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 OCU 문화콘텐츠와 창의성 기말고사1. 인류의 쾌락의 원칙은 좌절되고 그로 인하여 엄청난 소외와 불만을 감수해야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누구인가? 2. 디지털 시대의 예술은 기존 예술의 확장인가? 아니면 예술의 죽음인가?하는 질문에 예술이라고 답한 학자는 누구인가? 3. 아유라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누구인가? 4. 아래 설명 중에서 틀린 것을 선택하세요.(1) 전자문화시대는 텔레비전을 비롯한~(2) 구어문화시대는 대면적 상황의 대화가~(3) 인쇄문화시대는 청각을 비롯한~(4) 필사문화시대는 의미론적으로 무의미한~ (5) 인쇄문화시대는 ‘부재하면서 현존하는’것을 가능케~5. 디지털 기반 회사들 중에서 세계 5위 안에 들어가는 기업에 속하지 않는 것은? 6. 유럽에서 1인당 소득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인가? 7. 신화는 인류 초기의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시간적이며 하지만 신화가 지닌 내재적 가치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가치를 지닌 초시간적인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누구인가? 8. 라는 학생의 지적에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했던 사람은 누구인가? 9. 아래 설명 중에서 가장 부적절한 것을 선택하세요. (1) 반성취미는 맛보는 판단 주체의 사적 감각에~(2) 혀와 입, 목구멍의 미각에 관한 쾌적한 것에~(3) 근대 미학은 대상의 객관적 성질이 아니라~(4) 전형적인 근대 미학이론은 바로 취미론(5) 미학적 판단력의 반성의 활동에 기초하는~10. 실재가 실재 아닌 파생실재로 전환되는 작업이 시뮬라시옹이고, 모든 실재의 인위적인 대체물을 시뮬라크르이라고 한 사람은 누구인가? 11. 아래 설명 중에서 가장 부적절한 것을 선택하세요? (1) 예술과 미에 대한 철학적 성찰인 미학이 하나의 학문분과로~(2) 뮤지케란 뮤즈 여신들이 촉발시킨~(3) 예술을 의미하는 ‘아트’는 라틴어 ‘아르스’에서~(4) 이성적 인식에 비해 한 단계 낮게 평가되고 있던~12. 현대 사회는 사물의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보다는 상징가치나 기호가치가 지배적인 사회라고 주장한 사람은 누구인가? 13. 제우스와 레다 신화와 가장 관련이 없는 사람은 누구인가? 14. “ 매체는 메시지다” 라는 말을 언급한 사람이 주장하고자 하는 가장 본질적인 내용에 해당하는 설명을 선택하세요. 15. 문화이론은 문화내용들을 단순히 나열할 것이 아니라 본질적 구조를 꿰뚫고 시대와 사회 그리고 인간의 본성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누구인가?16. 정서적 부분을 뇌에서 찾으려는 연구한 학자는 누구인가? 17. 피치노에 대한 설명 중에서 가장 부적절한 것을 선택하세요.18. 4차 산업 혁명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이라고 언급한 사람은 누구인가? 19. 르네상스의 플라톤주의 형성에 있어서 출발점을 제시한 최초의 인문주의자는 누구인가?20. 상품화되고 획일화된 자본주의사회의 문화적 특성을 단적으로 알려준 화가는 누구인가?
‘에밀’ 감상문‘에밀’의 저자인 루소가 자연주의 사상가 라는 사실만 알고 이 책을 펼쳤습니다. 이 책의 앞면에는 ‘에밀’이 출간되자마자 많은 파문을 일으켰고 루소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고 해서 ‘에밀’이 어떤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자연주의 사상가 답게 루소는 아이들을 양육할 때 자연의 상태에서 기를 것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아이들은 자연을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자랄 때 강인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1부에서는 출생부터 다섯 살까지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해 소개합니다. 이때, 루소는 ‘에밀’이라는 가상의 아이를 만들어 자신이 어떻게 ‘에밀’을 교육할 것인지 얘기합니다. 그 중 ‘아이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내용이 인상깊었는데, 아이가 운다고 해서 아이의 요구를 마냥 들어주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이 뜻대로 다 들어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은 들어보았기 때문에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물체를 향해서 손을 뻗으면서 우는 상황을 예시로 들면서, 아이가 우는 이유는 그 물체가 자기에게 다가오라고 명령하는 것이거나 부모로 하여금 물체를 갖다 주라고 명령하는 것이라고 하며 아이에게 지배나 복종의 관념이 깃들지 않도록 아이가 우는 것을 무시하라고 한 내용을 읽으면서 약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날카로우면서 논리적인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2부는 다섯 살에서 열두 살까지의 바람직한 양육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루소는 ‘에밀’이 선천적으로 잘 우는 체질이라고 해도 아이가 울 때 다가가지 않고 울음을 그쳐야만 다가갈 것이라고 합니다. 또 아이는 고통을 알아야 하고 위험을 겪어봐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점에서 당시 사회에서 파문이 일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상류층, 부자인 부모에 대한 비판도 많이 담고 있어 더욱 반발심을 삼은 것 같습니다. 루소의 비판은 부자들이 겉멋 든 예의로 정중하게 명령하며, 이것이 아이에게 학습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상류층, 부자인 부모들이 사회에 젖어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게 꼭 상류층이나 부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비판 이라기 보다는 사랑이 없는 부모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비판이라고 느껴져 약간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1부에서 아이가 어른에게 명령하지 말 것을 이야기했다면 2부에서는 어른 또한 아이에게 명령하지 말 것을 강조했습니다. 명령이라는 것 자체가 담고 있는 어조가 유쾌하진 않아서 루소의 주장이 맞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읽어보아도 확실한 이유에 대해서는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어른의 명령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명령을 해선 안되고 사물의 힘만으로 아이를 통제하라고 하는 부분도 이해하기 정말 어려웠습니다. 루소가 얘기하는 규칙 또한 어떻게 보면 명령의 산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이 책을 읽으면서 루소 특유의 강한 어투 때문에 내용이 강하게 다가오긴 했지만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왜 그 당시 이 책이 파격적일 수 밖에 없었을지 이해가 가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 책이 명성이 있는 만큼 이 내용이 좋을 것이고 아직 제가 이해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외할머니의 육아법’감상문‘외할머니의 육아법’은 정대련 교수님이 쓰신 책입니다.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라서 읽기에 큰 부담이 없었고, 교수님이 어떤 느낌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알 수 있어서 계속 호기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습니다. 우선 공부와 임신을 동시에 하면서 슈퍼우먼의 삶을 살아야 했던 모습을 보면서, 지금은 이런 모습이 흔하고 예전보다는 복지가 생겼는데 그땐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생각했습니다. 특히 임신과 입덧의 과정에서 모든 냄새를 맡을 때마다 힘들었고 토를 했고 태동이 오지 않아서 느꼈던 불안함, 임신 전에 주위에서의 압박 같은 것들이 세세하게 적힌 부분이 인상깊었습니다. 정말 여자라면, 엄마라면 자연스레 겪어야 할 하나의 고비 라는 생각이 들면서 교수님과 우리 어머니를 비롯해서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다시 존경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빠와 함께 샤워를’이란 부분에서는 약간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에도 아빠와 샤워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인데, 생각해보니 저도 어릴 때 엄마가 남동생과 함께 샤워를 시켰던 기억이 떠올랐고 이 책에서는 아이가 외동이었기 때문에 방식이 약간 달랐을 뿐 같은 성교육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자연스럽게 남자의 신체구조와 여자의 신체구조의 상이함을 깨달았고, 다르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킬 수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홀로서기 캠프’를 읽으면서는 내가 어렸을 때 유치원 캠프를 갔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여기서는 아이가 처음으로 부모 곁을 떠나서 유치원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과정과 아이가 생각보다 잘 적응하더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저도 나름대로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기보다는 이런 저런 게임과 행사에 정신이 팔렸던 것 같았습니다. 교수님이 학업을 위해서 가족들과 떨어져 미국에서 3주를 보내야 했던 부분에서 아이가 함께 있자고 한 한마디에 다리가 풀렸다는 말이 참 가슴 아팠는데, 부모님이 이런 마음인가 싶고 지금 떨어져 있는 부모님이 생각나면서 보고싶어 졌습니다. 딸아이를 유치원에 매일 매일 보내는 과정도 쉽지 않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살면서 거의 처음 해본 것 같은데, 항상 단정하고 예쁘게 유치원에 보내고자 했던 엄마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교수님이 인상깊었다고 한 프뢰벨의 ‘인간교육’에 나오는 문구 ‘몸이 피로하여 흐느적거릴 정도까지 끈기있게 노는’, ‘온전히 놀이에 빠져서 놀다가 어느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어버린 아이’는 저도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도 어릴 때 참 열심히 놀았었고, 다른 것들도 다 열심히 했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교수님의 말에도 공감이 갔습니다. 어릴 때 친구들 동생들을 모아 놓고 열심히 선생님 놀이를 했던 때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 ‘커서 뭐가 될래?’라는 물음에 간호사라고 대답했다는 부분을 보면서는 이것저것 많은 걸 해보고 싶었던 내가 집의 한 벽면에 되고 싶은 직업과 꿈을 한바탕 적어놓았던 기억도 났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한 사람, 교수님이 쓴 학업과 육아에 대한 고충, 어머니라면 느낄 감정들에 대해서 많이 읽어보면서 엄마에 대한 감사함을 키울 수 있는 계기도 되었고, 전통 육아법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떠올릴 수 있게 되어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졸혼’을 사회적 이슈로 선정한 이유시대가 변하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과거에는 조혼율이 높았고, 현재에는 미혼율이 높아지거나 이혼율이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이에 이어 새롭게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새로운 결혼 풍속은 ‘졸혼’입니다. 한국에서는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졸혼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는 노년기에 새롭게 생겨난 ‘졸혼’이라는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사회적 이슈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졸혼에 대해 소개 (정의, 예시)“졸혼이란,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으로, 이혼과는 다른 개념.”“혼인 관계는 유지하지만, 부부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념.”더 쉽게 말하면, “결혼을 유지한채 각자의 삶을 사는 것. 긍정적 개념의 별거.” 그러나 졸혼의 형태는 다양하기 때문에 같이 살면서도 졸혼은 가능함.최소 결혼 30년차 이상의 노년기에 막 접어드는 부부들이 졸혼 대상에 대부분 해당됩니다.졸혼의 특성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정조의무’에 관한 것입니다. 바람을 피우지 않고 배우자에게 성실의무를 다하는 것이 혼인의 기본적인 목적이지만, 졸혼을 통해 성적인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둘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졸혼 자체가 정조의무가 면해질 수 있는 것이냐의 여부는 정해질 수 없으나 상호간의 합의에 따른다면 가능합니다.여론에서 미화되고 있는 졸혼에 대한 찬반 논란도 거셉니다. SNS에서는 “오랫동안 유지해온 의무감 섞인 결혼의 틀을 해방 시켜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여태 모든 감정이 쌓여 있었으니 서로 편하게 따로 사는 것도 좋은 것이라 생각 된다” 등의 찬성 의견과 “이혼이 답인 것 같다. 불륜 대신 로맨스인가” “졸혼을 결심했다면 신중하게 이야기해서 이혼을 해야지 법적인 부부는 유지한다? 이것은 서로간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행동 같다”는 반대 의견도 보였습니다.우리나라에 대표적인 ‘졸혼’ 연예인으로는 백일섭씨가 있습니다. 백일섭씨는 일흔이라는 나이에 40년간의 결혼 생활을 마치고 싱글라이프를 시작했습니다. 백일섭씨는 최근 예능프로그램에서 졸혼 후 달라진 점에 대해 “표정이 달라졌다. 아내와 같이 살 때는 미움이라는게 많아서 얼굴 펼 일이 없었다. 그 세월이 오래되니 굳어진거다. 졸혼 후 미움이라는게 없이지니까 훨씬 밝아지고 생각도 달라진다.” 라며 졸혼에 대해 예찬했습니다.문화 평론가 김갑수라는 분 또한 졸혼하셨는데, 가족끼리 일주일에 한번 씩 만나고 그 동안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는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자주 얼굴을 마주치며 싸우는 가족들도 많은데 졸혼을 하면 더욱 관계가 돈독해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단점 - 졸혼이 서민에게는 어렵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자유시간을 즐기는데에도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있어 일을 하기 힘들거나, 연금에만 의지하는 것도 부담입니다.장점 – 이혼 대신 졸혼을 하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습니다. 특히 남편과 아이 바라기를 해왔던 여성이라면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살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또한 국내 황혼 이혼의 대다수 사유가 성격차이(46%)인데, 졸혼을 하면 상대방과의 사이가 다시 좋아질 수 있습니다. 자녀 독립 후 부부끼리만 붙어있다가 상대방 성격의 단점이 부각될 수 있는데, 조금 거리를 둔다면 서로를 재확인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혼을 하는 것이 아닌 졸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배우자와의 관계는 아직 이어지기 때문에 심리적인 지지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왜 이러한 사회적 현상이 생겼는가?>노부부들은 서로가 함께 살아온 것이 몇 십년 입니다. 그동안 상대를 위해, 자식을 위해 하지 못한 것들을 졸혼한 뒤에 자유롭게 누리고 싶은 중년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요즘 YOLO(you only live once)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처럼, 자신이 행복하게 지내는 것에 투자하는 것이죠. 수명이 길어지면서 백세, 백이십세 시대이기 때문에 서로 터치없이 하고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기에 졸혼을 많이 생각한다고 합니다.>삶의 모습이 점차 다양해지고, 사람들의 사회적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평범한 삶에 회의를 느끼고 새로운 것을 찾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요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에릭슨 이론 바탕으로 + 기타 노년기 특성에 맞는 이론 추가에릭슨이 발달단계별로 제시한 심리적 위기. 영아기는 신뢰(trust)대 불신(mistrust), 유아기는 자율성(autonomy) 대 수치심(shame)과 의심(doubt), 놀이기는 주도성(initative) 대 죄의식(guilt), 학령기는 근면성(industry) 대 열등감(inferiority), 청소년기는 자아정체성 대 정체성 혼란, 청년기는 친근감(intimacy) 대 고립(isolation), 중년기는 생산성(generativity) 대 침체성(stagnation), 그리고 노년기는 자아통합(ego integrity) 대 절망(despair)이다.신체적인 노쇠와 직업으로부터의 은퇴, 친한 친구나 배우자의 죽음 등으로 인하여 인생에 대한 무력감을 느낌.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를 돌아보면서 자신의 생애가 가치있는 삶이었는지를 음미해 보게 됨. 자아 통합은 확고하게 ‘나는 만족스럽다’ 라고 확신하는 능력자신의 삶이 무의미한 것이었다고 느끼게 되면 절망하게 됨노년기에 도달해야 하는 자아성취는 ‘삶의 온전함’. 온전한 삶이란 지난 삶을 회상할 때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위의 에릭슨의 노년기 이론에 따라, 최근 노년기에 일어나는 ‘졸혼’이 생겨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이미란은 그의 최근 논문 “노인의 건강성과 자아통합감에 관한 연구”에서 노인의 사회적 참여활동과 다양한 역할 수행을 가족이 적극 지지하고 지원해 줌으로써 노인의 자아통합감이 향상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따라서 이웃, 친구, 신앙인과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여가활동과 교육, 봉사활동의 참여를 활성화 할 수 있도록 가족이 지지자원으로 기능하는 그런 노인의 일상이 삶의 긍정적 마무리, 즉 자아통합을 완성한다고 본다.} -> 이 부분을 보면 졸혼한 백일섭씨가 ‘때로는 졸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행복한 노부부들처럼 보기 좋게 살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한다‘ 라고 얘기했던 것처럼, 졸혼이 노부부에게 각자 자유를 주기도 하지만, 따로 떨어져 사는 형태의 졸혼을 선택한 백일썹씨 같은 경우에, 노년기의 자아통합감의 중요한 가족의 지지라는 자원을 충족시킬 순 없다는 점에서 졸혼의 단점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놀이발달에 미치는 요인으로써, 개인적인 요인 중 성별과 연령이 실제로 영향력이 있을 것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성별에 관심이 갔던 것은 남아와 여아의 차이가 유의할 것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통념에 따르면 남아와 여아는 보통 하는 놀이 주제, 유형에 차이가 있고, 가지고 노는 놀잇감에도 차이가 있는데 이 부분이 실제로 학문적으로는 어떤 결과가 있을 지 궁금했다. 성별이라는 요인은 개인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환경적인 요인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회적 영향력에 따른 성별(gender)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고 신체적인 부분(sex)에서 성별에 따라 놀이에 어떤 구체적 차이가 있을지, 있다면 어떠할지 궁금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적인 배경이나 교사의 성 차별적인 인식이 아이들에게 작용할 경우 성차에 따른 놀이발달이 더 유의한 차이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령에 대해서는 놀이에 관해 유명한 Parten의 이론이 실제로 우리나라의 아이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인지 궁금했다. 또한 Parten의 이론은 현재 놀이지도를 공부하면서 가장 중요한 이론으로 받아들여 지는데, 시대가 많이 변한 지금도 Parten의 이론이 유효할 지 궁금했다. 짐작하기에는 Parten의 이론은 현재의, 우리나라 아동에게 적용하기에는 약간의 차이점이 존재할 것이라고 보았다.이를 확인하기 위해 찾은 실제 관련 연구는 ‘연령, 성별에 따른 아동의 사회성 발달 확인 연구’ -이경선, 이영석 (성균관대학교 아동학과)이다. 본 연구에서는 첫 번째 가설로 ‘우리나라 아동의 사회성 놀이 발달 과정과 Parten의 놀이 발달과정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를 내세웠고, 두번째 가설로 ‘아동의 사회성 놀이 발달 과정에 있어서 성별에 따라 유의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를 내세웠다.두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 연구자 3명과 강남 G유치원의 만 3,4,5세 남아와 여아 각각 10명씩 총 60명의 연구 대상을 설정하였다. 유아 관찰 방법으로는 시간 표집법을 활용했는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20초 시간 표집법을 활용하여 100회 관찰하였다. 사용한 관찰 기록표는 Parten의 관찰 기록표를 구체화한 것이다. 즉 놀이 형태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동, 방관적 행동, 혼자 놀이, 병행 놀이, 연합 놀이, 협동 놀이로 정의하고 하위 항목들을 함께 제시한 기록표이다. 연구의 자료 분석은 빈도의 백분율을 구해서 Parten의 연구 결과와 비교하였다. 연구 결과로, 3세 아동의 경우는 혼자 놀이가 가장 빈번하였고, 그 다음 병행놀이, 연합 놀이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4세의 경우 병행 놀이, 혼자 놀이, 연합놀이 순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5세의 경우는 병행 놀이에 가장 많이 참여하였고, 그 다음 연합 놀이, 협동 놀이 순으로 나타났다. ‘Parten, Barnes, 본 연구의 피험자간의 백분율’ 표를 참고하면 Parten의 피험자는 병행 놀이, 연합 놀이, 혼자 놀이 순으로 사회성 놀이 유형에 참여한 반면, 본 연구의 피험자는 병행 혼자 놀이, 연합 놀이 순으로 사회성 놀이 유형에 참여하였다. 또한 Parten의 만 3,4세 피험자의 약 40%가 연합 및 협동 놀이를 한 반면에, 본 연구의 3,4세 피험자는 약 23%만이 연합 및 협동 놀이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 가설 ‘아동의 사회성 놀이 발달 성별에 따라 유의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를 위해 아동의 연령, 성별에 따른 사회성 놀이 발달 유형의 평균 및 표준편차를 구해 표를 작성하고 이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두 번째 가설은 기각되었다. 표에 나타난 결과들을 살펴보자면, 첫째로 사회성 놀이 유형에서 연령 차이는 나지 않았다. 둘째로 사회성 놀이 유형에서 성별 간에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셋째로 사회성 놀이 유형에서는 유의한 차이가 나타났다.연구 결과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나라 아동의 사회성 놀이 발달 단계는 Parten의 연구 결과와 일치하지 않았다. Parten의 연구 결과에서 3,4세 아동의 경우 병행 놀이를 가장 빈번하게 하였고, 그 다음 연합 놀이, 협동 놀이의 순으로 사회성 놀이 유형에 참여하였다. 반면에, 본 연구에서는 3, 4세 아동 역시 병행 놀이를 가장 많이 하였으나, 그 다음은 혼자 놀이와 연합 놀이의 순으로 나타났다. 둘째, 아동의 성별에 따른 사회성 놀이 발달 단계에서는 놀이 유형 간에 유의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좀 더 상세하게 알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나라 아동의 사회성 놀이 발달 단계는 Parten의 연구 결과와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으나, 부분적으로는 일치하였다. 즉, 병행 놀이 유형의 참여 빈도는 Parten의 연구와 본 연구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일치하였다. 하지만 두 연구의 차이를 살펴보면, 우리 나라 아동이 놀이 유형에 있어서 혼자 놀이에 높은 참여 빈도를 나타내고, 연합 놀이와 협동 놀이는 상대적으로 낮은 참여 빈도를 나타냄으로써 덜 사회적인 경향을 보였다. 이는 Barnes의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논문의 문제 제기 부분에서 Barnes의 연구를 확인할 수 있는데, Parten의 연구가 진행되었던 때로부터 40년 후에 진행된 Barnes의 연구는 미디어 발달 등 시대적인 변화에 의해 아동의 사회성 놀이 발달 단계가 변화하므로 Parten의 연구가 현대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동의 사회성 놀이는 문화적인 차이와 관련 없이 혼자 놀이의 증가로 변화됨을 Barnes의 연구와 본 연구를 통해 지적해 볼 수 있다.본 연구의 첫 번째 가설과는 별개로 혼자 놀이를 살펴보면, 본 연구에서의 혼자 놀이는 연령에 따라 감소됨을 보였다. 그 이유는 아동의 놀이 형태에 대한 선호도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혼자 놀이의 속성이 다른 그룹 놀이 못지않게 아동의 독립성과 성숙함을 나타낸다 하더라도, 아동은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혼자 노는 것 보다는 또래와 어울려 노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Rubin은 혼자 놀이의 비율 보다는 혼자 있을 때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혼자 놀이의 빈도만 측정하였으므로 혼자 놀이의 속성에 대해서는 확인해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병행 놀이를 살펴 보면, 본 연구의 3,4세 아동과 Parten의 3,4세 아동은 모두 병행 놀이를 가장 빈번하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Smith의 종단적 연구에서도 병행 놀이는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약 40여년 전의 3세 아동의 병행 놀이와 현재 병행 놀이 간에 차이가 나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 앞에서 Bakeman과 Brownlee가 병행 놀이란 발달적 단계의 특징이 아닌 놀이의 한 유형으로서 그 순간의 필요에 의해 기인한다고 주장하였듯이, 병행 놀이란 연령 혹은 시대적, 문화적 차이와는 상관없는 놀이의 한 형태로서 아동의 사회성 놀이 발달 단계에 맞추어 고려해야 할 놀이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Vanderberg가 놀이 환경은 놀이 그룹의 크기 뿐만 아니라 사회성 놀이의 유형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밝힌 바 있듯이, 본 실험에서도 병행 놀이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되어있는 유치원의 구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유치원의 구성으로 인해 실제로는 혼자 놀이를 하고 있으나, 마치 병행 놀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졌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점은 유아 교육의 현장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아동의 환경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아동의 사회성 놀이의 빈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아동들과 잘 어울려 놀지 못하는 아동에게 사회적인 놀이로 이끌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면 아동의 놀이 유형에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유아의 성별에 따른 사회성 놀이는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는 성차에 따른 사회성 놀이 유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인 교사들의 성과 태도, 여아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의 배치 등의 변인들이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결과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Parten의 연구를 완벽하게 복제 연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제한점이 있다.연령과 성별이 아동의 놀이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써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짐작했던 것처럼, 성별에 따른 사회성 놀이 발달 단계에서는 유의한 차이가 없는 것이라는 결과가 확인된 것이 인상깊었다. 연구자가 생각하는 본 연구의 한계를 보면, 사회성 놀이 유형에 교사들의 성과 태도나 환경처럼 ‘성별’이라는 한가지 요인을 통해 놀이 발달을 연구해보고 싶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변인들이 함께 작용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서 남아와 여아의 놀이 유형에 큰 차이가 없다면 앞으로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교사들이 올바른 성 가치관을 가져 아이들이 자라면서도 성별에 따른 놀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들이 성별에 구애 받지 않는 다양한 놀이를 통해 자랐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아동의 환경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사회성 놀이의 빈도가 달라진다고 한 것처럼, 개인적인 요인에 대해 주제를 구성했지만 개인적인 요인이 다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보다 환경이 뒷받침되는 것 또한 중요하므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 느꼈다. Parten의 놀이 이론을 우리나라 아동에게 적용했을 때 일치하는 부분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를 알아봄으로써 그저 이론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좀 더 명확하게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