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의 교과서에서부터 먼나라 이웃나라까지 지금껏 내가 봐왔던 역사책들은 그 진행방식이 모두 같았다. 모든 책들이 긴 역사 속에서 우리가 기억할 만한 사건들을 짚어주며 진행된다. 책에서는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면서 만약 개인의 시각을 통해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때에는 그 개인을 평범한 사람이 아닌 매우 특별한 사람으로 선정한다. 가령 각 나라의 왕이나 큰 사건들에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 등으로 말이다. 나는 그 패턴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것이 역사를 기술할 때 당연한 흐름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가 한 개인의 시점에서 진행된 역사책이라는 말을 듣고 굉장히 놀랐었다. 좁은 시야에서 역사를 서술한다면 너무 많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사란 객관적인 부분이고 객관적으로 서술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개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역사책이라고 하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만약 중심이 되는 개인을 정하게 된다면 개인이 살았던 시대는 자동적으로 정해지게 된다. 혹은 중심이 되는 ‘시대’를 선택하게 된다면 그 개인에 대한 선택의 폭이 매우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면 무슨 기준으로 그 ‘개인’, 혹은 그 ‘시대’를 정했는지도 의문이었다.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항상 역사 속 큰 사건들에 치중하고 왕과 귀족들의 말에만 귀 기울였던 책들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띠는 책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시적 시야가 아닌 미시적 시야로 역사를 바라보면 그 시대 상황을 직접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위치에서의 ‘가까운’ 역사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의 저서 카를로 진즈부르그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1961년 피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 역사학은 보통 이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거대한 이론틀을 구축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진즈부르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역사의 초점을 개인에게 맞춤으로써 개인의 일상과 마음을 통해 한 시대를 나타내려고 하였다. 이 책에서는 ‘메노키오’라는 인물을 주일들을 닥치는 대로 하였다. 그는 금전적으로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몬테레알레의 좁은 세계에서는 그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도 있었고 촌락에서 촌장의 역할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행정관의 역할도 하였는데 이는 그의 지적수준이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촌에서 읽고 쓰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물기는 했다. 그 점을 제외하고는 딱히 특별한 점이 느껴지지 않는 그를 이 책의 중심인물로 선정한 것에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책에서 재판이 계속 진행되고 그의 주장들을 굽히지 않고 말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나의 머릿속에서 그는 점점 평범한 방앗간 주인이 아닌 특별한 인물로 변해갔다. 말 많고 고집 센 이상한 인물에서 궂은 상황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전달할 수 있는 인물로 말이다.다시 책의 초반부로 돌아가자. 그가 처음 1583년 9월 28일 종교 재판소에 고발되었을 때의 죄목을 보고나서 나는 굉장히 놀랐다. 죄목은 ‘이단적이고 불경한 발언’을 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유럽은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 이단적이고 불경하다는 말은 세상을 교회가 말하는 대로 믿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의 말은 곧 신의 말이요, 그들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신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다. 신의 뜻을 거역하고 교회의 눈밖에 벗어나게 되면 큰 처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농부’ 메노키오였을 것이다. 그런 그가 많은 사람들이 불경하다고 느끼고 이단이라고 생각되는 자신의 말들을 떠벌리고 심지어는 사제들보다 하느님을 더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메노키오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과연 그는 정말로 평범하게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었을까?이단 심문관은 메노키오의 처벌을 위해 그의 지인과 친척들에게 그에 대해 조사를 시작하였다. 심문관은 조사를 하던 중 그에 대한 평가가 상반되게 매겨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노키오가 평소에 불경한 발언을 자주하여 2월 7일 첫 번째 재판을 받게 된다.메노키오가 처벌을 받던 시기는 종교 개혁에 대한 저항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당시에 메노키오와 같은 사람들을 이단으로 간주하여 개별적으로 처벌하였다. 종교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종교에 대한 처벌은 아주 강력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재판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메노키오는 당당했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천지창조설을 설명했다.“제가 생각하고 믿는 바에 따르면, 흙, 공기, 물 그리고 불. 이 모든 것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함께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이는 마치 우유에서 치즈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는 것과 같습니다.” (p.75)이 대목은 그의 성격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큰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그의 주장을 굽히기는커녕 이단 심문관을 이해시키려고 하였다. 야사에 의하면 갈릴레이도 종교 재판에서 과학적 근거를 가진 자신의 주장도 강력한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철회했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는 찾아볼 수도 없고 (물론 종교에서 과학적 근거를 찾는 것이 모순되기는 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사람도 없는 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노키오는 자신감에 차있었는데 도대체 그는 무엇을 믿고 있었던 것일까. 첫 심문이 끝난 뒤에도 그는 심문관에게 용서를 구하면서도 그가 주장한 모든 부분에 대해서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 뒤에 심문에서도 그가 말한 것들은 교회의 교리를 벗어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메노키오는 새로운 곳에서 재판을 받게 되고 그곳에서도 그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그의 생각들을 자신과 반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다.이는 작가가 메노키오를 중심인물로 선정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역사서인 특성상 책에는 흐름이 있어야한다. 올바른 흐름이 있어야 이야기가 진행되고 어긋나지 않는다. 개인으로 이 흐름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메노키오는 자신의 흐름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갔다. 그런 그를 나는 주관적이지만 객관적이때문에 역사를 한 방향으로 바라볼 수 있다.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그의 정신들도 한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가가기가 한결 수월하다.메노키오는 베네치아의 통치자들에 의해 콘코르디아에서 포르토그루아로 이송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4월 말경, 갑자기 새로운 상황이 전개 되었다. 베네치아의 통치자들은 아쿠일레이아와 콘코르디아의 이단 심문관인 펠레체다 몬테팔고 신부에게 종교 재판소의 모든 재판에 성직자 신분의 재판관과 함께 세속인 관리의 참석을 요구하는 베네치아 자치 도시의 규정을 따르도록 요청하였다. 두 권력 간의 갈등은 전통적인 것이었다.” (p.82)그가 살았던 베네치아에서 베네치아 관리들은 아주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베네치아의 높은 분들이 도시에서 일반 대중들 즉, 농민들을 상대로 도둑질을 한다고 말한다. 뒤에서 더 다룰 내용이지만 그는 교황, 추기경 그리고 주교 등 종교가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한다고 말했다. 그와 더불어 이와 같이 종교가 아닌 사회적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 이유는 그가 ‘농민’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농민들처럼 방앗간과 잡다한 일들로 살아가는 그냥 ‘농민’이기도 하였지만, 다른 농민들과는 다르게 사회적, 종교적 문제에 물음표를 던지고 그 물음표를 직접 그들에게 말하는 조금은 다른 ‘농민’이기도 하였기에 주관적이며 객관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책이 진행되고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메노키오의 성격이 더욱 강조된다. 그리고 오히려 교회에 순응하지 않고 그의 생각을 남에게 심어주려고 하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종교에 맞서기도 하였지만 역사에 맞서기도 하였다. 새로운 천지창조를 주장한 것은 단지 종교의 그것만을 비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종교의 권위를 비판하면서도 ‘권력자들에게 일침을’ (p.84 6장의 부제) 날리기도 한다. 그는 그가 살던 시기에 교회는 단지 가난한 사람을 착취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교회가 그들을 착취한다고 하여도 그들은 정말로 가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작했다. 그 권력자들 중 상당수는 바로 ‘성직자들’이었다. 메노키오는 성직자들이 이미 진정한 성직자의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는 수많은 기독교 의식들을 신의 이름을 빌려 진행하지만 그것들이 허례허식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피해들은 모두 대중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의식들은 단지 대중으로부터 금전적 보상을 얻어내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메노키오가 이 책의 중심인물인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그의 종교에 대한 특정한 시각과 세계관 때문일 것이다. 그가 앞서 주장한 모든 내용들은 어느 책이나 기록에도 나와 있지도 않은 온전한 그만의 생각이었다. 비록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각이 옳지 않다고 했지만 그는 그의 의견을 굽히는 일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메노키오는 누가 봐도 이단이었다. 이단으로 취급을 받고 재판을 받던 때에도 한 번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그만의 생각을 거둔 적이 없다.그렇다면 메노키오가 바라보고 주장했던 세계는 어떤 세계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그는 재판에서 말을 시작할 때 모든 것이 그의 생각이라고 하였다. 예를 들어 “저는 ~라고 믿으며, 제가 생각하고 믿는 바에 따르면” (p.128) 등으로 말을 시작하였다. 처음부터 그가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을지는 않을 것이었을 텐데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의 생각과 믿음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었고 그를 이단 심문관도 깜짝 놀라는 생각들을 말하게 되었을까.“메노키오는 여러 차례 자신의 ‘견해’에 대한 근거로 여러 서적들을 언급하였다.”(p.128) 이 또한 그가 이 책을 위한 능력을 지닌 인물임을 나타낸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촌구석 마을에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은 그렇게 보편화 되지 않았었다. 그런 상황에서 메노키오의 특별한 능력은 빛을 발했다. 사람들이 책들을 읽으면서 그 책들의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는 굉장히 어렵다. 책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을 기반으로 그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