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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카이투스 독서보고서
    카이투스 독서보고서
    『카이투스』카이투스 독서보고서■들어가는 말“이 책은 어려운 책이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내뱉는 첫 마디이다. 책에 딱히 어려운 표현이 쓰인 것도, 전문적인 단어가 사용된 것도 아니지만, 나에게 이 책은 저자의 언급처럼 ‘어려운 책’으로 읽혔다.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은, ‘카이투스’라는 어린이의 중심으로 전개되며, 등장하는 어린아이의 표현들은 성인인 나에게는 다소 난해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의 언어로 표현되었기에, 텍스트에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텍스트 뒤에 감춰진 1900년대 초반의 폴란드의 역사와 비교하며 어떤 장치들이 책에 숨겨져 있을지를 찾아보면서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카이투스를 통해 바라본 폴란드책을 읽으면서 나는 두 가지 흐름에 주목했다. 첫 번째는, ‘카이투스’의 마법사 판타지로 바라본 제2차 세계대전이다. 대개 여러 시대 속 ‘고통과 억압’의 역사에서 탄생한 문학작품은, 추상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해 본래 저자의 목적을 글 뒤편으로 감추는 문학적 형태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 일제강점기 고통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 탄생한 다양한 문학작품이 유대인의 역사와 유비적인 측면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겉으로 보기엔 가벼워 보이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마치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읽는 것처럼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카이투스의 마법과 시선이 맞닿아 있는 곳에서 나는 다양한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야기에서 카이투스의 고향은 ‘바르샤바’로 나온다. 바르샤바는 제2차 세계대전 시 소련과 독일 분쟁의 장소, 그리고 많은 전쟁 난민이 거주했으며, 많은 전쟁고아가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곳의 어린이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은, 야누쉬 코르착이 ‘카이투스’를 통해 고통과 억압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임을 알 수 있다.그 외에도 다양한 세부적인 역사적 상황들이 등장한다. 이야기 중 을 연기하는 카이투스의 이야기, 그리고 실제 카이투스를 입양하기를 원했던 한 뉴욕의 부자 이야기를 통해, 실제 그 당시 유럽의 많은 전쟁고아가 미국으로 입양을 갔던 사건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또한 코르착은 열차 탈선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나치 정권이 피해 규모를 축소해서 보고하여 사고로 인해 죽은 피해자들의 신원과 시신을 은폐하여 의혹을 샀던 “겐틴 철도 참사”의 사건을 “필립스 탐정의 죽음” 이야기로 바꿔, 역사에서 잊혀 죽어간 피해자들을 카이투스를 통해 애도하는 듯한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그 외에도 책을 읽다보면, 카이투스를 통해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카이투스의 이 마법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유대인으로 묘사되는 조슈아의 아버지는 어떤 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와 같은 질문들이 말이다. 카이투스의 마법 이야기를 통해, 당시 시대에 궁금증을 가지고 찾아보며 질문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또한 9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카이투스는 자기 시대와 세계를 향해 외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어린이의 다섯 가지 중대한 질문과 ‘카이투스’두 번째는, 『어린이의 다섯 가지 중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바라본 ‘카이투스’이다. 코르착의 인생에서 ‘어린이’와 ‘교육’을 빼놓을 수 없어서인지, 이 책의 카이투스의 이야기는 이번 학기 교재, 『어린이의 다섯 가지 중대한 질문』의 중요 내용들을 관통한다.책의 내용에는 다양한 소재들이 등장한다. “마법사 판타지”, “할머니의 죽음”, “부모의 생각이 곧 어린이의 생각이 아니라는 점”, “어린이의 질문에 ‘모름’을 인정한 조슈아의 태도” 등등의 카이투스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혹은 대화를 통해서 나타나는, 본 수업의 주된 내용과 소재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 소재들 중에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주목했던 인물은 ‘선생님’이다. 이야기에서 선생님의 등장 비율을 그렇게 크지 않다. 하지만,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 ‘선생님’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므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맺는다. 본 이야기의 주된 줄거리인 ‘마법사 카이투스’의 시작도 카이투스가 선생님과 교실에서 나눈 대화를 기점으로 출발하게 된다. 카이투스는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열광했고, 마법사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된 것이 이 출발의 이야기이다.이야기의 끝은, 선생님께 쓰는 편지로 이야기가 종결된다. 편지에 나타난 감사 인사와, 카이투스에게 있어서 중요한 순간이었던 처음과 끝에 선생님이 등장했다는 점을 통해 교육과 교육자, 교육자의 태도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카이투스의 편지 이전에 ‘강아지가 된 카이투스’와 식사를 하는 선생님의 독백을 통해 독자들에게 교육자가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에 대해 알려주는 이야기도 이에 해당한다.■나가는 말나는 이 『카이투스』 의 주제가 비단 한 가지 주제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서 밝힌바 누군가에게는 시대에 대한 저항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교육적인 측면의 이야기로, 아니면 단순한 소설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기에 우리에게 한 가지 이야기만을 전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교수님께서 책을 읽을 때 꼭 밑줄을 그으며 자기가 밑줄 친 부분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서 내가 밑줄 친 부분을 소개하며 독서보고서를 마치려 한다.책의 마지막 장, 카이투스가 부모님께 그리고 선생님께 쓴 두 개의 편지의 내용 중 유일하게 똑같이 겹치는 한 문장이 있었다.목표점까지 가는데 모두가 반듯하고 안전한 길로 가는 것은 아니다.『카이투스』■들어가는 말
    독후감/창작| 2023.12.12| 2페이지| 2,000원| 조회(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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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마가복음 3장 1-6절 주석 (A)
    마가복음 3장 1-6절 주석 (A)
    마가복음 3장 1-6절 주석.hwp1마가복음 3장 1절-6절 주석1. 본문 번역1 Κα? ε?σ?λθεν π?λιν ε?? °τ?ν συναγωγ?ν. κα? ?ν ?κε? ?νθρωπο? ?ξηραμμ?νην ?χων τ?ν χε?ρα.그리고 / 예수께서-들어가시니 / 다시 / 에 / 그 / 회당 / 그리고 / 있는지라 / 거기 / 사람이 / 마른 / 가진 / 한편 / 손2 κα? παρετ?ρουν α?τ?ν ε? ?το?? σ?ββασιν ?θεραπε?σει α?τ?ν, ?να κατηγορ?σωσιν α?το?.그리고 / 사람들이-엿보거늘 / 예수를 / 는가 / 이 / 안식일에 / 고치시 / 그 사람을 / 하여 / 송사하려 / 예수를3 κα? λ?γει τ? ?νθρ?π? τ? τ?ν ξηρ?ν χε?ρα ?χοντι · ?γειρε ? ε?? τ? μ?σον.그리고 / 예수께서-이르시되-하시고 / 그 / 사람에게 / 곧 / 그 / 마른 / 손 / 가진 / 일어서라 / 에 / 그 / 한 가운데4 κα? λ?γει α?το??· ?ξεστιν το?? σ?ββασιν ?γαθ?ν ποι?σαι ? κακοποι?σαι, ψυχ?ν σ?σαι ? ??ποκτε?ναι? ο? δ? ?σι?πων.그리고 / 이르시되-하시니 / 저희에게 / 어느 것이 옳으냐 / 이 / 안식일에 / 선을 / 행하는 것 / 과 / 악을 행하는 것 / 생명을 / 구하는 것 / 과 / 죽이는 것 / 저희가 / 그랬더니 / 잠잠하거늘5 κα? περιβλεψ?μενο? α?το?? μετ’ ?ργ??, °συλλυπο?μενο? ?π? τ? ?πωρ?σει τ?? καρδ?α? α?τ?ν λ?γει τ? ?νθρ?π?· ?κτεινον τ?ν χε?ρα ?. κα? ?ξ?τεινεν κα? ?πεκατεστ?θη ? χε?ρ α?το?.그리고 / 둘러보시고 / 저희를 / 으로 / 노하심 / 근심하사 / 을 / 그 / 완악함 / 그 / 마음의 / 저희 / 이르시되-하시니 / 그 / 사람οι ε?θ?? μετ? τ?ν ?ρ?διαν?ν συμβο?λιον ??δ?δουν κατ’ α?το? ?πω? α?τ?ν ?πολ?σωσιν.그리하여 / 나가서 / 그 / 바리새인들이 / 곧 / 과 함께 / 그 / 헤롯당 / 의논 / 하니라 / 대하여 / 그에 / 어떻게 하여 / 예수를 / 죽일꼬2. 본문 비평성서를 번역하기 위해서는 본문비평의 단계를 첫째로 요구한다. 원래의 본문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다양한 사본들을 비교하고, 서로 다른 읽기들을 파악하여, 다양한 이문들 중에 원래의 읽기를 선택해야 한다.1절°τ?ν : 비평 장치에 제시된 사본들에서 이 단어가 탈락 되었음을 의미한다. 정관사 ‘그’가 빠지므로 ‘그 회당’에서 ‘회당’이라는 해석이 본문과 사본에서 존재한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말한다. 이 기록을 토대로 예수님께서 이전에 들어가셨던 회당을 ‘다시’ 들어갔다는 측면에서 ‘그 회당’이라는 표현이 선택되었다고 생각된다.2절? : εν(~에,~위에, in)이라는 단어가 비평 장치에 제시된 사본들에서는 이 비평 기호가 있는 부분에 삽입되어있다. 그래서 일부 사본에서는 ‘이 안식일’을 ‘이 안식일에’로 꾸며주기 위한 전치사로 사용되었음을 것이다.?θεραπε?σει : ‘θεραπε?σει’라는 단어가, 비평 장치에 제시된 사본들에서는 ‘θεραπε?ει’로 사용되었다. 원문에서는 미래 직설 3인칭 단수로 쓰였으나, 사본들에서는 현재 직설 3인칭 단수로 쓰였다는 차이를 보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현재와 미래의 구분으로 해석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본문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본다는 본문이다. 이 사람들이 엿본다는 시점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미래형으로 쓰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된다.3절τ?ν ξηρ?ν χε?ρα ?χοντι : 안에 들어간 낱말들이 비평 장치에 제시된 사본들에서 다른 낱말들로 대체되거나, 어순이 변경된 경우들이 존재한다. 변경된 낱말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 και(그리고) στηθι(서다, 정지시키다, 일으키다, 세우다)이라는 단어들이 비평장치에 제시된 사본들에서는 이 비평기호가 있는 부분에 삽입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일부 사본에서는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말씀하신 것 뿐만 아니라, 직접 손 마른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는 해석으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왜 본문의 형태로 선택되었는지에 대한 필자의 추측은, 실제로 안식일이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이며, 4절의 말씀으로 회중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기 전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4절 말씀 이전에 손 마른 사람을 직접 일으켜 세우는, 일하는 모습을 먼저 보이는 것이 유대인의 반심을 만들어 냈을 거라고 생각된다.4절?γαθ?ν ποι?σαι : 사본에서 대체된 낱말들은 다음과 같다. ?γαθοποι?σαι, ?γαθ?ν ποι?σαι으로 각각 도움이 되는 것, 선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ποκτε?ναι : ?ποκτε?ναι 라는 단어가, 다른 사본들에서는 ‘?π?λεσαι’로 쓰이는 차이를 보인다.5절°συλλυπο?μενο? : ‘근심하사’라는 단어의 탈락으로, ‘저희 마음의 완악함으로 노하심으로~’ 번역된 사본이 존재한다.?πωρ?σει : ‘완악함’이라는 단어가 일부 다른 사본에서는 ‘고요하다, 잠잠케 하다, 조용하다’라는 뜻인 ‘νεκρ?σει’가 쓰였다.? : σου(너, 너희) 가 생략되었다. 앞의 단어 χε?ρα를 ‘네 손’이라고 꾸며주기 위해 사본에서 사용되어져 보인다.6절??δ?δουν : ?δ?δουν(~하니라)라는 단어가, 일부 사본에서는 ‘만들다.’라는 ποι?ω 원형의 변형으로 각각 ?πο?ησαν, ?πο?ουν, ?πο?ουντο, ποιουντε? 이 4가지가 사용되어 의논을 만들다 라는 의미로 번역될 수 있겠다.3. 본문은 앞, 뒤와 이어지는가?본문의 가장 첫 시작은 접속사 ‘Κα?’로 시작된다. ‘그리고’ 라는 이 접속사가 손 마른 자 치유 이야기의 가장 처음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본 단있기에 분명한 별개의 사건이다. 또한, 회당에서의 안식일은 밀밭의 안식일과는 다른 날이다.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마가복음 3장과 평행본문인 누가복음 6장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장소도 다르고 시간도 다른 마가복음 2장과 3장의 내용이 어째서 이어지는 형태로 기록되어 있을까? 필자의 생각은 두 본문이 ‘공통된 주제’를 담고 있기에 이어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둘 다 안식일에 일하는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유대인에게 전하고 있다는 측면, 즉 안식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주제적인 측면에서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마가복음 2장 후반부와 마가복음 3장 초반절이 안식일 논쟁 기사의 연속으로 서로 이어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본문의 후반절인 7절부터는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장면으로, ‘Κα?’가 대문자로 기록되어 별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다른 주제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7절에선 ‘Κα?’가 and가 아닌 but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1~6절 내용과는 끊어지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4. 본문의 이야기·줄거리마가복음 3장 1-6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곳에는 한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다. 병자와 약자들을 치유 사역을 하며 다니던 예수가 안식일에도 과연, 일을 할 것인가 사람들은 예수를 주목했다. 예수님께서는 한 손이 마른 사람에게 일어나서 보는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서라고 말씀하셨다. 손 마른 사람이 서자,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그리고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옳은 것이냐?” 사람들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들의 완악함에 분노하시고 그들을 쭉 둘러보셨다. 그리고 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내밀었고, 그의 손이 새 손이 되었다. 이후 바리새인들은 회당을 빠져나와 헤롯의 당원들과 함께 어떻게 예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다시’는 직접적인 반복보다는, 2장의 안식일에 대한 예수의 입장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마가가 붙은 연결구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손 마른 사람’에서 사용된 마른으로 번역된 ?ξηραμμ?νην는 시들게하다 라는 뜻의 ξηρα?νω의 완료 수동태 분사형이다. 이것은 ‘시들게 된, 마르게 된’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본문의 손 마른 사람의 장애는 선천적이라기 보단 후천적으로 얻어진 장애라는 것을 묘사한다. 평행본분인 누가복음 6장 6절에서는 이 사람의 마른 손이 ‘오른손’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주로 사용되는 손이고 힘의 상징인 이 오른손이 마른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 사람의 처지를 더욱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2절(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이 본문에서 예수를 고발하려 하고,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기록하고 있지 않다. 사건이 종결된 후 6절에서 “바리새인들이 나가서~”를 통해 예수를 고발하고 주시하려는 이들이 바리새인이라고 알 수 있다. 평행본문인 누가복음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본문의 ‘파레테룬’은 ‘파라테레오(παρατηρ?ω)’가 원형이다. 이 단어는 곁에서+주시하다 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두 단어가 합쳐져서 결과적으로 ‘몰래 살피다’, ‘보초를 세워 지키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단어의 사용은 바리새인들이 우연히 예수가 손 마른 사람을 고치는 사건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이어진다. 이전에 밀밭에서 안식일에 관한 예수와의 논쟁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예수를 정죄하기 위해서, 그를 함정에 빠트릴 증거를 잡기 위해서 예수를 주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회당’이라고 하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예수를 율법을 어긴 자로 고소하기 위해 바리새인들이 파 놓은 함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3절(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γειρε ? ε?? τ? μ?σον. 장소의 이동을 나타내.
    인문/어학| 2023.07.14| 5페이지| 2,000원| 조회(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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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보고서] 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 (A)
    (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서론: 성서 주석 방법론 수업과 연관성을 중심으로이 글을 쓰는 필자는 ‘신학’을 전공한다. 필자가 배우는 신학은 성서학, 실천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등등 신학 안에 다양하고도 깊은 신학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개 일반적인 사회인에게 신학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다수의 대답은 신학은 “하나님을 공부하고, 성서를 공부하는 학문” 정도로 이해하고 대답할 것이라고 예상한다.실제로 이번 학기 필자가 수강하고 있는 ‘성서 주석 방법론’ 수업의 목적은 성서의 연구와 이해를 통해 성서에 존재하는 텍스트들을 이해하고, 글을 통해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내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성서의 상황을 이해하고, 텍스트를 해석하며 나아가 우리의 기대와 전제를 거친 재해석의 과정을 지나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가진다. 필자는 성서 주석 방법론을 성서의 깊은 해석과 이해를 통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 역사에 대한 이해로 정의한다. 이런 필자의 생각은 성서 주석 방법론이 앞서 소개한 신학에 대한 일반인의 대답을 충족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필자는 현재, 4주 차 수업까지를 수강한 상태이다. 필자는 그동안 신약성서 해석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 텍스트의 전승과 비평 과정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 신약성서를 구성하는 다양한 문학적 형식들에 대한 배움들이 있었다. 그중에 오늘 필자가 읽은 이 ‘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는 텍스트의 전승 과정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각각 사본들의 외적인 형태로 구분하여 목차를 구성하고, 세부적인 설명과 사진 자료, 그리고 성서 본문들의 비교를 통해 필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었다. ‘수업’은 시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개괄적으로 소개하고 넘어갔던 부분들을 책에서는 심층적으로 파헤치며, 사본과 오늘날 성서의 비교, 사본들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져 왔는지와 같은 세세한 이야기들이 존재했다. 이로써 필자는 책을 통해 수업 내용 깊숙하게 존재하는 새로운 배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본론: 배움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사본과 전승: 무엇이며 왜 알아야 하는가?오늘날 우리들의 손에 들려진 신약성서의 전승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우리가 보아야 할 사본들의 종류는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이 4가지는 각각 파피루스, 소문자, 대문자, 성구집의 카테고리로 분류된다. 파피루스, 소문자, 대문자 사본은 성서 속 이야기를 연속하여 기술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성구집은 오늘날의 말씀묵상집과 같이, 예상 독자들이 읽어야 할 묵상의 말씀들이 저자의 의도에 따라 기재된 것을 말한다. 각 사본을 다음과 같이 나누는 기준은 사본의 형태에 따라 분류한다.이 나눔의 기준은, 성서가 어디에(파피루스, 양피지와 같은 재질에 관한 기준) 쓰였는가?, 필사된 문자가 대문자인가, 소문자인가?, 사본의 본문이 연속적인가?에 관한 외적, 내적인 형태들을 기준으로 사본을 분류할 수 있다. 또한 각 시대에서 기록을 어디에 하였는가, 어떤 문자적 형태를 사용하여 기록하였는가에 대한 기록물 역사에 대한 이해를 통해 사본들의 순서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기준과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여 일반적으로 사본의 순서는 파피루스, 대문자, 소문자 사본의 순서를 따른다.이렇게 전승된 여러 사본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 중에 ‘이문‘이 존재한다. 저자가 의도하거나, 저자의 실수로 생겨난 이문들은 우리가 이해하고 찾아내고자 하는 ‘원문’ 텍스트와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문들을 연구하는 이유는, 다양한 이문들의 발생을 통해 성서를 보고, 종합하고, 이해함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원문 즉, 오리진인가에 대한 탐구와 판단을 하여 더욱 원문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시대 전승 속에서 나타나는 이문의 변개를 탐구하는 목적이 이문 연구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파피루스 사본: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람들의 관심본 도서를 읽으며, 파피루스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얻고, 필자가 이 책에서 주목하고 싶은 점은, 파피루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주목하고 싶다. 파피루스가 초기에 발굴될 당시에 사회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 이유는 이전에는 가지고 있지 않던, 3세기와 2세기의 사본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피루스는 당시 사회가 가지고 있던 가장 오래된 사본 중에 가장 오래된 사본보다 1~2세기 더 앞섰고, 예수님의 공생애에 더 가까운 시기의 사본을 얻을 수 있어서 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열된 파피루스에 대한 연구는 다소 식었는데, 그 이유는 출토된 파피루스 사본의 대부분이 훼손되고 소실되어 너무 단편이고 재구성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발견된 자료들을 통해서 성서를 재구성할 수 없었고, 파피루스에 대한 연구는 주춤하게 되었다.하지만, 후에 신약성서의 많은 부분을 담고 있는 파피루스가 발견되고, 단편인 파피루스들 간에 연결고리를 찾게 되고, 몇 글자 안되는 작은 단편들을 통해서 신약성서를 재구성할 수 있는 연구 방안에 대한 모색과 가능성이 대두되자, 파피루스 사본은 다시금 조명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끊임없는 연구 끝에 파피루스는 신약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대문자 사본: 시내사본의 중요성을 중심으로필사 용지로 파피루스를 사용하던 시대를 지나 4세기 경 기독교는 성서를 양피지에 필사를 하게 되었다. 왜 양피지를 선택하였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들이 존재한다. 양피지는 가죽이기에, 종이보다 훼손에 있어서 내구성이 좋다. 두꺼운 가죽 재질이기 때문에, 필사된 내용을 지우고 재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기독교의 권위가 상승했고, 성서 자체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비싸고 질 좋은 양피지에 성서를 필사했을 것이라는 이유도 포함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당시 예전용, 장식용으로 사용된 성서들을 살펴보면 그 주장에 대해 이해를 도울 수 있다.필자는 본 도서에서 소개된 시내, 바티칸, 에브라임 재생, 베자, 프리어 사본 중에 시내사본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이 시내사본에는 많은 양의 성서 사본이 들어있다. 구약과 신약이 들어있으며, 여러 외경을 포함하여 현재 우리가 접하는 신약성서 27권은 모두 들어있다. 시내사본이 이렇게 여러 성서가 묶여 있다는 점을 통해, 이전 파피루스 사본 시대에는 짧은 단편들의 성서들이 존재했으나, 시내사본이 필사된 4세기경에는 성서가 어느 정도 ‘정경’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성서가 정경화 되는 과정에서는 여러 문서의 중요성을 판단하고, 채택하고 탈락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 우리 손에 ‘성경’의 형태로 들려져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시내사본이 성서 정경화 되는 과정에 분명히 중요한 영향을 주었으며, 토대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시내사본은 일반적으로 성서가 어느 정도 정경화가 되었다고 알고 있는 4세기에도, 정경화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 시내사본에 들어있는 외경들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소문자 사본: “당신의 나이와 가치는 어떻게 됩니까?”기원후 8세기를 거쳐 ‘문자’는 점차 대문자의 형태에서 소문자의 형태로 바뀌었다. 이전에는 소문자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문자보다 물질과 시간적으로 더 경제적이고, 다양한 부호들을 통해 독자가 읽기도 편하고, 그 형태가 화려해서 독자들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장점들 때문에 대부분의 기록물은 소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다.그렇게 기록된 소문자 사본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초기 본문으로부터 시간적으로 대문자 사본보다 훨씬 먼 역사에 위치하고, 방대한 양 때문에 연구체계에도 어려움이 있는 소문자 사본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소문자 사본이 가치가 있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크게 두 가지를 설명한다. 첫째로, 엄격한 필사 과정을 거친 본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에, 초기 본문의 형태를 잘 유지해 전승할 수 있었다. 또한, 일부 사본에서는 고대 본문의 사본을 다시 필사한 것이 아니라, 고대 본문을 그대로 가져와 소문자 사본으로 전승한 사본들이 존재함을 저자는 밝힌다. 둘째로, 소문자 사본은 다른 사본들에 비해 사본들 사이에 관계가 있는 사본들이 많다. 연관된 사본을 비교함을 통해 이문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며, 무엇이 대본이 된 사본인지에 대한 연구도 가능하다. 그렇기에 소문자 사본은 소문자 사본끼리의 비교와 대조를 통해서 더 깊이 있는 연구로 이어지는 것이 가능하기에 가치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소문자 사본들을 대조함으로 얻어지는 연구 결과로 소문자 사본의 가치를 말하는 저자의 입장은, 그렇다면 어떤 사본이 더 오래된 것인가, 사본의 나이는 무엇을 보고 판단하냐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 글에서 저자는 ‘필체’를 통해 사본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각각 시대별로 사용되는 폰트의 느낌들이 달랐다는 것이다. 필체뿐 아니라, 사본의 외적인 요소들을 통해서도 연대가 측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양피지의 재질, 장식과 외부 형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로써 현재의 우리는 사본의 연대를 측정하고, 사본 간 비교를 통해서 더 깊은 차원의 성서 해석 연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독후감/창작| 2023.07.14| 5페이지| 2,000원| 조회(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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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예수와 세포리스 (A+)
    예수와 세포리스 (A+)
    예수와 세포리스8$F$F예수와 세포리스.hwpx■갈릴리의 중심 ‘세포리스’로마의 식민지였던 당시, 이스라엘을 헤롯 안티파스가 집권하던 시절, 그의 권력 과시와 로마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을 목적으로 지어진 도시 세포리스. 당시 갈릴리 지역에 큰 도시로, 건설 당시에 많은 인력이 요구되었으며 건설 이후 도시 유지를 위해 갈릴리 인근 다수의 촌락에서 물자를 받아서 유지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도시가 있었다. 많은 학자가 이 도시와 촌락 사이에 지배·피지배의 관계로 있었을 것이며, 도시를 향한 촌락의 일방적인 물자 공급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세포리스는 갈릴리 지방에서 큰 도시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을 고려했을 때 당시에 인근에 다른 곳에도 영향력을 끼치는 도시였을 것이라 추정된다. 일부 기록에서는, “세포리스에서는 올리브를 기름으로 가공해 시리아 도시에 있는 유대인에게 팔아 큰 이윤을 남겼다. 그들은 갈릴래아의 올리브 기름을 선호했다.”게르트 타이센, 『갈릴래아 사람의 그림자: 이야기로 본 예수와 그의 시대』, 비아, 2019, 152p는 내용을 바탕으로, 갈릴리 촌락에서 거둬들인 물자들로 인근에 큰 도시들을 대상으로 무역을 했을 거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었다. 이러한 큰 규모의 상업 시스템과 다른 큰 규모의 도시들과 무역을 했다는 세포리스의 모습이 어느 정도의 규모일지 대략 상상이 된다.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그가 대략 30세가 되기 이전의 시절의 대부분을 이 ‘갈릴리’에서 보냈을 것이다.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5~6km 떨어진 이 세포리스는, 목수의 아들인 예수와 아무런 연관이 없을까? 관련이 있다면, 왜 우리는 성서에서 세포리스에 대해 찾아볼 수 없을까? 의 질문으로 우리를 인도해 낸다.■예수와 세포리스: 성서와 역사적 관점으로먼저 필자는 예수가 세포리스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는 뵈젠의 주장에 동의한다. 예수와 세포리스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크게,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여러 추측과, 이를 기반으로 해석한 성서의 흔적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몇몇 학자들은 역사적 예수가 세포리스를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도시를 재건하는 작업에 참여했다고 주장한다. 그분의 말씀 중 ‘위선자(hypocrites)’라는 단어 선택이, 극장 내에서 ‘배우’라는 표현으로 당시에 사용되었는데, 예수가 이 단어를 세포리스에 있는 극장을 통해서 배웠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당시에 ‘목수’를 뜻하는 단어인 ‘τκτων’은 목수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기술자를 이르는 의미를 가졌다. 따라서 요셉과 예수님이 세포리스와 가까운 나사렛에 살았기에, 세포리스의 기술자로 일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하여 당시에, “갈릴리에 열심당의 반란으로 로마군은 세포리스로 들어가는 가로의 양쪽에 2천 개의 십자가를 세웠다.”김성일, [성경 속 비밀] 세포리스의 십자가, 국민일보, 2011. 08. 08, 1쪽, https://m.kmib.co.kr/view.asp?arcid=0005234470라는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기록을 통해서 당시 2천 개의 십자가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인근에 거주하는 목수들이 동원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예수가 세포리스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성서 속 등장하는 예수의 말을 통해서도 그가 헬레니즘 문화와 접촉하였음을 살펴볼 수 있다. 마태복음 25장과 누가복음 19장에 등장하는 ‘돈의 비유’를 통해, 빌린 돈에 대해 이자를 취하는 문화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유대 전통에서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금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예수의 이 발언은 그가 헬레니즘 문화권과 분명한 접촉이 있었을 것으로 저자는 보고 있다.또한 마태복음 5장과 누가복음 12장의 본문에서 등장하는 화해에 관한 예수의 비유를 속에서 그는, 법정에 관한 관례를 다소 잘 아는 것처럼 드러나고 있다. 저자는 기원전 1세기에 법정’은 예리고, 가다라, 아마트, 그리고 세포리스에 추가로 세워졌다고 소개한다. 그러기에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의 ‘감옥’의 언급은 법정 장소로 도시, 즉 세포리스를 상정하고 말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예수의 공생애 전 30년의 시간동안, 그가 나사렛에 거주하면서 그곳 사람들의 갈등과 싸움을 보며, 세포리스의 재판관에게 분쟁을 해결해 줄 목적으로 찾는 장면을 많이 목격했을 것이다.이러한 간접적인 근거들을 토대로 예수가 ‘세포리스’를 인식하고 있을 것에 대한 가능성이 다소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가 가버나움에서 활동했던 것처럼, 세포리스에서도 그의 사역이 있었는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세포리스라는 이름이 생소하게만 들린다. 그 이유는 복음서들이 세포리스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왜 성서는 세포리스를 언급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가?■복음서, 왜 세포리스에 대해 침묵하는가뵈젠은, 복음서가 세포리스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로 두 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째, 예수가 실제로 세포리스에서 활동하지 않았다. 둘째, 세포리스에서 그의 사역이 실패했기 때문에 침묵했다. 첫째 이유에 대한 근거로, 도서에서 제공하는 두 가지 근거에 대해 뵈젠은 반론을 제시하며, 논점이 힘을 잃었으며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입장을 취한다.두 번째 주장이자,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그는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획을 이유로 말한다. 여러 본문에서 등장하는 그와 그의 계획에 대한 표현을 미루어 봤을 때 그는 그곳을 지나쳐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곳은 나사렛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지배층 계급도 존재했지만, 그 땅에는 그 시대에 “잃어버린 자들”, 가난한 자들, 병자들, 사회 종교적 자격이 없는 자들이 넘쳐났다. 약 2만 명의 주민이 있었기에, 예수가 그 많은 약자를 지나치고 갔을 리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둘째로, 다른 기록을 저자는 증거로 말한다. 그는 마르코 복음 6장에서 예수가 나사렛에서 무시를 당한 내용의 본문을 제시하며, 세포리스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 외에도 예수의 실망에 대해 전하는 본문들을 통해서 세포리스에서 있었던 일도 이와 유사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나사렛에서 실패했던 이유와 같은 맥락으로 예수는 세포리스에서 선입관의 울타리가 높았을 것이고, 그러기에 결과적으로 실패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저자의 주장이다.추가로, 프레인은 뵈젠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예수께서 의도적으로 세포리스를 피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수가 갈릴리아의 중심지요 헤롯의 주요 도시인 그곳을 회피한 것은 헤롯 권력과 직접적인 충돌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의도적인 결정.”게르트 타이쎈 · 아네테 메르츠, 『역사적 예수: 예수의 역사적 삶에 대한 총체적 연구』, 다산글방, 2001, 276p이라는 관점으로 복음서가 세포리스를 침묵하는 문제를 보는, 다른 시야에서 이 침묵의 문제를 기술하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인문/어학| 2023.07.14| 3페이지| 2,500원| 조회(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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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갈릴리의 예수, 역사 속의 예수, 교회의 예수, 나의 예수, 그리고 내일의 예수 (예수시대와 예루살렘과 갈릴리)
    갈릴리의 예수, 역사 속의 예수, 교회의 예수, 나의 예수, 그리고 내일의 예수 (예수시대와 예루살렘과 갈릴리)
    “갈릴리의 예수, 역사 속의 예수, 교회의 예수, 나의 예수, 그리고 내일의 예수이 글은 책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의 이야기 방식에 영감을 받아 가상의 인물 ‘푸블리우스’ 의 이스라엘 여행 이야기로 쓰였다.■ 가자, 이스라엘 갈릴리로내 이름은 ‘푸블리우스’, 20대 중반의 남성으로 발레리우스 가문의 차남이자, 로마의 시민이며, 직업은 시인이다. 얼마 전, 이스라엘 갈릴리 지역으로 이사를 간 내 오랜 친구 ‘가이우스’ 에게 편지가 왔다. 편지의 내용은 간략하게 이러하다. 타지에서의 생활과, 안부 인사, 그리고 시간이 되어 이곳에 온다면 자기 집에 놀러 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 편지를 계기로 오랜 친구를 만나고, 여행을 통해 글을 쓰기 위해 갈릴리로 향하는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로마부터 갈릴리까지 향하는 여정은 상당히 고된 일이다. 꽤 오랜 시간을 두고 가야 당도할 수 있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사하다. 로마에서부터 갈릴리까지 잘 깔려진 도로 덕분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는 일정이 많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피곤하지만 비교적 빠른 시일내에 갈릴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갈릴리에 거의 도달했을 어느 날 정오 무렵, 내 시선이 끌렸던 곳은, 바다였다. 그렇다. 바다가 있었던 것이다. 가이우스의 편지에서는 호수를 끼고 있는 큰 도시에 살고 있다고 했는데, 이게 어떻게 호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도 보이고, 이 바다와 같이 큰 호수는 누가 호수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면, 나처럼 바다라고 생각하기 쉬울 정도로 크고 웅장했다. 호수에 내 시선이 머물러 한참을 바라보고 있던 중에, 멀리서 누가 나를 불러온다.“이보게 푸블리우스 자네 멍하니 서서 뭐하고 있는겐가?멀리서 가이우스가 나에게 걸어온다. 초행길이었던 친구가 걱정이 된 것인지, 도착 날짜에 맞추어 알맞은 순간에 그가 마중을 나와 주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반가운 재회의 인사를 나누고, 그가 살고세포리스까지 거의 당도했을 무렵 나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세포리스로 향하는 큰 길목 양 옆에 엄청나게 많은 십자가가 줄을 지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가이우스에게 묻자, 최근 로마 제국을 상대로 이스라엘이 해방되기 위해 폭력과 무력을 사용한 열심당원들의 반란으로 인해 그들의 무력 반란을 억제하기 위해 헤롯이 세워 놓은 것이라고 한다.눈대중으로 세어봐도 족히 몇 백 아니 몇 천개는 될 것 같은 양인데,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십자가는 어디로부터 온 것이냐 묻자, 가이우스는 아마도 갈릴리 지역 인근에 있는 여러 마을에서 목재를 수집하고 여러 마을에 있는 목수들을 불러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닐까 하여 추측하며 설명해주었다. 세포리스로 들어가는 이 섬뜩한 길을 지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도시로 들어갈 수 있었다.날이 많이 저물어, 가이우스가 오늘은 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그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도시 구경은 내일 시켜주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시장으로 향했다. 세포리스의 시장 규모는 컸다. 다양한 상품, 많은 상인들이 모여 있었다. 이곳 저곳에서 다양한 인종의 사람이 모인 것 같았다. 시장에서 우리는 먹거리를 사고 저녁식사 이후에 먹을 과일도 자신을 ‘요한의 아들 안드레아’ 라는 상인에게서 살 수 있었다.해가 지기 전에,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가이우스가 한껏 실력발휘를 한 진수성찬을 한 요리를 대접을 받았다. 로마부터 세포리스에 오기까지 지친 여정 탓이었을까? 나는 특별한 얘기라고 할 것 없이 그가 차려준 접시를 비우기에 바빴다. 좋은 품질의 식재료와, 정말 맛있는 음식의 조화였다.먹은 식탁을 치우고 가이우스와 함께 과일을 먹던 중에 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갈릴리 호수에서 세포리스까지 걸어오면서 이 도시 인근에서는 딱히 이거다 할만한 농업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까 오후에 보았던 시장에서 그 많은 상품들은 어디서 재배된 것이며?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그나저나 가이우스, 세포리스 시장에 있는 물품들은 다 어디서 수입되어 오는 것인가?서는 평화롭고 번영을 누리고 있는 이 도시의 분위기와 다르게, 갈릴리 지역 그 어느 한 변두리에서는 지배 국가와 식민지 국가의 관계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있겠지, 시인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글로 적고 표현하는 문학가인 나 푸블리우스의 마음은 다소 편하지 만은 않았다. 생각이 많아진 나는 가이우스에게 자고 싶다고 얘기하였고, 그는 나에게 침소를 안내해 주고 내일을 기약하였다.■ 유대인 청년을 만나다.이튿날 아침, 가이우스가 도시를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하여, 집 밖을 나왔다. 그가 좋은 볼거리를 보여주겠다고 하여 그가 길을 안내했다.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이 촉박했던 것일까, 그가 나에게 지름길로 가는 것이 어떻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좋다고 대답했고, 그가 나를 골목길로 인도했다.골목길로 접어들자, 이 도시의 이면의 모습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어제까지는 이 도시의 큰 규모와, 화려함과, 다양한 먹거리들에 눈을 빼앗겼으나, 도시의 골목으로 접어들자마자, 도시의 화려함 이면에 어두운 면을 볼 수 있었다. 목적지로 향하는 그 골목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맹인, 피부가 썩어 들어가면서도 자기 몸을 벅벅 긁는 사람, 그리고 바닥에 주저 앉은 채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생김새와 모습을 보아 그들 대부분이 유대인임을 나는 알 수 있었다.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다. ‘무엇이 저들을 이렇게 병들게 했을까?’, ‘저주인 것일까?’, ‘아니면 가난이 만들어 낸 질병인 것인가?’, ‘그들이 제공받는 환경과 위생에서 오는 문제인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의 질병은 제국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저들은 나의 조국 로마 때문에 매일 매일 병들고 아파하는 것인가?’ 계속되는 나의 생각은 나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깊게 생각에 빠진 내 모습을 보았던 것일지, 아니면 그들에게 병이 옮는 것이 걱정되었던 것일까, 가이우스가 내 손목을 잡고 골목길을 빠르게 빠져나갔다.골목길을 빠져나와 가이우스가 나를 데리고 온다. 극이 마치고, 회중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극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일어나 나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인파가 정신없었고, 사람 사이에 치이기 싫어서 우리는 앉아서 보았던 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천천히 일어나기로 했다.사람이 어느정도 빠져,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의 출구 쪽으로 향했다. 시간이 어느정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출구 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원을 이루고 있었다. 많은 무리들이 만든 원 가운데는 한 유대인 청년이 서 있었고, 극장에 들어오기 전에 보았던 병자가 앉아 있었다. 가이우스는 부정한 사람 때문에 싸움이라도 난 것 같다고 말을 하였고, 우리도 그 무리에 섞여 들어가 상황을 지켜 보기로 했다.잠잠했다. 그 유대인 청년과 병자 사이에 싸움의 기류라고 하기에는 너무 잠잠했으며, 고요했다. 구경하는 무리에 중간에 합류해서 이전에 어떤 말이 오고 갔는지는 모르겠으나, 유대인 청년과 병자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오고 감이 없었다.잠시 뒤, 그 유대인 청년이 그 병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내미는 그의 행동을 보고 무리 중에서는 병자에게 접촉한다고, 부정하다고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병자가 그의 손을 잡았고, 그가 일어나서 걷게 되었다.좀 전까지 걷지 못하던 병자가 저 유대인 청년의 손을 잡고 일어나더니 걷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이란 말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대인 청년과 저 병자가 짜고 치는 거짓이라고 비난하고 자리를 떠났다. 자기가 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요즘 유행하는 다른 이단들과 같은 부류라고 생각한 것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바닥에 주저 앉아 금방이라도 생을 포기할 것만 같았던 그 병자의 눈동자를 유심있게 바라 보았던 나는, 방금 일어난 기적이 허구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무리가 흩어지고, 병자는 유대인 청년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 유대인 청년도 자기의 할 일 어떻게 그 병자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예수는 “그 자의 믿음이, 그를 구원하였고, 그러기에 그 자는 일어나 걸을 수 있었다.” 라며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이어서 나는 예수에게 “당신은 이제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라고 묻자, 그가 사는 마을인 갈릴리의 마을 나사렛으로 향한다며, 이만 가보겠다고 대답하였다.나는 생각했다. 방금 내 눈앞에서 일어난 기적은 그가 신이 아니고서야, 신의 사자가 아니고서야, 신의 아들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을 눈으로 보았다. 나에게 평범한 목수의 아들이라 대답한 지극히 평범한 인상착의를 한 그 유대인 청년은 누구인가, 내 눈 앞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예수라는 청년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여기서 그를 놓친다면, 나는 후회할 것인가? 그를 붙잡는다면, 이곳에 와서 내가 본 인간의 고통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생각이 멈췄을 때쯤 나는 이미 예수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나의 발은 다시 그의 앞에 멈췄다.그리고 그에게 다시 물었다.“예수, 당신은 정녕 누구입니까?”그러자 그가 대답했다,“네 눈에는 내가 누구로 보이느냐?”■ 나가는 말: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나는 역사를 통해서 예수를 이해하고 그가 살았던 시대와 상황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 수업은 내가 적은 이 소설에 예수가 푸블리우스에게 마지막으로 한 질문과도 같은 수업이었다.“그래서 네 눈에는 내가 누구로 보이느냐?”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성서를 해석하고 예수를 이해한다. 때론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의 신앙대로,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때로는 공통되며, 때로는 각기 다른 예수를 우리의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우리의 시선에 맞게, 우리의 상황에 맞게 말이다.사도들의 시선과, 초대 교회의 시선과, 그리고 역사 속 다양한 신학자들의 시선, 마지막으로 오늘 내가 바라보는 시선의 예수가 과연 일치할 수 있을까? 현재 한국교회에서 대부분의 성도들이 대중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예수의 이미지가 과연 이것들과 모두 일치할 수 까?”
    인문/어학| 2023.07.14| 6페이지| 1,500원| 조회(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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