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디아스포라 에서Q. 조선족 은 중국인 일까 한국인 일까 ? 중국인이다 . / 한국인이다 . 중국으로의 이동 ; 조선족제 1 차 인구 대이동 1910-1945 년 한반도 중국 약 140 만제 1 차 인구 대이동제 2 차 인구 대이동 1945-1953 년 중국 한반도 약 100 만독립운동 을 하기 위해 만주 땅으로 들어온 세대 중 해방 후 귀국하지 못한 사람 또는 그들의 자손 일제치하에서 강제 이주 를 당해 들어 온 세대 중 해방 후 귀국하지 못한 사람 또는 그들의 자손 먹고 살기 위해 만주로 들어 온 세대 중 해방 후 귀국하지 못한 사람 또는 그들의 자손 제 2 차 인구 대이동제 3 차 인구 대이동 1985 년 - 현재 중국 한 국 한국 중국연변의 길거리 모습연변 한국 국제학교한국으로 이동하는 조선족한국으로 이동하는 조선족한국에서 조선족의 삶 영등포동 가리봉 동+) 한국인들의 조선족 혐오통계적으로 보면 조선족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 +) 한국인들의 조선족 혐오+) 한국인들의 조선족 혐오+) 한국인들의 조선족 혐오 VS 57.44 건 145.87 건Gāolí bàngzi 高丽棒子 Q. 가오리방쯔 는 중국에서 한국인을 높이는 말 이다 . Yes / NoGāolí bàngzi 高丽棒子 조선 국민들은 가오리방쯔 ( 高麗捧子 - 고려봉자 ) 라고 부른다 . 하얀 베로 만든 흑백두건과 옷을 입는다 .Gāolí bàngzi 高丽棒子 일제시대 때 , 일본군의 앞잡이가 된 조선인들이 몽둥이로 중국인을 때려잡던 일을 비하하며 생긴 말 .Gāolí bàngzi 高丽棒子 천한 심부름꾼이었던 ‘ 방자 ’ 에서 유래했다는 설 조선의 사절단이 중국을 방문할 때 ‘ 방자 ’ 라는 심부름꾼이 있었는데 이가 멍청하고 민폐를 많이 끼쳤다고 해서 생겨났다는 주장 房子 棒子 bàngzi fángziGāolí bàngzi 高丽棒子 중국의 수나라를 격퇴하기 위해 당나라와 연합했던 ‘ 고구려 몽둥이 부대 ’ 에서 유래했다는 설 당나라가 고구려 유민을 끌고 갈 때 , 유민들을 몽둥이로 때리면서 생겨났다는 설 고려인들은 몽둥이로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고 해서 생겼다는 설Gāolí bàngzi 高丽棒子Gāolí bàngzi 高丽棒子Q. 고려인 은 한반도 일대를 지배했던 옛 나라인 고려 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까 ? Yes / No 러시아로의 이동 ; 고려인가난을 이기기 위한 연해주로의 이동 1863 년 : 최운보 등 함경북도 경원 지방에 살던 13 가족 60 여명이 두만강을 건너 당시 러시아의 영토였던 연해주 지신허 마을에 첫 정착을 하면서 역사가 시작됨 . ~ 슬슬 증가 ~ 1869 년 : ‘ 기사흉년 ’ 당시 한꺼번에 6 천여명의 함경도민들이 집단으로 넘어감 . 1880 년대 : 당시 연해주의 고려인 인구는 공식 집계만 1 만 100 여명 , 통계에 잡히지 않은 인구를 합하면 3 만명신천지 개척을 위한 노동력이자 , 국경지역의 골치 아픈 이민족이라는 이중적 색깔 가난을 이기기 위한 연해주로의 이동항일전의 전초지 1905 년 러일전쟁과 을사늑약을 거치면서 계속된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 항일전의 전초기지가 된 연해주강제이주의 시작 4 월 참변강제이주 후 고려인들의 삶을 영상으로 보기스탈린에 의한 집단 강제이주 1937 년 스탈린에 의한 집단 강제이주 8 월 21 일 서명한 ‘ 원동지방 국경부근 구역에서 고려인 거주민을 이주시키는 문제에 관하여 ’ 명시적 목적 : 원동지방에서 일본첩자들이 침투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 ’스탈린에 의한 집단 강제이주 1935 년부터 1937 년까지 2 년 동안 지도급 인사 2 천 500 여명을 숙청 고려인 사회를 공포분위기로 몰아 넣음러시아에서 고려인들의 삶 ‘ 적성 ( 敵性 ) 민족 ’ 고려인 살아남기 위해 포기 한 민족의식 과 시민의식러시아에서 고려인들의 삶 스탈린 사후 고려인들은 일과 공부로 두각을 나타냄 1953 년 러시아 전역과 인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해 중간계층으로 신분상승 - 북극성 콜호스김병화소련 해체와 4 번째 유랑 Q. 고르바초프 가 공산당 서기장에 오르면서 내세운 정책 은 무엇인가 ?! 개혁 ( 페레스트로이카 ), 개방 ( 글라스노스트 )현대 고려인 자신이 고려인의 후손이라는 것을 인지 조국과 모국어를 잊지 않고 살아감독립군 장군 민긍호 의 후손 데니스 텐 안중근 의사의 도움으로 그의 가족은 러시아 로 피신{nameOfApplication=Show}
민주주의는 ‘만민의 정치적 평등사상에 기초하여 한 국가의 주권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국가에 속한 모든 국민에게 부여하고, 이렇게 부여된 개개인의 권력을 기반으로 현실정치를 구현하는 사상 또는 그러한 정치체제’로 정의된다. 2018년 대한민국의 정치문화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기반을 둔 대의민주주의 즉,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선거권 행사를 통해 개개인의 정치적 목소리를 대변해 줄 대표자를 뽑는 형태를 보인다. 이러한 대의민주주의 하에서 선거철 언론의 선거보도는 정당과 후보자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의 선거에 대한 인식과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언론은 정당과 후보자의 정책에 대한 정보들을 유권자들에게 제공하고, 이를 토대로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유권자의 표심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정치 문화를 지속적으로 유지 및 발전시키기 위해..<중 략>
1. 판소리에 대한 설명판소리는 17세기부터 등장한 한국의 전통 음악이자 연극으로, 한 명의 소리꾼이 한 명의 고수(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음악적 이야기를 엮어가며 풀어가는 장르이다.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표현력 풍부한 창(노래)과 일정한 양식을 가진 아니리(말), 풍부한 내용의 사설과 너름새(몸짓) 등으로 구연되는 대중적 전통 문화이다. 판소리는 ‘판놀음으로 벌이는 소리’라는 뜻이다. 판소리를 구성하는 3요소는 소리꾼, 고수, 그리고 청중이다. 주로 평민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은 문화인만큼, 격식을 갖추기보다는 관객들이 ‘얼쑤!’ ‘좋다!’ ‘잘한다!’ 등 다양한 추임새를 통해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소통할 수 있다. 판소리는 소리꾼이 청중에게 이야기를 전달만 하는 일반적인 음악 예술이 아닌 소통하는 쌍방향적 음악 예술이다.판소리는 17세기 한국의 서남지방에서, 굿판에서 무당이 읊조리는 노래를 새롭게 표현한 것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판소리는 광대 집단과도 관련이 있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판소리는 소리꾼과 청중의 적극적인 참여로 완성된다는 독특한 특징을 알 수 있다. 판소리의 특징으로는 지식층의 문화뿐만 아니라 서민의 문화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판소리는 양반층이 아닌 일반 하층민들을 대상으로 시작된 예술 문화이다. 초기에는 양반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지만, 한국인의 정서를 많이 가진 예술인만큼 18세기에 들어 양반 사회로도 판소리가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후 판소리는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19세기 말경에 문학적으로 더욱 세련되어졌으며 도시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고 조선 전국에서 사랑받는 문화로 자리 잡아 현재까지 전해져내려 오고 있다.판소리는 극적 내용에 따라 느린 진양조, 중모리, 보통 빠른 중중모리, 휘모리 등 느리고 빠른 장단으로 구성된다. 판소리는 지방에 따라 그 형태와 느낌이 다르다. 전라도 구례, 순창, 흥덕 등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동편제’는 특별한 기교 없이 불러 소리에 강한 힘이 느껴지고, 전라도 나주, 해남, 보성 등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서편제’는 기교와 수식을 중요시하여 부드럽고 애절한 느낌이 강하다.판소리는 전래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노래와 사설로 엮은 것이다. 그렇기에 전승되는 설화의 수만큼 종류도 다양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판소리의 종류는 총 12개로 흔히 ‘판소리 열두 마당’이라고 전해진다. 열두 마당은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박타령)’, ‘토별가(수궁가:토끼타령)’, ‘적벽가’, ‘장끼타령’, ‘변강쇠타령’, ‘무숙이타령’, ‘베비장타령’, ‘강릉매화타령’, ‘숙영낭자전’, ‘옹고집타령’ 으로 기록되어 전해져 내려온다. 하지만 현대까지 사설과 소리 모두가 온전하게 전해지는 것은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토별가’, ‘적벽가’ 총 다섯 마당뿐이다. (나머지 가운데 ‘장끼타령’, ‘변강쇠타령’, ‘무숙이타령’, ‘베비장타령’, ‘옹고집타령’은 이야기만 전해져 내려온다.)지금의 판소리를 구성하는 배경, 등장인물, 상황 등은 조선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판소리의 주인공들은 대게 신분이 높지 않거나 인간적 약점을 지닌 사람들이다. 춘향가의 춘향이나 배비장전의 배비장, 변강쇠타령의 변강쇠와 옹녀, 심청가의 뺑덕어미는 조선 사회에서 최하위 계층에 속하며, 옹고집타령의 옹고집, 춘향가의 변학도 등은 신문은 낮지 않지만 탐욕스럽고 심술궂은 성격을 지닌다. 또한 판소리는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결국 벌을 받는다는 고전적인 이야기 틀을 바탕으로 서민의 생활과 감정을 생동감 있게 그린다는 특징이 있다. 저잣거리에서 출생하여 발전해온 판소리는 눙치고 시침 떼는 것과 같은 풍자와 해학을 통해 청자들에게 생동감과 재미를 제공한다.판소리의 창자, 소리꾼은 매우 다양하고 독특한 음색을 터득하고 복잡한 내용을 모두 암기하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혹독한 수련을 거친다. 판소리는 ‘1인 오페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길게는 8시간 동안 소리꾼은 극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역할을 수행하고, 오직 북 하나에만 맞추어 혼자 울고 웃으면서 노래해야하기 때문이다. 또 특이한 점으로는, 판소리에서는 쇠망치 소리와 같이 견고하고 강한 ‘철성’과 쉰 듯이 컬컬하면서도 힘으로 충만한 ‘수리성’이 합쳐져 텁텁하고 거친, ‘천구성’을 지닌 목소리를 최고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는 야성적이고 거친 한국인의 정서적 특징이 많이 녹아져 나타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2. 판소리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판소리는 우리나라 시대적 정서를 나타내는 전통예술로 삶의 희노애락을 해학적으로 음악으로써 표현하며 청중과 함께하는 쌍방향 문화예술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저잣거리의 서민들로부터 시작되어 전승되어 온 만큼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냈고, 피지배층으로써의 삶을 현실적으로 생생히 드러내었다. 과거 한국인의 삶과 그를 지배하는 정신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판소리는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새로운 사회와 시대의 도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시간이 흘러 모든 계층이 두루 즐기는 예술로서 자리 잡은 판소리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서로의 생각을 표현하고 조절하였다는 점에 있어 사회적 조절과 통합의 기능 또한 담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판소리는 다양한 전통 예술로부터 필요한 것을 수용하고 그것을 종합하는 개방성을 지닌 예술로써, 한국어의 표현 가능성을 최대치로 발휘한 민족적인 표현방식을 보여준다. 이로써 판소리는 인류 보편의 문제점에 접근하는 예술로 승화되었고 민족문화의 전통 계승과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