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mb Waiter』에 나타난 부조리성 ?『Waiting for Godot』와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중심으로201303137 영문학과 정예찬헤롤드 핀터는 『Dumb Waiter』에서 불합리한 상황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용하는 벤과 거스의 모습을 통해 인간 삶의 부조리성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벤과 달리 거스는 끊임없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의심하고,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된다. 핀터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삶은 부조리한 상황에 둘러싸여 있으며, 결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흥미로운 것은, 핀터의 『Dumb Waiter』가 베케트의 대표적인 부조리극인 『Waiting for Godot』와 비슷한 전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Dumb Waiter』에서 벤과 거스가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 채 상부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Waiting for Godot』에서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고도를 수십 년 동안 기다리고 있다. 이 두 작품은 유사한 전개방식으로 인간 삶의 부조리성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각 작품의 작가들은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방식의 극적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부조리극을 대표하는 두 작품인『Dumb Waiter』와 『Waiting for Godot』를 비교하는 작업은 관객들로 하여금 부조리극이 가지는 공통된 주제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우선, 『Dumb Waiter』와 『Waiting for Godot』에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지는 유사성은 바로 ‘강요된 기다림’이다. 두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작품 밖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기다림’이라는 행위를 강요당하고 있다. 또한, 그 ‘기다림’은 그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기다림의 고통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기 위해 자신만의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Dumb Waiter』에서 벤과 거스는 지하실에서 그들의 상관인 ‘윌슨’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다. 살인청부업자인 벤과 거스에게 있어 상관인 윌슨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기다림의 시간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의심하는 거스에게 벤이 자신처럼 취미를 가져보라고 제안하는 것은 이러한 기다림의 고통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Waiting for Godot』에서도 역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수십 년째 황량한 길 한복판 위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 고도가 누구인지, 그들이 고도를 왜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블라디미르가 고도가 오게 되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대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에게 있어 고도는 절대자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도 역시 고도를 기다린다는 행위는 고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그들은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그 침묵을 깨기 위해 아무 의미 없는 말을 지껄인다. 이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기다림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한 그들만의 의도적인 전략인 것이다.또한, 이 두 작품의 인물들은 모두 각각 ‘벙어리 웨이터’와 ‘소년’이라는 대체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절대자의 의견을 전달받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을 의심하는 인물이 두 작품 모두에서 등장한다. 『Dumb Waiter』에서 거스는 자신이 하는 일과 윌슨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고,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거스의 불안은 ‘벙어리 웨이터’에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주문이 계속 들어오자 결국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리는 것으로 정점을 찍는다. 『Waiting for Godot』의 블라디미르 역시 기다리는 행위에 대해 계속해서 의심하고, 또 고통스러워한다. 블라디미르는 극 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한 일을 망각하지 않는 인물로, 다른 인물들에 비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블라디미르와 거스가 자신들의 절대자와 기다리는 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결말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블라디미르는 계속해서 기다림의 행위를 반복하는 것과 다르게 거스는 결국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블라디미르가 기다리는 행위에 대해 의심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다음 날 또다시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는 바로 ‘소년’의 존재 때문이다. 고도의 메신저인 소년은 항상 블라디미르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등장하여 블라디미르의 사고를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소년은 블라디미르에게 고도가 내일은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하며 헛된 희망을 심어 주고, 블라디미르가 고도에 대해 의심하는 것을 완전히 중단시켜 작품은 순환적인 구조가 되어 버린다. 이에 비해 거스는 자신이 하는 일과 윌슨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조직원에게 무조건적으로 요구되는 상명하복이라는 절대적인 원칙을 깰 위험이 있는 그는 결국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핀터는 베케트가 순환적인 『Waiting for Godot』를 순환적인 구조로 마무리한 것과 달리 거스의 죽음으로 작품의 결말을 맺음으로써, 『Waiting for Godot』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불안과 공포의 감정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변신』에 나타난 시간성과 공간성영문학과 201303137 정예찬1.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 근대 교통수단의 발달은 새로운 시간 체계를 탄생시켰다. 시간은 점점 더 세분화 되었고, 자본주의의 발전과 맞물려 물질적 가치로 환원되었다. 이로 인해 인간들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시간 강박에 노출 되고, 시간에 종속된 삶을 살게 된다.▶ 교통수단의 발달은 공간의 수축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빠른 속도를 통한 이동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들이 서로 가까워지게 만들었지만 공간과 장소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정체성 또한 옅어지게 되었다.2. 시간성○ 기차 시간표But then he said to himself: ‘By quarter past seven, I must certainly have got out of bed completely. In any case, somebody will have come from work by then to ask after me, because the business opens before seven o’clock’ (p.92)He sits at the table quietly reading the newspaper, or studying the railway timetable. (p.95)▶ ‘시간’에 종속된 삶을 살던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신한 뒤 시간으로부터해방된다.3. 공간성○ 공간의 영토화…,he got into the habit of crawling all over the walls and ceiling. He was particularly given to hanging off the ceiling; it felt very different from lying on the floor; he could breathe more easily.(p.117)▶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는 벽이나 천장을 가로, 세로, 위아래로 기어다니고 천장에 매달리는 등 평소와는 다른 공간체험을 하게 되고, 피와 점액을 묻히며 방을 ‘영토화’한다.▶ 방이라는 사적 공간이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에게 공간과 장소의 온전한 의미로 경험된다.○ 이사▶ 그레고르의 가족은 집을 완전한 교환가치로 환산하여 매각하고 다른 장소로 이사를 가고자 하지만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로 인해 좌절된다. 그레고르는 강한 장소 귀속적 정체성의 상징이 되고 있으며, 집을 자본주의적 거래로부터 차단시켜 교환 불가능한 고유의 장소로 만들고 있다.▶ 그레고르가 죽은 뒤 가족들은 기차 안에서 이사 계획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이는 그레고르가 변신함으로써 이루어졌던 방의 ‘영토화’와 집의 ‘장소 귀속적’ 정체성이 모두 좌절되었고, 공간은 다시 교환 가능한 물질적 가치로 환원되었음을 뜻한다.
『대머리 여가수』에 나타난 인간 소외201303137 영문학과 정예찬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는 부조리 연극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기존의 연극들이 추구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중심의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형식으로 집필되었다. 기존의 연극들과 『대머리 여가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언어가 더 이상 소통의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지 않으며, 모순을 이끌어내게 되고, 결국 의사소통은 불가능해 진다. 언어의 상실을 통해 정체성을 잃게 된 등장인물들은 서로 끊임없이 대화하지만 역설적으로 소외되고, 고립되어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해체된 언어를 이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인간 소외라는 주제를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사용한 첫 번째 기법은 바로 ‘반복’이다. 이 작품에서 인물들은 진부한 대사들을 계속해서 반복함으로써 대화의 의미를 상실시키고 있다. Martin 부부의 대화는 이러한 반복적인 특성을 잘 보여준다. Martin 부부는 처음으로 등장하여 대화하는 장면에서 ‘정말 이상하군요.’ ‘굉장한 일치군요’라는 감탄사를 20번이 넘게 반복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미 둘 사이가 부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두 인물이 똑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는 Martin 부부 사이의 대화가 의미를 상실했음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Martin 부부의 대화에서 반복되는 감탄사들을 통해 두 인물이 마치 서로 소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상대방의 말을 따라할 뿐인 기계적인 모습으로 그려냄으로써 자신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이 작품에서 사용된 ‘순환구조’ 또한 정체성을 잃고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작가가 사용한 방법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Martin 부부가 Smith 부부로 대체 되어 Smith 부부가 했던 대사를 똑같이 반복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는 극 중에서 인물들의 말과 대화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며, 한 인물이 다른 인물로 대체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품 속 인물들은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없고, 얼마든지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어떤 것으로 환원될 수 있는 아무런 가치 없는 존재가 된다. 즉, 작품 속 인물들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치 서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무런 의미 없는 말만 반복하는, 고립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마지막으로, 작품에 등장하지 않는 ‘대머리 여가수’를 통해서도 정체성과 의미를 상실한 인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대머리 여가수는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고,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만 잠깐 언급된다. 집 밖으로 나가려던 소방관은 갑자기 멈춰서 대머리 여가수에 대해 묻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Smith부인은 그녀는 항상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머리 여가수에 대한 내용은 이 대화를 끝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며, 이 대화마저도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대머리 여가수가 모순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소방관과 스미스 부인 사이의 대화에서 등장하는 것은 이 둘 사이의 대화가 이미 거짓되고, 의미가 사라졌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거짓된 대화 속에서 실제로 대머리 여가수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결코 중요하지 않으며, 이러한 대화를 통해 작가는 소통이 단절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에 나타난 인물들의 양면성201303137 영문학과 정예찬테네시 윌리엄스는 전후를 대표하는 미국의 극작가중 한명으로, 그의 작품들은 섬세하고 예리한 사실주의적 묘사로 인간 소외와 현대인의 황량한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그의 대표작품 중 하나인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에서도 역시 허위 속에 갇힌 인간 군상들이 예리하고도 날카롭게 묘사되고 있다. 절친한 친구였던 스키퍼가 죽은 뒤 하루하루 술에 의지해 살아가는 브릭, 남편의 사랑을 다시 받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 매기, 대농장을 소유하고 있지만 암으로 인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브릭의 아버지인 빅 대디 등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위선적이고 양면적인 모습을 지닌 채 살아간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욕망으로 점철된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등장인물들의 양면적인 모습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인물들의 양면성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첫째로, 브릭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브릭은 한때 유망한 풋볼 선수였으나 절친한 친구였던 스키퍼의 죽음 이후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루하루 술에 의존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브릭은 자신이 스키퍼에 대해 동성애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을 동성애자로 의심하는 가족들에게는 자신과 스키퍼의 우정이 순수하였음을 강조하며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님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이는 당시로서는 용인될 수 없었던 동성애에 대한 편향적인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방어기제로써 작용한 결과이다. 하지만 브릭이 빅대디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스키퍼의 고백을 받아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장면은 브릭이 스키퍼에게 느낀 감정이 우정 그 이상이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즉, 브릭이 스스로 자신의 동성애적 기질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강력하게 부인하며 스키퍼와의 우정을 이상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리려 하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때문이며, 이러한 모습은 브릭의 양면성을 잘 나타내준다고 할 수 있다.둘째로, 매기가 브릭과의 잠자리에 집착하는 모습을 통해서도 양면성을 찾아볼 수 있다. 매기는 브릭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브릭에게 삶의 욕구와 동기를 불어 넣어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또한 비록 스키퍼를 죽음으로 몰아넣긴 했지만 매기가 남편의 동성애 상대자로 의심 받는 스키퍼를 찾아갈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남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기가 브릭을 사랑하는 것은 맞지만 남편과의 잠자리에 이상하리만치 집착하는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던 매기에게 빅대디의 거대한 유산상속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브릭의 아이를 임신하는 것 뿐이다. 매기에게 브릭과의 잠자리는 단순한 부부간의 사랑만이 아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즉, 작가는 매기에게 남편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빅대디의 재산을 향한 욕망이라는 두 가지 모습을 부여하여 매기의 복잡한 내면을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마지막으로, 빅 대디가 브릭에게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하는 장면에서도 양면성을 찾아볼 수 있다. 브릭은 자신이 스키퍼가 자살한 후 알콜 중독에 빠지게 된 이유를 빅 대디에게 설명하면서 술을 마시는 것은 허위의 체제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방법이라 말한다. 이에 빅 대디는 브릭에게 현실을 인정하고, 비록 그 현실세계가 위선과 거짓에 차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현실을 수용해야 한다고 브릭을 설득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타나는 반복의 의미201303137 영문학과 정예찬사무엘 베케트는 이오네스코, 장 주네, 아다모프 등과 함께 1950년대 부조리극을 대표하는 작가로써 새로운 극예술을 추구하며 전통적인 극의 형식을 완전히 거부하였다. 기존의 극들과 달리 부조리극은 플롯, 언어, 더 나아가 등장인물까지 모두 해체시킴으로써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베케트를 대표하는 작품인 『고도를 기다리며』는 특히 ‘반복’이라는 장치를 사용함으로써 부조리극의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작가는 반복을 통해 사건이 시작되지도 않고 끝나지도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러한 사건 속에 있는 등장인물들에게는 어떠한 정체성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부조리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한 반복의 장치는 어떻게 극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가?우선, 극 속의 등장인물들은 ‘의미 없는 대사와 행동’을 반복한다. 이 극의 주인공 중 한명인 블라디미르는 모자를 벗어서 두드려보고, 들여다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흔들어보고, 다시 쓰는 무의미한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다른 주인공인 에스트라공은 자신의 신발을 반복적으로 벗으려는 시도를 한다. 이들은 또한 기계적인 대사언어를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블라디미르가 에스트라공에게 그들이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대사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반복된 대사와 몸짓은 인과론적 관계에 의해 전개되는 줄거리의 형성을 방해하게 되고, 더 나아가 플롯 자체를 해체시켜 버린다. 해체된 플롯 속에서 결국 인물들의 말과 행동들은 단순히 소리와 몸짓으로만 남게 되고, 어떠한 의미도 지닐 수 없게 된다. 즉,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무의미한 대사와 행동들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 극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반복은 바로 ‘사건의 반복’이다. 2막으로 이루어진 이 극은 환원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 거울 형식으로 구성된 1막과 2막은 얼마간의 차이는 있지만 동일한 상황, 동일한 언어, 동일한 사건이 반복된다. 주인공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1막에서처럼 2막에서도 똑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며 의미 없는 대사와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고, 포조와 럭키를 만나고, 소년에 의해 고도가 오늘 오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러한 순환구조는 관객들에게 똑같은 사건이 무한히 반복될 것임을 암시하고, 사건이 결코 해결될 수 없을 것임을 인식하게 한다. 또한, 관객들은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헛되고 의미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 작가는 2막에서 1막의 사건이 똑같이 반복되는 환원적인 구조를 이용하여 등장인물들의 기다리는 행위에 대한 의미를 해체시킴으로써 삶의 목적과 판단의 기준을 상실해 버린 인간 삶의 부조리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