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부재잠에서 깨어나 거울 앞에서 섰을 때, 나는 아직도 주마등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영웅을 꿈꾸던 초등학생의 김명수가 거울에 비췄을 때. 나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다세대 주택이 밀집되어 있는 거리에 좁은 골목 사이를 두고 몸을 한껏 움츠렸다. 예전 같았다면 그냥 들어가도 거뜬했을 넓이였지만, 새삼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음을 실감하며 상체를 비스듬이 틀었다. 벽에 쓸려 묻은 거뭇거뭇한 흙먼지들을 탈탈 털고서 핸드폰 메모에 적어둔 주소를 확인했다. 덕충동 131-1번지. 제대로 찾아온 것을 확인한 뒤 초인종을 눌렀다. 나는 동시에 집들이 선물로 가져온 학용품 세트와 책가방이 담긴 쇼핑백을 내려다 보았다. 방금 골목을 지나오느라 흙먼지가 묻고 모양이 짓눌려서 손으로 탈탈 털었다. 일부러 열어놓은 듯한 반쯤 열린 문고리가 먼저 나를 반겼다. 그곳으로 들어가자 거실에 앉아 커다란 다라이 안에 손을 넣어 반죽을 하는 짜이웬이 보였다. 우리 둘은 처음 만난 사이처럼, 어쩌면 예상치 못한 만남처럼 주춤대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짜이웬이 밀가루가 묻은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명수, 진짜 많이 컸네? 라고 감탄했다. 마치 웃어른이 오랜만에 만난 조카를 보며 하는 말 같았다. 여전히 어눌한 발음과 이국적인 외모의 짜이웬을 보고선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손 씻고 와서 앉아, 짜이웬이 다시 반죽하며 말했다. 나는 선물들을 내려놓고 세면대에 가서 손을 씻었다.웬 만두야, 내가 묻자 짜이웬은 오늘 은주의 생일이라고 얘기했다. 은주는 김치만두를 좋아하고 짜이웬은 고기만두를 좋아해서 속을 따로따로 만들어줘야 했다. 짜이웬이 긴 김치를 들어올려 아래서부터 가위로 잘근잘근 잘라내며 말했다.“그런데 명수, 이렇게 보니까 너무 어색하네. 난 명수가 쪼그맸을 때 봤는데 말야.”뭐, 흔한 일은 아니지. 나는 힘있게 반죽을 누르며 말했다. 일은 다시 나가겠네? 짜이웬이 한층 밝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넌 여전히 거기서 일하는 거야? 짜이웬끝까지 손을 내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 예. 하며 떨떠름하게 목례를 건네면서 사탕을 받았다. 짜이웬이 내게 말했다. 일, 필요해요?짜이웬이 데려간 곳은 상자 제조업체였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출신을 알 수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내가 받은 일은 정돈된 박스를 3칸씩 쌓아 노란 노끈으로 묶은 뒤, 짐칸에 실으는 일이었다. 키가 작은 나도 한계 없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검버섯이 그득히 피어오른 늙은 남자는 빨간색 호루라기를 목에 걸고서 짜이웬과 나를 노려보았다. 힘껏 찌푸린 눈으로 나를 흘겨보다가 내가 ‘희귀병 이에요.’ 라고 말했다. 어린애치고 한없이 굵직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휘휘 저었다. 하루에 3천 박스 정도의 양을 해야 했다. 조금 힘들긴 했어도 가만히 있는 것 보단 나았다. 체력 역시 하루종일 공만 차던 초등학생 체력으로 돌아가서 박스를 아무리 옮겨도 쉽사리 지치지 않았다. 반면 짜이웬은 목형으로 조각된 박스를 여러겹 겹쳐서 전개도를 따라 자투리를 잘라내는 작업을 했다. 홀로 박스 자투리까지 치워야 했기에 일손이 더 많이 갔다. 나는 8만원. 짜이웬은 10만원. 하루 일당이었다. 휴일없이 출근해야 했고 나름 밥 거를 걱정은 안 해도 될 만큼의 수익이었다. 박스 자투리를 빗자루로 쓸어 정리하는 짜이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 때 짜이웬이 나를 왜 공장에 데려갔는지는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동그랗게 말은 만두피를 엄지 손가락으로 밀어내며 얇게 펴냈다. 불현 듯 짜이웬에게 물었다. 혹시 그 때 왜 날 도와준거야? 밀가루가 묻은 노란색 장판 바닥을 닦는 짜이웬이 나를 보며 고개를 비틀었다. 혹시나 내 말을 이해못한 건가 싶어 손짓을 사용하며 말을 부러 느리게 나열했다. 짜이웬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걸레질을 멈추고서 말했다. 슬픈 사람들끼리 도와야 해. 슬픈 사람이라. 그 말을 듣자마자 가슴 한 켠이 따끔거렸다. 그 땐 가영이 장례가 끝나고 한달즈음 되던 무렵이었다. 나는 숟가락으로 김치만두 속을 푹 떠서 만두 것 같았다.15층 짜리 건물 옥상에 불이 난 적이 있었다. 20키로가 넘는 장비를 끌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거운 소화 장비에 통풍도 되지 않은 방화복과 헬멧을 착용하니 그것만으로 체력소모가 컸다. 공사 중인 건물이었기에 소방시설이 작동하지 않아 호스를 이어 전개해야 했다. 15층까지 호스가 닿는 일은 쉽지 않았고, 건물 내에서 무전기도 잘 터지지 않아 소통도 어려웠다. 호스를 잡은 후배가 아래층서 무어라 외쳐대고 있었다. 황급히 무전을 켜봤지만 지지직 대는 소리만 울릴 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불길은 더 짙어지고 시야 확보도 어려운 상태서 후배가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야 이 새끼야 나중에 얘기하고 호스 똑바로 들어! 후배가 목소리를 줄이자마자 호스에 물줄기가 터져 나오고 불더미에 조준했다. 불길이 옅어지고 온통 까매진 건물을 보며 풍선 바람 빠지듯 툭 계단에 걸쳐 앉았다. 야 창근아 너 근데 아까 뭐라 하려 했냐? 장비를 정리하는 창근이 계단을 하나둘씩 올라왔다. 헬멧을 벗은 창근이의 푸르죽죽한 얼굴이 드러나고 한 칸씩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보니 내 가슴에 하나둘 씩 무언가 맺히는 것 같았다. 꼭 영화 대사를 읊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한라비발디 103동 501호 형님 집… 맞죠? 창근이의 대사는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꼭 여러 번 돌려봐야만 이해되는 박찬욱 영화 같았다.네, 확인 했어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의사가 손을 풀고서 더 시간 안 드려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안치실을 나왔다. 얼굴은 아직 땀으로 축축한 머리와 거뭇한 잿더미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15층 건물 옥상에 핀 불꽃을 제압하는 도중, 가영이의 집에서 불이났고 옥상 불을 다 제압했을 때는 가영이의 시체가 동료의 등에 업혀 나올 때였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어떤 감정도 울렁이지 않았다. 게다가 참 간사하게도 내가 그 현장에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쳐지났다. 눈물이 나기는커녕, 이 사실을 장모에게 전해영정사진까지 떨어뜨리며 춤을 췄다. 저 놈 뭐하노! 아이고 우리 가영이 우짜면 좋노…. 너무 슬퍼서 사라져 버릴 것 같다는 가영이의 말이 서서히 내 몸을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눈물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분통함이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하는 것 같았다. 형님, 그러시면 안돼요! 뭐하시는 거에요! 보다 못한 창근이가 내 두 팔을 잡고 멈추려 하자 나는 별안간 몸을 딱딱하게 굳히고 고개를 로봇처럼 천천히 꺾어 바라보았다.춤사위가 끝난 후 아무렇지 않게 영정사진을 주워 들었다. 입관을 하는 내내 사람들의 발소리와 음악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커다란 파도가 휩쓸고 간 것처럼 일제히 침묵을 지켰다. 꼭 눈물을 흘려야만 슬프다고 누가 그랬는가. 갑작스럽게 설키고 흔들리던 내 몸이 녹아내릴 것처럼 슬픔을 토해내고 있었다.그리고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 날, 가영이가 키우던 화초가 전부 죽어 있던 바로 그 날 아침, 나는 제일 먼저 소매에 감춰진 두 손을 바라보았다. 팔과 다리가 옷에 질질 끌린 내 몸을 내려다보고서는 느리적 화장대에 앉았다. 두 손으로 의자를 짚고 올라가야 앉을 수 있었다. 푸르죽죽한 피부와 나이를 나타내던 검버섯 하나 없이 탱글탱글한 어린아이의 피부가 먼저 보였다. 호스 잡다가 생긴 굳은살이 전혀 없는 보들보들한 손으로 얼굴을 이리저리 만졌다. 그러다 문득 무릎이 까진 상처가 보였다. 친구들과 줄곧 축구를 하다가 이런 잔 상처들을 많이 만들어오곤 했는데 이 상처로 내 나이를 가늠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축구와 사랑에 빠지던 그 나이.“명수, 은주 기억나?”지금 은주 몇 살이지? 찜기 안에 만두를 넣으며 물었다. 그러자 화색이된 짜이웬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초등학교 들어갔어. 2학년. 짜이웬이 자랑스럽게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이윽고 핑크색으로 알록달록 꾸며진 방 안으로 들어가서는 액자 하나를 들고 나왔다. 작업복을 입은 짜이웬과 종이로 만든 왕관을 쓰고 있는 은주가 보였다. 종이 왕관에는 ‘입학을 축하합니다.’ 라고 쓰여있점심을 먹고 왔는지 다시 일을 하고 있었다. 바깥 바람을 쐐고 온 은주는 여느 아이들과 그렇듯 공장 곳곳을 배회하기 시작했고, 내 구역까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은주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안녕.”어줍잖게 인사를 건네자마자 휙 몸을 내빼버렸다. 개의치 않고 김밥을 입에 넣어 우물거렸다. 어깨에 걸린 흰수건으로 땀을 훔쳐내며 오늘 채워야 할 고구마 박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문득 다시 은주가 소심한 걸음으로 살금살금 걸어왔다. 은주가 내게 가까워질수록 괜히 긴장되었다. 어느새 내 코앞까지 온 은주가 두 손을 등 뒤로 숨기고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몇 살이야. 내 생김새를 보고 또래인줄 알고 묻는 질문일터였다. 나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아저씨 어른이야, 하고 늠름히 대꾸했다. 작은 키에 어울리지 않은 굵직한 목소리에 히끅, 하고 놀란 은주는 금세 꺄르르 하고 웃어 보였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뭐가 웃겨. 이 아저씨 키가 웃기니?”“아저씨 같아서 웃겨.”아저씨 맞다니까. 김밥을 하나 더 씹어 넘기자 은주는 내가 있는 곳을 총총 걸으며 누볐다. 점심시간이 끝났다. 내 주변을 빙빙 도는 은주는 나에게 이런저런 영양가 없는 말을 던져댔다. 대강 단답으로 대답해줬지만 모든 질문에 대답해주진 못했다. 공장 돌아가는 소리에 먹먹해진 귀를 손목으로 문질렀다. 저 잠깐 담배 좀 피고 오겠습니다. 담당자에게 말하자 커피를 마시며 차트를 보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례를 건네고서 옆 건물로 옥상으로 올라갔다. 여기 공장 뒤편에도 흡연이 가능했지만 불량한 고등학생들이 이따금 그곳에서 담배를 피운다. 지금 내 상태로는 그런 학생들을 만나 좋을 게 없으므로 아무도 없는 옆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상가로 지어질 이 곳은 아직 미완공인 건물이었다. 곳곳에 파란색 천이 쳐져 있었고, 옥상에는 담배꽁초들과 재떨이가 있었다. 어두운 내부에 있는 계단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가면 커다란 쇠파이프가 기대어 있었다. 건물의 뼈대 역할을 할 이 쇠파이프는 길이도 길었고 크기도 무을.