향에 맞추어 알아서 조절하면서 채팅을 쳐요. 깨끗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시청하게 됐고요. 정말 다양한 게임들을 플레이해요. 게임의 주제들도 다양하고, 게임의 장르도 다양해요(FPS, RPG, MMO RPG, 슈과 동시에 내가 읽은 글들이 사실인지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한 권 읽었을 때, 나는 완전히 무기력해졌다. 내가 읽은 글 중 사실인 것은 단 한 개도 없었기 때문이다. 왜 나는 페이스북에 그래도 어느 정도 사실인 글들만 게시된다고 생각했을까? 하물며 뉴스도 가짜로 만들어내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데. 소셜 미디어는 다양한 분야의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이 유통된다. 그만큼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그 때문에 개인이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장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게시물을 올린 사람이 조금이라도 허위정보를 섞어 놓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사용자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소셜 미디어가 계속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사용자들이 스스로 자정 기능을 하지 않으면 그런 소셜 미디어는 실패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소셜 미디어를 유익하게 이용하려면 사용자들은 어떻게 이용해야 할까?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가 그 해답이다. 타인의 게시물을 읽고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내가 잘 모르는 주제에 관한 글이어도 검색이나 책을 통해 반드시 정보의 진위를 파악해야 한다. 게시된 글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사실 여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그러한 글을 읽고 자기 뜻을 정하고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하는 연습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A에 대한 주제가 페이스북과 같은 대형 소셜 미디어에 올라왔다면, 그것은 분명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A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할 확률도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생각을 정리하여 말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왜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러한 행동 또한 미디어 리터러시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며, 게시된 글을 분석함과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서 일종의 의견을 생산해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새로운 문명을 접하거나 혹은 새로운 정책을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