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전자공학부2015171008 이아영처음 오페라를 관람하기 전, 의문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인어공주’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이 줄거리로부터, 여주인공은 목소리를 잃을 터인데 대체 이것을 어떻게 오페라를 풀어낼까 하는 의문이었다. 1막이 왕자와 공주가 함께 부르는 이중창이 아닌 혼자 부르는 아리아로 끝나며 2막이 될 때까지도 대사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궁금한 가운데 무대가 시작되었다.1막에서는 공주가 사냥을 하는 왕자에게 반하고, 마녀 예지바바에게 찾아가 배신당할 경우의 경고를 무릅쓰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놓은 후 인간의 몸을 얻어낸다. 초록색 옷을 입은 숲의 정령들이 춤추며 돌아다니는 처음 장면부터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해 내었다. 주인공들이 동그랗게 마련된 무대(호수)에서 달빛과 함께 반짝거리는 파도 사이로 움직이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2막에서는 왕자가 루살카에게 많은 구애를 하고, 결국 함께 왕자의 궁전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왕자는 처음 보는 외국 공주의 유혹에 넘어가게 되고 루살카는 배신감과 실망감에 휩싸여 호수로 돌아온다. 여기서는 호수 대신에 온통 빨간색으로 되어진 궁전이 등장한다. 1막에서 보았던 호수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 풍겨져 나온다. 궁전에 있는 사람들 또한 호수에서 등장했던 신비롭고 순수한 숲의 정령들과는 다르게 이국적이고 유혹적인 느낌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루살카가 배신당한 후의 초라한 모습을 보일 때, 파랗고 하얀 조명이 비춰지는데, 조명 덕분인지 루살카가 더 수척해 보였고 강렬한 무대와 큰 대조를 이루었다. 루살카가 돌아간 이후 무대는 고요한 달빛과 잔잔한 호수의 물결으로 가득차는데, 이 때 조명과 무대소품 등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오묘하고 신비롭게 느껴지는 놀라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무대연출이 정말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다.3막에서는 인간으로서도, 인어로서도 살 수 없는 루살카와 그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아버지 보드닉, 마녀 예지바바가 등장한다. 예지바바는 왕자를 칼로 죽이라 하지만 루살카는 차마 죽이지 못하는 와중에 왕자는 다시 루살카에게 돌아가 사과하고 그녀에게 입맞춤하며 죽어간다. 여기서는 1막과 같은 호수가 무대로 등장한다. 그러나 분명 같은 호수로 이루어진 무대인데 조명을 더 어둡게 한 탓인지, 루살카의 처지 때문인지 조금 더 쓸쓸해 보였다. 또한 루살카의 의상이 새하얗게 바뀌어서 나오는데, 왕자로 인한 허전하고 공허한 루살카의 마음이 더 잘 전달되는 것만 같았다.‘루살카’는 이전에 본 ‘라 트라비아타’와는 조금 달랐다. 이전 공연의 무대는 검정색과 하얀색의 대비로 가구들과 배경을 꾸며 심플하고 깔끔한 느낌을 주었던 무대였던 것과 달리 이번 무대는 첫 장면부터 끝까지 화려하여 보는 사람의 눈을 휘어잡았다. 또한 이전 공연에서는 무대에 다른 소품들이 많이 없어 주인공에게 집중이 더 잘 되었던 반면 이번 오페라에서는 주인공보다는 무대에 자꾸 눈이 가서 집중이 흩어지기도 했다. 의상 면에 있어서는 이전에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와 나머지 하객들 등 많은 주인공들이 등장하지만 의상들이 획일적이어서 처음에 누가 주인공인지 찾아내야 했는데, 이번에는 의상만으로도 주인공의 확실한 구분이 가능해서 눈에 쏙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조명 또한 ‘라 트아비아타’에서는 갑자기 많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몇 장면 이외에는 조명을 활용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루살카’에서는 조명들을 주인공의 성격과 상황에 어울리게 무대 연출에 큰 역할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처음에 궁금증을 가지고 보았던 왕자와 공주와의 이중창은 왕자와 외국 공주와의 이중창으로 2막에서 대체되었다. 루살카와 외국 공주가 1막과 2막에서 각각 왕자와 이중창을 이루며 다른 느낌의 노래를 만들어 내었다. 다만 루살카가 주인공인 것에 비해 아리아의 비중은 많이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1막에서 생각보다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1막에서의 전개를 늦춰 루살카의 아리아 비중을 높이고 2막과 3막을 빠르게 전개시켰다면 루살카의 노래를 더 많이 등장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2막에서는 아버지 보드닉이 루살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외국 여자에게 유혹당한 남자와 루살카를 바라보며 루살카를 안쓰러워하며 마음아파한다. 결국 마지막 부분에서 보드닉이 루살카를 데려가는데, 여기서 의아한 모습이 들었다. 보드닉이 루살카를 데려갈 때, 루살카를 데리고 바로 퇴장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퇴장했다 입장했다를 반복했는데, 그동안 보드닉의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만 들려주었기에 루살카를 데리고 우왕좌왕하는 느낌보다는 한번에 퇴장하거나 루살카가 직접 자신의 발로 무대를 퇴장하여 인간세상을 떠나는 설정으로 구성했더라면 더 깔끔한 구성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극중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몸짓으로나 종이로도 충분히 알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기인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루살카가 2막에서 왕자에게 자신을 어필하며 상황을 바꾸려 해보았으면 어땠을까. 자신의 모습을 자기 자신조차 아껴주고 인정하며 사랑해주지 않는데 과연 누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자존감이 부쩍 낮아진 현대인들에게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남겨준 게 아닐까? 사회가 풍요로워지면 풍요로워질수록, 현대인들의 자존감은 점점 결핍될 것이다. 자본은 생존의 불안을 만들어내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결국에는 자신을 깔아내린다. 진정한 자아실현은 물질적인 것 등의 외부적 환경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적인 면에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현대인들은 서로를 깎아내리며 비난하고 자신을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이 오페라를 보며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고, 나 또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인정하며 나 자신을 아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이 작품은 특히 여성의 시선으로 오페라를 제작했다는 것이 돋보인다. 사랑이라는 관점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여성이 느끼는 사랑의 대한 감정을 노래 가사로나 행동으로 세심하게 표현해 내었다. 그러나 커리어 우먼들이 많아지고 자신의 일을 중요시하며 자기 자신을 0순위로 삼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서, 이 주인공처럼 자신의 목소리만큼 중요한 것을 희생해서까지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여자가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보았고 옛날에 비해 여성의 지위와 사고방식들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루살카는 2막에서 새로운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되고, 처음 맛보는 인간세상에서 혼란스러움과 당혹스러움의 감정을 겪는다. 자신이 상상했던 동경이 깨지는 것을 맛보며 꿈을 꾸던 세계와 많이 달라 무너지는 루살카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모습을 보며 내가 처음 대학을 들어올 때가 생각났다. 대학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입시에 치여서 대학에 꿈과 로망을 품고 공부했었던 나는 실망도 많이 했다. 아름답고 낭만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캠퍼스 라이프는 겉보기와 많이 달랐다. 노트북을 한 손에 들고 다니는 모습이 멋있게만 보였는데, 실상은 과제와 공부의 연속으로 인한 모습이었다. 고등학생 때에 비해서 혼자 다니는 일이 잦아지면서 외롭기도 했다. 갑자기 달라진 환경과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 루살카처럼 방황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했지만, 혼자 다니며 외로워했던 내 모습은 지금의 내 모습에 자립심을 길러주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인간관계에 갈등했던 나의 모습은 다양한 사람들의 사고와 생각들을 수용하며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 페이스대로 대학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나름대로 잘 적응해 내었다고 생각한다.아마 내 인생에서,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 이 대학은 아직 첫걸음일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위기와 고난이 닥쳐올지는 모르겠지만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해 낸 것처럼 앞으로도 멋있게 살아가고 싶다.‘라 트아비아타’에 이어 ‘루살카’까지 관람한 후, 오페라에 조금 눈을 뜬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몇 번 관람하고 나니 오페라에 대해 아직 잘은 모르지만 어떤 장르의 극인지, 노래로 극을 풀어나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등 오페라가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는 알 것 같았다. 영화, 연극, 뮤지컬은 여러 번 관람하며 즐겨 보았던 것에 비해, 오페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고, 특히 오페라가 다른 극들에 비해 가격차이도 심해 가볍게 보기에는 선뜻 선택하지 못했었다. 과거의 이런 모습들의 나에게는 오페라란 신선하지만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였다. 이 강의명을 처음 보았을 때 강한 끌림에 이끌려, 오페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내가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 주저없이 선택했는데, 오페라에 대해 정말 많이 알고 얻어가는 기회가 되었다.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을 표하며, 이제 여유가 있을 때 오페라에도 관심을 가져 오페라를 관람하는 교양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전기전자공학부2015171008 이아영‘라 트라이바타’는 사교계 여성인 비올레타와 평범한 남성인 알프레드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인 소설 를 각색한 오페라로 당대 사회를 비판했던 작품이다.1막의 넓은 무대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검정색과 흰색, 단 2가지의 색만 존재했다. 벽은 까맣고, 의자와 테이블을 포함한 모든 가구들, 주인공의 옷도 하얀색이었다. 깨끗한 인간성과 사랑을 지닌 인물을 상징하려고 한 것일까. 그러나 검정색의 어두운 벽은 현실 세계를 암시하듯 그 하얀 색을 대비시키면서 압도할 듯 느껴졌다. 전체적으로 처음부터 흑백의 대비에서 심플하지만 슬픔이 묻어나왔다.2막의 공간은 화려한 파리와는 다르게 근교의 소박한 별장이다. 알프레드와 비올레타의 순수하고 소박한 사랑처럼, 여전히, 순수함을 나타내는 흰 가구가 있고 바닥에는 붉은 꽃이 떨어져 있다. 2막에 새롭게 등장하는 무대요소는 붉은 꽃과 돈이다. 붉은 꽃은 앞으로의 시련을 모른 채 행복한 둘의 사랑으로, 흑백으로만 꾸며져 있던 무대이기에 꽃은 더 부각되어 보였는데, 실제로 둘의 사랑을 더 비극적으로 더 부각시키기 위한 연출가의 의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제르몽이 무대에서 돈을 비올레타에게 던질 때, 무대에 있던 꽃이 너무나도 슬프게 다가왔다. 사랑을 한순간에 깨버리는 현실적인 소재이며, 실제로 돈이면 다 된다는 우리 사회의 풍조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3막의 무대는 다시 어두워진다. 검은 벽과 의자, 검은 의상들의 친구들이 등장하며 다함께 박자에 맞춰 소품들을 하나씩 들고 움직이는 모습은 암흑적인 파리의 유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녀와 단둘이 홀로 지내면서 늙어가는 비올레타의 모습은 모두에게 버림받은 사람,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2막까지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사랑이 흰색에서 붉은색으로 흘러갔다면, 3막에서는 제르몽으로 인한 둘 사이의 오해의 골이 깊어져 붉은색에서 검정색으로 흘러가며, 절망으로 치닫는다. 뿌연 안개가 위에서 퍼지는 무대 장치도 3막에서의 암울함을 더해 주었다.4막에서는 눈이 내린다. 제르몽이 알프레도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주며 알프레도는 급히 비올레타를 다시 찾아가고, 너무 늦었지만 서로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갈등 해소, 재회, 아름다운 해피엔딩을 그려내며 1막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시 하얀 배경으로 돌아온다. 둘의 사랑은 비극적이었지만 결국 마무리에서는 처음과 같이 그들의 사랑은 변함없음을 이야기하며 다시 순수하게 끝내려는 연출가의 의도가 보였다.이와 같이, 이 오페라는 시각적인 흑백의 대비와 적절한 소재를 이용한 내용전개가 흥미로웠다. 문자 언어로만 보여줄 수 없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조명과 연기, 음악요소가 작품의 몰입도를 높인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오페라를 보는 내내 사람들의 표정과 주인공들의 상황에 맞는 노래가사와 선율에 집중하며 관람하였다. 연기를 하는 것인데도 그들의 표정은 각 막과 상황에 잘 맞게 표현하여 전혀 위화감이 없었고 오페라와 잘 어우러졌다. 표정 하나하나가 다르고 그 표정에서 진심이 어우러져 나오는 것이 내가 오페라에 몰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교수님께서는 소프라노의 노래와 4막의 주인공들이 모두 모여서 만들어내는 3중창을 주목해서 들어 보라고 하셨는데, 비올레타가 노래를 할 때의 손동작이 만들어내는 선은 부드러웠고 예뻤으며 가창력이 정말 뛰어나 혼자로도 그 수많은 관객들을 압도시켰다. 창법도 다양해서 각 노래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달랐다. 3중창 또한 매력적인 중저음을 가진 제르몽과 부드러운 목소리의 알프레도까지 만들어내는 노래는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공연을 보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곡이기도 했는데, 모든 사실이 밝혀진 가운데에서 세 주인공이 각각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세 주인공이 노래를 하며 만들어내는 화음이 아름다워서 슬프지만 아름다운, 순간 그런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실제로 베르디는 젊은 시절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잃은 뒤 다른 여가수와 동거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비난과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고, 그런 어려움 속에서 그는 이 작품으로 인습에 대한 저항을 표현했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으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토대로 만든 오페라여서 그런지 베르디의 마음이 더욱더 절절하고 쓸쓸하게 느껴졌다.그러나 오페라를 관람하면서 좋았던 면이 많은 만큼, 아쉽게 느껴졌던 점들 또한 많았다. 이 오페라의 제목 ‘라 트라비아타’는 ‘길을 잘못 든 여자’, ‘바른 길을 벗어난 여자’ 라는 뜻이다. 그러나 비올레타는 오페라만 관람한다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우아하고 품위가 있는 여자로 표현되어 있었다. 첫 막부터 남자들과 여자들이 다 함께 파티장에서 춤을 추고 있고, 그곳의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급인 것 같아 보인다. 의상은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더 화려했기에 오히려 의상 표현이 남성을 더 화려하게, 여성을 더 소박하게 해야 하지 않았나 싶었다. 특히 비올레타가 그 신분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거나 남성들과 한데 어우러지며 만족하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표현한 걸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그것보다는 비올레타의 낮은 신분을 더 강조해서 표현해야 하지 않았나 싶었다.또한 비올레타가 상상했던 것과 달리 체격이 크고 우람해서 현재의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과는 달라 처음에는 이입이 잘 되지 않았다. 한국인 중 성량이 크고 여리여리한 성악가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이해가 충분히 가면서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마지막 부분에서 비올레타가 쓰러지며 오페라가 막을 내린 것이었다. 마지막 순간인 만큼 이 오페라를 어떻게 끝날까 점점 궁금해지기도 했고 기대도 되었는데 알프레도와 재회를 하고 노래를 부르다가 알프레도의 품에 안겨 서서히, 천천히, 자그마하게 노래를 끝내며 눈을 감는 것을 상상한 것과는 달리 갑작스럽게 비올레타가 뒤로 확 넘어가면서 끝이 났다. 두 주인공이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뒤로 확 넘어가는 장면이 나와 허무하기도 했고 ‘이게 끝인가?’ ‘지금 비올레타가 죽은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울컥했던 감정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느낌이었다. 마무리를 잘 다듬었다면 사람들의 감정을 끌어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오페라의 제목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비올레타의 역은 한국의 기생 같은 역할이다. 비올레타는 상류사회 남성들의 사교계 모임에서 활동했으며, 시와 음악, 춤, 상식과 교양을 갖춰 남성들의 대화상대가 되는 여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비올레타를 보며 조선의 황진이가 떠올랐다. 조선의 기생인 황진이와 대선비인 서경덕의 사랑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동서양에 존재했던 마담이자 연예인이었던 유희적인 삶을 살았던 여성들에 대해 신분적, 계층적, 직업적으로 남성들의 노리개가 되면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조차 하지 못하고 성취도 하지 못했던 그 감정들을 느꼈다. 또한 옛날에는 이런 기생 신분 말고도 노예, 노비 등의 수많은 미천한 신분들이 존재했다. 100년 정도가 지난 지금, 우리는 모두가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다. 이 오페라를 관람함으로써 신분과 차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지금 내가 받고 있는 대우에,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감사함을 느꼈다.요즘 시대에는 직업이 천하거나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서 사랑을 울면서 포기하는 시대가 아니다. 이 오페라에서처럼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습적인 제도에 막히지 않고, 개인의 행복이 가족의 행복과 관련이 있는 것뿐이지 전혀 대치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몇몇 사람들은 아예 다른 측면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요즈음에도 술집 마담 등 이러한 역할을 하는 여성들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예전과 달리 집안에서의 구속 없이 자유롭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며 그것 또한 자신이 만들어나가는 삶의 일종이 되어가고 있다. 이 오페라에서 주인공들의 감정은 이해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는 너무 다른 사고방식을 가졌기에, 저 멀리 있는 세상의 모습으로만 보일 뿐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시대에 맞게 각색되어도 좋을 것 같다. 사랑이 현실적 상황에서 유지되는가, 개인의 사랑의 태도에 대한 문제, 시간에 따라 변하고 희미해질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을 지혜롭게 극복한 성숙한 사랑 혹은 아름다운 이별 등의 사랑의 본질에 대한 주제로 부각시켜서 각색해낸다면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많은 관객들에게, 특히 젊은이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처음 내가 본 오페라는 미국에서의 ‘라이온킹’이었는데, 너무 어릴 때 보았고, 내용도 제대로 숙지되지 않은 채로 자막도 없이 본 터라 오페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번에 관람한 ‘라 트라비아타’는 내가 라이온킹 이후에 본 첫 오페라인데, 줄거리를 숙지하고 가사 내용을 보면서 관람하니 오페라가 노래가 주를 이루며 진행되는 것인데도 노래 가사에 주인공의 대사가 녹아들어가져 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받아들이며 관람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나 또한 공연을 이해하며 집중하면서 보고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가 느낄 수 있었다. 노래 가사가 자연스러운 한국말이나 영어로 이루어져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기회로 오페라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어 고맙고 소중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