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 서평금융경제학 수업을 듣기 전 금융에 관련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일자무식이었다. 교수님께서 금융경제학 수업에서는 깊은 내용을 다루지 않고 전반적인 것으로 다루는 시간이 되어 유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허나 나에게 있어서는 금융경제학 수업 시간과 ‘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를 읽으며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금융경제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물론 경제와 금융 분야의 범위가 너무 넓고 복합적으로 작용되는 부분이 많아서 전문가 수준으로 알게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금융경제학적 상식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먼저 통화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통화의 시발점은 물물교환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동의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에서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로 거래 당사자끼리 원하는 것이 일치해야 거래가 이루어진다. 다음으로는 거래가 성립되지 않을 경우 본인이 직접 생산을 통한 자급자족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통화라는 측정단위가 없어 거래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통해 가치를 측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운반이 용이하고 쉽게 가치를 잃어버리는 형태를 지는 것에서 금속 물질을 화폐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거래마다 무게를 측정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존재하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게 된다. 그리하여 주조화폐가 생겨났지만 이 또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에 태환 화폐를 만들게 되었다. 순도가 일정한 주조화폐로 바꿀 수 있는 태환화폐로 넘어가면서 영국에서는 금과 은을 다루는 세공업자들이 예탁증서를 발행하여 현재 지폐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출현하였으며 이후 예탁증서는 은행권으로 넘어가 유통되었다. 이후 은행 신용의 차이에 따른 문제를 법화의 등장으로 해결하였다. 하지만 법화의 등장으로 국가에서 돈을 마구잡이식으로 찍어내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현재시대에서는 중앙은행에서 관리하는 불환지폐를 사용하고 있다.통화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인간은 긴 역사를 통해 문제점을 해결 보완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현재의 모습에 다다르게 되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지금에서 보면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물물교환의 형태에서부터 신뢰를 가지고 있는 통화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추가적으로 현재의 통화모습도 미래의 통화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에 광풍처럼 몰아친 비트코인 투자 혹은 투기를 보자. 많은 논란을 낳고 문제점이 지적되었지만 금융경제학에서 중요한 부분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통화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정확할 수는 없으며 정답은 절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역사를 알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있어 조금이나마 정확도를 높이며 미래를 예측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다음으로 은행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금융을 주도하는 기관이 중앙은행, 상업은행, 투자은행, 펀드라고 정의하고 금융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이 중에서 투자은행에 관한 설명이 눈에 띄었다. 개개인들의 자금을 운용 수익상출을 하고 개개인은 알기 힘든 정보 제공을 통해 수익을 창출 거래 수수료를 얻는 곳이라는 설명을 통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삼성증권, 미래에셋 등 증권회사를 떠올리게 되었다. 추가적으로 상업은행은 돈을 빌려주는 대부자는 돈을 빌리는 차입자에게 리스크에 따른 이자를 부과한다. 이때 차입자의 신용에 따라 다른 이자를 부과하게 된다. 신용이 낮을수록 높은 이자를 부과하고 신용이 높을수록 적은 이자를 부과한다.이 부분을 보며 국내 투자은행이 과연 이러한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오히려 개인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흘리고 그로 인해 자본이 적은 개개인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이 들었다. 투자인행들은 거래에 따른 수수료가 있기 때문에 실적을 올리면 그만이라는 생각과 자본이 많은 기업, 기관들이 수익을 창출하는 사회이지 않나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주식을 하는 것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말이 떠도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다음으로 상업은행에 대한 생각이다.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 높은 이자를 부과하는 것은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신용이 낮은 사람들의 경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높은 이자를 부과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는 있으나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 시키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정치적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은행의 경우 수익성과 안정성, 유동성과 공공성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다. 이 4가지 사이에 상충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어떤 것을 더 높게 추구해야 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것에 대한 여러 생각을 낳게 하는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이 부분은 경제학적이 아닌 정치학적인 문제라고 생각이 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개인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서지학개론 - 의궤] 2018.04.03의궤Ⅰ. 의궤란 무엇인가□ 의궤의 뜻─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이라는 뜻으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을 의미─ 의궤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의식과 행사를 개최한 후 그 전 과정을 기록─ 의궤에는 필요에 따라 그림을 함께 그려 넣어 이해를 돕기도 함─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혼례 · 장례 · 제사 · 잔치 등 의례나 행사 · 사업을 시행할 때 임시기구인 도감을 설치하여 거행□ 의궤의 내용─ 국왕에게 아뢴 말과 국왕의 명령, 공문서, 담당자 및 장인의 명단, 제작된 물품, 비용 급료 지급 등을 기록─ 악기, 의복, 건물, 기계 도구 등의 그림과 의식의 행렬도인 반차도가 들어있음─ 왕실 문화와 함께 행사를 준비하는 장인들의 이름과 역할, 연장이나 재료의 우리말 이름 등을 수록함Ⅱ. 의궤의 역사□ 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 현재 남아있는 의궤는 모두 17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 그 이전의 것은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모두 소실 된 것으로 추정─ 최고(最古)의 의괴는 1601년(선조34)에 제작된 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 선조의 첫 번째 왕비인 의인왕후의 장례과정을 담은 것□ 원행을묘정리의궤─ 의궤는 17세기 이후 꾸준히 제작되었으며 17세기 후반 정형화된 체계를 갖추게 됨─ 그 후 새롭게 활자본 의궤가 등장─ 최초의 활자본 의궤는 1795년(정조19) 제작된 원행을묘정리의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을 참배하고 화성 행궁에서 행차하여 어머니 회갑잔치를 치룬 과정을 기록한 책─ 활자본 제작이유는 여러 부를 인쇄하여 유포함으로써 국왕과 왕실의 위엄을 널리 알리려는 정치적인 의도Ⅲ. 서지정보□ 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 크기: 세로 41.55cm 가로 35.5cm─ 판본: 필사본─ 수량: 1책 154장─ 재질: 표지 - 종이 본문 - 저주지─ 표기문자: 한자, 이두─ 내용분류: 국왕/왕실-의례-의궤─ 주제: 흉례/빈전혼전/왕실일생/상장례─ 왕대분류: 선조/34□ 고종대례의궤─ 크기: 세로 44.2cm 가로 31.8cm─ 판본: 필사본─ 수량: 1책 179장─ 재질: 표지 - 홍포 본문 - 저주지─ 표기문자: 한자, 이두─ 내용분류: 국왕/왕실-의례-의궤─ 주제: 가례/대례/왕실일생/즉위식─ 왕대분류: 광무/02Ⅳ. 의궤 제작과 구성요소□ 의궤의 제작─ ‘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먼저 설치후 제작□ 구성요소─ 의궤는 행사의 과정을 날짜에 따라 기록한 전교 (국왕의 지시사항)와, 계사, 이문 등 각종 공문서를 비롯하여 업무의 분장, 담당자의 명단, 동원된 인원, 소요된 물품, 경비의 지출, 유공자 포상 등에 관한 내용이 기록─ 필요한 경우 행사의 전 과정을 보여주는 반차도나 건물 및 기계의 설계도 등을 첨부하여 당시 행사의 구체적인 절차 또는 건축물의 모습을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표현─ 행사의 내용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행사에 참여한 관리와 장인들의 실명을 기록하여 물품의 제작이나공사에 하자가 발생할 경우에 그 책임소재를 명확히 밝히는 근거가 될 수 있음V. 왕실&국가행사 의궤□ 왕실의 행사와 의궤─ : 왕실에 왕자가 탄생하면 왕자의 태를 보관할 장소를 결정하고 현지에 태실을 만들어 정중하게 안장하는 과정을 기록한 것─ : 왕실의 혼인이 있을 때 그 과정을 기록한 것─ : 국왕이나 왕비가 사망했을 때 작성하는 것□ 국가행사와 의궤─ 와 : 종묘와 사직의 시설 증축, 제례절차, 제사에 사용되는 각종 물건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보고서─ : 국왕이 나가 시범적으로 농사를 짓는 과정을 기록한 것Ⅵ. 외규장각 의궤□ 외규장각 의궤 속 도서들─ : 유일본이자 가장 오래된 외규장각의궤로 인조때 대비를 위해 올린 잔치의 기록─ : 수원화성 성곽을 축조한 내용이 기록된 의궤⇒ 기존 국내 소장의궤의 대부분이 분상용으로 자료적 한계가 있었으나 외규장각 의궤가 들어옴으로 자료적 한계 극복 & 시기별 어람용 의궤를 통해 시기별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과 앞으로의 의궤 연구 및 활용에 있어 중요한 발판 마련□ 외규장각 의궤 반환과정─ 규장각에 보관하던 어람용의궤가 1782년 (정조6년)에 강화도 외규장각으로 옮겨져 보다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보관─ 1886년 (고종23년) 병인양요때 프랑스 군대의 방화로 5000여 권 이상의 책이 소실되었고, 의궤를 비롯한 304여 도서가 약탈─ 1975년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던 故박병선박사에 의해 발견되어 2011년 환수
노인복지 정리1강신 인류의 출현 : 뉴 실버 시대21세기는 고령화의 시대핫에이지 6R 육체의 부활, 원기 회복 영적재생, 자아의 재발견, 회춘, 인생의 방향수정.육체의 부활, 원기 회복, 영적재생, 자아의 재발견, 회춘, 인생의 방향수정.육 원 영 자 회 인핫에이지 공통점 내면만족 추구 은퇴 후 원하는 일 하면서 여가 즐기기 정신적 젊음 유지기존세대 완고, 보수 핫에이지 합리성, 유연성노인을 위한 유엔원칙: 보호, 자아실현, 참여, 존엄, 독립보호, 자아실현, 참여, 존엄, 독립,보 자 참 존 독우리나라 대다수 노인들은 오랜 가족중심적 노인정책으로 노후준비가 미흡하고 특히 고령 저소득층의 경우 경제 건강 역할 고독 등 어려움을 경험.아직 제도적 장치 미흡노년기를 바라보는 양면성 - 관점에 따라 달라짐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노인의 개념적 정의생물학적 - 퇴화기 심리학적 - 보수, 온건, 의존, 경직성향으로 변화되고 있는 사람. 사회적 - 지위와 역할이 상실 된 사람달력상의 연령 - 65세 행정학적 편의성기능적 연령 - 개개인의 기능 수준 고려 편차가 크고 구체적인 척도를 만들기 어려움.사회적 역할 상실 - 퇴직 후 그러나 퇴직의 연령이 다 다르고 퇴직 후에도 일을 할 수 있음개인의 자각 - 65~69세 24% 70~74세 51%60~69세 연소노인, 70~75세 중고령 노인, 75~84세 고령노인, 85세이상 초고령노인2강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노인의 어려움이 생김변화 결과: 가족의 부양기능 약화, 공적부양으로의 이행, 수면영장, 여가와 고독, 역할상실, 생활보장과 생활불안 사이의 모순가족의 부양기능 약화, 공적부양으로의 이행, 수명연장, 여가와 고독, 역할 상실, 생활보장과 생활불안 사이의 모순농경사회에서는 교환이론에 따라 젊은 세대에 전달 할 수 있는 교환자원을 소유하고 있었음.7~14% 고령화 사회 14~20% 고령사회 20%~ 초고령사회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엄청 빠름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가는데 18년2016년을 정점으로 생산가능인구 감소2018년을 정점으로 총인구 감소경제활동인구의 저출산 영향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문제가 발생.노후 보장을 위한 예산 지출 문제로 세대간의 갈등을 초래독거노인 수 증가3강1830년대 이전에는 과학이 아닌 신화적인 관심에서 장수를 연구1830년대 Que 벨지움 인간의 신체적 특성을 연령별로 조사 최초의 노년학자노년학은 인간의 노화의 원인과 결과에 관하여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매우 광범위하고 종합적인 학문노인복지학은 산업화로 노인문제가 대두되면서 노인문제 해결을 강구하는 실천적인 학문노인복지의 개념: 노인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면서 노인의 심신건강 유지와 생활안정을 위한 노인 생활의 보장 및 복지에 관한 서비스4강분리이론: 노인의 사회적 분리는 불가피 순기능적이다 주장. 비판 노인은 사회 분리를 원하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성취감과 행복감, 만족감을 느낀다활동이론: 불가피한 신체적인 변화를 제외하고 노년기는 중년기와 같이 일을 하고 싶어한다. 비판 모든 노인이 그럴까?하위문화이론: 대인관계에서 창출되는 자아개념이 중요하다. 비판 노인이 강력한 집단의식을 공유하는가,현대화이론: 사회변화의 맥락에서 보고있음 노인의 지위가 향상 될 것으로 봄연령층화이론 연령계층을 사회계층으로 보는 것이 적절한가?통합적 관점사회심리모형 교환이론 교환 질적인 측면 간과사회심리적 모델5강생물학적 노화 인간은 25세 전후로 체세포의 쇠퇴기에 진입대뇌의 변화 가장먼저 노화가 시작되는 곳. 40세 이후부터 점차 퇴화생리적 변화 신체기관이 노화소모이론: 오래 쓰면 퇴화된다.생물시계이론: 생물시계 교란요인이 노화를 촉진한다.자기 면역이론: 면역 감시기구의 역할이 노화노폐물 축적이론단일기관이론: 어떤 장기가 먼저 침해되고 그 원인으로 노화가 시작됨.교차선이론내분비이론뇌의 노화설환경적 관점: 스트레스 이론, 생활대사율 이론 유리기이론6강심리적 특성 급격한 지능저하 없음. 새로운 지식 습득 가능, 지혜라는 정신능력 향상감각기관 저하지각능력 저하지적능력 연령증가에 따른 지능감소에 대한 과학적 근거 없음.기억력 저하학습능력 가르칠 수 있다. 과제와 동기가 명확하고 기간이 충분한 경우 노인층의 학습효과가 더 크다7강노인의 적응 유형성숙형 - 현실직시, 원만한적응방어형 - 노화에 대한 불안, 젊음 유지를 위해 노력은둔형 - 세상일에서 은퇴, 수동적인 생활 선택분노형 - 늙음을 수용 못하고 세상을 원망자학형 - 삶에대한 후회로 우울, 자학, 자살성 방 은 분 자에릭슨 발달과업이론 발달과업 긍정적인 자아통합 실패 인생무상 절망 비탄으로 이어짐펙 발달과업헤비거스트 발달과업 적응레빈슨의 인생구조 인생주기의 보편성 여가 우정 종교가 삶의 핵심부로 이동.정체감 위기 이론 - 퇴직으로 자아지지 기반을 잃어버리게 됨.정체감 유지이론 - 퇴직 후 다양한 역할에 참여 하여 정체감을 유지 할 수 있음.8강우리나라 노인복지법의 제정 - 1981년 최초로 제정80년대 노인복지 기반조성단계 89년 노령수당 노인복지시설 다양화90년대 정비단계 노인복지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 97년 경로연금으로 변경00년대 성숙단계 07 기초노령연금제도 도입 14년 기초 연금으로 변경 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실시노인복지법은 사회복지서비스 법에 속함소득보장 의료보장 주거보장까지 포함선 가정보호, 후 사회보장 - 노인복지에 대한 수동적인 입장을 취함.입소시설노인주거복지시설 - 양로시설 노인생활 공동가정 노인복지주택노인의료복지시설 - 노인요양시설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노인전문병원이용시설노인여가복지시설 - 방문요양서비스 주야간 보호 서비스 단기보호 서비스 방문목욕서비스 등재가노인복지시설 - 노인복지회관 경로당 노인교실 노인휴양소9강 사례임 버려10강노년기에는 근로소득이 줄어듦.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짐. 노년기의 가장 큰 경제적 노후 준비는 일자리.일을 통해 경제적 심리적 윤리적으로 효과를 얻음국가생산성 제고와 사회보장비용 절감효과.생산가능연령감소에 따른 대안 - 여성노동력, 고령노동력, 적극적 이민정책노인의 빈곤에 대한 사회적 대책소득보장방식 - 직접적 소득보장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수당. 간접적 소득보장 경로우대제도, 고용증진, 각종세제감면제도 등직접적 소득보장제도 사회보험, 공공부조 - 기초연금, 사회수당, 개인연금간접적 소득보장제도 비용할인 취업증진 생업지원 세재혜택11강국민연금 73년 국민복지연금법 제정 but 석유파동으로 무기한 연기86년 국민연금법 제정88 국민연금제도 실시.99 전국민 연금 실시14년 기초연금 지급개시급여수준 40년 가입 평균소득자 기준 소득대체율 40%노령연금의 경우 60세 10년이상 가입.노령연금은 국민연금 가입자가 일정기간 가입하고 노령연령에 도달하여 소득활동에 종사하지 못할 경우, 생활 안정과 복지증진을 위하여 지급되는 급여. 65세부터 지급.완전 노령연금 20년이상 가입감액 노령연금 10년이상 20년미만 10년의 경우 50%재직자 노령연금 - 65세 이전에 소득이 있는 업무에 종사하는 경우 60세인 경우 50%조기 노령연금 - 가입기간 10년이상 55세 이상인자가 60세 도달 전에 청구하는 경우 50~70%분할 연금 - 혼인기간이 5년이상인 노령연금 수급권자가 이혼할 경우 1/2장애 연금유족 연금 - 40%반환 일시금 - 10년미만인 사람이 사망할 경우고갈할 것으로 예상 됨. 연금 급여 수준의 햐향 조정과 보험료를 단계적으로 상향조정해야함.12강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공공부조 형태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종합적으로 자활자립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지원하는 것.2000년부터 시행.최저생계비 이하에서 중위소득 기준으로 변경되었고 개별 급여로 다층화, 부양의무자 기준을 대폭 완화.생계급여 중위소득 30% 이하의료급여 중위소득 40%주거급여 중위소득 43%교육급여 쭝위소득 50%해산급여 장제급여 자활급여10년부터 수급자 수 감소 추세경로연금 -> 기초노령연금 -> 기초연금 14년자산조사를 하므로 사회수당이 아님.저소득층까지 포함일반 조세에 의한 무각출 방식65세 이상 09년 기초노령연금 수급 전체 노인 500만명 중 70%국민연금을 받지 않고 있거나 국민연금 월 급여액이 150%이하인자부부 감액 20%감액소득역전 방지 1인수급 2만원 부부 2인 수급 4만원 감액13강우리나라 노인들의 80%가 생계비 마련을 위해 경제 활동에 참여 but 32%가 건강문제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없음.65세 이상 노인의 88%가 한 가지 이상 만성질환 보유.우리나라 5대 사망원인 암. 뇌혈관, 심장. 당뇨, 만성하기도질환노인질병의 특징. 생리적 노화현상과 질병을 구분하기 어려움. 오진하기가 쉬움. 그리하여 약물 부작용 경험이 많은편. 치아문제. 합병증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음.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1. 한국은 왜 살기 어려운 나라인가?한국이 살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이유 - 행복지수 그 중요 원인 3가지: 토지, 노동, 복지.□ 토지순 자산을 국민소득으로 나눈 값: 피케티계수가 대부분의 나라 6을 넘지 않는다. 한국은 7이 넘는 숫자가 나왔다. 이는 과거 19세기 말 프랑스에서만 발견되었는데 불평등이 사상 최고였을 때이다. 피케티 계수가 높은 것은 주로 부동산 가격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비싼 땅값은 높은 피케티 계수를 낳고, 높은 피케티계수는 높은 자본소득분배율, 그리고 높은 불평등을 낳는다. 땅과 집을 가진 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재산이 불어나는데 그 행렬에 끼지 못한 사람들은 살아가기 어렵고, 공장을 경영하기도 어려우며, 장사하기도 어렵다. 매달 비싼 임대료를 내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다. 최근에는 전세대란으로 집 없는 서민의 고통은 더 커지고 있다. 땅값 인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토지 보유세 강화. 역대 정부는 기득권 집단의 반발이 두려워 그것을 실천 못하였다.□ 노동링컨 - 노동은 자본에 선행하며 독립적이다. 자본은 노동의 아들이며, 노동 없이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노동이 자본보다 우위이다. 그러나 한국은 자본이 항상 노동보다 우위에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은 노동에 대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증거 임금의 정체현상, 비정규직의 대폭 증가, 노동조합의 세력 약화, 자본수익률과 이윤의 고공 행진, 노동 분배율이 60%에서 20년 동안 고정 선진국에서는 상한선이 80%정도. 임금패리티(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노동자의 상대적 처우를 나타내는 지표) 7~80년대 대체로 100부근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98년을 고비로 급격한 하강 추세를 보여 최근에는 83까지 떨어져 버렸다. 과거 100을 기준으로 한다면 노동자들의 상대적 처지가 17% 후퇴함을 의미. 노동자 내부의 양극화 현상 비정규직 비율 50% 정도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하는 일은 정규직이랑 별반 차이가 없지만 보수는 60%를 받고 고 있는 세 가지 문제에 많이 가진 자의 눈치를 보며 정부는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까지 역대 정부에서 잡지 못한 세 가지의 문제가 우리나라를 좀먹고 있는 상황인데 나라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걱정해야할 엘리트층이 자기 자리보존에만 급급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으니 이러한 지경에 다다랐다고 생각합니다.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뒷짐을 지고 있지 말고 현재 할 수 있는 방법들을 통하여 가장 중요한 3가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10. 청년 취업과 청년들의 대응90년대 유럽 경제의 최대 문제는 0%에 가까운 성장률이었고 2000년대에는 청년 실업 문제가 최대의 문제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는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어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의 문제가 되었다. 시장 만능주의와 경쟁, 효율성, 중국 경제의 부상 속에서 부정적인 효과는 청년들에게 집중적으로 날아왔다. 작년 청년 실업률은 9.8%에 달하고 체감 실업률은 두 배에 가깝다. 산업구조 자체가 과거 제조업 중심으로부터 첨단, 정보, 지식 중심 산업으로 바뀌면서, 그동안 많은 고용을 담당했던 제조업이 쇠퇴하고 있다. 또한 중국경제의 성장으로 전통적인 산업의 축소가 가속화 되었다.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과 일본 청년층의 의식과 사회 경제적 조건에 대하여 살펴보면 한국 청년들은 부당하고 암울한 승자 독식 사회구조의 피해지이면서 동시에 그런 사회를 유지하는데 동조하고 있는 가해자라고 저자는 생각한다. 경쟁, 시장질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모든 것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경쟁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일본의 청년들은 고용기회는 좁아 졌지만 여전히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고 입시 경쟁, 취업 경쟁은 훨씬 느슨하고 덜 치열하다. 대기업 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 생 간의 임금 격차는 거의 없으며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널리 확산돼 있어 꼭 대학 ■ 청년들의 현실과 대응을 알기위해 이 부분을 심도 있게 살펴보았습니다. 저 또한 한국이 과거부터 유지해오던 산업구조가 한계에 부딪혔다고 생각합니다. 일본과 비교하여 인건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사람들의 소비능력을 향상시켜 내수를 진작시키는 방식으로 기업들의 경영방식의 전환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단기적으로 비효율적이라서 손해처럼 보일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결국에는 모두가 살아남는 길이기 때문에 충분히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의 응집을 통하여 정치적인 요구를 하여 해결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부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부분은 요약내용에서 나와 있지만 부정적인 부분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한국의 정치적인 현실이 선거철에만 약자의 이야기를 듣고 모든 것을 해줄 것처럼 말을 합니다. 하지만 공약이행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정치적인 요구를 통해 해결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요구를 통해서 긍정적으로 바뀌는 부분이 없지는 않겠으나 기득권 세력의 방패역할을 하고 있는 국회나 정부가 과연 해결을 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11. 노동시장 개혁 없이 불평등 해결 없다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심각한 불평등 문제의 핵심 되는 원인들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노동 양극화이다. 1987년 이후 기업 규모별 임금 격차는 지속적으로 확대. 대기업 근로자에 비해 중견, 중소기업 임금 수준이 50~70%.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월수입 평균비율은 65%. 또한 고용 질에서도 양극화 경향. 취약 노동자 집단, 노동 인권 침해의 사각지대가 광범위 하게 존재.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사회 불평등 구조를 고착화 하고 있음과 취약계층에 사회적 덫으로 작용하여 노동 없는 성장과 민생 경제 파탄으로 귀결될 것. 결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하지 않고는 사회의 불평등 해소는 힘들 것. 더 나아가 많은 사 수 있다. 산업과 지역으로 확대 적용하는 단체 협약 집행 체계로 제도를 개편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함.마지막으로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이 대기업 정규직으로 일자리 이동이 원활 할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의 노동자 들이 나쁜 일자리 덫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 미취업자나 취약 노동자들이 좋은 일자리로 가기 위하여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서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제도와 정책을 강화하는 것이 적극 필요하다.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필수적인 과제는 구조개혁이다. 현재까지 정부의 정책은 신자유주의적 성장 추구로 인하여 불평등은 심화 되어왔고 노조 운동은 계급적 대표성을 띄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의 기득권 보호에 힘써왔다. 그로 인해 심각한 노동문제를 조장 방조하였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 개혁이 온전하게 추진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전반적인 변화와 노조 운동의 쇄신이 필요하다.먼저 정부는 노동 친화성과 유연 안정성이 보장된 방향으로 변화를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 진보적 단체장이 추진하는 것처럼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노동정책을 형성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노동시장 전반의 구조개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의 노력이 핵심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소득, 공정, 복지 주도 성장’ 패러다임이 부각되는 것은 다행스러운 대목이지만 노조운동을 적폐라고 생각하고 배제해하는 것은 수긍 할 수 없다. 노동의 협조와 지지 없이 소득 주도의 성장을 구현하기에 많은 반발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새 정부가 소득 주도의 성장을 제대로 추진함과 동시에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그로인한 병폐를 해결하기위해 노조 운동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이끌어 내는 것이 핵심적인 성공 조건이다.다음으로 노조 운동은 현제 침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에 대한 성찰과 전면적인 쇄신된다.① 소유격차는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와 소유하고 있는 양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생산을 통해 소득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생산수단의 소유여부는 불평등을 가져오는 근본적 원인이다. 다음으로 재산의 차이가 불평등을 초래한다. 금융자산과 부동산 소유의 차이가 불평등을 낳는다. ② 지식격차는 경제주체들의 학력과 기술 수준, 경력차이에서 나온다. 노동자는 학력, 기술, 경력에 따라 임금 소득 불평등이 발생하고, 자본가는 특허권과 같은 지적 재산권의 소유 여부에 자본소득의 불평등이 발생한다. ③ 권력격차는 거래 주체들의 조직화 정도에 따라 다르다. 자본소득과 노동소득 사이의 분배문제는 노사 간의 교섭능력에 따라 달라진다. 다른 예로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소득 수준은 대기업이 영향을 미친다. ④ 시장구조는 시장에서 독점을 하는지 경쟁시장인지, 공정경쟁인지 불공정경쟁구조인지, 시장이 단일한지 분단되어 있는지를 의미한다. ⑤ 마지막으로 제도특성은 헌법, 법률, 협약 등이 다른 원인들에 작용하는 정도에 따라 불평등에 영향을 주는 것을 말한다.이러한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요인들은 자본주의 발전 모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경제 주체들의 소유격차, 지식격차, 권력격차가 작은 국가가, 독점기업의 지배력이 약한 시장 구조를 지닌 국가가, 약자와 빈자보호가 강한 나라가 불평등의 정도가 작게 나타난다.자본주의 발전 모델을 5가지로 나눴을 때 보통 영미형, 라인형, 노르딕형, 지중해형, 동아시아형으로 나눌 수 있다. 대표적인 모델을 보면 영미형은 고용 보호와 실업 보호가 모두 낮으며, 노르딕형은 고용 보호는 중간수준이고, 실업 보호가 높다. 라인형은 모두 높다. 정부 규모 지수, 고용보호입법지수, 공적 사회 지출 비율, 지니계수 비교를 통해 불평등 정도를 분석하였을 때 영미형 모델이 가장 ‘작은 정부’를 가지고 있고 스웨덴 등 노르딕 모델이 가장 ‘큰 정부’를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형 모델은 영미형 만큼 ‘작은 정부’이다. 해고를 법적으로 제한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고용보호입법지수는 다.
기독교, 이슬람교Ⅰ. 기독교□ 개요― 소개 기독교 : 크리스트교의 한자음을 따온 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를 통칭하는 말.○ 개신교(프로테스탄트) - 교회. 로마 가톨릭의 제도권 부패(대사부 판매사건)으로 마틴 루터에 의해 종교 개혁이 단행. 개신교 탄생. 구원에 관한 생각이 가장 다른 점. 개신교는 하느님을 믿는 자는 모두 구원된다. 천당과 지옥으로 구분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착하게 살아도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천당에 들어 갈 수 없다 생각. 성모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이자 신자들의 어머니. 성직자 신부(독신,남성) 수도자 수사, 수녀(독신)○ 천주교(가톨릭) - 성당. 교황o 종교개혁 천주교의 구원에 대한 생각은 선행 즉 올바르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필수 조건으로 내포. 신앙+선행. 천당 지옥 그리고 연옥으로 구분. 연옥은 천당과 지옥의 중간계 정도의 개념. 믿지 않았다 하더라도, 죄의 값을 제대로 치루지 않은 사람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다는 의미. 성모마리아는 예수의 육체적인 어머니. 성직자, 수도자 존재x (성공회는 수도자 존재)○ cf) 이슬람교 - 알라를 유일신으로 섬김 but 알라=하나님=야훼 모두 같은 신. 같은 신을 섬기지만 믿는 방식, 해석의 방식, 신과 관련 인문들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종교의 차이를 가져옴. -> 이슬람교는 장자인 이스마엘을 정통이라고 봄. 유대교와 기독교는 적자이지만 본처에게 태어난 이삭을 정통이라고 봄. 이슬람교 유대교는 예수를 그저 예언자로 이야기 함.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예언자이자 신성을 가진 존재로 이야기 함. -> 이슬람교는 무함마드를, 기독교는 예수를 유대교는 모세를 최고의 예언자로 봄.○ 그 외 - 동방교회(정교), 성공회(영국국교)― 현황 : 중국의 공식통계에는 기독교인은 2800만 명. 공인받지 못한 지하교회(일명 가정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합칠 경우 1억이 넘을 것이라 추정.□ 발전사― 유입: (당~원나라 시대) 7세기 당나라에 네스토리우스파가 실크로드를 통해 전파. 경교라 부름. 장안( 강희제는 1692년 로마 가톨릭을 공인. 그러나 18세기에 변화를 겪음. 교황청에서 중국의 전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계속 추궁. 그 결과 교황청은 중국의 전례에 호의적이지 않음. 이후 선교사의 중국 입국 자체는 허용하지만, 중국에서의 로마 가톨릭 선교는 이후 장기간 중단.19세기 이후 중국 개신교는 (서구 열강의 쇄도에 의해 식민주의라는 변질된 경로로 들어오는 듯한 경향을 보임. 또한 정통 교의에서 이탈 태평천국 같은 신비주의 운동이 일어나기도 함.) 괄호와 같은 문제에도 불구 영국의 개신교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을 시작으로 여러 개신교 단체들의 꾸준한 선교 수천만명의 신자를 얻음. 영국의 개신교 선교사로서 중국 내지 선교회(현재 동아시아 선교회/OMF의 전신)를 설립한 허드슨 테일러와 로마 가톨릭 선교사들은 중국인들과 똑같은 옷을 입음으로써 중국인들이 기독교에 친숙함을 가지게 함.― 탄압: 1949년 성립된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정부는 종교 통제를 본격화함. 기독교인들은 강제수용소 안에 가둠. 탄압은 문화혁명 때 절정. 그러나 덩샤오핑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개혁개방을 시작할 때 중국에 종교의 자유 인정. 개신교, 로마 가톨릭, 성공회를 기독교 단체로 인정.중화민국(대만)은 1942년부터 교황청과 외교관계를 수립. 중화인민공화국이 종교를 탄압하는 분위기인 반면 중화민국은 종교 자유를 인정.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자유로운 신앙을 허용.― 정착 할 수 있었던 이유○ 성경: 농촌 기독교 신도 60%가 문맹,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90%.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사고 성경을 붉은천으로(붉은색 귀한색으로 생각함) 싸서 궤짝 밑에 소중히 간직. 만약 앓는 사람이 있으면 성경을 머리맡에 놓고, 외출시에는 몸에 지니고 다니는데 악마를 누르고 귀신을 막으며 사람을 보호하고 무사태평하게 한다 생각.다른 지역은 종교신앙 수준이 비교적 낮고 온 마음에 '현령'(성령) '승천'의 이념으로 꽉 차 있으며, 때로는 직업을 포기하고 집단적으로 산에 올라가 '승천 구원받기- 민간 전통은 조상을 공경히 모심. 모순되지만 마음속으로 오직 유일한 하나님만 믿는다면 어쩔수 없는 상황에서는 형식적으로 절하여도 큰 문제로 삼지 않음.○ 기독교 의식의 중국화: 농촌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선교사 시대부터 노래와 춤에 능한 소수민족의 특징에 근거 희락 예배를 드리며 있다. 영가를 부르고, 영무(靈舞)를 추며, 민족언어로 찬송가를 부르며, 소수민족들의 삶 즉 그들이 즐겨 듣고 보는 형식을 기독교 의식에 융합. 예배일 혹은 교회 명절 때 여러 소수 민족 마을에서는 찬송가 소리가 끊임없이 울러 퍼져 농후한 종교적 분위기를 이루었으며 이러한 종교감정을 통해 사회단합을 꾀하기도 함.Ⅱ. 이슬람□ 개요― 이슬람교(회교): 무함마드를 예언자로 하며 알라를 단일신으로 하는 종교. “알라”는 아랍어로 하나님, 신이라는 뜻. “이슬람”의 뜻은 복종, 순종이라는 듯. 경전으로 코란을 사용.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받은 말을 알라가 기록한 것이라고 함. 교리는 매우 단순. 이만(6가지 종교적 신앙)과 이바다(5가지 종교적 의무를 기본으로 함. 이만이란 여섯 신을 믿는 것을 의미. 알라, 천사들, 경전들, 예언자들, 마지막 심판, 운명론에 대한 믿음을 말함. 이바다란 신앙생활을 지탱하는 다섯 기둥이며 이슬람 법(샤리아)에 근거 가장 중요한 의무. 신앙고백(알라 외에 신은 없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예언자이다), 기도 (매일 5회 기도), 단식 (이슬람력 9월을 라마단이라 하는데 한달동안 일출부터 일몰까지 음식 및 음료의 섭취와 성행위를 금함), 자선(일반적으로 상공업에 종사하는 부자들의 재산 2.5%나 농민들의 연 생산량 10~20% 가난한사람들에게 분배), 메카 순례(이슬람력 12월에 경제적 신체적으로 능력이 있는 모든 무슬림들이 일생에 한 번 행해야 함)― 기독교와 공통점 및 차이점공통점: 동일한 절대자 숭배. 천국과 지옥으로 나타내는 사후세계를 믿는다는 점. 그리스도의 업적과 성경을 존중한다는 점. 또한 그리스도를 위대한 예언자로 존중.차이점: 이슬람교 같은, 당나라 정관 2년(628)등의 설이 존재. 일반적으로 당나라 영휘 2년(651)에 이슬람교 국가인 아라비아의 사자가 당나라에 파견 된 것이 역사적 사실로서 확실한 정도. 무함마드 사후 세 번째 할리파(아랍어로 계승장, 대리인을 의미)가 최초의 사자로 중국에 파견되어 장안에서 당고종을 접견하였다고 구당서에 기술됨. 일반적으로 이시기를 이슬람교가 중국에 처음으로 전래 된 것으로 간주함.― 정착: 다른 종교와 다르게 교의, 철학이 아닌 무슬림의 인구증가로 세력을 넓힘. 651년 이전 아랍상인들이 중국에 와서 상업 활동을 하였는데 그들과 함께 이슬람교가 정착하게 된 계기가 됨. 한 번은 당고종이 안사의난을 평정할 때 아라비아 등으로부터 병마 20여만을 빌렸는데 그중 많은 사람이 중국에 남아 후대에 번성하여 많은 무슬림이 중국의 서북 각 지역에 거주하였음. 또한 원나라 시기 칭기즈칸이 원정 후에 돌아올 때 중앙아시아의 많은 무슬림이 주욱에 들어와 중국의 서북 각 지역에 거주하였음. 이렇게 중국에 거주하게 된 무슬림들이 중국에서 토착화 하여 중국 무슬림의 일부를 형성 정착하게 됨.― 성장: 원나라 시기 이슬람교에 관용정책을 취하여 서아시아의 이슬람교도(아라비아, 페르시아, 터키인등) 원나라로 대거 이주 원나라 관리로도 일함. 그들은 황화유역, 양자강 유역의 여러 지방으로 이주하여 살았고 중국의 사람들과 결혼을 통해 수가 증가하고 자발적으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중국인들도 나타남. 문화방면에서 이슬람의 천문학, 역학, 과학기술도 원에 전해져 발전을 이룩하고 원에서 적대시 하지 않아 빠르게 증가. 하지만 이슬람교의 경우 중국화 과정이 상대적으로 힘들었고 많은 시간이 걸림. 이슬람교는 대부분 아랍 상인, 사병이 중국에 들어와 정착한 후 자신의 종교생활을 위하여 청진사를 필요로 하여 건립하였음. 이미 유교를 중심으로하고 도교와 불교가 자리를 잡고 있어 중국의 주류문화로 자리잡는 것은 어려웠음. 단지 중국에 들어온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무슬리므로 형성된 회족 및 기타 소수민족 중심사원이 약간의 작은 사원을 관할하는 것으로 예속관계였으며, 셋째는 앞의 두 개를 절충한 것으로 교방이 약간의 청진사를 관할하거나 혹은 교주가 직접 관리하거나, 교주위 대표가 담당하였다. 이러한 교방제는 중국 농촌사회에서의 특수한 현상이었으며, 이슬람교와 중국 봉건제도가 서로 결합한 특이한 산물임. 청대에 이르러 서북일대에 교방제의 기초 위에 문환제를 결합. 이슬람교 수피즘(일종의 신비주의)각 유파가 중국에 유입된 이후 서북지구에 4대학파가 형성되었는데, 호비야(虎非耶), 알적임야(?迪林耶), 고포임야(庫布林耶)와 철혁임야(哲赫林耶) 등 4대 문환이다. 문환의 최고 영수는 교주로 어느 정도의 청진사 혹은 교방을 관할하였고 종교와 세속권을 가졌으며, 이러한 지위와 신분 및 권력은 세습됨.경당교육은 중국 이슬람교가 실시한 일종의 방식으로, 사원교육 혹은 아랍어(回文)대학으로 불림. 명시기 중국어 유가경전과 아랍어 이슬람경전을 익힌 섬서성의 경사인 호등주가 구두로 경문교의를 전파하는 방법으로 고향에서 사숙방식으로 수학자를 모아 가르쳐서 섬서학파를 만들었고, 경당교육의 발전을 촉진시킴. 경당교육의 발전에 따라 중국의 무슬림 중에서 독특한 언어가 만들어졌는데 이를 '경당어'라고 함. 이는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그리고 중국어가 섞여서 만들어진 것. 그중 소수 어휘는 유교·불교·도교경전 혹은 일상 중국어에서 온 것. 경당어는 중국어를 통용하는 무슬림 속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중국 이슬람교의 발전을 촉진시켰으며, 또한 중국어 어휘를 풍부하게 하였음.― 탄압: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중교가 미치는 영향력 약화 정책을 실시. 1947년 토지법대강을 실시 모든 사원의 토지소유권을 박탈하여 이슬람교에 타격을 줌. 또한 1949년 토지개혁운동을 통해 이슬람교의 토지를 완전 몰수. 종교 억제정책을 쓰는 한편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을 소수민족으로 대우하고 그들을 회족이라 부름. 특히 회족의 밀집 거주지역에 양하 회족자치구, 임하회족자치구, 신강의 창길 회족자치구, 9개의 회족 자치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