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지금도 사랑받는 그녀- ‘황진이’의 삶과 작품을 통한 분석 -과 목 :현대시강독담당교수 :제 출 일 :소 속 :학 번 :이 름 :목차1. 서론2. 본론2-1. ‘황진이’, 그녀의 탄생과 기생이 된 이유2-2. 기생과 기생 문학2-3. 작품과 작품분석2-4. 그녀가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3. 결론3-1. 문학사적 의의3-2. 마치며4. 참고문헌1. 서론‘황진이’, 우리가 황진이를 생각하면 조선시대의 기생, 양반에게 술을 따르는 여자, 조선시대 아름다운 여성, 수능에서 우리를 괴롭혔던 기생시인 등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그녀는 대단한 사람이었고 훌륭한 여성시인이었다. 기생이라는 신분이 우리가 황진이를 소위 ‘술 따르는 천민’으로 인식하게 하였고 그녀의 작품에 대한 작품성을 깎아 내리며 폄훼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현대인들에게 사랑받고 있고 소설이나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녀는 다시 태어나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본 글쓴이는 황진이가 기생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가진 조선시대의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사대부나 여느 양반의 작품보다 그녀의 작품이 현대인에게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의문이 들었고, 그녀의 삶과 작품을 통해 이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본고에서 황진이 그녀의 삶을 그녀의 탄생과 기생이 된 이유를 중심으로 알아보고, 기생과 기생문학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녀의 작품들을 분석해볼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녀가 지금까지 현대인에게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고찰해보고 문학사적 의의를 생각해보고자 한다.2. 본론2-1. ‘황진이’, 그녀의 탄생과 기생이 된 이유황진이는 실존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그녀의 출생에 대한 기록 역시 확실한 자료가 없어 그녀가 어느 시대에 태어났으며 활동했는지에 대해 추측할 뿐이다. 여성인데다 기생이었던 까닭에 정확한 출생과 사망 시기를 알 수 없으나 그녀와 관련이 있는 남자들에 관한 기록을 통해 그녀의 삶에 대해 추측해 볼 수 리의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바랐고 그 결심을 실천하기에 그의 신분으로서는 불가능하였으므로 오직 길이라면 기생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그녀가 기생이 되었다는 추측을 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을 향해 품게 되는 연정을 읊었다고 알려진 그녀의 시에는 ‘山는 녯산이로되 물은 녯물이 안이로다’와 같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라든가 ‘秋風(추풍)에 지는 닙 소릐야 낸들 어이 하리오’ 같은 인간 존재가 갖는 근원적인 고독감 내지는 단절감을 표현하는 깊은 철학은 그녀가 자신의 신분에 대한 혼란과 고찰로 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녀가 기문에 들어선 것은 그녀의 삶에서 가장 큰 선택으로, 그녀가 기생을 선택한 동기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진이 나이 15/6에 인가서생이 진이를 슬쩍 엿보고 그 미모에 반하여 상사병에 들어 그만 죽었다. 영구가 진이의 대문 앞에 이르러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망자의 집에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간곡히 애원하여 진이의 저고리를 얻어 덮으니 비로소 영구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소호당집 (韶護堂集)』황진이가 15-16세가 될 무렵, 이웃에 한 서생이 있었는데 황진이를 몰래 짝사랑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병을 얻어 죽었다. 상여가 황진이의 집 앞에 이르자 말이 슬피 울며 나아가지 않았는데, 서생의 집에서는 그가 황진이를 짝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황진이에게 사람을 보내 간청해서 저고리를 얻어 관에 덮어주니 비로소 말이 나아갔다. 이에 황진이는 크게 감동하여 점점 기생의 길로 들어섰다.『숭양기구전 (崧陽耆舊傳)』황진이의 신분과 시대를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일은 있을 수가 없었던 일이었다. 이 일로 황진이는 큰 충격을 받았고 기가에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가 기가에 들어간 이유는 이러한 일화로 인한 것도 있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자신의 신분에 관한 이유도 분명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그녀가 기생으로 유명해지자 모든 남성들이 그녀를 만나보려고 애를 쓰고 환심을 사려했지만 천금으로 유혹을 해도 이원적인 구조를 지닌 독특한 신분계층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계급은 천하지만 사대부들과 교유하는 탓에 ‘그들의 시조작품은 사대부 계층의 작품들과 같은 반열에 놓일 수 있는 수준이고 서정적인 면을 본다면 오히려 높은 위치를 점할 수 있다.’라는 학자의 견해가 있는 이유이다.사대부 남성들에게 성과 향락을 제공했던 기생들은 사회적 신분 계층상 천민이기에 사대부가의 아녀자로 편입 될 수 없는 소외된 자이면서, 조선조 유교적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윤리관에서 벗어나 그들의 재능이나 지식 등에서는 엘리트적인 요소를 지닌 자유인이기도 하였던 이중의 타자로서 모순을 보여 준 재미있는 계층이었다.이와 같은 모순된 상황 속에서 기생들은 글쓰기를 통해 자신들의 삶 속에서 느끼는 심정들을 토로 해 놓을 수 있었다고 보인다. 황진이는 명사들과 교유하며 풍부한 정감으로 한시와 시조를 창조했고 이는 기생 문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2-3. 대표작과 작품분석황진이는 시조 6수와 한시 8편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본고에서는 시조 2수와 한시 2편을 살펴보고자 한다.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가 어려오니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여간들 엇더리벽계수가 나귀를 타고 달밤에 송악산 만월대에 이르니, 소복 차림을 한 미인(황진이)이 벽계수를 쳐다보며 이 노래를 부르는데, 벽계수가 마음이 황홀하여 자신도 모르게 나귀의 등에서 떨어졌다하여 이 노래를 ‘벽계수 낙마곡’이라 부른다. 이 시조를 처음 접하고 황진이라는 사람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이 시조를 통해 자연을 통한 인생의 허무를 느낄 수 있다. ‘청산’은 영원이 변함없는 자연을 나타내며, ‘벽계수’는 순간순간 쉬지 않고 변해가는 인간의 삶을 뜻하고 한번 늙어 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잠시라도 영원을 간직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의미를 느끼는 것이다. 남녀의 정분으로 이 시조를 읽는 다면 색다른 의미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벽계수’는 왕족인 벽여주고 있다. 애정에 대해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황진이의 기지가 돋보인다.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으며, 일 년 가운데 가장 긴 동짓달 밤 시간을 베어둔다는 시간을 휘어잡아 버리는 기발한 표현이 돋보인다. 추상적인 시간을 구체적인 사물처럼 가시화 하면서 그리움을 더욱 절실하게 표현한 점도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서리서리’나 ‘구뷔구뷔’와 같은 의태어를 사용해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을 잘 표현하였고 서로 음성상징으로 호응하면서 아름답게 이미지화 한다. 수많은 시조들 가운데서도 황진이 시조를 으뜸으로 삼는 것은 우리 언어의 미감을 살릴 줄 아는 시인의 천성적인 기질과 더불어 내용 또한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성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의 부끄러워함이 없이 자신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그대로 드러내며 적극적이고 대담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조선시대 당시 여성들의 모습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매우 파격적으로다가온다.滿月臺懷古 (만월대회고)古寺蕭然傍御溝 옛 절은 쓸쓸히 어구 옆에 있고夕陽喬木使人愁 저녁 해가 교목에 비치어 서럽구나煙霞冷落殘僧夢 연기같은 놀(태평세월)은 스러지고 중의 꿈만 남았는데歲月嶸破破塔頭 세월만 첩첩이 깨진 탑머리에 어렸다黃鳳羽歸飛鳥雀 황봉은 어디가고 참새만 날아들고杜鵑花發牧羊牛 두견화 핀 성터에는 소와 양이 풀을 뜯네神松憶得繁華日 송악의 번화롭던 날을 생각하니豈意如今春似秋 어찌 봄이 온들 가을 같을 줄 알았으랴이 시에서 표현된 이미지들은 황진이의 심정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옛 절, 석양, 굽은 나무, 연기와 놀, 탑두, 봉황새, 양과 소 모두가 허무한 마음을 표현해주는 이미지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미지를 끌어다가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아를 성찰하고 있다. 세월은 진이가 움직일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로서, 그녀의 자아를 흔들어 놓는다. 송악산처럼 영화로운 시절이 유한하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으며, 그 영화로운 시절을 함께 있어줄 임 또한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진이였를 아름답게 해주는 물건이다. 그런 소중한 빗을 버림으로 이별에 대해 대처하는 그녀의 면모를 바라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에, 그리고 삶에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서러운 마음’을 통해 그 내면에는 기방문학의 특징인 임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담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오겠다던 견우가 오지 않길래 서러운 마음으로 직녀가 허공에 던진 거라는 기막힌 발상과 그녀가 이별, 더 나아가 삶에 대처하는 방식이 돋보이는 한시이다.2-4. 그녀가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유지금까지 살펴본 황진이의 작품은 소재에 따라 나눌 수 있는데 자연을 통한 인생의 허무를 노래한 작품이거나 애정의 정한을 통한 인생의 모습을 성찰한 작품으로 나눌 수 있다. 두 소재 모두 기존의 사대부나 규방 문학, 기생 문학에서 다루었던 소재이다. 하지만 애정을 주제로 다루면서도 황진이의 시는 순응적이며 체념적인 사랑이 아니라 이지적이며 결단력 있는 사랑을 말하고 있다. 이 애정은 바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히 이어지는 문학의 본류로 어느 시대에나 주목되는 소재이며 특히, 황진이의 시조에 나타나는 면면한 정서는 가식 없는 진솔한 시어로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또한 이별의 슬픔에 함몰되지 않는 이성적인 절제력이 함축되어 있으며 뛰어난 시적 발상과 심상의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황진이는 이러한 소재를 다양하고 참신한 방법으로 표현하였다.시어에 대한 자각과 운율미, 참신한 은유와 이미지의 구사로 시의 개성을 살렸다. 또한 시에 의태어와 같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요소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중의적인 요소를 넣어 시를 읽을수록 새롭고 재미있게 느껴지게 하였다.이러한 표현방법이나 요소들은 황진이의 작품과 동시대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을 뿐더러 현대의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다.황진이는 기적에 몸을 담고 있었으나 성품이 고결하여 번화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관부의 주석이라 할지라도 머리 빗고 세수할 이다.
1970년이래 한국의 민주화 운동-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중심으로 -과 목 :한국정치와 미래담당교수 :제 출 일 :소 속 :학 번 :이 름 :목차1. 서론2.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발생2-1. 발생원인2-2. 진행과정2-3. 의의3.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4. 결론1. 서론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진 후,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민주화 운동이 많이 일어났다. 1960년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혁명을 시작으로 1979년 박정희의 유신 체제에 대항한 부마 민주화운동, 1980년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를 요구하며 전개한 5·18민주화 운동, 1987년 박종철 고문 살인 은폐 조작 규탄 및 민주 헌법 쟁취를 요구했던 6월 항쟁 등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부르짖는 여러 운동들이 오늘 날까지 이어지고 있다.이번 연구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뤄볼 생각인데 이번 연구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이유는 크게 2가지가 있다.첫째, 5·18민주화 운동(이하, 5·18)은 민중이 중심이 된 민주화 운동으로, 5·18을 통해 1970년대의 민주화운동의 성격을 충분히 파악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둘째, 본 연구자가 광주시민으로서 5·18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연구를 통해 민주화 운동이 발현된 곳의 출신이라는 자부심만을 내세우지 않고 5·18의 정확한 사건배경과 전개과정을 연구하여 5·18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다.이 연구의 최대 목적은 5·18의 전개과정과 의의, 의미를 알아보는는데 있다. 이를 위해 우선 5·18의 원인과 전개 과정을 알아보고, 의의를 생각해보도록 할 것이다. 5·18이후 일어난 민주화 운동들에 끼친 영향과 오늘 날 현대사회에서의 5·18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도 알아보며 연구를 마무리 할 것 이다.2.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발생2-1. 발생원인5·18은 박정희 유신체제의 철저한 비호를 받으며 정치군인편 국무회의의 의결절차를 밟아 5·17조치를 단행, 정권장악을 구체화시켜가고 있었다. 그 명분 소요가 일어나기 가장 알맞은 지역으로 전라도의 중심도시 광주를 선택하고 그 고장 출신 김대중을 처치하면 폭동유발과 정적제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계산아래 김대중 체포와 동시에 혹독하게 훈련받은 공수부대를 투입, 무자비한 살육작전을 펼치도록 했다.2-2. 진행과정공수부대의 살육작전은 광주시민들의 반발심리를 자극해 분노와 울분을 극도로 치닫게 하기에 분했다. 선량한 시민들은 분노의 공감대를 이루어 ‘성난 민중’으로 돌변, 대규 시위를 벌이며 저항의지를 불태웠다. 신군부의 의도는 대성공이었다. 광주시내는 구타당하고 대검에 찔린 젊은이들, 아니 든 시민들이 울분으로 가득찼다. 선량한 시민들이 저항과 투쟁을 다짐하며 ‘성난 민중’이 된 것이다. 그러나 광주에는 성난 민중을 이끌 지도자나 조직이 없었다. 지도자도 조직도 없는 항쟁, 그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민중항쟁이었다.1980년 4월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된 학생들의 민주화투쟁과 소위 사북사건등으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국회에서도 비상계엄 해제를 논의하기 위한 본회의 개최를 결정하게 되자 신군부는 이를 막고 정권장악을 기도하게 된다. 그리하여 전두환, 노태우 등의 압박으로 열린 비상국무회의에서 1980년 5월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단행하였다.계엄사령부는 모든 정치활동의 중지 및 옥내 외 집회 시위의 금지,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의 사전 검열, 각 대학의 휴교령, 직장이탈 및 태업파업의 금지 등의 조치를 취했다. 17일 새벽에 계엄군은 전국 대학교의 학생운동권 관련 학생들을 모조리 검거했고, 18일에는 김대중, 김종필 등 26명의 정치인을 학원, 노사분규 선동과 권력형 부정축재혐의로 연행하고 김영삼을 연금시키는 등 초법적 사태가 일어났다. 국회 또한 폐쇄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헌법에 규정된 국회통보 절차도 거치지 않고 계엄군을 동원, 국회를 무력인 5월 16일에 학생들은 거리 시위로 나서고, 이것이 훗날 촛불집회 때도 알려진 횃불시위이다. 이 시위는 별다른 충돌없이 조용히 끝났으나, 여기서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회측은 만일 휴교령이 내려질 경우 학교에서 만나자는 행동지침을 내렸다. 학생회 간부들이 긴급연행되면서 지도부가 사라진 서울의 학생운동과는 이 부분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생겼다.첫 충돌은 5월 17일 23시부터 발생했다. 5월 17일 23:00경부터 시위주동자에 대한 이른바 '예비검속'을 실시하여 재야인사와 학생회 간부 등 연행대상자 22명 중 정동년, 권창수, 오진수, 이승룡, 유재도 등 8명을 체포하는 등 전국적인 비상계엄의 위력을 과시하여 헌법과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신체의 자유 등을 침해하여 폭동하였다.5월 18일 10:00경에는 2백여 명에 이른 학생들이 공수부대원들의 학내 잔류 학생에 대한 구타행위를 비난하면서 비상계엄 해제하라, 공수부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고 돌을 던지는 등 시위를 하자, 위 공수부대원들이 학생들의 강제 해산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쫓아가 진압봉으로 어깨 외에 머리 등을 무차별 가격하고 체포한 학생들을 난폭하게 연행하여 충돌이 발생했다. 공수부대원들은 도망가는 학생들을 쫓아가며 폭행을 가했고, 심지어는 신분을 밝힌 전남대 교수까지 폭행했다. 근처를 지나던 시내버스에서 공수부대원들의 진압에 항의하던 학생들도 폭행을 당했다.이 일로 학생들은 계엄군에게 쫓기면서 시내로 나와 시위를 시작했다. 이에 계엄군은 오후 3시부터 시내로 투입되어 진압을 시작하였다. 계엄군은 도청 앞과 금남로에 진출하여 시위 학생 뿐만 아니라 시위와 무관했던 일반 시민들까지 진압봉으로 무차별 구타하였고 3∼4명이 한조가 되어 시위현장의 주변 건물까지 샅샅이 뒤지며 진압작전을 전개하였다. 심지어는 여관에서 머무르고 있던 외지인까지 끌려나왔고 광주 공용터미널에서 청각.언어 장애인이 대답을 안한다는 이유로 계엄군에게 구타당해 사망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이러한 폭력에 광주 시민들은 분노하였력을 행사했고 조선대로 철수했던 부대까지 가세하면서 강경진압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강경한 진압이 계속 될수록 시위에 참가하는 시민들의 숫자는 더욱 불어났다.5월 20일, 내리는 가랑비로 인해 오전에는 소강상태였으나 시내의 가톨릭 센터에서는 30여명의 남녀가 공수부대원들에게 붙잡혀 무차별로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오후가 되면서 시장의 상인들까지 철시하고 시위에 나서기 시작하여 그 인파는 10만여 명이 넘었다. 윤상원 등 계엄령 전국확대 조치당시 일제검거 대상이 아니었던 들불야학의 멤버들이 사건의 진행추이를 자세히 담은 정보지 『투사회보』를 제작해 시내도처에 수천 매씩 배포하였다.저지선을 사이에 두고 밀고 당기는 공방전이 전개되고 있을 오후 6시쯤, 공수부대의 만행에 격분한 택시기사와 버스기사들은 200여대 택시와 버스에 라이트를 켠채 유동삼거리에서 도청으로 들어왔다. 차량시위로 인해 시위가 더욱 고조되며, 그런 와중에 노동청 쪽에서 달려들어온 버스에 의해 경찰 4명이 사망하자 계엄군은 최루탄을 쏘면서 차량을 공격하고 시민들을 진압하였다. 이런 가운데 시민들의 시위와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탄압에 대해서 전혀 보도하지 않은 광주 MBC에 분노한 시민들은 광주 MBC에 불을 질렀다. 한편 20일 밤중에 광주역 근처에서 계엄군이 발포하여 두명의 시민이 사망했다21일 낮 1시, 애국가를 신호로 발포명령이 떨어지자 공수부대는한 단계 높은 국가폭력인 집단발포를 단행했다. 성난 민중들은 맨 손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아래 광주교외로 나가 예비군 무기고에서 탈취한 카빈이나 M1 소총으로 무장한시민군이 되어 공수부대에 대항하고 나섰다. 그러나 시민군은 최정예군인 공수부대 원의 적수가 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공수부대는 신군부의 다음 작전계획에 따라 철수하였다.5월 22일 오후 3시 도청 앞에서는 제 1차 시민궐기대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이날부터 매일 오후 3시와 9시, 두 차례씩 도청 분수대 앞에서 궐기대회를 갖기로 결정하였다. 원하는 사람에게 연설할 기회를 주고 시가행진전상 공수부대를 퇴각시킨 전두환과 신군부는 언론 플레이를 통해 여론조성에 나섰다. 이때가 되서야 광주관련 보도들이 쏟아졌지만 실상을 전혀 알리지 않는 것들이었다. 당시 신문 기사에서 광주 사태는 '광주 소요 사태, 시민들 소총으로 무장, 도로 검거'와 같은 식으로 보도 되었으며, 보도 사진역시 불타는 도로나 부서진 자동차들이었다. 또한 광주로 통하는 모든 도로가 차단되고 통신수단과 교통수단이 모두 끊겼다. 군부는 광주를 철저하게 고립시켰다. 이 외곽봉쇄작전으로 인해 여러 실종자와 사상자들이 발생했다. 5월 23일 오후 1시, 지원동 근처 주남마을에서는 공수부대의 총격으로 17명이 사망하는가 하면, 그 다음날에는 저수지에서 수영하다가 군인을 보고 손을 흔들던 아이들에게까지 총격을 가하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런가 하면 공수부대와 전교사 부대 사이에 서로를 오인한 총격전이 발생하여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다.5월 25일 미7함대 소속 항공모함 코럴시호가 부산에 출동했다. 광주시민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5월 25일 시민궐기대회에서 미군 항공모함이 부산에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광주에서 대피하지 못한 자기 국민 130명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항공모함을 파견한 것 뿐이었다.5월 26일. 계엄군은 화정동에서 농성동 방면으로 진출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수습위원중 재야인사로 구성되어 소위 남동성당파로 불린 홍남순 변호사,김성용 신부, 이성학 장로등은 계엄군의 진입을 막기 위해 농성동에서 죽음의 행진을 감행했다. 이와는 별개로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열렸고 도청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도청의 시민군들은 새벽에 계엄군이 도청으로 진입할 것이라 발표하면서 여성과 어린 학생들을 돌려보냈다.광주항쟁 10일째인 5월 27일 새벽, 공수부대를 포함한 1만 명이 넘는 대규 병력으로 구성된 계엄군은 도청과 그 주변 건물을 점거하여 끝까지 항쟁하겠다는 150여명의시민군을 제압하며 10일 동안의 광주사태를 종식시켰다. 그이었다.
중세국어문법론 중간과제- 없어진 글자의 소리 -과 목 :중세국어문법론담당교수 :제 출 일 :소 속 :학 번 :이 름 :1. 옛소리 추정(1) 쓰이지 않는 글자(1-1) 「ㅸ」(순경음 비읍) 훈민정음 제자해에, “「ㅇ」을 입술소리 밑에 이어 쓰면 입술 가벼운 소리(순경음)가 되는것은, 가벼운 소리는 입술을 잠깐 가볍게 합쳐서 목소리가 많기 때문이다.”라 하며 이 소리의 발음법을 대체로 설명해 주고 있다. 이 말로써 알 수 있는 것은 [ㅸ]는 [ㅂ]과 같은 입술소리인데, 다만 입술이 가볍게 닫혀서 목소리가 많은 점이 다를 뿐이란 것이다. 그리고 최세진은 “입술을 닫아서 소리를 내면 [ㅂ]가 되니 입술 무거운 소리라 한다. [ㅂ]를 낼 때에 장차 입술을 닫으려다가 입술을 닫지 말고, 공기를 불어서 소리를 내면 [ㅸ]가 되니 입술 가벼운 소리라 한다. 글자를 만듦에 동그라미를 「ㅂ」밑에 붙이는 것은 곧 입술을 비워서 붙이지 않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곧 입술을 합치면 [ㅂ]소리가 되는데, [ㅂ]소리를 낼 때에, 입술을 합치려다가 합치지 않고 숢을 불어 내면 [ㅸ]소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 설명법은 앞에 말한 해례에 ‘입술 가볍게 합침’을 한층 구체적으로 설명했을 뿐, 같은 발음법을 그린 것임은 물론이다. 이러한 설명에 의하여 우리는 [ㅸ]의 발음법을 대체로 짐작할 수 있으니, 이 소리는 두 입술소리로서, [ㅂ]와 같이 입술을 완전히 닫는 것이 아니라, 그 닫음이 좀 불완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곧 [ㅂ]가 공깃길 영도인데 대해서, [ㅸ]는 공깃길 1도 정도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와 같이, [ㅸ]소리의 두 입술 조음 방법은 대체로 추측할 수 있게 되나, 이것이 울림소리였느냐, 안울림소리였느냐는 전혀 알 도리가 없다.(1-2) 「ㆆ」(여린히읗) 훈민정음에 “ㆆ는 목소리니, ?자의 첫소리와 같다.” 라 했고, [ㄱ ㄷ ㅂ ㅈ ㅅ]따위와 같이 전청에 속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소리에 관해서는 전혀 구체적인 설명이 되어 있지 않고, 오직 [ㆆ]는 「ㅇ」에 비해서 그 소리가 세고 [ㅎ]보다 세지 않으나, [ㅎ]소리가 얕은 데 비해서 [ㆆ]는 깊다고 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것만으로써는 구체적인 소리를 알 수는 없고 오직 [ㆆ]는 [ㅎ]와 같이 후두에서 조음되었던 소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암시를 얻음에 그친다. 북쪽 중국말의 입성의 -k, -t, -p 끝소리가 없어진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로서, 조선조 초기에는 입성 끝소리가 없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소리가 없은 것과는 다소 다른 점이 있었기 떄문에 사성통고 속음에는 ㆆ를 끝소리로 붙였다는 것이다. 그러데 한편, 지금 중국말에 있어서, 오어의 입성은 홀소리 뒤에 목청 닫음소리가 따르며, 북경말의 어떠한 입성도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보면 신 숙주가 “지금 속음에 비록 끝소리를 쓰지 않으나, 평상거성의 느슨한 정도에는 이르지 않는다”라 한 것음, 그 때에 있어서도 입성 글자의 소리는 홀소리에 목청 닫음소리가 따르지 않았던가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이 「ㆆ」는 분명히 목청 닫음소리를 적는 데에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한자음 표기에 쓰인 「ㆆ」는, 두 가지 다 실제음과 다른 인위적인 교정음이기 때문에 문제 밖으로 하고, 우리말 표기에 쓰인 두 경우로 본다면, 「ㆆ」는 목청 닫음소리를 적는 부호이었던 것이다.(1-3) 「ㅿ」(반치음) [ㅿ]는, 훈민정음 해례에 의하면, 잇소리의 불텅불탁에 속해 있다. 어금니-혀-입술-이-목의 다섯 소리는, 닿소리 그 내는 자리에 따라 분류한 것이니, [ㅿ]는 다른 잇소리 [ㅅ ㅈ ㅊ]들과 같은 자리에서 나는 소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청탁으로 분류한는 것은 대체로 안울림-울림의 구별을 고려한 것인데, 훈민정음에서는 , 불청불탁음으로 [ㆁ ㄴ ㅁ ㅇ ㄹ ㅿ]의 여섯 소리를 들고 있다. [ㅿ]밖의 다른 다섯 소리는 모두 울림소리니, 따라서 [ㅿ]도 울림소리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ㅿ]가 잇소리란 점으로 보면, [ㅅ]나 [ㅈ]나 [ㅊ]와 비슷한 소리였음을 대체로 추측할 수 있는데, 이것이 [ㅅ]와 같은 갈이소리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ㅿ]은 분명히 [ㅅ]의 변동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ㅿ]를 불청불탁이라 한점, 그리고 이것이 주로 울림소리-주로 홀소리-사이에서만 나타난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ㅿ]는 분명히 울림소리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ㅿ]는 [ㅅ]의 울림으로 단정할 수 있으니, 곧 [ㅿ]글자는 [z]의 표기였을 것이다. 받침으로 쓰인 「ㅿ」도 말들에 있어서 분명히 [z]로 발음되었음을 짐작한다. 그런데 그 때의 표깃법은, 월인천강지곡을 빼면, 엄격하게 음절 단위로 묶이는 방법을 쓰고 있다. 따라서 「앗-, 엿-, 밧(ㅅ=ㅿ)」따위 표깃법은, [z]가 음절 끝소리로 쓰일 수 있는 점은 지금말의 끝소리 조직과 다른 점이다.(1-4) 「ㆍ」(아래아), 「ㆎ」(아래애) 훈민정음 제자해에는 일곱 기본 홀소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ㆍ」는 혀는 오그라지고 소리는 깊다. …「ㅡ」는 혀는 조금 오그라지고 소리는 깊지도 얕지도 않다. 「ㅣ」는 혀는 오그라지지 않고 소리는 얕다. 「ㅗ」는 「ㆍ」와 같되 입이 오므라진다. …「ㅏ」는 「ㆍ」와 같되 입이 벌어진다. 「ㅜ」는 「ㅡ」와 같되 입이 오므라진다. …「ㅓ」는 「ㅡ」와 같되 입이 벌어진다.” 이 설명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으니, 첫 부분은 「ㆍ, ㅡ, ㅣ」의 소리 설명이오, 다음부분은 「ㅗ, ㅏ ; ㅜ, ㅓ」와 「ㆍ, ㅡ」와의 소리 비교이다. 그리고 첫 부분은 또한 두 방면으로 설명되어 있으니, 하나는 혀의 상태에 관한 것이오, 다른 하나는 소리(성)의 인상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 방면에서 「ㆍ」의 소리를 관찰해 보기로 한다. 혀는 세 가지 상태를 분별하였으니, 하나는 ‘오그라지지 않음’(불축), 하나는 ‘조금 오그라짐’(소축), 하나는 ‘오그라짐’(축)이다. 홀소리 [ㅣ]의 조음에 있어서는 혀의 앞 쪽이 입천장으로 향해서 가까와지기 때문에, 혀의 겉은 조금도 오그라지지 않고 퍼진다. ‘ㅣ는 혀는 오그라지지 않는다’라 한 것은 바로 이러한 혀의 상태를 설명한 것이다. 한편 [ㅡ]홀소리를 조음할 때는, 혀의 가운데가 입천장으로 향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혀의 앞쪽은 조금 오그라지는 것이다. 곧 이 경우의 혀의 상태는, 혀끝이 아랫니 안쪽에 닿아서 약간 높고, 혀끝과 혓바닥 사이의 부분이 약간 내려가고, 혓바닥의 가운데 부분은 다시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혓바닥과 혀끝 사이의 부분은 조금 오그라지는 것이다. ‘ㅡ는 혀는 조금 오그라진다’란, 이러한 혀의 상태를 가리킨 말로 생각된다.(1-5) 병서와 「ㅅ」끝소리 훈민정음 합자해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첫소리 두세 글자를 합용병서한 것은, 우리말의 「ㅼㅏ(땅), ㅶㅏㄱ(짝), 틈」따위와 같고, 각자병서한 것은 , 우리말의 「혀」는 ‘혀’인데, 「ㆅㅕ」는 ‘끌어 당겨’이고, 「괴여」는 ‘내가 남을 사랑하여’인데 [괴ㆀㅕ]는 ‘남이 나를 사랑하여’이고, 「소다」는 ‘물건을 쏟아’인데, 「쏘다」는 ‘활을 쏘다’가 되는 따위와 같다.가운뎃소리를 두세 자 아울러 쓴 것은, 우리말의 「과」(현악기의 괘), 「홰」(횃불)따위와 같다.끝소리를 두세 글자 아울러 쓴 것은, 우리말의 「ㅎㆍㄺ」(흙), 「낛」(낚시), 「ㄷㆍㅩㅵㅐ」(닭떄, 유시) 따위와 같다. 그 합용병서함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것은 첫ㆍ가운데ㆍ끝소리가 모두 한가지다.“ 이에 의하면 ‘병서’에는 ‘합용병서’와 ‘각자병서’가 있는데, ‘각자병서’란 같은 두 글자를 나란히 쓴 것이오, ‘합용병서’란 다른 글자를 둘 또는 셋을 나란히 쓴 것인데, 이에는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의 세 경우가 있다.끝소리의 합용병서에 대해서는 , 지금말의 경우와 다름 없었으리란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니, 여기에서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 것이며, 가운뎃소리의 합용병서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첫소리의 합용병서에 대해서 그 소리를 밝히려 한다.(1-5-1) 합용병서 훈민정음 해례에 합용병서의 소리를 설명한 데가 없다. 그러나 자세히 검토해 보면, 이미 이 속에는 그 소리가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 첫째, 훈민정음에는 28글자의 소리를 각각 설명하고서 「ㅅㄷ, ㅂㅈ, ㅂㅅㄱ, ㅂㅅㄷ」과 같은 합용자의 소리는 특별히 설명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합용자의 각 글자가 저마다 제 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지니, 만일 그렇지 않고 「ㅂㅈ」과 같이 합용되었을 경우에는, /ㅂ/나 /ㅈ/소리가 전혀 발음 되지 않는 곳에 「ㅂ, ㅈ」을 써 놓고, 그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둘째, 끝소리의 합용병서인 「ㅎㆍㄺ」의 [ㄹㄱ]은 저마다 제 소리를 가지고 발음되었을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며, 가운뎃소리의 합용병서인 「과」의 [ㅘ]도 역시 [ㅗ]와 [ㅏ]가 저마다 제 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첫소리의 합용병서도 마땅히 각 글자가 저마다 제 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합용병서 중, 가운데와 끝에 있어서는 각 글자가 제 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오직 첫소리의 경우에만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이러한, 훈민정음 제자 방법에 대한 기본적인 검토는 극히 중요한 일임을 명심해 두어야 한다.다음으로는 다른 방면으로 합용병서의 소리를 고찰하겠는데, 합용병서는 그 첫 글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룰 수 있으니 「ㅂ」-계통과, 「ㅅ」-계통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두 계통의 소리는 일률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점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따로 나누어서 고찰하기로 한다.
국어학개론 기말과제- 음소와 변이음 정리 -과 목 :국어학개론담당교수 :제 출 일 :소 속 :학 번 :이 름 :[닿소리]국어의 닿소리는 아래와 같이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ㅊ, ㅋ, ㅍ, ㅎ, ㄲ, ㄸ, ㅃ, ㅆ, ㅉ/ 총 19개로 이루어져 있다.음소대표음변이음음소대표음변이음ㄱ[k][g][k ?][?]ㅌ[k?]ㄴ[n][?]ㅍ[t?]ㄷ[t][d][t ?][t ?]ㅎ[h][Φ][?][c?]ㄹ[?][l][?][?]ㄲ[k?]ㅁ[m]ㄸ[t?]ㅂ[p][b][β][p ?][p ?]ㅃ[p?]ㅅ[s][?][?]ㅆ[s?][??]ㅇ[?]ㅉ[??][??]ㅈ[?][?][z][?][?][?]ㅊ[??][??]? 음소 : 주관적 판단으로는 구별하기 힘든(같은 소리로 갈무리된 말)소리이며, 각기 음소는 말들을 서로 구별할 수 있다.? 대표음 : (하나의 음소에 대해) 여러 변이음들 가운데 가장 쓰이는 잦기가 높은(덜 제한된) 그 변이음들을 대표하는 소리※ 단, ㅇ,ㄹ은 말의 첫머리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외래어 제외)? 변이음 : 하나의 음소로 묶인 여러 음성들- 수의적 변이음(↔필수적 변이음) :자리나 경우에 따라 같은 자리에서 다른 소리가 나는 것1. 음소 /ㄱ/의 대표음과 변이음가. [k] : /ㄱ/의 대표음. 말 첫머리나, 안울림소리와 홀소리 사이에서 나타남.예) 가다, 길, 닫기, 갚고나. [g] : 울림소리 사이에서 [k]아 배타적으로 나타남.예) 아기, 보고, 먹이다, 안기다, 공기, 달구지, 살구다. [?] : |홀소리, ㄹ-홀소리| 사이에서 [g]가 아닌 [?]로 발음되는 경우도 있다.(수의적 변이음)예) 먹어라. [k?] : /ㄱ/이 끝소리 자리(말 끝 홀소리 뒤, 홀소리와 닿소리사이) 에 나타날 때 터짐이 없는 닫음소리가 나타남.예) 박, 먹, 먹다, 똑바로2. 음소 /ㄷ/의 대표음과 변이음가. [t] : /ㄷ/의 대표음. 말 첫머리나 안울림소리와 홀소리 사이에서 나타남.예) 돌, 담, 먹다, 앞들, 복덕방나. [d] : 울림소리 사이에서 [t]와 배타적으로 나타남.예) 바다, 구두, 인두, 돌다리, 남달리다. [t ?] : /ㄷ/이 끝소리자리에 나타난다.예) 낟, 받고, 맏배, 맏딸3. 음소 /ㅂ/의 대표음과 변이음가. [p] : /ㅂ/의 대표음. 울림소리 사이가 아닌 첫소리 자리에서 나타남예) 바다, 불, 비, 먹빛, 맏배나. [b] : 울림소리 사이에서 [p]와 배타적으로 나타남.예) 우비, 구비, 갈비, 곰보, 강보다. [β] : |홀소리, ㄹ-홀소리| 사이에서 [b]와 수의적 관계로 나타남.예) 우비, 구비, 부부, 갈비, 울보라. [p ?] : 끝소리 자리에서 닫음소리로 나타남.예) 입, 갑, 입속말, 굽다4. 음소 /ㅈ/의 대표음과 변이음가. [?]와[?] : [?]가 /ㅈ/의 대표음. 울림소리 사이 아닌 자리에서 나타나며, 두 소리는 서로 수의적으로 나타남.예) 자다, 주다, 짐, 잡자, 받지나. [?]와[?] : 울림소리 사이에서 수의로 서로 바뀌며, [?], [?]와는 배타적으로 나타남.예) 가지, 비지, 아주, 반지, 감자, 양지다. [z]와[?] : 홀소리 사이에서 [?], [?]와 수의적으로 바뀌며, 서로의 관계도 수의적이다.예) 가지, 비지, 아주5. 음소 /ㅅ/의 대표음과 변이음 - 특별한 경우(‘듣습니다’의 /ㅅ/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첫소리로 나타남.가. [s] : /ㅅ/의 대표음. 앞 높은 (반)홀소리(i, j, y, ?)가 아닌 홀소리 앞에서 나타남.예) 소, 술, 사람, 서리, 스승, 잔소리, 젖소나. [?] : 입술 둥근 앞 높은 (반)홀소리(y, ?) 앞에서 나타남예) 쉽다, 쉬다다. [?] : 입술 안둥근 앞 높은 (반)홀소리(i, j)앞에서 나타남예) 시름, 신, 신, 실, 가셨다6. 음소 /ㅎ/의 대표음과 변이음가. [h] : /ㅎ/의 대표음. 갈이가 나는 부분이 명확하지 않고, 입안 전체에서 공기의 ‘스침소리’가 들림.예) 하루, 허리, 호도, 흐르다, 해, 헤치다나. [Φ] : 두 입술의 공깃길이 좁은 홀소리(u, w, y, ø) 앞에서 나타나기도 함.예) 회의다. [?] : [h]의 울림소리로서 울림소리 사이에서 나타남.예) 여행, 경험, 잔허리라. [c?] : (반)홀소리가 앞혓바닥의 공깃길이 작은 경우(i, j) 좁혀진 자리에서 갈이되어 나타남.예) 힘, 혀, 향가, 효도, 휴가7. 된소리 /ㄲ, ㄸ, ㅃ, ㅆ, ㅉ/- 첫소리로만 나타나고, 특별한 변이음을 별로 가지지 않는다. 허나, 홀소리 사이에서는 앞 음절의 끝소리를 아울러 가짐이 공통된 특색이다.가. /ㄲ/→[k?] : 까다, 꿈, 깨다, 가깝다, 어깨, 토끼나. /ㄸ/→[t?] : 또래, 땅, 떫다, 그뜩, 이따금, 빠뜨리다다. /ㅃ/→[p?] : 뿔, 빨래, 빼다, 이빨, 예쁘다, 바쁘다라. /ㅆ/→[s?][??] : 입술 안둥근 앞 높은 (반)홀소리(i, j)앞에서는 [??], 그 외의 자리에서는 [s?]로 나타남.예) [??] : 씨름, 씨, 씨앗, 씹다, 아씨[s?] : 싸움, 쑥, 쌀, 썩다, 기쓰다, 나쎄, 대싸리, 부썩마. /ㅉ/→[??][??] : [??]와[??]는 서로 수의적 관계에 놓여져 있다.예) 짜다, 찜, 진짜, 가짜, 다짜고짜로, 무찌르다8. 거센소리- 첫소리로만 나타나고, 특별한 변이음이 별로 없다. 허나, 홀소리 사이에 나타날 때는 앞 음절의 끝소리를 겸한다.가. /ㅋ/→[k?] : 코, 콩, 쿵, 캐다, 케케묵다, 비키다나. /ㅌ/→[t?] : 탈, 털, 통, 까투리, 사투리, 감투다. /ㅍ/→[p?] : 파, 파리 풀, 거풀, 고패, 덮어라, 잎이라. /ㅊ/→[??][??] : (역시 [??]와[??]는 수의적으로 나타난다.) 차다, 춤, 거치다, 까치, 꺠치다, 멈추다9. 음소 /ㅁ/의 대표음과 변이음- 이 음소는 환경에 따라 바뀌지 않는다.예) 마음, 미움, 감기, 담는다, 이마10. 음소 /ㅇ/의 대표음과 변이음- 말의 첫머리에는 나타나지 않고,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허나, 뒤에 이어 나는 홀소리의 자리에 따라 그 닿는 자리가 여린입천장의 앞뒤로 약간 이동한다. (「종이, 성에」의 경우 「강아지, 잉어」의 경우보다 앞쪽에 위치한다.)예) 강, 콩, 공기, 장기, 장마11. 음소 /ㄴ/의 대표음과 변이음가. [n] : /ㄴ/의 대표음. 앞 높은 (반)홀소리(i, j) 밖의 소리가 이어날 때 나타남.예) 나, 너, 노, 누구, 잔, 신문, 바늘나. [?] : 앞 높은 (반)홀소리(i, j)가 이어날 때 그 자리에 끌려 센입천장소리가 되어 나타남.예) 가느냐, 가니, 내년, 담요, 내년, 냠냠하다.12. 음소 /ㄹ/의 대표음과 변이음- /ㅇ/과 마찬가지로 말 첫머리에서 나타나지 않는다.가. [?] : /ㄹ/의 대표음.홀소리 사이에서 첫소리로 단독으로 나타남.예) 노래, 우리. 머리, 바라다나. [l] : 홀소리 사이에서 겹으로 나타나거나, 끝소리로 나타난다.예) 흘러, 홀로, 돌로, 팔락팔락, 갈, 말, 발, 울타리, 밀물다. [?] : 홀소리와 앞 높은 (반)홀소리 사이에서, 그 뒷 소리에 끌려 나타나는 소리로서 항상 겹쳐짐.예) 다력, 개잘량, 흘러라. [?] : [r]을 힘주어 발음한 것.예) 하루하루[닿소리 변이의 규칙]1. 일반성- 비슷한 부류의 소리들은 같은 환경에 놓이게 되면, 같은 방향으로 소리가 난다.2. 울림소리 되기- 울림소리와 울림소리의 사이에서 약한 터짐소리와 붙갈이 소리는 울림을 띄게 된다.(울림의 닮음)※ 우리말의 한 버릇으로서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예) 바가지의 /ㄱ/, 부도의 /ㄷ/, 형벌의 /ㅂ/, 가지의 /ㅈ/ 등…….3. 닫음소리 되기- 끝소리 자리에서 약한 터짐소리 /ㄱ, ㄷ, ㅂ/은 닫음소리가 된다.※ 우리말의 한 버릇으로서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예) 막의 /ㄱ/, 맏딸의 /ㄷ/, 입의 /ㅂ/ 등…….4. 센입천장소리 되기- 혀 끝자리에서 나는 /ㅅ, ㅆ, ㄴ, ?/ 는 (반)홀소리 /i, j/에 이끌려 센입천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대게는 필연적으로 바뀌지만 경우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예) 실의 /ㅅ/, 씨름의 /ㅆ/, 갸냘프다의 /ㄴ/, 흘러의 /?/ 등…….5. 갈이소리 되기- 울림소리 사이에서 울림소리가 된 약한 소리들 가운데 /ㅂ, ㄱ, ㅈ/은 다시 갈이소리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예) 갈비의 /ㅂ/, 먹어의 /ㄱ/, 가지의 /ㅈ/ 등…….※ ‘닫음소리 되기’, ‘갈이소리 되기’는 방법 바뀜, ‘입천장소리 되기’는 자리 바뀜, ‘울림소리 되기’는 울림 바뀜이 있다.[홀소리]국어의 홀소리는 아래와 같이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ㅐ, ㅒ, ㅔ, ㅖ, ㅚ, ㅘ, ㅟ, ㅝ, ㅞ, ㅙ, ㅢ/ 총 21개로 이루어져 있다.음소대표음변이음
시조가사론 조과제 발표문- 개화가사 -과 목 :시조가사론담당교수 :제 출 일 :발 표 일 :소 속 :학 번 :이 름 :우이송경(牛耳誦經)1. 서론2. 본론2-1. 『대한매일신보』와 개화가사2-2. 작품분석2-2-1. 원문과 현대어 해석2-2-2. 형식과 특징3. 결론3-1. 문학적의의3-2. 현대적의의4. 참고문헌1. 서론우이송경은 ‘소귀에 경 읽기’로 직역되는데 이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리 가르쳐도 깨닫지 못한다는 뜻의 사자성어이다. 이러한 사자성어를 제목으로 한 가사 은 『대한매일신보』 1909년 3월 20일자에 실린 작품으로, ‘개화가사’ 중 하나이다. 작자는 『대한매일신보』의 기자 중 한 명으로 예상되며 정확한 창작자는 알려진 바가 없다. 이 시기 나타난 개화가사의 돋보이는 특징은 주된 작품들이 신문과 잡지에 게재되었다는 것인데, 이 당시 신문에서는 주로 일본의 침략 정책 및 이에 가담하던 친일 세력들이 일삼던 부정과 비리를 비판했다. 이를 민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문학 갈래인 가사와 접목시켜 신문에 게재했던 것이었다. 특히 은 제목부터가 당대 상황을 향해 일침을 가하고 있는 작품이다.먼저, 이 게재되었던 『대한매일신보』와 개화가사에 대해 먼저 알아보고 작품의 내용을 살펴 본 뒤 의 특징을 찾아 볼 것이다.2. 본론2-1. 『대한매일신보』와 개화가사『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7월 18일부터 1910년 8월 28일까지 발행된 적극적인 항일 노선의 신문이다. 박은식, 신채호, 양기택 등이 편집에 참여하고 기사와 논설을 썼는데 국권 상실 과정에 있는 시기에 항일 구국의 논지를 펴고 민족의 각성을 신문을 통해 열렬하게 주장했다. 그렇게 하는 데 기사나 논설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부족한 부분을 문학작품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특히 문학 갈래 중 가사는 이미 독자층이 널리 확보되어 공감을 얻어내기 쉬웠고 어느 내용이나 쉽게 담아낼 수 있는 갈래의 특성 때문에 신문에 많이 실렸다.개화가사는 『대한매일신보』와 같은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면서 발달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주정주의적인 경향을 보였지만 개화가사는 현실에 걸맞은 사회적 의식을 바탕으로 내용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당시 세태를 자세히 묘사하고 풍자하였다. 특히 『대한매일신보』의 가사는 주제의식이 대단해 우리 사회의 비리와 일제침략 때문에 빚어지는 갖가지 병폐를 드러내며 항일의 투지를 가다듬게 했다.2-2. 작품분석은 ‘소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을 통해 당시의 괴악한 상황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는 가사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제일 처음 일진회가 비판의 도마에 올랐는데 이용구가 회장으로 있던 일진회는 당시에 한일합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던 친일적 단체이다. 본문 2연에서 등장하는 일진회와 관련된 인물인 송병준을 자세히 드러내면서 그 출발을 확실히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영선군 이준용인데, 그는 당시 색계대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화류장에서 세월을 보냈던 인물이다. 또한 배움이 없이 돈을 탐해 주색에 빠진 아녀자들도 비판과 풍자를 통해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함을 반성하라고 촉구하고 있다.2-2-1. 원문과 현대어 해석국한문체 원문道之太源 말ㅎㆍㄹ진ㄷㆎ 出自于天 이아닌가?著光明 뎌天道가 萬世인들 弊ㅎㆍㄹ소냐愚痴暗昧 韓人들은 不由其道 ㅎㆍ다가셔敗亡自取 可憐키로 아못됴록 指導코ㅈㆍ費盡心力 勸告ㅎㆍ나牛耳誦經 一般일셰.현대어 해석도의 큰 뜻을 말할진대 하늘의 행함이 분명치 않은 것이 아닌가드러나서 뚜렷함을 미치고 더 나아가 하늘의 도리가 영원히 전해진다 한들 더 이상 나빠지겠느냐 어리석고 못난 조선 사람들은 일의 방법에 연연하지 말라하지만잘 잘못 간에 제 스스로 책망의 길로 가니 참 가련하게 모여 아무쪼록 지도하고자마음과 힘을 다해 가르치고 원하나 소귀에 경을 읽어주는 것을 되풀이하네국한문체 원문無知沒覺 一進會ㄴㆍㄴ 前日罪惡 何如턴지自今爲始 悔改ㅎㆍ야 善良人物 되라ㅎㆍ고無數勸告 ㅎㆍ엿것만 一向傳習 不悛ㅎㆍ고?赴地獄 ㅎㆍ랴하야 豚太ㄱㆍㅅ흔 宋秉畯을祖上갓치 奉迎ㅎㆍ니狗尾三年 ㅼㅏㄱㅎㆍ도다.현대어 해석무식하고 몰지각한 일진회는 예전에는 악행을 서슴지 않았다 할지라도 어쨌든지이제부터 비롯하여 잘못을 뉘우치고 고쳐 착하고 어진 인물이 된라고셀 수 없이 말했지만 한결같이 무작정 밀고 나가는 것만 익혀놔서 고쳐지지도 않고점점 연옥으로 빠지려고 하는 돼지와 개 같은 송병준을조상처럼 받드나니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이 딱하구나국한문체 원문荒淫無道 永宣君은 그位置를 말ㅎㆍㄹ진ㄷㆎ全國內에 第一이라 아못됴록 悔改ㅎㆍ야民國事를 着手ㅎㆍ면 可爲之道 잇슬줄노無數勸告 ㅎㆍ엿것만 兪往愈甚 淫蕩ㅎㆍ야終不回惑 自棄ㅎㆍ니 狗尾三年 ㅼㅏㄱㅎㆍ도다.현대어 해석허랑방탕한 영선군의 지위를 말할진대온 나라 안에서는 제일이라 아무쪼록 잘못을 뉘우치고 고쳐서백성들에게 전념하면 과연 백성들이 잘 따르는 것이 있어서셀 수 없이 권했건만 편하고 좋은 것들만 찾고 구색에 빠져 방탕하여자기가 자기를 돌보지 않고 악의 길로 가게 되니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이 딱하구나국한문체 원문無廉無恥 大官들은 有國연후 有身이라亡國身隨 ㅎㆍㄹ터이니 奸惡心腸 悔改ㅎㆍ야救困扶危 ㅎㆍ라ㅎㆍ고 無數勸告 ㅎㆍ엿것만日所事爲 ㅅㆍㄼ혀보면 ㅎㆍ로밧비 亡ㅎㆍ기를催促無餘 尤甚ㅎㆍ니 狗尾三年 ㅼㅏㄱㅎㆍ도다.현대어 해석염치가 없고 부끄러움이 없는 대관들은 나라가 흥한 연후에는 있으나망하면 도망 갈 터이니 간사하고 악독한 마음을 뉘우치고 고치며곤란한 것을 구제하고 위험한데서 건져라 셀 수없이 권했건만날마다 정치를 해왔던 사람들을 살펴보면 하루바삐 망하기를남김없이 재촉하고 더욱 심하니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이 딱하구나국한문체 원문演劇設施 無賴輩는 知識없ㄴㆍㄴ 婦孺輩의眩惑心神 ㅎㆍ지말고 一新改良 못ㅎㆍㄹ진ㄷㆎ진卽撤廢 ㅎㆍ라ㅎㆍ고 無數勸告 ㅎㆍ엿것만若干金錢 貪을ㄴㆎ여 兪出兪壞 淫蕩歌로傷風敗俗 無餘ㅎㆍ니 狗尾三年 ㅼㅏㄱㅎㆍ도다.현대어 해석한바탕 난장판을 벌이는 무뢰배들은 지식 없는 아낙네들에게심신이 현혹되지 말고 좋게 고쳐 새로워지지도 못할 텐데진작 그만두라 셀 수 없이 권했건만약간의 금전을 탐하여 점점 더 괴상해지고 주색에 빠져 음탕한 노래로상풍패속을 남김없이 하니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이 딱하구나국한문체 원문下愚不移 婦女들은 前日習慣 다바리고學問智識 硏究ㅎㆍ야 同等權을 回復ㅎㆍ면家庭模範 되라ㅎㆍ고 無數勸告 ㅎㆍ엿것만發達進步 볼수업고 奢侈放縱 愈著ㅎㆍ야別別?聲 다들리니 狗尾三年 ㅼㅏㄱㅎㆍ도다.현대어 해석하우불이한 부녀들은 익숙한 버릇을 하루아침에 다 버리고학문지식을 연구하여 동등한 권리를 회복하면가정에 모범이 되라하라고 셀 수 없이 권했건만나아가는 진전을 볼 수 없고 사치를 방종하니 놀고먹는 것이확연히 드러나니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 딱하구나국한문체 원문支鈍且愚 牛子라도 ?留鞭往 ㅎㆍ것마ㄴㆍㄴ愚痴ㅎㆍㄹ사 諸君들은 報館演壇 許多고勸聽若不聞 自若ㅎㆍ며 愈往愈甚 頑惡ㅎㆍ니物中最靈 사ㄹㆍㅁ되고 禽獸만도 못ㅎㆍㄹ손가天賦主性 回復ㅎㆍ야 狗尾之責 免ㅎㆎ보소.현대어 해석지극히 둔하고 어리석은 소(牛)라도 고삐를 잡고 채찍질 하면 가건마는어리석은 제군들은 알리고 설명해 무수히 권했건만듣지 않고 태연하여 악독하기가 날로 심하니만물 가운데 제일 좋은 사람이 되고 짐승만도 못하여 되겠는가하늘이 주신 성품을 회복하여 여태까지 살아온 잘못된 인생들을 반성하여 벗어보아라2-2-2. 형식과 특징은 4·4조의 전통적 가사 형식에 분연체(分聯體)로 이는 새 형식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고, 계몽을 위해서는 대중의 호흡에 맞고 대중성을 띤 전통적 율조에 따르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은 서사, 본사, 결사의 구조를 보이는데 서사는 1연으로 하늘의 뜻과 어긋난, 어리석은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본사는 2연에서 6연으로 차례대로 일진회와 영선군, 관인, 아낙네들을 비판한다. 결사는 마지막 7연으로 인간들을 소로 비유하면서 소보다 못하다고 거세게 비판하지만 마지막에는 어리석음을 깨닫고 반성하여 무지를 벗어버리라는 작자의 염원이 밝혔다. 이는 2연에서 6연까지의 마지막 행에 일정하게 나타나던 어구인 ‘여태까지 살아왔던 인생이 딱하구나’가 마지막 연인 7연에서는 ‘잘못된 인생을 반성하며 벗어보아라’로 변형시키면서 종결되는 형태에서 알 수 있다.3. 결론3-1. 문학적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