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지은이 은희경성장소설 베스트3 라는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읽었다. 검색창의 결과물을 도서관에서 찾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유명 문학 출판사의 문학전집에 수록 되 있는 500 페이지 짜리 성장소설은 읽는 덴 단숨에, 놓는 덴 일주일이 걸린 여운을 남겼다.프롤로그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에서 에필로그의 ‘상처를 덮어가는 일로 삶이 이어진다.’ 까지.12살 진희의 성장과정을 일어난 사건별로 24개의 소제목이 붙는다. 프롤로그의 제목부터 남다른 카리스마로 내 마음을 당기더니 ‘환부와 동통을 분리하는 법’ ,‘자기만 예쁘게 보이는 거울이 있었으니’. ‘네 발밑의 냄새나는 허공’. 등 궁금증을 자아내는 건 물론이고 단지 책의 첫 장을 펴고 차례를 읽고 있을 뿐인데 ‘그 도둑질에는 교태가 쓰였을 뿐’.에선 가슴이 설레기까지 한다. 확실 거장은 거장인가 보다. 은희경 최고의 소설로 인터넷에 오르내린게 허명은 아닌 듯. 제목만으로 문장의 깊이가 느껴지니 말이다. 마치 무협소설 주인공의 초반 몇 합을 보는 듯 하다. 거칠 것 없이 난폭한데 소녀처럼 섬세하다.1. 극기훈련‘ 그때 1969년 겨울,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서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 이라는 제목의 목록을 지우고 있었다. 동정심, 선과 악, 불변, 오직 하나뿐이라는 말, 약속......마침내 목록을 다 지운 나는 내 가운뎃손가락 마디에 연필 쥔 자국이 깊게 파인 것을 한참 동안 내려다 보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나는 인간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도 나는 뭔가를 쓰다가 이따금 연필을 내려놓고 가운뎃손가락 마디의 옹이를 한참 내려다보곤 한다. 나는 삶을 너무 빨리 완성했다.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목록을 다 지워버린 그때,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소설의 배경이자 시작인 1969년 12살 소녀의 독백은 가혹하다.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란 제목에 우리가 늘 상 소중한 가치라 평가하는 단어들이니. 누구나 인생의 가치관을 확립하는 시기가 있다. 보통은 사춘기의 이 쪽 저 쪽이나 그즈음 일 것이다. 혹 그 시기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12살은 너무 일러 보인다. 과연 어떤 아픔이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란 목록을 탄생시킨 것일까. 살짝 궁금해졌다. 나는 너무 빨리 삶을 완성했으며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이 완숙의 단계에 접어 들 었 다고 당당히 선언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후 삶의 사건마다 그 정당성을 확보하며 독자로 하여금 수긍 할 수 밖 에 없도록 만드는 작가의 솜씨는 능수능란하여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광인이 된 엄마가 죽고 아빠는 가정을 버리고 떠나 할머니와 삼촌 이모 밑에서 자라는 주인공 진희의 가정환경은 여타 다른 이야기의 진부함을 벗어나진 않는다. 할머니 집에 세 들어 사는 장군이 엄마나 최 선생 과 이 선생 광진테라 아저씨 등 감초처럼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 또한 제각각 삶의 모습을 닮고 있어 흥미롭다. 마치 어릴 적 인기 드라마 ‘한 지붕 세 가족을’ 연상케 한다. 다만 주인공 진희가 바라보는 주변 환경과 인물들, 각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 이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부모가 없는 환경에서 스스로의 상처를 이겨내는 주인공만의 대처법이 재미있다.먼저 ‘환부와 동통을 분리하는 법’에서 나온 대처법을 인용하면 이렇다.나는 누구보다 일찍 나를 숨기는 방법을 터득했다.누가 나를 쳐다보면 나는 먼저 나를 두 개의 나로 분리시킨다. 하나의 나는 내 안에 그대로 있고 진짜 나에게서 갈라져나간 다른 나로 하여금 내 몸 밖으로 나가 내 역할을 하게 한다. 내 몸 밖을 나간 다른 나는 남들 앞에 노출되어 마치 나인 듯 행동하고 있지만 진짜 나는 몸속에 남아서 몸 밖으로 나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나로 하여금 그들이 보고자 하는 나로 행동하게하고 나머지 하나의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때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나’와 나 자신이 ‘바라보는 나’로 분리된다. 물론 그중 진짜 나는 ‘바라보는 나’이다.환부는 사전적 의미는 병이나 상처가 난 자리이며 동통은 쑤시고 아픈 것을 말한다. 즉 겉과 속, 보이는 상처와 내적 고통, 또는 겉으로 보이는 편견과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짜의 나를 뜻한다.엄마가 전쟁통에 광인이 되었고 그로 인해 야기된 주위의 수군거림을 12살 소녀는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구분함으로써 상처에 약을 바르고 있는 것이다.주인공의 이 강력한 무기는 소설 전반을 통해 밥 먹듯이 드러나고 사용된다. 어떠한 고통도 시련도 아픔도 단지 ‘바라보는 나’로 빠져 나와 ‘보여지는 나’를 응시하는 것이다. 마치 타인을 대하듯 냉소적이고 무덤덤하게 말이다. 그러면 고통은 줄어들고 상처는 견딜 수 있는 ‘극기훈련’ 이라는 것이다.2. 나는 연기를 할 뿐 거짓은 아니다.주인공 진희는 ‘보여지는 나’를 응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나처럼 일찍 세상을 깨친 아이들은 어른들이 바라는 어린이 행세를 진짜 어린이 수준밖에 못 되는 아이들보다 훨씬 더 그럴듯하게 해낸다.모든 어른들의 비밀을 알고 있고 세상을 스스로 깨우쳤다는 12살 소녀의 마음은 애처롭다. 스스로 거리를 두어 삶을 살고 어른 흉내를 내며 어린이 행세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진희. “그렇게 거리 밖에서 보지 못했다면 자폐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고 말하는 진희.광인으로 살다 죽은 엄마와 집을 나간 아빠라는 불리한 환경에서 오는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아를 분리시키고 어린애 행세를 하며 연기한다.사실 우리 모두는 연기를 하며 살아갈 때가 많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나를 꾸며내는 겉치장을 넘어서 존재하지 않는 친구의 존재를 남에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주변 지인의 사소한 실수나 잘못에 마치 커다란 잘못인 양 정의를 운운하며 옆 사람에게 떠벌리기도 한다. 그 중 몇 가지는 내게도 해당 사항이다. 우리가 연기하는 정의로운 사람, 착한 사람, 잘난 사람, 용기 있는 사람, 은 모두 나 이다. 또한 연기는 하면 할수록 는다.남에게 보여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는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여자는 화장을 해야 하며 남자는 면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매너의 범위에 든다. 이를 넘어서 예쁘면 최고요, 돈이면 다라는 식으로 치우쳐지면 여기서 우리는 ‘척’이라는 가식의 탈을 써야 한다. 나의 사정을 모르는 이에게 있는 척, 착한 척, 너그러운 척, 세상이 좋아하는 각종 탈을 써가며 연기한다. 하지만 이것을 가식적 삶이나 거짓 된 삶이라고 하기엔 조금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진희의 목록 안에 없는 평등 이란 단어는 현실에서도 적용된다. 어느 환경의 부모의 아들 딸 로 태어났느냐는 그 삶에서 누릴 수 있는 경험의 한계를 만들어 낸다.사실 12살인 진희의 애늙은이 사고가 책 전반에 깔려있다. 모든 것을 통달한 듯한 12살 초등학생이 주변 어른들을 관찰하며 삶의 허구와 모순을 깨닫고 있다. 이러한 점이 몰입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할지 모르겠다.하지만 아플 수 록 성장하는 것이 아닌가. 남들보다 불리한 환경을 맞이한 소녀가 있다. 그녀는 아픈 상처를 주위 사람이 건드리는 것에 예민하다. 그리고 상처 받는다. 그리고 나를 분리시키고 연기하며 상처를 치유한다. 상처 치유 목적의 가식, 나도 늘상 하고 있는 행위라고 느껴지는 순간 진희의 ‘극기훈련’이 무겁게 가슴에 얹어진다.3. 모든 사랑은 배신에서 시작한다.진희의 첫사랑 상대는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삼촌 친구인 허석이다. 어느 날 제방에서 하모니카를 부는 낯선 남자에게서 사랑이란 감정을 느낀 진희는 이모를 경쟁상대로 두며 마음을 키워간다. 진희는 주위 어른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지식이나 통찰을 허석에게 은근히 어필하며 마음만은 이모보다 나이가 많은 지적소녀임을 내비친다.하지만 이마저도 .환상과 허구가 빚어낸 결과임을 깨닫는다.그제야 나는 삶의 경고를 깨달았다.경악한 나는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남자 쪽으로 마구 달려가 보았다. 그렇다. 가까이 가서 보니 더욱 모든 것이 명백했다. 그날 하모니카를 불던 사람도 바로 이 사람 이었다. 허석이 아니었다. 하모니카와 염소의 실루엣은 허석의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낯선 남자의 것이었다. 내 사랑이 이 빛의 비롯된 것이라면 나는 마땅히 허석이 아닌 이 이 더러운 낯빛의 구부정한 아저씨를 사랑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