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학번:000000 이름:000현재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선사시대의 유물이 발굴되고 있으며, 각종 역사가 싶고 의미가 큰 유명한 유적지들이 발견되고 있다. 여러 유적지 중 하나가 바로 공주 석장리 유적이다. 선사시대는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 시대를 모두 일컫는 시대를 의미한다. 선사시대의 유적은 우리나라의 뿌리를 규명함으로써 국가, 국민들의 자긍심과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기 때문에 가치 있고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론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공주의 석장리 유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 것이다.공주의 석장리에 위치해있는 구석기 시대의 유적은 충남 공주 석장리의 금강 북안 하안의 단구에 위치해있는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지이다.현재는 사적 제334호로 정식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해당 유적에 대한 전문적인 조사는 1964년부터 1974년까지 총 10차례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그 결과 땅의 지층은 총 27개의 층위로 형성되어 있었고 각종 다양한 유물을 포함하고 있는 가치가 높은 문화층도 무려 11개 층위나 있다는 사실을 당시에 알게 되었다. 이후에 정확하게 1990년과 1993년에는 다시 구체적인 발굴 및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이후에 보다 더욱 다양한 문화 유적이 실제로 확인됨에 따라서 해당 유적의 분명한 가치와 역사적인 성격이 규명되었다.해당 유적지의 제1층의 문화층은 구석기시대의 전기, 즉 민델의 빙하기에 형성되었으며, 제2층에서 제6층까지의 문화층은 구석기시대의 중기에서 후기에 걸친 시기에 형성되었고, 즉 이는 리스 빙하기의 제3의 간빙기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2층위의 문화층은 구석기시대의 후기 및 중석기 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출토가 된 석기는 제1층에서 제4층까지 외날도끼와 쌍날도끼, 그리고 제5층에서 제6층에서는 밀개와 주먹도끼, 그리고 제7층에서 제10층에서는 스크레이퍼와 그래이버, 그리고 마지막 제11층에서 그래이버와 스크래이버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것은 과거 유럽의 구석기시대의 후기 문화의 한 종류인 오리냐크 문화와 매우 닮은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석장리 유적은 중기와 후기까지 계속 명확하게 밝혀졌으나 애석하게도 당시에 서식했던 동물들의 화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해당 유적지는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서 최초로 발견된 대규모의 구석기 시대 유적지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학문적이고 역사적인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90년과 1993년도에 실시되었던 유적의 조사 보다 면밀한 조사 결과는 이전보다 더욱 구체성을 보이고 있었다.조사에서는 우선 전기의 구석기층에서 후기의 구석기시대의 집들의 자리를 비롯해서 중석기 시대의 각종 문화층까지 모두 확인되었다. 전기의 구석기 층은 기존의 구덩이의 아래층에서 구석기시대의 석기가 확인됨으로써, 초기의 조사 결과로서 확인되었던 전기의 구석기 문화층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자갈돌로 만들어진 찍개 등의 석기물이 발견되었다. 한편 후기의 구석기시대의 집터는 당시 지면에 열이 형성되기 이전의 점토층에서 시작하여 2기의 집터까지도 확인되었다. 집터는 이미 과거 1970년~1972년의 면밀한 조사에서 1기가 확인된 바가 있어서 모두 총 3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2호 집들 자리로 구분되었던 유구를 살펴보면 기둥에 구멍이 2개가 있는데 이는 집안에서 모루 돌을 정중앙에 두고 여기에서 각종 작업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이외에 3호 집들 자리로 구분되었던 유구는 큰 기둥을 정면에 세우고 각종 잔가지로 울타리 형태의 벽면을 조밀하게 구성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정면은 매우 넓지만 뒷면으로 가면서는 좁아진 세모꼴의 형태로 모양을 복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