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왜 한국에서 위키피디아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나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발달하지 않은 과거엔 나이가 많을수록 지혜로운 사람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한 공동체 내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마을의 대소사를 주관하였으며 그는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즉 나이가 많을수록 높은 사회적 위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 시기엔 경험이 곧 지식이었다. 하지만 매체가 점차 발달하게 되면서 지식을 후대로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 경험이 아닌 정보의 소유 여부가 지식인의 척도가 되었다. 이제 지식인들은 정보의 독점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인 입지를 굳혀나갔으며 기득권층들 역시 정보의 독점을 이용하여 사회 질서를 재생산하거나 통제하는 기제로 사용하였다. 중세 시절의 경우 성직자가 지식인의 역할을 맡았으며 근대에 들어선 과학자가 그 역할을 담당하였다. 성직자와 과학자 모두 중세와 근대로서 각자 활동한 시기는 다르지만 그들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정보를 독점하여 사회적으로 명예와 권력을 누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하지만 인터넷의 등장은 이전부터 이어져 오던 판세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 인터넷에 검색만한다면 누구나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들은 기존 기득권층과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던 계급의 정보 독점 현상에서 탈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이제는 정보의 소외 계층이었던 대중들이 모여 서로 힘을 합쳐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 정보 독점 현상의 완화와 함께 정보가 점차 ‘공공재’의 성격을 띠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집단 지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였다.이런 집단 지성의 실례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이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사용자 참여의 다국적 온라인 백과사전으로서 이제 지식인이 아닌 대중도 지식의 생산과 유통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백과사전의 대명사인 브리태니커는 온라인과 달리 실시간 업데이트가 불가능한 종이책의 단점과 더불어 기를 구가하고 있으며 총 문서는 4백만에 이를 만큼 방대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영어판 위키피디아 뿐만 아니라 스웨덴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프랑스어판 위키피디아들 모두 백만이 넘는 문서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의 강국이라고 불리고 있는 한국에서는 정작 위키피디아가 활발하지 않다. 한국어판 위키피디아는 2014년 11월 기준 약 29만개의 문서를 보유하고 있다. 총 문서량, 편집수, 관리자, 이용자, 활발한 이용자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여러 언어판 위키피디아 중에서 한국은 25위를 차지하였다. 이 데이터는 국민의 82%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터넷 강국’이라는 명성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는 위키피디아 사용률이 저조한 것일까?우선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한국인들이 위키피디아의 존재를 알고 있느냐는 지점이다. 한국은 구글을 사용하고 있는 전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와 달리 유일하게 ‘네이버’ 라는 포털 사이트의 영향력이 큰 나라이다. 유럽, 호주, 남미, 북미의 모든 국가에서 구글이 포털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네이버를 주로 이용하는 한국과 더불어 구글을 주로 사용하지 않는 국가는 ‘얀덱스’를 사용하는 러시아와 ‘바이두’를 사용하고 있는 중국이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대부분 포털에서 검색을 주로 하곤 한다. 특히 적극적으로 정보를 탐색하는 네티즌들도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포털 상단에 노출되는 정보를 제일 먼저 클릭하게 마련이다. 포털 사이트에 따라 노출되는 정보가 달라지는데, 구글의 경우 korea를 검색했을 때 위키피디아 사이트가 제일 상단에 노출된다. 구글을 이용하지 않는 러시아의 경우 ‘얀덱스’에서 한국을 뜻하는 корея를 검색했을 때 구글과 마찬가지로 러시어판 위키피디아가 제일 상단에 노출된다. 중국의 ‘바이두’ 역시 스크롤을 내리지 않더라도 위키피디아 사이트가 노출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네이버’에서 한국을 검색했을 땐 네이버에서 자체적으로 편집한 대한민국의 국가정보가 했을 경우 (출처: http://yandex.ru)이런 근본적인 이유를 제외하더라도 한국어판 위키피디아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활발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진 위키피디아 순위를 보면 한국은 25위에 머물러 있다. 한국어가 세계에서 많이 사용되지 않는 언어기 때문에 많은 정보가 올라올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스웨덴의 경우 원어민이 9백만으로서 7천만에 이르는 한국어 사용 인구수보다 적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위키피디아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하루에 생산되는 문서양이 3천개에 이르지만 한국의 경우 100여개에 머물러 있다.하지만 이런 양적 데이터의 드러난 면만 보고 결과를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하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어판 위키피디아가 양적으로 활발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나라의 많은 문서량이 ‘네티즌’에 의한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라고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지점이 존재한다. 바로 ‘봇’의 사용이다. 봇이란 위키피디아 이용자의 컴퓨터에서 작동하는 자동화된 편집 프로그램이다. 봇들은 철자와 문법 오류를 교정하는 간단한 과업에서부터 인구통계 데이터를 토대로 국가 페이지를 구축하거나 미국 항공우주국(보고서)를 토대로 소행성에 관한 항목을 작성하는 복잡한 과업까지 수행할 수 있다. 이렇듯이 봇의 사용은 컴퓨터가 자동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것으로서 이 자료를 통해서 위키피디아의 활발함을 논하기엔 무리가 있다.특히 세계에서 2위로 큰 위키피디아 문서량을 보유하고 있는 스웨덴의 경우 2012년에서 2013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문서량이 증가하였는데, 이는 이 시기에 스웨덴판 위키피디아에서 실시한 프로젝트 때문이다. 이 당시 스웨덴판 위키피디아는 여러 봇들을 활용하여 현존하는 동식물에 관한 문서를 작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지금까지도 다양한 봇들이 스웨덴 위키피디아의 문서의 반을 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스웨덴 위키피디아는 다른 국가의 위키피디아보다 약 10만여개의 문서 내용의 질적 수준이 낮다고 한다.스웨덴뿐만 깊이 순위에서 11위를 차지하였으며 필리핀의 경우 4위, 네덜란드의 경우 9위를 차지하였다.하지만 List of Wikipedias에서 4위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다른 국가와 달리 봇을 사용한 문서 수가 많이 없다. 그들은 "having no article at all is better than a very bad article."이라고 말하며 자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여 위키피디아의 문서를 작성할 때 일정한 기준을 두고 있다. 독일 위키피디아의 문서들은 다른 국가들보다 평균 문서 길이가 3,476바이트로서 긴 편이며 대부분 구체적이며 풍부하고 심도 깊은 정보를 다루고 있다. 이는 철두철미한 독일인의 성향이 녹아든 결과일 것이다. 또한 프랑스판 위키피디아는 논란이 되는 주제의 문서들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이 역시 과거 살롱에서 부터 시작된 프랑스의 활발한 토론문화에 기인한 특징일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어판 위키피디아처럼 한국 위키피디아도 한국인의 특성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 드러난다. 이를 통해 한국 위키피디아의 부진한 성적에 대하여 나름대로 그 이유를 파악해보고자 한다.29만여개의 문서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판 위키피디아는 언어 사용 인구가 적은 스웨덴이나 베트남이 백만여개의 문서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봤을 때 확실히 활발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봇’을 사용한 문서 작성들을 고려해본다면 단순히 문서의 수가 적다고 해서 한국판 위키피디아가 활발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해석이다. 2014년 7월 기준 한국판 위키피디아의 한달 간 페이지 뷰의 수는 약 1억 2천만으로서 스웨덴의 페이지 뷰 수인 1억 4천만과 비슷한 수준이다. 활발한 사용자의 경우도 스웨덴이 2,943명 한국이 2,407명으로서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활발한 사용자를 제외하고 전체 사용자로 그 기준을 확대해봤을 때 스웨덴의 경우 약 40만 명, 한국의 경우 약 30만 명의 사용자가 존재한다. 심지어 한국의 사용자들에게선 ‘차단’된을 의미한다. 토렌트는 시드 유지라는 ‘협업’을 통해 이뤄진다. 여러 명이 시드를 유지하여야만 내가 토렌트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시드를 유지해주어야 차후에 토렌트를 받게 될 개인들도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내가 하지 않아도 남들이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드 유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 자료가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이는 한국인들 대부분이 토렌트를 다운받자마자 배포를 하지 않고 삭제를 한다는 것을 풍자한 게시글이었다. 이처럼 ‘눈팅’만 하고 정보를 생산하는데 참여를 하지 않는다면 네티즌의 협업으로 내용이 구성되는 위키피디아의 부진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분명 ‘눈팅’의 비율이 높은 한국판 위키피디아지만 한국 위키피디아의 부진한 성적은 한국인들이 정보를 공유하려는 ‘협업 정신’이 부족해서 초래된 결과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앞에서 예시를 든 토렌트의 경우도, 토렌트를 배포하지 않는 대부분의 이유는 협업 정신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성’ 때문이다. 토렌트를 사용하게 되면 컴퓨터에 바이러스에 노출되고 하드 디스크가 고장 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토렌트 이용자들은 시드 유지를 하며 토렌트 파일을 배포 하는 것을 꺼려한다. 마찬가지로 한국판 위키피디아에서 눈팅이 높은 이유는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려는 태도 때문이 아니라 위키피디아에 글을 작성하기 위한 ‘심리적인 부담감’이 높기 때문이다.이런 성향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 우선 위키피디아는 위키 백과로도 불리는 ‘백과사전’이다. 분명 위키피디아는 개인들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백과사전이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여전히 과거의 백과사전 개념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과거의 백과사전은 대부분 전문가들이 집필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여전히 ‘백과사전’은 신뢰할만한 출처 가운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판 위키피디아의 약력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데, 한국판 못한다.
개화기 시기 신문의독자투고란 분석- 대한매일신보와 동아일보-서론현재 정보화의 물결을 타고 인터넷이란 공간 속에서 누구든지 자신의 의견을 손쉽게 개진할 수 있게 됨으로써 독자 투고란의 인기가 저하되어 가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신문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강한 시절 신문독자들은 자신의 사회적 현안에 대한 의견을 독자투고란을 통해 알리곤 했다. 신문은 직접 사회에 대한 소식들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신문은 사회의 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문기자들의 기사가 아닌 독자들의 목소리로 표현되는 진솔한 이야기들이 때로는 그 당시 사회적 현안들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사료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그렇다면 “과연 근대화의 바람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한 개화기 시절의 신문에선 독자투고란이 존재했을까.”라는 단순한 궁금증에서 ‘개화기 시대의 독자투고란의 특징’을 주제로 선정하게 되었다. 개화기 시절의 신문은 혼란스러운 사회적 배경 속에서 국민들의 정보에 대한 욕구와 개화파의 국민들을 계몽하고자 하는 의도와 함께 맞물려 등장하였다. 이런 시대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는 개화기 신문들에 게재된 독자투고란을 분석함으로써 각 신문사의 독자투고에 대한 태도와 이 당시 사회의 주요 현안들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개화기 신문은 1904년에 창간된 와 1920년에 창간된 를 선정하였다. 개화기는 주로 1876년의 강화도 조약 이후부터, 우리나라가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아 종래의 봉건적인 사회 질서를 타파하고 근대적 사회로 개혁되어 가던 시기를 의미하며 구체적으로 1876년부터 1910년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를 지칭한다. 1920년대에 창간된 동아일보를 개화기 신문으로 인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신문 비교’과제를 하다 의 독자투고란과 의 독자투고란의 차이에 흥미를 느껴 두 신문을 서로 분석하는 것에 의의가 존재할 것이라 판단하여 두 신문의 독자투고란을 서로 비교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1920년대 동아일보를 개화기 신문한글판 발행과 함께 지면에 새롭게 등장하였다. 주로 초기엔 3면에 위치하였으나 1908년엔 1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론셜」대신 「긔셔」가 지면에 배치되는 경우가 잦아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가 전개한 국채보상운동과 맞물려 독자투고는 1908년을 정점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1910년에 가까워질수록 일제의 압력이 거세짐에 따라 독자투고의 빈도수도 줄어드는 양상을 띤다. 특히 1908년 대한매일신보가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자 결국 일제는 의 사주인 배설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고 대신 영국인 만함을 앉히는데, 이 사건이 독자들의 독자 투고를 통한 저항의지를 한 풀 꺾이게 만든 요인이 아닐까란 진단을 내려 본다.② 동아일보- 독자문단과 때의 소리다음으로 는 1920년대 송진우, 김성수, 유근을 주도로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노라’,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 ‘문화주의를 제창하노라’라는 사시 아래 창간되었다. 이렇게 민족의 표현기관임을 부르짖었던 1920년대의 의 독자 투고는 「독자문단」과 「때의 소리」가 존재했다.처음 「독자문단」은 의 「편편긔담」과 비슷한 양상으로써 대부분 독자의 시를 게재하였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시가 아니라 ‘금일 조선청년의 요구’나 ‘여자해방의 근본 방침’등 사회 현안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돋우는 독자투고를 게재하였다. 그 투고의 길이도 한 단짜리에서 최대 5단에 이르기까지 지면에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났다. 또한 초기엔 독자의 이름을 게재하지 않았는데 그 투고의 성격이 변모할수록 독자의 나이와 이름을 게재하였다. 이러한 「독자문단」은 초기 의 「편편긔담」과 같은 문학적 성격의 투고에서 점차 「긔셔」와 같은 사회 현안에 관한 독자투고 양상으로 변모하였음을 알 수 있다.「때의 소리」의 경우 6월에 처음 등장한 「독자문단」과 달리 한 달 늦은 7월 8일에 첫 선을 보였다. 「때의 소리」도 「독자문단」과 마찬가지로 처음엔 독자들이 자신의 사소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고해성사’의 성격이 짙게 배어있는 투고학업은 국가의 기초라’라는 장관한씨의 투고는 총 5단으로 구성된 의 지면 중 4단을 차지할 정도로 방대한 내용을 담았다.이는 오늘날 짧은 분량의 독자투고와도 비교되며 독자투고의 방침과도 배치된다. 하지만 한정된 지면에도 불구하고 며칠에 걸쳐 독자의 기서를 지면에 게재하는 모습이나 논설란을 대체하여 1면에 게재하는 것은 가 독자들의 기서를 형식적인 것으로만 치부하지 않았다는 면모를 보여준다. 단지 자사의 인기에 힘입어 독자들을 위한 코너를 마련한다는 식의 형식적인 태도가 아니라 독자들의 의견 하나하나를 모두 싣고자 하는 편집인들의 노력이 엿보인다.또한 남의 일반 국민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거나 남의 사회상을 황잡게 하는 기서는 받지 않겠다는 방침을 보면 매우 기서에 관하여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역시 투고의 내용을 보면 주로 교육과 계몽을 강조하는 면모가 두드러진다. 특히 의병제도를 비판하거나 국민 전체에 만연한 무관심과 양반의 부도덕한 행실을 비판하는 등 독자들 간에 오해의 소지를 일으킬 수 있는 기서들을 신문에 게재한 것을 보면 대한매일신보사는 개화파가 주도하여 만든 신문답게 그들의 사상을 대변해주는 독자들의 글이라면 거리낌 없이 지면에 게재했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1907년 5월 23일자 광고란다음으로 의 「독자문단」의 첫 투고에서 규정이라 하여 “게재여부와 첨삭의 권리는 본사에 있음. 원고는 일절 반환치 아니함. 투고는 필히 ‘독자문단’일고 주서를 요함.”이라고 기재하였다. 특히 첨삭권이 자사에 있음을 언급하며 독자가 투고한 글이 수정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독자문단」의 초기의 글이 대부분 짤막한 시로 이뤄져있음을 감안한다면 편집권의 남용으로 독자의 의도가 왜곡될 가능성은 낮아진다.「때의 소리」의 경우 1921년 7월 8일자 ‘시작하는 뜻’이라는 제목을 달고 독자란의 신설 의도를 다음과 같이 명시하였다.“독자의 의견을 세상에 소개하며 또 한편으로는 독자와 독자 사이의 의견을 소개하여 편의를 도모하고자 만들어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었으며 단지 남성스러운 ‘이름’만 쓰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반면 여자는 남자에 비해 기서 투고 비율이 낮았으며 투고를 한다고 해도 대부분 학교를 다니고 있는 11세에서 14세와 같은 어린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1907년 9월 8일~ 10일자 에서 안주성내 염동에 사는 여학도 배봉녀는 13세의 나이로 여학도가 사람이라면 마땅히 힘쓸 일 세 가지를 제시했다. 또한 1907년 9월 12일자 에서 12세의 안주 성내 성평동 사는 김화실은 나라의 흥함이 여자교육에 있음을 주장하며 부강한 나라를 위해선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이뤄야 한다고 자신의 논지를 펴 나갔다. 이러한 여학도들의 투고와 여성 기서 투고자의 비율이 낮은 것을 감안해 본다면 이 당시 조선의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배움의 기회가 적었음을 시사한다.의 경우 기고자가 드러나는 「독자문단」의 경우 여자 기고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름으로만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주기용, 박서몽, 박승주, 최정찬 등 남성적인 이름이 전부였다. 하지만 특이할만한 지점으로 「때의 소리」의 경우엔 실명이 아니라 필명으로 독자 투고를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21년 7월 8일자 「때의 소리」에선 “중학교에서는 학부형을 우습게 생각하고 일년에 한 두번쯤 명색으로 학부형회를 여는 것은 아조자미가 없는 일이다.”라고 ‘학부형’이라는 필명을 쓴 독자가 기고를 하였다. 이외에도 ‘전주일시민’, ‘배달부’, ‘종로모점주인’ 등 실명을 알 수는 없지만 독자들은 자신의 특성이 드러나는 필명을 사용하여 투고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필명 사용은 자신의 신분을 직접적으로 노출한 채 상대방이나 단체에게 해가 되는 말을 하기는 싫지만 자신의 억울함이나 분한 감정을 토로하고 싶은 이들에게 매우 유용한 도구이다. 1920년대는 일제의 문화통치 시절로서 직접적인 탄압은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사복경찰을 늘리는 등 우리 국민의 ‘자기검열’을 강화하게 만드는 교묘하지만 강도 높은 탄압을 자행하였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힘을 썼기 때문이다.또한 「긔셔」를 통해서도 이런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글들의 대부분이 반일적인 논조와 함께 나라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국민적인 차원에서 계몽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1907년 9월 17일자 「긔셔」에 따르면 외국의 부강한 나라와 조선의 현실을 비교하며 이는 우리나라의 문명이 아직 발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은 문명 역사상에 참예치 못한 것도 통한할뿐더러 남이 나라의 기반을 면치 못하고 찬혹한 고난을 당하였으니 엇지하야 이 지경에 이르럿느뇨.”라고 한탄하며 개화된 사회로 나아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1907년 9월 17일자 긔셔 일부 발췌? 1908년 1월 19일 긔셔 일부 발췌 또한 일본을 비난하는 글들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1907년 9월 6일~ 7일자 「긔셔」에 따르면 ‘비난지사 동해일소생’이라는 제목 하에 일본이 한국에게 저지르고 있는 행태를 상대방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약탈해가는 사람에 비유하며 일본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1908년 1월 18~ 19일자 긔셔에 따르면 ‘한일관계’라는 제목 하에 일본의 만행과 속셈을 고발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 사람이 배움을 닦으러 유학 가는 것을 막고 있으며 이전에는 병참기지화 정책으로 징용시킨 한국인이 분에 못 이겨 자살을 하였다는 참담한 사실을 전하여 결론은 죽든가 독립을 하든가 그 전에는 동양의 평화란 없을 것이라고 일본에 대한 독립의 의지를 굳게 다졌다.이렇게 의 독자투고란인 「긔셔」에서 드러나는 교육의 강조와 반일 감정은 곧 신문과 독자가 비슷한 성향임을 보여주며 특히 적극적인 독자들 중의 하나인 독자투고를 하는 독자인 경우 그 성향이 더욱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독자와 신문사간의 성향이 동일하다는 지점은 곧 가 자신의 입맛대로 독자투고의 내용을 선별하여 지면에 게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현 세태를 비판하는 독자들의 목소리를 지면에 옮기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다양한 독자들의 의견을 소개하지
Aerie2위의 반란현대 사회는 커뮤니케이션 과잉 사회이다.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도 시선이 머물 수 있는 곳에는 필히 광고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TV라는 가상현실을 넘어 버스 옆 면, 지하철 스크린 도어 등 현실 세계에서도 모든 곳이 광고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다. 이렇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많은 정보를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광고를 유심히 바라보고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그렇기에 모든 제품, 브랜드들은 자신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광고를 통해 메시지를 주입하며 개개인의 인식을 바꾸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바로 ‘포지셔닝’이다. 포지셔닝은 상품 자체에 행동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 소비자의 마인드에 어떤 행동을 가하는 것이다. 즉 소비자의 마인드에 ‘포지션’을 잡는 것이다. 포지셔닝이란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현재 미국의 여성용 속옷 업계 2위를 차지하고 있는 Aerie의 ‘Aerie Real’ 캠페인을 예로 들어 Aerie가 어떤 포지션을 구축하여 소비자에게 각인되고 있는지 분석해보고자 한다.Aerie는 미국 대형 패션 브랜드인 American Eagle Outfitters의 하위 브랜드로서 속옷 제품들을 판매한다. 속옷 뿐 아니라 잠옷 등 여러 가지 편한 의류들도 취급한다. 우선 포지셔닝이라고 생각하면 흔히 브랜드의 컨셉만을 주로 생각하는 경우가 강하다. 하지만 포지셔닝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선 브랜드의 이름부터 출발해야 한다. 사람들은 상품, 브랜드의 이름을 통해 그 제품을 기억하기 때문이다.특히 American Eagle Outfitters와 같이 하위 브랜드를 창설해 자신의 라인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경우엔 기존 자사 브랜드 이름을 재사용하는 함정을 피해야 한다. 사업자들은 자신의 기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그 브랜드 이름을 새로운 브랜드나 제품에 붙여 후광효과를 노리고 싶어 하겠지만 이는 곧 실패로 귀결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 기존 브랜드 이미지를 신제성공을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엔 American Eagle Outfitters가 착수한 새로운 속옷 브랜드라는 인식 대신 최근 H&M이나 Zara 등 여러 스파 브랜드와 경쟁하고 있는 American Eagle Outfitters의 애매한 포지션을 새로운 속옷 브랜드에 대입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존 American Eagle Outfitters가 지니고 있던 브랜드 정체성마저 희석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고 American Eagle Outfitters의 경영진들은 현명한 포지셔닝 전략을 구사하였다. Aerie는 ‘절벽이나 큰 나무에 높게 지어진 독수리의 둥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감안한다면 모체 브랜드인 American Eagle Outfitters이라는 브랜드의 직접적인 브랜드명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독수리(Eagle)이라는 접점을 통해 간접적으로 두 브랜드를 서로 연결 지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아 Aerie를 기존 American Eagle Outfitters와 겹치지 않게 새롭게 포지셔닝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다음으로 Aerie가 시행한 캠페인을 알아보고자 한다. 앞서 말했듯이 Aerie는 미국 여성용 속옷 업계에서 현재 2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는 란제리 업계에서 40%의 지분율을 차지하고 있는 Victoria‘s Secret이다. 1977년에 창설된 Victoria’s Secret과는 달리 Aerie는 2006년에 American Eagle Outfitters의 하위 브랜드로 설립되었다. 이는 곧 소비자의 마음속에는 이미 Victoria’s Secret이 여성용 속옷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Aerie는 시작부터 후발주자로서 여성용 속옷 업계에서 불리한 위치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이렇게 소비자의 마음속에 선두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경우, 1위와 동일한 포지셔닝 전략을 구사해서는 안 ia’s Secret의 이미지는 섹시한 여성이다. 자사의 모델을 'Angel'이라 부르는 것에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Angel이라는 영광을 누리기 위해선 모델들은 신체 사이즈 ‘34-24-34’라는 혹독한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단어 그대로 ‘환상’적인 몸매를 지녀야 한다. 여성용 속옷 업계 1위답게 여성들이 되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몸매들을 보여주며 2014년 Victoria’s Secret은 ‘The Perfect Body’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Victoria’s Secret은 섹시한 이미지를 강조하며 고객들에게 란제리 제품의 구매를 소구하고 있다.하지만 Aerie는 여성용 속옷 브랜드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성적매력’이라는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다른 전략을 택했다. 바로 ‘Areal Real’ 캠페인이다. 2014년 1월부터 진행된 이 캠페인은 ‘The real you is sexy’라는 슬로건 아래 자사의 속옷 광고 모델들을 더 이상 포토샵으로 보정하지 않겠다는 규정을 내세웠다. 나아가 비현실적인 몸매의 소유자들인 슈퍼 모델들만을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신체 사이즈를 지닌 플러스 모델들도 사용할 것임을 발표했다.▲ Aeral Real 캠페인 사진Aerie의 사장인 Jennifer Foyle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여성들이 전보다 더욱 독립적이고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기에 우리의 캠페인이 이 세대의 여성들과 잘 조응할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는 Aerie가 자신의 제품 타겟 소비자를 치밀하게 선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용 속옷’을 판매하는 만큼 Aerie의 상품은 성인여성 모두에게 소구 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광고주 입장에서도 가능한 한 많은 대상들을 잠재고객으로 설정하여 가능한 한 많은 이윤을 창출하고 싶을 것이다.하지만 포지셔닝의 핵심은 ‘잠재고객의 마인드’이다. 잠재고객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그들의 속마음을 모두 읽고 광고에 반영하는 것은 무리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날씬하든 셀룰라이트가 있든 허벅지에 튼 자국이 있든 자연 그대로의 날 것의 사진을 광고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군살 없고 날씬한 모델만을 기용하여 사진을 찍는 Victoria's Secret과는 180도 다른 양상을 보인다.또한 캠페인의 연장선상에서 Aerie는 리테일샵으로서 최초로 NEDA(National Eating Disorders Association)라는 거식증 관련 협회에 스폰서로 활동하고 있다. 거식증은 주로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질병으로서 거식증 환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몸매를 얻기 위해 극단적으로 굶어가거나 토를 하는 등, 살이 찌는 것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음식섭취를 거부한다. 하지만 그런 날씬한 몸에 대한 인식은 사회가 주입한 것이다. 즉 거식증은 ‘뚱뚱한 여성의 몸’에 대한 싸늘한 사회적 시선이 야기한 질병이라 할 수 있다. 거식증에 걸린 여성은 결국 한 사회의 피해자인 것이다.이러한 Aerie의 움직임은 사람들에게 AerieReal 캠페인이 단지 자사의 상품 판매 촉진을 위해 다양한 사이즈의 모델을 기용하는 것이 아닌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자사의 타겟 소비자인 젊은 여성들이 SNS를 많이 사용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타겟 소비자의 참여를 자연스레 유도하며 거식증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즉 타겟 소비자들에게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AerieREAL라는 태그와 함께 보정하지 않은 수영복 차림의 사진을 게시하면 NEDA에 1달러 후원을 할 것이라 약속하고 있다.‘The real you is sexy’ 슬로건 아래 슈퍼모델 몸매가 아니어도 괜찮으며 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파하며 Aerie는 현실의 나와는 다른 모델이 등장하는 속옷 광고에 지쳐버린 젊은 여성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캠페인의 목적에 공감하는 여러 타겟 소비자들이 자신의 SNS에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거리낌 없이 게시하며 퍼트림으로써를 낳았다. 캠페인을 시작한 이래 분기별 매출이 9%, 13%,12% 계속 상승하였다. 2015년 상반기에는 20%까지 판매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비록 이제까지 1위를 지켜온 Victoria's Secret의 자리를 탈환할 수는 없었지만 Victoria's Secret의 명성에 어느 정도 흠집을 가할 수 있었으며 그것은 곧 Aerie에게 빼앗긴 판매실적으로 증명되었다.Aerie는 미디어에 의해 비현실적인 여성의 신체 이미지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어린 여성들에게 신선한 대안을 제공하며 ‘늘씬하고 골반에서 허벅지 틈까지 완벽해야 아름답다.’라는 미의 기준을 조장하는 Victoria's Secret과는 달리 Aerie는 ‘너 자신 그 자체로 섹시하다.’라고 광고하며 자신의 몸을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자연스레 소비자의 마인드에 1위로 자리 잡고 있는 Victoria's Secret를 자연스럽게 재포지셔닝하는 데 성공했으며 경쟁 상대에 대한 타격을 주었다. 즉 포토샵을 사용하지 않고 정직한 사진을 사용하는 Areal은 Real이고 이에 반해 포토샵으로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Victoria's Secret은 Not Real(거짓)이라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같은 년도에 시행된 Victoria's Secret의 ‘The Perfect Body’라는 캠페인은 이러한 Aerie의 캠페인의 취지에 공감한 여러 여성으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하였다.대부분 여성 속옷 회사들이 더욱 아름다운 몸매를 위해 보정을 한다. 란제리 광고에 등장하는 것처럼 인공적으로 완벽한 인간의 몸이란 현실에서 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성 속옷 업계의 불문율을 감안한다면 ‘후보정을 하지 않겠다.’라는 Aerie의 전략은 미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후발주자로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브랜드를 향해 ‘우리 제품이 더 뛰어나다.’고 광고하는 것은 1위 브랜드를 벤치마킹함으로써 자신의 브랜드를 1위의 아류작으로 인식시킬 뿐이며 오히려 1위를 더 빛내주는 잘.
정치언어 분석-김종인 20대 총선 비례대표 연설-소통은 정치의 기본이다. 군대와 경찰이라는 제도로 운영되는 국가체제는 국민들의 동의가 없다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조폭집단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설득을 기반으로 한 정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합목적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기에 정치인에게 가장 필수적이며 중요한 자질은 소통능력이다. 정치인의 생명은 말로써 얼마나 자신의 목적을 국민들에게 잘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이러한 정치인의 수사적 능력은 미디어로 매개된 정치 상황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미디어로 정치인의 발언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이 설득을 위해 주로 사용하는 ‘정치언어’는 같은 단어일지라도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와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정치인들이 구사하는 ‘정치언어’를 받아들일 땐 세심한 해석이 필요하다.최근에 치러진 제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인들의 행동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정치적 사건이었다. 선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거유세 현장이나 캠페인 등 여러 정치적 행동들이 존재하지만 보고서에선 ‘정치언어’에 초점을 맞추어 정치인이 구사하는 언어의 특징을 분석해보고자 한다.그 중에서도 16년 만에 여소야대의 상황을 구축하며 여당의 기세를 누른 더불어민주당의 선거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종인 비례대표 연설문을 분석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김종인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이 자신이 내건 ‘경제민주화’의 테두리를 벗어나자 새누리당을 탈당하였다. 하지만 현재 그는 새누리당과 경쟁자 관계에 있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며 경제민주화를 총선 제 1호 공약으로 채택하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즉 김종인은 자신의 목표인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라면 여야를 가리지 않는 목적지향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운 경제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들의 배경지식을 고려하여 ‘낙수효과’라는 개념이나 과거 정부의 대기업, 재벌 위주의 경제 정책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하지만 연설의 어조가 마냥 부드러운 것만은 아니다. 특히 현 정권의 경제를 진단할 땐 과격하고 단정적인 어조를 사용하고 있다. 경제 민주화라는 정책을 펴기 위한 확실한 목표가 있는 인물인 만큼 그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현 정권이 초래한 경제 상황을 비판하며 풀어나가고 있다.연설문의 대부분 내용이 과거 1960년대 낡은 경제 정책에서 이어져 온 폐단을 언급하며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현재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주로 새누리당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과격하지만 단정적인 어조로 “4월 13일은 털린 지갑 되찾는 날”이라고 비유하며 “이번 선거는 경제 선거”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총선 전 연설문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투표를 장려하는 직접적인 설득의 모습이 드러나는 지점임과 동시에 더불어민주당이 제 1정책으로 설정한 경제민주화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선거의 쟁점을 ‘경제’로 환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특히 총선 전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오기 위해 다양한 은유와 쉽게 확인할 수 없는 보편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현 정권의 경제 상황의 부정적인 면모를 강조하고 있다. “대한민국 경제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라는 위기 프레임을 사용하며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8년 실패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현 경제 상태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비유하고 있음과 동시에 수출중심의 1960년대의 경제운영방식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현 실태를 설명하며, “알파고가 바둑을 두는 세상”에서 60년대의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우리나라 경제를 심각한 위기”상태에 빠지게 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시행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과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이 연설의 대상 수용자들이 대부분 젊은 시절 경제개발 5개년 치인들은 이런 통계의 속성을 잘 이용하여 자신이 설명하고자 하는 현실을 묘사하는데 이용한다. 즉 이렇게 교묘한 언어적 장치들을 이용해 그려진 현실은 사실과는 다른 모습을 띠는 경향이 존재할 가능성이 다분하다.이러한 통계의 맹점은 국민총소득(GNI)에서도 드러난다. 국민총소득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총소득은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세계화 시대에서는 더 이상 적용되기 힘든 개념이다. 1980년대 이후에는 다국적 기업이 늘어나고 외국인에 의한 투자가 확대됨에 따라 국내총샌산(GDP)을 측정지표로 사용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최근 한국 GDP 성장률이 최저를 기록하고 있긴 하지만 감소하지는 않았다. 또한 세계적으로 저성장의 시대에 들어선 만큼 한국 뿐 아니라 미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의 대부분이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추세이다.객관적인 지표와 같은 이성적 소구를 사용해 현재 경제 상황을 진단하기도 하지만 이성적 소구 못지않게 감성적으로 소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연설문에선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 “다른 건 몰라도 경제 좀 제대로 살려 달라.”라는 국민들의 반응을 인용함으로써 경제와 관련된 현 정권의 무능함을 드러내고 있다. 비록 선거 유세를 통해 이러한 국민들의 반응을 실제로 들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국민들의 반응을 인용함으로써 대상 청중들에게 현 정권의 부정적인 경제 상황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실감나게 전달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대상 수용자들로 하여금 김종인 의원은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주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도 충분하다.연장선상에서 김종인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잘 모르는 청중들을 위해 자신의 업적을 상세히 나열하며 ‘김종인’ 자체의 후광효과를 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설문에서 ‘의료보험제도를 최초 제안하고 제도화, 서민을 위해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도입’한 과거를 언급하고 있다. 이로써 자신을 경제 전문가, 특히 서민을 위한 경제 정책을 수립한다는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하는 의도를 엿에 기초연금 30만원 제공, 국공립대 등록금을 사립대 등록금의 3분의 1수준으로 인하, 정부지원 학자금 대출을 무이자로 제공”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재벌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해체하겠다는 경제 민주화와 관련 있는 정책인지는 고려해 보아야 할 지점이다.여러 공약을 통해 경제에 관한 청사진을 제시함과 동시에 연설문의 마지막은 경제를 크게 두 가지로 단순화하여 자신의 경제 정책을 긍정적인 이미지로서 투사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경제 정책은 “부자를 위한 경제, 잃어버린 세월을 반복하는 좌절의 경제, 가짜 경제”로 비유하고 있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은 “더불어 성장하는 서민경제, 미래를 위한 희망경제, 진짜 경제”로 비유하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하지만 재벌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철폐하고자 하는 경제 민주화는 과연 ‘진짜 경제’인 것일까. 이 연설문을 찬찬히 읽어보면 경제 민주화는 곧 불균형, 양극화 해소와 관련 있는 정책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본인의 저서 「지금 왜 경제 민주화인가」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경제민주화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내리고 있다. 지나친 탐욕을 억제해 대기업이나 재벌과 같은 특정 거대경제세력이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를 차단함으로써 시장 전체의 효율을 높이자는 것이다. 소득 분배는 경제 민주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는 분배에 초점을 둔 다기 보다는 고전 자유주의자의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즉 경제 민주화 정책의 목적은 경제의 효율성 제고인 것이다.하지만 이 연설에서는 대기업과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타파하겠다는 관점에서 불균형 문제를 논하고 있다. 하지만 연설을 통해 경제 민주화라는 정책을 접한 대상 청중들에게는 경제 민주화는 소득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경제 민주화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부족하다면 자연스레 소득 분배와 연결 짓게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경제 민주화라는 슬로건 자체가진단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이렇게 정치언어에서 흔히 사용되는 ‘단순화’ 즉 맥락을 제거한 정책 제시는 정확한 현실의 모습을 왜곡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연설문에서도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며 대기업과 재벌, 그들을 비호하는 정부에게만 책임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야기된 경제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축소하고 정권의 교체만이 답임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트랙이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트랙의 근본적인 보수 없이 부상당한 선수만을 교체하는 게임의 결과는 뻔하다. 또 다른 부상자만을 낳을 것이다.또한 ‘경제 민주화’라는 일반적인 단어 선택과 편향된 정책 설명으로 인해 대상 청중들은 그 정책의 실질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고 정치인의 의도가 담긴 편향된 설명으로 그 정책을 오해한다. 정책의 목표인 ‘경제 효율성’과는 달리 대상 청중들이 ‘소득 분배’로 오해할 여지가 다분한 슬로건이다. 그렇기에 모호한 언어와 여러 가지 상징으로 점철된 정치언어를 통해 매력적인 청사진을 제공하며 소위 ‘나의 정당이 당선되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식의 태도는 정치적 무력감 나아가 무관심을 조장할 여지도 존재한다. 낙관적인 전망만을 믿고 그들을 지지했지만 결국은 달라진 것 없는 현실 앞에서 ‘정치인은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팽배해 질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이상 연설문을 분석해봄으로써 정치언어가 가지는 특징을 분석해 보았다. 정치언어의 이면을 파헤치며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저지르는 교활한 행동처럼 묘사했지만 이는 비단 김종인 의원의 행보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인은 대중의 지지를 먹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대중들을 사로잡기 위해 모호하고 중의적이며 낙관적인 전망들을 제시하는 언어들을 주로 사용한다.의도가 무엇이던 간에 정치인은 모호함에 기반을 둔 정치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정치인에게 솔직한 발언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정치언어의 모호함에 노출되어 있는 각 개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언어에 대니다.
블로거는 저널리스트인가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종이 신문의 위기가 도래한지 오래되었다. 이제 종이 신문을 통해 기사를 읽는 이들이 감소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종이 신문의 황금기는 끝이 났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누구나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으로 쉽게 기사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이제 누구나 인터넷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보를 탐색하고 사실에 접근할 수 되었으며 나아가 인터넷의 발달로 개개인들은 자신만의 글을 기고할 수 있으며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자의 지위나 기사의 가치 또한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며 자연스럽게 기존 기성 언론의 역할 역시 약화되고 있다. 이제 저널리즘은 그 주체에서부터 유통, 특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으로 변화하고 있다.이런 현상들은 팟캐스트, 메타블로그,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등 여러 소셜 미디어를 통한 인터넷 뉴스의 등장을 통해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점점 기성 언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수많은 대안 언론의 성격을 띤 뉴스매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새로운 저널리즘을 살펴보면 블로거가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블로그 공간을 매개로 활발하게 기사를 작성한다.미국에서 인기를 구가한 허핑턴 포스트 역시 블로그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뉴스 서비스이다. 다양한 칼럼니스트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진이 되어 다양한 주제를 다룬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2014년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를 설립하여 인터넷 상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외에도 인사이트, ㅍㅍㅅㅅ, 슬로우 뉴스 등 블로그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인터넷 뉴스 매체가 등장하였다. 그들은 여러 새로운 미디어를 통하여 기사를 작성하고 있으며 때때론 기성 언론보다 더욱 분석적이며 질 좋은 기사를 생산해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터넷 상에서 기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블로거들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 존재한다. 그들은 언론인이 되기 위한 교육도 받지 못했을 뿐더러 언론인이라는 칭호를은 기자 조직에 속해 있지도 않으며 언론인으로서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하지만 엄밀히 살펴본다면 기자는 전문직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인식은 과거 정보를 얻기 힘들었던 시절에 기자가 지니고 있던 특권적인 위치에서 기인한다. 과거 여러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엔 기사를 통해서만 공신력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자연스레 정보에 대한 접근을 할 수 있는 기자의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게 되었고 기자를 흔히 전문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문직은 특정 분야에 대한 고도의 지식이나 기술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체계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사용하는 직업을 의미한다. 즉 전문직은 ‘깊고 좁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널리스트들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 특정 분야에 대한 고도의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비록 기사를 쓰기 위해 필력이 좋아야 하지만 그 능력이 언론인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아니다. 또한 저널리스트들은 여러 사회적 현안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특정 사안에 대한 전문가를 정보원으로 활용하여 뉴스를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얕고 넓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저널리스트들은 특정한 기술과 지식은 없지만 ‘저널리즘’에 종사한다는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공공 편집장인 마거릿 설리번(Margaret Sullivan)은 저널리스트를 “세포 수준까지 속속들이 이해하고, 정부와 언론의 적대적 관계에 두려워 숨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즉 진정한 저널리스트란 바로 권력, 폭력을 포함한 부당한 힘에 굴복하지 않고 약자의 편에 서서 진실을 추구해야 함을 의미한다.이런 점에서 살펴본다면 현재 저널리즘적 성격을 띤 채 기사를 작성하는 블로거에 한정해서 그들을 저널리스트로 볼 수 있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미디어 몽구’는 저널리즘을 대표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시사 블로거이다. 그는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기성 언론이 포착하지 못하는 장면까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기사를 접할 수 있는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가 대거 등장하고 있다. 기존의 1인 미디어들은 인력의 한계로 인해 여러 기사를 올릴 수 없었고 취재 분야도 한정적이었지만, 이제 메타 블로그의 연합으로 인해 독자들은 다양한 기사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슬로우 뉴스, ㅍㅍㅅㅅ, 허핑턴 포스트, 미스핏츠 등 이러한 뉴스 사이트는 언론인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개인들의 기사를 전달하고 있다.2012년 3월 26일 “빠른 것은 좋다. 느린 것은 더 좋다”라는 기조아래 창간된 슬로우 뉴스의 경우 다양한 직업군에 속한 17명의 개인 블로거들이 모여 만든 블로그 기반 뉴스 사이트이다. 현재는 내부 편집위원 20명 외부 초대 필자 100여명이 자발적으로 기사를 쓸 정도로 크게 성장하였다.슬로우 뉴스에 개제되는 기사들은 언뜻 보기에 기사 같지 않은 글처럼 보인다. 기존 언론에서 사용하던 문체를 잘 찾아볼 수 없다. 톡톡 튀는 비유라든지 웃긴 짤방을 사용하며 ‘사실’을 전달해준다는 느낌이 아니라 무거운 사안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아듀 택촉법: 주택의 대량생산체제가 저무는가”라는 기사의 경우 택지개발촉진법이라는 어려운 개념을 ‘81년 한국 현대정치사의 장면의 만담’형식으로 기사를 작성하여 재밌고도 쉽게 내용을 풀어내고 있다. 내용에 있어서도 이 법안에 대한 필자의 주관이 확실히 드러난다. 이는 슬로우 뉴스만의 특징이 아닌 대부분 블로그 저널리스트들의 기사의 특징과 일치한다.이런 특징들로 인해 블로그 저널리즘에서 생산되는 뉴스들이 과연 뉴스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분명 블로그 기사의 형식은 이전 기성 언론들이 전달해주는 뉴스와는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주관적인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한 기사와 구어체와 짤방을 사용한 기사는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면모보단 개인의 단순한 감상이라는 느낌을 자아낸다. 이렇게 블로그 뉴스들은 대부분 구어체와 짤방 사용과 같은 과감한 형식과 더불어 주관적인 관점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지만 뉴스가 전달해야 하는 가진실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런 객관성에 대한 논란을 논외로 하더라도 슬로우 뉴스의 경우 주류 미디어보다 더욱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기사를 작성하는 면모를 보인다. 2012년 제 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토론 팩트 체크 기사를 통해 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 후보자 토론 전체를 검증 텍스트로 하여 후보자 발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였다. 나아가 슬로우 뉴스는 이러한 일회적인 기사 이외에도 ‘신뢰도 평가’라는 연재코너를 통해 특정 사안과 발언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아주 믿을 만함에서부터 전혀 믿을 수 없음’에 이르기까지 총 5가지 등급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현명하게 뉴스보기’라는 연재코너를 통해 독자들에게 뉴스를 비판적으로 여과하여 바라볼 수 있는 팁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블로그 저널리즘이 단지 개인적인 감상만을 위주로 한 기사를 다루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또한 그들은 주류 미디어 기자들이 의지하고 있는 정보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한다. 하지만 미디어 몽구와 같은 블로거들을 살펴본다면 정보원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류 미디어 기자들보다 더욱 열성적으로 현장에서 취재에 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취재원과 정보원의 부재가 더욱더 그들로 하여금 한 사안에 파고들게 만드는 동인이 되기도 한다. 미디어 몽구는 자신이 현장에서 본 사실만을 전달한다는 취재 원칙을 가지고 있으며 사건이 끝날 때까지 현장을 지키며 사건을 취재한다.이외에도 공식적인 취재원과 정보원의 부재는 기존 기성 언론이 정보원과 결탁하여 왜곡 보도를 할 가능성을 줄여준다. 또한 슬로우 뉴스의 경우 다양한 전문가들을 필진으로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데, 이는 이제 저널리스트가 전문가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직접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문가가 저널리스트가 되어 가고 있는 셈이다.나아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는 블로그 저널리즘의 특성을 살펴본다면 객관성과 준다는 점에서 객관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기능을 한다.더 나아가 여러 대안 미디어 자체에서 기존의 기성 언론의 형식을 거부하고 탈피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기존 저널리즘의 특성에 맞춰 뉴스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저널리즘 특성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대 대학생들이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었다는 ‘미츠피츠’는 창간사에서 “지금 여기,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20대의 젊음은 찌질하고, 불편하고, 힘들다고 이야기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객관성과 중립성을 버리고 전지적 20대의 시점에서 얘기들을 풀어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ㅍㅍㅅㅅ’의 발행인은 기존 슬로우 뉴스에서 필진으로 활동하다가 기존 편집인과 방향이 맞지 않아 자신이 직접 블로그 기반의 인터넷 뉴스 사이트를 설립했다고 한다. 그는 이슈는 따르되, 형식은 자유롭게 쓰는 것을 강조한다. “말하고 싶은 바를 정확히 하되, 글의 형태나 형식은 설탕을 입히는 거죠. 읽는 이들이 좀 달달하게 볼 수 있도록 말이죠.” 그는 뉴스라는 콘텐츠는 너무 오랜 시간 고정된 형식을 유지했다고 하며 “다만 우리가 뉴스라고 정의했던 무언가는 이제 완전히 바뀌어버릴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기존의 저널리즘의 생산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기조아래 ㅍㅍㅅㅅ는 ‘싱글세 비판 트윗’과 같은 기사와 같이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온라인 뉴스 미디어의 변화는 기존의 뉴스 생산과 유통 방식이 변화할 것이라는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이런 인터넷을 통해 블로그 저널리즘이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기성 언론에 비해 그 입지가 좁은 것이 사실이다. 기성 언론을 비판하고 있다는 지점에선 긍정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언론이라면 이러한 노력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블로그 저널리즘들은 기성 언론의 ‘대안’역할을 하고자 하는 목표에서 시작했지만 기성 언론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라 ‘그들만의 리그’로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