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후서 기말레포트주해본문: 베드로전서 4장 12-16절1. 들어가는 말베드로전서의 저자:초대 기독교 지도자들은 베드로전서의 저자가 베드로라는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이 서신의 저자가 베드로라고 명시적으로 주장한 최초의 교부는 130년경 태어난 이레니우스였다. 이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터툴리안, 오리겐 등 주요 교부들이 베드로 저작설을 인정하게 되었다.특히 저자가 복음서에 보존된 예수 어록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산상수훈에 담긴 윤리적 교훈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을 보여주는 점,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와 그리스도의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제자도, 리더십에 합당한 은유로 제시된 목양 등의 개념은 베드로가 저자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19세기 비평학자들 가운데는 베드로 저작설은 인정하지 않는 입장도 있다. 그 이유는 이 서신에 사용된 헬라어에 있다. 베드로전서는 잘 다듬어진 헬라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매우 방대한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곧 저자가 교육을 많이 받은, 헬라어에 능통한 자로 본다. 따라서 갈릴리에서 고기 잡던 베드로가 과연 저자가 될 수 있는가 의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가 정규 랍비 교육을 받지 못했더라도, 성경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었고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설교했을 때 많은 이들이 회심했던 일, 설교에서 구약성경을 효과적으로 인용했던 일 등을 보면 본 서신의 저자를 베드로이며, 베드로의 삼십 년 간의 설교 및 가르치는 사역을 통해 헬라어에 능통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베드로전서의 청중:베드로전서는 지리적으로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고 저자와 그의 회중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있는 교회들에 보내졌다는 사실은 그가 청중의 인종적, 사회적 구성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청중의 문제는 저자의 제한된 관점으로부터 말해져야 한다, 1장 1절에 나오는 “흩어진 나그네(παρεπιδ?μοι? διασπορ??)”라는 어구는 주전 586년 바벨론 포수 이래로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유대인하는 데 목적을 둔다.베드로전서의 주요 주제: ‘고난’과 ‘신뢰’: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일생을 통해, 특별히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여 성숙해지도록 격려하는 것을 기록 목적으로 볼 수 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지적하고, 그것을 독자들의 삶에 적용함으로써 그의 목적을 성취한다. 특별히 베드로전서에는 ‘고난’(고난 받는 자들)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그 고난은 하나님의 뜻대로 주어진 것이며 “미쁘신 창조주께” 독자들의 영혼 혹은 삶을 계속적으로 의탁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라는 주제들이 발견된다. 더욱이, 그러한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또한 순종이 수반되어야 한다. 당시 이 서신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세상으로부터 고난과 박해를 겪었고, 모욕과 조롱을 당했다. 이에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변호해주실 것을 믿어야 하며, 하나님의 구원이 그들에게 반드시 임할 것임을 확신함으로 환난의 때에 변하지 말고 신실해야한다고 독려한다. 베드로는 고난에 대한 인내가 신자들을 더욱 단련시켜 줄 뿐만 아니라, 악인들에게 큰 감명을 주어 그들이 주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기에 신자들은 고난을 유익하게 생각할 수 있다고 권면한다.베드로전서의 메시지를 크게 세 악장으로 나누자면, 첫 악장은 독자들에게 그들이 가진 산 소망에 대해 알려주는 1:1-2:12 말씀이다.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누리며, 거룩한 행실을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면 은혜와 평강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는 비교적 밝고 활기찬, 그리스도를 시련의 때에 소망의 근원으로 표현한다. 한편 두 번째 악장에서는 깊고 어두운 어조로 독자들에게 2:13-4:11까지 “고난에 찬 생소한 삶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가지고 살 것”을 독려한다. 베드로는 권위에 순종하고, 자신을 낮추며, 인내로 무장하고, 모든 일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적대적인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ει τ?? δ?ξη? α?το? χαρ?τε ?γαλλι?μενοι.14. ε? ?νειδ?ζεσθε ?ν ?ν?ματι Χριστο?, μακ?ριοι, ?τι τ? τ?? δ?ξη? κα? τ? το? θεο? πνε?μα ?φ? ?μ?? ?ναπα?εται.15. μ? γ?ρ τι? ?μ?ν πασχ?τω ?? φονε?? ? κλ?πτη? ? κακοποι?? ? ?? ?λλοτριεπ?σκοπο?·16. ε? δ? ?? Χριστιαν??, μ? α?σχυν?σθω, δοξαζ?τω δ? τ?ν θε?ν ?ν τ? ?ν?ματι το?τ?.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시련을 위하여 너희에게 발생하는 너희 가운데 있는 불시험을 너희에게 일어난 낯선 것처럼 생각하지 마라.13. 도리어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만큼 너희는 즐거워해라. 그리고 그가 영광 가운데 나타나실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14.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너희가 치욕을 당한다면 너희는 복된 사람이다. 왜냐하면 영광의 영, 즉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나타나기 때문이다.15. 진실로 너희가 살인자나 도둑이나 행악자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자 같이 고난을 받지 말라.16.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인으로써 고난을 받는다면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리고 그런 경우 하나님을 영광을 돌려라.3. 단락별 주해3-1. 베드로전서의 전체 구조와 4장 12-16절의 위치와 구조베드로전서 전체 구조 표단락우리의 산 소망(1:1-2:12)우리의 특별한 삶(2:13-4:11)우리의 불 같은 시련(4:12-5:14)주제계속 나아가기 위한 은혜,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산 소망굳건히 서기 위한 은혜, 개인의 순종을 통한 침착한 소망기뻐하기 위한 은혜, 믿음을 통한 확고한 소망핵심용어썩지 아니할, 거룩한, 순종순종, 거룩하게 하다목자, 겸손한베드로전서 4장 12-16절의 논증형식구조구조명령 형식의 논제12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논리적 엡3:21; 딤전1:17) 베드로전서는 소아시아의 네 개의 드넓은 지역에 산재한 10개 혹은 그 이상의 주요 교회들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수신자로 삼고 있다. 그 곳에 처음 복음이 전파되었을 때부터 많은 곳에서 적대감과 폭력적 반대, 박해가 존재했다. 베드로는 이유 없는 고난과 부당한 대우, 예기치 못한 재난 등의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γαπητο?(“사랑하는 자들아”)라는 부름말은 11절을 상기시키고, 실제로 11절의 (?γαπητο?)와 마찬가지로 베드로 서신에서 새로운 대 단락을 시작하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다. 4장 12-19절은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고, 원수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앞으로 닥칠 고난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μ? ... ?λλ?’로마사회 속에서 자기 자신과 그의 독자들의 상황에 관한 베드로의 수사학적 요약은 ‘μ?(12절) ... ?λλ?(13절)’에 의해서 구분된다. 소극적 명령과 적극적 명령으로 시작된다. 소극적으로 말해서 그들은 “이상히 여겨서는 안 된다”. 적극적으로 말해서는 그들이 “복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기뻐해야 하는 것이다.πυρ?σει‘불 시련’은 잠언 27:21의 칠십인역 본문에서 히브리어 ‘쿠르(?????, 풀무)’에 대한 역어로써 금과 은을 연단하는 것과 관련해서 사용된다. 불에 타는 고통을 뜻하며, 베드로가 독자들에게 현재 감내하고 있는 특별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1세기의 기독교 혐오자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연관이 있음을 안다. 그 혹독한 시련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결국 베드로가 그들의 소망의 근원을 상기시키는 편지를 쓰기에 이른 것이다.“불 시험”으로 번역된 단어는 “불, 불타는”을 의미하지만, 베드로는 아마도 잠언 27:21의 단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불은 금과 은을 단련하는 도구이다”라는 의미를 통해서 이 불을 ‘정제하는 불’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정련하는 화로의 이미지는 그러한 고난이안에 있는 큰 기쁨으로 이끌 것이다.ε? ?νειδ?ζεσθε ?ν ?ν?ματι Χριστο?, μακ?ριοι,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이 본문은 마태복음 5장 11절, 누가복음 6장 22절의 예수의 말씀과 유사하다. ?νειδ?ζω(욕하다)는 위 본문에서 수동태인 ?νειδ?ζεσθε(욕을 받다)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지 않는 동료 시민들 사이에서 욕을 당하기도 하고,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해서는 안된다는 권면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베드로가 여기서 ?νειδ?ζω를 사용한 것은 복음서 전승을 알고 있었던 것에서 시작한다. 이는 베드로의 논증 방식 중 하나인 ‘권위 있는 사례’에 호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본문이다.?τι τ? τ?? δ?ξη? κα? τ? το? θεο? πνε?μα ?φ? ?μ??와 ?ναπα?εται.14절의 ‘영광의 영’은 13절의 고난과 연결되는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할수록 더욱 더 기뻐하라는 역설적인 권면을 제시한다. 현재의 고난에 대해 기뻐할 이유가 단지 미래적으로 얻을 영광뿐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베드로가 고난 받는 교회 위에 임하여 있는 하나님의 영을 ‘영광의 영’이라 했으며, 그 영광이 ‘너희 위에’(?φ? ?μ??) 머물러계신다(?ναπα?εται)고 표현했다. 여기서 ?ναπα?εται는 단지 현재 지속적으로 머물러 계심을 표현할 뿐 아니라, ‘안식’의 개념으로 하나님의 영이 어떤 장소에 머물거나 안식할 거처를 찾는다는 개념을 보여준다. 즉, 영광의 영이 곧 하나님의 영께서 세상에서 머물러 거하시며 쉴 곳을 찾으셨다는 것, 그런데 그 거처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교회라는 사실은 베드로전서의 수신자들에게 놀라운 선포라고 할 수 있다.?λλοτριεπ?σκοπο?이 단어는 ‘남의 일에 간섭하는 자’라는 뜻으로 신약에서는 오직 여기서만 발견되며, 자기 일이 아닌 일들에 간섭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자신의 적합한 관심사가 아닌 일에 참견하여.
교회교육 기말 소논문 서평책 제목: 『기독교교육학 개론』(생명의 양식)서론기독교교육학 개론은 기독교교육 전문가들이 기독교교육과 관련한 다양한 주제들을 놓고 정리한 방대한 책이다. 책을 읽으며 기독교교육학의 정체성과 교육철학, 역사, 목적 및 과정론, 각종 교육과의 관계 등을 조금이나마 정리할 수 있었다. 특별히 레포트를 통해서는 방대한 내용들 중 기독교교육의 정체성과 역사, 교육목회와 가정교육, 학교교육에 초점을 맞춰서 살펴보고, 실제로 기독교교육이 이루어지는 가정과 교회, 학교현장에 대해 살펴보며 오늘날의 교회교육의 대안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책 내용 요약기독교교육학을 논의할 때, 기독교교육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특히 기독교교육에 대한 개혁주의가 견지하는 개념과 개혁주의적 기독교교육의 방향을 알아보기 위해서, 개혁주의 기독교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개혁주의의 의미는 16세기 일어났던 종교개혁의미에서부터 살펴볼 수가 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존 칼빈이 이루었던 종교개혁은 사제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소명’의 개념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확대하는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하게 된다. 개혁주의를 좀 더 협의적으로 바라보면, 칼빈의 신학과 사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칼빈의 가르침과 그 전통을 따르는 칼빈주의(Calvinism)가 개혁주의의 전통이다. 칼빈의 가르침을 따르며 삼위일체 하나님, 인간의 타락과 그리스도의 구원,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한다.이러한 개혁주의의 전통에 대한 이해를 배경으로 볼 때, 개혁주의 종교교육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개혁주의적 세계관에서 볼 때, 교육과 관계되는 모든 요소와 행동들이 성경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조직되고 실행될 때, 우리는 그 교육을 기독교교육이라 할 수 있다.개혁주의 기독교교육은 성경계시에 그 기초를 두며, 더 나아가 인간과 실재, 지식과 가치에 대한 성경적 이해해 기초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다. 인간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다 더 분명하게 이, 제자들이 다른 이들을 제자 삼을 수 있도록 교육하셨다. 그의 제자들도 예수를 선생이라 불렀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시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가르치셨다. 달성하기 위해 의도를 가지고 계셨고, 가르침에 있어서는 있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는 것을 우선으로, 그리고 인간들과 올바른 관계를 갖도록 했다. 예수님의 가장 기본적인 대상은 개인이었으며, 각각의 영혼이 홀로 설 수 있도록 전념하셨다.예수님의 교육가치관은 자연스럽게 사도들에게로 내려 왔으며, 사도를 거쳐 초대교회에서 나타났다. 초대교회는 신앙의 전파 수단으로 교육을 강조했다. 교육은 구약이나 신약 성경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초기에는 비형식적인 교육이었으나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후로는 형식적인 교육이 나타나게 된다. 초대교회의 첫 교육내용은 케리그마와 다다케였다. 이것이 “가르치는 행위”와 함께 “선포하는 행위”가 된 것이다. 그리고 초대교회가 후기로 접어들면서 교육의 형태는 ‘카테키시스’로 변화된다. 이것은 구전을 통해 입문적 기초지식을 전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는 2세기 이후로 자리 잡게 된 교회의 신앙교육이었다.중세로 접어들면서 교육 형태도 자연스럽게 변화된다. 교회는 더 이상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승인된 후, 교회는 새 교인을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반대로 이제는 전 국민의 기독교적 교육에 힘을 모아야 하는 형태로 바뀌게 된다. 중세 교회교육의 특징은 두가지인데, 먼저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따르는 상징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신비주의다. 먼저 어거스틴의 원리에 근거하여 인간의 본성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신앙교육의 핵심이 죄인인 인간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움을 깨닫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성례와 같은 예전이 강조된다. 또한 상징교육의 한 방법으로 기독교미술을 통해 대중에게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이해시켰다. 또한 종교극을 통해 종교적 진리를 배웠다. 하지만 이런 상징교육들은 중세기 교회의 타락으로 이어졌으며, 수도원교육에 가려 점차 쇠퇴판했다. 1960년대 이후로는 신정통주의 신학에 의한 기독교교육운동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런 가운데 개혁주의와 복음주의는 교회갱신과 성경의 우월성 가조, 세계관 운동, 기독교학교 운동 등으로 맞서 나가고 있다.한국의 교육역사는 기독교교육의 역사와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재래식교육은 선교사들의 활동과 함께 신교육으로 변화된다. 선교사들의 입국 이후 1910년까지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학교만 666개 학교에 달했다. 기독교 학교들은 한국의 사립, 공립학교를 일으키는 촉매제가 된다. 이렇게 새워진 미션스쿨은 기독교신앙 훈련을 실시하였다. 한국에서 주일학교는 1888년 스크랜튼 부인의 여성주일학교가 시초다. 주일학교를 통해 여성의 교육이 신장되고, 한글 사용의 토대가 되기도 했다. 주일학교는 교세 성장에도 큰 역할을 했는데, 아동교육에 많은 힘을 쏟는다. 1960-70년대 한국교회의 교회교육은 교단마다 공과발행, 교사세미나 및 강습회 등을 통해 교회교육 지도자양성을 도모했다.2000년의 기독교교육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교회교육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세속화와 과학주의로부터 극복해야 하며,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속에서 성경의 절대화를 회복하고 성경적 교회를 지향해야 할 과제가 있다.초기 한국교회는 놀라운 부흥을 경험한다. 김득룡에 의하면 1887년 평양에서 6개의 주일학교가 생겨 기독교교육을 실시한 것이 기독교교육의 시작이라 기록한다. 하지만 이전에 이화학당에서 여성들로만 구성된 12명의 학생이 모여 스크랜턴 여사에 의해 최초의 주일성경학교가 시작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 모임은 좋은 소문으로 숫자가 증가하게 된다. 1888년 아펜젤러 선교사의 인도로 배재학당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영어 주일학교도 시작된다. 그 이후로 한국교회 내 주일학교는 계속해서 성장한다.하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교회의 기독교교육은 정체기로 본다. 한춘기 교수는 오늘날 한국교회 기독교교육의 정체와 을 통한 유아세례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처럼 종교개혁자들은 가정에서의 신앙교육과 부모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시기, 목회자들 역시 자녀를 가르치는 것 뿐만 아니라 부모를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17-18세기에는 ‘자연주의적 가정교육’이 전개되었다. 코메르니우스에 의한 자연주의적이며 아동중심적인 가정교육이 진젠돌프 등의 경건주의자들로 계승이 된다. 코메르니우스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 중 인간이 가장 높고 절대적이고 탁월하다고 보았다. 그는 ‘어머니학교’, ‘모국어학교’, ‘라틴어학교’, ‘김나지움’, ‘대학교’ 등으로 학교의 등급을 나누어 교육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어머니학교를 통한 가정교육을 가장 강조했다. 경건주의 운동가들 역시 생활과 신앙을 통한 가정교육을 강조했으며, “아동들이 종교적인 환경에서 성령으로 인도되어 스스로 활동하며 학습하도록 해야 한다”는 교육법을 견지했다.19세기 중엽 신학적 가정교육학자 호레이스 부쉬넬(Horace Bushnell)은 이라는 책을 통해 “부모의 교육적 책임, 아동에 대한 교육적 관심과 배려를 주장하며 가정에서의 기독교교육을 강조했다.” 그는 “칼빈주의 언약공동체 사상에 근거하여 가정이 하나님과의 언약이 후대로 전달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부쉬넬은 가정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다. 또한 부모의 행동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통해 유기적 일체를 찾는다.부쉬넬은 처음으로 가정이 기독교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신학적을 풀어내었다. 그는 기독교인이 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배우는 가장 시발점을 가정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가정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언약을 이루어 가는 장소로 이해했다. 그는 부모가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있어야 자녀들이 부모를 통해 부모 속에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가정에서 부모의 신앙교육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오늘날 기독교가정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정은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인구의 변화로 인한 가정의 형태 변화, 취업, 교육 등으로 인한 동안은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경험했고, 교회를 개척하면 양적 부흥을 이룰 수 있었던 시대가 2-30년 전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교회는 정체 혹은 쇠퇴의 길을 가고 있으며, 특히 다음세대에서 이러한 쇠퇴의 모습을 가시적으로 볼 수 있다. 2017년 예장합동측에서 2000개 교회, 교인 98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30%에 가까운 교회에 ‘주일학교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로는 74%가 ‘아이들이 없어서’, 14.3%가 ‘주일학교를 운영할 능력이 부족해서’를 꼽았다. 총신대학교 함영주 교수는 범교단 적으로는 50%에 가까운 교회에 주일학교가 없을 것으로 보기도 했다. 서평을 통해 필자는 한국교회가 겪고 있는 위기의 이유를 분석해보고, 한국교회가 이루어나가야 할 건강한 기독교교육의 트라이앵글에 대해서 생각해보며 대안을 마련해보려 한다.1. 한국교회 교회교육의 위기 원인한국 교회 교육의 위기는 목회자 윤리문제, 교회의 세속화, 전통 및 제도화, 세대 갈등 등이 있다. 또한 더 넓게 보면 사회 문제론적 관점에서 인구 감소, 이미지 소비문화, 다문화 사회, 인권문제, 이단 문제로 평가된다. 먼저 사회문제론적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위기를 살펴보고자 한다.1) 인구 자연 감소현 한국 청소년 인구는 감소 추세다. 통계청 및 여가부에서 발표한 “2018년 청소년 통계”에 의하면, 9-24세 청소년 인구는 899만 명이다. 10년 전 2008년 1,049만 명보다 약 150만 명 감소하였다. 인구 자연 감소는 한국 교회 주일학교에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주일학교 사역 및 목회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자연적인 인구 감소에 있다. 사실 이것은 교회의 잘못이 아니다. 시대가 변해가는 것일 뿐이다.2) 이미지 소비문화한국 교회는 과거 전통적 형태의 예배와 문화 형식과 달리 과학기술문명과 대중매체의 발달로 진보된 사회가 침투하였다.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로 상징하는 '초지능사회'가 사회의 기본 축으로 작동함에 따라 기독교계를 둘러싸고 있는 다중적 차원(Multi-l된다.
종교개혁사 소논문Ⅰ. 서론종교개혁자를 떠올렸을 때 바로 생각나는 인물은 ‘존 칼빈’, ‘루터’, ‘후스’, ‘츠빙글리’ 정도다. 사실 존 녹스(John Knox)라는 인물이 바로 떠오르지는 않는다. 필자는 2년전 유럽여행을 갔을 때 유럽의 종교개혁지들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칼빈의 제네바와 스트라스부르, 루터의 비텐베르크와 보름스, 얀 후스의 동상이 있는 프라하 등을 방문했지만 존 녹스의 스코틀랜드는 방문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곳이기도 하다.하지만 우리는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녹스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처음으로 국가적인 종교개혁이 성공했던 곳이 바로 스코틀랜드이며, 존 녹스의 삶이 한국교회에 주는 교훈은 매우 크다. 이번 종교개혁사 강의와 책 『존 녹스: 하나님과 역사 앞에 살았던 진리의 나팔수』, 존 녹스와 관련한 몇 가지 논문들을 찾아 살펴보면서 한국교회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특히 존 녹스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본 소논문을 통해서 존 녹스의 생애와 신학, 특별히 종교개혁자 존 녹스의 의의에 대해서 살펴보려 한다.Ⅱ. 존 녹스의 생애본 장에서는 존 녹스의 생애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존 녹스가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로 성장해갔던 기간과 스코틀랜드 교회를 개혁해 나갔던 기간을 나누어서 보도록 하겠다.2.1. 종교개혁자 존 녹스, 성장의 기간다른 종교개혁자들과 비슷하게 녹스도 로마 가톨릭의 사제이자 신학자로 삶을 시작했다. 그의 유년기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패트릭 해밀턴(Patrick Hamilton)과 조지 위샤트(George Wishart)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루터의 영향을 받은 프로테스탄트 설교를 하다가 화형을 당한 인물들이다. 녹스가 어떤 과정을 거쳐 종교개혁자로서 회심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교수로 일하면서 진행했던 성경연구가 종교개혁자로의 회심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추정해볼 수 있다. 로마 가톨릭의에드워드 6세가 사망하게 되면서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발걸음도 어려움에 봉착한다. 로마 가톨릭 신앙을 가졌던 에드워드의 이복누이 메리가 왕이 되었고, 즉위 후 모든 종교개혁 정책이 멈추게 되면서, 종교적 상황이 1534년 이전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녹스는 선지자적 설교를 해 나갔다. 잉글랜드가 지금까지의 개혁적 종교 정책을 포기할 경우, 다시 우상숭배로 돌아갈 경우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적 설교였다. 커져가는 종교개혁에 대한 탄압으로 녹스는 결국 프랑스로 피신했고, 칼빈이 사역하던 제네바로 가게 된다.녹스는 칼빈의 추천으로 1554년 11월, 프랑크푸르트의 영국 피난민 교회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 영국 피난민교회 내에서 ‘예배의 형식과 예전을 어떤 방향으로 개혁할 것인가’ 하는 신학 논쟁을 겪는다. 프랑크푸르트 내에 있던 잉글랜드 국교회 지도자들은 영국 국교회의 공동기도서를 따를 것을 주장했지만, 녹스는 제네바 예식서(Genevan Order of Book)을 제안했다. 논쟁에서 녹스가 패하게 되면서 다시 제네바로 돌아오게 된다. 제네바에서 다른 종교개혁자들의 도움으로 저술활동을 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었다. 녹스는 스코틀랜드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유익한 조언의 편지”(Letter of Wholesome Counsel)를 저술했다. 그는 공개적인 예배가 불가능하고, 목회자도 부족한 스코틀랜드의 열약한 상황에서 “가정예배”의 형식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스코틀랜드는 종교개혁이 안착되기 전까지 ‘비밀교회’(Pricy Kirks)의 형태로 가정예배가 이루어졌다.2.2. 종교개혁자 존 녹스, 조국교회 개혁 기간녹스는 제네바에서 사역했지만 자신의 조국 스코틀랜드를 잊지 못했다. 1550년대 초, 스코틀랜드는 왕비 메리의 섭정이 더 강화되어 있었기에 그는 비밀교회를 중심으로 비밀 방문 사역을 하게 된다. 녹스는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로디언, 파이프, 앙거스, 메어른, 카일 등을 순회하며 비밀교회 성도들을 격려하고, 사역에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녹스는 여생을 교회개혁과 사회개혁, 정치개혁을 위해 힘쓰다 1572년 11월 2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다.“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개인적 이익을 취한 일이 없고, 인간을 만족시키고자 애쓴 적도 없고, 나 개인이나 다른 이들의 정용을 만족시킨 일도 없으며, 단지 내게 허락하신 은사를 성실하게 사용하여 내가 감독한 교회의 덕을 세우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녹스가 죽기 전 했던 고백이다. 또한 섭정 모턴 백작(James, Earl of Morton)은 녹스의 장례식에서 “여기 그의 일생동안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아첨하지 않은 사람이 누워 있다”고 그의 인생을 평가한다.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살았던 존 녹스의 인생은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과 장로교회라는 유산을 남기게 된다.Ⅲ. 존 녹스의 신학본 장에서는 존 녹스의 신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존 녹스를 중심으로 만든 25개 조항의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에서 볼 수 있는 존 녹스의 신학 전반과 특별히 16항-25항에 거쳐 나오는 교회론을 볼 것이다. 또한 ‘진리의 나팔수’로서, 설교자와 저술가로서 볼 수 있는 녹스의 신학, 설교자로서 가진 녹스의 특성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3.1.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에서 볼 수 있는 존 녹스의 신학25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은 역사상 최초로 개혁파 신학에 기초한 국가로 등장한 스코틀랜드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표준문서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6명의 목회자가 함께 저술했지만, 당시 스코틀랜드 목회자 가운데 녹스만큼 개혁파신학에 대해 직접적인 지식과 실천적인 경험을 가진 인물이 없었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녹스라고 볼 수 있다. 녹스는 제네바 등의 지역에서 칼빈을 비롯한 여러 개혁파들과 교류하고 접촉하면서 신학이론과 개혁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배웠으며, 프랑크푸르트 등에서 감당했던 피난민 목회를 통해 개혁의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개혁자 칼빈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는 스코틀랜드 신동체’로 미리 설정하고,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 가운데 있음을 전제로 삼아 이후 조항들을 제시할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즉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은 이 신앙을 함께 고백할 새로운 스코틀랜드 개혁교회는 단순한 당시 역사적 상황의 제도적 대안이 아니라 창조 이래로 종말까지 나아가는 구속의 역사 가운데 이어져 온 영적 공동체임을 선언하려는 구조를 취한다고 볼 수 있다.3.2.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에서 볼 수 있는 존 녹스의 교회론스코틀랜드 신앙고백은 보편 교회의 정의의 기초로서 하나님의 선택과 그리스도의 머리이심이라는 두 가지 신학적 개념을 말한다. 보편교회의 기초는 하나님의 선택이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한 하나님을 믿는 것과 똑같이 처음부터 한 교회,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람들로 구성되어 하나님을 올바르게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참 믿음을 소유한 하나의 무리가 있었으며 지금도 있고, 세상 마지막 날까지 있을 것을 확실하게 믿는다”는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의 내용에서, 다른 신앙고백들보다 더 분명하게 칼빈의 정의를 따른다는 것을 볼 수 있다.또한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에서는 선택교리와 ‘그리스도의 머리이심’이라는 신학적 원리로부터 교회의 보편성(Catholicity)을 설명한다. 바른 신앙을 통해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한 그의 몸과 신부로서의 보편적 교회는 신성모독적인 사람들의 교제와 대조되는 “하늘 예루살렘의 시민인 성도의 교제”다. 이와 같은 교회의 정의는 일차적으로 교황 이하 성직자 위계 제도의 정통성을 보편적 교회의 기초로 삼는 가톨릭의 주장을 반박하는 정의이다.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의 가치는 1560년 이후 스코틀랜드의 개혁교회가 난관을 겪으면서 발전하는 과정에 신학적 기초를 제공하는 지침서 역할을 했다는 데 있다. 특히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이 사도신경의 삼위일체적 구조를 따르면서도 구속사적 구조를 함께 사용하는 특징에서 교회론적 쟁점들에 대한 개혁주의의 요점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적인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스코틀랜드 신혁을 주장하는 종교개혁자로서의 선포와 실천이 있었다. 그가 했던 성경본문에 충실한 설교는 청중들의 삶을 변화시켰다.녹스의 저술들에서도 그가 진리의 나팔수로 살아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그의 저술들에는 정치적 저항사상이 담겨있다. 스코틀랜드를 떠나 제네바에 머무는 동안에도 많은 정치적 저술을 남겼다. 특히 『첫 번째 나팔소리』에서 녹스의 정치적 저항 사상은 혁명적으로 발전되었다. 녹스는 잉글랜드의 메리 여왕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여성이 국왕이 되어 통치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녹스의 주장은 당대와 후대에 많은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녹스의 이러한 주장은 선지자적 사명감으로부터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타협적 태도와 잉글랜드의 격심한 핍박 앞에서 어떠한 두려움 없이 과감하고 급진적인 선포를 『하나님의 나팔소리』로서 외치려 했다.이러한 녹스의 개혁적 주장은 1558년 스코틀랜드 귀족들과 백성들을 향해 저술한 글에서 더 구체화되었다. 그는 1558년 여름, 스코틀랜드의 섭정 태후 메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만을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이라는 왕의 의무를 실천하지 않고 부패한 로마 가톨릭을 계속 지지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한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전하기도 했다. 또한 가톨릭 권력자들을 향해 비판하면서, 국가 내에서 권력을 가진 귀족들과 모든 백성이 우상 숭배적인 군주에 맞서 바른 종교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음을 주장했으며, 이 저항을 위해 무력을 사용한 폭동도 가능하다고 말했다.스코틀랜드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해서 개혁의 목소리를 내었다. 그의 단호한 설교에는 정치적 계산이 아닌, 신앙적 결단이 담겨 있었다. 그가 이해한 하나님의 뜻은 스코틀랜드의 종교 중심지인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자신의 삶과 죽음을 모두 걸고 담대하게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의 나팔수로써의 흔들림 없는 설교는 청중들에 회개와 결단을 주었으며, 가톨릭교회의 기물과 우상숭배의 잔재를 끌어내서 불태우게 하는 일을 하게끔 했다. 녹스는 그렇게 평생
시가서 기말과제: 시편 19편 주해보고서1. 본문비평 및 개인번역지도자를 따라, 다윗의 노래(시)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고, 궁창은 그의 손으로 행한 일을 말한다.???????????? ????????? ????????????????????? ????????????? ????????????? ???????????? ???????? ???????? ???????????1절낮은 낮에게 말을 전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설명한다.????? ??????? ?????????? ?????? ?????????? ???????????? ?????????????????2절언어가 없었고, 말이 없었고, 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 ?????????? ???????? ????????? ????????3절온 땅으로 그들의 소리는 나아가고 세상 끝까지 그들의 말이 태양을 위하여 그들 가운데 나아가며, 하나님이 장막을 세우셨고???????????????? ??????? ??????? ?????????? ?????? ?????????? ???????????? ???????????? ????????4절그는 태양의 방에서 나오는 신랑 같고, 그는 길을 달리는 용사처럼 기뻐한다??????? ????????? ?????? ??????????? ????????? ???????????? ??????? ???????5절그가 나오는 곳으로부터(하늘 끝) 그의 전환점 그 끝까지 그의 온기로부터 숨을 수 있는 것이 없다.???????? ????????????? ?????????? ????????????? ????????????? ??????? ?????????? ????????????6절야웨의 율법은 완전하여 생명을 회복시키고, 야웨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새롭게 한다.????????? ??????? ?????????? ?????????? ??????? ??????? ??????? ??????????? ???????????? ????????7절야웨의 교훈들은고 하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한다. 창조주하나님을 노래하는 1-6절에 자연 세상에 대한 보편적인 정보를 제공하기에 하나님을 언급하는 것은 당연하며, 7-14절은 창조주께서 자연의 지극히 제한된 일부인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시고 주신 율법을 노래하기에 여호와가 언급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2.2. 본문의 저술시기시편 19편 1-6절에서 나타나는 찬양시의, 특히 태양을 소재로 하여 찬양한다는 특징이 고대 근동지방의 다른 시에서도 발견되긴 한다. 샤마쉬(Shamash)에 대한 바벨론의 찬양시들, 다양한 태양신들에 대한 애굽의 찬양시들, 아덴의 찬양시들과 유사한 점이 있지만, 확실한 차이점 또한 존재한다. 그러한 시들은 자연 자체를 신격화하고, 신들은 자연 속에서 찬양되지만, 시편 19편에서는 자연이 신격화 되는 것이 아니라 인격화 되며, 인격화된 자연은 유일한 창조자이신 참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다.3. 단어연구3.1.?????? (시19:2-3)해당 단어는 본문에서 ‘말’로 사용이 된다. 특히 2절에서는 “언어”로, 3절에서는 “말하다”로 사용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3절에서는 말과 관련된 단어 세 개가 (??????, ??????, ????) 평행을 이루고 있다. 특히 ??????, ??????가 평행을 이루는 것은 해당 본문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단어는 유사어이지만, 둘 사이에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 두 단어가 함께 나타날 때, 전자와 후자 중 어디에 더 큰 비중을 둬야 할지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정우는 ??????, ??????를 합쳐서 언어로 번역하는 것도 좋다고 한다. 이 구의 핵심은 하늘이 전하는 메시지가 있지만, 그 소리가 우리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1) 구약의 용례A. 시편 77:8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77편 8절에서는 ??????를 ‘약속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다.B. 욥기 22:28 ‘네가 무엇을 결정하면 이루어질 6절)과 ‘지혜 시’(7-14절)의 두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지혜시로 분류한다. 또한 크레이기(Craigie)는 7-14절이 지혜시의 일반적인 특성을 가고 있다고 보면서 주님의 율법, 즉 토라에 대한 묵상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본다. 단락 내에는 법률, 증거, 계명, 명령, 경외심, 심판, 토라 등 여섯 가지 측면을 열거하고 있는데, 특히 주님의 율법, 즉 토라에 대한 묵상을 다룬 문체가 시편 119편을 연상케 하는 지혜문체와 비슷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4.3. 장르 결론문맥분석의 구조분석에서 살펴보겠지만, 시편 19편이 가진 구조적 독특성으로 인해 장르를 복합적으로 보는 견해들이 많다. 즉 1-6절에 나타나는 시온과 율법에 대한 찬양을 통해 찬양시의 요소, 7-14절에 나타나는 토라에 대한 묵상을 통해 지혜시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하지만 김정우의 견해처럼 이 모든 시편의 요소가 ‘토라 찬가’의 중심 형식에 수렴하기에 전체를 ‘토라 찬양시’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통일성의 요소에서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김이곤은 그의 논문에서 시편 19편의 두 부분이 모두 매우 높은 문학적 수준에까지 발전한 찬양시이며, 두 부분 모두 탁월한 문예적 표현 기법과 평행법적 연결법을 구사하여 말하려는 바를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시편 19편의 두 부분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지닌 최고의 완전성과 최선의 극치성을 증언하기에, “신학적 동질성”에서 볼 때, 두 부분 사이에는 상응성과 연결성, 통일성이 있음을 주장한다. 이에 필자도 시편 19편의 장르를 하나의 통일된 찬양시, 특별히 토라를 찬양하는 찬양시로 본다.1-6절이 문체상 긴 문장으로 구성되어있는 반면, 7-14절은 짤막한 문장들로 형성되어있다. 그러나 첫 부분과 둘째 부분 사이에 여러 가지 공동점이 존재하며, 이것들이 두 부분에 통일성을 더한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생각이다(Clines, Craigie, MacCann, van Gemeren).5. 문맥분석5.1. 구조분석시편관하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해주는 원천으로 자연계시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4절은 하늘이 말하는 것, 5-6절은 해를 중심으로 다룬다. 1-4 상반절까지는 하늘 혹은 궁창과 빛과 어둠을 생각한다. 먼저 하늘과 궁창이 언급되고(1절), 낮과 밤이 소개된다(2절). 낮의 하늘을 태양과 빛으로, 밤의 하늘은 그 어둠속에서 달과 별로 드러난다. 이 두 차원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작품이기에, 그 만드신 자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준다. 하늘과 궁창, 날과 밤의 언어는 이중적인 힘을 진다.3-4절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먼저 문자적 의미에서 말이나 소리가 없다(3절). 또한 이 세상의 가장 먼 구석에까지 스며드는 소리가 있다. 시편 기자는 자연히 하나님께 드리는 오묘한 찬양을 깨우쳐 준다. 하나님에 대한 자연의 찬양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그 지각은 관찰자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즉, 민감한 자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하늘을 찬양을 체험하겠지만, 민감하지 못한 자는 하늘이 단지 하늘이며, 별은 단지 별에 불과하다.또한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하늘의 선포를 선언한 후, 이제 찬양의 소리를 집중시켜 태양을 하나님의 창조 가운데 최고의 업적으로 묘사한다(4-6절). 하나님은 태양을 위해 하늘에 ‘장막을 치셨다’. 이러한 태양에 대한 찬양은 고대 근동지방에서 유사한 형태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그러한 시들은 자연 자체를 신격화하고, 신들은 자연 속에서 찬양된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시편 19편은 자연이 신격화되지 않고 인격화되며, 인격화된 자연은 유일한 창조자이신 참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다.시의 어조가 7절에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1절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인 반면, 7절부터는 ‘여호와(????)’다. 또한 단락의 첫 여섯 행은 각각 여호와의 율법의 동의어로 시작한다. 즉, 토라, 증거, 교훈, 계명, 두려움, 법인데, 이 동의어들은 오경의 법규와 율법에서 이스라엘이 볼 수 하며, 여호와의 궁극적 왕권 아래에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다윗에게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한다. 3권의 경우는 다윗이 1번만 등장하며, 애가 시편이 배열된 것을 고려하여 예루살렘의 함락을 전제하고 있다고 본다. 4-5권에서는 찬양과 감사시가 두드러지며, 4권은 모세에게로 거슬러 올라가 모세의 시편으로 시작하면서 마지막 포로의 귀환, 회복을 간구하는 시각 있다는 것을 말한다. 특히 그는 5권에서 포로의 회복을 전제로 함을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시편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차원을 전제로 한 하나의 큰 노래 모음이며, 이 모음의 중심에는 여호와중심사상이 있기에 독자들은 시편을 읽을 때 창조, 구원, 임재와 같은 신학적 단어들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김정우는 다섯권의 시편이 각 단계별 발전의 내용을 반영한다고 말하면서 저자, 고대장르 명칭, 용도에 대한 표제 지시사항, 역사적 배경을 제공하는 표제의 도움을 받아 전체 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시편1-3권과 4-5권으로 크게 나누어 1-3권은 인물별 시편묶음, 4-5권은 주제별 시편묶음으로 바라본다.이번 학기 수강한 수업을 바탕으로 볼 때, 시편의 구조는 아래와 같이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서론1-2편본론제1권다윗 개인의 신앙3-41편제2권다윗언약의 성취에 대한 이해42-72편제3권다윗왕국의 실패73-89편제4권여호와 왕국과 흔들리지 않는 다윗언약90-106편제5권여호와의 통치를 통한 다윗언약의 회복과 성취107-145편결론146-150편시편의 제 1권은 ‘다윗 개인의 신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다윗과 사울의 갈등과 같은 내용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3편에서 41편까지는 다윗시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윗시편 중에서도 3-7편은 애가 시리즈로 다윗이 솔로몬에게서 도망할 때, 인생에 대한 가르침, 구원의 기다림 등을 주제로 다룬 시가 나타난다. 8편에는 인간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뜻, 9-10편은 인간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난다. 그리고 11-
사사기 원강 과제: 사사기 7장 1-18절 주해보고서Ⅰ. 서론Ⅱ. 사사기 서론2.1. 서론적 이야기2.2. 사사기에 나타나는 신학적 이슈2.3. 주해범위 설정Ⅲ. 사사기 7장 1-18절 본문주해Ⅳ. 신학적 메시지Ⅴ. 결론Ⅰ. 개인 설교Ⅱ. 김서택목사 설교분석Ⅲ. 차이점 비교Ⅰ. 서론한 학기동안 사사기 원강 강의를 들으며 사사기에 나타나는 다양한 사사들의 매력적이고 역동적인 스토리를 보면서 “사람을 통해 역동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사사기 7장 1-14절에 나타나는 사사 기드온의 이야기를 최종 레포트의 주제로 정했다. 개혁주의 주해방법론을 통해 해당 본문을 충실하게 주해하며, 이를 통해 얻는 영적 교훈을 가지고 말씀준비를 하려 한다. 한 학기동안 수업을 통해 받은 은혜와 유익이 최종 레포트의 주해작업 속에도 녹아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Ⅱ. 사사기 서론2.1. 서론적 이야기3000년 전의 사사기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옛 이야기가 아닌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의 이야기”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사기는 하나님께서 오늘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과거나 오늘날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수많은 민족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구약의 역사를 각자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재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사사기라는 우리말 제목은 영어 제목인 “Judges”를 번역한 것이다. 이 영어제목은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의 “Liber Judicum”에서 온 것이며, 이는 히브리어의 “쇼프팀”(?????????)의 번역어다. 이 번역들을 보면 “사사”가 주로 “재판관”의 의미로 이해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사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쇼페트”는 ‘재판하다’ ‘다스리다’라는 뜻을 가진 샤파트(??????)의 분사형이다. 즉 ‘쇼페트’는 ‘다스리는 자’, ‘재판하는 자’라는 의미가 있으며, “사사”는 단순히 재판관보다는 더 넓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사사는 사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 ?????????????? ???? ?????? ??????? ???????? ?????????? ???????????? ????????? ???????????????? ?????? ??????????? ??????? ?????? ??????????? ??????2절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 ???? ??????????? ?????? ??????? ??????????? ???????? ??????? ??????????? ?????? ??????????? ?????????? ?????????? ?????????? ???????????? ?????? ??????????? ????????? ???????????? ?3절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4절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 ????????????? ????????? ??????????????? ???????????????? ??????????? ???????????? ??????????? ?????????? ??????? ???????????? ??????? ???????????? ???????????? ?????????15절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 ???????? ?????????? ????????? ?????????? ??????????? ??????????????? ?????????? ??????? ???????????? ????????? ????????????16절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 ?????????? ???????? ?????? ?????????? ????????? ???????? ???? ????????? ???????????? ???????? ?????????????????? ????? ????????????17절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 ???????? ????????????? ??????? ????????????? ??????????????? ???????????? ?????????? ????????????????? ?????????????a? ???????? ?????????????? ?18절구절내용1-3절떨림의 샘(?????)- 돌아가라4-8절하나님의 전쟁준비- 병력 감축9-11절기드온의 불안 해소- 적진에 보내심12-14절미디안 사람들의 대화, 기드온의 확신15절승리의 조건16-18절기드온의 진군기드온을 다루는 스토리는 사사로 용기를 주셨다. 미디안의 적진에서 그들의 꿈 이야기를 듣게 하신 것이다. 기드온의 에피소드에서는 하나님께서 시나리오를 조합하시고 구성하셔서 기드온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힘으로 승리했다고 주장할 수 없게끔 하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해, 기드온을 위해’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18절)기드온과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해(????????)서만 싸우지 않았다. 그들은 기드온을 위해서도(????????????)도 싸웠다. 이는 이야기 전반을 볼 때, 부정적인 의도가 있다. ‘여호와를 위해, 기드온을 위해’라는 구호는 가나안 사람들이 흔히 듣던 매우 일반화된 문구일 가능성이 높다. ‘[신의 이름]을 위해, [사람 이름]을 위해’라는 문구를 사용할 때에는 항상 사람의 이름에 왕의 이름이 들어간다. 기드온은 자신을 왕의 위치에 두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왕으로 부상시키고 이날의 영광을 하나님과 나누려고 하는 기드온의 영성에 의문을 표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기드온과 이스라엘 군대를 승리로 이끌어가신다.Ⅳ. 신학적 메시지1. 부족한 이도 쓰시는 하나님기드온의 모습을 보면, 그는 용사가 아니었다. 미디안이 두려워 포도주 틀에 숨어 밀을 타작했을 때부터, 미디안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했을 때까지 그의 모습에서 용사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32,000명의 군대를 300명까지 줄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투로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기드온과 이스라엘의 군사들을 강권적으로 이끄시고 용사로 세우시는 것은 ‘하나님의 열심’인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우리도 부족하고 연약하고, 하나님의 용사의 모습이 당장 우리 가운데 없더라도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나아갈 때, 부족한 우리를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끌어주시고 승리케 하실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을 믿고 세상과의 영적 전투를 해 나가야 한다.2. 승리의 조건: 하나님께 있다.본문을 통해 승리의 조보여주십니다. 두 미디안 군사가 대화를 하는데, 한 군인은 보리떡 한 덩이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 진을 쑥대밭으로 만든 꿈을 꾸었다고 하고, 그 이야기를 듣던 병사는 미디안 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든 보리떡이 기드온이라 풀이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기드온의 손에 넘기실 것이라 해석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기드온은 전쟁을 치를 용기를 갖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드온의 연약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믿지 못하고 의심하던 모습을 보였지만, 적들의 말을 듣고 확신을 가지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기드온은 확신에 차 300명의 군사를 세 부대로 나누어 각 사람에게 나팔과 빈 항아리, 횃불을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군사들은 신호에 따라 항아리를 부수고, 횃불을 들고 ‘여호와를 위해! 기드온을 위해!’라고 소리칠 수 있도록 지시를 받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기드온 스토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몇 가지 영적 원리를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1. 부족한 이도 쓰시는 하나님의 열심기드온은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미디안과 맞서 싸울 적임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기드온 스토리의 시작에서부터 나타나듯, 숨어서 밀 타작을 하던, 부족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큰 용사로 부르시고, 사용하시자 그를 통해 미디안의 대군을 무찌르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13만 대군을 대상으로 처음 모였던 32,000명이 맞서 싸운다면, 해 볼 만한 전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4대1의 전투에서 승리했던 스토리는 세계의 역사에서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300명으로 13만 대군과 싸운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이야기입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투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사람들 300명으로 미디안 군대와 싸워 승리케 하십니다.저는 이것을 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마치 자격 없던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나가셨던 것처럼, 자격 없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