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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선교와 문화 인류학 (폴 히버트)
    선교와 문화 인류학 (폴 히버트)
    선교와 문화인류학- Paul G. Hiebert-평가, 적용, 통합1. 다른 문화권과 우리의 문화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다. 또한, 성경의 역사적·문화적 요소와 현대 생활과도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성경 당시의 역사적·문화적 상황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며, 우리 자신과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에 대한 역사적·문화적 상황의 이해 또한 필요하다. 2. 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살펴보면, 복음은 어떤 문화적인 틀에 제한시킬 수 없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하신 하나님으로서 신성을 잃지 않고 완전한 인간이 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계시로서 신성을 잃지 않고 인간 문화라는 수단에 의해 전달된 것이다. 3. 우리가 새로운 문화권에 적응하기 위해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변화는 사람들을 사람으로, 인정해주고 그들의 문화를 우리의 문화처럼 인정해 주고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장애물을 헐어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닌 ‘사랑’이라는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이다. 4. 성육신적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문화차이로 인해 생기는 신학적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사가 다른 문화에 완전히 진입하려고 할 때 새로운 문화에 대한 지식과 이해의 부족으로 인식적 장애인 ‘오해’가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교사는 배우는 자로서 그들의 문화를 공부해야 한다. 5. 우리는 다른 문화에 있는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도록 연구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가 다른 문화 속에서 살 때 일어날 수 있는 오해와 자문화 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원한다면 우리의 세계관 역시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7. 세계관을 연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하나의 문화에 흐르고 있는 공통적인 주제를 찾아내는 것이다. 8. 17세기에 물질세계와 과학에 대한 강조가 된 후에는 모든 것을 수량화 하고 수치화하며 물질에 의해 사람을 판단하게 되었으며, 기술적인 발달에 의해 다른 문화를 판단하는 모습을 갖게 되어 선교지의 문화보다 그들의 문화가 더 문명화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문화차이는 메시지 자체에도 영향을사적, 문화적 상황에서 성경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말해주는 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메시지의 의사전달은 정보를 발신자로부터 수신자에게 이전하는 것인데 의사전달의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는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인격적 의사전달 즉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다른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의사전달이며 이는 선교의 핵심이다.생각과 마음은 감각기관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식으로 전달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상징’이라고 부르는 것은 의미와 감정을 그것이 표현되는 형식과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상징은 인간의 생각과 느낌 등과 같은 의식 세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을 반영하기도 한다.우리가 번역을 시도할 때에도 어떤 문화에서든 각각의 어휘들이 그 문화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내재적인 의미를 다 지니고 있기 때문에, 번역의 과정에서 전달하려는 본래의 의미는 어느 정도 왜곡될 수밖에 없다. 원문에 담긴 의미가 어느 정도 상실될 수 있으며, 없던 의미가 첨가되기도 한다. 따라서 설교나 강의를 통해 그 어휘가 그 언어에서 지니고 있는 본래의 의미와 그 단어로 옮긴 단어의 성경 원문에서의 의미가 어떻게 서로 다른지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의사소통은 정보와 의미를 전달하고 자신의 느낌을 나누며 판단을 전달하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의사소통 할 때는 이 메시지의 세 가지 요소 중 하나에 초점을 맞추며 이것이 주 메시지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부차적인 메시지가 의사소통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환경을 설정해주며 의도한 대로 주 메시지가 이해될 수 있도록 방편을 제공한다. 이 부차적 메시지는 가장 근본적인 메시지이기 때문에 선교사역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이러한 의사소통은 수신자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고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책임은 발신자에게 있다. 메시지가 잘못 전달된 경우는 피드백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 피드백의 결과로 우리의 의사소통에 즉각적이고도 꾸준한 변화가 생겨나는 것이한 온전한 순종이 함께 해야만 한다.7) 비판적 상황화모든 문화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있다. 이 중 가장 흔한 형태는 음악이며 설화 형태의 민속 문학과 신화, 경전도 있다. 또한,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의식들은 인간의 본질과 운명, 세상에서의 위치에 대한 가장 중요한 가정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선교지에는 다양한 결혼과 장례의식, 성인식, 치유와 번영을 위한 의식, 한 해의 시작, 주기와 월삭, 파종과 추수, 다산을 비는 의식과 절기 행사들이 있다.과거에 선교사들은 자문화중심주의에 기인하여 다른 문화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옛 관습을 이교적인 것으로 여겨 거부하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통적 관습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는 그리스도인 개종자들이 이방인 취급을 받도록 했다.그런데 전통적인 관습들은 실제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숨어버리는 것이다. 몰래 행해지는 이교적인 관습과 기독교의 가르침이 혼합되면 기독교적 이교주의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새로운 교인들은 복음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 스스로 적용하는 법을 배워야 성장할 수 있는데 전통적 관습을 모두 거부하게 되면 교회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리를 선교사가 박탈하게 되므로 성장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그러나 전통적 관습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교회에 수용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죄에는 집단적이고 문화적인 죄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방식이다. 죄는 제도와 사회의 관습 속에서도 발견되며 사람들의 문화적 신념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비판적으로 상황화를 하게 되면 온갖 종류의 혼합주의로 나아가 다양한 형태의 신이교주의를 만들게 된다. 복음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도 변화할 것을 요구한다.따라서 ‘비판적 상황화’가 필요하다. 이는 옛 신념들과 관습들을 거부하거나 수용하기에 앞서 잘 점검해 보는 것이다. 먼저 개인이나 교회가 삶의 모든 영역을 성경적으로 다루어야 할 필요를 인정하고 자신의 문화적 상황에서 전통적인 신념과 관습이 차지하는 의미 것이다. 선교사가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양심이 허락하는 한, 선교지의 그리스도인들이 결정한 바를 수용하고 그들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8) 자기 신학화선교사뿐 아니라 현지 교회도 전도와 선교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의미의 ‘자전’과 신생교회들이 외부의 지원에 계속적으로 이존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사역을 감당하도록 한다는 의미의 ‘자립’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 현지 지도자들에게도 시행착오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자치’는 오늘날 선교 사역을 계획하는데 있어 여러 분야에서 계속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홀로 사역하는 고립된 교회들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들이 함께 하나가 되어 교제를 나누고 공통의 과업을 지향하도록 하는 것이다.이처럼 신생교회가 성숙하여 지역 내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역을 책임지도록 하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는 이루어졌으나 신생교회들이 성경을 스스로 읽고 해석할 권리를 갖고 있는가에 대한 자기 신학화 원칙이 남아있다. 선교지의 다른 문화적 상황 속에서 신학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성경적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인간의 신학은 한편으로는 성경에,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신학은 우리와 복음을 연결시켜 주는 가교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건전한 신학을 갖기 위해서는 신중한 성경 석의와 우리 자신의 문화적 역사적 상황에 대한 신중한 석의가 필요할 뿐 아니라 다른 시대와 문화 속에서 주어진 성경의 메시지가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해석해야 한다.신학은 궁극적인 설명 체계로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를 갖게 하는 소재(所在) 지도로서의 기능을 하며, 우리의 행동의 방향을 인도해주는 안내 지도의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신학자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직면하는 문제들도 다뤄야 하며 다른 문화에서도 복음의 메시지가 분명히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사람을 회심하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는 데 도움을 주지 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문화차이를 초월하는 초문화 신학, 즉 각 신학을 비교하며 이들의 문화적 편견을 검토하고 성경적 보편성을 탐구하는 초문화 신학이다. 이는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지해야 한다.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로지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길뿐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독교 메시지의 진리 됨을 선언할 때 겸손과 사랑으로 해야 한다. 복음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예배하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그 초점은 인간의 구원과 영생에 있다. 따라서 우리도 메시지의 초점을 하나님과 사람의 화해, 사람과 사람간의 화해에 맞추도록 노력해야 한다.4. 문화차이와 이중문화 공동체9) 이중문화(Bicultural)의 가교사회의 인간관계 구조의 관점에서 문화를 살펴볼 때,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 행하는 의사전달은 반드시 사회적인 정황 속에서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타문화 의사전달은 어떤 사회적 상황 안에서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주로 일어난다. 선교사는 타문화에서 온 사람들이 특정한 사회적인 역할 위에서 상호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의 지역 공동체이며, 두 문화의 사상과 감정과 가치로 구성된 이중문화적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그러므로 건전한 관계와 선교 사역의 성공을 위해서 선교사와 현지인들은 상호 이해하고 신뢰하며, 새로운 문화적인 틀을 가진 이중문화 가교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이중문화 안의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세대 차이가 존재한다. 처음 시기의 선교사들은 목표도 높기 이상적이 되기 쉬우며 성공을 거둘 수도 있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 다음 세대 선교사들은 좀 더 현실적으로 사역을 평가하고 장기적인 헌신의 필요성을 느끼며 삶의 방식도 현실적으로 바뀐다. 삼 세대 선교사들은 제국주의와 식
    독후감/창작| 2024.01.24| 6페이지| 2,500원| 조회(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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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여호와의 날개 아래 약속의 땅을 향하여
    여호와의 날개 아래 약속의 땅을 향하여
    여호와의 날개 아래 약속의 땅을 향하여여호수아1. ‘승리주의자적 용어’를 통한 영적해석에 대한 이해가 달려졌다. 여호와께서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나할)하는 것이고, 여호수아에 나타난 율법(토라)은 결국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사명을 가르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가서도 과거에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사실을 기억함으로 이스라엘이 섬겨야 할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뿐이심을 깨닫는 정체성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땅을 강제로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식의 승리 주의적으로 해석으로의 이해가 아니라 하나님이 족장들에게 맹세하여 주리라고 하신 약속의 성취고 땅이 없던 노예들에게 가나안 땅을 선물로 하사하시고 그들의 기업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 후 땅을 받은 백성은 그 땅을 지혜롭게 정복하고 다스림으로 땅에서 밀려난 사회적 약자들을 구제하고 돕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2. 칼과 진멸 전쟁을 통한 무지막한 정복 사업으로 이해한 것이 달라졌다. 여호수아는 정복을 위한 전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책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땅이 없는 노예들에게 땅과 안식을 주는 “살롬 전쟁”이다. 땅이 없는 노예에게 땅을 선물과 유업으로 주시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신다. 또한 이 전쟁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친히 싸우신 전쟁이다. 싸우신 이유는 “모든 백성이 평안히(샬롬)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10:2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주시고 샬롬을 누리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이런 샬롬의 계획안에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시고, 땅을 주시고, 안식을 주시길 기뻐하신다.3. 무차별 종족 말살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가나안 여섯 족속 가운데 오직 기브온 거민 히위 족속만 이스라엘과 화친(샬람) 하려고 하였고, 나머지 모든 족속은 이스라엘을 대적하러 나왔다. 그 이유는 가나안 족속의 마음(레브)이 완악했기 때문이다. 가부정적인 면으로만 봤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다중적 의미를 가진 코드로 이해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도자가 없이 오직 여호와 한분만 왕으로 모시며 신분과 계층의 차이가 없이 평등하게 각자가 책임지고 살아가는 자유로운 공동체의 기회를 받았지만, 이 기회를 이스라엘이 놓치고 자기 마음에 옳은 대로 행동하며, 혼란과 부패가 난무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부정적 의미만이 결과를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 말씀을 긍정적인 명과 부정적인 면 두 측면을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2. 진정한 자유에 대한 이해도가 달라졌다. 자유란 자기 멋대로 살아도 되는 자유가 아니다. 이 책이 말하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유롭게 된 종’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호와를 섬기는 품꾼, 여호와의 종이 된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된 종이 아닌 섬김 없는 자유 서로 섬기기보다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남을 이용하고 조종하려 하고, 심지어 같은 형제들이라는 생각보다 착취할 대상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진정한 자유는 여호와만을 왕으로 모시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자유며, ‘섬김 있는 자유’를 사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듯하다.3. 진정한 샬롬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사사기의 핵심 과제는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이 누렸던 샬롬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사시대에 ‘안식의 땅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한 시기’ 엔샬롬의 시기다. 왜냐하면 사사기에 나오는 샬롬은 “평화, 화평, 안심, 평안’을 이야기하나, 실제로는 공동체의 샬롬을 깨고 진정한 안식을 얻지 못한다. ‘엔샬롬’을 암시한다. 샬롬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 샬롬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샬롬이며, 하나님의 질서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의 양식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게 된다.4. 구원자 세우심의 공식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여호와께서 구원자를 세우시지만 또한 이방 왕 구산 리사다임도 징계의 수단으로 이용하신다는 것이다. 이방 왕들과 이방 나라들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백성인 에 끝나지 않고 다른 이들이 동일한 위기를 만났을 때 그들을 구원해 내는 인간 고엘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인간 고엘의 역할을 룻과 보아스가 감당했다. 예를 들면 룻은 시어머니에게 죽음에 이르는 충성을 보인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3. 룻기에서 말하는 율법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룻기에 나타난 요구와 충성은 단순한 율법 규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기업 무를 자가 무르지 아니하겠다면서 신을 벗는 모습을 보면 이 일은 법으로 강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아스를 통해 계대 결혼과 기업 무름의 율법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 가운데서 역사하는 믿음으로만 지킬 수 있고 완성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4. 룻기에 나타난 기업무름의 정신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룻이 결혼 요청을 하면서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라는 점을 언급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기업 무름과 제도와 계대 결혼 제도는 상관 없는 듯 했지만, 두 제도에 깔린 원리는 곤경에 빠진 자들을 구원해 내는 것이 라는 점에서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업 무름의 정신에 대해 이스라엘 역사 초기부터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관심을 보이시고, 사람과 생명을 보호하기 원하시듯이 계대 결혼도 죽은 자의 아내가 보호되고 부양되어야 하며, 단지 남자 후손을 얻으려는 것이 다가 아니다. 과부를 돌보려는 데 주요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이 정신의 원리는 동일했다.5. 다윗 왕정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룻기를 통해 끝내 보아스와 룻을 통해 다윗을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다윗 왕조를 세운 결정적 인물 가운데 하나가 룻인 것이다. 결국 다윗 왕조를 세운 결정적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룻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저자가 말했듯이 텅 빈 사사 시대에 룻기는 비록 작은 책이지만 사사기와 사무엘서라는 딱딱한 조개껍질 사이에 들어 있는 진주와 같은 책이라 고백한다.사무엘서1. 사무엘이란 인물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4. 사무엘서에 나타난 언약에 대한 이해가 새로워졌다. 특별히 사무엘서에서 여호와께서 인간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심이 분명히 드러난다. 왕과 백성들이 죄를 범하나 다윗과 맺으신 언약 때문에 다윗 왕가와 예루살렘을 보존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지속된 다윗 왕가는 하나님의 언약과 자비로우심 때문이라 결론 내릴 수 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간 후에도 하나님이 다윗에게 허락하신 다윗 언약은 아직 유효하다고 믿고 있었다. 구속이 완성되고 언약들이 성취되는 것은 다윗 왕가의 사역을 통함임을 알 수 있다.5. 사무엘서에 나타난 다윗의 회개를 볼 때 회개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통한 두려움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다윗은 자신이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잘못을 범했음을 깨달을 것으로 보인다. 이 다윗이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은 그저 범죄의 사실을 없던 것으로 제거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공의를 집행하실 때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간청이다. 다윗은 죄를 고백하고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면서 하나님께 맡기고 있다. 회개 후 돌아서면 아무런 대가도 치를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다. 회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다윗의 잘못에 대해 형벌하심을 분명히 알 수 있다.열왕기서1. 열왕기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됨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이 포로 됨의 참혹함은 분명히 모세를 통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면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는 것을 밝혔다. 이 비극적인 상황이 단기간에 걸친 이스라엘의 반역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반역했다. 이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역사의 주인 되심이 드러난 것이다.2. 다윗 언약에 대한 이해가 여호와의 신실하심의 증거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다윗 언약의 신실성은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과 왕가를 불충성했을 때도 보존하시고, 심지어 여로보암에게 나라의 일부를 떼어 주면서 일부를 남겨 놓으신 이유도 다윗을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야비얌과 도움을 준다.5. 등극 공식과 죽음 공식의 문예적 기능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 이 공식은 ‘내러티브 시간’을 알리는 표지였다. 왕들의 ‘연대기 시간’과는 달리 독자들로 하여금 내러티브 시간 안에서 스토리를 음미하도록 만든다. 예를 들면 엘리야 스토리는 아합의 파일 안에, 엘리사 스토리는 이스라엘 여호람의 통치 파일 안에 담겨 있다. 이 스토리들은 내러티브 시간이 느리게 흐르도록 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신중하게 이 스토리 안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과 디테일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역대기1. 역대기를 통해 달라진 이해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하는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제시며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선민으로 하나님이 아직도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근거는 저자기 말하는 것 같이 아담의 창조부터 시작해서 성전 재건으로 끝나는 역대기의 큰 틀은 ‘재건된 성전’이 인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도구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성전은 여호와께서 다윗 왕국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최대의 은혜다. 포로 후기 공동체의 희망은 다윗 언약과 성전에 놓여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2.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 공동체의 이해가 달라졌다. 여호와의 전은 다윗 언약의 성취요, 다윗 언약을 실제로 경험하는 핵심장소다. 역대하 7장 14절에 따르면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며 죄를 회개하면 죄를 사하시고 땅을 고치시겠다고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그래서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처소요, 용서와 치유를 경험하는 ‘장소’였다. 그러기에 이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3. 책에 나타난 역대기 기자의 관점에 대해 역사서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역사서에 나타난 왕들의 통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율법과 선지자의 말에 대한 반응이 더 중요했다. 다윗 계열의 왕들도 여호와를 신뢰하고 하나님을 찾을 때만 형통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근거는 역대하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
    인문/어학| 2023.03.03| 10페이지| 2,500원| 조회(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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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근대교회사 (이성과 자율의 시대)
    근대교회사 (이성과 자율의 시대)
    근대교회사 (이성과 자율의 시대) - 박용규 -요약근대교회사의 시대적 범주를 30년 전쟁이 종식되고 맺어진 웨스트팔리아 평화조약부터 불란서 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까지로 한정한다면 이 시대의 총체적인 역사 서술의 thesis는 역시 이성과 자율일 것이다. 이성과 자율이라는 주제가 이 시대의 전 영역에 흐르고 있었다.근대교회의 시대적 배경 중에 중요한 것은 종교개혁 후 유렵의 변혁, 청교도 운동, 조지 팍스와 퀘이커 운동 그리고 신대륙의 개척이다. 독일 루터란 프로테스탄트들에게 최초로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던 1555년의 아우그스부르그 종교화의부터 1세기의 종교 분쟁을 종식시켰던 1648년의 웨스트팔리아 평화조약까지 거의 1세기 동안 유럽은 종교 분쟁에 휩싸였다. 영국에서는 헨리 8세부터 명예혁명까지 청교도 운동이 일어나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나 긍정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국교도, 가톨릭, 국교도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지만 비국교도들, 특히 필그림들은 반쪽만의 개혁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이들 청교도들과 청교도시대에 영국에서 발흥한 퀘이커교도들이 신대륙에 이주하여 청교도 정신과 청교도 문화를 새로운 세계에 정착시킨 결과 신대륙에도 근대교회를 위한 토대가 구축되었다.17세기는 종교, 정치 및 사회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특별히 제임스 1세(1603-1625)의 즉위부터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1689-1703)까지 86년간 영국의 정치는 청교도 운동과 떨어질 수 없는 관련을 갖고 있다. 때문에 청교도 운동을 종교적인 현상에 국한시켜 좁은 의미에서만 해석할 수 없고 포괄적인 해석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청교도운동은 교회정치문제, 목회자들의 개혁투쟁, 분리주의 그 이상의 문제였다. 그것은 현존하는 사회를 전도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궁극적으로 지성의 자세, 행동규범, 심리학, 표현방식, 기성의 신앙생활을 능가하는 역동적인 신앙의 활력을 포괄한 영국문명을 전복시키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이 시대에 영국이 배출한 인물들이 종교윤리 전반에 뿌리 내리면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주한 이들 필그림들에 의해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청교도 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했다.17세기 말엽과 18세기 초엽의 신대륙은 1세기 이전의 청교도 선조들이 갖고 있던 개혁주의 사상이나 후커와 카튼이 제시했던 청교도 사상에서 어느 정도 이탈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새로운 시대적 상황에서 청교도 전통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라는 사명감을 부여받았다. 이런 전통적인 청교도 사상에서의 점진적인 변천을 우려하는 이들은 한편으로 유럽에서 밀려오는 자연신론의 도전을, 다른 한편으로는 점차 일어나는 알미니안주의의 발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했던 청교도 사상에서 인간에게 보다 많은 책임을 부여하려는 알미니안 바람이 신대륙에 불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18세기 초엽 점차 근대화하는 환경 속에서 신대륙 이주자들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예무역은 가장 어두운 청교도 운동의 단면을 대변한다. 영국과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늘어나 노동력이 부족하자 이것을 악용하는 사례가 18세기에 시작되었다. 그것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붙잡아다 신대륙에 파는 소위 노예무역이었다. 1562년 존 호킨스에 의해 엘리자베스 치하에서 시작되었던 이 노예무역이 18세기에 신대륙에서 번창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갔던 이들에 의해 참으로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던 노예들의 선교를 위해 엘리아스 누, 카튼 마터 등을 세우셔서 이들을 통해 백인들의 죄악 된 모습을 각성시키셨다. 이 노예 문제가 지난 수세기 동안 미국교회의 일치를 저해한 가장 큰 요인이며 교회 분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천년왕국 건설이라는 거룩한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가장 비인간적인 노예무역이 이 시대에 성행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1555년 아우그스부르그 종교화의부터 시경의 영감론의 정립, 그리고 신학의 교리적 배열 등은 정통주의가 이룩한 가장 큰 업적이었다. 그러나 정통주의의 이런 객관적인 권위가 후대에 가면서 생활과 동떨어지게 되었고, 결국 이에 대해 두 가지 반응이 대두되었는데, 첫째가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이다. 합리주의는 17세기와 18세기 프랑스와 영국에서 위력을 떨쳤고 곧 이어 독일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두 번째 반응은 경건주의 운동이다. 합리주의와 경건주의는 시대적인 순서로 볼 때 거의 동시에 일어난 운동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두 운동은 국가마다 시대적 순서를 달리한다. 영국에서는 합리주의가 경건주의보다 앞서 일어난 반면 독일에서는 경건주의 운동이 먼저 일어나고 뒤에 합리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때문에 이 둘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다루어야 하는가는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유럽의 전체적인 국면과 칸트 이후의 사조의 변천을 고려할 때 합리주의를 먼저 다루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개신교 정통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근대교회사를 특징 지우는 이성과 자율의 계몽주의가 영국과 유럽에서 태동되었다. 생명력을 상실한 경직된 교리주의에 식상한데다 1세기 동안의 종교 전쟁으로 종교일반에 대해 싫증을 느껴 반정통주의 움직임이 소시니안이나 합리주의, 계몽주의, 자연신론, 니올로기, 울프주의와 같은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계몽주의가 단순히 개신교 정통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태동된 것은 아니다. 자연과학과 철학의 발달로 계몽주의 발흥을 촉진시켰다. 자연과학의 발달과 철학 사조의 발달로 전통적인 우주관과 세계관이 붕괴되고 새로운 우주관과 세계관이 지배하게 되었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의 사고를 지배해 온 천동설이 무너지고 지동설이 새로운 우주관으로 등장하면서 신율적인 인간의 사고가 자율적이고 인본적인 사고로 대치되었다. 종교적 관용이 대체로 허용되었던 화란에서 먼저 발흥한 계몽주의가 곧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 후 계몽주의가 극단적으로 흐르자 계몽주의에 대한 반동이 낭만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나 계몽주의는 새 종교적 당면 관심사를 초자연적인 면에서 도덕적인 면으로 바꾸었다. 또한 계몽주의 시대에는 르네상스와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아 개인주의 사상이 배태되고 인간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인간의 자율에 대한 강조는 정치적인 자율을 요구하게 되고, 이것이 급기야는 불란서 혁명으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진보주의 신학이 인본주의 토양 속에서 태동되었다. 리빙스톤이 지적한 것처럼, 자율적 이성과 양심에 대한 호소, 정치적. 경제적 불의에 대한 불만족, 낙관주의 인생론, 자연과 보편에 대한 지나친 의존 그리고 신앙의 관용 및 반교리주의 현상 이 모두는 중세 문명과 개신교 정통주의와의 단절을 반영하는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는 결국 그 수명을 다하게 되었고, 낭만주의로 대변되는 후계몽주의의 등장으로 자연, 인간, 신에 대한 계몽주의의 이해는 수정과 보완을 필요로 했다.개신교 정통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계몽주의와 합리주의가 태동되었고 개신교 정통주의는 또 하나의 반동을 태동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진행된 독일의 경건주의 운동이다. 폭넓은 의미에서 미국의 대각성운동 그리고 영국의 웨슬리 감리교 부흥운동은 18세기 경건주의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각성운동이 먼저 발흥하여 영국에 영향을 미쳐 감리교 부흥운동이 태동되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두 지역의 각성운동과 부흥운동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륙의 경건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았고, 영국의 감리교 부흥운동과 미국의 각성운동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보완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륙의 경건주의 운동과 영미의 부흥운동이 동시대에 발흥했던 대륙의 계몽주의, 합리주의, 자연신론으로 인한 이성과 자율의 기독교에 영적 생명력을 불어넣어 사회 개혁과 선교를 촉진시켰다는 데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경건주의는 이론적인 지성주의를 배격하고 개인적인 경험의 산 신앙을 강조하였고 성경의 기본적인 교리를 강조하였으며 제도적인 국가 교회 속해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반동으로 진젠돌프의 모라비안과 같은 대륙의 경건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아 발흥한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영국의 부흥운동은 대륙의 경건주의 운동과 무관하지 않다. 독일 경건주의운동, 모라비안 형제단, 그리고 초기 감리교 운동 모두는 기성 교회 안에서 일어난 영적 각성운동이었다. 웨슬리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그의 사상을 형성한 역사적 상황과 배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웨슬리의 생애는 일관된 사상 속에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뚜렷한 발전단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웨슬리의 사상은 항상 통일성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변천과 변화를 거치면서 자신의 신학을 형성해 나갔다. 따라서 우리는 웨슬리의 사상을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해하고 조명해야 할 것이다. 웨슬리의 사상의 핵심은 교리와 삶이 이원론적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며 둘은 절대적인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은 신앙 속에서 체험되어야 하며, 그것을 통해 신학으로서 가치를 지니게 된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는 전형적인 감리교 모토가 감리교 창시자 웨슬리의 생애 속에서 일관되게 흐리고 있다. 이런 경험론적인 신앙 이해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후대 한국의 감리교 신학 특히 정경옥의 사상 속에서 우리는 웨슬리의 전형적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이 형이상학적으로나 학문적으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인간의 실존 속에서 경험론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경험론적인 신앙이해가 주관주의적 신앙을 태동시키기 쉽고 종교의 권위를 성경과 같은 계시에 두기보다는 인간의 주관적인 경험에 위치시킨 나머지 슐라이어마허 같은 현대 신학자들에게 찾아 볼 수 있는 낭만주의 신학이나 종교적 권위를 신비적인 경험에 위치시키는 중세신비주의와 같은 부정적인 모습으로 흐르기 쉽다는 점이다. 또한 하나님의 은총을 단순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사역 속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인간의 책임과 의무 속에서 이해한 나머지 전통적인 은총론을
    인문/어학| 2023.03.03| 6페이지| 2,000원| 조회(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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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바울사도가 쓴 러브레터 요약 및 서평
    바울사도가 쓴 러브레터 요약 및 서평
    바울 사도가 쓴 러브레터요약 및 서평바울서신 이해하기바울의 편지들은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한 상황에서 쓰인 서신들이다. 그는 ‘편지’라는 세계 속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감정을 교감하며, 가슴으로 호소하고, 간절하게 권면하며, 설득하고, 경고하는 일까지 하였다. 왜 그렇게 했을까?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맺어진 형제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의 모든 편지는 ‘러브레터’라고 할 수 있다.바울은 독자들이 처한 특정한 상황과 편지를 쓰고자 하는 목적에 맞춰 편지 형식을 크게 변경시켰다. 다양한 문체만 아니라 여러 문학적 기교들이 바울의 편지들 속에 채용된다. 사도 바울은 무엇보다도 복음 전도자이기 때문에 복음 설교자로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며 잘못을 꾸짖고 바른 삶의 태도를 취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그리스 로마 시대의 수사학 기법들을 자주 끌어다 쓴다. 바울 사도는 독자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함으로써 상호 교감을 얻고자 했다.바울의 주요 편지들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 바울이 다메섹에서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후 가장 이른 시기에 저술된 편지는 갈라디아서다. 이 편지는 바울의 초기 신학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서신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와 통일이란 중심주제들을 해설한다. 그가 이런 주제로 편지를 쓰게 된 것은 갈라디아 교회 내에 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떠난 사이에 어떤 유대주의적 거짓 기독교인들이 들어와 바울을 공격하고 그의 복음을 무너뜨리려고 선동하는 바람에 많은 갈라디아의 이방 기독교인들이 바울을 버리고 그들의 거짓 교훈을 따르게 되는 위기에 빠진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저술한 목적은 구원에 있어서 할례와 율법의 중심성을 강조하던 유대주의 선동꾼들의 주장을 논박하고 갈라디아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신뢰하는 믿음이 어떻게 그들의 구원에 유일 충족한 조건이 되는지를 밝히는 데 있다.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편지 : 데 문제, 불신 법정 소송의 문제, 도덕 폐기론의 문제, 결혼과 성적 관계의 문제, 우상 제물의 문제, 교회 내의 여자 문제, 성례에 관한 문제, 영적 은사들의 문제,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문제 등을 포함한다. 왜 이토록 수많은 비윤리적이고 교리적인 문제들이 발생했을까? 바울은 첫째 편지 1-2장에서 모든 문제의 근원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저버리고 고린도인들이 세상의 지혜를 받아들인 데 있다고 밝힌다.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교회는 진정한 교회일 수 없고, 그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신자는 진정한 신자일 수 없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야말로 교회가 교회답게 되는 정체성의 참된 표준이다.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 바울은 로마서의 전반부에서 인류의 보편적 죄악상을 밝히고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믿음이라는 공통근거 위에서 동일하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음을 천명한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관계없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있다면, 그들이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의지하는 믿음 뿐이다. 이신칭의 복음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오직 믿음이라는 공통근거 위에서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고 선언하기 때문에, 믿음 이외에 그들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다른 요소는 없다. 뿐만 아니라 이신칭의 복음은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나가 선교할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을 제공한 메시지였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 동등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로마의 성도들은 그들의 인종적, 사회적, 성적인 배경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환영해야” 한다. 바울은 새 언약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적 의무를 다룬다. 바울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국가에 대해, 그리고 공동체 내의 약한 형제들에 대해 윤리적 의무가 있음을 말한다.바울은 옛 언약 시대에 하나님 백성의 신분과 삶을 특징짓는 것들은 육신의 할례, 율법, 제사 의식 등이었다. 이 가졌던 부패한 생각과 미신적 관습들은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일 때 깨끗이 청산했어야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들은 회심한지 오래지 않아 인간 유전에 기초해서 참 지식을 준다는 어떤 ‘철학’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영지주의 성향을 지닌 유대교 경건의 금욕적이며 신비적인 형태를 띤 철학이었다. 대부분의 골로새 기독교인들은 이런 이교적 분위기에 깊이 젖어 있었던 자들이다. 회심했을 때 이전의 이교적 사고와 행습들을 깨끗이 청산했어야 했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정사와 권세들’의 영향을 너무 많이 신뢰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분을 크게 오해하고 말았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보이지 않는 세계에 거주하는 ‘정사와 권세들’ 중의 하나로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그들 중 가장 탁월한 존재로 여긴 것도 아니었다. 이런 혼합주의적인 사고방식들이 골로새 교회에 침투했다면 바울은 시급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그들에게 바로 가르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골로새서는 악령들을 극복하고 온갖 신령한 복들을 누릴 수 있기 위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올리심을 받아 만유를 다스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와 교제하는 삶을 살도록 독려하려고 기록된 편지라고 할 수 있다.빌레몬에게 보낸 편지 : 빌레몬서는 바울의 편지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편지다. 교회나 교회 내의 어떤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라 빌레몬이라는 특정한 개인에게 보낸 아주 사적인 편지이다. 빌레몬서가 현대 사회에 지니는 중요성은 도망친 노예를 빌레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된 자”로 영접하라는 요청에서 찾을 수 있다. 노예제도라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악이 존재하는 것을 알면서도 바울이나 다른 신약 저자들도 노예해방을 위한 어떤 혁명적인 제안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바울을 비롯한 다른 신약 저자들은 노예제도 내에서 어떻게 인간관계를 변화시키느냐 하는 문제에 더 초점을 두었다. 신학적인 원칙에 따라서 바울은 대담하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노예았으나 이제 이 모든 타락한 생활을 청산해야 했다. 그들은 그들 신앙의 유대적 뿌리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심각한 갈등과 분쟁이 발생했을 것이다. 에베소서는 따라서 실제의 편지이다. 그것은 특정한 교회 위기를 다루지는 않지만 아시아 지역의 독자들이 공유한 다양한 필요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목회적인 방식으로 저술된 편지라고 할 수 있다.바울의 목회서신들디모데에게 보낸 첫째 편지 : 디모데전서의 저술 목적은 에베소와 그레데 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의 가르침과 연관되어 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쓰게 된 일차적인 목적은 따라서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거짓 교훈을 반박하는 것이었다. 거짓 교훈은 공동체의 교제를 무너뜨리고 개인들과 가정들은 큰 혼란에 빠뜨렸다. 그것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거짓교사들의 그릇된 지식체계가 바른 교훈을 거부하게 만듦으로써 결국 참된 경건까지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와 족보 이야기, 율법에 기초한 사변적 논쟁들, 금욕적인 요구들은 모두 거짓교사들이 선전했던 지식체계에 기초한 것이지만, 그들의 그릇된 망령된 허언과 변론과 다툼을 일으킬 뿐 사람들을 변화시켜 새로운 삶을 살도록 만들 능력이 없었다. 그것은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더 나아가도록” 만들 뿐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은 바른 교훈에 상응하는 삶을 영위함으로써 그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가 건강해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선한 평판을 얻음으로써 보다 넓은 선교의 문이 열리기를 바랐다. 디모데에게 위탁된 것은 사도적 가르침 전체 또는 복음의 말씀이다. 그가 사도적 교훈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거짓교사들의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해야 한다.디도에게 보낸 편지 : 디도는 바울의 수많은 선교여행에 동참한 충실한 동역자였으며 그가 위임한 사명자들을 수행하기 위해 교회들에 파견된 바울의 신실한 대리자였다. 바울이 어디에서 디도서를 썼는지 분명치는 않다. 대부분의 학자는 그가 디모데전서와 동일한 시기에 이 편지를 썼을며, 이미 전제가 부어진 것처럼 떠날 시각이 다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두 편지들 간에는 여러 공통점이 존재한다. 첫째 편지에서 이단적인 가르침에 대해 경고했지만 둘째 편지를 쓸 무렵에 에베소 교회의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바울은 아마도 자신이 떠나기 전에 디모데와 같은 신실한 동역자를 불러 개인적으로 당부할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두 번째 편지는 보통 바울의 ‘마지막 유언서’, 또는 그의 ‘고별 담화’로 간주 되곤 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기보다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 그의 은사들을 잘 활용할 것을 권면했고 자신을 사역의 모델로 제시했다. 둘째 편지의 저술 목적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사역의 본이 되는 삶을 살라고 도전하려는 것이었다.서평이 책은 이한수 교수님이 “이방인들의 구원과 삶을 위해 바울 사도가 쓴 러브레터“라는 제목으로 집필한 책이다. 이 책은 71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가지고 바울 사도가 쓴 서신들을 가지고 바울서신 이해하기를 통해 1세기의 편지들, 1세기의 환경, 바울 사도의 생애와 함께 1부 바울의 주요 편지들에서는 갈라디아인, 데살로니가인, 고린도인들, 로마인들에게 쓴 편지들을 다룬다. 2부에는 바울의 옥중서신들로 기록하는데 빌립보인들, 골로새인들, 빌레몬,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정리한다. 이어 3부에서는 바울의 목회서신들 곧 디모데,디도에게 보낸 서신들로 구성되어 있다.긍정적인 면은 본서는 바울서신의 이해를 돕는 유용한 해설서이다. 바울서신 각 책의 연구를 위한 교과서가 될 것이다.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에 충실하며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한 철저한 주석가적 철저성과 학문적인 개방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특히 평신도와 신학생 그리고 특히 목회 현장, 선교지 현장에서 성경 해석에 고민을 가진 자에게 귀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해석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해석에 따라 하나님의 뜻이 다르게 들릴 수 있기에 바른 해석은 참으로 중요하다. 이에 이 책은 성경에 충실하여 하나님의 .
    독후감/창작| 2023.02.22| 7페이지| 1,500원| 조회(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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