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승리를 위해, 우리는 오늘도 싸워야한다2016-10624경제학부 이주연에서 저자는 시스템의 전복을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의 수정보다는 철폐를 지향하는 그는,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각성해야한다고 말한다. 책을 읽고 난 뒤에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여성운동의 현장이었다. 구조개혁이라는 측면에서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은 닮은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 나는 노동운동은 지나치게 급진적이라는 막연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노동운동의 의의와 필요성을 긍정함에도 불구하고 투쟁의 현장을 외면하기도 했다. 책을 읽는 중, 활동가들의 급진적인 태도는 그들에게 노동운동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절실한 문제였기에 나오는 필연적인 결과임을 깨달았다.지금까지 노동운동은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일이었다. 이에 머릿속으로는 현 시스템의 개선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온전히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충분히 공감할 수 없었다. 공감의 차이는 방법론의 차이로 이어져 나를 ‘실용주의자’ 혹은 ‘타협주의자’로 만들었다. 반면, 여성운동은 당장 나에게 닥친 문제였다. 여성운동은 생존의 영역에 있었기에 모든 것이 절실하고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타협은 방관을 의미했다. 노동자에게 노동운동이란, 나에게 여성운동과 같은 문제라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 그들을 보는 시각 또한 변했다.우리는 정치적인 존재가 되어야한다저자의 주장에 가장 크게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정파주의에 대한 긍정’이었다. 저자는 정파주의를 지향하고, 종파주의를 지양해야한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나 또한 우리의 모든 행동은 정치적인 것이 되어야하고, 정치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담론만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이루어내고자 하는 세상으로 향하는 모든 발자국은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적인 행동을 지양해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또한 각자의 이해관계를 달성하기 위해 조그마한 행동이라도 실천하고 있다면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부분에도 정치적인 의도는 담겨있다. 단어의 선택이 대표적인 예시다. 저자도 말했듯이, 언어는 생각의 근본을 이룬다. 이에 의식하지 못하고 넘기더라도 계속해서 해당 단어를 사용하다보면, 그 단어가 생기게 된 의도에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책에서는 ‘노사분규’와 같은 단어를 대표적인 예시로 든다. 저자에 의하면 긍정적인 의미를 담긴 단어에는 자본가를 앞에 두면서, 분규와 같은 단어에는 노동자가 앞으로 둔 것은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다. 분규가 발생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지우기 위해 발생한 단어라는 것이다.저자의 주장은 여성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때, ‘남녀’라는 단어의 사용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순간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여성운동에 발을 담그고 난 후, 나에게 ‘남녀’라는 단어의 조합은 당연한 것이 아닌, 젠더 권력의 차이에서 발생한 위계적 질서를 남은 단어였다. 뚜렷한 이유 없이 여성과 남성을 함께 부를 때는 한글 자모순으로 배치하지 않고 무조건 남성을 앞으로 부른다. 남녀, 부모, 형제자매, 신사숙녀와 같은 단어들이 그렇다. 반면 부정적인 용어에서는 대개 여성을 지칭하는 표현이 앞에 온다. 년놈, 애미애비 등이 그러하다. 단어의 사용은 생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 속에 녹아있는 의도를 섬세하게 파악하는 것은 귀찮고 쓸데없는 일로 여기기도 쉽다. 하지만 사소한 단어의 사용이 모여 집단 간의 위계질서가 확립된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사소한 단어의 사용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집단 간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이와 같이 스스로가 정치적인 존재임을 인식하면, 평소에 지나쳤던 사소한 행동마저도 정치적인 것이었음을 자각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무의식적인 행동 중 대다수는 체제의 유지를 위해 기득권에 맞춰져있기에, 사소한 행동의 정치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사회의 착취 시스템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과 같다. 불편한 진실을 깨달은 뒤에는 우리는 이전보다 자신다워질 수 있다. 사회는 기득권층에게 맞추어져 있고, 그들은 우리를 착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체제를 견고하고 치밀하게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피지배계층은 없다. 괜찮기를 강요받던 여성들과 노동자들은 스스로가 괜찮지 않음을 인식할 수 있다. 저자의 말에 빌리자면, 착취당하던 우리들은 각성할 수 있다.승리를 위해, 우리는 각성해야만 한다저자는 승리의 경험은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한번이라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는 총력투쟁을 전개해야하고, 그러기 위해 노동자는 각성해야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하지만, 자신다워질 줄 알아야 상대방과도 싸울 수 있다. 진정한 노동자계급의 승리를 위해서는 불편한 진실을 깨달아야한다. 여성운동에서 이러한 각성은 ‘빨간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빨간약이란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소재로, 기존에 갇혀 있던 세계에서 뛰쳐나와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만든 어떤 것을 의미한다. 여성운동에서의 빨간약은 ‘여성혐오의 존재를 인정한 시점 또는 그 계기’를 뜻한다. 여성들은 살아가며 크고 작은 불편함을 느껴왔지만 불편과 불쾌를 인지하고 말하는 것조차 억압받아왔다. 개인들이 조금씩 불편함을 외치기 시작했을 때, 남성들은 ‘이거 나만 불편해?’라는 표현으로 여성들을 조롱하며 불편함을 말하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존재로 폄하했다. 그러나 개개인의 불편한 감성과 의심이 모여 페미니즘 진영을 이루는 순간, 그 불편함은 이유를 찾았고 여성들을 억압해왔던 현실을 보여주었다.불편한 진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기존의 체제로부터 낙오되기도 쉽다. 페미니즘을 외치는 여성들은 작게는 조롱부터 크게는 협박과 물리적 폭력에까지 시달리기도 한다. 노동자들이라고 크게 다른 상황에 처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득권층에 저항하는 피지배계층은 이전보다 더 크고 노골적인 억압에 시달린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모여 노동자계급이라는 커다란 집단을 이루고 이들이 총력으로 투쟁하지 않는다면, 그 억압은 끝없이 지속될 것이고 승리를 경험할 일말의 가능성 또한 사라지고 만다. 수백 년간 이어져온 착취를 끝내고 자본주의라는 존재를 소멸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한 번의 승리를 얻어야한다. 노동자들의 각성을 계기로 터져 나온 투쟁은 결코 가볍지 않고 마침내 진정한 노동자계급의 승리를 쟁취하는 바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