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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중문화와 락
    대중문화와 락- ‘락’ 의 저항성‘락(rock)'이란 그 의미부터 ‘흔들다, 부수다’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격렬한 리듬에 맞추어 전개되는 ‘락음악’은 기성의 고귀하고 우아한 음악을 부수어 버리고, 젊은이들의 산발적이고 격렬한 리듬을 담는 다는 점에서 그들만의 문화로 상징된다. 즉, 젊은이들의 ‘일탈정신’을 ‘락’이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락음악’은 언제나 시대가 변하더라도 늘 젊은이들의 전위물이였다. 항상 기성문화는 젊은이들을 통제하려 들고, 젊은이들은 늘 그것으로부터 일탈할려는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그들은 기성문화에 대항하기 위하여 그들만의 문화를 창조하기 시작하는데, ‘락음악’은 바로 이런 그들의 일탈 욕구를 대리하는 것이다. ‘락음악’은 그 형식에서 내용까지 그들의 이러한 일탈 욕구를 대변해준다. 우선 이것은 형식적으로도 음악에 있어 일탈적이다. 소위 락 이전의 음악이란 고도의 음악교육을 받은 이들로부터 연희되는 소수계층의 전유물이였다. 그리고 클래식이 아닌 대중음악에 있어서도, 음악은 늘 ‘안식’과 ‘평정’을 주는 도구로서 소비되어졌다. 하지만 ‘락음악’이 태동하고부터는 음악의 이러한 상식은 파괴되었다. 귀를 찢는 듯한 기타소리, 심장을 터트릴 것만 같은 드럼소리, 현란한 신디사이져와 전혀 조탁되지 않은 생목소리와 고함소리는 ‘락음악’을 구성하는 구조물이다. ‘락음악’이전에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 음악의 소외 받은 구조물들은, 20세기의 이데올로기적 속성과 융합되면서 젊은이들의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도구로서 채택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락음악’은 내용적으로 ‘도전, 일탈, 실험, 열정, 비판, 투쟁, 반항’ 등의 젊은이들의 이데올로기를 짊어짐으로서, 영원히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되었던 것이다.- ‘락’ 의 태생‘락음악’의 저항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락의 태생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락의 정확한 태생을 밝히기에는 여러 가지 논란이 많지만, 일반적으로는 성교를 은유 하던 비속어 로큰롤(Rock'N Roll)에서부터 60년대의 문화적 용어인 락(Rock)으로 자리잡은 것이 대부분의 설이다. 그리고 ‘락’의 모체인 당시의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20세기에 들어서 미국은 유럽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하는 동안 물질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된다. 무한한 자원과 기술의 발달, 자유시장의 원리와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성장 등에 힘입어 미국은 세계최고의 부국으로 성장하게되고, 이차세계대전의 종지부를 찍어줌으로서 성장의 힘을 전세계에 과시함과 동시에, 냉전 이데올로기의 중심축으로서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상징을 수행하기 위하여, 미국군은 전세계로 뻗어나가게 되고 세계최고의 무기생산국이라는 멍애를 스스로 짊어지는 역사를 선택하게 된다. 락음악의 태동시기는 바로 이러한 미국의 이데올로기의 상징으로서 세계의 전쟁을 수행하던 시기와 밀접하게 연관을 지닌다. 미국 사회에 대한 반동으로서, 미국은 대중문화의 영역 속에 ‘반전 문화’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으며, 그 모체로서 ‘락음악’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락음악’이 탄생과 함께 급성장하던 시기가 6,70년대라는 것과 그 시기가 이데올로적 냉전 체제의 대립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전쟁수행자인 기성에 대한 반발로서 ‘락문화’가 젊은이들의 저항성의 상징으로서 이해되는 이유일 것이다.- ‘락’의 대중성‘락음악’은 그 성립시기가 대중문화의 성립시기와 일치한다. 물론 대중문화의 탄생을 정확하게 언급하기에는 역시나 논란이 있겠지만, 대중문화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상식적으로 ‘대중이 문화를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 안정’이 도래해야지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이 대중의 탄생과 대중문화의 탄생을 안정적으로 유치할 수 있었던 5-60년대는 어쩌면 이러한 상식적인 대중문화의 생리에 의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그리고 5-60년대에 이르러서야, 대중문화의 징후를 알리는 ‘팝 - pop'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단, 영화의 대중성은 시대적으로 조금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본격적으로 분화되는 시기로서 5- 60년대를 언급하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따라서 5-60년대의 경제적 안정과 더불어 태동한 대중문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고급문화에 대한 반발로부터 그 인과성을 가지는 것처럼, 대중문화 안에서 ‘락음악’은 또한 대중문화 속에서도 기성문화에 대한 저항에 힘입어 젊은 계층으로부터 폭발적인 소비를 불러온다. 이 폭발적인 소비는 바로 ‘락의 대중성’을 창조하는데, 이것은 락이 단기간만에 젊은이들의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지만, 역설적으로 젊은이들 그들이 스스로 거부했던 기성문화의 범주 속에 락을 가두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저항논리라는 것이 언제나 좌파적 - 소수문화의 상징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을 때 이러한 역설적 관계가 더욱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락은 그 탄생 정신은 저항논리에 부합하지만, 그것이 성장하면서 소위 우파적 - 다수문화인 대중문화로 탈바꿈하면서, 결국 표면적인 상징일뿐 실체는 기성의 그것과 똑같은 모습을 하게되는 것이다.)다음은 락의 대중성에 대한 사회학자 사이먼 프리스의 언급이다.- 락의 사회적 중요성에 관한 나의 신념(락도 대중문화의 산물이다)은 레코드 판매량 통계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선 전세계적으로 음악 생산물에 대한 연간 지출액은 40억 달러를 넘어섰고, 미국의 경우에는 음악은 영화나 스포츠에서의 수익금을 크게 상회하는 가장 대중적인 오락이 되었다. 영국의 레코드 산업도 1955 - 75년에 판매고가 세 배로 늘었다. (중략)........그러면 위와 같은 판매량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사회학자들도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레코드 플레이어, 녹음기 그리고 라디오 등이 어느 가정에서나 발견된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대중 매체의 교과서에도 레코드가 포함되었다.즉, 프리스의 언급처럼 락음악이 대중문화로 성장하기 위한 문화상품으로서 유통구조의 성장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일상의 범주에 들어서게 된 대중문화중 특히 음악은 그것이 다른 생산물과는 달리 더욱 소비적일 수밖에 없음을 프리스는 아래의 글에서 다시 주장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레코드를 자신이 듣고 싶은 때에 들을 수 있고, 그 레코드의 가치가 특정한 기간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레코드는 즐거이 여러번 사용 될 수 있고(영화나 일부 책과는 달리) 천천히 닳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코드가 시간에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그럴 듯한 경제적 이유가 있다. 레코드 산업은 소비자 이월에 의존하고 있고, 따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 구매하게 하기 위해서는 유행과 낡음의 개념을 이용해야 한다. 영국의 레코드 회사들은 연간 3000장의 싱글과 3000장의 앨범을 내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싱글 7000장, 앨범 5000장이다. 이 중 일정 부분은 재발매거나 혹은 옛날 레코드의 재포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새로운 것들이다. 레코드 비즈니스의 대부분은 소비자로 하여금 발매시에 레코드를 사게 하고 몇 주 후에는 이 레코드에 질리게 하고 그리고 다시 얼마 후에는 새로운 레코드를 사게끔 설득하는 데 주력한다. 팝 레코드는 홍보, 광고, 반복 방송 그리고 과잉보도 등과 함께 떠들썩하게 등장한다. 이들은 특히 히트 퍼레이드를 위해 만들어지는데, 히트 퍼레이드는 지난 주에 소비자들을 가장 많이 끌어 모았던 레코드를 리스트업함을 통해 동시적 청취를 상징화한다. 음악적 센세이션과 변화를 인기 차트가 제시한다는 것은 음악 저널리즘과 팝 라디오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이들은 팝 음악을 뉴스로 변화시킴으로써 낡은 레코드를 사장시키는 데 기여한다.
    인문/어학| 2017.12.22| 3페이지| 1,000원| 조회(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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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리스와 그리스 비극에 관한 연구 평가D별로예요
    폴리스와 그리스 비극에 관한 연구- 역사 문화적 배경을 중심으로 -목 차1. 들어가며2. 비극 이전 시대의 배경3. 폴리스의 성립4. 폴리스의 위기와 비극시인의 역할5. 비극 작품에서 나타나는 역사적 사실과 비극 시인의 역할5. 결론1. 들어가며그리스 비극은 아이스퀼로스(Aischylos)를 시작으로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에서 탄생해서 약 100년간 전성기를 누리고 쇠퇴했다. 왜 그리스 비극이 기원전 5세기라는 특정시기에 아테네라는 특정 폴리스(Polis) 에서 발생하여 그토록 짧은 기간 동안만 번성했는지를 역사 문화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연극의 원형이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고대비극의 탄생과 소멸을 역사적 문화적으로 살펴 본다는 것은, 서양연극의 원형을 연구해 본다는 것으로써 의의가 있다고 본다.이를 위하여 우리는 비극에 앞서 그리스인들의 정신세계에 절대적 영향을 행사했던 서사시의 형성배경을 먼저 살퍼보고, 그리스 비극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고, 그리스 비극시인들의 문제가 무엇이며, 그들이 비극을 통해 강조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며, 페르샤에게 패망하기 전까지의 당대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자칫 빠지기 쉬웠던 허무주의가 그리스 비극작가에게서 어떻게 극복이 되고 있으며, 비극이 사라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그리스 비극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아이스 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Osesteia』를 예를 들어 고찰해 보고자 한다.2. 비극 이전 시대의 배경그리스의 서사시는 호메로스(Homeros)에서 시작된다.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 후반에 소아시아의 이오니아 지방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 최고의 서사시인이다. 그의 대표작인 『일리아드Ilias』와 『오딧세이 Odysseia』는 영웅들의 시대라 알져진 시대로 그리스 역사상 뮈케나이 시대에 해당한다. 이후 도리아인들에 의한 뮈케나이 시대의 몰은 사람의 세계사이의 단절이 생겼다. 이런 죽음에 대한 변화는 그리스 인들의 정신 세계를 밑바탕으로부터 바꾸어 놓았다.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정치- 사회적인 변화였다. 이 시기를 통하여 신성한 존재인 사제, 왕이 사라지고 소수의 귀족이 다스리는 괴두정치 형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이러한 변화는 정신적 가치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쳣는데 이제 그리스인들은 더 이상 자신의 사회가 자연의 본성을 본받은 것으로 보지 않고, 사회를 자연으로부터 분리하여 독립적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신들의 세계로부터 괴리되고 사회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자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이성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성주의의 대두와 함께 신화의 진실성이 처음으로 의심받기 시작했고, 특히, 사제,왕의 존재가 사라지자 신화는 종교적 제의와 분리되어 사회 조정 기능을 잃게 되었다. 즉 신화의 종교적 기능이 사라지게 되었다. 종교적 제의와 분리된 신화는 이제 신관이나 사제들의 통제를 벗어나 시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3. 폴리스의 성립호메로스 이후 시대인 기원전 7세기 말과 기원전 5세기 사이에 그리스 각 지역에는 도시 국가 즉 폴리스가 번성하게 된다. 이 시기에 그리스는 산업이 발달하고 교역도 활발해 화폐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또 알파벳도 널리 쓰이게 되어 그때까지 구전으로만 전승되던 많은 서사시들이 기록되기 시작했다. 또한 자연에서 문화로의 전이는 더욱 가속되어 대지-어머니 라는 신화적 가치관은 힘을 잃고 대신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철학적 사고가 점점 대두되기 시작했다. 특히 서사시는 문자로 기록되자 시대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내용을 바꾸는 유연성을 잃게 되었다. 그결과 신화의 많은 부분이 실제 사회의 현실과 맞지 않게 되었고 이에 신화에 대한 진실성이 더욱더 많은 의심을 받게 되었다.그리스 시인들은 신화를 통해 시간의 시작을 설명하려 했다. 끊임 없이 연속되는 피비린내 나는 신들의 복수적 속에서 무섭기만 하던 자연세력에 내맡겨져 있다가, 민족을 이루고, 집단으로서 공동의 과제를 수행하면서에 자신의 의지를 일치시킬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것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것이었다.폴리스 시민의 자유란 “법이 상반된 요구와 권리들을 조절하여 개인에게 최대한의 사적 자유를 확보해 줌으로 각자가 타인에 대해 자기를 지키는 개인적 방종” 이 아닌 “모든 시민의 공동 관심사인 폴리스에로의 자유”임으로해서, 그리스 특유의 민주주의의 본질을 드러내 준다.종교와 국가가 따로 독립하여 종교적인 특수성을 유지하지 않았던 그리스에서 종교는 국가종교였다. 그리스인의 제우스신앙에서 국가의 주인 제우스는, 가장 완전한 길을 알게 하는 자로서, 정도로서 정의를 제시한다. 제우스는 폴리스의 질서를 가능케 하는 국가의 덕이다.플라톤에 의하면 원래 인간은 짐승만도 못한 위치에 있었는데,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시켜서 선물로 경전과 법을 보내주어 국가를 세울 수 있었고 또한 이 선물의 덕분으로 사람들은 국가의 덕인 자제성과 정의를 가지게 되고 비로서 국가를 세우는 일을 실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의는 또한, 비극이 영원한 가치법칙으로 해석한 것으로서 플라톤 이후 현대 철학에 이르기 까지의 서구문화의 중심적인 것이 되어온 것으로 이는 비극을 서구문화의 통일성 아래에 놓게 한다.4. 폴리스의 위기와 비극시인의 역할집단을 이루고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그리스 인들은 무서울 것이 없어지게 되었다. 신은 차츰 무력해 졌고 폴리스 속에 사는 개인들은 오만해지기 시작해 폴리스의 토대가 되었던 경외와 법을 잊고 자제를 잃게 되었다. 폴리스가 근거를 둔 신의 권위가 흔들릴 때 폴리스는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폴리스와 법들은 신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으나, 실제로 그것들은 결국 시민들이 결정하고 행하는 것에 의해 그의 구체적인 형태를 얻게 된다. 그런데 국가법의 궁극적인 결정자인 폴리스의 시민들의 관심사가 폴리스가 아니게 될 때, 즉 개인의 의지와 폴리스의 의지가 상반될 때, 문제가 심각해진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며 또한 질서이다. 비극은 신화가 흔들리고 신들의 권위가 흔들질서를 신에게로 돌리려고 시도했다. 비극의 주인공은 전통적 가치관을 대표하는 비극적 영웅이다. 반면 코러스는 민중을 대표하며 기원전 5세기경의 아테네 사회의 가치관과 현실을 반영한다. 결국 이 둘의 갈등은 아테네 사회의 갈등을 말한다. 비극의 시인들은 이 절실한 문제들을 무대위에 올림으로써 신화를 현재라는 새로운 상황으로 끌어들인다. 신화의 전통적 가치관이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어떻게 다시 적용될 수 있는가를 지식인이나 많은 민중이 모두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자는 것이 비극의 목적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비극 작가들은 폴리스라는 새로운 민주주의적 가치가 신화적 전통에 모순되지 않음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궁극적으로 비극 시인들은 민주주의가 전통의 가치관 보다 더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여 사회의 안정을 찾기를 바랬던 것이다. 이를 위해 비극 작가들은 신화를 현실에 어울리도록 적극적으로 조정하려 노력했고 비극을 통해 지식인과 민중 사이의 갈등과 차별을 없애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시민 전체를 가르치는 교육의 현장이었다. 비극을 봄으로써 시민들은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문제의 해결점을 찾는다. 이때 관중이 느끼는 것은 관용과 용서의 감정이다.5. 비극 작품에서 나타나는 역사적 사실과 비극 시인의 역할비극이 신화를 현실에 최대한 반영한 것이라면 역사적 사실과 비극 작품들을 비교해 봄으로써 시인의 역할을 고찰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최초의 비극 시인인 아이스퀼로스의 작품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가 나온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기원전 6세기경 아테네의 폭군 페이시스트라투스에게서 벗어난 아테네의 시민들은 오랫동안 억눌런던 감정들을 민중들의 종교인 뒤오니소스 신앙을 부활시켰다. 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폴리스의 기본 신인 제우스를 위시한 올림푸스 신앙에 대비 되는 것으로 폴리스의 위기가 닥친다고 할 수 있었다. 이에 아이스퀼로스는 올림푸스 신들과 태고의 지하신들 사이의 갈등과 투쟁에 화해를 제시한다. 그의 작품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를 보면 전지 지신인 티탄과 기간테스, 튀폰을 지하 감옥에 가두고 인간을 멸종시키려는 음모를 꾸밀때, 프로케테우스는 다시 은폐된 대지 가이아에게 귀의하여 제우스로 하여금 본래의 사명인 지신들과의 대타협을 권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천상의 불을 가져다 주고 제사지내는 법과 농사짓는 법등을 가르친 문화 영웅이다. 이 극의 끝에서 제우스는 지상에 대한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깨닫고 대지의 신인 가이아 여신과 화해한다.이처럼 아이스 퀼로스의 극은 당시의 폭군에게 억압받던 민중들과 지식층들을 화해 융합하려 이 극을 지었다.기원전 5세기 경 페르시아 전쟁이 터진다. 이때의 승리로 아테네는 황금 시대를 열게된다. 이때의 대표적인 극작가는 소포클레스이다.소포클레스는 황금기를 누리는 폴리스에 대한 경고를 하였다. 그의 작품을 보면 올림푸스 신의 도덕적 헤이가 특히 많이 나오는데 이는 폴리스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자 항의였다.그의 작품 『오이디푸스』를 보면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는 저주를 타고났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경건하고 착한 심성의 소유자이다. 이에 신탁을 들은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피하려 코린토스와 반대 방향에 있는 테바이로 향한다. 테바이에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도시를 구하고 왕이되어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한다. 자신의 생모와 결혼한 것이다. 하지만 오이디 푸스는 죄를 저지를 뜻이 전혀 없었다. 불경을 피하려 했던 그의 모든 노력이 신들의 교묘한 농간으로 가장 끔찍한 불경을 저지르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 불경으로 전염병이 돌고 그 범인이 자기임을 안 오이디푸스는 두눈을 자기 손으로 찌르고 만다. 여기서 소포클레스는 신의 뜻을 따르려고 아무리 노력하고 빌어도 신들이 내린 저주스러운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의 항의를 보여준다. 이 항의는 아테네 지식층에 대한 항의이며 지식층과 민중들 사이의 평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또한 지식인과 민중들의 갈등을 화해 시키기 위해서 이기도 하다. 여기서 폴리스 질서에 대한 약간의 변화가 보여지는데.
    예체능| 2017.12.15| 7페이지| 1,000원| 조회(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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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마가 지옥으로 영혼을 가져간 방앗간 주인의 소극』으로 본 중세소극의 무대에 관한 연구 -
    중세 소극 연구- 『악마가 지옥으로 영혼을 가져간 방앗간 주인의 소 극』으로 본 중세소극의 무대에 관한 연구 -목 차1. 서 론2. 중세의 소극3.『악마가 지옥으로 영혼을 가져간 방앗간 주인의 소극』에서 나타 나는 무대사용4. 결 론1. 서 론중세는 로마 교회가 사회적으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창조적 능력은 오직 하나님을 위해서만 쓸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중세를 암흑기라고 한다.중세 교회는 연극을 금지시켰는데, 이는 그전까지 공연되던 연극들이 로마 연극의 영향을 받아 선정적이며 볼거리만을 제공하였고, 또 이교도의 신들이 등장하였기 때문이다.교회에서 금지되었던 연극은 공교롭게도 교회 안에서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도시를 벗어난 시골에서는 로마시대 때 유행했던 떠돌이 유랑극단의 공연이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교회에 의해 금지되었던 연극은 교회안에서 다시 살아났다. 대다수의 민중들은 글을 읽을 줄 몰랐고 설교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지적 수준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직자와 성가대 소년등이 설교 내용을 극화하여 민중들에게 직접 보여준 연극이 생겨났고, 그 결과 많은 청중을 동원하여 선교의 성과가 훌륭하게 나타났다. 이것은 점점 예배연극(Liturgical Drama)으로 발전해 나가게 된다.연극의 소재는 신,구약 전체로 확산되었고, 무대 장치가 생겨났다. 이 후 등장인물이 늘어나고 사건이 복잡해 지면서 무대도 점점 넓어 졌으며 점차 연극이 본격화되어 수난극(the passion play), 기적극(the miracle play), 신비극(the mystery play) 등 다양하게 분화되었고, 200년 동안 교회는 선교의 수단으로 연극을 독점하였다. 그러나 청중들의 혼잡등을 이유로 하여 교회에서 교회 밖으로 옮기게 되었다.또한, 중세극의 마지막 유형으로 간주되었던 도덕극이 도회지에 설치된 플랫폼 platform에서 상연될 당시에 성이나 공공 건물 혹은 광장에 설치된 가설무대에서 유랑 배우들은 중세극의 가장 해 재구성 했음을 밝혀둔다2. 중세의 소극소극(farce)은 대단히 비정상적인 상황, 진부한 인물, 지나친 과장, 난폭한 놀이가 특징을 이룬다. 조잡한 성격묘사와 개연성이 적은 줄거리 때문에 보통 지적·미학적으로 희극에 뒤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공연시의 인기 때문에 지속되어왔으며 지금까지 서양에서 널리 공연되고 있다..특히, 15,16세기 희극의 거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그 레퍼토리가 풍부하고 오랫동안 유행한 아주 생명력이 강한 장르였다. 그러나 중세의 웅장하고 이례적인 성사극 상연에 가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단순한 희극적 기분플이로 치부되어, 희극, 비극 같은 용어와는 달리 고전의 승인을 얻지 못한 채뒤늦게 연극 용어로 편입되었던 연극 형태이다.이러한 소극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마 연극, 즉 아리스토파네스·플라우투스의 희극과 이탈리아의 민속극 파불라 아텔라나(fabla Atellana)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들 오락물에서 배우는 터무니없는 상황에 처한 대식가·노인·어릿광대 같은 판에 박힌 인물형을 연기한다. 한 가지 형태의 오락물 속에서 발견되는 익살·곡예·희화화·외설의 요소들을 묘사하기 위해 소극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5세기 프랑스에서였다. 이런 소극들은 원래 배우들이 종교극의 대본에 삽입시킨 즉흥적인 익살장면이었기 때문에 '속 채우기'라는 뜻의 옛 프랑스어 파르스(farce)를 사용했던 것이다. 그뒤 이같은 작품들은 독립적으로 씌어졌는데, 현존하는 작품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으로 메스트르 피에르 파틀랭(Maistre Pierre Pathelin)을 들 수 있다.소극의 작품들은 장과 막의 구별도 없이 500구절을 초과하지 않은 짧은 작품들로서 대부분 3~4명 정도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초라한 일상생활이나 설화 문학의 이야기들에서 주제를 끌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가정생활에서는 교활한 부인, 골탕먹는 남편, 멍청한 하인들이 나오며, 사회적 유형으로는 정부 노릇을 하는 신부들, 호언장담하는 군인들, 잘난 척 하는 학자등이 등장한다. 이런 인물들하였다. 며칠에 걸쳐 상연을 했기 때문에 매 번 돈을 내야 했던 성사극에 비해 소극의 자릿값은 모든 서민들이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였으며 입구를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상연이 끝난 후 배우가 통을 들고 돈을 받으러 한바퀴 돌곤 하였다. 배우는 모두 남자였지만 관객들은 남녀가 섞여 있었으며 싸움, 욕설, 거친 언어, 시끌벅적한 웃음, 고함과 야유 등 소극은 그 내용 뿐 아니라 그 상연 조건에 있어서도 아주 대중적인 스택타클이었다.소극은 삶의 뿌리 깊숙이 내재한 민중들의 생생하고 적나라한 존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기층성을 반영하고 있는 문화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면면히 이어지며 쉽게 사라지지 않는 힘을 지닌다. 소극이 희극전통의 정점이 되고 후대 희극 문학의 토양이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 할수 있다.3.『악마가 지옥으로 영혼을 가져간 방앗간 주인의 소극』에서 나타나는 무대사용이 극은 몸이 아픈 방앗간 주인과 그를 괴롭히는 아내, 그 아내와 바람이 난 신부가 등장한다. 신부와 아내는 남편이 빨리 죽어서 재산을 챙겨 결혼을 하기로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남편은 곧 죽을 때가 되었다며 부인을 속이고 부인은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신부를 남편의 사촌이라 속이며 데려온다. 주인은 알면서 속는 척을 하며 평소 아내가 해주지 않는 것들을(예를 들어 성대한 식탁을 차리는 것) 신부에게 시키며 신부를 속인다.이때 사탄들이 등장하여 대화를 나누는데, 뤼시페르는 심심한 베리트에게 인간 세상으로 가서 인간의 영혼을 가져오라고 제의하고 베리트는 그 제의를 받아 인간세상으로 간다. 이때, 뤼시페르는 인간의 영혼은 항문을 통해 나온다고 말한다.베리트는 방앗간 주인의 집으로 가서 영혼을 가져가려고 준비를 한다. 이때 주인은 죽어가는 척하며 신부를 놀리다 배가아파 똥을 싼다. 그런데 베리트는 항문에서 나오는 똥을 방앗간 주인의 영혼인줄 알고 가져가고 악마들에게 보여주자 악마들은 화가나서 베리트를 때린다. 그리고 악마들은 방앗간 주인의 영혼은 똥은 거의 없고, 등받이 의자에 누운것처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침대같이 무거운 무대 대도구들은 사용이 불가능 했을 것이고, 배우의 얼굴이 보이게 하기 위해 정면으로 침대가 놓여져 있었을 것이다.2. 방앗간 주인 집 근처에 있는 거리.신부 우리 방앗간 여주인 못 본지가 꽤 몇 주일 되었군. 기다릴 것 없이 직접 찾아가 봐야겠어.(무대 한쪽 길로 조심스럽게 접어든다)4. 신부 (방앗간 집으로 들어오며) 부인! 하느님이 당신에게 큰 기쁨과 돈을 듬뿍 내려 주시기를!부인 어서 오세요! 저도 신부님을 찾아 금방 가려던 참이었어요장소를 나타내는 구조물이나 장치는 없었을 것이다. 3~4m의 무대에서 그런 것들은 불가능 했을 것이고 또한 유랑극단의 특성상 이동을 해야되기 때문에 복잡하고 무거운 것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관객의 시선보다 약간 높은 곳에 무대가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옆으로 올라와서 무대에 등장하기 보다는 뒤에 걸려있는 커튼을 통해 들어왔을 것이다.또한, 주인집에서 근처거리로 장소가 바뀌었을 경우에는 앞에 나와있었던 주인과 아내는 퇴장하고 바로 신부가 등장하여 대차를 한뒤 다시 주인과 아내가 등장하고 신부가 퇴장했다 다시 들어오며 위의 4의 장면을 시작했을 것이고, 등장인물의 등장과 그의 대사로 장소의 변화를 암시 하였을 것이다.부인 (계속 신부와 함께) 새 옷을 만들라고 해야겠어요. 저 인간이 곧 죽을지도 모르니 까신부 저 사람 저기서 움직일 위험은 절대로 없겠지, 오 내사랑! (그는 그녀를 껴안는다)주인 (그들을 쳐다보며 방백으로) 대단한 사랑이군, 악마가 껴든 거지! 저렇게 해도 되 는거야? 하나님은 멀 하시지?주인이 무대 한켠에 있다면 반대 편에 신부와 부인이 위치해 연기를 했을 것이고 주인은 관객들에게 방백을 하기 위해 좀더 무대 앞쪽으로 다가갔을 것이다.주인 좋아요 파테도 좀 가져오구려.부인 (나가더니 금방 파테를 가지고 들어온다) 이렇게 맛있게 구운 파테는 없을 거예 요 (신부에게) 앉으세요무대에 의자들이 나열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인과 부인이 신부가 먹는 것을 보는 동안 악마가 나온다고 했는데 아마도 본 무대는 하나 밖에 없고 본 무대 옆의 악마를 상징하는 맨션으로 악마들이 나타난 다음 다시 본 무대위로 올라오지 않았을까 예상해 본다.왜냐하면 소극의 무대 중에 맨션을 2~3개 이상 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지만 희곡의 흐름상 그렇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무대 오른쪽은 지옥, 왼쪽은 천국이라는 중세의 무대 관습을 지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탄이 등장할 때 나오는 불 기등과 천둥은, 불기둥은 천같은 소품을 이용하여 표현했을 것이고 천둥은 악기로 소리를 냈을 것이다.부인 (멀리서 자기 남편에게) 더 편하게 하려면 엉덩이를 침대 밖으로 내놓고 하세요. 그래야 그쪽으로 당신 영혼이 나갈 수 있으니까주인 제기랄! 당신은 시간의 흐름 저 너머로 영혼이 날아오르는지나 보시오. (그는 엉 덩이를 침대 밖으로 내 놓는다. 악마가 얼른 자신의 가방을 내밀자 방앗간 주인 은 그 안에다 똥을 눈다. 악마는 기뻐서 괴성을 지르며 나간다.)방앗간 주인 , 부인, 신부가 무대뒤로 사라지고 지옥 입구에서 악마극이 펼쳐진다......뤼시페르 그렇다면 이번만은 ........... 나쁜 마음먹고 방앗간 주인의 영혼을 가져오는 자 는 끔찍한 증오의 고통을 당하게 될거야. 방앗간 주인의 영혼은 똥이고 배설 물이니까침대를 상징하는 예를 들어 작은 나무의자에 주인이 앉아 있다가 관객을 향해 엉덩이를 보여주고 준비했던 똥 모양의 소품을 떨어뜨리면 무대 왼쪽에 있던 악마가 그 똥을 가방에 넣을 것이고 관객들은 그 모습을 보며 많이 웃고 야유를 보내고 했을 것이다. 악마가 괴성을 지르며 무대 뒤에 걸려있는 커튼 뒤로 사라지면 방앗간 주인과 아내, 신부도 사라지고 오른쪽의 맨션에서 악마들이 튀어나와 주 맨션으로 옮겼을 것이다. 혹은 주 맨션 바로 옆에 악마 맨션이 붙어 있어서 옆으로 옮겼을 것이다.그곳에서 뤼시페르는 마지막 대사를 외쳤을 것이고 사람들은 환호하고 웃으있다.
    예체능| 2017.12.15| 10페이지| 1,000원| 조회(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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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르지 그로토프스키(Jerzy Grotowski)의 탈 연극에 관한 연구 -후기 작업을 중심으로-
    -전위연극 연구-예르지 그로토프스키(Jerzy Grotowski)의 탈 연극에 관한 연구-후기 작업을 중심으로-목 차1. 서론2. 본론2-1. 유사 연극2-2. 원천의 연극2-3. 객관의 연극2-4. 수단으로서의 연극3. 결론1. 서 론1960년대에 많은 사람들은 연극이 다른 매체로부터 빌려오는 경향에 대해서 개탄해마지 않았고, 연극으로서의 연극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 일체의 요소들을 추방할 것을 옹호하였다.이러한 주장의 대표주자가 바로 예르지 그로토프스키(Jerzy Grotowski)이다. 그로토프스키는 그의 연극을 ‘가난한 연극 (poor theatre)이라 일컬었다. 그는 대부분의 집단들이 사용하는 기술적인 보조수단들을 제거하고 가장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두가지 요소, 즉 배우와 관객에 집중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연출하는 각 작품의 특수한 필요에 맞추기 위해서 재정돈 될 수 있는 공간을 사용하였다. 그는 조명효과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분장을 금하였고, 의상도 순전히 기증적인 것에 국한 시켰다.그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모든 장치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의 배두들은 박자를 치거나 음성을 통해서, 또는 직접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스스로 모든 음악을 만들어 냈었다. 이렇게 배우는 그 자신의 자원으로 돌아갔다.따라서 그로토프스키는 특별히 배우훈련에 열중했던 것이며 그것을 통해서 연기자들로 하여금 연기를 방해하는 모든 장애요인들을 제거하고자 했다. 궁극적으로 그로토프스키가 소망했던 것은 관람자들의 능력을 완전하게 압도함으로써 일종의 마술같은 느낌을 일으킬 수 있는 배우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그로토프스키는 연극을 한 공동체를 단합시켜 주는 현대판 부족의식으로서 이해했다. 그러므로 그는 대본을 준비하면서 원형적인 패턴을 행동과 이미지를 찾았다. 그런 다음에 배우들과 관객을 충돌 시켜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거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방법으로 그것들을 강조, 발전 시켰다. 이는 아르또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1970년대에 이르러 이미 그의 극단이 기술형식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로토프스키는 공연을 멈추고 ‘공연을 전제로 하지 않는’연습에 집중하게 된다.탈 연극으로서의 작업은 유사 연극(para-theatre)으로 시작하여 1980년대 초의 원천연극, 1983~86년사이의 객관적 연극(objective drama), 그리고 죽기 직전 까지 연구한 수단으로서의 예술(art as a Vehicle)로 이어진다.본 연구자는 가난한 연극 이후의 작업인 그로토프스키의 탈연극을 연구하여 그의 연극정신의 이해의 영역을 넓혀 보고자 한다.2. 본 론2-1. 유사 연극탈 연극의 시작인 유사연극은 대략 1969년에서 1978년에 행해졌다. 연극의 한계를 탈피하려는 유사연극은 그 무엇 보다도 참여자의 진실된 행위와 사람과 사람의 진정한 교감을 찾는데 있었다.그는 관객에게도 배우와 같은 진실성을 요구하였다. 즉 관객도 배우처럼 거짓 가면을 벗고 본성을 드러 낼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관객은 진실한 정신적 욕구에서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분석하기를 원하며 본능과 의식을 포함하여 총체적으로 반응 하는 관객이었다. 하지만 그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관객들은 언제나 수동적이었기 때문이다. 현실과 이상에는 괴리가 있었고 배우와 관객사이의 교감을 꾀한 공간적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관객은 수동적인 관찰자의 입장에 머물렀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아무런 변화없이 침착한 심리로 자리를 떠난 것이었다. 결국 그로토프스키가 벽에 부딪친 것은 연극의 관습 즉, 관객의 수동적 자세였다. 그래서 그는 연극의 틀을 벗어나 참여자들이 자기 분석의 진정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유사 연극을 모색하게 된다.유사연극은 사람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고무하는 참여연극의 성격을 띄는데 이것은 참여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무장 해제 시켜 자신의 본성을 발결하게 하므로 그로토프스키에게는 공연은 일종의 신성한 날(기념일)이 된다.유사연극의 또다른 목적인 교감은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배우와 관객사이의 물리적인 접근은 오히려 형이상학적생적인 반응을 얻고자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교가 아니라 적절한 기질이라고 강조한다. 즉, 열린자세로 자연을 느끼고 모든 것들과의 교감을 회복하길 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작업과 연극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것은 문화적으로 길들여진 행동 패턴을 벗어나 자연스러운 육체적 충동을 회복하는 것에 있다. 이를 그로토프스키는 자기증거(self-evidence)에 의한 행위라면서, 유사연극의 작업이 연극의 실제로 이어질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유사연극에서 발견한 자발적인 충동에 의한 행위는 무대 연기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연기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연기를 하지 않을까이다. 그 결과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됨이다.이러한 유사연극은 진행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왜냐하면 참여자들은 개인적인 혹은 문화적인 상투적 표현에 빠지고 무장해제 대신 자연스러운 행위를 연기하려고 야만인의 역할이나 활홀경을 흉내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연 발생적인 행위는 구조 즉, 엄격히 계산된 기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그로토프스키의 연극은 다른 방식으로의 실험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된다.2-2. 원천의 연극유사연극의 경험에 기초하여 그로토프스키는 1970년대 말과 1980년데 초에 새로운 실험인 원천연극에 착수한다.그로토프스키에 따르면 원천연극의 목적은 우리를 삶의 원천으로 돌아가게 하는 원천기교를 탐구하는 것에 있다. 앞서와 다른 것은 바로 기교이다.그의 탐구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에서 인간 근원 탐구로 바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두 경우 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는 그로토프스키의 평생의 질문이었다.원천연극의 수단은 원천기교이다. 그로토프스키에 따르면 원천기교는 세상을 근본적인 방식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경험 하지 못하게 하는 문화적으로 조건화된 장벽을 없애는 수단으로 다양한 전통문화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생각은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삶을 근본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기교가 전통적인 공연에여기서의 원리는 간단하다. 행동하면서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 전부이다. 단, 삶의 원천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기 위해 문화의 가면을 모두 제거하여야 하는 것이다.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그로토프스키의 실험은 원천연극으로 만족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기서도 즉흥성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로토프스키는 보다 엄격한 기교와 장인정신의 필용성을 절감하면서 또다시 새로운 실험을 하게 된다.2-3. 객관의 연극1983년~86년 사이에 그로토프스키는 소위 객관적 연극에 관한 연구에 몰입한다. 원천연극을 하면서 다양한 문화권에서 모인 선생들은 객관적 연극의 기초가 되고 이는 다시 수단으로서의 예술 작업으로 이어지게 된다.객관적 연극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행위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전통적인 공연요소들을 발견하는 것에 있다. 여기서 객관적이라는 말은 특별한 의미를 내포한다. 그것은 제의의 공연적 요소들이 행위자의 신체 마음, 그리고 머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그에게 제의는 종교의식이나 제전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앞서 언급한 의미에서의 객관성을 의미한다. 이렇듯 객관적 연극은 행위자에게 강력한 효과를 일으켰던 제의적 기교를 연구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전통적인 연극은 그로토프스키에게 제의와 예술의 기능이 분화되지 않은 고대의 예술로서 시가 노래이고 노래가 주술이며 동작이 곧 춤이었던 것이다. 이와같은 고대의 예술은 지식의 수단으로서의 예술이 될 정도로 행위자에게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그로토프스키의 생각이다.객관의 연극은 마치 외과의사의 메스처럼 정확한 작업도구를 위미하는 것이다. 기교적 숙련만이 행위자에게 특별한 효과를 불러일으켜, 우주나 자연의 법칙과 재 결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문적 기술에 대한 강조이며 따라서 그는 노래, 춤, 동작 같은 공연 수단들의 기교적 숙련에 몰두하게 된다.그의 연극에 참여한 참여자들은 전통노래를 배운다. 이것은 참여자들에게 내적으로 심오한 효과를 일으키고 이에따라 간단한 동작이 발전되는 단계로 나간다. 는 고대인의 몸이라 불렀다. 여기서 파충류의 몸이라는 은유는 우리 몸속에 있는 본능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으로 인간의 본성은 본능과 의식, 신성함과 동물성의 양극단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진정한 전통공연의 기교는 이와같은 양극단의 본성을 일깨워준다는 것이 그로토프스키의 생각이다. 충동과 표현의 유기적인 방식은 객관의 연극의 핵심이라 할수 있다. 이렇게 발전된 기교적 숙련은 마지막 단계인 수단으로서의 예술로 지속되며 왼성된다.2-4. 수단으로서의 예술1986년 그로토프스키는 이태리의 외진마을 폰테테라에 은둔하면서 1999년 사망할 때 까지 수단으로서의 예술에 몰두한다. 그의 말을 따르면 이것은 최종적ㅇ니 작업이자 도착지로서, 유사연극과 원천연극은 여기까지 오기위한 하나의 여정에 불과했다 여기의 주목할 점은 객관적 연극에 관한 언급없이 원천연극 이후의 작업을 모두 수단으로서의 예술로 지칭한다는 것이다. 이는 객관의 연극과 수단으로서의 예술이 유사한 성격을 지닌 작업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그로토프스키는 수단으로서의 예술을 제의의 객관성이라 불러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불과 3~4년 동안 진행되었던 객관적인 연극은 수단으로서의 예술을 위한 하나의 서곡이었던 샘이다.수단의 연극으로 오면서 새롭게 도입된것은 공연자의 개념이다. 그로토프스키에 따르면 공연자는 행동하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성직자나 전사 같은 행위자로서 행동을 함으로써 이해하는 사람이다. 즉, 행위자는 이론이나 개념의 암기보다는 행동을 통해 배운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의 공연에서는 몽타주의 중심지가 관객의지각이라면 수단으로서의 예술에서 몽타주의 중심은 행위자인 것이다. 이처럼 수단으로서의 예술은 지각의 주체를 관객이 아닌 행동하는 공연자에 두면서 그의 내적인 변화를 강조한다.그로토프스키가 언제나 관심을 갖는 것은 본질 즉 존재의 문제로 그것은 외부로부터 부여되거나 배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본질은 본능과 의식의 극과 극 사이에 있는 것이다.점이다.
    예체능| 2017.12.15| 9페이지| 1,000원| 조회(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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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에서 나타나는 반연극의 특성에 관한 연구 평가A+최고예요
    이오네스코의 에서 나타나는 반연극의 특성에 관한 연구Ⅰ. 서 론1960년대 소위 ‘부조리 연극’, 아방가르드 연극, 반연극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어지는 새로운 연극이 등장하게 되고, 연극은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가는 작가에는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 베케트(Samuel Beckett), 주네(Jean Genet)등이 있다.특히 이오네스코는 새로운 연극적 변화를 이끌어간 선구자로 평가된다. 왜냐하면 그의 첫 번째 작품인 를 시작으로 연극은 기존의 연극적인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연극을 추구하고자 하는 개혁이 일어났고, 그러한 움직임이 당시의 연극계를 이끌어 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오네스코의 는 연극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는 ‘반희곡(anti-piece)'이라는 부재를 가지며, 그 의미 그대로 거부의 연극, 해체의 연극을 시도한다. 왜나하면 두차례의 세계 대전 후 급속하게 변화한 사회형태, 인간들의 새로운 사고 방식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연극 또한 새로운 형식이 절실하게 요구되었기 때문이다.이오네스코는 그의 저서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나는 어떤 사실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야 말로 신중함과 진실의 표징(表徵)이라고믿는다. 오리지날한 것은 진실인 것이다. 저절로 형성되는 것을 닮은 것은 거짓인데,그 이유는 인습적인 것은 비인간적인 거짓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말하지 않은 것은사려깊은 것이며 진실인 것이다. 앵무새는 진지하지 못하다. 앵무새가 말하는 것은 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자기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이애하기 위해서는 새로워 져야 한다.“또한 그는 “연극은 체계가 아닌 인습, 티부, 교착화된 정신 습관, 고정관념에 매여 있다. 연극은 가장 위대한 자유의 현장이며, 가장 광적인 상상의 장소가 될 수 있는데도, 그것은 현실주의자로 불리건 그렇지 않건 간에, 가장 심한 구속의 장소이며, 정체된 인습의 체계가 되어버렸다”그래서 이오네스코는 이러한 정체된 기존의 연극에서 벗어연극의 의미를 연구해 보고자 한다.Ⅱ. 본 론1.반(反)연극과 1960년대를 이끌던 반연극적인 시도와 움직임은 결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반연극의 시작은 1896년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의 라는 작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연극은 세익스피어의 를 패러디 한 것으로 당시 연극의 주 관객층이었던 부르조아 계층을 조롱하고 그 표현에 있어서도 구어체의 대사와 속어의 사용, 가면과 인형 등의 사용, 새로운 무대 기법 등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반연극의 최초의 시작이라고 평가받는다.이 작품을 시점으로 기존 연극에 대한 거부와 새로움에 대한 도전은 다다(dada)와 초현실주의를 거쳐 1950년에 들어 비로소 반연극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특히 이오네스코의 는 반연극에 있어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우선 그는 에 반희곡(anti-piece)이라는 부재를 붙였다.anti의 의미는 작품의 제목에서부터 나타난다. 라는 제목을 통해 대머리 여가수가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머리 여가수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기존의 연극에서 보여지던 작품 제목의 상징성을 해체시켜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오네스코는 그러한 상징성을 해체 시킬 수 있는 적절한 제목을 찾는데 많은 고심을 했으며, 매우 우연하게 제목을 찾게된다.“우리는 적절한 제목을 제목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제목을 찾게 된것은 우연이다. 소방대장의 역을 멋지게 해낸 앙리- 자끄 위에가 리허설이 끝날 무렵에 한 마디 를 했다. 감기에 관한 독백을 암송하던 중, 그는 우연히 란 대사를 실수로 라고 발음했었다. 《바로 여기에 이 희곡의 제목이 있다》고 나는 소리쳤다. 그래서 결국, 희곡 는 그렇게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즉, 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언어의 커다란 오류를 보여주고 있다. ‘여가수’는 노래하는 여자, 즉 소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 창조하여 존재하게 되는 긍정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대머리’는 대머리, 머리카락이 빠지고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부정적 의미를 갖게 된다.그대로 등장인물에 투영되며 작품에 나타난다.이러한 정체성을 상실한 인물들은 어떤 특징도 갖지 못하며, 반심리적이고 자동화되어 말하는 기계와도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된다. 이는 언어의 해체와 더불어 나타나는 인물의 해체현상으로 기존의 연극에서 보여지는 도덕적 갈등, 담화의 주체로서의 등장인물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또한 행위에 있어서 통일성과 연속성을 잃게 되었다. 이러한 인물은 타인과 어떠한 관계도 맺지 못하는, 즉 의사소통의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만다. 그리고 자아를 상실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인물들은 의미를 상실했거나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사실들을 반복하며 관습화된 삶을 살아가는 피동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그리고 극의 구조를 순환시키면서 등장인물들 사이에 교체 가능함을 드러내고 있다. 즉, 등장인물들은 정체성을 상실하고 해체되었기 때문에 다른 인물로 대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반복적이고 순환적인 극의 구조는 놀리적인 시간의 구조를 파괴시킨다. 그래서 시간은 더 이상 현실을 포착하지 못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알지 못하는 어느 한 시점에 있을 뿐이며, 매우 불분명하다.이처럼 언어와 등장인물, 시간의 구조느 모두 해체된다. 여기서 해체란 기존의 연극적 특징이 거부되면서 나타난 결과이며, 반 연극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2. 의 반연극적 특징ⅰ. 언어희곡은 크게 대사와 지문으로 구성된다. 대사는 등장인물의 관계를 토대로 이루어지고 등장인물 사이의 의사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의사소통의 도구가 되며, 담화가 전달되는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설득의 기능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기존의 연극에서 등장인물이 나누는 대사는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그러나 반연극에서 대사는 오히려 오류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된다. 그리고 언어는 더 이상 소통의 도구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반연극의 언어에 대해 이오네스코는 그의 저서 에서 에 대해 스스로 “언어의 비극”이라고 밝힌다.“언어의 비극”이란 궁극적으로 언어를 통한 동시대인들 간의 소통이 불가요! 제 자리 역시 8호 객차 안 6호실 이었어요, 선생님!마르땡씨: 거참 이상하군요. 정말 굉장한 일치에요! 어쩌면 우린 같은 6호실에서 만났었는지도 모르겟군요 부인?이렇게 반복된 대사는 전통적 형태의 희극성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관객은 이미 앞장에서 둘 사이가 부부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두 인물 사이에 놓여져 있는 과거 내지는 현재의 사실들이 서로 일치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마르땡 부부가 느끼는 우연의 일치와 놀라움은 관객에게 있어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하는 것이 되며, 그저 상대방의 말을 따라하는 인형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결국 반복되는 말은 자동화의 양상을 띄게 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기계적인 삶에 대한 비극성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2) 소리만 남은 언어의 대화는 극이 진행되면서 점층적으로 언어의 해체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마지막 단계에서 언어는 스스로 해체되고 마는 것을 보여준다. 등장인물은 대화하지만 더 이상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형식적인 말만이 오고 갈 뿐이다. 그리고 소리만 남은 언어는 그야말로 알아들을 수 없는 동물들의 울음소리나 기차의 기적소리처럼 들린다.마르땡씨 : 구두약으로 안경에 광택을 내지 못하지스미스부인 : 그래요, 그러나 돈을 가지면 사고 싶은 모든 것을 살 수 있죠마르땡씨 : 난 정원에서 노래하는 것보다 토끼를 죽이는 게 더 좋아요스미스씨 : 깡총 깡총 깡총 깡총 깡총 깡총 깡총 깡총 깡총스미스 부인 : 웬 깜둥 웬 깜둥 웬 깜둥 웬 깜둥 웬 깜둥 웬 깜둥 웬 깜둥의미를 상실한 음성적 결함은 결국 언쟁으로 이끌려 간다. 그리고 이러한 언쟁으로 인한 분노는 스미스 씨와 마르땡부인이 모음과 자음을 외쳐대며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스미스씨: 아 야 오 우 아 야 오 유 아 이 오 이!마르땡 부인: 바 처 두 프 쥐 엠 알 마 나 프 라 트 브 펴 트 크!그리고 이렇게 소리만 남게 된 언어는 마치 달리는 기차처럼 대사의 리듬을 가속대로 무대화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ⅱ. 반(反) 시간연극에서의 시간은 실제 시간과 재현의 시간이라는 두 개의 시간이 중첩되어 있다. 왜냐하면 연극은 무대 공간에서 재현되는 예술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이오네스코가 희곡 작가로서 쓴 첫 대사가 물리적 시간을 혼동하는 말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열일곱 번을 치면, 아홉시오, 스물아홉 번을 치기도 하는 등 그의 연극은 사거느이 전말이 밝혀기면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전통적 연극의 기법을 거부하기 때문에 전통극에서처럼 현실이 뒷받침해 줄 실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연국식 괘종시계는 영국식으로 열일곱 뻔 친다스미스부인 : 어머 아홉시군요. 우린 영국식 수프와 생선, 튀긴 감자, 셀러드를 먹었어 요 아이들은 영국식 물을 마셨죠. 우린 오늘 저녁 잘 먹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런더 느이 근방에 살고 우리의 이름이 스미스 이기 때문이죠실제 현실의 시간 속에서 쾌종시계는 결코 열일곱 번을 칠 수 없으며, 설령 그 것이 가능하다 해도 논리에 따르면 시간은 17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스미스 부인은 17번 종을 치는 시계소리를 듣고 9시라고 말한다. 이러한 등장인물과 소리를 통한 무대장치의 메시지 사이의 부조화는 확신이란 불가능하며, 소통을 이루기 위해서 세운 모든 규칙들이 파괴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그러므로 규칙이 깨져버린 시간은 일주일에 화요일이 두 번 있을 수도 있게 하고, 사망한 보비 왓슨은 3년전에 부고 기사에 나고 그 후 1년 뒤에 죽게 되었다는 대화를 이끌 수 있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시간의 혼돈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은 바로 쾌종시계이다. 시계란 현실에서 가장 객관적인 시간의 표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쾌종시계가 종을 울리는 것을 살펴보면 시간의 혼돈과 해체의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다시 침묵이 흐른다. 쾌종시계는 7번 친다. 침묵. 3번 친다. 침묵. 쾌종시계는 한번도 치지 않는다.시간이 흐를수록 쾌종시계는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가 아닌 시계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종을
    예체능| 2017.12.15| 14페이지| 1,500원| 조회(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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