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또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노력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한다. 하루하루 넘쳐나는 뉴스들과 정보들을 보면 사실 나는 나 혼자 이 세상에 혼자만 멈춰있는 것 같다. 나는 세상을 바꾸는 일은 그런 뉴스에 나오고 인터넷에 화두가 되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 트래버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런 익숙한 생각에 빠져있었던 나는 어쩌면 내 자신에게 세상을 바꾸는 일을 포기하라고, 세상에 지라고 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을 해보면 불과 몇 분 아니 몇 초 사이에 돌맹이라도 위치가 바뀌고 물이 흘러가고.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나의 아주 사소한 것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래버의 ‘도움주기 릴레이’가 나중에 세상을 변화시킨 것처럼 말이다.그러나 이렇게 글을 쓰면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아름다운 세상’이란 무엇인가. 우선 사회선생님 시모넷이 바꾸고자 한 사회의 모습은 자신의 맡은 바에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세상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사소한 행동일지라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아주 작은 사건이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듯 말이다. 반면 트레버가 원하는 아름다운 세상은 서로를 돕는 사회를 말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그는 도움을 실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들은 그들의 기준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은 너무나 다양해서 그의 방식이 유토피아적이라고 비웃음을 당하기도 했다. 세상을 바라보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각자의 렌즈가 다르듯, 나의 아름다운 세상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기로 했다. 과연 내가 원하는 이 세상의 모습은 무엇일까. 아름답다는 말은 사전적인 의미로 (무엇이) 감탄을 느끼게 하거나 감동을 준 만큼 훌륭하고 갸륵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나에게 아마 아름다운 세상이란 보다 함께함에 따뜻해지고, 정의로운 사회를 뜻하는 것 같다. 교수님에게 그리고 동기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이란 무엇인지에 의견을 듣고 싶다.본론으로 넘어가면, 세상을 바꾸는 많은 방법 중 우선 ‘나로서 존재함’을 지키는 것이 나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작고도 큰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서점에서 ‘내 마음속의 난로’라는 책을 보았다. 그 책에서 ‘나를 위한 누군가가, 누군가의 존재가 있기에 내가 존재해야 한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나는 한참 이 문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가 세상에 왜 존재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을 던질 때, 때로는 나를 위해 감사한 사람도 있지만 때로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고마워서 존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곁에 나를 위한 사람도 존재하지만, 내가 그 사람의 존재함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하나뿐인 딸로, 친구들에게 소중한 친구로, 멘토링 기관에는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는 존재로 그리고 교수님에게는 수업을 듣는 한 명의 학생으로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커다란 세상 중에 아주 작은 부분에 속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작은 존재가 내 주변에는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내 존재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고 책임감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트래버도 마찬가지다. 트래버라는 하나의 존재가 결국에는 노숙자에게, 그 노숙자는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결국 뉴욕으로, LA로 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나의 존재가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우선 주변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부모님께는 효도하고, 친구들에게는 좋은 친구가 되고 교수님께는 수업시간 집중하고 공부에 대한 고민들을 해나가려고 한다.두 번째로는 SNS를 활용하는 것이다. 요즘 SNS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파급력도 엄청나기에 사회를 바꾸는데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하나의 소통의 창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SNS의 특징을 이용하여 세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나는 사실 그런 곳에 나의 생각들을 올리는 것이 두렵다.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공인들을 보면 잘못된 발언을 할 경우 질타받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사상과 신념에 맞지 않다고 해서 마녀사냥을 당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리고 또 공인이 아닌 일반인도 글을 올렸다가 논란이 되는 사건을 많이 목격한지라 나의 의견을 그곳에 올리는 것은 아직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의견이 선한 영향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이 서면 조금씩 나의 이야기를 써 나가보려고 한다. 요즘 논란이 큰 대한민국 청원 역시 그러한 SNS적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 역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때 해결이 되고 대한민국이 보다 정의로운 국가로 나아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일조할 수 있는 국민으로서의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또한 정치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가 여행 다녀온 사진을 올리는 것, 역시 다른 사람을 위함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녀온 정보를 공유하고 내 사진을 통해 힐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소소하면서 큰 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방법중 하나일 것이다.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행복한 삶을 살기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해 본 결과 그저 세상의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그것이 아름다운 세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언제 받은 적이 있다. 누군가는 인생의 목표와 도착점이 행복이 될 수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다. 불행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면 결국에는 행복으로 가는 길에는 행복한 것들만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과 성공은 다르다. 인생의 목표가 성공이라면 그 목표를 위해 행복뿐만 아니라 희생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다. 무언가를 무조건 얻어야 하는 성공보다 행복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놓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면, 이 세상이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역시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기에 줄어들 것이며, 삶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변해갈 것이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내가 일학년 때 쓴 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2년전의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행동하기, 주변을 둘러보는 습관 가지기, 생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오로지 타인을 위한 일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물론 타인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일학년 때 지키고자 했던 것들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이제는 내 인생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방법을 말해보고자 한다. 우선, 내가 교육학과에 진학한 이유는 한국교육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그때는 막연히 중고등학교 시절이 힘들어서 학생들을 위한 교육을 하자라는 쉬운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교육학과에 3년 동안 재학하면서 교육이라는 것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국교육개발원과 같은 연구원으로 일하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점점 내 장래에 대한 확실을 잃게 되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공무원을 해야 할지, 임용을 준비해야 할지, 대학원에 진학해 더 공부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지. 머리 속에 수많은 갈림길이 매일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이제는 교육을 위한 교육을 더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교육적인 문제를 가지고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과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실천한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점을 말하고 싶다. 어느 교과서, 참고서에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할 일’이라는 것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교과서만이 정답인 줄 알고 공부해간다. 이렇게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는 것은 문서와 책에 명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판단과 인식을 바탕으로 한 실천만이 세상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능력들은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더 나은 우리나라를 위한다면 지식을 계속 가르치는 것이 과연 맞는가. 인성이 중요시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많은 슬로건을 내놓지만, 정작 교육은 아직도 19세기의 교육에 머물러 있는 아주 모순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교육들에 더 깊은 고민을 하고 세상을 바꾸는데 모든 기초가 될 교육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