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계급과 베블런효과2019. 5. 3과시적 소비와 베블런 효과대한민국은 사치와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바닥을 치던 국민소득은 국민들의 생활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말 그대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하루 벌어 하루 간간이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것이 불과 70여년밖에는 되지 않은, 가까운 과거 대한민국의 모습이었다.그러나 현재는 다르다. 현대의 대한민국은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넘어가고 있다. G20 회의를 개최하고,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에 경제적 지원 또한 부족함 없이 한다.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이 믿지 못할 정도로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런 눈부신 발전은 대한민국에게 긍정적인 성과만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경제 발전과 더불어 엄청난 재력을 축적한 소수 계층이 나타났고, 이에 빈부 격차가 대두되었으며, 또한 이 격차는 그 소수 계층의 과시성 짙은 소비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도, 우리나라에 ‘블루보틀’이라는 커피 전문점이 입점했다는 소식이 오늘 검색차트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과 일본 한국에만 입점한 이 커피브랜드는 일본보다 2.9% 미국보다는 12.9%나 비싸게 판매하여 커피가격이 무려 6000원에 달한다고 한다. 동일한 상품을 한국에서 더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코리안 프라이스’ 논란이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계 1위 커피 전문점인 스타벅스 또한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비싸게 판매하는데도 불구하고 ‘블루보틀’의 오픈 전에 200명이 줄을 서서 기다려 먹는다고 한다.이것은 분명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흔한 사회 현상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결하지 않고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경제적 피폐를 넘어서 정신적으로 피폐한 국가를 만드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누군가는 이 현상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과시적 소비, 빈부 격차, 베블런 효과, 상술 등 이 모든 문제를 아우되어진 대기업이 출연하여 소득의 격차가 명백히 드러나게 된다. 미국이라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부자들은 점점 더 그 부를 늘려가고 있었으나 그렇지 못한, 베블런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한계급이 아닌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 시기는 거대기업의 형태가 합리화되고, 규칙화되었으며 또 제도화되었다. 이와 같은 자본의 제도화는 크게 두 가지 큰 변혁의 결과를 가져왔는데 하나는 자본의 국제화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가 계급의 구조상의 변화이다. 자본가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지게 된다. 하나는 순수한 금리 생활자들로서 오직 수동적인 부재자 소유를 통해 부를 늘릴 수 있었고 다른 하나는 관리 기능에 종사하여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는 일선에서 일하는 소수의 사람들이었다. 베블런은 이들에 대한 독창적인 평가와 분석을 한 사회이론가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19세기 후반에 철학과 사회이론에 큰 영향을 미친 찰스 다윈의 진화론 역시 그의 경제사상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이러한 베블런에 대한 평가를 보자면 사회학적인 논리 전개에 입각하여 고전 경제학의 각 주장들을 비판적으로 해부하는데서 자신의 이론적 입장을 정립한 학자였다. 그는 고전경제학이 구성해 놓은 법칙의 개념이 시간성을 배제한 일반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배격하고 있으며, 대신 인간의 경제 행위도 다른 인간 행위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형성되어진 사회적 맥락에 입각하여 분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인간의 경제 행위가 공리주의적이고 쾌락주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고전경제학의 견해를 거부하고 이러한 견해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의 매우 제한된 맥락 속에서만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회변동과 관련하여 앞선 기술과 낡은 제도간의 충돌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이 기존의 사상을 부식시키고 유한계급과 같은 기득권을 붕괴시키며 새로운 제도를 낳는다고 생각하였다. 낡은 질서로부터 새로운 질서로의 이행과정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키지만 베블런은 마르크스와는 달리 계급투쟁을 역사의 추진력으로 보지는 않았다.그러나 그는 기술의 변화에 Leisure Class)』에서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할 때 타인과는 독립적으로 그 상품의 한계편익과 한계비용을 평가한다는 신고전학파의 가정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개별 소비자의 소비형태는 다른 소비자와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소비자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베블런이 주장하고 있는 것은 유행의 첨단에 서거나 사회를 혐오하는 사람과 같은 예외적인 소수의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주위사람들의 소비형태를 살피거나 고려해두고 주위사람과 비슷하게 자신의 소비형태를 맞추어 간다는 것이다.베블런의 저서 ‘유한계급론’을 참고하여 베블런이 말하고자하는 유한계급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그는 유한계급은 야만시대의 약탈문화가 소유권을 발생시키고 그 이후로부터 유한계급이 생성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야만인의 애니미즘의 잔재가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용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는 경제적 약탈능력이 뛰어날수록 사회적 위치가 높으며, 이러한 약탈적 본능이 지배하는 사회는 약탈적인 유한계급의 관례가 주도한다. 그리고 야만사회에서는 약탈능력이 뚜렷하게 드러나 대중에게 손쉽게 우월감을 보일 수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유한계급이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를 통해 자신들의 약탈능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사회경제적 유한계급, 즉 기득권자에 대한 비판과 기술자에 대한 찬양으로 이어져, 베블런은 과시적 소비란 유한계급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상징화함으로써 다수의 대중을 능가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봉건사회의 경우는 이러한 경쟁적 소비양식이 사회적 피라미드의 맨 위인 유한계급에만 국한되어 있었으나, 최근에는 이러한 소비양식이 사회구조 전반으로 확산됨에 따라 각 계급은 자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자기보다 나은 지배계급의 생활양식을 본받으려는 성향이 있다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이 성향은 하위계급으로 하여금 과거보다 생활수준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더욱 상실감을 학문 등을 독점하면서 사회제도를 변화시켜 간다.베블런은 한가로움을 구가하는 지배계층의 발생과 성장, 그 행태를 인류학, 생물학, 경제학, 사회학 등의 다양한 학문을 토대로 설명했는데, 이 ‘유한계급론’을 보면서 현실세계의 이피에 가려진 사회의 모습, 특히 그 속에서 살아가는 고상하고 권위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양식을 해부하고 있다.베블런은 이러한 가진 자들을 유한계급이라고 통칭하고 이들의 취미, 의식, 학문 등 제반 생활양식 및 그 의식구조는 사회적 생산에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회적 죄악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또는 원시시대에서의 힘 있는 자와 현대사회의 유한계급을 동일선상에 올려놓고 사회발전에 진정 기여하는 사람은 이들이 아니라 생산적 노동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이란 점도 명백히 밝히고 있다.『유한계급론』은 또한 본래의 필요와 본질을 이탈한 유행 취미 및 학문의 보수성도 비판 현대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파헤침으로써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 많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다만 이러한 제도적 모순과 불합리에 대한 분노를 날카로운 문장으로 우리에게 카타르시스의 기회를 마련하고 있지만. 아쉬운 이 같은 모순을 시정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론의 제시가 없는 점이다. 비록 베블런이 하나의 완전한 체계를 남기지는 못했다고는 하지만 경제행위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신고전파 경제학의 기본전제에 대한 비판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진화론과 제도론의 영역으로 나아감으로써 경제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뿐만 아니라 그의 유한계급분석은 무관심과 냉소주의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부유층의 소모적 소비행태가 어떻게 그 사회의 진보를 차단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1960년대 이래 성장 일변도를 달려온 한국사회의 일부계층이 보이는 부도덕성과 관련해 우리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다.-과시적 소비의 배경베블런은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는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효용 극대화가 아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바라보는)으로써 자신들이 받는 소득의 양과는 무관하게 만성적인 불만의 생활을 영위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욕구불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용자들에게 분열적인 언동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고 이러한 쳇바퀴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베블런은 1차 세계대전에서 난무하는 애국심과 제국주의, 그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국수주의, 그리고 그 발작적이고 억압적인 여파(모든 진보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운동들에 대한 정부의 체계적인 탄압과 이를 묵인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풍조)를 목격했다. 두 번째에서 나오는 소비지상주의는 현대사회에서도 팽배해 있다. 소비 지상주의로 인하여 어떤 타자의 욕망을 획득하고 어떤 물건을 산다하더라도 단순히 아름다워서 되는게 아니라 아름답고 비싸야지만 잘 팔리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된 용어가 ‘베블런효과’ 이다. 과시적 소비는 상류층계의 드러나지 않는 암호로서 이용이 되며 낭비를 통해 명성을 얻으려는 이런 소비는 제작본능과 모순하면서 교묘하게 돌파구를 찾아 끊임없이 사회적 견해를 만들어간다.물론 과소비의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첫 번째로 과시적 소비는 사회 공익의 증진에 기여한다. 예를 들어 노벨상이나 장학재단, 또한 자신의 이름으로 건물을 짓는 등의 행위를 통해 과시적 소비를 행하는 자신은 자기 자신의 업적을 나타낼 수 있고 사회적으로 보면 공익 증진에 기여할 수도 있다. 두 번째로 과시적 소비는 문화의 다양성을 발현시킨다. 과시적 소비는 준 학문적 또는 준 예술적인 업적을 일으키며 구체적인 예로서는 사어, 점성술, 정화한 철자법, 수사법, 시작법, 가정음악, 기타 가정학, 최신 유행의 의상, 가구, 장신구, 유희, 스포츠, 애완동물에 대한 지식, 예절, 교양, 어법, 행실,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관례 등을 말할 수 있다. 즉 취미, 여가생활의 세분화와 지식의 추구 등 예술적 감각과 취향, 예법 등이 발전하게 되는 측면을 보인다. 하지만 과시적 소비의 불합리한 모습을 우리나라의 경제상황과 연계해보면 이 문제가 단지 소비 도덕의 문제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