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이타닉’을 보고타이타닉호 침몰 사고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해양교통사고로 기억되고 있다. 영화 은 이 역사적 사건에 약간의 허구를 가미하여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승화시켰다.1912년 4월 15일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던 타이타닉호는 ‘신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 라고 불리던 여객선이었으나, 1514명의 승객과 함께 침몰하게 된다. 침몰 이후 타이타닉호는 오랜 시간 동안 대서양 바닥에 잠들어있었다. 그리고 1985년 마침내 내셔널지오그래픽의 해양탐험가인 밥 발라드에 의해 그 실체가 드라났다. 다만, 실제 상황과 영화 ‘타이타닉’은 그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영화 ‘타이타닉’은 보물 사냥꾼이 잠수함을 타고 타이타닉호의 보물을 찾다가 우연히 한 장의 누드 크로키를 발견한다는 설정이다. 그는 그림의 실제 모델을 찾아가 타이타닉호에서 벌어졌던 옛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렇게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타이타닉호 침몰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자연스럽게 조합하여 한 편의 멋진 러브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누드 크로키의 주인공은 타이타닉호의 생존자인 로즈 부인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강요로 권위적인 재벌 귀족 약혼자와 함께 미국으로 향하는 타이타닉호 1등실에 승선한다. 같은 시간, 부두의 선술집에서 도박으로 타이타닉호 3등실 티켓을 얻은 가난한 화가 잭도 배에 오른다. 항해 도중 잭은 갑판에서 바다로 몸을 던지려 하는 로즈를 발견하고 그녀의 생명을 구한다. 이후 두 사람은 신분을 뛰어 넘어 서로를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 타이타닉호는 침몰하게 되고 잭은 로즈를 구하면서 목숨을 잃는다. 비록 잭은 죽었지만 살아남은 로즈는 그의 사랑을 평생 간직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타이타닉은 3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으로 인해 배가 가라앉기 전에도, 그리고 배가 가라앉으면서도 잭과 로즈의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낸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회상 구조로 전개되는데, 이제는 백발 할머니가 된 로즈가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을 고인다는 설정이 영화의 애틋함을 더욱 더 부각시키는 것 같았다. 또한 마지막 장면 중 하인과 함께 시가를 물며 품위 있는 자태를 취하던 한 노년귀족, 물이 들어오는 방 침대에 함께 누워있는 부부, 미처 나가지 못한 잠든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슬픈 어머니의 모습들이 상당히 대조적이어서 더 비극성이 부각되는 것 같았다. 또한 1등석 사람들 중 마가렛이 사람들을 구하러 가자고 할 때 매몰차게 거절했던 담당선원과 귀족아녀자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선 돈과 아이까지 이용하는 비겁한 칼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생존에 대한 욕구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 중 하나는 CG효과였다. 그러나 1998년에 개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몇가지가 있다. 바로 로즈의 객실에서 잭이 보석 목걸이를 건 로즈를 그려주는 장면과 로즈가 구명보트를 타고 내려가다가 다시 타이타닉으로 뛰어들어 잭에게 달려가는 장면, 그리고 로즈가 물에서 죽은 잭에게 약속대로 끝까지 살아남겠다고 한 후에 근처에 있는 시체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부는 장면이다. 둘 사이의 사랑이 애틋하고 가슴 아프게 잘 표현된 장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관상’을 보고영화 ‘관상’ 의 줄거리는 이렇다. 역적의 집안에서 먹고 살 방법을 위해 관상을 공부한 김내경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용한 관상쟁이다. 그는 처남인 팽헌과 다리를 저는 아들 진형과 함께 바닷가 외딴 곳에서 산다. 어느날 한양의 유명한 기생 연홍이 그에게 찾아와 자신의 기방에서 같이 일을 하자고 제의한다. 고민하던 팽헌과 내경은 아들을 놔두고 한양에 가기로 한다. 그들이 한양에 가기로 한 날 내경의 아들 진형은 벼슬을 하기 위해 떠난다는 편지를 남기고 가출한다. 한양으로 간 내경과 팽헌은 연홍에게 속아 기방에서 거의 헐값에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연히 김종서와 수하 조상용을 위해 관상으로 범인을 잡아 주게 되고 노예 신세에서 벗어난다. 하필 김내경이 잡은 범인이 수양대군의 사람이어서 내경과 팽헌은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김종서와 수하들이 그들을 구해준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내경은 김종서 대감을 만나 그를 위해 일을 하게 된다. 한편 병약한 왕 무종은 소문을 듣고 김내경에게 은밀히 수양대군과 그 무리들이 정말 역모를 일으킬지 알아보라 전한다. 하지만 눈치 빠른 수양대군 측의 대처로 내경은 가짜 수양대군의 얼굴을 바탕으로 한 문종에게 의견을 말하고, 문종은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은 채 죽음을 맞는다. 한편 진형은 거짓된 신분으로 과거를 보고 장원급제하여 벼슬을 얻는다. 그런 아들을 보며 내경은 그가 벼슬에 오르면 큰 화를 입을 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응원한다. 왕의 장례가 치러지고, 수양대군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그의 관상을 보며 내경은 그가 역모를 일으킬 것이고 김종서가 결국 질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하지만 내경은 아들 앞에서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모를 막으려 한다.내경은 단종이 역모를 일으킬 관상에 대해 책을 읽었다는 것을 알고, 연홍과 함께 의원으로 위장해 수양대군의 이마에 점을 찍는다. 하지만 한명회의 수하들이 진형이 내경의 아들임을 알고, 진형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며 자신이 김종서의 수하라고 말한다. 오해가 생긴 팽헌은 수양대군에게 사실을 말하고, 수양대군은 결국 역모를 일으킨다.영화를 보면서 아쉬웠던 점이 많은데, 영화 초반에서는 내경과 팽헌 역을 맡은 송강호와 조정석이 코믹 연기를 보여주며 많은 웃음을 선사해주지만 두 사람이 정치에 발을 디딘 순간 영화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이러한 초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 차이가 너무나 심해서 같은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라는 이질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또한 영화 ‘광해’처럼 ‘관상’ 은 누구나 다 알 법한 역사적 사건인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영화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은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켰다. 그리고 연홍의 한복과, 기생집에서 보여주는 내경과 팽헌의 춤사위가 모두 지나치게 현대적이라는 점 역시 아쉬웠다. 픽션 영화라고 하지만 엄연히 역사 사극에 해당하는 영화이고, 굳이 춤사위와 복장이 현대적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멋을 살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조금 더 철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관상’을 보면서 영화의 결말부분에 언급되는 ‘파도와 바람’ 으로 비유되는 인생에 대한 운명론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신분제가 사라지고 민주주의 아래 놓인 현대 사회인인 우리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영화의 배경인 조선시대 당시에는 아직까지 신분제가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다. 따라서 영화 ‘관상’ 은 결말이 운명론으로 마무리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운명론의 메시지가 좌절이 아닌 ‘수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감동을 받았다. 단순히 개인의 노력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운명이 있으니 인생을 비관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나의 인생에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수용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소개-저자 윌리엄 유리30년간 협상의 최전선을 누빈 저자가 전 세계의 기업, 정부, 그리고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협상가 및 중재자로 오래 일한 경험과 성공한 협상가들을 관찰해서 얻어낸 결과물이다.협상과 관련된 유용한 테크닉을 소개한 책으로, 까다로운 상대와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는 5단계 협상 전략이 수록되어 있다. 합의를 가로막는 장벽협상이 난관에 부딪히면 본능적 감정과는 반대로 행동해야 한다. 상대의 방식에 끌려가는 대신 당신의 방식으로 상대를 끌어들이는 것, 바로 공동문제 해결방식으로 게임 자체를 바꾸는 것으로 입장을 고수하기보다는 상대가 해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코카콜라는 어떻게 산타에게 빨간 옷을 입혔는가 ?코카콜라의 바이럴 마케팅 코카콜라의 원재료 코카콜라가 산타 옷을 입게 된 계기 코카콜라 병의 디자인 역사 코카콜라 마케팅 성공 사례 코카콜라 마케팅 실폐 사례COKE PICTURESCOKE HISTORY 코카 콜라 (Coca-Cola ) 는 미국의 탄산음료 브랜드로 , 제품인 코카 - 콜라 음료는 코카나뭇잎과 콜라열매로 만들어졌다 . 1886 년 약제사였던 존 펨버튼 박사는 코카잎 추출물 , 콜라나무 열매 그리고 시럽 등을 혼합하여 두뇌강장제를 개발했다 . 존 펨버튼 박사는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야콥 약국에 이 음료를 납품하기 시작했고 , 당시 약국의 경리사원이었던 프랭크 로빈슨은 두 개의 ‘ C’ 자를 매치해 ‘ 코카 - 콜라 (Coca-Cola)’ 라고 이름 붙였다 . 이후 코카콜라는 사업가인 아사 캔들러가 대중화를 시켰는데 , 코카콜라는 오늘날 미국 문화의 상징이자 탄산음료의 대명사가 되었다 .COKE HISTORY 야콥 약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코카콜라는 대개의 리딩 브랜드가 그러하듯 경쟁업체의 모방 제품으로 골치를 앓았다 . 초기의 평범한 병 모양으로는 변별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병을 도입하게 되었는데 이를 디자인한 사람이 바로 알렉산더 사무엘슨 이다 . 당시 유리직공이었던 사무엘슨은 백과사전에 실린 코코아 콩 꼬투리 삽화에서 영감을 얻어 병의 기본 형태를 만들었다 . 세로로 긴 홈을 새겨 병이 깨지거나 어두운 상황에서도 눈에 잘 띠도록 디자인했다 . 수직 홈이 연출하는 리듬감을 따라 병체의 중앙이 불거진 독특한 형태는 나중에 코카콜라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 코카콜라 병은 브랜드 인지도 연구에서 본질적인 주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의 주제와 수집가들의 소장 품목 반열에까지 올랐다 .코카콜라 마케팅 no.1코카콜라 마케팅 no.2코카콜라 마케팅 no.3코카콜라 마케팅의 대표적 실패 사례 1985 년도 봄 . 코카콜라에서 99 년 고수한 기존의 코카콜라 가 아닌 달고 부드러운 콜라 “New coka ” 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대대적인 광고와 홍보를 시작했다 . 하지만 수많은 미국소비자들의 불평과 항의가 잇따라 일어났고 화가 난 미국 소비자들은 수많은 항의 전화와 편지를 보내고 집단 소송까지 이르렀다 . 결국 낮은 판매 시적과 이러한 항의로 인해 “New coak ” 는 사라졌고 다시 코카콜라로 판매하게 되었다 .코카콜라 마케팅의 대표적 성공 사례 4 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 월드컵과 같은 몇년 만에 찾아 오는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를 코카콜라는 결코 놓치지 않는다 . 본사가 있는 애틀란타에서 개최된 1996 년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부터 코카콜라는 이벤트 , 캠페인 , 스폰서 , 미디어 프로그램 , 기념관 설립 등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했다 . 1996 년 때 소비자들은 코카콜라 = 올림픽이라고 생각할정도로 코카콜라의 마케팅 영향력은 대단 했다 .1996 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의 상황은 어려웠다고 한다 . 다른 스폰서들 보다 더욱 돋보이기 위해 방법을 고안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돈을 내는 공식 스폰서가 되지 않고도 이벤트의 효과를 이용하려는 게릴라 기업들과도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 이에 코카콜라는 세가지 전략을 썼는대 바로 스폰서 전략 , 체험 마케팅 전략 ,Coca cola olypic salture folk art( 민족 예술에 대한 존경 ) 이라고 한다 .감사합니 다{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