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신화의 변모-후삼국과 고려의 건국신화를 중심으로-과목 : 한국문학사이해담당교수 : 소인호 교수님학과 : 국어국문학과학번 : 17311031이름 : 신범수-목차-1.서론1.1. 건국신화2.본론2.1. 견훤과 궁예의 건국신화2.2. 왕건의 건국신화3.결론1.서론건국신화란? 나라의 창업 기원을 다룬 신화 즉 개국신화라고도 한다. 신화는 일반적으로 우주, 인간, 문명의 기원을 다룬다. 건국신화는 국가라는 형태의 문명 기원을 다룬다는 특성을 지니며, 신화의 발전 단계로 보면 여러 신화들 중에서 가장 나중에 나타난 신화의 형태라 할 수 있다.건국신화는 나라를 처음 세운 왕에 관한 신화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으므로 건국시조신화 또는 왕조시조신화라고도 할 수 있다. 고조선의 건국신화를 비롯하여 북부여와 신라·고구려 및 가락의 건국신화 등이 이에 해당한다.그 밖에 고려 왕조·후백제, 그리고 조선 왕조의 시조들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역사시대에 형성된 만큼 역사적 전설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이들을 건국전설이라고 이름 짓는다면 일반적인 의미에서 건국신화와는 한계를 그어 구분하여야 한다.건국신화가 동시에 건국시조신화이기도 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건국신화를 김알지(金閼智)·석탈해왕(昔脫解王) 및 신라 육촌장 이야기와 함께 씨족시조신화의 특수한 경우로 간주할 수도 있다. 아울러 한 집안이나 사찰·제도, 그 밖에 역사적 사적들의 창건과 유래를 말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통틀어 창립(창건)전승이라 부른다면, 건국신화는 이 창립전승의 하위 갈래로 간주하여도 좋다. 이러한 건국신화들의 그 형식이 시대를 거쳐 가면서 변해왔다. 필자는 후삼국의 건국신화와 고려의 건국신화를 비교하여 그 둘 사이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한다.2.1. 후삼국의 건국신화모든 것이 혼란하기만 한 듯한 시대일수록 바람직한 질서를 창조하는 역량이 요구되었다. 첫 단계의 반란세력은 이념이니 문화니 하는 것을 갖추지 못했으며 백성의 불만을 이용하기나 하고 바람직한 통치방식이 무엇인지 몰랐다. 견훤이나 궁예는 수 있고 자기 나름대로 민중영웅이었다. 미천한 처지에서 떨쳐 일어나 용맹을 떨친 행적을 기리는 이야기가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저절로 생긴 영웅담에다 의도적인 창작을 보태 힘을 과시하고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직전을 폈다. 일반 백성을 상대로 할 때는 설화가 최상의 선전방법이었다. 나라를 세우는 데까지 이르면 민중영웅의 전설을 건국신화로 발전시켜 건국의 유래와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다. 고대의 건국신화가 기억에 남아 있어서 신라의 정통성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에 대한 추억의 원천으로도 작용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과 대치될 수 있는 새로운 건국신화를 내놓아야 했다. 고대를 재현하는 듯한 싸움이 벌어져 건국신화가 문학사에 다시금 커다란 구실을 하게 했다.그러나 이미 신화시대는 아니었다. 신화적 질서를 내세운다 해도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건국의 주인공이 하늘과 통하는 신이한 인물이라고 꾸미기도 어려웠다. 민중영웅의 전설과 건국신화 사이의 중간적 성격을 가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후삼국을 세운 견훤이나 궁예, 그리고 고려를 세운 왕건의 선조들에 관한 전승이 모두 그런 특징을 지닌다. 통일을 위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쪽은 중세적 보편주의를 한층 수준 높게 이룩하는 것이 난국 타개의 적극적인 방안임을 알았다. 건국신화를 고대와는 다르게 마련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되지 않게 해야 했다.견훤(867∼936)에 관한 이야기는 신이담(神異譚) 중 변신담(變身譚)에 속하며, ‘야래자형설화(夜來者型說話)’라고도 한다.『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 제2후백제 견훤조에 전해지고 있으며, 비슷한 이야기가 『청구야담(靑丘野談)』 권1에 ‘괴물매야색명주(鬼物每夜索明珠)’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8세기 문헌이라고 하는 일본의 『고사기(古史記)』의 수진천황(崇神天皇)조에도 실려 있다. 전국 여러 지역에서 두루 구전되고 있는 설화이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밤마다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처녀의 방에 찾아와 동침하고 아침이 되면 사라지곤 남자의 옷에다 꽂아 놓으라고 딸에게 시켰다. 다음날 실을 따라 가 보았더니, 멀지 않은 곳에 바늘에 찔려 죽은 뱀이 있었다. 그 뒤 처녀가 낳은 아들이 비범하여 큰 인물이 되었다.이 설화는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서구의 것은 ‘큐핏-사이킷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의 삼륜산(三輪山) 전설은 우리나라 충청남도 연기군에서 구전되는 설화와 그 내용이 같으며, 두 곳의 지리적 상황도 일치하고 있어 흥미롭다. 그런데 일본 이야기에서는 태어난 아이가 나라를 세웠다고 한 반면, 연기군의 설화에서는 그 아이가 마을의 신으로 숭앙된다고 하였다.야래자의 정체가 각 편에 따라 다양한데, 절굿공이·동삼(童蔘)·수달피·용·지렁이 등으로 나타난다. 절굿공이인 경우에는 태어난 아들이 없으며, 수달피인 경우에는 머리가 노랗게 태어나서 ‘노랗지’라고 불린 아들이 청태조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하고, 용인 경우에는 아들이 중국의 천자가 되었다고 하였다. 지렁이인 경우에 태어난 아들이 바로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다. 또한, 자식이 출생하였다는 부분이 없기도 하고, 사람 대신 뱀이 여러 마리 나왔다는 변이형도 보인다.이 유형의 설화 가운데에서 야래자가 뱀의 변신이고, 그 아들이 마을의 신이 되었다는 충청남도 연기군의 설화가 가장 정통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백제 지역에서 마을 수호신의 신이한 탄생을 나타내 주던 이야기를 후백제가 그 전통을 잇느라고 견훤의 출생담으로 활용하여 건국신화로 발전시키려 하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외에도 세 가지 설화가 더 전해지지만 생략하도록 하겠다.궁예(?∼918)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사기』와 『고려사』 등 문헌 속에 풍성하게 남아 있다. 이 기록들에서 궁예의 행적을 종합하면, 재래의 탁월한 인물의 일생에 맞추어 설화적 구성을 해놓은 흔적이 발견된다. 그의 일대기는 고귀한 혈통-기아의 고난-비범한 면모-축출-위기 탈출-영웅적 위업 달성 등으로 요약되어, 일반적인 영웅의 일생과 유사하다. 고귀한 혈통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그가 신라 47대한 혈통의 정식 문법에 흔들림이 있고, 또 어머니가 왕의 빈어(嬪御)이고 외가에서 출생하였다고 하는 대립적인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출생 시의 비범한 면모가 풍부하고 다양하다. 흰 빛이 무지개처럼 하늘에 뻗었고, 중오일(重午日)에 태어났으며, 날 때부터 이빨이 모두 나 있었다고 한다. 외가에서 태어난 불리함을 벗어나서 장차 위대한 인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으며, 부왕을 죽인다고 하는 불길한 신탁 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된다. 강보에 싸인 궁예를 누각 아래로 떨어뜨린 흔적도 발견된다. 하지만 여종의 손에 길러져서 양길이라는 인물을 죽이고 마침내 왕이 되었다고 한다. 영웅의 일대기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자신을 미화하는 것이 지나쳐서 마침내 미륵불로 자처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 영웅의 면모를 보인다. 이 점은 위대한 승리를 거두는 다른 영웅의 일대기와는 다른 면모이다.궁예는 중세의 위기를 고대로 돌아가 해결하는 방안을 완벽하게 마련하려고 하다가 실패했다. 중세에 들어선 지 이미 오래되어 일반 백성들에게도 널리 자리 잡은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을 꺾지 못해 패배한 것이다. 그는 고대와 중세의 차이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려 주는 사례를 마련했다. 신화시대 이후의 신화가 정치적인 목적과 부딪히게 되는 한계도 잘 보여주었다.2.2고려의 건국신화고려의 건국신화. 태조왕건(王建)의 6대에 걸친 선조들의 내력을 다룬 것으로 왕건의 6대조 호경(虎景), 5대조 강충(康忠), 4대조 보육(寶育), 3대조 진의(辰義), 할아버지 작제건(作帝建), 아버지 용건(龍建)을 각기 주인공으로 삼은 여섯 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고려사》고려세계(高麗世系)에 전하는데, 거기서 12세기 말의 인물인 김관의(金寬毅)가 지은 《편년통록》이 자료의 출처라고 밝혔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도 단편적인 기록이 수록되어 있으나, 그 이야기들도 《편년통록》을 전거로 삼았으며, 내용도 축약되어 있다.6대조 호경은 스스로들어 살림을 차리고 살았다. 활을 잘 쏘았는데, 하루는 사냥하러 갔다가 날이 저물어 바위굴에서 밤을 새우게 되었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 동행했던 열 사람이 관을 던져 호랑이가 무는 관의 임자가 호랑이에게 내주기로 했다. 호랑이가 호경의 관을 물어 호경이 굴에서 나오자, 바위굴이 무너져 그 속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고 호랑이는 그냥 사라졌다. 죽은 사람들을 장사 지내면서 산신에게 제사를 올리는데. 산신이 나타나 자기는 과부이니 부부가 되어 함께 신정(神政)을 펴자고 하고는 호경과 함께 숨어버렸다. 그 고장사람들이 호경을 대왕이라 하면서 산신과 함께 받들었다. 호경이 예전 아내를 찾아가 관계를 맺어 강충을 낳았다. 5대조 강충은 후손 중에 삼한을 통합할 인물을 낳으리라는 풍수장이의 말에 따라 송악(松嶽)에 소나무를 심었다. 4대조 보육은 지리산에서 도를 닦았는데, 하루는 오줌을 누었더니 삼한이 온통 바다로 되는 꿈을 꾸었다. 이 꿈 이야기를 들은 보육의 형이 자신의 딸인 덕주(德周)를 아내로 삼게 했는데, 그 사이에 두 딸이 출생했다. 큰딸이 산에 올라가 오줌을 누니 천하가 잠기는 꿈을 꾸었는데, 작은딸 진의가 그 꿈을 샀다. 진의는 바다 건너온 당나라의 숙종(肅宗)인가 하는 귀인과 동침하여 작제건을 낳았다. 2대조 작제건은 활을 잘 쏘았다. 16세가 되어 아버지를 찾아 중국으로 가는데, 어느 곳에 이르자 배가 나아가지 않았다. 뱃사람들이 점을 치더니 고려 사람을 내리게 해야 한다고 해서 작제건이 바다에 남게 되었다. 그때 서해용왕이 늙은이의 모습으로 나타나, 부처로 변신해 괴롭히는 여우를 물리쳐 달라고 했다. 활을 쏘아 그 여우를 퇴치한 보답으로 여러 가지 보물을 얻고, 용녀를 아내로 맞게 되었다. 용궁에서 얻어온 돼지를 따라가 집터를 잡고 살다가, 아내가 용궁으로 가는 장면을 엿보아서 아내는 용이 되어 영영 가버리고 말았다. 작제건과 용녀는 아들 넷을 낳았는데, 그 가운데 장남인 용건은 꿈에서 배필이 되기로 약속했던 미인을 길을 가다가 만나서 드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