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쇼크, 고령화 사회현재의 일본은 청년들이 줄고 노인들이 많은 고령화 사회가 되었다.전 세계적으로 현대의 사회는 의료기술 등의 발전으로 최대로 살 수 있는 수명 나이가 이제는 100세 시대라고 할 만큼 높아졌다.일본의 100세 이상 인구는 1971년 이후 49년째 증가하고 있으며 1981년 1000명을 돌파한 데 이어 1998년 1만 명, 2012년 5만 명, 2015년 6만 명을 넘어서는 등 증가세가 점점 가팔라지고 있다.남성보다는 여성의 비율이 높으며 세계 기네스 최고령자는 일본 국적의 116세 여성이다.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 중에서 일본의 고령화 인구가 높은 이유는 무엇인지 그 원인에 대하여 조사를 해보았다. 고령화 사회가 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저출산을 꼽을 수 있다.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의 높은 출생률의 기간에 출생한 세대를 단카이세대라고 한다. 1948년 우생 보호법에 따라서 불임수술이 허용이 되었다. 그리고 1949년 “경제적인 이유”로 출산율이 저하되었다. 그 후, 제 1차 오일쇼크 등이 일어나게 되면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까지도 경기 불황, 비정규직 고용 확대 등으로 인하여 출산율은 아래의 그래프와 같이 꾸준히 감소세를 이어오고 있다.더불어 우리나라는 통계청에서 2020 인구주택 총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이 조사는 1985년부터 시작되었고 결과를 바탕으로 사회, 복지 등 국가의 주요 정책에 활용한다.위의 자료는 인구주택 총 조사의 가장 최근 결과 자료를 가져온 것이다.우리나라는 2010년과 2019년을 비교하면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이다.그러나, 인구주택 총 조사의 통계상 전체적으로 볼 때 인구가 증가하지만 출생자는 감소하고 고령자만 늘어나고 있다. 시간의 지날수록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한국은 2045년에 노인의 인구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많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원인은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분단국가인 북한보다도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는 분석이 있다.일본과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위의 두 그래프는 연도마다 인구 비중이 다르지만, 올라가다가 정점(=피크)을 찍고 감소하는 것이 비슷한 곡선을 보여준다.생산인구가 감소하면 나라 경제가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고령의 노인이 늘어나게 되면서 부양을 해야 하는 사람이 증가되는데 이것을 적은 인구의 청년층이 부담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부를 창출하기엔 턱없이 힘들어진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연구원들은 경제 위기의 위험성은 낮으나 이후, 젊은 층의 노동력 부족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현재 한국 사회의 청년들은 취업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있다. 주원인은 일자리의 부족이다. 일부 기성 세대들은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을 하지 않아서 취업을 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지만, 이 말 들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의 청년 입장에서 보면 지금도 노력을 하는 이들은 많다. 그에 걸맞은 일자리들을 찾기 위해 취업시장에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스펙을 쌓기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많다고 말해주고 싶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청년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을 니트족이라 칭하며 “한 시간에 1000엔으로 빌려드립니다” 라며 팻말을 들고 광고를 한다.출처 : 명견만리일본도 우리나라와 같이 취업이 힘든 사회이다. 취업이 되더라도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의 직급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아예 취업을 포기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포기하고 비교적 안정적이고 취업의 절차가 자신의 노력에 따라 시험 점수로 가르는 공무원 시험에 뛰어드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위의 자료는 실제 한국의 공무원 시험 응시 현황 자료를 가져온 것이다.비교의 편의성을 위해 행정직의 전국 자료를 보고자 한다. 2019년과 2020년을 비교하면 선발 예정 인원은 줄어들고 지원 인원은 증가된 것을 보아 경쟁률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학교 도서관에 가면 대학생인데도 주변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 이것은 현재 청년들의 고용 불안감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실들 속에 자신들도 잘 먹고 잘 살기 어려운 상황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란 너무 많은 짊을 얹어지는 것이라고 느껴져 아예 포기를 하는 3포 세대가 생겨났다. 3포 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을 일컫는다. 요즘엔 N포 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Option 14주차1. 1번 : 트라시마코스의 정의 Def.1은 그의 인물됨의 반영일까요?트라시마코스의 정의 Def.1 1은 그의 인물됨의 반영이라고 생각한다.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로운 것이 더 강한 자들의 이익이라고 하였다. 강한 자는 정권을 행사하는 쪽이기 때문에 이것이 정의라고 주장한다. 강한자 = 통치자이며. 이들이 원하는 이익에 맞추어 제정한 법들이 정의롭고 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권력이 정의라는 것에서 트라시마코스의 인물됨은 덕이 많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보여졌다, 근거는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서 정의로운 것이 통치자들에게 복종인가? 라는 점이다. 통치자들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판단할 수가 없는데 복종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통치자한테 복종하는 것이 옳다는 것은 트라시마코스가 통치자의 편에 너무 치우쳐 있는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트라시마코스는 아테네에서 돈이 많은 귀족들을 가르치는 선생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제한적인 환경의 사람들과 같이 있다 보니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취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소크라테스가 통치자들이 법을 제정할 때, 어떤 점에서는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게 or 이익이 되지 않는가? 라는 물음에 트라시마코스는 맞다고 대답을 하였다. 나는 통치자들이 법을 제정한다면 자신들에게 무조건 이익이 되기 위해서 제정할 것이라고 본다. 만약 강한 자들의 이익이 될 것 같아 원하는 법을 제정을 하였으나 시간이 흘러 그 후에 통치자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법이 되어 불이익이 미치고 해가 된다면 다시 새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개정을 하지 않을까? 라는 의문을 가진다. 나는 폴레마르코스의 정의가 옳다고 본다.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가진다는 것이 폴레마르코스가 주장하는 정의이다. 좋고 싫고를 판단하는 기준은 눈에 띄게 구별할 수가 없어 어렵지만, 만약 이것에 명확한 기준이 있고 판단이 가능하다면 실제로 좋은 친구에게 좋게 해주고 나쁜 적에게 해롭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정의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사자성어로 선함을 권하고 악함을 벌한다는 뜻의 권선징악이 있다. 이처럼 요즘 SF 장르 중에 Marvel의 어벤져스처럼 악당이 등장하면 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과 같은 영웅들이 나타나 물리치는 것이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클리셰 소재이다. 그 영화들에서는 이러한 영웅의 모습이 정의롭다고 표현이 된다. 아마 일반적인 경우의 사람들도 영웅들이라고 하면 착하고 나쁜 악당에게 응징하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강도와 같은 범죄자들에게 그에 따른 벌을 내리는 등의 응징을 하고 시민들을 구하는 경찰관과 같은 사람들을 정의롭고 직업정신이 투철하다고 하며 국가에서는 표창장을 수여하는 등의 보상을 하고 있다. 이를 보고 나는 트라시마코스와는 달리 폴레마르코스의 인물됨은 덕이 많다고 보았다.6주차2. 1번 : 1} 어떤 기술의 전문가가 보수를 받아서 이득을 보는 것은 보수 획득술을 추가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고 2} 따라서 엄밀한 의미의 전문가는 기술이 관련하는 대상만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타당한가?어떤 기술의 전문가가 보수를 받아서 이득을 보는 것은 보수 획득술을 추가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이고 따라서 엄밀한 의미의 전문가는 기술이 관련하는 대상의 이익만을 생각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전문가를 떠올리면 ‘장인’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즉, 전문가는 그 기술만을 꾸준히 해와서 자격을 얻은 자이다. 그렇기에 기술과 관련한 대상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득의 기준이 기술을 통한 것인가? ,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것인가? 로 나누어 생각해보았다. 예를 들어 전문가가 제빵사라고 생각을 해보자. 기술을 통한 이익이라면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 질 좋은 재료를 구하여 연구를 한다. 그 빵을 손님들에게 시식도 하면서 대접을 하여 이 빵집이 맛집으로 소문이나 이익을 추구한다. 여기서 이익이 제빵사로서의 금전적인 보수만이 아닌 명예와 자부심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돈을 위한 보수획득술을 통한 것이라면 일단 질보단 양을 선택한다. 값이 싼 재료로 시식은 없고 우후죽순 여러 가지 빵들을 만들어 낸다. 또한, 업체나 사람에게 돈을 주고 파워 블로거, 인스타그램, 인터넷 소셜 광고등을 통해 유명해져 손님들에게 빵을 많이 팔 수 있다. 이게 엄밀한 의미의 전문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술을 통한 어느정도의 보수가 따라 올 수는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보수획득술 사용이 아닌 정직하게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전문가라고 본다. 또한, 트라시마코스의 말대로 엄밀하게 기술자는 그 기술에 대해 실수를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반은 옳다. 그러나, 사람은 프로그래밍 틀에 짜여진 기계가 아니기에 실수를 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수를 많이 하게 될 가능성이 예를 들어 천재지변과 같은 경우나 예기치 못 한 상황 등이 있을 것이다. 전문가라면 초보자에 비해서 실수의 빈도가 적어지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을 가져보았다. 통치자는 기술에 의해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참 통치자는 기술을 실수하지 않는다 + 기술관련 대상에만 관심을 갖는자 이를 구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트라시마코스가 소크라테스에 대해 반박할 여지가 있다고 교수님이 수업 중에 언급을 하였다. 내가 소크라테스라면 구별을 하기란 불가능 할 것이다라고 반박을 할 것이다. 일단, 기술에 대한 실수를 하지 않는 참통치자를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기술관련 대상에만 관심을 갖는자가 기술에 대한 실수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기술관련 대상에만 관심을 갖는다 = 기술을 실수하지 않는다. 이것은 구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같다는 전제가 더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기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잘하는 자는 그 기술 분야의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실수를 할 빈도가 적어질 것이고 후에 실수를 안 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참 된 통치자가 통치를 한다면 피통치자의 이득을 생각할 것이라고 하였다. 위에서 예로 언급한 대로 통치자는 아니지만, 전문가인 참 된 제빵사가 빵을 만든다면 피통치자라고 생각하는 손님의 건강을 위해서 질 좋고 맛있는 빵을 만들 것이다. 이것이 현대의 ‘장인 정신’이라고 불리는 전문가라고 나는 생각한다.8주차3. 1번 : “모든 사람은 전체 사회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갖는다” 라는 주장을 롤스의 입장에서 어떻게 변호할 수 있는가?나는 롤스가 “모든 사람은 전체 사회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갖는다”라는 말에 완전히 동의하는 입장이다. 롤스가 말하는 정의는 사회제도의 제1 덕목이며 타인들이 갖게 될 보다 큰 선을 위하며 소수의 자유를 뺏고 다수가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한다. 나 또한, 이것은 정의가 아닌 부정의라고 생각이 든다. 물론 이익을 얻게 되는 다수의 입장에서는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수의 이익과 권리는 찾아볼 수 없기에 부정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는 상호 이익을 위한 협동체이다. 나는 여기서의 상호 이익은 항상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사회에는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익을 얻지만, 어떠한 누군가는 이익을 얻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에는 여러 분야들이 있지만, 내가 말하고 하는 예시의 분야는 주거환경지원에 해당이 된다. 예를 들어 A 지역에 갑자기 아파트가 생겨나고 지하철과 같은 교통시설들이 생기게 되면서 인구수가 늘어나 원래 나오던 양을 초과하여 쓰레기가 넘쳐난다. 이 쓰레기들을 처리하기에는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A 지역 사람들이 쓰레기 매립시설을 설치할 장소를 정한다고 가정해보자. 사람들은 자신들의 동네에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 매립시설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A지역 사람들은 자신의 지역과 거리가 떨어져 있고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았으며 인구가 적은 농촌의 마을 B 지역에 쓰레기 매립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어떤가? 제안을 한다. 당연히 B 지역의 사람들은 시설이 생기는 것에 반대를 한다. A 지역의 사람들은 악취가 풍기는 쓰레기들이 넘쳐나니 건강까지 잃을 지경이라고 들고일어난다. 결국 투표는 다수결로 진행되어 찬성 표가 많은 다수인 A 지역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되게 된다. 이러한 예시처럼 나는 소수인 B 지역의 사람들과 같은 상황들이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적은 몫보다는 누구나 큰 몫을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의 이기심은 끝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정의의 원칙에서 사회 협동체의 이득과 부담의 적절한 분배를 결정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여기서 이득과 부담을 어떻게 서로 적절하게 가지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생각한 답은 롤스의 말처럼 기본적인 사회제도의 안에서 권리와 의무를 할당하는 것과 같다. 나는 여기서 권리가 나오려면 의무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이득보다는 부담을 더 분배하는 방식이 옳다고 본다. 위에 예를 빌려서 쓰레기 매립시설장소로 선택된 B 지역에 A 지역의 사람들이 일정 부분 돈을 납부의 의무를 만들어 시설 사용을 하게 되는 권리를 얻게 될 수도 있지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이것이 서로 배분의 몫을 그나마 합당하게 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나는 모든 사람이라는 단어에 목소리가 큰 다수의 사람들만이 아닌 작은 목소리를 내지만 소수의 사람들도 해당이 되는 것은 명백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만약 전체 사회에 좋은 복지라도 우리가 모르는 허와 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는 다수만이 아닌 소수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 올바른 정의라 생각하는 바이다.
공리주의는 국가를 운영하는데 이로울까?1. 서론나는 2학기 철학 입문 구교선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존 롤스의 『정의론』 책을 붙잡고 매시간마다 토론을 했다. 수업 중 정의와 배분에 대해 계속 의논을 하였다. 평등과는 대응되는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벤담의 공리주의는 과연 국가를 운영하는데 이로울까?”라는 것에 대해서 의문이 점차 생겼다. 왜냐하면 나라를 운영하기 위한 사람을 뽑는 리더인 대통령선거를 할 때뿐만 아니라, 어떠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민주주의의 국가들은 다수결의 원칙을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다수결의 원칙들에 따른 결과라면 자신들이 소수의 입장에 있더라도 훨씬 많은 다수의 입장이 공정하다고 느끼며 동의를 하는 입장에 따라간다. 반면, 존 롤스는 최소 수혜자의 입장을 고려해서 평등을 추구한 사람이었다. 누군가 벤담에게 동의하는가? 롤스에게 동의하는가? 묻는다면 나는 중립의 입장을 택하고 싶으나, 선택지가 하나라면 롤스의 입장을 지지하는 방향을 택할 것이다.이번 레포트에서는 주로 공리주의와 롤스가 제시한 원칙들에 대해 비교를 해보고자 한다. 또한, 공리주의가 한 국가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 이로운 점과 반대로 단점들을 개인부터 시작해서 사회, 국가로 뻗어가 다루어 볼 것이다. 과거부터 국가는 존재하였기에 현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도 공리주의의 사례들은 만연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 속에서 사회적으로 이득을 얻는 사람과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것들을 최근 대두되는 사회적인 이슈들과 함께 고찰하여보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공리주의들이 정당하게 이루어지며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의 원칙들이 지켜지는지 알아보고 싶다. 나는 다수의 입장들보다는 그동안 사회들이 외면하였고 가장 힘들었을 소수의 입장들 관점으로 파헤쳐 볼 것이다.2. 본론 1. 공리주의가 국가에 이로운 점공리주의는 효용과 행복을 위한 사회의 기본적인 사상으로 전반적인 틀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국가를 운영하려면 선거가 기본적이다. 사람들은 A 후보, B 후보가 나오면 각자 뽑고 싶은 인물들이 다를 것이다. 후보자들마다 내세우는 공약이 비슷하여도 다를 것이다. 우리가 작은 사회인 학교를 다녔던 학창 시절 때, 반장선거부터 나라를 운영하는 대통령까지 리더를 뽑기 위해 많은 선거들을 한다. 그러나, 이 선거를 하기 위한 기준이 바로 다수결의 원칙이다. 표를 많이 얻는 후보가 직위를 얻는다. 나도 투표 결과가 공정하려면 다수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적은 표를 얻은 후보는 다수의 표를 얻은 후보보다 공약이 많은 시민들을 위한 표가 아닐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 또한, 실제로 시행으로 이어지는 것이 미지수일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후보자들은 자신들이 표가 당선되기에 부족하다면 다수결의 원칙들에 따라 대부분 인정을 한다. 시민들은 자신이 소수의 입장이어도 다수의 입장이 받아들여진 것에 대해 동의를 한다.2016년 10월부터 대한민국은 촛불시위로 시민들이 광화문에 모였다. 이유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탄핵시키기 위함이었다. 국민들은 가장 공정하고 청렴해야 하는 게 미덕인 나라의 대통령이 국정 농단을 한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다들 모여 평화적인 시위를 이어나아갔다. 나도 그 당시 나는 고2인 나이였고 많은 군중들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추운 겨울 12월에 촛불 들고 그 자리에 있었다. 주변에는 jtbc 등의 언론사 차와 벽을 이루고 있는 경찰차, 근처에는 경찰들이 있었고 나와 친구들은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몇십만 명이 같이 모인 시민들과 함께 외쳐댔다. 집회한 시민들의 연령대는 정말 다양했다. 결국 우리나라의 첫 여성 대통령은 12월 6차 집회 이후, 234표 가결로 탄핵소추안이 받아들여졌다. 2017년까지 계속 집회는 이어졌고 3월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파면되었다. 탄핵소추안도 찬성과 반대로 나뉘었다. 반대는 가결보다는 훨씬 적은 56표를 얻었다. 만약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서 반대의 입장도 수용해 주는 방향으로 하였다면 탄핵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들이 걸렸을 것이라 생각한다. 국민들은 더욱 집회를 이어나아갔고 나라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이 보수, 진보를 나눈 것이 아니라 공동이 원하는 최대 다수 최대 행복 조건을 만들어 나아갔다고 본다. 내가 가장 분노를 느꼈던 것은 블랙리스트, 정유라의 입시비리였다. 사람들 또한, 불평등에 대해서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본다. 공무원들이라면 5대 신조 중 정직이 있다. 특히 높은 권력층일수록 이를 어기고 비리나 횡령, 범죄들에 연루가 되면 국민들은 실망과 공직자로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자신들이 언젠가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친구들과 기사로 고위공직자의 취업, 입시비리가 이슈가 되면 “우리 때도 이런 일이 있을까?”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기도 한다. 결론은 “사람은 겪어봐야 알기 때문에 그때가서 한 번 보자”라는 식으로 났다.. 공리주의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는 문제점우리 사회는 항상 최대다수의 입장을 많이 봐왔다. 왜냐하면 목소리가 가장 큰 집단이기에 주목을 받기 쉬웠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이제 최소소수의 입장을 들여다볼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서울 잠실의 롯데마트에서 예비 안내견이 출입을 거부당한 사건을 아는가?출처 : 인스타그램안내견의 표정을 주의 깊게 봐주시길 바란다. 사진 속의 예비 안내견 모습을 보면 꼬리를 내리고 표정이 몹시 불안하고 기가 죽어있는 듯한 모습이다. 실제로 저곳의 마트 매니저의 직책을 가진 직원이 교육을 하고 있는 봉사자에게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했으며 마트 내 사람들 앞에서 다그쳤다. 분명 마트의 직원은 다른 고객들이 불쾌감을 느낄까 봐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현재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안내견을 동반한 장애인은 공공장소라던지 대중교통을 거부할 수 없게 되어있다. 사실 안내견은 공공장소에서 짖는 행동이나 배변까지 세세하게 교육을 받고 활동한다. 영리한 개들만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방문하였던 사람이 봉사자가 아니라 시각 장애인이라면 과연 어땠을까? 내가 시각장애인의 입장이라면 앞이 보이지는 않아서 답답할 것이다. 그리고 주변 다른 사람들이 잘 못 되었다고 하면 나갈 때 트라우마가 생길 것이다. 나는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되어주는 게 안내견들이 하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개는 사람과 같이 말을 하지는 못하며 표정이나 소리를 낸다.나는 저 사진을 보고 사회가 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장애 인식개선 교육은 의무적으로 받아왔었다. 중?고등학생 때를 돌이켜보면 반에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한 명쯤은 있었던 거 같다. 그 중에서 지나가다가 그 친구들을 놀리거나 꺼려 하는 친구들은 늘 존재했다. 그럴 때면 선생님께서 말로 주의를 주고 무조건 챙겨줘야만 한다고 하셨다. 나는 항상 장애인 친구를 비장애인 친구들처럼 대하면서 다가갔다. 고등학생 때는 천체동아리를 하였는데 팔과 다리에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진 친구와 망원경을 같이 보는 조가 되었었다. 그 친구와 별자리에 관한 토론을 할 때 말이 잘 통하였던 기억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장애는 사람들이 불편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사람의 입장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장애는 선천적으로도 얻을 수 있지만, 후천적으로 얻는 경우가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장애를 가질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비장애인인 이들은 소수자들이 편하게 살기 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귀를 기울여줄 필요성이 있다.요즘 코로나로 인해 엘리베이터에 항균필름이 붙여져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층을 누르는 버튼에는 장애인들을 위한 점자가 있다. 그래서 필름 때문에 원하는 층을 누를 때 불편함을 겪는 이들이 많다. 코로나 감염예방을 위해서 배려를 한다고 부착한 것이 장애인인 다른 사람에게는 오히려 불안감을 조성한다. 이를 보고 최대다수의 어떤 이에게는 편리하고 안심되는 것이 최소소수의 다른 이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벤담의 공리주의와 롤스의 평등의 원칙 비교공리주의가 최대다수 최대행복이 원칙이라면 롤스는 무지의 베일을 쓰고 평등을 강조했다.나는 “최대다수라면 최대행복이 무조건 성립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최소소수라도 최대행복이 될 수는 없는 것인가?”라는 고민을 계속했다. 나는 사회의 제도가 시행되면 모든 이들의 원하는 바를 만족시키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래도 대립되는 두 입장이 있다면 논의를 통해 바람직한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불평등을 지양하고 공정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롤스는 무지의 베일을 써야 한다고 했다. 주관적인 감정이 들어간 것이 아닌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평등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법원에는 정의의 여신상 디케가 있다. 디케는 두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저울을 가지고 있다. 나는 두 눈을 가린 이유가 무지의 베일을 쓴 것처럼 공정하게 바라본다고 생각했다. 만약 미국 노예제도가 있던 시대라고 해보자. 나는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입장인가? 반대하는 입장인가? 투표하는 입장에 있다. 투표하는 사람은 백인인지, 흑인인지 알 수 없다. 백인이라면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고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흑인이라면 반대에 표를 던질 것이다. 인종을 알 수 없다면 반대 표가 많이 나올 것이라 생각된다. 이게 평등한시각에서 보는 게 아닐까? 최소소수가 최대행복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눈을 가리는 무지의 베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