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현재 한국의 탈 연구는 전경욱의 『한국의 탈』을 중심으로 지역별 탈놀이를 통한 분류에 기초한 경우가 많다. 탈놀이에 대한 연구는 많이 진행되면서 놀이에 따라 탈을 범주에 묶어 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탈 자체에 대한 형태 및 의미적인 접근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최근에 와서 탈에 대한 색채나 미감에 관한 논의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본 연구는 탈놀이에서 놀이 탈의 역할 별 성격과 형태를 전통 신화의 특성과 연관 지어 고 차로하고자 한다. 신화는 자연적인 현상이나 그에 따른 생각 등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 설명은 이야기를 통해 발현되었으므로 신화는 허구적 서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대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은 날씨의 변화를 인식하고 그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수렵 사회에서는 개인의 연습에 따라 결과물을 얻는 것이 수월했겠지만, 막 농사를 짓기 시작하던 때에는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결과물을 좋게 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의 역량을 넘는 외부 요인이 농사의 결과를 좌우했다. 날씨가 어떠했느냐에 따라 흉작 인지 풍작인지가 갈렸기 때문이다. ‘날씨’라는 것은 경험 밖 세계이다. 비가 내리고, 눈이 오 는 것이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디서 시작하는지 볼 수 없으며 당연히 경험하지 못한다. 이러한 경험 밖 세계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신화의 시작이다. 풍요제 의의 기능을 가 진 가면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Ⅱ. 한국 신화와 신화 속 인간한국의 신화는 인간과 신의 동질성 관념을 나타내는 내용이 많다. 신과 인간의 근원적 동질성을 전제하면서 그 합치를 지향하는 것이 신화를 통해 현시되는 신 관념을 보인다. 인간 이 태생적으로 신성을 내재하고 있음을 전제하는 가운데 그것을 발현하여 신이 된 존재들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한국의 신화 중 하나는 <바리데기>를 예로 들면, 바리데기는 공주였다. 하지만 그는 태어 나자마자 무참하게 버림을 받는다. 기다리던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탄소 원자의 크기는 철 원자에 비하여 매우 작다. 그러므로 철 원자와 탄소 원자를 섞으면 마치 콩에 좁쌀을 섞을 때처럼 탄소 원자는 철 원자들 사이의 공간에 들어가서 ‘침입형 고용체’를 만든다.탄소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많으면 많은 양의 탄소가 들어 갈 수 있지만, 공간이 작으면 탄소 원자가 들어갈 수 없으므로 고용체를 만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철 원자 사이에 생긴 ‘공간의 크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1. 탄소강의 상태 변화1.1. 공석강의 상태 변화 - 펄라이트의 생성 -공석강(0.8% C)을 723℃ 이상으로 가열하면 오스테나이트(γ고용체)로 된다. 오스테나이트(γ고용체)의 결정 구조는 면심 입방 격자(FCC)이므로 많은 양의 탄소가 고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0.8% 정도의 탄소는 이 결정 구조 속에 충분히 고용되어있다. 마치 물속에 소금이 용해되어 소금물로 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이런 상태의 오스테나이트(γ고용체)를 천천히 냉각하면 A1 변태 온도인 723℃에서 두 종류의 현상이 동시에 일어난다.
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authentikòs(어텐티코스)’, 즉 동일하다는 말에서 유래했으며 ‘eauton’(자신)과 ‘theto'(정립)의 결합이다. 자주적인 행동, 권위를 얻음, 유일무이, 순수, 진짜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서양에서 진정성의 개념은 철학이나 예술 분야에 먼저 도입되었으며 복제품의 반대어인 ’원작‘, 위조품의 반대어인 ’진품‘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르네상스 시기는 역사와 유물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고, 고고학적 발굴이 증가한 시기였다. 출토유물은 역사에 대한 물질적인 증거였으며, 동시 에 상류계층은 출토유물을 소장하는 것이 그들의 부를 나타내고, 역사에 대한 지적 수준을 드러내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유물을 수집하고, 개인 저택에 전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출토유물에 비해 수 요가 너무 많다보니 유사하게 모방한 조각상들이 많아졌다. 이로 인해 모방 품과 진품을 구분하기 위한 감정가들이 등장했으며, 진정성 개념은 문화재 분야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1) 19세기에는 양식적 복원과 그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반복원 운동에서 진 정성의 개념이 새로이 나타난다. 19세기 중엽에는 보존과 수리에 관한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론이 등장했다. 유럽에서는 중요한 역사적 건물을 국가적 기념물로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기념물은 국민이 이룩한 업적을 알리기에 가장 적절한 양식으로 복원되었다. 복원을 최소화했던 이전 시대에 서 벗어나 19세기 중반 무렵에는 ‘양식적 복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양식적 복원이 유행하던 이 시기에 진정성은 ‘특정한 시기의 양식’이나 ‘이상적인 양식’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비올레 르 뒤크는 어떤 시대에도 존재하 지 않았던 완벽한 상태를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양식적 복원 개념을 바탕으로 복원을 한 결과 역사적 층위는 무시되고, 역사적 재료는 훼손되었다.
역사는 이야기다. 과거 살던 사람들이 움직이고 말하면서 생겨난 이야기들이 모이면 하나 의 역사가 된다. 그래서 역사를 안다는 것은, 과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들은 후에 그 이야기를 또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것은 역사와 전통을 배우 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알고 나면 당시 시대상황과 그에 따른 옛사 람들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는 힘이 생기고, 그를 통해 교훈을 얻어 현 상황에 적용하게 된 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래서 현재와 미래에 더 나은 삶을 꾸릴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런 ‘필요성’도 중요하지만 누구나 쉽게 ‘흥미’를 가지는 이야기라는 점도 주목해야 할 것이 다. 역사가 이야기라는 것을 바탕으로, 전통에 대해 생각해보면 내 견해는 이렇다. 사전적 정 의에 의하면 전통은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하여 내려오는 사상, 관습, 행동 따위의 양식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지난시대에’, ‘전하 여 내려온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전통이란 어쩌면 과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방 법을 말한다. 과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다. 역사서를 읽는 것은 당연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전통은, 당시와 아주 똑같을 순 없지만 당시의 옷을 입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감상하면서, 책에 적힌 이야기를 단순히 읽는 것보 다 더 직접적으로 옛 사람들의 느낌을 엿볼 수 있는 방법이다. 유물 또한 마찬가지다. 당시 유물이 만들어진 환경, 유물이 만들어진 방식, 쓰임새 등은 모두 과거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내가 공예품 중에 관심 있는 유물로 ‘황비창천명경’을 꼽 게 된 이유는 유물 주변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유물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한 컷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전통과 역사를 배우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너무 단순하게 그것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황비창천명경에 채워진 한 장면이 품은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진묘수가 등장하는 것은 중국에서는 이미 전국시대 초나라부터이며, 진대에는 진묘수 부장 습속이 유행하지 않다가 후한 중만기에야 진묘수들이 출현하게 되었다 진묘수라 부를 수 있는 동물상이 본격적으로 출현한 때는 후한대부터이며, 지역마다 형태에는 차이가 있다. 서진대에 들어서는 동물 형상의 진묘수와 무사 형상의 진묘용을 부장하는 풍조가 현저해 진다. 진묘수는 대개 소와 같은 네 발 짐승으로, 등에는 갈기가 뻗었고, 머리를 숙여 뿔로 들이받는 형태가 많은데, 3개의 뿔을 가진 진묘수와 독각계(獨角系) 진묘수도 보인다. 동진대에는 종류도 적고 조형도 단순화하며, 남경 일대에서 물소 모양의 진묘수가 발견된 정도이다. 남북조시기 북위에서는 효문제 이후 묘장 내에 俑(용)을 부장하는 풍습이 생겨 동물 형상 진묘수와 인물 모양 진묘용이 한 쌍씩 나오는데, 동물 형상 진묘수는 머리를 들고 꿇어앉은 자세를 취하고, 얼굴은 호랑이에서 사자로 변화하며, 앞 다리에는 화염문의 날개가있고, 등뼈 부분에는 갈기가 솟아있다. 남조는 북조에 비해 무덤에 부장되는 俑이 적으며 동진의 도용이 그대로 이어진다. 수당대에는 후장의 풍습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종류와 많은 양이 출현한다. 따라서 진묘수는 후한대부터 ‘뿔과 날개’를 지닌 상상의 동물로 정형화되어 당대까지 계속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뿔과 날개를 지닌 상상의 동물은 귀신을 진정시키고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며, 사자의 영혼을 보호하는 특이한 신수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뿔 중에서도 하나만 솟아있는 뿔은 초능력의 상징이었다. 후한의 석제 진묘수인데 엎드린 호랑이 형상이다. 신체가 간략하게 표현되었지만, 눈이 돌출되고 코가 높고 입을 벌리고 이빨과 혀가표현되었다. 한 대에는 호랑이가 사귀(邪鬼)를 쫓아낸다고 하여 호형 진묘수가 많이출토된다. 『산해경』에 온갖 귀신이 출입하는 귀문이라는 곳에 신이 있는데 나쁜해릴 끼치는 귀신이 있으면 갈대 줄로 묶어서 호랑이에게 먹인다고 전한다. 이러한 전래에 의해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호랑이를 벽사신앙의 존재로 인식해왔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