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지방제도**(누층적 구성)고려의 지방제도는 군현제도를 근간으로 하여 중앙에서 외관을 파견하는 중앙 집권적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고려초기에는 왕권의 미약등으로 인해 지방에 외관이 파견되지 못하고 호족들이 자치적으로 지방을 다스리는 형태였지만 성종대에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되면서 12목이 설치되어 처음으로 지방관이 파견되었다. 이로써 지방 호족세력이 중앙의 통제하에 들어가게되었고 12목에 경학박사, 의학박사를 파견하여 지방의 교육을 담당케 하였다. 이후 현종대에 이르러 고려의 지방제도가 3경 4도호부 8목 56지주군사 28진장 20현령으로 개편되면서 일단락되었다. 도호부는 군사적 요충지로 도호부사가, 목은 지방 행정 중심지로 목사가 파견되었다. 또한 경, 도호부, 목을 계수관으로두어 중앙과 지방의 군현을 잇는 중간기구의 역할을 하게 하였다. 지방관이 파견된 군현을 주현,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군현을 속현이라 하였는데 주현의 수보다 속현의 수가 많았고 주현이 간접적으로 속현을 통치하게 하였다. 그러나 점차 주현의 수가 증가하자 계수관만으로는 통제가 힘들자 새로이 북방의 국경지대에는 양계(북계+동계) 남방의 지방행정 중심지에는 5도를 설치하여 군현을 관할하는 상부행정구획으로 삼았다. 5도에는 안찰사, 양계에는 병마사가 파견되었으며 이들의 임기는 둘다 6개월이었다. 이로써 고려의 지방제도가 완비되었지만 도와 계는 통치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고 경기는 개성부가 직접 통치한다는 점에서 전국의 지배방식이 일원화 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고려는 또한 향, 부곡, 소라는 특수행정구역을 두고 있었다. 향, 부곡에 거주하는 인들은 농업에 치중하였고 소에 거주하는 인들은 수공업품을 줄 생산하였으며 이곳의 주민들은 일반 군현의 주민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았다. 이곳은 향리가 주로 관할하였으며 향리는 고려시대에 호장, 부호장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지방의 실질적인 지배자 역할을 하였다. 왕건이 이러한 향리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실시한 제도가 바로 고려초에 실시된 기인제도와 사심관제도이다.고려의 가장 말단 행정조직은 촌으로 정부는 군현으로 하여금 촌을 통제하게 하여 조세를 수취하는 행정체계를 마련하였다.*당상관 문신 정3품 통정대부 이상무신 정3품 절충장군 이상*당하관 문신 정3품 통훈대부 이하무신 정3품 어모장군 이하릉.원.총.묘.릉은 확실하게 알수있는 왕이나 왕비의 무덤을 일컷는 말 입니다.총은 무덤이 왕이나 왕비의 무덤인것 같은데 누구인지 알수없을때 총이라 합니다.그래서 천마도가 출토되어 천마총.금관이 출토되면 금관총 이렇게 표현 합니다.릉(陵)이란?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합니다.에를들어 무열왕릉,영릉.동구릉등입니다.원(園)이란?원은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세손과 세손비, 왕의 생모인 빈(정1품의 후궁)의 무덤을 원(園)이라고 합니다,에를들어 명종의 첫째 아들인 순회세자의 무덤 순창원.소현세자의 무덤인 소경원.의소세손의 무덤인 의녕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