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팅 사고와 SW코딩 2주차문제해결을 위한 방법 중 하나문제해결일반적 문제 해결컴퓨팅 사고 문제해결창의적 문제해결일반적 문제해결: 일상 생활에서 경험하는 작은 문제해결컴퓨팅사고 문제해결: 컴퓨팅 사고 요소를 활용하여 문제해결창의적 문제해결: 창의성을 적용하여 문제해결단계적 접근문제해결 -> 해결 계획 수립 -> 문제해결 -> 검토와 최종 점검컴퓨터에게 문제해결을 시키기 위하여 소프트웨어를 제공해야 함컴퓨터= 하드웨어 + 소프트웨어하드웨어: 모든 물리적인 부분 EX) 모니터, 마우스, 키보드소프트웨어: 모든 프로그램 EX) 파워 포인트, 한글 등SW코딩-프로그래밍-컴퓨팅사고로 문제해결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하드웨어가 작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구체적 지시사항을 내림컴퓨터: 문제해결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대상컴퓨팅 사고력: 컴퓨터가 문제를 해결할 때 적용되는 것컴퓨터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절차를 적어둔 명령어들인 코드를 작성하는 행위문제해결을 위한 절차와 과정을 설정하고, 그것을 실행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작성하는 일코딩의 궁극적 목표는 주어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일코딩에 앞서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을 먼저 구상코딩을 마치고 컴퓨터를 작동시켜 문제를 해결문제 ->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 구상 -> 코딩 -> 문제해결코딩의 중요성최근 코딩 능력은 영어를 배우는 것 같이 매우 중요21세기의 언어 라고도 불리는 소프트웨어 이해코딩 또는 프로그래밍 관련 기초 역량 함양창의성과 논리력 배양을 통한 문제해결 능력 향상산업 사회에서는 읽기, 쓰기, 계산하기가 필수 능력최근 정보화 사회에서 코딩을 할 수 있는 능력도 포함산업 사회 정보화 사회읽기, 쓰기, 계산하기 -> 읽기, 쓰기, 계산하기, 코딩 하기코딩의 장점세상을 알아가기 위한 기본 상식지능화 시대에서 코딩 교육이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논리적 사고력 향상과 문제해결을 위한 생각하는 힘창의적 발상과 코딩 과정에서 지구력 향상소프트웨어적 지식과 컴퓨팅 사고 방법을 통해 미래 직업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략
묵가, 도가, 법가의 유가 비판안예은(2018311429)묵자는 기본사상이 기독교적인 박애정신과 비슷하다. 또한 묵자는 무사였다. 그러기에 공격적인 전쟁을 방어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공격했을 때 방어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용성을 강조하며 제도의 굴레를 비판했다. 특히 유가를 비판했는데, 혈연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랑, 평화론, 신분에 관계없는 현자채용 등을 주장했다. 묵자가 유가에 대한 대표적인 4가지 비판이 있다.첫 번째로 유가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묵자는 종교적인 특성을 믿었다.두 번째로 유가의 형식적인 것을 비판했다. 유가는 지나치게 장사를 후하게 지내고 상을 오랫동안 행하는 것에 선입견을 가졌다.세 번째로 유가의 경건하지 못함을 비판했다. 유가는 거문고와 북소리에 맞추어 춤추고 노래하는 것 몸에 배어들게 돼있다고 주장했다.네 번째로 유가가 운명을 믿는 것을 비판했다. 유가는 운명을 믿고 빈부와 요절, 치란, 안위를 운명에 맡겼다.묵자의 중심사상은 겸애였다.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유가의 정신은 겨냥한 것이기도 하였다.도가는 3단계로 발전이 되어왔다. 1단계는 양주 사상, 2단계는 노자에 표현된 사상, 그리고 3단계는 장자에 표현된 사상이다. 노가에 반영된 양주사상은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천하를 줄 수 있고 제 몸을 천하와 같이 아끼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장자에 반영된 양주의 근본사상은 쓸모 있음에 무가치성을 두는 것이 양주에게는 근본 되었다고 해석한다.노자의 근본사상은 우주 내 사물의 근원이 되는 도를 밝히는 것인데, 여기서 도는 근원이 되는 원리이다. 원리 자체에 이름을 붙일 수 없다라고 노자는 생각했다.노자의 중심사상은 무위사상인데 말 그대로 번역하여 하는 것이 없는 것, 억지로 하지 않는 것 말한다. 도는 항상 아무일 도 하는 것이 없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라는 것이 도가사상의 정수이다.도는 인간에 의해서 개념화가 되기 이전의 존재 즉 추상적인 원리이다. 인간의 의식으로써 의식과 대립되는 인식대상의 사물현상이다.도법자연.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여기서 자연은 어떤 대상이 존재하는 형식을 강조한다. 존재 자체로 있는 것을 애기한다.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 로써의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이다.장자는 노자의 사상을 발전시킨 사람이다. 제물론은 장자의 대표적인 이론이다. 만물이 모두 가지런히 하나라고 주장했다. 절대적인 도의 관점에서 만물을 인식할 것을 주장했고 차별을 거부하고 모든 사물 현상을 평준화하여 하나로 보고자 했다.지극한 즐거움은 도의 의미를 깨닫고 해탈하는 것이라 하였고 이는 유가의 인의를 비판했다. 모두 인간의 본성에 없는 군더더기인 것처럼 유가의 인의 또한 인간의 본성을 어기고 삶을 구속하는 군더더기일 뿐이라고 비판했다.순자는 법가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사람이다. 법가의 뿌리라는 이유로 유학 발전사에서 배척당했다. 유가는 합리주의자, 현실주의자의 면이 크다면 순자는 인간의 지위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순자는 인간이 천지와 동등한 중요성을 가졌다고 얘기한다. 인간의 사명은 천지가 인간에게 베푼 것을 이용하여 인위적인 질서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위적인 것은 덕치가 행해지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순자의 인성론은 맹자와 반대로 성악설로 보았다. 인간의 성품은 악하고 선한 것은 인위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보았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감각적인 쾌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인간을 선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순자는 후천적인 요소를 강조한 것이다. 그것을 예로 표현했는데 예는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행위의 규범이다. 순자는 인간의 무한한 욕구를 제한하고 한정된 재화를 분배하기 위해 선왕이 예를 제정했다고 봤다. 예의 관념을 강조한 것이다. 예의 또는 의식의 의미일 때 인간의 감정을 순화, 정화시켜주는 기능이 있다고 봤다. 예는 법가의 사상적 기반이다.도가는 인간은 원래 순박한 존재, 인간의 절대적인 자유를 옹호했다. 그러나 법가는 인간을 악하게 보고 극단적인 사회통제를 주장했다, 그러나 두 학파는 무위에 공통적인 기반을 두고 상통한다. 법가의 통치방법은 무조건적인 공평무사함을 요구하고 통치자가 한 번이라도 규율을 어기면 전체의 국가조직은 붕괴된다고 주장했다.유가는 예에 의한 법치를 주장하고 법치를 반대했다. 혈통에 의한 세습적인 계급의 차이가 아닌 도덕적 수양의 차이로 군자와 소인을 구분했다. 법가 역시 법과 군주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봤다. 유가사상이 이상적이라면 법가사상은 현실적이다.법가는 유가를 비판하였다. 맹자는 지배계급의 탐욕과 포학에서 혼란이 비롯되었다고 본다. 지배계급의 도덕적 자각과 덕성의 함양을 통해 인의의 정치 실행을 주장했다. 유가 역시 법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법의 적절한 시행이나 필요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덕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덕주형보를 주장한 것이다. 덕주형보는 덕이 주가 되고 법은 보조적인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가는 이러한 유가의 사상을 비판하였다.한비자는 인간은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는 힘들 사이의 갈등에서 혼란이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이는 엄격한 법의 적용과 무거운 형벌을 통해 강력한 군주권 확보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오로지 법만이 공적 영역에서 반드시 관철되어야 할 유일한 규범이고 법치의 확립을 위해서는 인의와 같은 도덕 규범은 반드시 배격되어야 한다고 유가를 비판하였다. 또한 도덕주의만 지향하는 것은 토끼가 와서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어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주대토와 같다고 비판하였다.한비자는 신하에 의한 시행은 군주의 통치권을 침해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공이 없는 자에게 인애를 베푸는 일은 사회적 신뢰를 훼손한다고 보기도 했다. 또한 인애는 이득은 얻기 위한 도구적 수단에 불과하다. 상과 벌로 다스릴 것을 강조하였다. 또 백성들의 인성은 비열하기 때문에 인애로 교화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이는 성악설을 바탕으로 얘기한 것이다. 또 인의라는 사적 도덕은 법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효율적인 지배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인애보다 중형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공공성의 확립을 위해서는 평등하고 엄격한 법 집행이 필요하고 시대의 변천으로 말미암아 인과 예의 도덕정치는 효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유가의 인의를 비판한 내용이다.묵자, 도가, 법가는 이렇게 각각 다른 이유로 유가를 비판하였다. 유가의 사상은 이상적이라는 것에 공통적으로 비판했다고 생각한다.
F3A Surviving DevilThere are many conspiracy theories in the world. There are many conspiracy theories in the world, such as the conspiracy theory that reptilian actually exists, or the case of 9.11 terrorist attacks by the government. My theory of conspiracy is that Hitler disguised suicide and lived well in Argentina for over 10 years. The world is still very controversial as to whether Hitler really committed suicide. Because there is so much evidence that Hitler was alive and fully feasible. The CIA confidential documents were disclosed as evidence to support my argument, the skull, known as Hitler's skeleton, was not actually Hitler's, and finally, there are witnesses who say they saw Hitler.First, A CIA document has been released, claiming that German President Hitler, who was known to have committed suicide in 1945 as the main culprit of World War II, has long been alive and immortal. On October 27, the U.S. Central Intelligence Agency released the report code CIMELODY 3, the se in danger of falling into the hands of the Soviet army, even Hitler's presidential residence in Berlin, Germany. After losing the war on April 30, 1945, he married his lover Eva Brown in an underground bunker at the president's residence, and then killed himself with a pistol after swallowing a cyanide capsule. Soon after, the combatants who had taken over Berlin were the first to dig underground in the residence of the president and dig up Hitler and his body and the body was reportedly taken to the Soviet Union. The Soviet Union, which took over Berlin at that time, announced that Hitler committed suicide after eating cyanide in his underground bunker. It is also said that shortly before Hitler committed suicide, he ordered his men to burn up immediately after he died, and in fact, the body of the dead Hitler was badly burned. This is the fact that everyone knows about Hitler's death. However, it is said that Hitler's suicide, known as this, was a lie, and that he lived long after W girlfriend Eva Brown (Sigmund). So the body of Hitler, who was known to have committed suicide on April 30, 45, did not actually kill himself, but killed his own band and disguised it as his own. He burned the band to disguise his own suicide and hide the truth. It is said that Hitler deliberately burned the body of the band in order to keep it from being seen on display at the enemy's museum after his death. And the British historian Gerard Williams said the body was never Hitler's body. The body is claimed to be the body of a 40-year-old Russian woman similar to Hitler.Second, On September 27, 2009 in Russia, Adolf Hitler's remains were disclosed, when Professor Nick Bellantonin, an archaeologist and bone specialist at the University of Connecticut in the United States, approached them deeply. Russia's National Archives revealed the remains of Hitler's long-storaged remains, and Professor Nick, who investigated them, made a shocking claim. Hitler's skull is not a genuine Hitler skuld then Hitler went through Argentina and into the depths of the Andes, continuing his life for a long time (Fest).Third, there are many witnesses in Argentina who say they witnessed Hitler. There is also evidence that some residents saw two daughters born between Hitler and Eva Brown, and that they saw Hitler's son. A German newspaper once reported that Hitler's son lived in Argentina. There is also evidence that in 1956 a woman worked as a housekeeper for Hitler and Eva Brown at the residence of Inalco, Argentina. Argentine historian Abel BastI said she worked as a housekeeper for a month at the residence of Inalco in Argentina and secured the sightings and testimony that she often saw Hitler and Eva Brown. Hitler traveled to Colombia, Argentina, and the Andes and continued to live for more than 17 years after the defeat. When he was president in Germany, he plundered the Jewish and colonial people of gold and gold, and for a long time he took them with him and sold them in his exile und bunker where Hitler committed suicide and kept it after announcing it was Hitler's remains. As mentioned above, however, the skeleton is not Hitler's but the skull of a woman under the age of 40. So no one knows where Hitler went at that time. However, it is true that Hitler was alive because there are lots of evidence and witnesses that Hitler had fled and that he had seen Hitler.In conclusion, Evidence continues to show that Hitler, the worst dictator of all time, is alive. There have been constant reports of Hitler, including classified documents released by the CIA, research results that his skull, which he thought was the remains of Hitler, belonged to Hitler's band, and testimony from witnesses who saw Hitler. There are also occasional rumors that Hitler was able to hide in Argentina, avoiding the surveillance of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in fact, have made secret agreements with the United States and the Soviet Union. Even now, more than 50 years after Hitler d사하
논어, 맹자 소개영상 감상문안예은 2018311429논어는 총 12000여자, 총 20편, 그리고 총 516장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논어는 어떤 글자로 시작을 할까? 논어는 모든 편을 시작할 때 “자왈”이라는 글자로 시작을 한다고 한다. 논어 시작의 첫 문장은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고 시작하는데 이 뜻은 공자가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에 맞춰 몸에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라는 뜻이다. 따라서 논어의 첫 글자는 자왈을 뺀 ‘학’이다. 영상에서 만약 논어가 유일신 문화에서 쓰여졌다면 어땠을지 에 대해 얘기했다. 우선 유일신문화라는 것은 우상숭배를 허락하지 않으니 제일 중요한 것은 유일신을 믿느냐, 안 믿느냐 일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논어가 유일신 문화에서 쓰여졌다면 첫 글자는 학(學)이 아니라 신(信)이었을 것이다. 학과 신의 차이는 무엇일까? 자연신은 사람이 잘못되지 않게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학이 중요하다. 또한 동아시아 신들은 답을 해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 사람은 경의 의미를 해독하여 ‘나’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찾기 위해 배워야 한다. 동아시아 신들의 답은 오경(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은 배움으로 지금의 나를 넘어서 더 크고 더 넓은 미래의 나를 만난다. 다음 유일신문화는 신과 인간의 관계가 계약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신의 뜻을 실행할 의무를 가지고 신은 계약에 준수여부에 따라 심판한다. 또한 인간은 무엇을 할지 모르면 기도하고 신은 그에 대해 응답, 계시한다.맹자는 중국 전국시대에 활동한 유학 사상가이다. 맹자는 성선설을 강조했다. 성선설은 맹자사상의 뿌리이다. 그러나 성선설이 맹자사상의 전체는 아니다. 맹자사상의 핵심은 사람정치이다. 사람정치란 따뜻한 마음을 지닌 지도자가 가장 소외된 사람들까지 품어주는 정치 방식이다. 맹자는 정치와 개인을 분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에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맹자가 가장 중시한 정치는 사람됨에 기초한 정치 추구이다. 독일의 사회과학자인 막스 베버는 정치가의 자질을 네 개로 나누었는데, 첫 번째로 대의에 대한 열정, 두 번째는 국가 공권력사용에 대한 책임감, 마지막 세 번째는 열정과 책임감 사이의 균형 감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맹자가 중요시하는 사람됨은 전인적 자질이다.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맹자는 주장했다. 수기치인은 유교사상의 핵심이다. 수기치인이란 스스로 수양하고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사실상 수기치인은 공자의 정신이다. 맹자가 제시하는 사람됨은 용기, 측은지심, 시중, 원칙주의가 있다. 먼저 용기는 스스로 돌이켜 부끄러움이 없는데 에서 비롯되는 도덕적 용기를 말한다. 측은지심은 단순한 동정심을 넘어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다. 다음 시중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적절하게 처신하는 능력이다. 맹자는 모든 성인의 특성들을 집대성한 공자가 갖고 있는 특성이라고 생각했다. 즉 완전한 성인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원칙주의는 자신이 옳게 여기는 원칙을 어떤 상황에서도 지키는 태도, 인과 의를 지켜야 한다고 얘기했다. 맹자에게 있어서 대인은 맹자가 얘기한 사람됨의 속성을 종합적으로 구비한 인물이다. 맹자는 주체적인 정치원칙을 제시했는데, 첫 번째로 백성들의 마음을 살펴야 하고 두 번째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이 어떠한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즉 기본적인 생활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국제관계에서 어떻게 정치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하였다.논어에서도 그렇고 맹자가 말한 정치도 그렇고 모두 백성을 위한, 사람을 위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맹자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됨을 강조했고 사람됨이 된 사람만이 정치를 하여 소외된 사람들도 돌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한 논어와 맹자의 공통점 중 하나는 자연적으로 무언가를 얻고 깨달음을 얻는 것보다는 자신의 노력, 배움을 먼저 하기를 중시한다. 첫 문단에 말했듯이 동아시아 신들은 우리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오경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맹자 또한 사람정치를 하기 위해 도덕적 용기와 측은지심, 시중 그리고 원칙주의를 행해야 한다고 했다. 도덕적 수양을 통해서 사람됨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대인이 됨으로써 정치를 하고 또한 도를 깨달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맹자는 자신이 얘기한 사람됨의 속성을 종합적으로 구비한 인물을 대인이라고 하였다. 대인이 되기 위해서 맹자가 얘기한 성선설을 이해하고 수행해야 한다고 느낀다.
19871987년이라는 년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나는 과거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되는 사건을 생각해보라면, 1987년 있었던 6월 민주항쟁을 꼽을 것이다. 그 6월은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또한 어떤 의미가 있는가?6월항쟁은 1987년 6월10일부터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다. 6월 민주항쟁 6•10민주항쟁, 6월 민주화 운동, 6월 민중항쟁 등으로 불린다.6월 민주항쟁의 배경과 과정은 이렇다.먼저 배경으로 1987년 10•26사건으로 17년간 독재정치를 펼치던 제 4공화국의 대통령 박정희가 사망하고, 새로 취임한 대통령 최규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힌다. 그러나 전두환 등을 비롯한 신군부가 군사반란, 쿠데타를 일으켜 군부 내 실권을 장악하고 이후 전두환은 최규하를 로봇처럼 조종했다. 이후 광주 시민들이 민주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시위규모는 곧바로 커졌다. 하지만 신군부는 이를 무력으로 유혈 진압하였다. 이 사건을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라 한다. 이후 전두환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으로 추대되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시민들을 분노케 하여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게 된 대표적인 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은 1987년 1월 13일 자정 경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연행되었다.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 추진 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 받고 있던 박종운을 잡기 위해 연행한 것이었다. 취조실로 박종철을 연행해간 보안 당국은 박종운의 소재를 물었으나, 박종철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경찰은 잔혹한 폭행과 정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하였고, 박종철은 끝내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하였다. 당황한 경찰들은 의사를 불러 검진했지만 의사가 도착하기도 전에 박종철은 숨져있었다.그러나 당시 정부는 고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전폭적인 도움과 신뢰를 보내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자 합니다. 2가지의 국가 대사를 완성한 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개헌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면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한 좋은 방안이 발견될 수 있을 것으로 본인은 확신하는 바입니다. 이제 우리의 정치도 나라와 사회 성장발전에 부응하는 선진 정치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신념에서 본인은 남은 기간 동안 민주발전의 기반을 더욱 넓히고 사회 안정과 국민 화합을 다지기 위한 조치들을 더욱 과감하게 추진해 나가고자 합니다. 그러한 노력의 하나로 본인은 국민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지방자치제를 강제적으로 실시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 문제가 조속히 매듭지어져서 본인의 임기 내에 지방 자치가 시작된다면 민주 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튼튼한 토대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제는 우리의 정치도 시대의 변천과 사회의 발전에 따라 꾸준한 신진대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낡은 시대의 낡은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인물에게 발전하는 나라의 장래를 의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전환기의 정치를 이끌어나갈 참신하고 유능한 정치 신진들을 광범위하게 포용하고 육성하는 정당의 노력은 매우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1987년 4월 13일 대통령 전두환이후 전두환은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1987년 내에 공정한 선거관리를 통해 자유 경선의 분위기가 보장되는 가운데 차질 없이 실시할 수 있게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으며, 또 민정당의 후임 대통령 후보는 조속한 시일 안에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인물 가운데서 당헌 절차와 민주 방식에 따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호언조치’라는 그 이름대로 현행 헌법에 따라 권력을 이양한다는 뜻이었다. 그들은 국민들의 큰 기대를 얻을 것이라 믿었으나 기대는커녕 오히려 반발을 가져오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곧바로 이튿날인 4월14일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 등 각계 인사들이, 호헌 조치를리를 경질하였다. 이후 이한기를 신임 총리로 교체하였다. 이튿날 전국의 재야지도자 2200여 명이 함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였고, 한국 기독교 장로회 향린교회에서 발기인 대회를 열었고 ‘호헌 조치 철회 및 직선제 개헌 공동쟁취 선언’을 발표하였다.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인 이한열이 학교 앞 시위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그 후 7월 5일날 사망하였다.1987년 6월 10일 잠실체육관에서 민주정의당 제 4차 전당대회 및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 개회가 열렸고, 노태우는 이 대회에서 민정당의 제 13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같은 날 전국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주최로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서울주교좌대성당에서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개최하였다.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는 오후 6시를 기해 전두환 독재정권에 대한 민중항쟁의 뜻으로 차를 세워서 경적을 울려줄 것 또는 흰 손수건을 흔들어 달라고 지침을 내리어 택시운전수들의 경적소리와 시내버스에서 흰 손수건을 흔드는 시민들이 줄을 이었다. 여고생들은 민중항쟁 참여자에게 마실 물과 도시락을 가져다 주는 등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을 하여 서울 도심에서 민중항쟁이 진행될 수 있었고, 특히 명동성당 농성 당시 성당 옆 계성여고 등에서 도시락과 물 등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농성이 진행될 수 있었다. 당시 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에서는 감사성찬례때 피아노를 연주할 전례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관계자가 경찰의 감시를 피해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6월 11일재야와 시민단체의 시위가 터지자, 치안당국은 전날 있었던 야권의 집회는 ‘폭력성을 드러낸 법질서 유린행위’ 였다고 지적하였고, 앞으로도 법질서 파괴 행위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치안본부장이었던 권복경은 야권의 집회와 관련한 발표를 통해서 주최 측이 비폭력집회를 열겠다고 공팽한 긴장은 계속되었다. 성당은 점거하고 있는 350여 명의 시위 농성자들은 오전 9시와 11시 50분 두 차례에 걸쳐 경찰저지선 50m 앞까지 진출해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농성자들이 돌이나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고, 경찰도 최루탄을 쏘지 않아 서로가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평화적인 모습이 계속되었으나 점거학생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연행, 구속된 사람들이 전원 석방될 때까지 농성을 계속하겠다고 밝혔고, 오후 2시부터는 서울지역 200여 명의 사제 신부들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대책회의를 열고 학생들을 지지하고 보호하겠다는 전날의 성명을 재확인했다.6월 14일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학생들은 오전 한때 성당 입구 밖으로 나와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으나 10시 20분 이후부터는 문화관 대강당에서 시국 토론회를 가졌으며 신도들은 오전 7시 미사를 비롯해서 예정된 휴일 미사에 참가했다. 오전, 오후 미사가 끝난 뒤에 성당광장에서 한때 연좌시위가 있었으나 충돌 없이 곧 해산했다. 그 날 오후 명동성당 주변에 모여든 서울시내 대학생 2000여 명은 상업은행 본점, 롯데쇼핑, 사보이 호텔, 중앙극장 그리고 퍼시픽 호텔 앞 등 명동 일대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경찰은 최루탄 발사를 자제했으며, 시위대 역시 돌과 화염병을 던지지 않아 이전과 같은 격렬한 시위 양상은 없었다. 김병도 명동성당 주인 신부는 성명을 낸 뒤, “민주화를 위한 학생들의 노력에 성원을 보내지만 교회가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모든 부분에서 학생들과 뜻을 같이할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직장과 학교 그리고 가정으로 돌아가 달라” 고 권고했다.6월 15일명동성당을 점거하고 있던 농성자들은 사제단의 뜻을 받아들여 해산했다. 그들은 오후 1시 30분 농성을 해상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고, 오후 2시 성당 입구에서 해산식을 가졌다. 그러나 서울을 비롯한 지역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계속되었고, 특히 서울의 경우 명동을 비롯한 시내 일부 대학에서 명동 사태를 다. 이후 노태우는 대통령 선거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복권 및 구속자 석방, 사면, 감형 등을 비롯 야당과 재야 세력이 주장해온 헌법 개헌 등의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요구를 대폭 수용하고 직선제 형태의 대통령 선거를 골자로 하는 내용의 8개항의 시국수습방안을 발표한다. 이것을 6•29 선언이라고도 한다. 이것으로 제 5공화국의 정치적 위기는 극복된다. 1987년 7월 전두환은 노태우의 6•29선언을 전격 수용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여, 야 합의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새 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1988년 2월 평화적인 정부이양을 실행하도록 한다.직선제 개헌이라는 제도의 변경뿐만 아니라 이의 민주적 실천을 위하여 자유로운 출마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 국민의 올바른 심판을 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대통령 선거법을 개정하여야 한다.정치권은 물론 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반목과 대결이 과감히 제거가 되어 국민적 화해와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인간의 존엄성은 더욱 존중되어야 하며, 국민 개개인의 기본적 인권은 최대한 신장되어야 한다.언론자유의 창달을 위해서 관련제도와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사회 각 부분의 자치와 자율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정당의 건전한 활동이 보장되는 가운데 대화와 타협의 정치 풍토가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밝고 맑은 사회건설을 위하여 과감한 사회 정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이어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와 재야 단체는 즉각적인 개헌작업착수와 전원석방 및 수배해제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다.항쟁 이후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의 6•29 수습 선언 이후 직선제 개헌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제 6공화국 새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거쳐 1987년 10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16년 만에 대통령 선거가 직접선거로 치러졌지만, 정통 민주세력이자 당시 야당의 중심축이었던 김대중 당시 통일민주당 고문과 김영삼 당시 통일 민주당 총재가 대통령 후보 출마를 놓고 공식 선거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