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의 이해※ 현채의 생애현채는 1865년(철종 7년), 조선시대 역관가문인 천녕 현씨 집안에서 태어나 18세인 1873년 18세의 나이로 역과(驛科)의 한학(漢學)에 급제한 후 별다른 직책 없이 일본어 공부에 몰두하다 1892년 부산항 감리서의 역학으로 발탁되어 서기관까지 진급했다. 이 시기 그는 개항의 분위기 속에서 많은 일본인들과 접촉하며 일본의 학문을 공부했다. 이후 갑오개혁기에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주사에 임명되었고 1895년 5월에는 관립외국어학교 부교관과 한성사범학교의 부교관을 지냈고 한성의 묘동(廟洞)에 을미의숙을 설립하기도 했다.그러다 1899년 학부 편집국 위원으로 임명되고 나서부터는 본격적인 역·저술활동에 나서 1899년 학부에서 발간한 『동국역사』라는 소학교용 국사교재의 편찬을 담당했다. 이듬해에는 장지연과 함께 ‘시사총보사’를 광문사로 개칭하고 고서출판사업에 나서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등을 간행했다.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당할 때 그가 재직하고 있던 학부의 분위기에 대해서 당시 언론에서는 “일본인 학정참여관 시데하라 다이라(幣原坦)의 지휘하에 굴복하여 한마디도 항의하지 못하는 분위기였고, 한국의 무궁한 참화가 실은 학부에 원인이 있다.”고 비판하였다(「신론교과서」, 『대한매일신보』 1906년 3월 29일자). 심지어는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학부 관리들을 제거해야 한다.”(「학부관리지죄」.『대한매일신보』 1906년 5월 19일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현채 또한 이런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고 신채호는 그가 편찬을 담당한 『동국역사』를 두고 “주체를 죽인 무정신(無精神)의 서술”이라 했다.하지만 이런 비판과 달리 통감부에서 발행금지한 도서에는 그의 책도 다수 포함되었다. 당시 통감부는 민족주의적 역사의식이 담긴 출판물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1908년 「교과용도서검정규정」을 통해 통감부의 통치행위를 비방하거나 배일사상을 고취하는 내용을 담은 역사교과서 발간을 금지했다. 검정을 통7종 가운데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가 저술한 국어 교과서인 『신찬초등소학(新纂初等小學)』(1909)의 경우 그의 다른 책들과 달리 1913년 총독부에서 교과서를 발간하기까지 각 학교에서 문제없이 사용되었다.한일 합방 이후에는 아들 현공렴의 사업을 후원하면서 노후생활을 즐겼고 1911년 문예구락부의 편집장, 1918년 서화협회 발기인, 총동부의 친일단체 육성책의 일환으로 설립된 대동사문화 발기인 등 사회활동을 이어갔다. 1915년 『매일신문』에 한일 양국이 일가(一家)가 되었다고 하면서 7차례에 걸쳐 임나일본부설?신공왕후삼한정벌설 등을 전제로 한일교류사를 연재하였으며 일본의 식민지배를 긍정하는 글을 실었다.1922년 12월에 구성된 조선사편찬위원회에 편찬위원이 되어 『조선사』 편찬에 참여했고 금서가 되었던 『동국사략』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부분만 수정하여 1924년 『동사제강』으로 출판하였다. 1925년 2월 5일자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근대적 역사교과서의 시초 동국사략?현채의 수많은 저작 중 가장 영향력이 크고 널리 보급된 것은 1906년에 발행된 『중등교과 동국사략』이다. 하지만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가 쓴 『조선사(1892)』와 『조선근세사(1901)』의 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고 다수의 학자들은 한국 근대역사학의 출발점을 동국사략이 아닌 신채호의 독사신론으로 삼았다.하지만 기존의 이런 평가들은 갑오~광무개혁정권 당시의 ‘국민 만들기’라는 과업의 틀보다는 민족주의적 역사학에서만 바라본 평가다. 오늘날의 역사교육도 국가에서 만든 ‘교육과정’이라는 틀 아래에 교과서가 만들어지고, 이 교과서를 기반으로 교사의 수업이 이루어진다.따라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교과서는 당시의 국가적·사회적 요구가 어느정도 반영되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현채의 동국사략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당시의 국가적·사회적 요구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종래의 전통사학은 유교이념을 구현하는 지배자의 통치수단으로서 경학의 보조자 역할에 불과했다. 예를 들되던 동몽선습에 ‘단군’을 언급하는 등 한국사도 가르쳤으나 양적으로 중국사가 훨씬 많았다. 1880년대 무렵 개화세력은 이런 인식에 반대하며 본국사를 강조하기 시작했다.이런 인식은 1894년 갑오개혁 당시 공표된 학무아문 고시와 3월에 반포된 일련의 법령에 의하여 소학교·사범학교·성균관 등의 교과과정에 역사가 필수 교과목으로 도입되며 본격화 되었다. 1895년 8월에는 ‘소학교 교칙대강’을 통해 구체적인 교육목표를 제시했다. 역사교과의 경우 심상과에서는 “국체의 대요를 알게 하여 국민된 지조를 양성함을 요지로 하되, 향토에 관한 역사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점점 건국의 체제와 현군의 업적과 충량하고 현명하고 뛰어난 신하들의 사적과 개국 유래의 개요를 가르쳐 국가 시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력의 대요를 알게 한다”고 고등과에서는 “이를 좀 더 소상하게 가르친다”로 삼았다.따라서 이 시기의 역사 교과서들은 ‘국가’와 ‘국민’을 양성하기 위해 새로운 통사체계를 갖추어 청의 속방이 아닌 만국공법적 질서에 따른 독립국이라는 인식을 심고자했다.현채의 『동국사략』은 이를 위한 통사체제에 포폄이나 술이부작 등 유교적 관점이 아니라 실증에 입각한 체제를 세우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하야시의 조선사·조선 근세사의 틀을 채택했다.우선 서술방식은 기존의 편년체에서 벗어나 인과적 서술의 통사체인 신사체로 서술했고 태고사·상고사·중고사·근세사의 각 시대를 6개 분야(정치변천·제도·교법·문학 및 기예·산업·풍속)으로 나누었다. 하지만 내용적 측면에서는 하야시와 차이가 있었다.우선 하야시는 한국사의 시작을 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설정했다. 반면 현채는 그 시작을 단군조선으로 삼고 위만조선에 대해서는 소략시켜 ‘단군 → 기자 → 삼한 → 삼국 → 통일신라 → 태봉·후백제·발해 → 고려 → 조선’ 순으로 통사체제를 구성했다. 하야시는 임나일본부설을 수용해 대가야가 5백년 간 일본의 보호를 받았다고 했으나 현채는 이를 부정하고 임나는 대가야의 별칭이고 일본과 교류만 했다고 보았다. 그리고 삼국이 일으로 서술했다. 다루는 사건의 범위도 조금 차이가 있는데 하야시는 1894년 청일전쟁기까지 서술했으나 현채는 ‘갑오 후 10년 기사’ 항목을 추가 서술했고 이후 판본에서는 을사조약과 통감부 설치, 고종 강제 퇴위 등 일제 침략과정과 그에 저항한 각종 사회 운동, 민영환·조병세 등의 자결, 민동식·최익현의 의병투쟁, 국채보상운동과 을사5적 암살단, 헤이그 특사, 정미의병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서술해 민족주의적인 부분도 나타난다. 하지만 신공왕후의 신라침략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점, 고구려·백제의 멸망이나 외세의 침입 등을 외적 요인보다 내적요인에서 찾았다는 문제점 등도 존재한다. 이는 사회진화론의 이면에 숨어있는 제국주의적 요소를 인지하지 못한 당 시대 계몽운동가들의 맥락과 같다고 본다. 그 밖에도 연도나 사실관계 부분에서도 상당한 오류가 있어 한계점이 존재한다.※ 역사교육자로서의 현채그를 역사가라고 하기엔 독자적인 사론이나 사료비판 등에 있어서 부족함이 존재한다. 그가 저술한 동국사략에 대해서도 근현대적 교과서의 시초라는 새로운 해석이 존재하나 식민사학이라는 꼬리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당시대 사람들에게 한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동국사략의 영향력은 간과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역사가가 아닌 역사교육자라는 측면에서 현채를 살펴본다면 많은 시사점이 존재한다. 동국사략의 서문에 나타난 그의 생각을 살펴보자책을 끼고 다니는 어린이들이 우리 한국의 역사를 일독(一讀)한 후 『만국사(萬國史)』를 읽어 견문을 넓히고 세계 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 군대와 형벌, 농업과 공업 등 실천적 사업에 노력하여 게으름을 피우거나 건성건성 하는 태도를 없애고 마음을 다해 나간다면, 몇 년 되지 않아 우리가 옛날의 문화를 회복하고 엄연한 독립국의 면목을 지니게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후에 귀먹고 말 못하는 노인들이 북쪽 창에 높다랗게 편히 누워서, 그 자손이 어떠한지 듣게 될 것이다. 또한, 반드시 세상이 바뀐 후에라야 역사를 지을 수 있다고 한다면, 감 대한 기초적 이해를 바탕으로 중학교 단계에 한국사와 세계사를 상호 연관시켜 이해시키고 있다. 그리고 당대사 서술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왕조가 멸망한 후에야 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고 본 기존의 인식에서 탈피한 것이다. 그는 역사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같이 자국과 타국의 상황을 살펴 미래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과거의 모습을 살펴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미래 사회의 방향을 제시하는 통찰력을 기르게 한다는 오늘날 역사 과목의 목표와도 일치한다. 그리고 그가 수용한 하야시의 내용체계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라는 4가지 항목으로 구성된 현재 교과서 체제와도 유사한 측면이 존재한다.※ 참고문헌『역사교육의 이론』, 김한종·이영효, 책과함께, 2009.09.14.『한국사 특강』, 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3.09.10.한국 근대 역사학의 창출과 통사 체계의 확립, 도면회, 한국역사연구회, 「역사와현실」 제 70호, 2008.12‘통일신라’의 발명과 근대역사학의 성립, 윤선태,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신라문화」 제 29집, 2007.02대한제국기 역사교과서 편찬과 근대역사학-동국사략(현채)의 당대사 서술을 통한 국민만들기를 중심으로, 이신철, 역사교육연구회, 「역사교육」 제 126호, 2013.6우리역사넷, http://contents.history.go.kr/front1) 다만 현채는 형식상의 설립자고 교장은 아유카이 후사노신[點貝房之進]이었다. 을미의숙은 1895년 7월에 소학교령에 따라 관립소학교로 전환되었고 해방후에도 청계국민학교라는 명칭으로 이어지다 1969년 11월 8일에 문을 닫았다.2) 1894년 갑오개혁으로 설치된 학부아문을 1895년 3월 25일부로 학부로 개편했다. 학부 아래에는 학무국과 편집국 등 6국을 두었다. 그 중 현채가 소속된 편집국은 교과용 도서의 번역?편찬?검정에 관한 사항, 도서의 구입?보존?관리에 관한 사항, 도서의 인쇄에 관한 사항 등에 대한 업무를 관장하였다. 했다.
동아시아사과 수업연구 교수-학습 과정안단원Ⅴ. 오늘날의 동아시아사3. 갈등과 화해② 역사인식을 둘러싼 갈등일시장소대상교생지도교사결재지도교사교육실습 부장교감교장동아시아사과 교육과정 (2015 개정 교육과정)1. 성격‘동아시아사’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전개된 인간 활동과 그 결과로 남겨진 문화유산을 역사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이 지역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나아가 지역의 공동 발전과 평화를 추구하는 안목과 자세를 기르기 위한 과목이다.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동아시아인이 성취한 문화의 공통성과 상관성을 탐구하여 동아시아 지역의 발전과 평화 정착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안목과 자질을 기르도록 한다.우리가 속한 동아시아는 과거부터 지역 내 공동체 상호 간의 긴밀한 교류를 통해 문자, 사상, 제도 등에서 각자의 정체성을 형성해 왔으며,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증대되고 있는 역동적인 지역이다. 이와 같은 동아시아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통해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이해와 분석 능력을 키워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가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 나가는 데 관심을 가지도록 한다. ‘2. 목표’동아시아사‘는 동아시아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통합적이고 균형 잡힌 역사 이해를 도모하고 상호 발전과 평화를 추구하는 자세를 기름으로써 상호 협력의 전통을 더욱 강화한다. 나아가 동아시아 세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항구적인 평화 정착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동아시아사의 세부 목표는 다음과 같다.가. 통합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동아시아 역사를 파악하여 이 지역의 특성을 이해하는 안목을 기른다.나. 시기별 사회와 문화의 특징을 드러내는 공통적인 요소와 함께 각국의 독자적 요소를 주제별로 접근하여 이해한다.다.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의 다양성을 탐구하여 그 특징을 파악하고, 타자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함양한다.라. 동아시아 역사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갈등 요소를 탐구하고, 이를 해소하여 상호 발전을 모색하는 자세를 갖는다.마. 주제와 관련된 자과정을 알아보고, 동아시아에서 냉전의 심화·해체 과정과 그 영향을 분석한다.’, ‘[12동사05-02] 동아시아 각국에서 나타난 정치·경제·사회적 발전 모습을 비교하여 파악한다.’, ‘[12동사05-03] 오늘날 동아시아 국가 간의 갈등과 분쟁 사례를 살펴보고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갖는다.’이다.(2) 평가준거 성취기준: ‘평가준거 성취기준’이란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실제 평가의 상황에서 준거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도록 재구성한 것을 의미한다. 교육과정 성취기준이 학교에서 구체적인 평가 활동을 위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기에 다소 포괄적이거나 모호할 수 있음을 고려하여, 평가준거 성취기준은 학생 입장에서는 무엇을 공부하고 성취해야 하는지, 교사 입장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해 더욱 명료하게 안내하기 위해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재구성한 것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평가기준 개발 연구에서는 ‘평가준거 성취기준’이라는 용어를 도입하면서 이를 ‘학생들이 학습을 통해 성취해야 할 지식, 기능, 태도의 능력과 특성을 진술한 것으로서 평가 활동에서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재구성한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즉 평가준거 성취기준은 ‘평가 활동에서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다. 평가기준은 평가 활동에서 학생들이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성취기준에 도달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실질적인 기준 역할을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평가기준’은 ‘각 평가준거 성취기준에 도달한 정도를 상/중/하의 세 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에 속한 학생들이 무엇을 알고 있고, 할 수 있는지를 기술한 것’을 의미한다.나. 평가기준 활용방안- 평가 기준 활용방안은 다음과 같이 ‘성취기준에 대한 학생의 도달 정도 판단에 활용’, ‘평가 문항 제작 및 채점 기준 설정의 근거로 활용’, ‘학생 수준을 고려한 수업 설계에 활용’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1) 성취기준에 대한 학생의 도달 정도 판단에 활용평가 기준은 교육과정 성취기준에서 기대하는 지식, 서 어느 정도 성취했는지에 대해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평가 문항을 만들고 그에 따른 채점 기준을 수립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평가기준에서 상/중/하의 단계를 나누어 학생의 수행 정도를 질적으로 차별화하여 진술한 것은 수행평가와 같은 질적 평가 문항을 제작하는 데 유용한 근거가 될 수 있다.(3) 학생 수준을 고려한 수업 설계에 활용평가기준은 학교 교육과정 및 교수 학습을 계획할 때 참고가 되고, 개별 수업계획표를 작성하는 데에도 활용할 수 있다. 즉 교수 학습의 학습목표 설정 시 평가기준의 상/중/하 수준을 참고할 수 있다. 또한 학습 과정 중에 목표로 하는 평가기준의 수준을 학생들에게 제시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동아시아사과 소단원 학습지도계획1. 단원 선정 이유● 교재 및 단원명1) 교재 : 동아시아 (금성)2) 단원명단원단원명대단원Ⅴ 오늘날의 동아시아중단원3. 갈등과 화해소단원② 역사 인식을 둘러싼 갈등2. 단원 목표학습목표1) 동아이사에서 발생하는 역사 갈등으로는 무엇이 있을까?① 동아시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역사 갈등의 사례로 무엇이 있는지 말할 수 있다.② 동아시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역사 갈등의 해결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가질 수 있다.2)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위해 어떠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을까?①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위해 어떠한 노력들이 진행되는지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②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을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다.성취기준오늘날 동아시아 국가 간의 갈등과 분쟁 사례를 살펴보고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갖는다.3. 학습 계획차시별 교수 학습 계획 내용 (2차시)학습과정단원명차시주요 학습 내용 및 활동본 학습역사 인식을 둘러싼 갈등1- 영토 분쟁 문제- 역사 왜곡 문제2동아시아의 역사 갈등 사례: 일본군‘위안부’ 문제 및 야스쿠니 신사참배본시 교수 학습계획1. 학습 주제가. 소단원명 : 역사인식을 둘러싼 갈등나. 본시 교수학습 목표1) 동아시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역사 갈등의 사례로 무엇이 있동 번영을 모색하는 국제적인 차원의 활동 등에 관한 사례 등을 활용하여 화해 추구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탐구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2. 성취기준 및 성취수준성취기준평가기준[12동사05-03] 오늘날 동아시아 국가 간의 갈등과 분쟁 사례를 살펴보고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갖는다.상동아시아에 현존하는 갈등과 분쟁의 사례 및 쟁점을 파악하고, 화해를 실현한 다른 지역의 사례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갈등과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모색할 수 있다.중동아시아에 현존하는 갈등과 분쟁 사례를 파악하고, 동아시아 국가 간의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려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하동아시아 지역의 갈등과 분쟁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인식할 수 있다.● 소단원이 끝난 후 형성 평가지를 통해서 성취기준을 평가한다.3. 교수학습의 주안점(1) 학습자의 역사 이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유용한 학습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학습자가 자기 주도적으로 역사 이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한다.(2) 학습자의 학습 능력이나 학습 준비도에 알맞은 교수?학습 방법과 평가 자료를 개발하여 학습자의 개별적 특성에 대비한다.(3) 학습자가 교수?학습 상황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료, 도표, 통계 자료, 각종 멀티미디어 자료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자료를 개발함으로써 학습의 효율을 높인다.(4) 학습 목표와 내용을 고려하여 독서 활동, 동아리 활동, 현장 체험 학습, 극화 학습, 협동 학습, 의사 결정 학습, 인물 학습, 사료 학습, 문화재 학습, 프로젝트 학습 등 다양한 교수?학습 방법을 활용한다.(5) 정보화 사회에 부응하고 학습자의 관심과 흥미를 높이기 위해 사이버 박물관 탐방 학습, 정보 통신 기술 활용 학습, 인터넷 활용 교육, 영화 활용 교육, 이러닝 교육, 제작 학습 등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역사 학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창의적인 역사 수업이 이루어지도록 한다.(6) 내용 요소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 예시, 질문, 학습자의 연습, 자기 점검과가능성을 제시한다.(10) 동아시아가 안고 있는 문제 등을 교과와 연계시켜 봄으로써 역사적 증거 자료가 현재의 역사 문제 해결에 관련될 수 있음을 인식하도록 한다.(11) 교수?학습 방법의 적절한 개선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학습자들의 만족도를 확인한다.4. 평가 유의점(1) 단편적인 역사 지식의 암기를 확인하는 데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고 능력과 역사에 대한 관심 및 태도 영역까지 포함하여 종합적이고 균형 있게 이루어지도록 한다.(2) 평가 내용은 각 영역의 학습 내용에서 균형 있게 선정하되, 학년별 수준과 범위를 고려한다.(3) 평가 시에는 평가 상황, 평가 방법, 평가 기준을 학습자에게 미리 알려 주어 평가가 역사 학습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게 한다.(4) 진단 평가, 형성 평가, 총괄 평가, 수행평가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학습 의욕을 자극하고 성취도를 높이며, 학습 과정과 평가의 연계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한다.(5) 수행평가는 자기 평가나 동료 평가, 포트폴리오, 연구 보고서 등 다양한 방법으로 타당도와 신뢰도에 유의하여 실시하며, 이를 확대 실시할 때에는 더욱 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6) 학습자가 학습 과정과 결과에 대해 스스로 점검하여 부족한 점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한다.동아시아사과 본시 교수 학습계획안과목명동아시아사차시2/2지도교사단원명(대단원·소단원)Ⅴ 오늘날의 동아시아 · 03. 갈등과 화해- 2. 역사인식을 둘러싼 갈등학습목표① 동아시아의 역사 갈등을 일제의 인적 수탈과 관련하여 설명할 수 있다.②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해 자신의 관점으로 표현할 수 있다.지도 단계지도 내용지도상의 유의점도입[5분]인사 및 출결 확인[ 출결 확인 및 자가진단]- “다들 자리에 앉았나요? 자기 주변에 안 온 친구가 있으면 손들어 주세요.”-(출섹체크 후) “혹시 열이 나거나 기침하는 사람?”- (학생 확인 후) “좋아요” (반 분위기에 맞게 일상 이야기 후 수업 시작 준비)- 아이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 교실 분위기를 환기하고 본 수업에 들어간다.- 학습지죠“
역사과지도법학습지도안◇ 본시 학습 단원 ◇대단원 : Ⅱ. 동아시아 세계의 성립과 변화중단원 : 1. 인구의 이동과 정치, 사회 변동소단원 : (1) 인구 이동의 전개1. 단원 설정의 이유가. 역사적 관점- 기원 전후~7,8세기경까지 동아시아에서는 기후변화?자연재해?전쟁?인구증가 등 다양한 원인으로 활발한 인구이동이 일어났다. 인구이동 과정에서 선진문물이 전파되고 문화접변으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기도 하며 새로운 국가성립의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런 역동적인 변화는 당나라의 중국 통일 이후 동아시아 문화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이후 등장한 동아시아 왕조들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오늘날 동아시아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사고양식도 여전히 동아시아 문화의 틀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의 인구이동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나. 학습자의 생활·경험과 결부- 세계에서는 오늘날까지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인구의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시리아의 내전으로 인한 난민의 이동, 쓰나미 등으로 인한 재해민의 이동, 기후변화로 인한 수면상승으로 국토가 침수된 투발루의 사례 등을 들 수 있다. 세계화 시대인 오늘날은 이런 외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이유로 이민을 가는 경우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인구이동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또한, 인구이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양한 변화를 만들고 있고 우리는 그 영향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인구이동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2. 단원의 목표지식ㆍ이해인구 이동이 여러 국가와 정치 집단의 형성, 분열, 통합에 영향을 미쳤음을 안다.기능기원전 후부터 8세기경에 걸쳐 일어난 집단적 인구 이동의 큰 흐름을 지도에 표시할 수 있다.가치ㆍ태도오늘날 동아시아의 인구이동으로 인한 문제를 민주적인 자세에서 바라볼 수 있다.3. 단원의 구성Ⅱ. 동아시아 세계의 성립과 변화1. 인구 이동과 정치·사회 변동2. 국제 관계의 다원화3동 현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인류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결과적 측면뿐 아니라 다양한 인구의 이동이 나타난 원인까지 역사적으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이러한 원인과 결과가 현재 어떠한 해석이 이루어지는지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것 역시 최근 강조하는 민주시민의 역량 중 정보해석의 능력과 주체적 역사판단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7. 본시 수업의 흐름도단계활동 내용 및 발문, 자료시작↓학습 순서 제시오늘 배울 내용과 수업과정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고 핵심 내용을 인지하도록 한다.↓전시 학습 확인‘동아시아의 교류와 전쟁’ 부분을 전시학습으로 상기시켜준다↓흥미 유발‘한희재야연도’에 나타난 생활양식의 변화를 통해 오늘 배울 내용과 관련지어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학습 목표 제시1. 인구 이동이 여러 국가와 정치 집단의 형성, 분열, 통합에 영향을 미쳤음을 안다.2. 기원전 후부터 8세기경에 걸쳐 일어난 집단적 인구 이동의 큰 흐름을 지도에 표시할 수 있다.3. 오늘날 동아시아의 인구이동을 민주적인 자세에서 바라볼 수 있다.↓학습 활동? 인구이동의 원인에 대해서 학습한다? 강남-화북으로의 인구이동과 정치의 변화에 대해 살펴본다.? 한반도로의 인구이동과 정치 변동의 모습에 대해 학습한다.? 일본열도의 이동과 도왜인에 대해 학습한다.? 탐구활동에서 자신이 인구이동을 한다면 왜 그곳으로 이동하는지 생각해 봄을 통해 인구이동의 이유와 시기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이해하며 두 번째 탐구활동을 통해 오늘날 인구이동의 갈등사례를 살펴보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며 민주시민적 자세를 함양한다.↓학습정리학습정리를 통해 수업 내용을 정리·복습한다.↓형성평가형성평가를 통해 학습자가 스스로 이해와 학습정도를 점검하게 한다.↓학습 목표 제시학습 목표를 다시 제시하여 오늘 학습 목표를 달성했는지 확인한다.↓차시 예고동아시아의 ‘지역국가의 성장’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한다.↓끝8. 발문의 구조도목표1. 인구 이동이 여러 국가와 정치 집단의 형성, 분열, 통합에 영향을 미쳤음을 안다.사회 변동소단원(1). 인구이동의 전개지도교사강의실일시교사학습목표1. 인구 이동이 여러 국가와 정치 집단의 형성, 분열, 통합에 영향을 미쳤음을 안다.2. 기원전 후부터 8세기경에 걸쳐 일어난 집단적 인구 이동의 큰 흐름을 지도에 표시할 수 있다.3. 오늘날 동아시아의 인구이동을 민주적인 자세에서 바라볼 수 있다.교수?학습 자료교 사학 생교과서, PPT, 자료집, 탐구용지, 형성평가지탐구용지, 필기도구, 형성평가지학습단계(시간)학습 내용교수-학습 과정◎학습과정 ●교사활동 ○학생활동수업자료도달점 및 유의점도입5분시작의례(인사)● 인사 및 교실분위기 정리- 인사를 하고, 교실분위기를 정리한다.수업 준비상태를확인하고분위기를정돈한다.학습 순서 제시◎ 학습순서 제시● 본시에 다룰 내용을 안내한다.○ 오늘 배울 내용의 흐름을 파악한다.ppt전시 학습● 동아시아 삼국간의 교류와 전쟁에 대해 특히 한무제의 정복사업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다○ 제시된 자료를 보고 전시에 배운 내용을 상기한다.ppt전시 학습과 본시 학습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동기 유발● 본시 배울 학습의 내용과 관련된 사진(한희재야연도, 펑타이즈 묘실벽화)을 제시하여 학생들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오늘 배울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수업을 준비한다.Q1. 왼쪽 그림과 오른쪽 그림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A1. 사람의 숫자가 달라요! 복장의 모습이 달라요! 앉아있는 곳이 달라요! 등Q2. 앉아있는 곳이 다르죠, 그렇다면 왜 이런 변화 생겼을까요?A2.. 기술이 발전해서요, 다른 문화가 유입되서요 등ppt학습 목표◎ 학습목표 제시● 학습목표를 제시하고 학생들이 집중해서 학습해야 하는 부분을 강조하여 알려준다.1. 인구 이동이 여러 국가와 정치 집단의 형성, 분열, 통합에 영향을 미쳤음을 안다.2. 기원전 후부터 8세기경에 걸쳐 일어난 집단적 인구 이동의 큰 흐름을 지도에 표시할 수 있다.3. 오늘날 동아시아의 인구이동을 민주적인 자세에서 바라볼 수 있다.전개35분본시 학습◎ 인구이동의 원인● 인구이시간에 서로마가 어떻게 망했다고 했었죠?A6.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멸망시켰어요! 게르만족의 침입이요! 등- 5호(흉노,선비,강,갈,저)- 전연, 후연 과 고구려의 각축- 북위의 화북지역 통일- 한족왕조의 강남이동- 남북조 시대◎ 한반도로의 이동‘●한반도 북부와 남부로의 인구이동에 대해 설명한다.- 부여족의 이동과 고구려 백제의 건국- 고조선 유민의 이동과 신라 건국 및 가야의 발전◎ 일본열도로의 이동-도왜인-야마토 정권PPT사진동영상탐구활동◎ 탐구활동● 오늘날 동아시아의 인구이동과 갈등에 대해 알아보고 그 해결방안을 생각해보게 한다.○ 자료 가,나,다를 통해 오늘날 동아시아의 인구이동을 살펴보고 그 원인과 해결방법을 모색한다.탐구활동용지제시된 자료뿐만 아니라 다른 인구이동의 양상도 생각해보도록 한다.정리5분형성평가◎ 형성평가● 간단한 문제를 통해 배운 내용을 복습한다.◎ 학습목표 상기● 학습목표를 한 번 더 읽음으로써 수업내용을 정리한다.형성평가용지형성평가를 통해학생들이 스스로 목표를 달성했는지 확인한다.차시예고◎ 차시예고 : 동아시의 지역국가의 성장● 북방민족의 한족통치와 호한 융합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통합과 발전에대해 학습하게 될 것임을 상기시켜 준다.ppt학생들이 본시와 차시를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게 한다.주제명: Ⅰ. 기초 자료1. 인구 이동의 원인가. 자료 ① 기원 전후 시기부터 7,8세기경까지 동아시아에서는 유목민과 농경민 모두 근거지를 떠나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동 방향은 대체로 북방에서 남방으로 남하하는 형태였다.* 출전 : 《고등학교 한국사》, 천재교육, p.나. 자료 ② 인구 이동은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자연재해, 인구증가, 종족 간 또는 종족 내부의 정치적 갈등, 국가 사이의 전쟁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일어났다. 한 지역에서 시작된 이동은 토착민과 이주민, 이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갈등과 전쟁을 일으켰고, 그에 따라 2차, 3차의 인구 이동과 근거지 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대규모로 인구가 이동한 지역 천재교육, p.3. 한반도로의 이동가. 자료 ① 탕평 정치는 국가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던 붕당을 억누르고 민생을 중시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며 개혁적이었다. 특히 영조와 정조 때의 안정과 개혁은 새로운 계층의 성장을 자극하여 사회의 발전을 촉진하였다는 데 역사적 의의가 있다.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정치 체제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왕 개인의 능력에 의존한 것이었다. 오히려 이 시기 왕권이 강화되면서 정치권력이 왕과 소수 정치 집단에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유능한 군주가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면 강화된 왕권이 일부 정치세력의 손에 좌우될 위험성이 잠재되어 있었다. 이는 정조가 죽고 난 후 세도 정치의 출현으로 현실화 되었다.* 출전 : 《고등학교 한국사》, 천재교육, p.나. 자료 ② 한편, 고조선이 멸망한 후 그 유민의 일부가 한반도 남부로 이동하였다. 철기 기술을 가지고 있던 이들 이주민과 경주 지방의 토착 세력이 연합하면서 신라 건국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낙동강 하류 지방의 가야도 이들 이주민과 연합하여 발전하였다.4세기에 한사군이 고구려에 멸망한 후 그 유민의 일부가 다시 한반도 남부로 이동하여 백제와 가야 연맹이 발전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가야인의 일부는 바다를 건너 왜로 이주하였는데, 이후 두 지역 사이에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해졌더ㅏ.* 출전 : 《고등학교 한국사》, 천재교육, p.4. 일본 열도로의 이용가. 자료 ① 오랜 전란에 시달리던 한족도 한반도를 거쳐 이 대열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일본 열도로 건너간 이주민을 도왜인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야마토 정권의 성립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4세기 전반에 야마토 지방 및 그 주변의 호족이 연합하여 야마토 정권을 세웠다. 여마토 정권은 점차 세력을 확대하여, 5세기 후반에는 규슈 북부에서 간사이 지방에 이르는 각지의 호족들을 복속하였다.* 출전 : 《고등학교 한국사》, 천재교육, p.Ⅱ. 실제 수업 자료자료 출처:https://www.google.com/s
학교폭력 예방 및 학생의 이해학교폭력의 사례와 대처방안■ 사례▶아산 여중생 감금폭력? 2017년 5월 14일 오전 9시 30분께 천안·아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10대 A양과 B양은 중학교 2학년 C양을 아산의 한 모텔로 불러내 도망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근 상태서 1시간 20분간 무차별 폭행했다. A양 등은 전날 C양이 아닌 다른 여학생 D양도 모텔에서 감금 폭행했다. 이들은 다음 날인 14일 오전 C양을 같은 모텔로 불러 "D양이 모텔에서 탈출했는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왜 말하지 않았느냐"며 C양을 때리기 시작했다. A양 등은 모텔 안에 있는 옷걸이 쇠파이프로 C양의 엉덩이와 허벅지, 종아리, 얼굴 등을 마구 때리는가 하면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심지어 바닥에 떨어진 음식까지 먹도록 하거나 담뱃불로 C양의 허벅지를 7차례 지지는 등 학대했다. 1시간 넘게 폭행을 이어가다 오전 10시 50분께 C양에게 "200만원을 벌어오라"며 모텔에서 풀어줬다. 이 사건으로 C양은 얼굴과 팔 등 전신에 상처로 3주간 입원 치료를 받았고, 정신적 충격으로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A양 등을 붙잡았고, 사건은 검찰로 넘어가 A양은 현재 특수상해 등 혐의로 구속 기소, B양은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사례분석 및 대처방안1. 사례 요약아산 여중생 감금폭행 사건 분석 요약가해자여중생 1명, 여고생1명피해자여중생 2명피해장소모텔연령대중학생피해유형신체폭력신체를 손, 발로 때리는 등 고통을 가하는 행위(상해, 폭행)담뱃불로 신체에 화상을 입히는 행위(상해, 폭행)모텔로 불러서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구는 행위(유인, 감금)강요폭력을 행사한 후 200만원을 벌어오라고 협박한 행위(강요)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먹게 한 행위(강요)따돌림피해학생을 모텔로 불러낸 행위(지배형 따돌림)집단폭행(공격형 따돌림)성폭력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먹게해 수치심을 준 행위(성폭력)2. 상황분석 및 대처방안① 지역주민 및 지역사회의 동참 필요◎ 상황분석- 가해학생들은 미성년자이지에 의한 특별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음- 학교에서 특별교육이수 교육기관에 직접 신청하여 가해학생이 특별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함- 가해학생의 보호자에게도 특별 교육이수 또는 심리치료의 필요성을 설명하여 재발을 방지할 수 있도록 함④ 학교 폭력의 현장에 동행하는 것도 징계 대상◎ 상황분석? 폭행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에 함께 있었던 여중생 2명은 훈방조치 되고 학폭위에서 단순 사회봉사 처벌을 받음.◎ 대처방안? 직접 폭력에 가담하지 않더라도 참관했을 경우 폭력을 조장하게 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징계가 없을 경우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질 수 있음으로 특별프로그램을 통해 교육하고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켜야함.① 신고접수 및 초기대응신고접수를 받고 즉시 접수대장을 기록한다. 아래 [붙임1]과 같이 신고 받은 내용과 교사 본인이 인지한 내용을 모두 기록한다. 그리고 바로 학교장에게 보고 한다.[붙임1] 학교폭력 신고 접수 대장사안번호일시신고자 또는 신고기관신고자 소속 및 신분연락처신고내용사실통보책임교사 확인피해 학생 학부모가해 학생 학부모2019-12017.00.00B교사교사010-0000-0000학생들을 감금폭력 및 협박을 통해 금품 갈취를 시도함.또한, 가해학생이 추가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을 신속히 분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피해학생이 보복행위를 당하지 않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학교장에게 요청하여 긴급조치를 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붙임2]의 긴급조치 보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할 필요가 있다. 이 내용은 해당 학생 학부모에게도 통보하도록 한다.[붙임2] 가해학생 선도 긴급조치 보고서대상자(가해학생)A초교 남학생 12명사건 내용발생일2008.00.00.피해학생A초교 학생 수십명유형신체폭력, 강요, 따돌림, 성폭행조치일자2008.XX.XX.조치 내용①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② 피해학생 및 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③ 학교에서의 봉사④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 교육이수 또는 심리치치료 및 치료를 위한 요양, 학급교체, 그 밖에 피해학생의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받게 된다. 반면 가해학생은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피해학생 접촉 및 보복행위의 금지, 학교에서의 봉사, 사회봉사,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교육이수 또는 심리치료,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퇴학처분 등을 받게 된다. 이때 특별교육이수를 하게 된다면 [붙임3]을 작성하여 해당학생에게 통보하고, [붙임4]를 작성하여 위탁기관에 신청한다.[붙임3] 가해학생 보호자 특별교육 이수 조치 통보귀하의 자녀인 △△△의 학교폭력 사건에 관하여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 제1항에 따른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로서 사회봉사 3일과 특별교육 이수 조치 (예: 12시간)이 내려졌습니다.따라서 △△△의 보호자인 귀하도 같은 법 제17조 제9항에 따라 △△△과 함께 ○○○교육원(Wee센터,--센터 등 지정장소 명기)에서 향후 자녀의 올바른 성장을 위하여 특별교육을 이수하여야 합니다.만약 특별교육을 받지 아니한 경우, 같은 법 제22조 제2항에 따라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특별교육이수관련 문의]담당자 : ○○○○학교 인성교육부장 김○○, 연락처 : 000-00002008년 월 일○○○○학교장 (인)[붙임4] 학교폭력 가해학생(보호자)특별교육이수 위탁교육 신청서(학교용)학교명: OO학교 담당자: 연락처 : 010-OOOO-OOOO특별교육이수 대상자학생보호자성명학년성별학폭위개최일조치사항위탁기관이수구분사유교육기간(시간)성명관계교육기관교육기간(시간)연락처△△△0남2008.00. 00.2호 4호대구 가톨릭 위센터학교폭력성폭행00.00.~00.00.(1일5시간, 4일총20시간)OOO모대구 가톨릭 위센터2016.7.18.(월)(1일,4시간)010-0000-0000⑤ 가해자 및 피해자 프로그램1) 가해자 프로그램가해자에게는 자신으로 인해 성폭행을 당한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너와 나는 친구’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이 프로그램은 유형별로 친구 이름을 적어보고, 서로를 건전한 방법으로 표출한다.대상초중고집단구성소그룹소요시간90분준비물활동지, 필기구, 찰흙, 과녁진행과정활동내용도입안녕하세요? 오늘은 자신이 경험했던 학교폭력에 대해서 역할극을 해보고 그때 느꼈던 감정을 표현해보고자 합니다.전개1. 제일 먼저 역할극을 해볼게요. 조별로 연극할 사례를 정하고 역할극을 준비해주세요.2. 역할극 준비가 끝났으면 역할극을 발표해볼게요.3. 준비된 과녁에 찰흙을 던져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해보세요.4. 마지막으로 자신의 소감을 발표해주세요.‘스트레스 팍팍’ 활동지학년 반2008년 00월 00일이름 :사례2전남의 한 초등학생이 동급생들에게 상습적인 성추행을 당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조사 중이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는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학급교체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며 재심을 청구했으나 이 과정에서 학급 분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며 2차 피해를 주장했다. 3일 전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3일 전남 모 초등학교 5학년 학생 A군이 같은 반 남학생 2명에게 성추행과 폭행을 당했다는 신고가 학교를 통해 경찰에 접수됐다.A군 어머니는 또래보다 발달이 늦은 아들이 지난 3월 20일부터 지난달 초까지 쉬는 시간마다 교내 화장실에서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남학생 2명이 아들의 바지를 내리고 쇠집게로 성기를 꼬집거나 대걸레에 오물을 묻혀 온몸에 바르고, 대걸레 자루로 허벅지를 폭행하기도 했다고 진술했다.경찰은 미성년자 의제강제추행 혐의로 해당 사건을 조사 중이다.A군 어머니는 최근 국민청원을 통해 '학폭위에서 학급교체 조치 통보를 받고는 가해자와 부모들의 사과가 없었던 점을 이유로 재심 신청을 했는데 제2의 피해를 보게 됐다'고 주장했다. 5월 20일 재심 전까지 학폭위 결정이 유보되면서 앞서 내린 학급 분리 결정이 취소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교실에서 생활하게 됐다는 것이다. A군 어머니는 '아이가 빨리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하고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조치와 법 개선을 원한다'고 강조했다.전남도교육청 관계자는 "도 연계하여 조치를 취해야 함②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조치 마련◎ 상황분석 ? 피해학생이 발생하고 별 다른 보호조치가 취해지지 않음진상 조사를 하는 동안 가해학생은 계속 피해학생과 같은 학교에 다녔음◎ 대처방안 ?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즉시 가해학생과 적극적인 분리를 해야 함피해학생이 다시 학교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보호를 해야 함이때 피해학생의 의사와 무관한 일방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도록 해야 함피해학생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상담, 전문기관과의 연계, 의료시설 등을 안내함, 또한 피해학생이 치료받는 기간을 출석으로 인정하여야 함피해학생이 치료받는 기간동안 성적평가 등이 있다면 불이익으로 작용하지 않아야 함③ 가해학생에 대한 선도◎ 상황분석 ?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 가해학생에 대한 제대로 된 선도가 이루어지지 않음가해학생에 대해 처벌이 없이 단순히 교육만 하였음◎ 대처방안 ? 가해학생에 대해 단순히 교사의 교육뿐만 아니라 교외의 전문가에 의한 특별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음학교에서 특별교육이수 교육기관에 직접 신청하여 가해학생이 특별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함가해학생의 보호자에게도 특별 교육이수 또는 심리치료의 필요성을 설명하여 재발을 방지할 수 있도록 함가해학생에 대해서 전학이나 퇴학 같은 처벌도 필요함④ 사건을 목격한 학생 및 주변 학생에 대한 조치◎ 상황분석 ? 이 사건은 가해학생이 성행위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했기 때문에 피해학생이 많음폭행 장소로 공개적인 장소가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목격자도 많음사건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피해학생과 목격한 학생 외에 주변 학생들에게도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됨◎ 대처방안 ? 사건을 목격한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안정시키고 성폭력 사실을 휴대전화나 인터넷 등을 통해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시켜야 함성폭력 피해 사실이 알려지게 될 경우, 피해학생이 더 큰 상처를 입게 된다는 점을 학생들에게 이해시켜야 함사건을 목격한 학생들과 주변 학생들에게 비밀이 보장되도록 개별상담함① 신고접수 및 초기대응
아래 12문제 중 6문제가 출제됨.1. 당송변혁기의 특징첫째로, 황제권의 강화이다.서양의 중세에서는 봉건제도의 특성상 왕과 영주가 쌍무적인 관계에 있었으므로, 왕권이 약하고 반대로 영주들의 세력이 강했다. 그러다가 왕이 도시의 성장을 돕고 그 도시에서 세금을 걷음으로써 전문관료층을 육성하고 상비군을 군사력으로 두면서 왕권이 상당히 강화되어 마침내는 절대왕정을 이룩하게 된다. 반대로 영주들은 화약무기가 전래되면서 기사로써의 역할을 상실하며, 상공업의 발달에 농업 중심의 장원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장원 내의 농노들이 도시로 이탈하면서 상당한 타격을 받고 세력이 약해지다가 와해된다.이와 비슷한 일이 중국에서도 일어난다. 후한의 멸망 이후, 위진남북조시대를 거쳐 수와 당에 이르기까지 황제권은 상당히 약해졌다. 이 시기를 중국의 중세로 본다. 당나라의 경우 황제가 환관들에게 살해당하기도 할 정도로 황제권이 약한 편이었고, 그것은 중세의 다른 국가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에 반해 문벌귀족들은 세력이 상당히 강했다. 낭야왕씨 박릉최씨 같은 초1류 명족들의 경우, 나라가 망하고 왕조가 몇차례나 교체되어도 그 세력을 굳건히 지킬 뿐더러 황제의 가문을 얕잡아보기도 할 정도였다.그러나 송나라에 이르러서 귀족사회가 끝나고 사대부 사회로 접어들게 된다. 중세의 귀족과 송의 사대부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근세로 바뀌었다는 증거이다. 송대에는 과거제가 대폭 강화되어 관리 선발에 황제의 영향이 커진다. 그리고 명문가에서 누리던 관직에서의 세습적 혜택도 급감한다. 즉 과거의 강화에 따라 신하인 사대부들이 황제에게 매우 종속적인 신분이 된다. 황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되는데, 이것은 명과 청을 거치며 더욱 강력해진다. 아무튼 이것이 마치 서양의 영주층이 몰락하고 전문관료층이 성장한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둘째로, 상공업의 발달과 도시의 성장이다.중세의 유럽은 장원제도가 주축이 된 철저한 농경사회였는데, 십자군전쟁을 기화로 점차 상공업이 발달 하면서 도시가 성장하고 장원이 해체되어 왕권이 강화되고 영주층이 몰락하는 계기가 된다. 중국에서도 위진남북조시대부터 서서히 강남이 개발되기 시작하다가 송대에 이르면 마침내 강남의 경제력이 화북을 압도하게 된다. 상품작물 재배와 수공업이 발전하면서 오로지 농경 중심의 사회였던 중국에서도 상공업이라는 것이 발전하게 된다. 물론 이것이 서양처럼 아예 농촌사회라는 틀을 허물 정도로 압도적인 변화는 아니었지만, 이러한 변화가 나름대로 크게 나타났던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것도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셋째로, 서민문화의 성장이다.유럽에서는 유럽 경제의 성장에 말미암아 서민들도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 또한 이미 르네상스 시기부터 보카치오나 에라스무스 돈키호테 등에 의해 기성 종교나 기성 문화에 대한 비판의식이 싹튼 지도 오래되었다. 그에 따라 도시에서는 서민문화가 발달하였다.중국에서도 이런 변화가 있었다. 대체로 당의 문학은 운문이고, 송의 문학은 산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중국의 서민경제가 발달하면서 여유가 생긴 서민들도 문화생활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민들이 난해한 운문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운 산문을 선호했기 때문에 산문이 송대 문학의 특징이 된 것이다. 유명한 삼국지연의, 수호지 등의 소설들은 송나라 이후에 나타난 작품들이다.마지막으로, 전호이다.전호라는 계층은 일단 농민에 속한다. 그리고 이 전호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교토학파와 도쿄학파의 쟁점이 되었다. 사실, 전호에게서는 농노와 자유농의 성격이 모두 나타난다. 토지에 예속되어 있어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도쿄학파에서는 전호를 농노로 보았고 그에 따라 송을 중세의 연장으로 본다.그에 반해, 교토학파는 사유재산과 혼인의 자유 등을 들어 전호를 자유농으로 보고, 송은 완전한 근세라고 보았다2. 당송의 과거제도 및 특징에 대해 비교설명당의 관료 선출은 과거제보다 은음제가 주류를 이룬데 비해, 송의 관료 선출은 은음제보다 과거제가 주류를 이루었다. 즉 당에서의 과거제가 관리선발제도라기보다는 문벌귀족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보완 조처이자 ‘관리 후보 자격시험’이라면, 송에 이르러서야 과거제는 ‘관리 선발 시험’으로 자리잡게 된다.또한 당 시기 추천을 받은 향공이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면, 송 시기에는 이러한 과거 응시를 위한 추천제도가 사라졌다.그리고 당의 과거 주관기관이 예부와 이부였다면, 송은 황제가 직접 과거를 주관하는 ‘전시과’라는 점 역시 특이할만한 점이다. 이처럼 송은 과거를 통해 관료를 선출하는 비중이 높았기에 과거 시험의 공정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었고, 이는 별두시, 쇄원, 호명법과 등록법 등 여러 공정성 보장 제도의 도입으로 나타났다.3. 범중엄의 개혁 내용 중에서 이치법 계획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 설명하시오삼용의 폐단은 용관, 용비, 용병의 폐단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중 용관의 폐단은 비대해진 관료체제로 인해, 직무가 없는 관리들이 많았다. 또한 군사비용 및 북방유목민족에게 지출하는 세비로 인한 재정지출을 용비의 폐단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용병의 폐단은 송 대 군사제도는 모병제도였는데, 전쟁 때마다 병사들을 소집하고, 이러한 병사들의 퇴직 연한이 없었으며, 병사는 증가했지만 실질적인 전쟁수행능력은 떨어지는 등 재정소모가 극심했다. 이러한 폐단을 용병의 폐단이라고 불렀다.이러한 삼용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 범중엄, 사마광, 구양수와 같은 이들은 이치법 개혁을 통한 부국강병을 주장했다. 범중엄은 사대부의 각성론과 책임론을 제기하는 정치개혁론을 주장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명출척(징계 등을 명확히), 억요행(음서와 같은 요행을 억제), 정공거(정밀한 시험), 택장관 등이 있다.4. 송대의 이치법 개혁내용 가운데 사마광의 ‘축로취사’의 개혁방법에 대해 설명하시오송대에는 강간약지 정책으로 지역 불균형이 심화되고 북방지역의 인구는 계속해서 감소했다. 경사에만 사람이 집중된 송은 북방 유목민족에 대한 견제력이 점점 약해졌다. 과거에도 이런 문제가 나타났는데 진사과에 동남지역 출신만 집중되고 서북지역은 적은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문제에 주목해 사마광은 축로취사법을 건의하며 각 로의 호구 수의 다소에 비례해 진사 합격자 수를 분배하고자 했고(지역인재할당제와 유사), 하짐나 구양수는 「논축로취사차자」를 통해 사마광의 축로취사법은 불합격할 사람이 합격하는 문제(취사의 전도)가 있다고 주장했다.5. 중국의 전통명절 5가지1.청명절: 24절기 중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는 절기로 이 시기 1년간 비바람에 시달린 조상의 산소를 찾아 돌본다. 이때 지전을 산소 앞에서 태운다. 2.단오절: 음력 5월 5일로 초나라 굴원이 멱라수에 뛰어 자결한 것을 기리던 사실에서 유래했다. 3.원소절: 원은 정월을 소는 밤을 의미하는 말로 1년 중 첫 보름달을 볼 수 있는 밤이라는 뜻이다. 한무제가 여씨의 난을 진압한 후 이를 축하하며 처음 원소절로 지정했다. 4.중추절: 음력 8월 15일로 가을의 중간에 있어 중추절이라고 한다. 호우이의 전설에서 유래했다. 5.춘절: 음력설로 중국에서 가장 큰 명절이다. 요순시대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풍습에서 기원했다고 추측한다.6. 잠입왕조와 정복왕조는 무엇인가잠입왕조는 중국왕조를 침략해 정복했지만, 문화적으로는 한화된 왕조이다. 대표적으로 남북조시대의 ‘북위’가 있다. 정복왕조는 한족이 아닌 이민족으로서 중국을 정복해 지배한 왕조를 말한다. 대표적인 정복왕조로 원(몽골족)이 있다.정복왕조와 잠입왕조는 둘 다 ‘이민족’이 중국의 일부 혹은 전체를 지배하였지만, 지배층의 정치·군사·문화적 주체성의 상실 여부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이러한 정복왕조 개념은 미국의 사학자 카를 비트포겔이 명명했으며, 정복왕조의 대표적인 국가인 원은 독자성을 유지하며 중국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신민들을 4등급(몽골인,색목인,한인,남인)으로 구분해 통치하였고, 문자(파스파 문자)를 창시하였다. 이러한 원대 사회의 특징은 ①다민족·다문화 사회였다는 점, ②민족차별정책이 진행된 것, ③국제적이고 개방적, 수용적이었다는 점 ④피지배층의 문화가 지배층 문화보다 우위에 있어, 서민문화가 성숙했다는 점이다.7. 원대 정치사회 문화의 특징에 대해 설명칭기즈칸과 그의 후계자들은 몽골 및 투르크계의 주변 부족들을 빠르게 복속시키고 이어 금과 송까지 제압하며 중원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복사업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동유럽과 이란 북부에 까지 이르렀다. 이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원제국은 4한국으로 분봉하여 다스리는 정책을 실시했다. 또한 예케 몽골 울루스에서 대원제국으로 국호를 바꾼 원 세조(쿠빌라이칸)는 종래의 유목국가의 통치체제에서 정주국가인 중국의 통치정형과 비슷한 체제로 변화시켜갔다. 원제국은 자신들이 정복한 다양한 민족들을 신분차별제를 통해 다스렸다. 제1계층인 몽골인, 제3계층은 요나라 땅에 살았던 한인 제4계층은 송나라의 땅에 살던 남인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이런 차별정책은 반몽골 감정을 불러일으켰다.8. 중국의 4대 지역축제와 8대요리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시오중국요리는 양자강을 기준으로 북방요리와 남방요리로 분류된다. 또한 일정 지역을 기준으로 북방(베이징·텐진),산동(칭다오,카이펑), 강남(상하이,난징,양저우,닝보,우한),복건(푸저우, 취안저우),광동(광저우,홍콩),사천(청두,충칭) 요리로 분류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